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 -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으로 읽는 20억 년 생명 진화 이야기
김홍표 지음 / 궁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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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은 소화되다가 남은 찌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대변의 절반은 세균 덩어리다. 또 대변의 구린내는 음식물이 썩어서 그럴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 세균들이 뿜어내는 냄새다. 이 세상에 약 10만 가지가 넘는 세균이 있다. 이 중에서 약 수백 종류의 세균은 우리 몸속에 살림을 차리고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다. 세균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아늑한 집이다. 소화관에 사는 장내 세균은 인체 내 세포의 개수보다도 많다. 이 세균은 수백만 년 동안 사람과 공생 관계를 이루며 진화해 마치 장기처럼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세균을 공생 세균이라 부른다.

 

몸에 이로운 세균들은 우리의 소화를 도와준다는 점에서 필요 불가결한 존재라 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선 공생 세균이 없으면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가 먹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장내 세균이 음식 중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 중 많은 부분을 분해한 다음에야 인체는 이들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다. 또한, 세균은 비타민과 장 내 염증을 억제하는 화합물 등 인간이 생산하지 못하는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소화기관은 미생물과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음식물을 잘 소화하게끔 20억 년 동안 진화해왔다. 김홍표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의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우리 몸의 소화기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서 진화의 유산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생물학 전문 용어가 등장해 중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되새겨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책은 진화와 소화기관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이 우유를 마셔서 소화할 수 있는 이 사소한 생리현상도 진화의 결과이다. 인간은 젖당 분해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젖을 뗌과 동시에 유아기의 소화 시스템을 버리게 돼 있어서 성인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한다. 인간이 젖소에서 얻는 우유를 새로운 영양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진화하면서 이제는 대부분 인구가 평생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를 가지게 된다.

 

입에서 나는 악취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원인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흔히 입 냄새라고 말하는 이 신체적 증상에도 병명이 있다. 생선 냄새 증후군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트리메틸아민(trimethylamine)이 몸속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아 생기는 병이다. 소화가 덜 된 트리메틸아민은 땀이나 침, 내쉬는 숨, 소변 등으로 배출된다. 트리메틸아민 자체가 생선 비린내를 풍기기 때문에 이 병에 걸리면 몸 전체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생선 냄새 증후군이 생기는 이유는 FMO3라는 효소이다. 그런데 간세포에 문제가 생기면 FMO3 효소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음식에서 주로 발생하는 트리메틸아민이 제대로 소화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 돌연변이 효소는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유전된다. 이들의 양을 줄이려면 장내에 메탄 생성균의 수를 늘려야 한다. 메탄 생성균은 트리메틸아민을 메탄으로 환원시켜 에너지를 얻는다.

 

저자는 소화기관을 필요한 미생물을 종속 영양 생명체라고 말한다. 하나의 개체단위로 스스로 생장 증식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우리가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미생물은 몸속 물질과 거처를 받는 대신 숙주를 먹이고 보호한다. 평소에는 내 삶의 반려자이자 협력자이다가 내가 약해지면 나를 공격하기도 하는 것이 내 몸의 미생물이다. 우리 몸과 미생물 간의 미묘한 견제와 균형이 깨지면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없게 되고, 악화하면 병이 나타난다. 한 명의 인간이 도저히 살아낼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을 살아오며 진화를 거듭해온 미생물은 앞으로도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종속 영양 생명체가 없었다면 지구상에는 진핵생물이 생겨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경쟁보다는 공생이 인류가 오래오래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제일 나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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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3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3 19:09   좋아요 1 | URL
몸안에 있는 독소가 잘 배출되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저처럼 통풍 걸릴 수 있습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7-02-14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어렸을때 장 수술을 할일이 있어 병원에 입원한적이 있는데... 한 간호사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잘 먹고 잘 싸면 건강한거라고~ 특히 잘 싸는 것이 중요한데 사람들이 많이들 먹는데에만 치중한다면서.. 벌써 15여년전 일인데.. 최근 대장암이 늘어간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때가 생각이 났어요~

cyrus 2017-02-14 12:03   좋아요 0 | URL
첫 번째 비밀댓글을 남기신 분도 행복하자님과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나이 들어보니까 화장실을 자주 가지 못했을 때와 매일 앙침 화장실에 갈 때 내 몸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낭만인생 2017-02-14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쟁보다는 공생‘에 공감이 갑니다. 결국 몸도 사회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책이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cyrus 2017-02-14 13:49   좋아요 0 | URL
책에 그림이나 사진이 많았으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쉬웠을 겁니다. 내용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7-02-15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맞는 거군요..!

cyrus 2017-02-16 11:46   좋아요 0 | URL
냄새가 구리니까 피하는 게 당연하죠. ㅎㅎㅎ

나비종 2017-02-16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먹고 잘 싸는 법에 대한 책이로군요.ㅎㅎ 공생을 생각하니 서민 교수님의 기생충이 오버랩된다는. .^^;

cyrus 2017-02-16 11:48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나비종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생물학 책을 읽게 되면 결국 최종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 ‘공생’과 ‘조화’의 중요성입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을 알기 위해 생물학을 공부하면 좋습니다. ^^
 
유전자 사회 - 인간 사회보다 합리적인 유전자들의 세상
이타이 야나이 & 마틴 럴처 지음, 이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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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최소 단위는 세포다. 원시의 바다에서 단세포생물이 처음 출현한 그 날부터 계보를 이어 내려오면서 세포는 점점 복잡한 구조를 가진 고단위의 생명체로 진화해왔다. 세포를 만들어내고 그 세포가 생존에 더욱 적합하도록 진화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유전자다. 지금까지 유전자나 유전학에 대한 대중 과학서들이 대체로 ‘이기적 유전자’나 ‘이타적 유전자’라는 관점에서 자연현상을 풀어나갔다면, 《유전자 사회》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유전자 세계를 조망하고 순례한다. 유전자는 필연과 우연, 변화와 정체, 이기심과 이타심 같은 수단들을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사용하여 생명을 연속시켜 나간다. 이제껏 진화의 문제가 ‘생존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 과정’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 확산을 목적으로 한 진화 과정은 아무 의지 없이 진행되는 자연선택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그것은 사회 안에서 협동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결국 “생명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려면 먼저 우리가 ‘유전자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유전자 정보는 생명을 이루어줄 뿐만 아니라 개성까지 갖춰 준다. 사람의 개성이나 체질이란 서로 다른 극히 일부의 염기서열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유구한 세월 동안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적응하며 진화해 온 존재이며, 어느 생명체도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부분 질병은 유전자들의 돌연변이에 의한 기능 이상 때문에 비롯된다. 인간 역시 다른 생물과 함께 진화의 과정 중에 있다. 유전자들의 변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해 여러 질병이 생기기도 하지만, 더 우수한 형질이 만들어지기도 하며 그것으로 생명체의 다양성도 유지된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 언젠가는 암도 정복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과학에 대한 지나친 맹신과 막연한 기대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들이 다음 세대에 자신들 유전자 정보를 물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생명체는 죽지만 유전자는 번식을 통해 계속 지구상에 살아남는다. 암세포는 원래 정상 세포의 유전자가 발암 요인에 의해 돌연변이가 일어나 생긴다. 기하급수적으로 숫자를 늘려가며 주위의 정상조직을 파괴하고 자신의 졸병들을 혈관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급기야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다. 따라서 암은 유전자가 역동적으로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과정의 근본적인 결과다. 이런 시각에서 암의 발생 이유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암을 예방하기 위해 턱없이 비싼 건강식품이나 비법 등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런 노력을 통해 내 몸에 존재하는 암 발병 가능성을 가진 유전자의 존재를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나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치아가 약해지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인간이 유전자 속에 가진 정보일 수 있다.
 
《유전자 사회》는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을 깔고 있지 않다. 유전자가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유전자 결정론은 다양한 인간의 삶을 획일화하고,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근거가 된다. 《유전자 사회》는 이 극단적인 생각과 전혀 관련 없다. 《유전자 사회》의 저자들은 인류의 유전자가 인종과 관계없이 99.9% 일치함에도 인종차별이 일어나는 이유를 짚어본다.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문화적 변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은 유전자와 문화적 요소(관습과 교육)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는데 문화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준다. 유전자란 해당 개체 생명체의 행동유형을 규제하긴 하지만 그런 유형은 사회적 및 자연적 환경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는다. 달리 말해서 기존 진화이론과 달리 유전자 역시 고립된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의 조건에 따라 서로 변화할 수 있다. 《유전자 사회》는 인간이 모든 생물 종의 가장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로부터 무수히 많은 것을 받았고, 지금도 그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인간은 생명의 역사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목적지가 아니라 유전자 세계 속의 간이역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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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07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학의 분석 단위가 ‘개체‘에서 ‘유전자‘로 내려가면서, ‘개인의 의지‘나 ‘생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의 개념과 개체로서 ‘개인‘이 이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사회학의 변화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2-07 12:43   좋아요 1 | URL
흔히 유전자를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해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유전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여전히 연구해야 할 것이 아주 많습니다. 유전자 세계를 하나의 사회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
 

 

 

 

 

 

 

 

 

 

 

 

 

 

 

 

 

 

음악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힘이 있다. 음악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뿐 아니라 삶의 의욕을 찾아갈 때 보람을 느낀다.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소 다르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약이 있듯, 음악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따로 있다. 음악을 듣고 쾌감이나 편안함을 느끼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때는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몸의 생리현상과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들어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어떤 음악이 좋은가를 알기 위해 무슨 기계나 장치로 측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에게 안정감과 편안한 기분을 안겨주는 음악이면 된다. 그런 뜻에서 우리 몸의 생리현상도 음악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함을 느낄 때 코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줄어든다. 코티솔은 침 속에 포함된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의 농도 변화로 신체 스트레스 증감 여부를 살필 수 있다. 코티솔 농도가 높아지면 우울증이 나타난다.

 

음악이 심신을 이완시키고 스트레스를 풀어줘 마음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연구보고는 수없이 많다. 음악이 인간의 정서함양이나 창의성 계발 등에 유용하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인정됐지만, 이를 과학적, 임상의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다. 김형찬의 음악의 재발견은 음악이 우리 인간을 사로잡는 이유 등을 설명하여 독자들을 음악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음악이 우울증이나 불안증 치료에 효과적임을 거듭해서 확인하고 있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밝혀내지 못한 상태이다. 과학적 회의주의자 입장에서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연구보고와 과학적 근거들을 본다면 좀 더 다양한 실험과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싸이매틱스(cymatics)’라는 학문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1] 싸이매틱스는 소리와 같은 진동파를 시각화하는 학문이다. 싸이매틱스 연구자들은 432Hz440Hz의 주파수로 조율한 음악이 각각 수면에 미치는 파장을 분석하면 432Hz 쪽이 더 조화로운 모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현상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싸이매틱스 연구자가 그 유명한 TED에 강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만 가지고 싸이매틱스가 과학성의 구조를 갖춘 학문으로 볼 수 없다. 여전히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사실 싸이매틱스 이야기보다 더 황당한 내용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연구진들이 식물이 긍정적인 인간의 언어에 반응하는 현상을 학술논문에 발표했다.[2] 고운 말을 들려준 식물은 풍성하게 자라지만 나쁜 말을 들려준 식물은 성장이 더디다. 정말 식물이 인간의 언어를 구분하고 감정에 반응할 수 있을까. 식물이 실제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실험은 오래전부터 확인되었다. 그러나 식물이 의식이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국내에 한때 에토모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가 과학 분야 최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에토모 마사루는 물이 글과 말, 형상을 보고 듣고 기억한다고 주장한다. 물 앞에서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글과 단어, 아름다운 사진, 음악을 보여주거나 들려주면 예쁜 모양의 결정구조를 만들어내며 나쁜 말과 글, 사진, 시끄러운 음악에 대해서는 흉한 모습의 결정구조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사람이 쓴 책을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책 내용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많은데, 이미 일본에서는 에토모 마사루의 주장이 사이비 과학으로 판명 났다.[3]

 

비과학적인 내용은 한쪽 귀로 듣고, 뇌로 필터링해서 반대쪽 귀로 흘려야 한다. 그래도 음악의 재발견에 매력은 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가수들과 가요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와 이해를 배가시킨다는 점이다. 이 장점이 없었으면, 상당히 실망감이 큰 책으로 남을 뻔했다.

  

 

 

 

[1] 물과 모래도 음악에 맞춰 표정 짓고 춤을 춘다26~27

[2] 시인의 자작곡 들으면서 식물처럼 자라볼까104~105

[3] 한국 스켑틱 3》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감정이 물체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검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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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23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악이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도 건재한 이유가 행진곡과 장송곡이죠....살면서 음악이 늘 함께 했으니까요..그런점에서 새로운 발견이라는 인식론은 유의미하게 되거든요..이책 사놓고 아직 펼치지를 못했는데 리뷰 먼저 올리셨네요.^^

cyrus 2017-01-24 11:44   좋아요 0 | URL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라서 금방 읽었습니다. 사실 제가 모르는 음악 용어가 나오는 글은 정독하지 않고, 넘겼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미있게 봤는데, 책에 참고문헌 목록이 없어서 진위 여부가 의심스럽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01-24 0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물은 답을 알고있다‘를 오컬트로 보기 보다는 ‘파동‘에 의한 작용을 단어 그 자체의 뜻과 인지로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닌가 싶어요. 식물의 경우 classic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메탈보다 좋은 효과를 준다는 실험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음악자체의 해석보다는 역시 ‘파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음파의 질, 주파수, 양, 압력 같은 다양한 것들이 인체기관에 영향을 준다는 건 이미 거의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이라고 보거든요..

cyrus 2017-01-24 11:50   좋아요 0 | URL
회의주의자들은 파동이 인체나 생물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플라시보 효과에 의한 착각이라고 반박합니다. 그래서 에토모 마사루가 주장하는 파동의학이 기술적 측면에서 미래에 사용될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임상적으로 증명된 게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사과학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2-01 18:29   좋아요 0 | URL
식물에 영향을 주는 것도 플라세보로 볼 수 있을까요ㅎㅎ??

cyrus 2017-02-01 20:21   좋아요 0 | URL
To. 고양이라디오님 // 음악을 들려준 식물의 반응을 관찰한 학자나 그 실험을 믿은 사람들이 플라시보 효과 비슷한 심리적 반응을 보입니다. 음악(의 파동)이 식물에 영향을 준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음악의 좋은 영향 때문에 식물이 잘 자랐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실험의 결과를 믿는 사람들은 음악이 병을 치유하는 데 좋은 효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홍성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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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우주관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한 천동설이었다. 갈릴레오가 관찰과 실험을 계속한 끝에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지동설을 주장한다. 지동설은 중세적 세계관과 정면으로 배치됐기 때문에 교회는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부친다. 법정에 선 갈릴레오는 법의 위협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동설이 틀렸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은 갈릴레오에게 객관적인 진리였다. 데카르트는 과학적 지식을 진리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명제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절대 불변의 진리다. 인간이 스스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생각은 과학적 낙관론을 위한 철학적 배경이 되었다. 인간은 과학지식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진리라고 믿었던 과학지식이 새로운 연구를 통해 오류임이 판명되고,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을 과학을 통해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과학기술과 사회학(STS)’의 관점에서는 과학지식은 엄밀한 과학적 연구 절차와는 다르게 기술과 사회가 서로 맞물려서 형성된다고 본다. 즉, 과학지식은 인간과 비인간(nonhuman : 기술, 실험도구 등)이 상호 작용으로 형성된 결과물이다. ‘과학기술과 사회학’ 또는 ‘과학기술학’은 과학자와 기술자 모두 자신의 연구가 갖는 의미와 방향을 알기 위해 유용한 학문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인간의 얼굴을 위한 과학을 하기 위해선 역동적인 과학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과학기술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홍 교수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간에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지식의 길을 찾는다는 의도로 자신의 책 제목을 ‘과학을 경청하다’라고 정했을 것이다. 그 열린 지식의 길을 찾으려는 방법이 과학기술학에 있다.

 

과학기술학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개념이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다. 과학기술학과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 브뤼노 라투르의 저서 《젊은 과학의 전선 :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연결망의 구축》(원제 : Science in Action)에 등장하는 용어인 테크노사이언스는 단순히 ‘과학과 기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과 기술이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연결되어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홍 교수의 책 1장은 과학기술학에 생소한 독자들이 《젊은 과학의 전선》을 읽기 전에 머리로 준비 운동할 수 있는 내용이다. 브뤼노 라투르의 문장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다. 홍 교수의 책을 읽으면 테크노사이언스의 의미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에서의 ‘네트워크(Network)’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과학자들도 포함)과 인간이 아닌 것들(기술)이 서로 과학지식의 생산과 수용, 확장하는 과정의 궤적이다. 그러므로 기술도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엮어내는 사회는 역동적이라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예상할 수 없다. 과학기술학을 공부하면 과학과 기술이 낳은 것들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고찰하여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홍 교수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파악하는 네크워크식 사고가 성찰적 사고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계몽주의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과학이야말로 진리라고 믿으며 이를 선진국을 향하는 애국주의로 이용하는 과학 지상주의가 강고하게 형성되어 왔다. 따라서 과학기술학은 과학을 보편적 진리 또는 민족주의의 도구로 보는 관점에 벗어나는 성찰적 자세를 요구한다.

 

과학이 특정 이익집단(과학자, 정치인)의 권위를 지탱해주고 보호하는 학문으로 변질하여선 안 된다. 특정 이익집단은 과학지식의 보편합리성을 의심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 암묵적이고 보편적인 지배와 권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천안함과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과학을 오용한 특정 이익집단의 일방적 태도를 확인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고의 원인에 침묵하기도 했다. 권력이 과학을 강제로 손잡으면 이런 비이성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과학이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면 과학기술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야 과학지식과 관련한 특정 문제에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고, 사실을 가리는 편견과 왜곡의 베일을 벗기기 위한 논쟁이 가능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과학은 권력의 얼굴을 한 과학이다. 과학과 기술이 균형 있게 발전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것이 ‘인간적’인지 성찰할 때 비로소 과학은 인간의 얼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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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7-01-03 19: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천동설과 지동설에 대한 이론을 접할 때마다 식용버섯이나 독버섯을 연상하곤 합니다. 지구중심설이냐 태양중심설이냐를 논하듯이 식용이냐 독이냐 구분되는 기준은 인간에게 그러하냐 이기에 결국 ‘중심‘의 문제겠죠. 자연계에서 중심이길 원하며 주변을 바라보는 이기적인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지식이 기술과 사회와 맞물려서 형성된다는 이론에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잘못된 기본 지식이 바탕이 되었지만, 연금술로 인해 실험기구들이 비약적으로 발달되었고, 이것들은 또 다른 과학의 법칙을 발견하는 데 기여했으니까요.

자연과학과 인문학, 인간과 사물, 과학과 기술에 대한 네트워크식 사고가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없이 균형적으로 인드라망을 형성하듯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도요.
오만한 몇몇 인간들에게 오용되어서도 안되고, 인간에게만 치우쳐서도 안되고,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서 많이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cyrus 2017-01-04 14:41   좋아요 1 | URL
과학기술학이라는 이름 자체만 들어보면 뭔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겁니다. 그런데 이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그런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학, STS 관련 서적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과학 지식의 기초를 알려주는 대중 과학 서적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과학의 대중화를 성공했다고 낙관할 수 없습니다. 그건 과학 지식을 장식화할 뿐, 그것을 제대로 검증하고, 따져보는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장기화되면 어떤 사회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가 어려워집니다.

푸른희망 2017-01-03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과학문맹이라 올해는 과학분야를 읽으려고 합니다.
글이 모두 이해되진 않지만 ㅜㅜ
책은 몹시 끌리네요 . 아래 리뷰 쓰신 책보단 이책이 조금은 더 읽기 쉽지 않을까싶은데 잘 읽을 수 있을까요?

cyrus 2017-01-04 14:42   좋아요 0 | URL
홍성욱 교수의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문장이 대체로 길어서, 한 번 읽고 이해하기 힘들어요. 반면 홍 교수의 책은 누구나 아는 과학 사례를 들어서 과학기술학을 설명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7-01-06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과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과학이 좀 더 대중과 가까워지고 대중들이 과학을 오해하지 않고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과학은 진리가 아닌 진리를 찾는 방법임을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과학사회학이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홍성욱씨의 책은 한 권 읽어봤는데, 이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cyrus 2017-01-06 16:45   좋아요 1 | URL
대중이 과학 전문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신뢰를 하지 못한다는 건 결국 기초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태도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정말 어떤 현상이나 의견, 지식이 진실인지 규명하려면 루머나 왜곡 입장을 믿지 말고, 그걸 가려낼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요즘 과학도서에 꽂힌 고양이라디오님이라면 홍성욱 교수의 책이 마음에 드실 겁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7-01-06 18:11   좋아요 1 | URL
cyrus님도 요새 과학사회학책에 꽂히신거 같던데요ㅎ

좋은책소개 감사합니다^^
 
젊은 과학의 전선 -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 - 연결망의 구축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89
브뤼노 라투르 지음, 황희숙 옮김 / 아카넷 / 201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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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물의 본질과 인과관계를 알고자 하는 강렬한 지적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현상과 변화에 대해서 ‘왜’라고 묻는다. 궁금한 질문에 대해 과학적으로 대답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분석한다. 흥미로운 점은 완전한 사실을 추구하려는 지적 충동과는 정반대로 현실사회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장이 더 난무한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개인의 선호에 기초하여 가치판단을 하고 자기주장을 펼 수는 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과학적 합리성에 비춰볼 때 과학에 대한 이해수준이 객관적 사실과 크게 동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언론이 과학을 성찰적 측면이 아닌 다분히 감성적 측면에서 다루는 사례가 잦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것이 '황우석 신드롬'이다. 국내 언론은 <사이언스>지에 황 교수의 연구결과가 발표됐다는 사실 하나로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부었다. 황 교수의 연구결과를 ‘국내 과학계가 달성한 쾌거’로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배아복제 연구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에 주목하지 않았다. 황우석 신드롬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게 된 줄기세포를 둘러싼 진위 논란은 과학계와 언론 간 엇박자로 인해 생긴 사례이다. 이 논란의 핵심은 정확한 취재를 통한 보도가 아닌 사건에 대한 추측과 단면으로 이루어진 기사 때문에 발생한 불미스런 사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을 ‘결과’로 남은 과학으로 환원하는 과학 만능주의는 위험하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맹신으로 변질하면, 사실이 불분명한 특정 과학자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과학지식은 보편성과 객관성이라는 베일에 싸여 인식론적 특권을 누린다. 대중은 과학지식이 왜곡되어 있는지를 검증하지 않은 채 ‘열광’에 가까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 결과 지식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되고, 여론의 객관성 확보도 미흡해진다. 과학지식의 신비화를 탈피하고, 과학지식 자체를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보는 학문이 바로 ‘과학기술학’이다. 브뤼노 라투르의《젊은 과학의 전선》은 생동감 넘치는 과학기술학의 세계와 ANT를 소개한 책이다.

 

과학기술학(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TS)은 과학과 기술을 사회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출발했다. 오늘날엔 사회학은 물론이고 문화연구, 정치학, 경제학 등에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면서 새로운 학문으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의 브뤼노 라투르와 미셸 칼롱, 영국의 존 로가 주장한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은 과학기술학의 핵심적인 원리가 되었다. 이 이론은 과학과 기술의 상호의존성(Technosceience)을 더 크고 강한 연결망 구축의 산물로 본다. 과학기술 지식의 형성과 전파 그리고 뒤따르는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 과학자나 전문적 이해집단과 같은 사람이나 사람의 집단만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생명체나 사물도 행위자로 분석에 포함한다. 그리고 인간 행위자 못지않게 어떤 지식 발전에 영향을 준다.

 

오늘날 세계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이 인간들의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항상 사물들을 매개로 형성된다.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이질적이고 복잡한 연결망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가를 추적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것, 생각하기가 까다롭고 복잡한 것을 회피하는 인지적 보수성이 있다. 결국, 과정이 생략된 결과만 알려고 하는 이익 편향성이 생긴다. 브뤼노 라투르는 복잡한 작업이 생략되어 오직 결과만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을 ‘블랙박스(Black box)’라는 개념으로 비유한다. 블랙박스를 선호하는 과학자와 이익집단은 세밀한 검증 절차를 간과하는 ‘기성 과학(ready made science)’을 지향하는 ‘내부자들’이다. 반면 블랙박스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외부자들’은 과학지식을 의심하고 검토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과학은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science in the making)이다. 《젊은 과학의 전선》의 원제는 ‘Science in Action’이다. 과학지식에 대한 사회적 교섭의 중요성을 함축한 제목이다. 과학지식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파악함으로써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브뤼노 라투르는 대중이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이성을 방어하는 데 너무 분주한 바람에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 ‘현장 과학(Science in Action)’을 지향하는 과학기술학도 사이비 과학에 맞설 수 있는 적절한 학문적 도구가 될 수 있다. 현장 과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만들어진 것의 과학, 즉 기성 과학의 담론을 포기해야 한다. 즉, 과학지식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지식에 의해서 도출된 결론이 확실한지 의심하고, 재검토한다. 지식의 객관성을 맹신하지 마라. 객관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과학의 지배적인 해석에 압도당해선 안 된다. 과학자와 언론의 기획적인 속임을 눈치채지 못하면, 왜곡된 정보가 전파된다. 이는 과학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진실 된 과학은 없다. 의심이 없는 곳에서 과학은 발전하지 않는다. 과학은 끊임없는 회의와 반증을 통해 실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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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17-01-02 2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도 일종의 종교같아요.. 신은 죽었다고 믿는 현대인들이 진리라고 믿고 따르는..

cyrus 2017-01-03 15:5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과학을 암기식 교육으로 배우면, 그때 배운 지식을 보편적 진리로 믿게 되고, 교과서에 없는 새로운 과학 지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yureka01 2017-01-02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간혹 진실과 사실을 혼동하거든요.....
사실이 꼭 진실하지 않을때도 있고..
진실이 사실이 아닐 때도 있듯이....

cyrus 2017-01-03 15:56   좋아요 1 | URL
진실과 사실을 혼동하는 건지 스스로 깨닫는 것과 그 두 가지 개념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이 복잡하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진실하지 않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습니다.

AgalmA 2017-01-03 0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지적 보수성˝과 함께 민족주의라는 이념적 보수성도 역할이 크죠.
구소련과 미국의 우주 개발 사업도 나라 간의 경쟁이었던 거 유명하잖아요.
민족적 대의명분 앞세워 전쟁의 수단으로 과학을 더욱 발전시키게 된 것도 포함.
황우석 사건도 ˝드디어 우리나라가!˝ 하는 민족주의 대단했죠. 이건 여전해서 아직도 여기저기서 황우석 밀어주고 있잖습니까.
인간의 생각과 정서의 보수성은 정말 뿌리깊어요.
한국은 특히 과학의 이익이 되는 결과성에 치중하는데(그래서 기초과학부터 연구 분야까지 매우 부진), 입시와 경쟁 위주의 교육과 인식 부족 문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cyrus 2017-01-03 16:00   좋아요 0 | URL
Agalma님의 생각이 우리 사회의 과학을 비판하는 과학기술학에서의 관점과 비슷합니다. 황우석 사건 이후로 과학기술학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에 치중하는 과학을 무조건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검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1-03 0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은 더이상 객관적인 연구방법이 아니라,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7-01-03 16:02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지적입니다. 천안함과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한창 공방전이 벌어졌을 때 정부는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고, 일부 전문가들은 원인 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침묵했습니다.

여울 2017-01-0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뤼노 라투르를 읽으셔서 반가운 김에 흔적남겨요. 한해 즐거운 독서되시길요^^

cyrus 2017-01-04 14: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여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