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기 만만한 곳은 서점이나 도서관이었다.

아이쇼핑을 한다고 하지만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게속 걸어다녀했다. 

주머니가 가벼울수록 상품들을 보는 것이 괴로웠고 

주머니가 묵직해서 무얼 샀다더라도 우울할 때 산 것들은 늘 후회로 남았다

물건을 구경하는 것 만져보고 즐기는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마음이 더 가난해지고 내 자신이 더 초라해져가는 게 실시간 느껴졌다.


카페는 특히 프랜차이즈 카페의 경우 클수록 괜찮긴 했다.

멋진 풍경이 없고 인테리어가 없지만 사람이 돗대기 시장처럼 많으면 괜찮았다.

숨어있기 딱 좋았고 내가 멍 때리든 핸드폰을 하든 책을 보든 무언가 할 거리만 있으면 커피 한잔 값으로 오래오래 있기 좋았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해보여서 심통이 났다.

함꼐 여서 부러웠고 혼자서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질투가 났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 늘 빨리 매운 맛이 땡겼다. 그렇다고 케잌까지 먹기는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은 그런 면에서 숨어있기 가장 좋은 공간이다.

어른들은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 책을 읽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건 무언가 긍정적이고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여긴다. 책을 읽는 아이는 그냥 두어도  괜찮았다. 믿을 만 했고 그럴만 했다.

그걸 일찍 알아버린 나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숨어있다는 행위의 동의어였다.

책을 읽는 아이는 어른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에 아 책을 읽고 있군 기특한 녀석 

정도의 관심이 가지만 그 다음은 그냥 보이지 않는 아이가 된다.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이 무언지 관심이 없을 떄도 있고 관심이 있지만 자기가 아는 책이거나 읽을 만 하다 싶으면 떄로는 수준이상이라고 생각되더라도  아쭈~ 라는 마음과 함께 그냥 넘기면서 잊어버린다.

책이란 그런 거였다. 나에는 

숨어있기 좋은 매개

도서관이나 서점에도 사람이 많을 때가 있지만 모두가 행복해보이지는 않았다.

모두가 좋아서 사랑해서 미칠 것 같고 지금 이순간 돈자랑을 하고 싶은 사람도 서점이나 도서관이 오지는 않는다. 

그냥 적당히 허영기가 있거나 적당히 돈이 있거나 없거나 적당히 행복하거나 외롭거나 

그리고 누구도 같은 공간의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을 예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혹은 서점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구겨진다. 온 몸의 관절을 꺽고  전신의 피부를 주름지게 만들어서 한구석에 최소한으로 구겨져 있다. 그렇게 구겨져 있어도 아무도 관심이 없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비슷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

나를 최대한 구기고 한없는 우울에, 까닭 모를  비참함에 한참 절여져 있을 수 있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을 읽고 문장들을 읽고 단어들을 발음해 보면서 

저쪽 창에서 햇살이 길게 뻗어 올 때 까지

때로는 해가 기울어 찬기가 느껴질 때까지 

그냥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을 구겨넣고 돌돌 말아서 웅크리고 있다.

책 뒤에서는 그래도 괜찮았다.

가끔은 울어도 괜찮았다.

사람들은 책이 무지 슬픈가? 아니면 갱년기인가? 눈물이 많나 라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소리가 없는 말들이 들리지 않는 대화들이 가끔 위로가 될 때가 이다.

지금 나도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해내는 문장을 만나면 묘하게 안심될 때도 있다.

그렇게 나를 구기고 접어서 그냥 아무렇게나 내팽겨두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구겨놓았던 관절들을 하나하나 펴고 쭈글쭈글 접어두었던 피부를 탁탁 털어서 펴본다.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고 여기저기 접은 선들 규겨졌던 흔적들이 남아있지만 괜찮다. 

이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만한 힘은 생겼다.

세상이 바뀐 것도 없고 내가 더 나아진 것도 없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조언이 있다는 건 순 뻥이다.

책 속엔 글자가 있고 문장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충고가 있고 논란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냥 그런 글을 읽고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읽었다.

때로는 내  마음 같았고 당신 마음같아서 아하 하는 순간들도 있었겠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그 깨닮음도  감각들도 함께 덮었다. 


가끔 나자신을 한껏 구겨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읽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냥 탁 ㄷㅍ어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도서관 또는 서점을 간 것이 아니다.

나의 우울에 깊이 빠져 있기 위해서 간 것이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 책 속에서 잠시 헤매다가  한 귀퉁이에 나를 구겨놓으면 묘하게 위로가 되는 마음

그게 나에게 필요했다.

그건 아무런 소득도 없이 시간만 죽이는 일이 될지라도 

때로는 무용한 것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책을 읽는 인간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나는 위대하지 않고 똑똑하지 않고 그냥 그런  속물적인 사람일 쭌이다. 

독서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많은 이야기를 채워넣었고 때로는 잘난척 할 수 있는 지식이 많아졌고 그리고 위로받고 싶은 숨겨진 마음을 혼자 해결해야하는 외로움이 많았을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나는 좋아하는 장소는? 이라는 질문에 쉽게 서점 혹은 도서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어디 뭔 외국의 멋진 도시들 멋진 풍경들을 이야기 하거나  유투브에서 보았던 소도시들 골목길을 이야기 한다.

서점과 도서관은 내게 좋아하는 장소는 아니다.

자기를 구겨야 하는 곳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그냥 거기조차 가지 못하면 내가 숨을 쉬기 어려워서 이러나 머리에 꽃을 꽂게 될까봐 두려워서

허위허위 찾아가는 곳이다.

그냥 나의  뭐라고 해야할까

그저 숨구멍이다.  그렇게라도 숨을 쉬어야 살것 같은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독서라는 것

서점이나 도서관을 자주 가는 사람에 대해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참 길게도 썼다. 


사족)

그건 그렇고  저 구병모이 신작은 사야할까 도서관에서 빌려야 할까 

구병모으미 작품들은 구석에 구겨져서 책장을 넘길 때 참 많이  도움이 되었드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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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다 죽은 여자들 - 가장 조용한 참사, 교제폭력을 말하다
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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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겠지

나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구속하고 폭력을 쓰고 나를 억압하고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고립시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을거야

나라고 별 수 없을거야

그게 저 사람의 진심이 아닐거라고 믿고 싶을 거고

늘 저러는 사람이 아니라고 좋은 기억들을 헤집어 꺼내서 늘어놓으려고 할거야

누구에게도 자존심때문에, 믿어줄 것 같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야

너같은 여자가. 똑똑한 여자가, 친구도 많고 사회생활도 하는 여자가 뭐가 모자라서

그런 꼴을 당하고 참고 있냐는 말들 눈빛들  침묵들을 나도 견디지는 못하겠지

그래서 나도 다르지 않을거야


나는 가해자는 되지 못하겠지만 다시 한번 상처를 입히는 이차 가해자는 될 수 있겠지

왜 저러고 살까

저런 남자를 고르는 기준이 뭐였지? 눈이 저렇게 낮다고?

왜 도망가질 않아?

왜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지?

그러니까 늦은 밤 술에 취한 행동이나  난감한 옷차림은 아니었으면 좋았을걸

물론 원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보니까 뻔한 남자인데 왜 질질 끌려다녔을까

그럴 수 있고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절대 저럴 리 없지

피해자가 되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야


결국에는 다시 돌고 돌아서 세상의 통념과  구조적인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

아직도 이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

여자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이라는 것들이 여전히 불균형하고  이만하면 남녀 평등이 아니냐는 말이  무수리에서 이만큼 올라왔으면 된 거 아니야? 더 이상 뭘 바라는거지? 라는 적선하듯 그냥 하찮은 존재를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가 이제 조금 아주 미묘하게 반대쪽으로 기울어졌을 뿐인데도

호들갑을 떨면서 이젠 남녀 평등이 아니고 여성상위라고 부르짖는 사람들

남성에 의한 여성의 폭력에 대한 어떤 제대로 된 통계도 없고

통계가 없으니 그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음을 모르고 사는 것이 당연하고

피해자를 모으면 여느 참사 못지 않은 수가 있을텐데 모든 사건이 모든 피해가 개별화 되고 특수한  아주 나쁜 어떤 인간의 행동일 뿐이라는 생각들이 모여서

여전히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과 살인과 통제가  투명해지고 

개별적인 문제가 된다.


통계가 모여서 실체가 드러나고 

그에 맞는 대책이 세워지고 법이 생기고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가정의 회복이나 관계의 회복이 아니라 

피해자 개개인의 회복이며

그 회복을 위해 강력한 처벌들이 필요하다

심신미약이어서 앞날이 창창해서 많이 반성하고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에 욱하는 심정이어서

상대가 잘못해서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술을 먹어서  뭘 몰라서 

그런 단세포같은 이유가 절대 통하지 않은 것들

그리고 지원체계고 투명하게 모두가 알고 적용할 수 있기를


갈길이 멀다.

그러나 방향이 명확한데 왜 자꾸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

그렇게 큰 일이 아니어서 라고 생각하는 머리들 때문에?

지구의 절반이 고통받는 폭력앞에서 우리는 계속 바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겠다.


친밀한 관계의 폭력은 남의 일이 아니다.

당신이 피해자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주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별 일 아니라서 할수록 더 심각하고 복합적인 일이다.


헤어지다 죽거나

대들다가 맞거나

관계를 거부해서 목을 졸리거나

대출을 받아주지 않아서 흉기를 드는 그런 상황이 

엄벌에 처해지기를

아니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기를

그가 나와 다르지 않다고 당연히 생각하기를...


참 오랫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폭력이 지치게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소리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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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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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편의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자꾸 팔을 쓸어내린다.

오슬오슬 소름이 돋아나는 기분

무언가가 내 안에서 자꾸 흔들리고 소복하게 쌓여가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이야기들은 아주 짧다.

길어봐야 <아술>과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정도?

친구를 잃고 그 기억을 계속 복기하면서  상황을 다르게 바꾸어보는 내가 있다.

아버지의 모습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아차리는 아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과정에서 꿋꿋하고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어머니 역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부부 사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교환학생을 집에 들였지만 그와의 관계에 점차 깊게 빠져들면서 오히려 마음속에 더 큰 구멍이 생기는 것을 알아차리는 부부가 있다. 사랑하면 할 수록 내가 비워지는  것, 무언가를 넣으려고 애쓸 수록 빈 공간이 더 커지는 경험 그리고 애쓸 수록 멀어지는 마음들이 여기에 있다.

나를 채워주는 것들이 하나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도 없는 내 빈 공간을 채웠던 어떤 시간들과 기억들이 있다. 그걸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랑? 그렇게 부르기엔 너무 빈약하면서 동시에 너무 크다. 안정과 편안함 그리고 익숙한 느낌. 그냥 내 자리가 비워져 있었고 그렇게 내가 그 공간에 맞게 들어갔고 그리고 내 안의 어떤 공간을 적합하게 채울 어떤 시간과 인연이 있었던 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형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으나 이해할 수 없는 빈 곳을 알게 된다. 형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주변 사람이 화자를 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아무렇지 않게 형의 이야기를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듯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나는 어떤 마음일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흔들리기도 했을테고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으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은 마음이 포개지는 순간들이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 그건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고 그저 시간을 함께 채워나가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지만 낯선 누군가와 함께 한 그 시간이 어쩌면 내 영역을 더 크게 만들어 나가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낯선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약간의 우월감이 더해진 관계에서 아마 나도 무언가 채워지고 반뺨 정도는 자란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른 남자의 부인을 사랑하는 아내를 아프게 지켜봐야 하는 남자도 있다. 누구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그 남자의 마음이 풀릴지 우리도 알 수 없다.

철없는 누나의 행동들이 어쩌면 가족중에 가장 다른 가족을 배려했던 마음이었음을 결국 나중에 동생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들은 짧지만 오소도소하다.

아름답다도 해야할까 아니면 잔인하다고 해야할까

건조한 문장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냥 무심하게 문장을 따라 읽는다.

어렵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선들은 너무나 우아하고 복잡하다.

감정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하고 오묘한 무늬를 이루는 감정들이 흘러든다.

사랑이라고 생각하다보면 공허해지고 어이없다 싶다가도 아련하다.

후회가 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잊고 잘라 낼 수도 없는 그 마음들이 이야기마다 흘러나온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마음을 위로받으려면 앤드류 포터를 펼치지 마라.

마음이 더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나는 계속 그 구멍에 내가 들어가는 꿈을 꾸고 친구가 무사한 꿈을 꾸며 혼란스러울테도 

아버지는 희미하게나마 계속 내 기억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누나는 귀찮을만큼 제멋대로였지만 깊은 속내가 있었다.

누군가를 그냥 단정하거나 상황에 대해 이건 이런 거야 라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가

여러겹의 파이처럼 얇고 덧대어진 시간의 결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기분

결국 모든 상황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흔들리고 싶다면 앤드류 포터를 펼칠 일이다.  흔들리고 흔들려서 고갱이만 남길 바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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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리의 뼈 로컬은 재미있다
조영주 지음 / 빚은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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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기억을 잃어버리게 한다. 가장 가까운 기억부터 지워진다고 한다. 그렇게 점차 나의 최근 시간들이 지워지면서 과거의 내가 남는다. 과거의 나는 행복했을 수도 있고 불행하고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때이후 살아내 내 삶들이 사라지고 그때 그 순간이 남는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될까?

영화나 소설에서 치매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들을 보여주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소설가 명자는 치매를 앓고 앓고 있다. 기억은 지워지고 있지만 가끔 제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다. 아직 못다 쓴 소설에 대해 고민하고 대신 써주는 딸을 닥달하고 본인만 이해하는 문장들을 남겨놓는다. 따르 해환은 엄마의 암호같은 문장들, 단어들을 조합하며 머리를 쥐어짜내고 소설을 엮어내고 있다.

소설을 쓴다고 표현하지 않고 엮어낸다고 한 건, 일단 그 소설 전체의 플롯은 명자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은 선에서 암호같은 문장들을 독해하고 파악해서 전체의 흐름에 맞게 구성해야 하는 것이 해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고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아닌  그 사람은 누구일까? 명자는 누구일까?

그 명자에게 끝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그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었다.

쌈리에서 나온 아이의 뼈와 , 동주라는 이름, 그리고 해환이라고 동주의 아명을 붙여준 딸, 

암호같은 조각들을 붙들고 해환은 소설을 이어가고 엄마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있던 쌈리, 지금은 무너지고 조금씩 소멸되어가는 쌈리에서  미용실 언니를 만나고 붕어빵 할머니를 만나면서 소설의 조각들은 이어진다.

해환은 여러 버전으로 소설을 써나갔다.

처음 소설은 그냥 살인미가 여러건의 살인을 하다가 회개한다는 단순한 플롯이었다가 그 살인마가 연쇄살인마가 되었다가 사실은 피해자라고 생각한 내 엄마가 살인자였다고 했다가, 내가 살인자와 엄마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고 했다가, 그 자식이 죽어 몰래 땅에 묻었다고 했다. 사실 친모가 아니라는 것까지  암호를 찾아 그리고 해환이 보고 들은 것들을 조합하며 계속 이어지는데 그 소설이 아니러니하게 진실에 계속 가까워지고 있다는 거다.


말할 수 없었던 비밀, 드러날까 두려워했던 그것이 재개발로 뼈가 발견되면서 그렇게 조금씩 세상으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이야기 속에는 가정폭력이 있었고 성매매 여성들의 불안과 막막함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욕심과 이기심도 있었다.

누구나 한가지씩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핫핑크 신사나 미나 , 명자와 동주 역시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하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결국 조금씩 흘러나온 그 이야기의 조각을 모아서 해환은 소설을 완성하지만 그 이야기는 영원히 세상에 내놓지 않기로 했다.

들었지만 그냥 내가 묵히기로 한다. 두 사람의 엄마를 위해서 


순간순간 해환의 나이가 40대인가 싶은 순간이 있었고 상모가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야 했나 라는 마음이 있고

명자가 그런 느닷없는 행동을 해야했나 싶은 부분이 있어 추리미스테리물로는  큰 점수를 주고 싶지 않지만

그 상황에서 명자나 동주, 미나, 해환이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은 결코 작거나 쉬운 것들이 아니어서   비밀과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그 이야기가 나에게로 흘러와서 다시 구성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

비밀을 털어놓고 보면 그 어마어마했던 것이 어쩌면 하찮아보이고 별 거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있어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는 걸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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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리의 뼈 로컬은 재미있다
조영주 지음 / 빚은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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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사실과 진실은 다른 얼굴이다. 치매라는 이유로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붙잡아야할 진실은? 동주와명자는관계속 피해자일까 공모한 가해자일까?진실은 꼭 밝혀야하지만 아프다.마지막장에서 다시 맨앞으로 돌아가야한다. 제대로 알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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