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소설Q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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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아주 뜨거웠던 94년의 여름만은 못하지만 지독히도 뜨거웠던 그 여름 시부의 병수발을 들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학으로 홀홀단신 상경해서 일가를 이루고 아내가 죽은 후 혼자 아들을 박사까지 만든 시부

로맨스 그레이의 현신이라고까지 불리던 정많고 젊잖은 시부였다.

나는 남편과 교대로 시부를 간병한다.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알던 시부라면 힘들지 않다. 나를 딸같은 며느리라고 생각하고 딸처럼 대하지 않았는가 나도 딸인 듯 그를 보살피면 된다.

그러나 증상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두 사람의 힘으로 감당이 되지않고 일상에 자꾸 균열이 생긴다. 휘청거리고 남편과의 관계마저 건조하게 꺼끌거리는 낌새를 보이자 간병인을 쓰기로 한다.

하루 8만원 큰 돈이지만 최저시급을 놓고 계산해보면 당사자에게는 큰돈이 아니다.

그러나 그 8만원으로 나는 시간을 샀다. 그 시간조차 온전히 내가 가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집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시부의 섬망증상이 나타나면서 일상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죄를 짓지않았는데 용서를 받는 더러운 기분

평소에 느낀 어떤 찜찜함이 훅하니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시부는 평소 쓰지 않던 욕설을 하고 억지를 부지고 간병인을 마구 대한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럽고 민망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병자니까 지금 제정신이 아닌 섬망상태니까 그렇다. 그러게 이해하려고 하지만 찝찝하고 억울하고 이건 아닌데 싶다. 그러나 콕 찦어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시부의 기억속에 있던 자두를 먹으며 고모를 기억하고 고모가 병문안을 온다.

애매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병자에 대한 연민과 간병하는 사람들에 대한 치하 입에 발린 무책임한 말들이 오가는데 순간 시부가 깊이 감추어둔, 제정신에는 절대 꺼내지 않을 속마음을 드러낸다.

저 애가 우리집에 시집와서 지금껀 뭐 한 일이 있나? 박사님과 결혼하면서 열쇠 세 개를 해왔나? 애를 낳았나? 저 애 때문에 우리 집 귀한 손이 끊겼

섬망의 순간에도 내가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은 정확히 짚어낸다. 가장 약한 부분 가장 나를 두려워하는 그 부분을 사정없이 쪼아댄다. 그리고 간병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을 한다.

도둑년

모두가 불편한 상황 난감한 상황이다.

그냥 니가 어떻게 좀 해봐라. 니가 참아봐라.. 말을 다르지만 뉘앙스는 다르지 않다.

해결하라는 것 책임지라는 것 더러운 일 치사하고 불편한 일들은 니가 하라는 무언의 몸짓과 손짓들

남편은 방관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따로 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부끄러운 짓거리를 해대면서 아무렇지 않고 그 옆에서 그 짓을 고스란히 보고 당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또 따로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역할구분되어진 것을 가족공동체라고 여긴다.

호통치는 사람이 있고 말리는 사람이 있고 방관하는 사람이 있고 당하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타인보다 가족안에서 제각각 맡은 역할들이 있고 틀림이 없이 항상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이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고 익숙한 촌극이다.

역할이 바뀌면 그럴 수 없이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호통치는 사람이 당하는 건 당연히 불편하지만 당하던 사람이 방관하거나 말리던 사람이 당하거나 어쨌거나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냥 당하는게 낫고 모르쇠하고 있는 게 가장 안전하고 모두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래야 상황이 빨리 종료될테니까

 

결국 그 사단이 나고 남편은 간병인을 그만두게 한다.

표면적인 건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다거나 그런 일이 있으니 못할 거라는 배려있는 이유겠지만 사실 노여움이다. 그 상황을 드러나게 한 노여움 감추고 싶던 장면이 공개된 분노와 치욕이다. 그건 고스란히 아내에게 향하는 것이지만 애꿏은 간병인을 자른다.

아버지는 간병인을 아내로 착각했다. 그래고 순간 본심을 드러내고 적의를 표현했다. 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쌍욕까지 시전했다.

아버지의 화를 돋운 건 영옥씨다. 그 앞에서 얼쩡거리며 아내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은 아내다.

아내에게 화를 낼 수 없음을 누구보다 남편이 잘 알고 있다. 그건 공정하지 않고 어처구니 없음에 영옥씨를 자른다.

 

새로 남자 간병인이 왔다. 그는 그가 고치지 않은 사투리가 권력임을 안다. 아무렇지 않게 자기를 이해해야한다는 오만에 사투리를 마구 써댄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는 선생님이다.

온갖 일들을 도맡았던 영옥씨와는 달리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힘이 있다.

그리고 시부는 당연하게 그 힘을 알아보고 그 힘에 복종한다.

 

그리고 그 간병인이 자리를 비운 순간 시부는 요의를 느낀다. 참을 수 없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시부는 며느리에게 의지해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노출한다.

이제 나는 남자도 아니다. 부끄러움이 머리까지 돌아내려오는 순간 시부는 분노한다.

감히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다니

부끄러움은 가부장의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그 부분을 들킨 가부장은 가장 약한 며느리에게 분노한다. 죽어라 죽어

 

같은 사건을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용서하라 용서하는 것은 별일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익숙한 복종이다. 그러나 잊지 않겠다.

 

시부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아들에게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그 장례식장에서 남편은 엉뚱한 곳에서 용서를 구하며 울부짖는다.

나는 어이가 없다.

우리라고 굳게 맺어진 동맹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들은 언제는 내가 우리에 속했다가 어떨 때는 선 밖으로 밀쳐낸다.

공고한 그들의 동맹에 내가 낄 수 없다. 우리는 규칙을 정하고 뭔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 윤리와 그러해야하는 당위를 정한다. 그리고 그들의 규칙은 언제나 내게 강요되면서 내가 그 규칙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도 우리가 된다. 어떤 희생 어떤 돌봄 어떤 뒤치다꺼리를 할 내가 우리속에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의무를 그들 마음에 들지 않은 형태로 하거나 하지 않으면 나는 우리가 아니다.

 

권력은 호의를 베푼다.

상대의 취향이나 기호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는 행동이나 의도가 호의라면 그냥 호의인 것이다.

상대의 배려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익숙하고 편리한 상황은 당연하다. 불편하게 하는 것 상대가 당연히 배려하지 않는 순간 그건 나에 대한 도전이다.

 

 

홀어머니의 외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어머니에게 인사시켜드리며 말한다

어머니 그동안 얼마나 고생많으셨어요? 이제 어머니는 호강할 일만 남았습니다. 이제 어머닌 힘든 일 다 내려놓으시고 호강만 하셔요

어머니의 그 호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동안 어머니의 고생을 알았던 독신 아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유부남 아들은 호강시킬 수 있다는 건 무슨 의미가 될까

어머니긔 고생은 아들을 향했는데 어머니는 그 댓가를 며느리에게 요구한다.

너도 가족이 되었으니 당연한거 아니냐고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그리고 며느리는 가족인데 당연히... 라는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가족이다. 화목하고 비둘기집같은 우리가족

 

 

텍스트를 너무 사랑해서 번역이 갈팡지팡하는 역자

너무 잘하고 싶어서 자꾸만 꼬이는 해석

 

비단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너무 잘 하고 싶어서 내 능력 이상으로 애를 쓰거나 노력하면 모든 게 꼬인다.

과장된 것은 어딘가 허술할 수 밖에 없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혼자만 애써서 될일도 아니다.

사람의 관계란 적당이 모르고 넘어갈 때도 있고 모른 척 할 때도 있고 몰라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상대를 다 알겠다 다 해주겠다는 건 오만이다.

상대도 나에게 다 해줄 수 없다.

신도 그렇게는 못한다.

 

 

가부장제는 어디에나 있다.

우리 집 안방에만 있지 않고 현관에도 있고 이웃과 우리집 사이 엘리베이트를 기다리는 공간에도 있다. 버스 안에도 있고 사무실로 향하는 번화가에도 있다.

그건 예의이기도 하고 질서이기도 하고 상식일 때도 있다.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가족끼리 돕고 살아야 하고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고 내가 조금 참아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행위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가장 약한 사람. 가장 여린 부분에 모든 것이 집중해 있다.

 

어쩌면 시부가 암이 아니었다면 섬망이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가장 어두운 인간의 바닥이 그렇게 가장 약하고 두려운 순간 불쑥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섬광은 주변의 방관자들도 더 선명하게 비춰준다.

모두 함께 조용히 모른 척 그렇게 넘어간다. 그게 편리하고 안전하고 익숙하니까

그렇게 지금 당신 옆에도 가부장제가 있다.

아마 당신에게 가장 익숙한 그 형태로 말이다.

 

 

 

나는 가족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

갖다 버리고 싶고 그냥 씻어서 빡빡 문지르고 싶고

그러면서 나도 그냥 행복한 우리 집처럼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살고 싶기도 하고

복잡한 관계다 세상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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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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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양하게 읽힌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에즈미의 성장이야기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재미있다.

엄마없이 아빠와 함께 자란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일터에서 숨어서 성장하고 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여자아이가 성장하면서 딸의 성장에 당혹스럽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곤란한 아빠가 주변 성숙한 여자 어른의 조언으로 주인공을 기숙학교로 보낸다. 기숙학교는 권위있고 명망은 있을지 모르지만 매우 엄격하고 자비가 없다. 자유롭게 성장한 영혼이 망가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당연히 우리의 에즈미도 조금은 망가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한 돌봄을 베푸는 리지에게 의지하면 다시 스크림토리엄에서 생활을 이어나간다. 단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세상을 만나고 마침 불어오는 여성참정권운동과 마주하고 그 물결에 휩쓸리다가 고민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 행동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나는 단어를 선택하고 지키는 사람이다. 그 선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에즈미는 자기의 욕구에도 눈을 뜨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인다. 자유로움을 맛보고 그 가치를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만 사전에는 실릴 수 없는 말들을 수집하고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수집은 그녀의 방식으로 여전히 트렁트 속에 갇혀있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입양보내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스크립토리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으니 어머니인데 결혼을 한 적이 없으니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을 규정하는 단어는 세상에 없다.

나는 세상 어떤 단어에도 속할 수 없으며 동시에 어떤 단어라도 내가 될 수 있는 굉장히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점점 더 단어속으로 침잠할 수 밖에

그리고 인쇄공 개러스를 만난다 조용하게 자신을 알아주고 자기가 모으는 잃어버린 단어들의 의미를 아라봐주는 사람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지만 그때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이다.

개러스의 청혼은 어떤 청혼보다도 낭만적이다.

(상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장 의미를 두는 것 그리고 가장 바라는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이뤄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할까)

에즈미는 단어에 포함되고 단어에 구속된 어쩌면 세상 모든 단어들의 여자노예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기꺼이 일생을 그 역할에 바친다.

세상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고민하고 섬세하게 선택하는 사람

이미 선택된 의미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

그리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단어들을 모아서 결국은 세상으로 내보내는 기초를 마련한 사람

어디에도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어쩌면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많은 단어들이 이제 그녀를 기억한다.

 

 

세상에는 적극적이 투쟁도 있지만 보이지 않은 소극적이지만 지속적인 꾸준한 투쟁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기록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내가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여전히 언제나 여기에 있었다.

내가 쓰는 언어를 너는 얼굴을 찌푸리거나 외계어를 듣는 듯이 어리둥절하고 말도 안된다는 듯이 무시하겠지만 나에게는 나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식이다.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지 않을 수 있다.

타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고 얼굴이 찡그려질 수 있겠지만 존재는 인정하라

모든 언어는 모두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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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차를 타고 이동해온 피로감이 묻어 있는 얼굴들을 비춘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설레임은 없다.

그냥 지쳤다.

넓기만한 평야를 지나 내린 곳은 지나쳐 온 곳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덩그렇게 이동식 주택이 놓여있다.

 

병아리 감별을 하면 암놈은 살고 수놈은 갈아 없애버린다.

쓸모가 없어서다.

맛이 없어서라고 아이에게 설명하지만 알을 낳지 못하는 수놈 병아리는 무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가치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아빠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빠는 그 가치를 아칸소에서 농장을 일구는 일로 정했다.

매일매일 병아리 똥구멍을 만지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내 땅을 가지고 내 일을 하는 것

그건 미국의 아버지나 한국의 아버지나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아버지나 다 마찬가지다.

아버지로서 자부심과 권위를 보여주는 일 그건 중요하다.

병아리 똥구멍이나 만져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이 많은 돈을 남기더라도 말이다.

 

어머니는 마뜩치 않다. 아픈 아이가 있고 교육시켜야 할 자녀가 있고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기반이 중요하다.

불규칙하고 보장되지 않은 수입에 자신이 없다.

어쩌면 아픈 아이나 교육환경따위는 핑계일 수도 있다.

그녀는 이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할 때 그 뒤에서 묵묵히 감내해야하는 희생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그 희생은 그녀의 몫이다.

농장을 일구고 몸을 쓰는 노동을 하는 남자의 모든 행동들은 가시화되고 가치가 매겨지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챙기고 적은 돈으로 살림을 꾸리고 일상을 이어가는 여자의 노동은 보이지 않고 가치를 매기지 못한다. 더불어 남자를 응원하고 사기를 돋우어야 하는 감정노동 또한 그녀의 몫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뭔가 해보려는 가장에게 도전하고 반대하는 일은 옳지 않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가족이니까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건 가치가 있는 일이므로

그래서 그녀는 아칸소의 농장이 싫고 트레일러 집이 싫다.

토네이토에 흔들리고 날아가버릴 불안정한 주거가 너무 황량하고 물을 대기 힘든 넓기만한 땅덩어리가 그녀에게는 그냥 짐덩어리일 뿐이다.

 

부부는 싸우고 아이들은 방으로 도망가서 귀를 막지만

결국 다시 아침은 오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은 포기하게 된다.

 

미국으로 이민올 때 둘은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어주자고 했다.

여자는 남자의 구원이 되었다고 믿지만 남자는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믿었다.

가족을 위해 원하지 않은 일을 해야한다. 게다가 그 일은 쓸모없는 수놈들을 갈아버리도록 솎아내는 일이다. 어쩌면 남자는 그 일에서 솎여지는 것이 병아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자와 아이의 편안한 일상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고 가족을 구원하고 있다고

그래서 돈이 모였을 때 스스로를 구원하리라 생각했을까

여자는 어쩌면 전형적인 주부라는 위치는 가족을 구원하는 것이 직업일 수도 있다.

기꺼이 희생하고 돌보고 챙기는 모습을 위대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희생했다면 자신을 위한 뭔가의 댓가가 있어야 하는데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생활기반이 있는 곳 한인교회가 있는 곳 아픈 아이가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곳

결국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두가지 구원이 부딪치면서 갈등의 골을 깊게 판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에서 여자의 엄마 순자가 도착한다.

사실 순자 캐릭터는 우리에게 낯선 할머니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김혜자 같은 할머니도 있지만 김수미 할머니도 있고 김용림할머니도 있고 김영옥 할머니도 있다.

푸근하고 한없이 베풀는 할머니

앞치마를 두르고 쿠키를 굽는 것 차를 끓이는 할머니 말고

욕설을 하고 손자들 등짝을 때리고 함께 싸우는 할머니도 있고

냉정하게 이용하는 할머니도 있고 그렇다.

순자는 어떤 할머니라고 단정짓기 힘든 복잡한 할머니이긴 하지만 그리 낯설거나 새롭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누구가에게는 한없이 여리고 순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독하고 모질기도 하고 누구를 속이기도 하고 어디서는 속아넘어가기도 하는 것 사람은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존재이므로

순자도 그런 할머니다.

딸을 위해 쌈짓돈을 모아와 건네고 기꺼이 멸치와 고춧가루를 짊어지고 태평양을 건너지만

손자에게 이겨먹고 싶고 손자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욕설을 섞어가며 고스톱을 가르치는 할머니

결국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만 그 희생과 노력이 때로는 모든 걸 앗아가게 만드는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피해를 입히기도 하는 사람이다.

순자는 농작물을 태우기도 했지만 그 한 구석에 미나리를 키우던 사람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구원과 희생 꿈과 쓸모를 생각하던 부부보다는 입체적이기는 하다.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화분도 분갈이 한 후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거나 뿌리가 썩을 수도 있다.

낯선 곳에서 뿌리내리기

어쩌면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살수도 있다는 희망은

그곳도 이곳과 다르지 않다는 것 어디서나 쓸모가 존재하고 가치는 순위가 매겨지고

내 존재를 드러내는 꿈이나 야망 따위는 필요하다.

가부장은 어디에서나 의미가 있고 남자들이 쫒는 꿈이다.

남자의 농장은 그의 힘의 상징이고 권위의 상징이고 존경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꿈을 쫒던 여자도 여기서도 거기서도 주부이고 아내이고 엄마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운이 좋은 날 여자는 말을 한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좋아서 덮어지는 일이란 나빠지면 다시 도드라지게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합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덮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의 이 행복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 떠나겠다고 한다.

그리고 농장에 불이 난다.

자 문제가 다시 도드라졌다. 너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리고 희망을 찾는 순간 모든 것은 다시 지워지고 리셋된다.

함께 거실에 모여 자는 네 식구를 순자를 내려다 본다.

어쩌면 아니 어쩔 수 없이 네 식구는 다시 보통의 가부장이 있는 가족으로 돌아간다.

아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남자는 머리가 아닌 기구를 써서 우물을 찾는 백인남성을 고용했고 그 자리에 여자도 함께 한다. 남자는 순자가 피워낸 미나리를 발견한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좋은 자리를 잡고 저절로 자라는 미나리

때로 보이지 않은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무섭다.

뱀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불안해서 다가갈 수 없지만 뱀이 보이면 아 저기 있구나 하고 그 이외 곳으로 돌아다녀도 된다. 보이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도 있고 보이면 오히려 왜소해 보이거나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와는 상관없이

 

가족의 갈등이 드러났을 때

더 이상 우리는 서로를 구원하지 않음을 알았을 때 서로가 꿈꾸는 그곳이 다르고 꿈의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그리고 내가 무엇을 힘들어하고 있는지를 알았을 때 오히려 개운하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자라날 것들은 자라난다. 미나리처럼


충동적으로 보러간 영화관은 본의아니게 혼자 독차지하게 되었다.

처음엔 상영하지 않은 줄 알았고 나중에는 조금 무서웠다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유로웠다.

혼자라 마스크를 살짝 벗어도 괜찮았고 살짝 가져간 젤리를 먹어도 괜찮았고 그리고 점차 영화속에 빠져들면서 혼자라는 것도 잊었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지 새드 엔딩인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행복한 결말일테고 또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막막한 결말일거고  그냥 또 밋밋하거나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상황은 저마다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고 가치가 매겨진다

내게 영화는 생각보다는 먹먹했고  조금은 서툴러 보이는 연기들이 오히려 영화분위기와 썩 어울려 보이면서 동시에 왜 이렇게 그들은 이 영화에 열광했을까 의아했고  

그리고 그날 그 시간 내 위치와 감정에 따라 이 결말이 조금 슬펐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볼 일이다.

화려하면 화려한대로 오감이 만족될테고 밋밋하면 밋밋한대로 집중이 쉬워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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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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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게 오픈되어버리는 상황이 된다면?
우리속의 숨은방이 때로 예의가되기도하지만 그속에 숨기만 할게 아니라 문을 열어도 구끄럽지 않을 단단함이 더 필요하다.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의 나 그게 진짜 나나는게 부끄럽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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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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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은 엥? 했었는데 비소설은 의외로 매력적이다. 글을잘 써야겠다는 마믐보다 그래도 계속 써야겠다는 마음. 오래 버티고 꾸준함의 힘을 다시 생각한다. 글쓰기가 아닌 면에서도참고될만한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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