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 위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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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치료를 하려면

- 가족의 환경을 이해할 것

- 가족의 장점, 미덕 회복력의 신호 등을 알아차릴 것

-가족중 누가 변화를 원하는가

- 발달에 따른 변화에 대해 알기 (연령에 따를 특징 변화 등을 설명할 수 있을 것)

- 가족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가?

(강한 사람, 희생양, 문제가 있는 사람, 악역, 농담을 하는 사람등 그 역할이 정해져 있나)

가족이 세상에 숨기는 비밀

가족들이 서로 숨기는 비밀

가족들이 자신에게 숨기는 비밀 이 있는가?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비밀은 권력에 관한 문제이다. 고립시키고 파괴하고 신뢰를 깬다.

부모의 권위를 지지할 것 (무조건 자상한 것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쨋는 것이다.)

미안해요라는 말을 자주 할 것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유용한 표현이다.

가족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알아차리고 표현하게 할 것.

 

 

비유들

손가락이 베이면 피가 나죠. 당신은 피를 싫어할 수 있지만 피가 나는 것은 건강한 신체가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전과목에서 a를 받고도 낙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입니다.

우리는 버팀으로서 버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엄청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정 연령이 지나고 나면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오만이다. 과거 복잡한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과거를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기를 권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자신만의 슬픔이 있따. 그러다고 해서 그 슬픔이 자신의 의무로부터 달아날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늘 많은 주제들을 건드렸습니다. 결과는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 안지만 우리는 이제 앞으로 나아갔고 이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 상담을 마무리하며 상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이 시간이 나의 삶에서 필요했는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돌아가서 문득 어떤 말이 자꾸 생각날 수도 있다. 마무리는 중요하다.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상처입은 마음을 안고서 세상을 살아가는 뻐을 배워야 합니다. - 힘이 들어도 삶은 계속된다. 시간은 우리가 넘어졌다고 멈춰서 기다려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그냥 털고 다시 시작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나 역시 모를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별 일 아니구나 라고 경험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더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참담한 문제라도 게다가 최악의 상황이 된다하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다른 누구와 바꾸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문제 그 자체입니다. 문제를잃는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입니다. (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오랫동안 보아온 내 부모의 삶이 그다지 닮고싶지 않습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고 아빠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배우자를 만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 우리 부모같은 사람만 피하면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배우자를 고를 때 신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나의 배우자는 나의 부모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이어질수록 나는 배우자에게서 내 부모를 봅니다. 피하고 싶었던 그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우리 부모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사실 잘 모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안에서는 안보일 수 있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말을 해도 바꾸지 않는 바로 그 모습은 바로 내 부모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혹은 내 부모구나 하고 내가 먼저 알아타릴 수 있고 후회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 나의 상대가 나의 부모모습일까요? 그렇다면 처음 나는 왜 몰랐을까요? 사실 배우자와 부모는 다릅니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다르지 않습니다. 흔히 한 가정에 여섯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는 말처럼 각각의 부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기질이나 습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 등이 고스란히 나옵니다. 좋을 때는 내가 그런 모습을 억제할 수 있고 조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갈등상황이거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너무 힘들 때 나는 가장 오랫동안 보고 겪어서 익숙한 그 행동과 말을 합니다.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익숙하게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늘 그모양 그꼴이지 언제 정신차릴래? 등등 나도 모르게 비슷한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상대가 화가 났다싶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되려 내가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렇게 내 부모처럼 행동하면 그에 대한 대응 역시 비슷합니다.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반응은 크게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로 인해 내 배우자가 내 부모처럼 반응하고 그 반응을 보면서 나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나 고민에 빠집니다. 바뀌겠다고 하면서도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바뀌지 않았는데 상대가 먼저 바뀔리는 없지요. 내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서 내가 바뀌지 않으면 비슷한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워하지만 가장 익숙한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느끼는 불안보다 아는 근심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친근함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 실패가 두려워서 새로운 도전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합니다. 아니까 대처할 수 있고 나는 잘 할 수 있다는 오만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는 것에 다시 넘어집니다. 알고 있지만 나 역시 내가 아는 방식만 사용하니까요. 아는 상대에게 내가 다르게 반응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텐데 나 역시 같은 방식을 씁니다. 그것만 알아서 그것이 가장 옳다고 믿어서입니다. 결국 사람이 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변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하는 건 아니면 좋겠습니다.

 

안전한 황무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이 이 자내 가운데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해와 용납의 차이 이해할 수 있지만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상담자의 가치관이 일에 영향을 준다 가치중립적일 수 없고 가지 충립이 되어서도 안된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윤리적일 수 있다.

연민은 냉철한 머리와 함께 할 때 유용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스토리를 찾고 바꾸는 일 내 삶의 이야기 거리를 모으고 긍정적으로 변경해 볼 것 모든 스토리는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에 따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상담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본다는 건 아니다. 내가 준비해야할 것들은 철저하게 준비해야한다.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것들과 조건들을 완벽하게 숙지한다.

사람의 일들이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을 할 때도 있지만 일단 매뉴얼을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상황에서 적용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론을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이론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와 잘 맞는 이론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인간중심과 실존주의 상담을 좋아한다. 잘하는 건 아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문제는 문제를 가진 사람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문제는 해결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함께 가야할 동반자이기도 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나는 완전무결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실수하면 만회하면 된다. 삶은 길지만 유한하기에 내 실수나 실패에 집중하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냥 넘어가는 것도 삶에서는 한 방법이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냥 지나갔다. 그 때문에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는 지금에 있다. 지금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고칠 수 있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나는 나도 못고치고 변화시키기 어렵다. 하물며 타인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리고 그 타인의 변화가 무엇인지 내가 재대로 알 수 있을까

그저 내가 정해놓은 문제와 정상 안에서 내담자가 문제에서 정상에 가까워지면 변했다고 좋아졌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늘 맥락안에 있고 상황은 모두가 다르다.

변한다. 좋아졌다라는 건 결국 개개인마다 다르다.

그래서 편안해기질 원할 뿐이고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거나 힘들게 하는 일만 아니면 된다고 믿는다. 나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아서 다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계속 나아갈 뿐이라면 괜찮다고 믿는다.

이 책은 상담에 임하는 내 어꺠의 짐을 가볍게 한다. 짐을 없애지는 않았다.

그냥 짐을 견딜만하게 해줬다.

공감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도 내려놓기로 한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상담자가 모든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 상다자도 사람이어서 자신의 가치관이 있고 편견도 있다. 그걸 인정하고 상대를 만날 뿐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반문하는 것

질문은 내가 알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 흥미는 상대를 좀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편안하게 자기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문제가 있따고 누구나 상담자를 찾지 않는다.

상담자를 찾아와 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역시 대단한 용기다.

나를 마주하겠다고 그 순간 용기를 낸 것이다.

그것은 시작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다시 마음이 닫히고 이건 아니야 라는 마음으로 도망치거나 돌아가기도 하겠지만 또 언젠가 다시 비슷하게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지 않을까

한 번 해 봤으니까.

나 역시 여러번 실수하고 실패하는 상담을 할 것이고

내가 만족한 상담이 내담자도 같은 마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잘 되면 내담자가 개떡같은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혼자 잘 헤쳐나갔기 때문이다.

잘 못 되었다면 우린 너무 달랐거나 내담자에게 여유가 없었다거나 또 여려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지나가는 누구든 막지도 잡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오래 머물 수 있게 열심히 준비는 해야겠지

가만 있다는 것과 머물러 있는 건 다를 것이다.

 

좋은 슈퍼비전은 이런 것이거다.

내가 하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되는 일

작가의 대상 수잔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꽤 좋은 상담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이런 슈퍼바이저를 알고 있다니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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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 위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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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좋은 선생님께 슈퍼비전을 받은 기분 상담에 있어 나의 고민이 오랜 경험의 그와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 자신감이 생긴다. 따뜻하게 말하지만 명확하게 지적하고 짚어준다. 상담은 그저 공감이 아니라 내가 내 문제를 마주하게 하는 것.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지금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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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장 아름다운 건 꽃이 피기 전까지. 그러니까 간절하게 그 꽃을 기다릴 때다. 꽃은 피고 나면 그뿐 그 순간부터 봄은 덧없이 지나갈 뿐이다.

(모든 것은 지난 후에야 비로소 보인다.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은 지나간 후다.

밤에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 비로소 그때 그 순간 적확한 단어가 떠오르고 내가 대응했어야 할 말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모든 것들은 지난 후에 뚜렷하게 보인다.

어쩌면 몰라서 아름다웠고 몰라서 편안했을 수 있다.

알고 나면 후회만 남기도 하겠지만 이젠 되었다 라는 체념과 비슷한 편안함도 있다. )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행합일이라고 아는 바를 행하면 사람은 바뀐다. 그런데 아는 걸 행동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젠 책을 더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 머릿곳의 그 아는 것들은 나를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지행합일이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라는 뜻인데 이 말은 행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것이 무척 많닥 했지만 그 중에 행하는 것이 거의 없다면 이 말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된다.

행동하지 않은 한 아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무지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 지행합일을 무서운 말이다. 특히 많이 읽고 배운 사람에게는...

 

요즘 사람은 행복이라면 무조건 최고로 여기고 조금이라도 힘들면 위안이 되는 목소리를 찾아 티비를 틀고 인터넷을 헤맨다. 마치 자신의 삶에서 고통과 슬품과 죽음이 조금이라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듯이. 당의를 입힌 이런 일상 속에서 죽음을 대면한 옛사람들이 내던 소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과 고통과 아픔을 계속 피할 수 있을까?

 

 

기쁨이란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아는 순간 바로 질투하고 시기할 수 있지만 고통은 단 하나의 감각적인 정보만 결여되어도 타인들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다. 그르므로 고독이란 우리가 고통을 연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재앙은 우리를 가장 외롭고 연약한 사람으로 만든다.

언제나 이 연대 불가능한 고통앞에서 위로 역시 불가능하다.

 

(고통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내 고통을 누구에게 설명할 단어들을 찾을 수 없다.

설명되지 않은 고통을 나는 알지 못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모릅니다. 라는 마음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모릅니다 그러니 설명해주세요. 천천히. 나는 기다리겠습니다.

모르니까 내가 알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틀렸다면 말해 주세요.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정말 나는 너를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나도 잘 모른다. )

 

독서는 혼자서 할 수 밖에 없는데 정작 책을 읽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 바뀌기란 참 어렵다고 하지만 그건 자신의 의도대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사람이 바뀌는 일은 인생에서 자주 일어난다. 그건 의도하지 않은 변화이다.

 

지는 꽃은 한 때 피어난 꽃이었다.

 

어떤 순간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이제 청춘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는 이 순간 다시 읽은 <청춘의 문장들>

지금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그 시간에는 그대로 옳았고 지금은 지금대로 옳다.

틀린 건 없다.

다만 나도 달라졌다.

조금 더 성장한 면도 있고 조금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있으며

이제는 기대하지 않는 것들도 늘어간다.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것

내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인정하게 된 것

좋지도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 그러면서 그렇지 않으면 어쩌겠나 싶은 마음들

청춘은 머무리지 않고 흘러간다.

그러자 지금 이순간만 살고 있는 나는 지금 이순간이 청춘이라 믿는다.

여전히 흔들리고 꿈을 꾸고 좌절하고 앙ㄴ달하는 것

지금 이순간 나는 청춘이다.

청춘은 현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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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가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나는 그저 읽은 사람일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칡는다.

나는 달라지고 싶어서 책을 읽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읽으며 나는 또 하루를 버텨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다.

삶응ㄹ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다.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는 나를 늘 힘들게 했다.

다들 정말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의심했다.

나는 지금 내일 무얼할지도 정하기 힘든데 내 시간을 모두 바쳐 달려가야하는 목표를 정하는 것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느렸고 무계획했고 부정적이었고 그냥 하루하루가 즐겁거나 괴롭거나 슬퍼거나 불안했다. 그럴 때 책을 읽었다. 이야기 뒤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생각할 수 있었고 위로받을 수 있었고 공감받을 수 있었다.

내가 주인공에게 화자에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만큼 나는 세상에 내 자리를 조금씩 넓혀가는 기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책을 덮고 세상으로 나오면 내 범위는 여전히 좁았고 세상은 언제나 저만치 앞에 있었고 모두가 다들 할 일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나는 여전히 긴긴 시간을 혼자 채워야 하거나 흘려보내야만 했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까 싶었지만 나는 그대로 나이먹은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다만 알게 된 것은 어른이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

그냥 받아들이고 통과해야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망치고 모른 척하고 회피해도 결국 내가 해야할 몫은 내 앞에 온다.

그냥 받아들이고 상처받고 우울해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또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야 하는 것 그게 어른이라고 외롭지만 조금은 강해졌구나 약간의 근육이 생겨서 조금 덜 삐그덕대겠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그게 다 책에서 배운 것이다.

책은 내가 많은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 대부분이 내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몰랐다면 더 단순하게 더 씩씩하게 내가 잘났다고 믿으며 살았을텐데

읽을수록 나는 부끄럽고 미안하고 불안하고 초라해졌다.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넓었고 나는 표현그대로 한 점에 불과했다.

읽을수록 작아지는 나.

그러나 나는 그런 내가 싫지 않았다.

작은 내가. 작다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내가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생각한다.

물론 가끔 부자가 되고 싶고 권력을 갖고 싶고 명예와 지식을 가지고 뽐내고 잘난척 하고 싶은 욕구에 이불킥할만한 행동들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나를 이제는 받아들인다.

책이 그랬다.

그냥 너는 너라고...

책은 책일 뿐이고 나는 나 일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친해졌고 서로 인정하고 있다.

읽기가 주는 즐거움은 어쩌면 무용하다.

후기자본주의 세계화 시대에 무용하고 하찮은 것들이다

쉽고 빠르게 누구보다 앞서 나가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지금 현실에서

느리게 읽고 쓰고 기록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머물뿐인데 뒤로 자꾸 밀려난다.

조금 읽고 많이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래서 많이 말하고 더 뽐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읽을수록 작아진다.

이렇게 읽다가 내가 작아지고 작아져서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그것도 괜챃다.

나는 작아져서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있다.

내가 안다. 내가 있음을. 내가 읽었음을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읽다보니 그것으로 괜찮다.

 

 

그런데 이탈리아 철학자 바르노에 따르면 하이데거가의 이 구분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상없는 불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세계까 불확실하고 미결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우리가 이 기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뜩정 대상을 위험한 것으로 지정해서 모호한 고통을 확실한 고통으로 바꿔버린다. 명확한 경계의 대상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제기하면 세계는 다시 확실하고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범죄를 저지를까 두려워 저 동양인은 걸어다니는 바이러스야. 이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하고 이들만 사라지면 사회가 안전하고 건강해질거라는 감정적 방어책을 만들어내면서 타인에 대한 잔혹한 반응을 정당화하게 된다.

(모호한 것은 두렵다. 그래서 두려운 대상을 명확하게 한다. 친구를 잘못사귀어서 그래. 저 사람이 문제라서 내가 화를 낼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왜 밖에 놀러다니고 그런거야? 단순한 이유일수록 즉각적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들이 안전하다. 그래서 문제야 그 명확한 문제만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지낼 수 있어. 그렇게 우리는 암묵적으로 나만 아니면 되는 대상을 미워하고 상황을 혐호한다.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언제나 해결되지 못한 여전한 문제다. 두껑을 덮는다고 오물이 사라진 것이 아닌데...)

 

안나 이호바토바는 말년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적었다. ; 나는 시작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말은 이렇게 읽힌다. ’나는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았다.‘ 지금 이런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집이 다시 출간되기를...

(하루를 무감하게 살아내는 것, 반복같은 하루를 그래도 살아내고 먹고 자고 생각하고 쓰고 일하고 귀가하고 다시 고단한 몸을 눞히는 일을 내일도 모래도 지치지 않고 해내는 일 때로는 그 일이 혁명보다 더 위대하다.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 모르는 타인들 그리고 당신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반복하면서 멈추지 않은 우리가 위대하다.)

 

실비아 플러스의 딸이 이야기 한다.

어머니가 실존했고 자신의 능력을 다해 살았고 행복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고 황홀하기도 했다는 사실, 그리고 나와 남동생을 낳았다는 사실이 축하받기를 원했다. 나는 어머니가 놀라운 작품활동을 했으며 평생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붙은 우울증과 싸우기 위해 용감하게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을 스캔들로 소비하는 대신 그녀가 남긴 작품 속의 치열한 삶을 보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다.

(피해자는 늘 24시간 피해자가 아니다.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욕심도 내는 사람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일상의 한 순간 험한 경험을 했고 상처를 받았고 삶이 잠시 중단되었겠지만 여전히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다시 영웅이 된다. 얼마나 괜찮았는지 멋졌는지 영웅이 되거나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떤 배우를 나는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가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고 웃고 울고 설레었지만 너 그 배우를 좋아하니? 라고 묻는다면 별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원히 반짝반짝 빛날 별일거라 믿었는데 너무 얼굴이 알려지고 사생활이 노출되는 직업탓에 모두가 그의 상처를 알고 치부를 알게 되었고 그는 극단적인 선책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두가 분노하며 그녀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늘 그대로 그 사람이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이 달라졌다. 나는 여전히 그를 좋아햐냐고 물어보면 글쎼 라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그가 나온 것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아낀다. 그뿐이다. 그는 자기 삶을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남아있다. 그냥 그 뿐이다. 먼저 간 내친구를 남은 친구들은 좋은 면만 기억한다. 나도 그 친구의 나쁜 기억은 없다. 그러나 그가 성자가 아니라는 건 안다. 인간적인 결함도 있고 때로 이기적인 판단을 하기도 했고 자기 시각에서 세상을 판단하기도 했고 그 판단이 누구에게는 상처였을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좋은 친구였으나 대단히 멋진 사람은 아니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는 나도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친구들 중 하나.. 내가 사랑했던 가족중 하나.

특별안 단하나의 누군가가 아니라 평범한 여럿중 하나지만 가끔 그립다고.. 그렇다. )

 

아리엘 도르프만

그는 누군가의 실제하는 고통을 맬로드라마로 가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정확히 동시통역하는 것이 시의 임무라고 믿는다. 그는 약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강한 어머니의 아이로 남지 않기를 선택한다. 그것은 그의 고백대로 세상의 고통에 대해 고작 전문가란 이유로 두둑이 보수 받고 동시통역이나 해주는 단순한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더 강한 자와 어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쓰고 있는 한 사람 덕분에 평범한 이들의 비극이 온세상에 알려진다.

(내가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나는 늘 다짐한다. 나는 내가 아는만큼 상대를 본다. 내가 아는 상대가 전부가 아니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판단하지 말자. )

 

조앤 디디온

디디온은 기사에 글쓴이의 주관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의 에세이 <엘리시아의 대안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객관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하지만 글쓴이가 가진 편향성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모든 편향에서 자유로운 척하며 쓴 글에는 대안 매체에 아직 전염되지 않은 가시과 허위가 가득할 수 밖에 없다.“

(역사에서 ~ 만약 이라는 질문은 불필요하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살피고 연구한다. 만약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일어난 사건이 상황이 누가 어떤 위치에서 보고 기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는 어쩔 수 없는 승작의 기록이다.

그리고 보통의 우리도 부지런히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 여기 이런 삶도 있고 이런 생각도 있다고 . 역사는 결국 기록하는 자의 생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 시간 그 시대에 누가 권력이 있었는지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누가 썼는가에 따라 독자는 다르게 읽는다. 냉정한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속되고 속되다. 주관적임을 인정하자. 내 의사 편향성을 인정하고 이런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이렇게 물어볼 수 밖에 없다. )

 

단어들을 가지지 못할 때 청년들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소박하고 반지성주의적인 저항을 일삼게 된다. 베트남 전쟁과 소비의 상징인 비닐ㄹ oq에 반대해 마약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많은 단어가 필요한 생각은 잘난 척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그 점을 무척 염려했다. ‘이 아이들이 ㅇ창하게 구사하는 유일한 어휘는 이사회의 진부한 표현들이다. 사실 나는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언어의 통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몸 바쳐 믿고 있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꼐 살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 결손가정출신이라는 표현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 그들이 결손가정이라는 단어로 자기 상황을 설명하는 순간 엄마 아빠 나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족은 결핌이자 비정상이라는 기성의 관점에 자신들도 모르게 동의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시지프 신화는 결국 죽을 운명인데도 힘을 내서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삶자체가 부조리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부조리하다고 해서 다 비극적인 것은 아니다. 시지프는 아무 생각없이 반복되는 일을 해나갈 수도 있다. 자기 상황을 제대로 자각하지 않으면 비극이랄 게 없다.비극은 오로지 그의 의식이 깨어 있을 때 시작된다. 다시 저 아래의 바위를 향해 정상에서 내려오는 동안 시지프는 자신의 바참함과 무력함을 깨닫고 반항적인 태도로 그 고통을 응시함으로서 비극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고 카뮈에 따르면 비극은 피해야 할 게 아니라 자각하고 응수해야 할 운명이다. 그리하여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앤카슨 우리가 애도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제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이 살았던 삶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며 그와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이별하는 것

(애도에는 기간을 둘 수 없다. 천천히 자기 방식으로 이별하는 수 밖에 없고

애둘러 내 방식으로 위로나 배려를 하지 않은 것 지금 여기 없는 이의 이야기에 내가 먼저 마음을 베이지 않는 것 되려 먼저 조심하지 말 것. 그냥 피가 첲철 흘릴만큼 베이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톨스토이

다른 존재들을 구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부터 발끝ᄁᆞ지 거창하게 새로운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늘 하던 대로 그러나 에너지와 방향을 조금씩 바꿔서 매일매일 움직이면 될 뿐 우리의 사랑이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듯 구원도 혁명도 그럴 것이다.

 

이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야기 할 것만 있다.

 

읽기는 즐겁다.

그리고 이야기도 때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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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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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서 에세이는  또 다른 독서로 나를 이끈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이 많아진다. 몰랐던 작가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외국어를 배울까 생각을 한다. 내 세상이 넓어졌다.

한권 한권 책이 흥미롭다.

책을 읽다 멈추고 정보를 찾는다.

또 다른 작품은 뭐가 있을까? 어떤 작품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작가가 이런 책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나는 정말 작은 세계에서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구나

폴란드의 작가들이 , 칠레의 작가가 

가까운 일본에 이렇게 괜찮은 시인이 있었는지 몰랐다.

몰랐던 게 부끄럽지만 이제 아니까 다행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한다

그 고민의 시작점이 제각각 자기가 서 있는 지점에서 시작되어서 

그 과정이 다를 뿐 어쩌면 우리는 이 세계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우리의 범위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인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쓰고 남긴다. 그리고 읽는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남겨놓는다는 것,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리는 것이고 동시에 또다른 세계를 소개하는 것


읽기 잘 했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그가 분명 내 책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그리고, 희망 없이도 포기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철학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책이 포기하지 않는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혹은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인간은 실패하려고 태어난 ‘훼손된 피조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뮈 덕분에, 우리는 어려운 싸움을 계속이어가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대신 위대한 용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은 승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위해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는것도 알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대낮에는 별들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가치들을 대낮처럼 환한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별도 발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결과로 생겨나는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제 안에서 춤추는 별을 찾게 된다. 


설명할 때만, 그리고 설명해준 것만 아는 사람은 설명자에 예속된 존재이다. 혼자서 자신의 고유한 방식과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배울 수 있을 때 그는 자유로워질수 있다. 좋은 교사는 유식한 자가 아니라 해방된 자를 만드는 교사이다


그는 학생이 주의를 기울여 알아낸 것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봐주고 학생의말에 경청하기 위해서 곁에 머물 뿐이다. 랑시에르는 이것을예술가의 ‘해방하는 수업‘이라고 부른다. 평등이 필요한 것은 시인과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독자들이 제삼자의설명 없이도 작품에 공감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시선으로 그것을 읽어주길 기대한다. 시인 자신이 누군가의 설명 없이사물과 직접 만나며 배운 것을 작품으로 썼듯이 말이다


관습이나 종교에 따라서든, 혹은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든, 우리가 애도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제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이 살았던 삶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며 그와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작별하는 것

사회적 제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핵심이전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패도 사진도 없는 분향소에서 우리는 고인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채 누군지도 모르는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세상을떠난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바로 그 제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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