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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평점 :
능청스러운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해파리 좀비 이야기나 나무로 변한 남자이야기 그리고 우연히 만난 동창과의 따뜻한 밥 한끼들
이게 뭐지 라는 생각에 조금 더 읽으면 상황이 파악될까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게 뭐야 뭐야 하면서 계속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탁 ! 하고 걸리는 게 있고 순간 얼음이 된다.
1. 빛이 나지 않아요
인간이란 무엇일까
어떤 상황까지 우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인간인 걸까
지선씨는 해파리로 변하겠다고 결심하고 과정을 받아들이지만 쉽게 해파리가 되지 못한다.
아직도 남은 마음이 있어서였을까
인간의 모습으로 살면서 견뎌내는 삶을 살았던 지선씨의 깊은 원염이 지선씨의 선택과 상관없이 지선씨를 인간으로 남게 한다.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하는 동안 마음을 정리하지만 그 정리는 결국 계속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해파리의 것이 아니다.
인간이 품는 마음이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파리도 사랑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거기까지 지식이 없는 인간이라...)
지선씨를 만나면서 나는 생각을 한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뭘까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와서 안정된 수입이 생기고 더 이상 천정에서 물이 새지 않은 집에서 적금을 부으면서 살 수 있다면 꿈이나 미래는 잊고 현실에 맞춰 사는 것이 옳은 걸까
책을 읽는 나는 생각했다. 그게 뭐가 어때서?
안전한 일상이 하루하루 쌓이는 그 평온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아직은 지킬것이 없는 너에게는 평온하고 어제와 똑같은 일상의 가치를 모르는 구나
누군가는 나를 속물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일상이 균열되는 것이 가장 불안한 나같은 인간도 있다는 걸
그건 나 자신의 불안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킬 수 없다는 불안과 공포에서 오는 것이라고
너는 지켜야 할 것이 너 자신뿐이라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해파리가 되고 싶다고 결정을 내리는 지선씨도 한편에서는 부러웠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이렇게 살기로 결정한 구를 나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구의 선택도 그만큼 절실하고 최선이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너는 구를 설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을 너도 알았다고 나는 믿는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싶다. 음악을 하고 싶다. 그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지르고 싶다는 마음을 응원한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해파리를 치우면서 적금을 부으면서 집을 고치면서 밥을 차려먹을 구 역시 나는 응원한다.
인간은 다양하다. 어떠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존재여서 어떤 선택이든 그 상황에서 최선이었다고 믿을 뿐이다.
그리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최선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읽고 난 뒤 드는 생각
왜 사람들이 해파리에 쏘이면 해파리가 될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바다에 둥둥 떠서 빛을 쏘는 해파리
무해하고 무익한 존재
사실 익과 해 역시 누군가의 기준에서 정해지는 것
해파리는 그냥 해파리이고 물속에서 떠있는 존재일 뿐이다. 누군가 다가오면 두려워서 독을 쏘기도 하겠지만 내버려두면 그냥 마냥 떠다니지 않을까
인간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쌓이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무게를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해파리가 되는 건 아닐까
낯선 존재는 두렵고 위험하지만 점점 해파리가 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무심해지고 무감해진다.
해파리로 변신시켜 바다로 보내는 일과 그 해파리가 뭍으로 밀려와 쌓이는 것을 죽이고 정리하는 일
구와 너의 일을 보면서 그리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삶에서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과 익숙해져서 안온하고 무감하게 살아가게 되는 일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나 생각해 보다가
그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기도 하다.
2. 여름은 물빛처럼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점잖아보이는 망고 두개를 산다. 집에 돌아가 망고를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다.
그러나 집에는 낯선 남자가 있고 그 남자는 헤어진 전 주인을 찾고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나무가 된 남자와 동거가 시작된다.
천성이 착해서였을까, 어쩔 수 없이 남자를 살게 했고 남자를 위해 에어컨을 포기하기도 하고 함께 커피를 나눠 마시기도 한다.
함께 라디오를 듣고 사연을 보내고 사연이 나오는지 목을 빼고 기다리기도 하고 푸념을 하고 푸념을 듣고 자기 방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을 다른 기분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가끔은 불안이 나를 대신해서 인생을 살아주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한다.
나무가 된 산과 함께 살면서 너는 불안했을까 그냥 편안하구 무심했던 것도 같다.
늘 거기 산이 있었다고 감각으로
가끔 일을 땡땡이치고 가던 물가대신 이제 집에서 피톤치드를 하듯이 숲의 냄새를 맡는다.
산은 겨우 하나의 나무이지만 하나의 숲이기도 했다.
산은 왜 그 자리에 나무가 되어버렸나
산 역시 앞 이야기의 지선씨처럼 견디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어서 계속 견디는 중이었을까
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울만큼 사랑받은 기억이 적은 산이 여기서 잠시 쉬어가며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조금씩 환대받고 의지하고 의지되는 존재로 힘을 키우는 시간이었을까
어느날 정말 산이 뿌리째 떠났다.
바닥에 떨어진 장판의 흔적이 있다.
너는 창밖에 있던 양심의 거울을 훔쳐 온다. 그리고 낯선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눈다.
일상에서 조금의 비틀어짐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가 무너지지도 않는다.
산을 통해 너는 조금씩 삶을 비틀어 본다.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정도지만 너는 알 것이다.
누군가와의 관계는 나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는 존재이며 변하지 않은 존재이다.
3. 낯선 밤에 우리는...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기 위해 병원을 다니던 희애는 병원근처 지하철 입구에서 옛동창인 금옥을 본다.
자기 몸만한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사람들에게 전도전단지를 나눠주는 금옥
오랜만에 만나도 둘은 서로를 알아본다.
사실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 동창을 아는 척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모른 척 하고 싶은 건 나만은 아닐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다가오는 금옥을 희애는 내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희애에게는 자신의 상황을 모르지만 자신을 잘 알았던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결혼생활이 불행하지는 않다.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게 그렇게 크게 자리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꾸 계획이 틀어지고 생각대로 되지 않고 주변의 기대감이 커질수록 그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나와 남편만의 것이 아니다.
자꾸 내가 작아지고 내 주위가 더 커지는 경험들 그렇게 커지는 주변에 내가 압박받고 몰리는 기분
그런 마음이 나를 쓰러지게 하고 금옥의 집에서 첫 한끼를 함께 한다.
별다른 반찬없다.
사실 갓한 밥과 금방한 반찬은 게다가 남이 해주는 밥상은 언제나 맛있다.
그렇게 희애는 허기진 관계를 따뜻한 밥상으로 채워나갔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지는 않았지만 희애에게 금옥의 방은 하나의 은신처였고 마지막 보루같았을 것이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곳, 언제든 잊어도 괜찮은 곳
누구에게 말하지 않지만 혼자 간직하면 왠지 든든한 묵혀둔 적금같은 거
희애는 금옥과 접선하듯이 만나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있다가 설겆이를 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전도성과가 없던 금옥이 거리에 보이지 않고 출산에 대해 압박을 심하게 느낀 희애는 절박하게 금옥을 찾는다.
그리고 다시 만나 먹게 되는 포근하고 따뜻한 달걀찜
어쩌면 그 음식이 최후의 만찬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나서 다행이고 서로 내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능청스러운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들
이게 뭐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하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로 끝나는 세편의 이야기들
당황스러운 만남이었고 짧은 만남이지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들
짧은 순간이지만 지선씨와 산과 그리고 금옥과의 그 시간들은 따뜻했을 것이다.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환대에 관해 생각한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맞이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누구에게 따뜻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견딜 수 없어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무딘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날카롭게 버려진 칼날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환대의 기억이 있는가
환대를 받고 쭈뼛했을 어린 나는 환대가 두려웠었다. 그냥 가마가만 다가가고 이야기 하고 그래요 라고 긍정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냥 그런 시간들 밍밍하지만 적당히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달걀찜같은 그런 시간이 쉽지 않은 사람이 나였다.
말이 많았지만 무심하게 다가가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세편의 화자들이 부러웠고 슬펐다.
그냥 가만가만 스치는 관계들
그런 기억들이 쌓여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배웠다.
누군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과 형체로 다가올 때 자꾸 이유를 찾고 원인을 찾고 결과를 찾으려고 하지말고
그냥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라면서 받아들이고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
모두가 원하는 것인데 모두가 가능하지 않은 그 작은 일
내게도 지선씨가. 산이 그리고 금옥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