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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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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lla Fantasia], [Gee], [심장이 없어]의 공통점은?  

 

   

출처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10011057473&sec_id=540101&pt=nv  


많은 시청자들에게 합창곡의 아름다운 선율과 찐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던 <남자의 자격 - 남자 그리고 하모니>가 2개월동안의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이들이 보여준 하모니는 감동 그리고 아름다운 그 자체였다. 각기 다른 직업과 성격을 가진 32명의 목소리로 재탄생된  ‘Nella Fantasia'는 급 결성 초짜 합창단에게 장려상이라는 뜻밖의 쾌거도 안겨주었다. 마지막 방송이 텔레비전으로 전파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32명의 합창단원들은 아직도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계속될까봐 두렵다고 하였다. 이들뿐만 그런 거 아니다. 많은 시청자들도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하모니를 잊지 않았다. 이틀 전, 라디오를 통해서 들은 건데 Nella Fantasia의 멜로디를 잊지 못해서 이 노래를 신청하는 청취자도 있었다. 사실 필자는 <남자의 자격 - 하모니 편>을 보기 전에는 Nella Fantasia라는 노래가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에는 귀가 심심하면 MP3에 들어있는 Nella Fantasia를 듣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하모니가 남긴 Nella Fantasia 후유증이라고 해야 되나..... 이전에 합창곡에 관심도 없었는데 <남격> 방송 때문인지 합창대회에 참가했던 다른 합창단이 불렀던 노래들도 자주 듣곤 한다. Nella Fantasia 다음으로 많이 듣는 게 실버합창단이 불렀던 ’그대 있는 곳까지(Eres tu)' 라는 노래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대 있는 곳까지’는 멜로디의 선율이 애잔하면서도 가사 내용이 좀 슬퍼서 좋다)  

 

 

특정 음악을 계속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음악의 힘은 Nella Fantasia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에 전국을 '소시' 열풍으로 만든 소녀시대의 ‘Gee'는 어린 10대부터 젊은 층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대중가요를 잘 듣지 않는 4, 50대들도 어린 소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소녀시대의 율동이 노래가 인기를 끌 수 있는 데 한 몫 했지만 결정적으로 이 음악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노래 속에서 반복되는 후렴구 멜로디와 가사인 후크(Hook)의 영향이 컸다. 대중들은 언제나 들어도 귀를 즐겁게 만드는 노래 속 후크 부분 때문에 ’Gee'를 많이 듣게 되었다. 

 

  

 

소녀시대의 Gee 이외에도 반복되는 후렴구와 가사로 이루어진 후크송(Hook Song)이 대중가요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후크송이 대중들의 귀만 사로잡는 것이 아니다. 에이트(8ight)의 ‘심장이 없어’는 작년에 모 인맥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뽑은 최고의 인기곡으로 뽑힐 정도로 반복되는 애절한 후렴구와 가사로 이루어진 발라드 곡이다. 노래의 강렬한 중독성 때문에 박진영이 에이트의 노래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24시간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특정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이유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특정 노래를 계속 듣고 싶어 하며 또 반복되면서 듣는 걸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의 보이지 않는 마력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는 음악이 뇌의 반응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음악과 뇌의 상관성에 대한 신비스러운 힘은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올리버 색스는 이와 관련된 여러 연구 결과들의 예를 들면서 음악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뇌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음악을 지각하고 기억할 수 있는 정밀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로돌포 이나스라는 뇌 연구 전문가는 “인간은 느닷없이 머릿속에서 노래가 들리는 일들이 가끔씩 일어난다”고 말하였다. (p 69 인용)

또 다른 어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음악을 상상하면 뇌 속의 운동 피질과 청각 피질이 음악을 듣는 것보다 더 활발하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음악적 심상 능력이 향상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음악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도 뇌 속에는 특정 음악에 대한 멜로디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남아있으며 또 듣고 싶어지는 욕구가 발현된다. 이를 비자발적 음악 심상이라고 말한다. 특정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게 만드는 마음의 상태이다. 특히 음악의 반복적 멜로디에 노출될수록 비자발적 음악 심상이 쉽게 생성된다. 


 

너무 지나치면 독? 
 

그러나 특정 음악에 대한 기억이 강한 것도 그렇게 좋은 현상은 아니다. 올리버 색스는 후크송의 영향을 뇌벌레(Brainworm)라는 재미있는 단어로 규정하고 있다. 애벌레가 사과 속을 파먹으면서 그 안에서 자라듯이 일명 ‘뇌벌레’라고 부르는 음악의 특정 소절이 인간의 뇌 속에 깊이 각인시키게 된다. 벌레가 사과 속살을 파먹으면 이 사과는 먹을 수가 없게 된다. 저자는 뇌벌레가 특정한 신경 질환에 걸린 사람에게는 큰 타격을 준다고 말한다. 몇 시간동안 머릿속에 특정 노래의 구절이 들려오는 환청이 맴도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심할 경우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에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특정 음악에 사로잡는 현상을 심각한 정신적 증상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 역시 음악 애호가인 만큼 본인도 특정 음악을 좋아해서 자주 듣는다고 실토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히 발생하는 현대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이런 현상을 겪는 요인으로는 반복되는 멜로디가 주를 이루는 음악의 경향과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후크송이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끊임없이 울려대는 음악 폭력에 포위된 상태’(p 80 인용)라고 비꼬기도 한다. 너무 특정 음악에만 듣게 된다면 청력이 상실될 수 있으며 뇌벌레 환청이라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신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음악은 위대하다

   이제는 정말이지 그들이 아름답고 즐거운 바이올린 연주를 듣겠거니 했다가  

  실망한 듯, 연주 전체가 지겨워졌는데 다만 예의에서 그들의 안식을 방해하게끔  

  내버려두고 있다는 듯한 태도가 완연한 인상이었다 (.....) 그런데도 누이동생은  

  참 아름답게도 연주했다. (중략)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될 수 있으면  

  어쩌면 누이와 눈길이 만날 수 있도록, 머리를 바닥에 바싹 붙였다. 음악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는데 그가 한 마리 동물이란 말인가? 마치 그리워하던, 미지(未知)의  

  양식에 이르는 길이 그에게 나타난 것만 같았다.

  - 『변신』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역, 민음사, p 66 -   

 

 

한순간에 인간에서 벌레로 변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고민하던 그레고르는 누이동생의 음악을 듣고 자신에게 인간의 모습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기뻐한다. 음악 감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  이처럼 음악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힘은 대단하다, 아니 위대하다. 청각을 상실함으로써 이미 음악가로써의 인생이 끝난거나 마찬가지였던 베토벤은 머리속으로나마 음악을 듣고 느끼려고 노력한 끝에 초창기 시절의 곡보다 훌륭한 불후의 명곡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잃어버린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서 재발견한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책 제목인 Musicophilia(음악사랑)의 뜻처럼 인간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사랑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유일한 동물일 수도 있겠다. 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음악사랑의 감정이 있었기에 인간이 각종 무형의 소리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음의 소리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수 없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을 듣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이 세상에 음악이 없었다면..... 지금 두 발을 걷고 다니는 고등동물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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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오디세이 - 수학이 즐거워지는 수학 이야기
앤 루니 지음, 문수인 옮김 / 돋을새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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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좋아하면서도 ‘수학’은 싫어하는 현대인들    


몇 주 전에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지난해보다 3단계나 떨어진 22위라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3년 연속 하락세란다.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를 평가하고 발표한 곳이 세계경제포럼(WEF)이다. 경쟁력 순위가 오르고 내리는 것을 정하는 것은 외국에서의 국내 정부와 기업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부 언론들은 다른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에서는 우리나라의 순위를 후하게 준 점을 언급하여 WEF의 평가 기준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며칠 전에는 한 일간지에서 주최, 조사한 국내 대학평가 순위 명단이 공개되었다. 언론사는 이번 국내 대학평가 자료가 국내 대학들이 더욱 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참고 자료라고 밝혔다. 대학평가 순위 상위권에는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인지도가 높은 대학들의 이름이 올려져 있다. 그러나 대학평가 순위 공개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평가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한 덧글이 주를 이루었다. 그 다음에는 이런 순위자료를 가지고 대학들이 경쟁력을 갖추는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네티즌들은 특정 학교의 순위가 낮음에 대해서 비난하기도 하였으며 순위가 높은 라이벌 학교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OO대는 좋은 학교인데 그보다 못한 XX대보다 순위가 낮나?” 라는 식의 설전의 덧글이 오가고 있다. 학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학부생들의 전쟁(?)으로 인해 기사 덧글 공간은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었다.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숫자와 수치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단 이런 사례들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미들은 오늘의 주식 수치가 하락하느냐 상승하느냐에 따라 울고 웃는다. 한국 영화배우들은 영화 관객 동원 수에 따라서 흥행 배우 또는 쪽박 배우로 평가받기도 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를 펼치는 연기파 배우들도 예전에 출연했던 영화들의 좋지 않은 흥행 성적표 때문에 ‘쪽박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기도 한다.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만 숫자에 집착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8’ 이라는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기고 있어서 ‘8’이라는 숫자뿐만 아니라 ‘8’의 발음과 비슷한 한자들도 길조로 여기고 있다. 중국인들의 이런 각별한 숫자 사랑은 중국 당국에서는 개인이 직접 차량번호를 고를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정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숫자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싫어한다. 수학은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에 대한 혐오는 이공계 교육 기피 현상으로 이어진다. 사실 수학은 다른 학문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과학에서 수치가 있고 계산이 필요하다. 경제학도 그렇다. 우리 실생활도 되돌아보면 수학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집을 마련하기 위한 저축을 들기 전에 이자 같은 각종 계산들을 따져봐야 한다. 주부들은 가계부를 작성하면서 최대 이익의 소비 결정을 위해 손익을 따진다. 결국,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수학이라는 학문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과 권력자들의 특수 문자였던 숫자

수학과 인류의 생활의 만남은 인류 문명이 태동하고 있었던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문명의 진보의 역사를 보면 수학은 빠지지 않았으며 수학이 없었으면 문명의 진보도 없었다. 그러나 숫자도 지금처럼 모든 인류가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자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관문자’라는 일종의 숫자 체계를 고안하였는데 1에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언뜻 암호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1,2,3,..... 으로 사용하고 있는 숫자와 비교하면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이런 숫자를 어떻게 썼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적지 않은 숫자들을 외우고 사용하는데 헷갈렸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숫자를 어렵게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다. 숫자는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자들만의 특별한 문자였기 때문이다. ‘신관문자’라는 단어 자체에서도 권력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풍기고 있다. 신관(神官)은 신을 받들어 모시는 일을 하는 관리이다. 이집트에서 신이란 통치자 파라오(Pharaoh)를 말한다. 즉, 파라오와 밑의 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관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 문자가 숫자인 것이다. 조선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전에 한자가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들만의 언어로 사용한 점과 유사하다. 숫자의 권력화는 이집트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인, 시리아인, 초기 아라비아인들의 숫자도 암호 수준이다. 권력자 또는 수학을 연구하는 수학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숫자였다. 

 

 

 

 

 

 

 

 

 

 

 

 

 

 

역사가 변하면서 숫자가 상권(商權)에 사용하면서 지금과 같은 보편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숫자의 권력화는 죽지도 않고 숫자의 신성화로 진화하였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숫자를 신성화하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유럽의 권력이 왕에서 종교로 이동함으로써 이제는 교황이 직접 특정 숫자에 신성을 부여하였다. 그래서 기독교가 지배를 하고 있었던 중세 유럽에는 숫자에 대한 집착이 뚜렷하다. 특정 숫자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서양에서 13과 666을 불길한 숫자로 여기고 있는 것도 기독교가 만들어낸 문자 인식의 산물이다. 13이 불길한 숫자가 된 유래에 관한 설은 다양하나 예수를 팔아버린 유다가 예수의 13번째 제자라서 13이 불길한 숫자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666은 요한계시록에서 적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악마의 숫자로 규정하고 있다. 중세 유럽인들이 얼마나 666을 싫어했으면 1에서 36까지의 숫자를 모두 더하여 666이 되는 마방진을 소유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기도 했다.

모든 국가들이 공통 단위로 사용하기 위한 미터법이 1790년 프랑스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미터법 도입이 되기까지 120년이라는 세월이 있었다. 하필 프랑스 혁명과 스페인과의 전쟁이 발발하여 미터법 도입은 여러 번 차질을 빚었다. 미터법 도입을 위해서 측정을 하고 있던 프랑스 학자는 시민들에게 왕당파라는 오해로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어쩌면 시민들의 눈에는 숫자와 관련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권력자인 왕당파로 보였을 것이다.   

 

 

   

고맙다, 수학아  

 



 

 

 

 

 

 

 

 

 

 

 

 출처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33813&docid=85590&dir_id=02040703

  

 

막강했던 교황의 힘은 쇠퇴하고 중세의 그늘에서 벗어난 유럽 문명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숫자와 수학은 실용적인 학문으로 독립하였다. 피렌체의 건축가 브루넬레스코는 그 유명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완성하였는데 기하학에 기초한 원근법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유클리드가 만든 기하학 덕분에 원근법이 탄생하여 르네상스 예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어린 시절, 세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 계산기를 발명하였다. 비록 수동으로 움직이는 단순 계산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계였지만 수를 쉽게 세면서 계산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파스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라이프니츠도 계산기를 고안하였으며 찰스 배비지는 지금의 컴퓨터의 프로그래밍과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해석기관을 만들었다. 컴퓨터의 역사에서 파스칼의 업적은 컴퓨터의 시초로 여기고 있다. 파스칼이 없었다면 지금의 컴퓨터가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문명의 역사 속에서 방황해야만 했던 수학 
 

수학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숫자 하나로 인류의 감정을 좌지우지하고 실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편리한 물건들이 이 세상에 나오게 만들었다. 책 제목처럼 20여년 동안 바다를 방황하다가 페넬로페가 있는 고향에 돌아왔듯이 수학이 있는 문명도 수천 년간 모든 수학자들의 노고 덕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에 특권층들을 위한 특수문자였다가 지금은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하는 실용적인 문자로 확장되었다. 확장되기 위한 길고 긴 역사 속에는 수학이 마주한 고난을 넘어서기 위해 수학자와 그 밖에 수학에 매료되었던 인류들은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이들은 단지 수학을 좋아해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도 숫자가 있었듯이 인간은 천성적으로 숫자와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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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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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의 말 못하는 고민    

 

나로호 2차 발사가 실패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가 하늘 위로  

솟아올라갈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이 전남 고흥군에 있는 나로우주센터로 

모여들었다.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은 작년에 있었던 1차 발사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또 다시 10개월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그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우주 연구 발전을 위해서하는  

임무이지만 사실은 임무로 의한 그들만의 고충도 있기 마련이다. 기술자들에게는 연구소 안에서 

의 생활이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연구소에 갇혀서 하나의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수면 시간은  

부족하고,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지게 된다. 

나호로 2차 발사 하루 전에 개발에 참여한 러시아 기술자가 자해 소동을 일으킨 것도 스트레스로
인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몇 차례의 발사 연기 발표도 있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2차 발사가  

시작되었다. 이번만은 한국 국민의 꿈과 희망을 담아 우주로 뻗어나가길 바랬건만, 발사 이후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나로호우주센터로 모인 사람들은 이번 발사도 실패를 하지 아쉬움  

속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 실패에서 제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한 사람은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기술로 구성된 독자적인 우주 발사체를 만들기 위해서 오랜  

세월을 연구에 몸을 바친 사람들이다. 이전에 발사 실패를 많이 겪다보니 이번 나로호 발사 2차  

실패 자체에 대해서 많이 아쉬워하지 않았다. 1년도 채 안 되는 연구 기간은 기술자들에게는
심신을 힘들게 시간이었지만 2차 발사의 성공을 위한 연구 기간치고는 충분치 않은 점에 대해서 

크게 아쉬워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현실에도  

안타까워했다. 3차 발사 날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오늘도 나로우주센터의 기술자들은 

나로호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과학의 나락(那落)호가 되어버린 나로호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 입장에서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과학에 대한 우리나라 대중들의  

인식과 시선일 것이다. 하필이면 나로호 발사 다음날이 남아공 월드컵 개막이라서 나로호 열기는 

금방 식어버렸다. 그러나 만약 나로호가 2차 발사에 성공하였더라면 나로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이어졌을까? 대중들은 나로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길래 굳이 나로호우주센터로
모이는 걸까? 몇 몇 사람들은 나로호가 단순히 우주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주 연구를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 즉, 인공위성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나로호가 우주 어디에 날아가든 말든 대중들은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여부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냄비 근성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차례의 나로호
발사 실패 소식에 대해서 대중들은 기술자들의 실력 부족 탓으로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나로호 하나만을 위해서 고생한 기술자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을 말이다. 우주 개발 기술자 

들의 실력이 곧 우리나라 우주 산업의 현실이라고 결부하기 쉬운데 꼭 기술자들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자들 위에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 계층의 과학 인식 부족에도 문제가 있으며  

그들에게도 발사 실패에 대한 잘못이 있다. 이번 나로호 개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 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있었다. 하지만 과학 육성  

정책은 정부의 집권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펼친 산업화 육성 정책은 우리나라 과학 기술 육성에도 기여를 했으나 단기간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성과주의가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저해시키고 말았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실험에 대한 탐구 정신를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과학 발전은 진전되기는커녕 영영 노벨상을 탈만한 과학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기득권자인 엘리트 계층의 경직된 사고는 과학에 무관심한 대중들을 만들게 되었으며  

지금의 이공계 기피 현상까지 오게 되었다. 나로호의 추락은 나락(那落)으로 빠져버린 우리나라 

과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열악한 현실 속에서 나로호가 발사에 성공하길 바란다는  

것은 꿈도 야무진 일일 뿐이다.   

 

 

 거기 진짜 천문학자 좀 바꿔 봐요

과학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엘리트 계층의 무지함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칼 세이건이 살아있을 당시 미국은 1977년부터 보이저 계획이라는 거대한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이저 계획은 현재 진행형이며 지금도  

보이저  1호와  2호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물들을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 우주 개발 사업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보게 되면 미국의  

대중들도 과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도 꼭 그렇지만  

않은 거 같다.

『코스모스』에는 칼 세이건이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다. 천문대에서 일을  
하고 있던 칼 세이건은 한밤중에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이었는데 천문학자를 바꿔달라고 하였다. 취객이 평생 한 번 갈까 말까 할 천문대에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밤하늘에 알 수 없는 빛이 나는 물체를 봤는데 그것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칼 세이건은 그것이 혜성일 것이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혜성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칼 세이건은 혜성은 밤하늘에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라고 간략하고 상세하게  
대답해줬다. 이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취객이 다시 하는 말.  


 “거기 진짜 천문학자 좀 바꿔 봐요.”    


진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입장에서는 취객의 말에 참으로 황당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에피소드에 대한 칼 세이건의 결(結)이 의미 심장하다. 

  핼리 혜성이 1986년에 다시 나타난다면 정치인들 중에 크게 겁을 먹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질까 자못 궁금하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역, p 180 -

1910년에 핼리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쳐 지나갔을 때만 해도 자신들이 세계의 지배자라고  

자처한 미국과 유럽과 같은 제국의 사람들은 지구 종말의 초래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칼 세이건이 그렇게 궁금해 하던 우스꽝스러운 일은 다행히도 디지털 시대에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몇 몇 사람들은 혜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혜성이라는 자연  

현상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혜성이 얼음 덩어리라는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칼 세이건은  

혜성 에피소드를 통해서 과학을 모르는 대중의 무지함을 비판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 앞에서  

대중들을 바보로 만들어 놓은 정치인들까지 꼬집고 있다.    

 

 

 엘리트 지배계층과 과학의 불편한 만남   
 

칼 세이건은 사람들이 과학을 기피하고 무지하게 된 원인을 고대 역사 속에서 찾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자연계의 질서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탈레스를 비롯한 이오니아 지역의 자연철학자 

들은 우주의 구성요소와 조화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주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은 관측과 실험이라고 주장하였다. 세계 최초로 일식(日蝕)과 피라미드의 길이를 측정한  

탈레스부터 시작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에라토스테네스까지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체계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의 등장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과학이란 신성한 지식이며 소수 집단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험  

자체를 부정했다. 그의 학문은 학파로 발전하게 되면서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제목인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고대 그리스 지배 체제에까지 영역 활동을  

넓힘으로써 과학을 소수 기득권자들만의 지식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부유한 재산을 가졌으며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어쩌면 과학 발전이 한걸음 빨라지지 않을 것이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하는 일을 좋아했을 뿐이지 몸으로 하는 일은 싫어했다.  

과학 실험과 측정은 하나의 육체노동으로 생각했으며 결국 그런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노예라고 알리는 셈이다. 그러니 귀족이 누가 자신보다 낮은 노예의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귀족들은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지 몰라도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고대 중국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과학사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의 상황과  

유사하다. 독자적으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만든 채륜이 등장하였으며 곽수경이라는 사람은  

중국의 천문학 발전에 기여를 했다. 그러나 서양의 문물이 중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과학사에도 잘못된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마테오 리치, 아담 샬을 대표로 하는 크리스트 교  

신부와 수도자들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유클리드 기하학을 소개 

하였다. 중국을 지배하고 있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양의 학문들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검열하려는 중국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사대부들은 서양의 학문으로 인해서 국가 체제가 전복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그들의 권력은  

청나라가 망할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과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그리고 강대국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것도 과학에 무지한 지배계층들 

때문에 말이다.    
  

 

 대중, 과학 기술자 그리고 과학 기술 관리자 

 

나로호 2차 개발하기 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금성을 관측할 수 있는 첫 우주 범선  

‘이카로스’를 하늘에 쏘아 올렸다. 우주 범선은 태양광과 태양풍 등을 이용해 우주를 떠다니는  

미래형 우주선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번 일본의 우주 범선 발사는 세계 최초라는 점과  

일본이 자력으로 개발해 발사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카로스 발사 이전에 일본도 여러 번의 발사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과거에 우주선 발사 실패했을 때 우주선 관련 관리자들은 이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의 의사를 표했으며 원인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은 우주선 발사 실패에 대해서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또 다시 재발사가 되어  

성공하기를 빌었다. 그들의 올바른 자세와 태도가 있었기에 당연히 이번 우주 범선의 발사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코스모스(Cosmos)'의 뜻은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우주  

연구, 즉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대중, 과학 기술자 그리고  

기술 책임을 담당하는 관리자. 이들의 삼각관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은 이웃나라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의 우주 개발의 성공 사례나 다른 나라의 잔치가  

되어버린 연말 노벨상 시상식을 보면서 시샘한다거나 우리나라 과학 산업이 미흡하다고  

한탄하지 말고 우리나라 과학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과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굳이 학창 시절처럼 과학 법칙을  

달달 외울 필요는 없다. 신문이나 TV에 과학 관련 기사나 소식을 통해서 우리나라 과학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과학계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현상과 트렌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대중적으로  

출간한 과학 관련 도서를 읽는 것도 좋다. 칼 세이건의 책뿐만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과학도서가 

많이 출간되어 있다. 과학 기술자들에게는 과학적 성과를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성과에 급급하다보면 제대로 된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다. 기술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위에 있는 관리자들의 임무도 중요하다. 관리자들도 성과에 눈을 멀게 되면  

우리나라 과학의 현 수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관리자들의 성과주의가 밑에 있는  

기술자들을 부추기게 만든다. 결국에는 ‘개미구멍에 공든 탑이 무너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지나치게 성과에 매달려 만든 나로호에 조그마한 결함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실패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철저한 원인 규명에  

노력해야 한다. 과학 발전은 오랜 시간동안 관련 지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축적되어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과학의 수준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준에  

걸맞은 현실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대중, 과학 기술자, 담당 관리자가 코스모스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그 결실로 나로호 발사 성공과 ‘과학 강대국’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코스모스 꽃이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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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대녕 산문집 을 보면, 이 책을 5번이나 읽었다고 하더군요.

장하준도 영문으로 5번 한글로 6번 중딩때 읽었다고.....

저도 이 책 구입은 했는데 앞 부분은 찔금 봤는데 진도를 못 빼고 있어요. 에휴

cyrus 2010-11-06 16:07   좋아요 0 | URL
<코스모스>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명사들이 꼭 읽어봤던
책이었군요. 분량이 두껍고, 예전에 나온 대형판에 선보인
컬러 화보가 아니라서 중간에 지루함도 들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하루에 한 챕터씩 읽어서 완독했는데,,
시간 날 때 이렇게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신화와 과학으로 보는 별자리와 우주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19
뉴턴코리아 편집부 엮음 / 아이뉴턴(뉴턴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그대를 비춰주는 별이 될게 

 ♬ 내 사랑을 꼭 기억해줘요 
    내 눈물을 그댄 듣고 있나요
    기억할께 십년이 지나도 나 약속해
    그대를 잊지 않을께 
 

    그대를 비춰주는 별이 될께 ♬ 

    - 작사. 작곡 오성훈, 노래 디셈버 <별이 될께> 가사 엔딩 부분, 출처: 네이버 뮤직 -  

 

세상을 떠나고 만 연인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가사의 노래이다. 비록 연인은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사랑했던 기억들은 영원히 간직할 것이며 연인을 환하게 비춰주는 별과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낭만적인 내용이다. 노래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별’은 사랑의 상징으로 비유되고  

있다. 7080세대 연인들 사이에서 ‘별을 따다줘’라는 말이 유행했다. 주로 여성들이 이 말을  

사용하는데 사랑하는 남성이 자신을 진짜로 사랑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쓴다.  

비록 밤하늘에 있는 별을 따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말을 들은 남성들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따올 수 있을 듯이 말한다. 그런 반응에 여자들은 

그런 남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즘 우리의 귀에 들려오는 또 다른 노래 가사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지 않게 밤하늘의 별을 따서 주겠다는 내용이 있다. ("밤하늘의 별을" 

-양정승, KCM, Nonoo 노래)  사랑하는 사람에게 별을 따다 바치는 것. 지금도 들어도  

참으로 낭만적인 사랑의 관용어구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말을 사용하게 된다면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다. 별은 사랑 확인의 상징뿐만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서도 사용한다.  

디셈버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비춰주는 별이 되어 수많은 사랑의 기억들이 영원히
빛나게 하고 싶은 것이 연인들의 소망일 것이다.  

 

 

 별의 일생: 암흑성운에서부터 초신성까지

밤하늘의 별은 인간의 수명보다 더 오래 빛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별빛도 유한성을 지니고  

있다. 별의 수명은 100만 년 정도인데 인간이 정해진 수명에 따라 죽는 것처럼 별에게도 죽음이  

있다. 

 

별이 맨 처음 탄생되는 곳은 암흑성운이다. 그곳에서는 중력이 작용하여 우주에 떠도는 가스와  

먼지들을 끌어 모으는데 새로운 아기별이 탄생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수정을 거쳐서 아기가 완성되는 것처럼 암흑성운은 별들의 자궁인 것이다. 탄생한 수천 개  

이상의 아기별들은 불규칙적으로 모여 있게 되는데 이것이 산개성단이다. 어리고 젊은 별은  

처음에는 푸르스름한 색을 띄게 되는데 시간에 따라 점차 변하게 된다. 별의 내부에는 수소의  

핵융합 작용이 일어나게 되어 별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그래서 별의 온도가 높다. 내부 작용 

으로 인해서 색깔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크기가 변하게 된다. 인간은 활동하면서 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면 지치게 되듯이 별도 수소의 핵융합 작용이 활발히 일어나고 난 뒤에는 밝기와 내부 

온도가 점차적으로 떨어지며 예전과 같지 않게 된다. 그리고 별의 색깔도 청색에서 적색으로  

변하게 되는데 수소를 다 태우고 재만 남은 적색 거성이 된다. 적색 거성을 사람으로 치자면  

노년기로 비유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핵융합 작용은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마지막 남은  

강한 핵융합 작용을 이용하여 적색 거성은 폭발하고 마는데 바로 이것이 초신성이다. 일반적으로 

초신성이라는 단어만 듣게 되면 새로운 별의 탄생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별의 탄생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별의 탄생 배경에는 적색 거성의 죽음이 있다. 즉, 초신성은 별이  

죽어가는 과정이면서도 새로운 별의 탄생 과정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신성은 우주  

형성 과정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무수히 흩어진 초신성의 잔해는 다양하고도 새로운 우주  

현상을 형성하는데 사용한다. 암흑 성운 구성에 필요한 성간 가스가 되어 새로운 별의 탄생에  

재활용되기도 하거나 강한 전자파와 X선을 방출하는 펄서(중성자별)블랙홀이 되기도 한다. 

별은 초신성의 잔해로 시작해서 끊임없는 핵융합 작용이라는 순환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죽는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별들이 탄생한다.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셔서, 멀리멀리 비춰 주소서

비록 별도 인간처럼 죽게 되지만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상징성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결혼식  

주례 단골 멘트인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녀가 한번 인연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 혼(魂)이 되더라도 인연의 끈은 영원히 이어져있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사랑하는 연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소망이기도하다. 작가 미상의 고려 가요 

『정읍사』중에는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셔서, 멀리멀리 비춰 주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작품 속 화자는 사랑하는 임을 향해서 달이 비춰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이 항상 우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는 현상을 절묘하게 임을 향한 사랑으로 묘사했다. 

사실 달이 우리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지평선과 달까지 이루는 각이 항상 일정하게  

됨으로써 일어나는 착시 현상일 뿐이다. 이런 현상을 광행차 효과라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달의 재미있는 특징은 항상 앞면을 지구로 향한 채 떠오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망원경 

으로 달을 관측하더라도 뒷면을 절대로 볼 수 없게 된다. 이유는 신기하게도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주기와 자전 주기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달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는 똑같이 27일이다. 

‘별을 따다 바칠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할게’와 같은 말은 이제 고전적인 사랑 멘트가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영원히 사랑할 것임을 은유적으로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싶다면 별이 아니라 이제는 ‘달’로 표현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앞면으로 지구를 향하는  

현상과 광행차 효과를 비유삼아 항상 사랑하는 그대만을 바라 보고, 항상 그대 곁에 있는 달이  

되겠다는 멘트는 어떤가?  이 멘트도 너무 식상하다, 닭살이 돋는다고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곁에 있는 사랑하는 연인만 바라보고 영원히 비춰주는 달과 같은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오랫동안 

사랑의 감정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 과학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그러나 알고는 있어야 할 뱀꼬리   

 

리뷰를 살펴보면 '별이 될께' , '기억할께' , '않을께' 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잘못된 언어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을 정도로 고착화되어 그렇게 표현하고 있으며  

노래 제목과 가사에도 그렇게 표기하고 있어서 리뷰 작성에는 편의상 그렇게 썼다.  

사실은 '별이 될게' , '기억할게', '않을게' 가 올바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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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끝나지 않은 재앙 
 

미국 멕시코 만을 검게 물들었던 석유가 3개월 만에 유출을 멈췄다.
유출을 막기 위해 새로 개발한 캡을 씌우려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하였다.
아직 추후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전문가들과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사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법. 현재까지 흘러나온 기름의 양은 222만~438만 배럴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많은 기름들은 지금까지도  바다 위를 부유하고 있다.

기름이 멕시코 만을 덮치게 된 이후 멕시코 만에서의 어업 중 가장 많은 경제적 수입을  

얻는 새우 관련 어업 종사자들은 손해를 보게 되었으며 멕시코 만 어부들은 아직까지도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유출 사고는 사상 최대의 환경 및 생태계  

파괴를 남긴 최악의 사고로 남게 될 우려가 높아졌다. 기름이 멕시코 만을 넘어서  

대서양쪽 미국 동부 해안으로 흘러들수록 집계되는 동물 피해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기름이 해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지 못하면 지금보다 더 큰 생태계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있다. 비단 생태계에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오일 제거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감기 증상을 보였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지금까지 장기간 원유  

노출  시 인체 피해에 대한 의학적 보고는 없지만 미 보건당국은 장기적으로  

신경계통이나 혈액 콩팥 간 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석유에 오염된 물을  

마시게 되면 인간의 신체가 온전치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세상을 바꾼 책

환경 분야의 뉴스 중 핫 이슈인 멕시코 만 유출 사건을 계기로 해양 생태계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해양 생태계 도서의 고전이라고 일컫는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읽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도서관에 와 보니 그 책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근처 바다 관련 도서가 꽂혀있는 책장까지 샅샅이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래서 마지못해 레이첼 카슨의 대표작인 <침묵의 봄>을 읽기로 하였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바다의 생태계와 그것을 지키기 위한 환경 보전에 관한 책이라면 

<침묵의 봄>은 농약이 자연 환경에 주는 악영향을 고발한 책이다.

<침묵의 봄>이 자연 환경 분야의 고전이라는 것은 간혹 언론이나 학교 수업 시간에  

들어봤다. 책 뒤에는 세상을 바꾼 책이라는 찬사가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의 내용이  

어떻기에 출간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환경 운동의 선구적인 도서라는 명예를  

누리고 있는 걸까? 저자는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농약 성분들이 자연 생태계의 오염을  

초래하고 결국에는 농약을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구성하는 내용은 거의 환경오염과 그에 따른 피해  

사례에 관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아주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작가가 쓴 책의 배경이 무려 40여 년 전이라서 그런 것이었을까?

저자는 당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었던 DDT의 유해성에 대해서 낱낱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DDT뿐만 아니라 저자가 환경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농약의 주성분들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환경에  

대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을 지금도 읽어야만 하는 것인가?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다

저자는 일방적으로 자연에게 악영향을 주는 농약 사용을 금하지 않는다.   

농약 사용을 줄이는 대신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의 길을 갈 수 있는 환경 보전 대안을  

제시한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제시한 대안은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식물을 방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특정 식물을 먹이로  

  하는 곤충을 이용하는 것이다. 목초지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이런 가능성은  

  상당히 무시되었다. 곤충들은 자신이 원하는 식물만 먹이로 삼는데 그런  

  제한적인 식성을 잘 이용한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 레이첼 카슨『침묵의 봄』 p 116 - 

 

저자는 이미 40여 년 전부터 유기농법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농작물에는
해충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전만 해도 농민들은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서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사람들의 환경 보전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농약 1%도 묻지 않은 농작물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환경 인식의 변화를 읽고 있었던 농부들과 농업 관련 연구자들은 화학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농법을 독자적으로 연구 및 개발을 하였다. 오랜 연구 끝에 현재  

유기농법은 지렁이, 우렁이, 오리 등 해충이나 잡초를 먹이로 하는 특정 생물들을  

이용하는 친환경적인 방법이 개발되었다.  역시 ‘세상을 바꾼 책’이라는 칭호를 받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무작정 농약 사용을 줄이라고 주장만 했었다면  

세상은 그녀의 말을 이해했을까?  레이첼 카슨이 고백했듯이 그녀가 살던 1960년대에는  

농약 속 유해물질이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미치는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부와 연구 기관들은 유해물질이 자연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련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 출간 이후로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되었다.
그 때 1960년대의 세상이 이 정도였으니 레이첼 카슨의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농약이 묻은 농작물로 만든 음식들이 우리의 식탁 위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자연친화적인 사회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고쳐야 하는 것이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철학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세상은 환경 문제에 관해서는  

참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환경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둘로 갈라지게 된다.  

인간의 이익을 위한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일부분 자연 파괴는 불가피하다는  

개발 옹호론자와 자연을 파괴하면서 개발한다는 자체가 잘못이며 오히려 개발 이후에도  

환경 문제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개발 반대론자들이다. 그렇다고 개발 옹호론자들이
무조건 자연을 정복해야한다는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아직까지도 구시대적 발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무분별한 벌목이 그 예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아마존 특유의 야생적인 열대 우림이 파괴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살고 있었던 동물들은 보금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동물들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아마존에 살았던 토박이 부족들도 어려운 현실에 처해져 있다. 다른 나라의  

목재업 회사들이 행하는 벌목 작업을 자신들의 눈 앞에 보면서도
이렇다 할 말을 하지도 못하고 그들은 이곳저곳 떠돌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궁핍한 삶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도시로 진출하게 된다.  

아마존의 자연 파괴와 산업화, 거기에 다가 부족들의 단명의 근본적인 원인인  

전염병까지 더하여  아마존의 자연에서만 자랐던 순수 부족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마존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존의  

나무들을 밀어붙이는 불도저와 굴착기들을 보면 아메리카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면서 인디언들에게 무시무시한 피의 응징을 가했던 백인들이 떠오른다.
자신이 살고 있는 거대한 땅을 이루고 있는 모든 자연물을 경외했던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중의 한 구절을 비유하자면 백인들과 개발 옹호론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양날의 칼, DDT

이 책의 감수자인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의 글을 보게 되면 농약의 화학 물질에  

대한 개선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며 레이첼 카슨이 살았던 시대의 농약과의 차이점을  

감안하여 농약의 위험성에 대해서 상당 부분 낮추어서 이해해달라는 당부의 말이 있다.

<침묵의 봄>을 읽은 계기로 인하여 DDT에 관한 내용들을 찾아봤다. 그런데 내가 책에서
알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 소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게된다면
자칫 환경 문제에 대한 편협된 사고방식을 야기할 수 있는 발상의 소지가 있다.

<침묵의 봄>이 출간 이후로 DDT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됨으로써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DDT 사용을 금지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DDT를 사용하는  

나라가 있다. 경제력이 약한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나 티푸스에 대한 대비책으로 DDT를 모기 살충제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가 보고되고 있는데  

스리랑카에서는 과거에 말라리아 환자가 연간 25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가적인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48년부터 1962년까지 DDT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자 말라리아 환자 수가 연간 31명으로까지 줄었다. 그러나 DDT가  

금지된 후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말라리아 환자 수가 연간 250만 명으로 다시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DDT가 인간에게 끼치는 악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리랑카 입장에서는 

말리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을 가만히 놔둘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리랑카뿐만 아니라 일부 국가에서는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서 DDT를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DDT를 사용하게끔 하는 원인이 DDT에  

대한 경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DDT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DDT의 유해성에 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DDT는 인간에게 전염병을 유발하는 모기를 박멸할 수 있는 뛰어난 살충제이지만
어떻게 보면 살충제 내의 독성물질로 인해서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키며 그 악영향이  

우리 인간에게도 미칠 수가 있다. 인간은 DDT라는 최고의 칼을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검을 만든 우리가 날카로운 칼날에 찔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략)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중략)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 8, 11연 중에서 -

이상화의 쓴 이 유명한 시는 당시 일제 강점기 상황을 바탕으로 일본에게 넘어간  

우리나라를 ‘빼앗긴 들’이라고 비유를 하고 있다. 국토뿐만 아니라 국권과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성을 상징하는 ‘봄’조차 빼앗기는 비통한 현실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1연은 조국 광복의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8연은 풍요로운 국토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있으며 1연에서 표현한 시적 화자의 질문은 마지막 11연에서 절망적인  

현실 인식이라는 답변으로 돌아오게 됨으로써 시는 마무리 짓게 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환경 문제도 이 시에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정부는 4대 강 사업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며 개발 이후에도 4대 강의 자연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국가적 차원의  

사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과 일부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은 4대강 사업은 개발로 인해
오히려 자연환경이 파괴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4대 강을 개발할 때 사용하는  

공사 재료에서 다량의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검출된 점을 이유를 들었다.

결국, 개발 공사를 하면서 강의 수질이 악화될 수 있으며 환경 파괴가 먹이사슬처럼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강이 오염이 되면 강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자연스럽게  

오염된 물의 독성 성분을 받아들이게 된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희귀종을  

포함한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할 수가 있다. 오염 물질을 먹은 물고기들을 먹고 사는  

수달이나 조류에게 독성 물질이 고스란히 전해지게 된다. 당연히 물고기를 먹은  

동물들도 사망하게 된다. 동물뿐만 아니라 강에서 흘러나온 물을 용수로 사용하는  

인간도 오염 물질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레이첼 카슨은 모든 먹이사슬을  

지탱하는 것은 이라고 하였다. 그녀의 말은 물이라는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인식하라는 것이다. 물속으로 흘러 보낸 독성 물질도 물로 시작하는 먹이사슬의  

순환 관계처럼 환경 오염이 주는 피해도 순환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농민들에게도 큰 타격을 입을 수가 있다는 근거도 있다.
4대 강 사업으로 농민들은 강제 이주를 하거나, 강 주변의 채소 재배지가 감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채소 재배지가 감소되면 채소 가격이 폭등하여 결국에는 소비자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4대 강 사업이  

자신들의 재배지를 강제로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농민들에게 농사란  

먹고 살리는 유일한 노동이면서도 이상화의 시구처럼 ‘좋은 땀을 흘리면서 부드러운  

흙이 주는’ 자연의 위대함와 노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4대 강 사업으로 이주를 하거나 재배지가 사라지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게 해주었던 실낱같던 희망마저도 빼앗기게 된다면 농민들에게  희망의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침묵의 봄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하나의 관용어로 자리 잡게 된 도발적인 책의 제목은 영국의 시인 키츠의 시에서
‘호수의 물들은 시들어 가고 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네’ 라는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시구처럼 물이 오염되면 새들은 오염 물질로 인해 죽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예전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절은 뒤로 하고 오염되고  

주변에 생물들도 살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다. 이미 죽은 자는 말은 없다.  

결국 봄이 오더라도 생(生)의 감각과 활기를 찾아볼 수 없는 ‘침묵의 봄’이 되는 것이다.

봄을 침묵케 하는 것은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자연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침묵의 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연이 파괴 되어가는 현실의 원인을 

회피하려 하거나 알면서도 부정하는 몇 몇 인간들의 침묵이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환경 문제는 자신의 일과 관련 없으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환경 문제를 야기 시킨다는  

생각도 해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환경 문제의 원인은 남 탓이라고 돌리고 묵비권을  

행사하듯이 침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기업인은 자신의 사업으로 인해 자연  

파괴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국가 경제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 파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명분주의식 변명을 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공장은 사람들 몰래 폐수들을 강에 흘러  

보내기도 한다. 폐수로 인하여 강이 오염되면 앞으로 초래할 환경 문제들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몰상식한 행동을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처음에는 자신이 행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거나 최대한 자신의 죄가 걸리지 

않기 위해서 침묵하기도 한다. 
 

 

 

 3년 전, 우리는 침묵하지 않았다 
 

내가 앞에서 이상화의 시까지 들먹거리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우리가 처한
자연 파괴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침묵하게 되면 후세에도 불편한 현실이  

이어질 것이며 봄의 침묵도 길어질 것이다.  그리고 리 스스로 자연에 대해서  

침묵을 하게 되면 자연이 우리에게 줬던 아름다움과 삶을 위한 혜택 등  

좋은 것들이 자연 파괴자들로부터 허무하게 빼앗기게 될 수가 있다.

멕시코 만 유출 사태가 남의 나라 일이라고 해서 무심코 넘어 가지 말자.
우리나라도 3년 전에 충남 태안에서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를 겪은 적이 있지 않은가.
원인은 자연 상황을 무시한 채 선박을 운행하다가 충돌로 인해 태안의 모든 해안 지역을
타르 덩어리로 만들어 놓았다. 태안의 해안에서 일하는 어부들은 그 사고로 인해서
자식 같이 여겼던 수산물들은 폐사하였고 앞으로 펼쳐질 여생의 희망을 한 순간에  

빼앗겨버렸다.

하지만 국민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엄청난 해양오염 재앙을 함께 극복하고자 태안으로 향하는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사이에 5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서 타르 덩어리를 제거하는 데 동참하였고, 재난 극복을 도우려는  

성금도 끊이지 않았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레이첼 카슨이나 대니 서와 같은  

개혁적인 환경 운동가처럼 거창한 행동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당장 해결될 거  

같지 않은 커다란 환경 문제도 관심을 가져 보고 단순하게 접근을 해보면 해결의 답이  

보인다. 그리고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듯이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힘을 합치면 환경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가 있다. 환경과 자연 친화를 중시하는  

그린 코드 사회로 발달할수록 우리들도 환경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고 이에 대한  

성숙한 윤리적 태도와 이를 바탕으로 공동적으로 해결하려는 참여 의지를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인용 관련시가 출처 및 링크 

 

[멕시코만 원유유출 3개월만에 첫 차단] 헤럴드경제 7월 16일자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0716000272 

 

 

[ [멕시코만 환경 대재앙] 원유 유출 47일째… 칠펠리컨·돌고래 떼죽음,  

방제요원 건강 적신호 경고] 국민일보 6월 5일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5&aid=0000413705 

 

  

 

인용 검색 출처 및 링크 

 

위키백과 [4대강 정비 사업] 

http://ko.wikipedia.org/wiki/4%EB%8C%80%EA%B0%95_%EC%A0%95%EB%B9%84_%EC%82%AC%EC%97%85 

* 문서 내용 현재 진쟁 중임, 불확실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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