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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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하고 오래씹어야 느껴지는 맛. 추리물로는 느슨하다 싶지만 곤충에 대한 정교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추리보다 사람사이의 관계, 가치관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은 언제나 슬픈 일이지만 유난히 슬프고 마음이 아린 건 곤충을 통해 사람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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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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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스러운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해파리 좀비 이야기나 나무로 변한 남자이야기 그리고 우연히 만난 동창과의 따뜻한 밥 한끼들

이게 뭐지 라는 생각에 조금 더 읽으면 상황이 파악될까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게 뭐야 뭐야 하면서 계속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탁 ! 하고 걸리는 게 있고 순간 얼음이 된다.


1. 빛이 나지 않아요 

인간이란 무엇일까

어떤 상황까지 우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인간인 걸까

지선씨는 해파리로 변하겠다고 결심하고 과정을 받아들이지만 쉽게 해파리가 되지 못한다.

아직도 남은 마음이 있어서였을까 

인간의 모습으로 살면서 견뎌내는  삶을 살았던 지선씨의 깊은 원염이 지선씨의 선택과 상관없이 지선씨를 인간으로 남게 한다.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하는 동안 마음을 정리하지만 그 정리는 결국 계속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해파리의 것이 아니다.

인간이 품는 마음이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파리도 사랑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거기까지 지식이 없는 인간이라...) 

지선씨를 만나면서 나는 생각을 한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뭘까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와서 안정된 수입이 생기고 더 이상 천정에서 물이 새지 않은 집에서 적금을 부으면서 살 수 있다면 꿈이나 미래는  잊고 현실에 맞춰 사는 것이 옳은 걸까

책을 읽는 나는 생각했다. 그게 뭐가 어때서?

안전한 일상이 하루하루 쌓이는 그 평온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아직은 지킬것이 없는 너에게는 평온하고  어제와 똑같은 일상의 가치를 모르는 구나 

누군가는 나를 속물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일상이 균열되는 것이 가장 불안한 나같은 인간도 있다는 걸 

그건 나 자신의 불안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킬 수 없다는 불안과 공포에서 오는 것이라고 

너는 지켜야 할 것이 너 자신뿐이라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해파리가 되고 싶다고 결정을 내리는 지선씨도 한편에서는 부러웠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이렇게 살기로 결정한 구를 나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구의 선택도 그만큼 절실하고  최선이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너는 구를 설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을 너도 알았다고 나는 믿는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싶다. 음악을 하고 싶다. 그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지르고 싶다는 마음을 응원한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해파리를 치우면서 적금을 부으면서 집을 고치면서 밥을 차려먹을 구 역시 나는 응원한다.

인간은 다양하다. 어떠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존재여서  어떤 선택이든 그 상황에서 최선이었다고 믿을 뿐이다.

그리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최선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읽고 난 뒤 드는 생각

왜 사람들이 해파리에 쏘이면 해파리가 될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바다에 둥둥 떠서 빛을 쏘는 해파리

무해하고 무익한 존재  

사실 익과 해 역시 누군가의 기준에서 정해지는 것

해파리는 그냥 해파리이고 물속에서 떠있는 존재일 뿐이다. 누군가 다가오면 두려워서 독을 쏘기도 하겠지만 내버려두면 그냥 마냥 떠다니지 않을까 

인간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쌓이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무게를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해파리가 되는 건 아닐까

낯선 존재는 두렵고  위험하지만 점점 해파리가 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무심해지고 무감해진다.

해파리로 변신시켜 바다로 보내는 일과 그 해파리가 뭍으로 밀려와 쌓이는 것을 죽이고 정리하는 일 

구와 너의 일을 보면서 그리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삶에서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과 익숙해져서 안온하고 무감하게 살아가게 되는 일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나 생각해 보다가 

그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기도 하다. 


2. 여름은 물빛처럼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점잖아보이는 망고 두개를 산다. 집에 돌아가 망고를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다.

그러나 집에는 낯선 남자가 있고 그 남자는 헤어진 전 주인을 찾고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나무가 된 남자와 동거가 시작된다.

천성이 착해서였을까, 어쩔 수 없이 남자를 살게 했고 남자를 위해 에어컨을 포기하기도 하고 함께 커피를 나눠 마시기도 한다.

함께 라디오를 듣고 사연을 보내고 사연이 나오는지 목을 빼고 기다리기도 하고 푸념을 하고 푸념을 듣고 자기 방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을 다른 기분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가끔은 불안이 나를 대신해서 인생을 살아주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한다.


나무가 된 산과 함께 살면서 너는 불안했을까 그냥 편안하구 무심했던 것도 같다.

늘 거기 산이 있었다고 감각으로

가끔 일을 땡땡이치고 가던 물가대신 이제 집에서 피톤치드를 하듯이 숲의 냄새를 맡는다. 

산은 겨우 하나의 나무이지만 하나의 숲이기도 했다.

산은 왜 그 자리에 나무가 되어버렸나

산 역시 앞 이야기의 지선씨처럼 견디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어서 계속 견디는 중이었을까

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울만큼 사랑받은 기억이 적은 산이  여기서 잠시 쉬어가며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조금씩 환대받고 의지하고 의지되는 존재로 힘을 키우는 시간이었을까

어느날 정말 산이 뿌리째 떠났다.

바닥에 떨어진 장판의 흔적이 있다. 

너는 창밖에 있던 양심의 거울을 훔쳐 온다. 그리고 낯선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눈다.

일상에서 조금의 비틀어짐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가 무너지지도 않는다. 

산을 통해 너는 조금씩 삶을 비틀어 본다.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정도지만 너는 알 것이다.

누군가와의 관계는 나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는 존재이며 변하지 않은 존재이다.


3. 낯선 밤에 우리는...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기 위해 병원을 다니던 희애는 병원근처 지하철 입구에서 옛동창인 금옥을 본다.

자기 몸만한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사람들에게 전도전단지를 나눠주는 금옥

오랜만에 만나도 둘은 서로를 알아본다.

사실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 동창을 아는 척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모른 척 하고 싶은 건 나만은 아닐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다가오는 금옥을 희애는 내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희애에게는 자신의 상황을 모르지만 자신을 잘 알았던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결혼생활이 불행하지는 않다.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게 그렇게 크게 자리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꾸 계획이 틀어지고 생각대로 되지 않고 주변의 기대감이 커질수록 그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나와 남편만의 것이 아니다. 

자꾸 내가 작아지고 내 주위가 더 커지는 경험들 그렇게 커지는 주변에 내가 압박받고 몰리는 기분

그런 마음이 나를 쓰러지게 하고 금옥의 집에서 첫 한끼를 함께 한다.

별다른 반찬없다.

사실 갓한 밥과 금방한 반찬은  게다가 남이 해주는 밥상은 언제나 맛있다.

그렇게  희애는 허기진 관계를 따뜻한 밥상으로 채워나갔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지는 않았지만 희애에게 금옥의 방은 하나의 은신처였고 마지막 보루같았을 것이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곳, 언제든 잊어도 괜찮은 곳

누구에게 말하지 않지만 혼자 간직하면 왠지 든든한 묵혀둔 적금같은 거

희애는 금옥과 접선하듯이 만나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있다가 설겆이를 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전도성과가 없던 금옥이 거리에 보이지 않고 출산에 대해 압박을 심하게 느낀 희애는  절박하게 금옥을 찾는다.

그리고 다시 만나 먹게 되는 포근하고 따뜻한 달걀찜 

어쩌면 그 음식이 최후의 만찬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나서 다행이고 서로 내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능청스러운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들

이게 뭐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하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로 끝나는 세편의 이야기들

당황스러운 만남이었고 짧은 만남이지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들 

짧은 순간이지만 지선씨와 산과 그리고 금옥과의  그 시간들은 따뜻했을 것이다.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환대에 관해 생각한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맞이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누구에게 따뜻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견딜 수 없어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무딘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날카롭게 버려진 칼날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환대의 기억이 있는가

환대를 받고 쭈뼛했을 어린 나는 환대가 두려웠었다. 그냥 가마가만 다가가고 이야기 하고 그래요 라고 긍정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냥 그런 시간들 밍밍하지만 적당히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달걀찜같은 그런 시간이 쉽지 않은 사람이 나였다.

말이 많았지만 무심하게 다가가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세편의 화자들이 부러웠고 슬펐다.

그냥 가만가만 스치는 관계들

그런 기억들이 쌓여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배웠다.


누군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과 형체로 다가올 때  자꾸 이유를 찾고 원인을 찾고 결과를 찾으려고 하지말고

그냥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라면서 받아들이고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

모두가 원하는 것인데 모두가 가능하지 않은 그 작은 일 

내게도 지선씨가. 산이 그리고 금옥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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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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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아이는 아빠에게 나이프의 k는 묵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장실에 불려갔었다고 규칙들과 원래 그런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글자 하나일 뿐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글자 하나, 맨 앞에 놓인 단 한글자 때문에 아이는 교장실에 불려갔다. 아이는 k가 묵음이 아니라고 우겼다고 말하지 않는다. 묵음일 수 없다고 아이는 우기고 또 우겼따, “맨 앞에 있는 걸요! 첫 글자잖아요! 소리가 있어야죠그리고서 아이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앗긴 양 괴성을 질러댔다. 아이는 아빠가 말해준 것 그 첫 음을 단념하지 않았따. 평생 읽고 교육받아온 선생님 중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2. 파리

레드가 아는 유일한 사랑은 하루의 조용한 순간들 속에서 자신에 대해 느끼는 단순하며 복잡하지 않고 외로운 사랑이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이야기 속에 주말마다 들르는 식료품점 통로에 그 자리에 한결같이 견고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매일 밤 어둠 속 같은 자리에서 고요함 속에서 눈부시게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게 자신의 것이었다. ‘

 

3. 슬링샷

그는 내게 자고 가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따. 나는 그가 볼 수 없는 슬픔을 지닌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 내 존재르 부정할 수 있는 사람-과 함꼐있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는 후회하고 어리석게 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그가 내게서 돌아섰을 때 나는 나조차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손을 뻗어 인체해부모형안에 있는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위장이었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 당연히 그건 실제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3. 랜디 트래비스

아빠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사랑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침묵이 사랑이고 자제심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고 완전히 드러내 보이는 것은 창피함을 모르는 것이라고. 사랑에 대해 주절거리는 건 우습다고 생각했다. 랜디 트레비스는 어던 남자이기에 건강 외모 명성 돈을 갖고고 그렇게 주절거리는 걸까?’

 

4. 매니페디

있잖아 미스 에밀리는 나 같은 남자는 절대 안 만날지도 몰라 그래도 난 꿈꾸고 싶어 기분이 좋거든 오랫동안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어. 제길 내게 기회가 없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그게 내가 헤쳐나가는 힘이야. 매 시간 매일을 해쳐나가게 해. 나 같은 남자가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줄 필요 없어, 조금이라도 꿈꿀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녀의 얼굴도 보이는 것과 다르게 망가지고 삐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얼굴을 인정하지도 거기서 희망을 보려 하지도 않았다 희망은 그녀에게 끔찍한 것이었다. 바라는 게 무엇이든 그것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뜻했으니까

 

5. 세상의 가장자리

엄마는 전쟁에 대해 알았다. 어둠 속에서 총을 맞는 게 어떤 건지 품안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게 어떤 건지 폭탄이 무엇을 파괴할 수 있는지 그건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곳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 나라에서 살면 그런 건 몰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모르는 게 많았다.’

종종 어마의 얼굴이 나온다. 그 시절처럼 여전히 젊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꿈속의 그녀는 입술을 움직이며 항상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고 한다. 꿈은 단 몇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우리 사이에 다시 풀어놓기에는 그걸로 충분히다. 그런 꿈에서 꺠어나면 마흔다섯 살의 나는 그때의 심경을 생생하게 느끼며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그녀를 잃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비통해진다.’

 

6. 당신은 너무 창피해

이 말 한마디만 할게. 꼭 기억해! 진심으로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어 엄마가 되고 나서 그걸 깨닫지

 

7 저 멀리 있는 것

8. 지렁이 잡기

 

누구도 묵음은 왜 발음하지 않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며 그냥 외우라고 했었다.

그냥 외웠고 그걸 외우고 안다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왜 발음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조이는 아빠가 가르쳐준 그 발음이 있다고 주장한다. 왜 안되는지 똑똑한 선생님들도 설명을 못하면서 무조건 발음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이라서 자신도 잘 몰랐을테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왜 발음되지 않은 알파벳인지 알지 못하거나 납득하지는 못하지만 알게 되었거나 아무 말도 없이 받아들이거나 그렇다.

늙은 여인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은 남자를 떠나버렸고

공장 노동자 레드는 뾰족한 코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못생긴 자기 얼굴에 안도하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자라고 배웠지만 달라진 모습에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기어이 라오어를 주장하는 부모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받아들이는 나이가 된다.

 

짧은 이야기들은 소설같기도 하고 수필같기도 하고 때로는 시처럼도 읽혔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면서 자기 이야기를 짧게 들려준다.

그들은 주장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치지 않았다.

쭈삣거리며 나와서 나는... 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시 슬며시 이야기 속으로 사라진다.

엄마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을 뒤늦게 알지만 내뱉지 못하는 상황들

무언가 깊게 심취할 무엇이 필요했던 순간들

내 고향을 잃으면 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현실을 알게 되고 인정하면 여태 쌓아온 나 자신을 부정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보이지 않은 시간속에도 찰라의 눈에 띄고 즐거운 시간들도 있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할머니의 말이 내 삶의 일부분을 지나가기도 했다.

 

내게도 발음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모른 척하거나 모르거나 그럴 뿐이다.

그리고 나도 묵음들에 대해 이유를 요구하지 않고 그저 외워서 익히고 있는중이다.

 

병원을 다녀오며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 표현이후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자기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야기했을 때 아무도 호응하지 않거나 모른 척 하거나 차마 뭐라고 이야기하기 난감해 침묵을 지킨다면 말을 한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 듣고 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누구도 허공속에서 내 목소리가 흩어지는 걸 원하는 사람이 없다.

목적하는 대상이 없더라도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고 답해주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하고 명명을 하고 상황을 정리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탓을 하거나 침묵을 한다면 내가 겪고 있는 내 상황이나 그때의 사건이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 그 경험을 한 나 자신이 문제가 되어버린다.

 

묵음이었던 사람들이 있었어

세상에는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소수자가 있고 그림자 노동이 있고 누군가가 있지) 내가 미처 세상을 다 알지 못했구나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렵다.

그 다음 어떻게 해야한다는 몰라서이기도 하고

또 하나 개인적인 이유는

나 자신이 평안하지 않고 불안하고 위기 상황이면 다른 누가 묵음이든 뭐든 중요하지 않다.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한결같지 않은 내 모습이 부끄러워 한결같기 위해 눈을 감기도 한다.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그 여운은 깊고 진하다.

다만 그 진한 여운이 여운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 주변에는 언제나 누군가 있다.

내가 모를 뿐이다.

나도 당신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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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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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는 이제 자신을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의 삶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아팠는지 알기 위해 나를 돌아봐야 한다.

조울증이 심한 남편이 나에게 그릇을 집어든지는 순간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리고 이제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어려서 한량같았던 아빠가 너무 미웠고 아빠 때문에 곱게 자란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엄마를 위해 내가 갖고 싶은 걸 참을 수 있었고 엄마가 하는 칭찬에 내마음이 가득차올랐다. 부유한 외가에서는 엄마에게 다 두고 돌아오라고 했는데 언제 엄마가 다 포기하고 돌아갈지 두려웠다. 내가 말을 잘 들으면 엄마를 위해 애를 쓰면 엄마가 돌아가지 않을거라도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엄마는 돌아가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앓아눕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를 돌보는 건 내 몫이었다. 아빠는 있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동생들은 어렸다.

일과 엄마간호가 하루의 일상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일부러 늦게 귀가한 적도 있었다. 엄마가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하고 마음을 몰래 먹은 적도 있었다.

다들 착한 딸이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그렇게 좋은 딸이 아니고 못된 구석이 있고 이기적이었음을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엄마와 아빠까지 돌아가셨고 세상에는 삼남매만 남았다.

그리고 나는 졸지에 대장이고 가장이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한꺼번에 돌아가신 부모님덕분에 경제적으로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아빠와 다른 사람, 휜칠하지 않아야 하고 큰소리 뻥뻥치는 위인이 아니어야 했다.

못생기고 기가 죽은 안쓰러운 남자

다들 말렸고 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청첩장을 돌렸고 되돌리기는 늦었다,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아빠보다 못한 남자는 아빠와 다르지 않았다.

내곁에 딱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한 마리였다.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 때문에 나는 참고 살아야 했다. 동생들 도움을 받아가며 악착같이 살아야 했는데 남편은 늘 제구실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이혼하리라는 마음은 아이가 스무살이 되고 10년이 다시 지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혼자 산다는 것, 경제력의 문제 그리고 이혼이라는 딱지가 두려웠다.

지금은 서로 남처럼 살아서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신고이후 조금 강하게 나가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어버리자 그도 스스로 살아가고 나도 스스로 살고 있다. 타인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아직 가득하고 위생관념이 전혀 없는 병신같은 사람이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았다.

나는 나를 알아보려고 했다. 내 모친은 내게 사랑을 듬뿍 주고 가족을 버리지 않았고

나는 모친을 닮아 가족을 버리지않고 아이를 길렀다.

남편이 나에게 거머리였던 것처럼 나도 내 혈육에게 거머리였을 것이다.

그 상황을 마주하자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지났다. 아들에게도 거머리일 수 있지만 그건 끝이 있다고 약속했다.

나는 남편을 바꿀 수 없어 나를 바꾸려고 그래서 나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자꾸 내가 생각하는 내가 정리한 내가 내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한다.

21살 부모잃고 강해지고 꼿꼿하고 모든 상황에 대해 통제하고 관리해야하는 견디던 내가 60이 넘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다. 그게 나를 지탱한 힘인데 이제 그 21살의 나를 놓아주라고 한다. 그게 가능할까

내가 남편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남편을 통제하고 규정했고 아들을 규정하고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힘들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나는 정말 내가 맞을까

나는 누구인가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어떤 것이 나인지 혼란스럽다.

 

 

‘#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지 누가 나를 잘 알겠어요?’

다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하고 싶은 말은

거 짓 말!’

내가 나를 아는 건 당연하다. 나는 나이므로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 내가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걸 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알고 내가 못하는 것도 안다. 나의 현재 상황을 잘 알고 내 비밀은 나만 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거나 내 생각과 다르게 관계가 흘러가서 상처를 받거나 불안해질 때 내가 몰랐던 미쳐 생각하지 못한 내 모습이 불쑥 올라온다.

낯선 나를 내가 바라본다.

나는 성숙하다고 믿었는데 아직 어리고 유치하고 감정적인 내가 올라온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기푹한 곳에서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살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주 환한 날들)

 

이제는 나를 잘 안다는 j에게도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길 것이다.

나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이고 이제는 정리되었다는 그 마음에 균열이 일어나고 그 틈으로 일렁이는 빛이는 물결이든 지나갈 것이다.

그건 내가 잘못살아서도 아니고 성숙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삶이라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얇고 약한 곳을 비집고 기어이 밀고 들어와서 한 자리를 차지해버리는 경험은 나이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단단해졌다고 마음을 놓고 헤이해 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아주 환한 날들>의 주인공은 마음이 사랑이었다. 따뜻한 흔적을 남기는 존재 그로 인해 내가 몽글해지고 약한 구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들 그렇게 왔다.

j에게도 그 순간들이 버틸 수 있기를 놀랍기는 하지만 몽글몽글한 순간이기를 바란다.

내가 알고 정리된 내가 조금 흔들리고 헝클어지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서로를 할퀴었던 상처도 사라지지 않는다. 개의 다리가 보여주듯 상처가 없었던 지난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두 사람이 그 개의 활기를 보고 환해졌던 것은 되돌아 가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을 봤기 때문이다.

회복이란 이전의 상태로 도라가려는 과거지향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려는 현재 진행이다. “ (흰눈과 개)

 

우리는 오직 우리가 느낄 수 있는대로 느낄 뿐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렇다.

(중략)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들은 한 번도 자신만의 욕망을 가져본 적 없던 언니가 그때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걸 나로 하여금 마침내 깨닫게 했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런 일이었을까 이미 오래전 지나왔으나 그런 시기가 틀림없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언제 누구에게 찾아오든 존중받아 마땅했다.“ ( 빛이 다가올 때)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내 속에서 무언가 탁 하고 터지는 순간들

이야기들은 모두 그런 한 순간을 그리고 있다(고 나는 읽었다.)

다 정리되었고 내가 나를 잘 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순간들

아직은 여린 속살이 남아 있고 아직도 상처를 받고 아직도 아프다는 말을 해야하는 순간이 있고 어쩌면 그때 그것이 사랑이었구나 내가 그때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순간을 지난다고 내가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부분이 조금 늘어난 나이다.

그렇게 나는 확장되고 변화하고 달라진다.

앞으로 나아간다 싶다가도 다시 백스텝을 밟고 지리멸렬해지기도 하겠지만 그 역시 나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보여지는 부분에 신경을 쓰겠지만 결국 나는 나로 돌아온다.

보여지는 타인의 삶은 완벽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나는

나는 나의 티도 잘 알고 얼룩도 알고 남은 절대 모를 비굴하고 비열한 모습도 안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아서 기가 죽지만 결국 사는 건 그렇다.

완벽한 건 타인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일 뿐

누구나 약간의 얼룩이 있고 불순물이 끼어서 만들어져 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찬란하고 쓸모가 있고 강하게 비티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비슷해보이고 반복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중간중간 굳이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할까라는 마음이 끼어들기는 했지만 다 읽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마무리 짓는다.

 

다시 돌아와 j가 조금 헐렁해지기를 바란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모르거나 위험한 것들을 차단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고 하루에 열두번 변하는 남편을 남처럼 바라보고 불쌍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알려주고 싶지만 나 역시 타인이니 스스로 편안해지기를 바랄 수 밖에

타인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타인의 시선도 조금씩 교정해주는 과정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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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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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도 루시도 한 사람의 삶을 길게 바라보면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여러갈래로 변하면서 겱구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난하고 냉정한 분위기의 가정

자녀에게 다가가는 여유가 없었던 부모

무심한 형제들

대학에서 겪는 낯설음과 외로움

새롭게 알괴 되는 사회 문화 행동양식들

첫남편 윌리엄이 가져다 준 새로운 경험들

보통의 사랑 경험을 하게 해주었고 평범한 삶이 주는 안정감을 알게 해준 사람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지만 영원히, 여전히 나의 유일한 집이라는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

두 사람의 오묘한 관계가 어쩌면 이후 윌리엄의 아내들이나 루시의 남편에게 조금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윌리엄은 모르겠지만 루시는 헤어진 남편에 대해서도 은연중에 내가 가진 소유권을 놓지 않는다. 이미 남이지만 남들이 모르는 나만 알고 있는 윌리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안도하는 마음이 유일한 나의 집 그것이 윌리엄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른 채

내성적이고 자기확인이 없으며 결핍이 많은 루시

두 권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답답했다. (내 이름은 루시바턴, 오 윌리엄)

저렇게 타인에게 맞추며 살고 자기 감정을 속으로 삭이고 꽁해지기도 하는 루시

미움받을 용기가 없고 아무런 자신이 없는 초라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사람으로 보였다. 동시에 자기연민이 너무 많아서 세상에 가장 가여운 사람을 자신이라고 은연중에 정해놓고서 어쩌면 그가 관계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을 구원하는 사람 두가지 부류로 구분하지 않았을까 부모와 형제가 전자라면 윌리엄은 후자였다.

윌리엄에 대한 애정이나 이혼 후의 관계를 보면 나의 그림자를 모두 아는 유일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원했고 놓지 못하는 미련이 아닐까 싶었다.

나를 구원해야 하는 사람이니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나 역시 윌리엄을 챙기고 구원해야 한다는 어쩌면 서로 의존하는 관계일거라고 그래서 비록 이혼을 하고 헤어졌지만 정서적으로 가장 맨 앞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윌리엄이었다.

작가가 되고 사랑하는 현재의 남편이 있고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는 딸들과도 관계가 좋음에도 루시는 늘 전전긍긍하는 것 같다.

이번 편의 루시도 다르지 않다.

펜데믹에 대한 이해도 없고 (이 부분은 나중에 이해가 된다. 나 역시 코로나 초기에 이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고 걱정하고 조심하는 사람에 대해 예민하다고 느낀 시간이 길었다. 긴 시간을 겪어내고 경험하면서 비로소 심각성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루시 공주님은 윌리엄 뫙자에게 기대어 메인주로 이사하고 펜데믹 기간을 살아간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헤맑은 표정이 자꾸 연상되었다.

뉴욕을 떠나고 딸들을 못만나고 일상이 달라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크고 불편함이 있지만 그저 윌리엄이 이러는 건 이유가 있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나 지난 독서와 이번 독서사이 시간이 많이 있어서일까

그럼에도 이번 루시는 많이 공감이 되었다.

루시의 변화가 아닌 읽는 나의 변화일 수도 있다.

소심한 루시, 자기 직업에 자신이 없는 루시

가난하고 무지했던 그래서 자기 경험을 쓴 작품에 자신이 없고 부끄러웠던 루시

사람들의 태도가 때로 두렵고 슬펐던 루시

사실 돌아보면 별일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만 일상의 보통의 경험들은 상처가 될 EO가 많았다. 나만 모른다는 마음 누구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 동시에 그런 나 자신에 대한 자책들

나를 싷어할거야, 귀찮아 할거야 라고 지레 판단해버리는 소심함과 두려움

어제까지 괜찮았던 가까운 이들의 행동이 오늘 갑자기 싫어지는 마음

어느날 문늑 느끼는 아 나의 이런 행동 이런 습관을 저 사람은 싫어하겠구나 라고 느껴지는 마음

자녀가 연락을 하지 않아 엄마로서 이제 자격이 없다 엄마로서 존재가 없구나 느꼈다가 전화 한통에 스르르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들

오랜만의 만남에 어색해지는 것

누군가가 좋아졌다가 다시 미워지는 감정들 내가 상처받기 두려워서 좋은 사람이야 라고 느끼려는 애쓰는 마음들

루시의 분투는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렇다.

루시의 좋은 엄마와 현실의 엄마는 비슷한 말을 한다.

루시 너 자신을 믿어

누구나 자기가 중요하다고 느낄 필요가 있어

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하찮음을 잘 알아서 하루하루가 힘들 뿐이다.

들키지 않으려고 세상에 맞추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점점 작아지고 이러다 사라질것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이전 루시는 나는 루시바턴이라고 선언했듯이 이번에도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이야기 하다.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금은 안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타인은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이만큼 안다.

나는 행복했다. 정말 그랬다

이런 표현처럼 루시는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솔직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알아차리는 조각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조각들을 모아서 그렇게 만들어진 나를 인정한다.

몰랐고 알았고 그렇게 생각했고 행복했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루시는 다시 윌리엄과 합쳤고 그 사실을 자녀들에게 알린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지만 너의 엄마 아빠였고 좋은 친구였고 유일한 내 집이었던 그와 함꼐 하기로 했다고

이때 큰 딸 크러시의 말은 나에게도 깊게 뼈를 때렸다.

엄마가 아ᄈᆞ와 다시 합치기로 했다는 말을 했을 때 내 기분이 얼마나 뒤죽박죽이었는지 엄마는 모르죠, 엄마는 그말을 전혀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했어요. 그냥 헤맑게요. 엄마는 이해가 안되겠죠

엄마의 그 말을 그 모든 시간이 흐른 뒤에 오 그런데 아빠하고 다시 합쳤어. 두분이 겪은 엿같은 그 모든 일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말ㅇ르 해야겠는데 개같은 그 모든일이 갑자기 큰일이 아니게 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구요.‘

이 말이 내게로 와서 박힌건 비슷한 말을 나도 딸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문제가 우리문제만은 아니었다는 것 어른의 갈등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들이 제 3자가 아닌 당사자일수도 있음을 부모는 잊는다.

우리 문제고 아이들은 몰라도 되고 상처입지 않기위해 다 결정되면 조심스럽게 알려주면 되는 것, 또는 두 사람의 갈등이 풀렸다면 잘 지내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는 단순한 마음이 너무 단순했다는 것들

 

루시도 나도 내 문제를 바라보고 내 연민에 집중하고 그 와중에 자녀들에게 신경썼다고 믿었으나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은 모른다.

어려서 모르고 당사자가 아니어서 모르고 힘들어 보이지 않으니 모른다고 믿고 싶었다.

타인의 고통까지 공감하게 되면, 더구나 그 타인이 자녀라면 나는 더 견딜 수 없고 내가 나를 용허사기 어렵고 미워지고 하찮아져서 내가 나를 놓아버릴까봐 그렇게 변명하면서 아닐거라고 믿으려 했다.

불화를 보았고 갈등을 짐작했고 두려웠는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한다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불안했는지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들

나 역시 나도 조금 알고 나는 그러다는 것만 알 뿐이다.

 

나는 윌리엄을 알면 알수록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루시를 달래고 사랑하는 방식이 동등한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돌봐야 하는 여리고 약한 사람이라는 종속관계처럼 보여서 이다.

루시에게 필요한 안전한 부모의 모습

내가 돌보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므로 가끔의 통제가 필요하고 일방적인 지시가 필요한 관계

그래서 루시와 윌리엄은 잘 맞는 파트너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루시를 이해한다. 이해가 된다.

나도 이미 익숙한 것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그다지 나쁘지 않으니까 라고 스스로 변명을 할 것이고 내 부모 내 성장으로 온 결핍들을 생각해보겠지만 그 기저에는 그것은 절대 차인이 채울수 없는 것 결국은 빈공간으로 바람불고 외로운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공간을 누군가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채우려고 들면 다시 발톱을 세우고 경계를 할지 모르겠지만 외롭게 기다리고 기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루시가 미웠다가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가 다시 비슷한 모습들을 발견한다.

미워던 이유도 내가 스스로에게 미덥지 못한 부부들을 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삶은 다음을 알 수 없다. 그건 불안이지만 동시에 선물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빈 상자 빈 종이다.

그것을 채우는 것은 살아가는 내 몫이다.

루시의 이야기를 읽으면 배운 것이 있다면

서성거리는 모습

짜증이나 화를 바라보는 모습

혼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느끼지만 말은 삼키는 모습

모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는 모습 그 모습은 나도 배우고 싶다.

쉽게 삶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고 바라보고 서성이며 시간을 채우겠지만 그것 역시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루시가 조금 편해지면 좋겠다.

올리버가 편안해지지만 그 성정이 더 무뎌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처럼

만난 적없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가 걱정되기도 하고 염려되고 미워지기도 하는 마음들이 결국은 사랑이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루시를 은근 좋아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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