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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평점 :
# j는 이제 자신을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의 삶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아팠는지 알기 위해 나를 돌아봐야 한다.
조울증이 심한 남편이 나에게 그릇을 집어든지는 순간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리고 이제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어려서 한량같았던 아빠가 너무 미웠고 아빠 때문에 곱게 자란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엄마를 위해 내가 갖고 싶은 걸 참을 수 있었고 엄마가 하는 칭찬에 내마음이 가득차올랐다. 부유한 외가에서는 엄마에게 다 두고 돌아오라고 했는데 언제 엄마가 다 포기하고 돌아갈지 두려웠다. 내가 말을 잘 들으면 엄마를 위해 애를 쓰면 엄마가 돌아가지 않을거라도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엄마는 돌아가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앓아눕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를 돌보는 건 내 몫이었다. 아빠는 있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동생들은 어렸다.
일과 엄마간호가 하루의 일상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일부러 늦게 귀가한 적도 있었다. 엄마가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하고 마음을 몰래 먹은 적도 있었다.
다들 착한 딸이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그렇게 좋은 딸이 아니고 못된 구석이 있고 이기적이었음을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엄마와 아빠까지 돌아가셨고 세상에는 삼남매만 남았다.
그리고 나는 졸지에 대장이고 가장이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한꺼번에 돌아가신 부모님덕분에 경제적으로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아빠와 다른 사람, 휜칠하지 않아야 하고 큰소리 뻥뻥치는 위인이 아니어야 했다.
못생기고 기가 죽은 안쓰러운 남자
다들 말렸고 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청첩장을 돌렸고 되돌리기는 늦었다,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아빠보다 못한 남자는 아빠와 다르지 않았다.
내곁에 딱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한 마리였다.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 때문에 나는 참고 살아야 했다. 동생들 도움을 받아가며 악착같이 살아야 했는데 남편은 늘 제구실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이혼하리라는 마음은 아이가 스무살이 되고 10년이 다시 지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혼자 산다는 것, 경제력의 문제 그리고 이혼이라는 딱지가 두려웠다.
지금은 서로 남처럼 살아서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신고이후 조금 강하게 나가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어버리자 그도 스스로 살아가고 나도 스스로 살고 있다. 타인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아직 가득하고 위생관념이 전혀 없는 병신같은 사람이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았다.
나는 나를 알아보려고 했다. 내 모친은 내게 사랑을 듬뿍 주고 가족을 버리지 않았고
나는 모친을 닮아 가족을 버리지않고 아이를 길렀다.
남편이 나에게 거머리였던 것처럼 나도 내 혈육에게 거머리였을 것이다.
그 상황을 마주하자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지났다. 아들에게도 거머리일 수 있지만 그건 끝이 있다고 약속했다.
나는 남편을 바꿀 수 없어 나를 바꾸려고 그래서 나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자꾸 내가 생각하는 내가 정리한 내가 내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한다.
21살 부모잃고 강해지고 꼿꼿하고 모든 상황에 대해 통제하고 관리해야하는 견디던 내가 60이 넘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다. 그게 나를 지탱한 힘인데 이제 그 21살의 나를 놓아주라고 한다. 그게 가능할까
내가 남편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남편을 통제하고 규정했고 아들을 규정하고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힘들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나는 정말 내가 맞을까
나는 누구인가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어떤 것이 나인지 혼란스럽다.
‘#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지 누가 나를 잘 알겠어요?’
다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하고 싶은 말은
‘거 짓 말!’
내가 나를 아는 건 당연하다. 나는 나이므로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 내가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걸 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알고 내가 못하는 것도 안다. 나의 현재 상황을 잘 알고 내 비밀은 나만 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거나 내 생각과 다르게 관계가 흘러가서 상처를 받거나 불안해질 때 내가 몰랐던 미쳐 생각하지 못한 내 모습이 불쑥 올라온다.
낯선 나를 내가 바라본다.
나는 성숙하다고 믿었는데 아직 어리고 유치하고 감정적인 내가 올라온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기푹한 곳에서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살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주 환한 날들)
이제는 나를 잘 안다는 j에게도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길 것이다.
나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이고 이제는 정리되었다는 그 마음에 균열이 일어나고 그 틈으로 일렁이는 빛이는 물결이든 지나갈 것이다.
그건 내가 잘못살아서도 아니고 성숙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삶이라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얇고 약한 곳을 비집고 기어이 밀고 들어와서 한 자리를 차지해버리는 경험은 나이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단단해졌다고 마음을 놓고 헤이해 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아주 환한 날들>의 주인공은 마음이 사랑이었다. 따뜻한 흔적을 남기는 존재 그로 인해 내가 몽글해지고 약한 구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들 그렇게 왔다.
j에게도 그 순간들이 버틸 수 있기를 놀랍기는 하지만 몽글몽글한 순간이기를 바란다.
내가 알고 정리된 내가 조금 흔들리고 헝클어지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서로를 할퀴었던 상처도 사라지지 않는다. 개의 다리가 보여주듯 상처가 없었던 지난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두 사람이 그 개의 활기를 보고 환해졌던 것은 되돌아 가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을 봤기 때문이다.
회복이란 이전의 상태로 도라가려는 과거지향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려는 현재 진행이다. “ (흰눈과 개)
”우리는 오직 우리가 느낄 수 있는대로 느낄 뿐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렇다.
(중략)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들은 한 번도 자신만의 욕망을 가져본 적 없던 언니가 그때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걸 나로 하여금 마침내 깨닫게 했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런 일이었을까 이미 오래전 지나왔으나 그런 시기가 틀림없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언제 누구에게 찾아오든 존중받아 마땅했다.“ ( 빛이 다가올 때)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내 속에서 무언가 탁 하고 터지는 순간들
이야기들은 모두 그런 한 순간을 그리고 있다(고 나는 읽었다.)
다 정리되었고 내가 나를 잘 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순간들
아직은 여린 속살이 남아 있고 아직도 상처를 받고 아직도 아프다는 말을 해야하는 순간이 있고 어쩌면 그때 그것이 사랑이었구나 내가 그때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순간을 지난다고 내가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부분이 조금 늘어난 나이다.
그렇게 나는 확장되고 변화하고 달라진다.
앞으로 나아간다 싶다가도 다시 백스텝을 밟고 지리멸렬해지기도 하겠지만 그 역시 나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보여지는 부분에 신경을 쓰겠지만 결국 나는 나로 돌아온다.
보여지는 타인의 삶은 완벽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나는
나는 나의 티도 잘 알고 얼룩도 알고 남은 절대 모를 비굴하고 비열한 모습도 안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아서 기가 죽지만 결국 사는 건 그렇다.
완벽한 건 타인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일 뿐
누구나 약간의 얼룩이 있고 불순물이 끼어서 만들어져 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찬란하고 쓸모가 있고 강하게 비티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비슷해보이고 반복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중간중간 굳이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할까라는 마음이 끼어들기는 했지만 다 읽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마무리 짓는다.
다시 돌아와 j가 조금 헐렁해지기를 바란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모르거나 위험한 것들을 차단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고 하루에 열두번 변하는 남편을 남처럼 바라보고 불쌍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알려주고 싶지만 나 역시 타인이니 스스로 편안해지기를 바랄 수 밖에
타인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타인의 시선도 조금씩 교정해주는 과정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