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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학의 전선 -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 - 연결망의 구축 ㅣ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89
브뤼노 라투르 지음, 황희숙 옮김 / 아카넷 / 2016년 8월
평점 :
우리는 사물의 본질과 인과관계를 알고자 하는 강렬한 지적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현상과 변화에 대해서 ‘왜’라고 묻는다. 궁금한 질문에 대해 과학적으로 대답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분석한다. 흥미로운 점은 완전한 사실을 추구하려는 지적 충동과는 정반대로 현실사회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장이 더 난무한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개인의 선호에 기초하여 가치판단을 하고 자기주장을 펼 수는 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과학적 합리성에 비춰볼 때 과학에 대한 이해수준이 객관적 사실과 크게 동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언론이 과학을 성찰적 측면이 아닌 다분히 감성적 측면에서 다루는 사례가 잦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것이 '황우석 신드롬'이다. 국내 언론은 <사이언스>지에 황 교수의 연구결과가 발표됐다는 사실 하나로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부었다. 황 교수의 연구결과를 ‘국내 과학계가 달성한 쾌거’로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배아복제 연구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에 주목하지 않았다. 황우석 신드롬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게 된 줄기세포를 둘러싼 진위 논란은 과학계와 언론 간 엇박자로 인해 생긴 사례이다. 이 논란의 핵심은 정확한 취재를 통한 보도가 아닌 사건에 대한 추측과 단면으로 이루어진 기사 때문에 발생한 불미스런 사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을 ‘결과’로 남은 과학으로 환원하는 과학 만능주의는 위험하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맹신으로 변질하면, 사실이 불분명한 특정 과학자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과학지식은 보편성과 객관성이라는 베일에 싸여 인식론적 특권을 누린다. 대중은 과학지식이 왜곡되어 있는지를 검증하지 않은 채 ‘열광’에 가까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 결과 지식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되고, 여론의 객관성 확보도 미흡해진다. 과학지식의 신비화를 탈피하고, 과학지식 자체를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보는 학문이 바로 ‘과학기술학’이다. 브뤼노 라투르의《젊은 과학의 전선》은 생동감 넘치는 과학기술학의 세계와 ANT를 소개한 책이다.
과학기술학(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TS)은 과학과 기술을 사회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출발했다. 오늘날엔 사회학은 물론이고 문화연구, 정치학, 경제학 등에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면서 새로운 학문으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의 브뤼노 라투르와 미셸 칼롱, 영국의 존 로가 주장한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은 과학기술학의 핵심적인 원리가 되었다. 이 이론은 과학과 기술의 상호의존성(Technosceience)을 더 크고 강한 연결망 구축의 산물로 본다. 과학기술 지식의 형성과 전파 그리고 뒤따르는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 과학자나 전문적 이해집단과 같은 사람이나 사람의 집단만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생명체나 사물도 행위자로 분석에 포함한다. 그리고 인간 행위자 못지않게 어떤 지식 발전에 영향을 준다.
오늘날 세계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이 인간들의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항상 사물들을 매개로 형성된다.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이질적이고 복잡한 연결망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가를 추적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것, 생각하기가 까다롭고 복잡한 것을 회피하는 인지적 보수성이 있다. 결국, 과정이 생략된 결과만 알려고 하는 이익 편향성이 생긴다. 브뤼노 라투르는 복잡한 작업이 생략되어 오직 결과만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을 ‘블랙박스(Black box)’라는 개념으로 비유한다. 블랙박스를 선호하는 과학자와 이익집단은 세밀한 검증 절차를 간과하는 ‘기성 과학(ready made science)’을 지향하는 ‘내부자들’이다. 반면 블랙박스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외부자들’은 과학지식을 의심하고 검토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과학은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science in the making)이다. 《젊은 과학의 전선》의 원제는 ‘Science in Action’이다. 과학지식에 대한 사회적 교섭의 중요성을 함축한 제목이다. 과학지식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파악함으로써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브뤼노 라투르는 대중이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이성을 방어하는 데 너무 분주한 바람에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 ‘현장 과학(Science in Action)’을 지향하는 과학기술학도 사이비 과학에 맞설 수 있는 적절한 학문적 도구가 될 수 있다. 현장 과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만들어진 것의 과학, 즉 기성 과학의 담론을 포기해야 한다. 즉, 과학지식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지식에 의해서 도출된 결론이 확실한지 의심하고, 재검토한다. 지식의 객관성을 맹신하지 마라. 객관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과학의 지배적인 해석에 압도당해선 안 된다. 과학자와 언론의 기획적인 속임을 눈치채지 못하면, 왜곡된 정보가 전파된다. 이는 과학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진실 된 과학은 없다. 의심이 없는 곳에서 과학은 발전하지 않는다. 과학은 끊임없는 회의와 반증을 통해 실체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