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분야 최근 20여년동안 연구흐름을 터치한 칼날같은 책이다. 피맛을 갈구하는 종횡무진하는 덩굴손같은 책이기도 하다. 완독하기에는 제법 시간이 걸리는 책이기도 했는데, 도서관의 힘을 빌리고 나서야 늦밤 완독하다.


<비의식의 힘>은 기술을 포함하여 지금을 알아내는 신호들의 집합을 새롭게 볼 것을 요구한다. 비의식은 의인화의 지문들을 지우는 행위기도 하다. 인간중심이 아니라 눈치채지는 못하지만, 걸려있고 되려 영향을 미치는 인지, 쌓이다보면 스스로 중심축을 흔들리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배려다. 성숙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 "행성적 인지 생태계"라고 말이다. 아메바나 집신벌레, 세포들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이 행성을 무대로 삼는다. 지금도 여전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력하다. 제몸을 자르지도, 제몸의 색깔을 바꾸지도 못한다.  문어도 갑오징어도 도마뱀의 능력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진딧물이 한 자리에 피냄새를 맡을 때까지 십년이든 이십년이든 기다리는 존재라는 것도, 포유류들이 성격을 가진 존재라고, 하물며 살아있거나 살아내는 것들은 지금을 삼켜 변화해내는 존재들이다.


과학은 발전하였지만 걸음마 조차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 경계를 무너뜨려 상상력을 철학과 윤리, 비환원적이 방법들 다른 걸음들이 있어야만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살아있는 것들, 살아내는 것들은 새롭게 새로운 새 것과 옛스럽게 옛스러운 옛 것과 부단한 대화이자 소통이다. 라투르가 말한 방법의 소개서로 절묘하고, 해러웨이의 경도된 철학을 잘 소화시켜내는 역작이기도 하다.


과학의 새로운 길은 이렇게 법과 종과 생태와 행성이란 시야를 통해서 한 발 내딛게 되는 것 같다. 갈증들의 누더기가 해소되는 느낌이다. 길고 긴 늪 길에서 빠져나오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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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05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를 보면 식물도 식물 나름의 지능이 있어 보이는데 뇌가 없다고 식물만을 먹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칭 비건주의자들의 과격한 논리는 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긴 여름이 끝날 무렵, 책방에 오랜만에 들러 세 권을 헤아려 에코백에 넣고 다닌지 오래다. 읽으려고 해도 읽히지 않는다. 아니 겁이 난다는 말이 맞다싶다. 그 아픔이나 생채기에 걸려, 작은 앎들이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 조차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 권의 책을 골랐지만 어는 것 하나 마음 놓고 펼칠 수가 없다. 대체 왜 일까?


지난 폭염과 전시와 지인들과 만남들. 그 무게가  청년을 깨웠고, 친구들이 보는 모습들과 함께 천둥벌거숭이의 민낯들이 함께 솟아오르고 있다는 사실. 같이 생생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함께 지금의 지축을 조금 흔들고 밀어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변하는 존재이자 변하지 않는 존재이다. 긴 여름의 끝. 나는 하루하루 뭔가를 꼼지락하고 있지만, 하루하루를 의도한 적은 없다. 그리고 그 작업들이 경계를 지우고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닫는다. 비정형을 의도하고 싶다는 비의식을 어렴풋이 알게된 것이다.



그러다가 지인의 책 얘기와 삶이야기를 듣다가 아래 책을 빌려읽다. 책이야기를 듣다가 고타마 싯다르타가 아니라 별 개의 인물로 말하는 것이 의아했는데 읽고나니 헤세의 의도는 명확했다.


 내가 얻은 생각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 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204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진리란 오직 일면적일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생각으로써 생각될 수 있고 말로써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모두 다 일면적이지. 모두 다 일면적이며, 모두 다 반쪽에 불과하며, 모두 다 전체성이나 완전성, 단일성이 결여되어 있지 204

 

이 세상을 설법하실 때에, 이 세상을 윤회와 열반, 미혹과 진리, 번뇌와 해탈로 나누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달리 어떤 방법이 없지.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205




볕뉘


1. 성서를 선과 악의 깊이로 읽을 것을 요구하는 <팡세>도 생각났고, 데이비드 봄과 보어도 겹친다. 그리고 평생을 거친 작품에 기조를 유지했다는 점 또한 걸려 유리알 유희를 주문한다. 싯다르타를 너머서는 안목에 아찔하기도 하다.


2. 친구의 책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얻은 생각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 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진리란 오직 일면적일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생각으로써 생각될 수 있고 말로써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모두 다 일면적이지. 모두 다 일면적이며, 모두 다 반쪽에 불과하며, 모두 다 전체성이나 완전성, 단일성이 결여되어 있지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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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 왜라는 질문은 대상의 구체적 역사적 정치적 측면을 이해하게 하며, 법 세계의 두 요소인 당위와 존재를 매개해 준다고 지적했다. 당위와 존재를 매개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 현실이 어떻기에 그와 같은 법규범이 만들어졌는가, 또는 거꾸로 이런 법규범으로 혹은 법 해석으로 현실을 '통제'할 수 있는가를 묻고 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2 당장에 거래가능하거나 합의가능한 공통이익은 부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낙관할 수 없는 미래를 전제로 가치의 충돌을 유예하거나 완화시키는 '과정의 법학'으로 전환/변환할 태세도 갖추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르게 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느낄 수 있어야 당장의 현실적이고 주류적인 결론에 쉽게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


13 어린 아이는 "더 아는 데에만,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을 다는 데에만 전념"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위에 있는 것을 보고, 듣고, 관찰하고, 반복하고, 실수하고, 자신의 오류를 교정하면서 스스로 배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행정에게도 이것이 필요하고, 행정법과 행정법학은 그 근거와 한계가 되어주어야 한다.


17 법 언어의 세 가지 특징은 난해성, 모호성, 이데올로기성이다.  19 추상성의 원칙이라는 게 우리 민법상 물권행위의 무인성 無因性 이론에 해당한다. 법에서 추상 혹은 추상적이라는 말은 이런 것이다. '어떤 구체적이고 특정한 사안과 분리되어 있다.' 이런 의미로 추상적 규율, 추상적 위험, 추상적 규범통제 같은 개념을 이해하면 된다. 그냥 쉽게 말해 추상적이란 특정한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일반적이라는 말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 모두를 의미하는 용어로 이해하면 된다.


47 자본주의 행정법은 자기의 권리와 이익 외에 타인과 공동체의 권익에 관심을 갖는 이타주의적 개인(혹은 법인)을 이단자로 취급한다. 또한 비인간 동물이나 사물도 자본주의 행정법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한다. 글로벌 차원의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기후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계속 이런 인간중심적-이기주의적 법률학을 유지해도 될 것인지는 성찰해야겠지만, 현실은 그러하다.


49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법-권리 주체'로서의 이기주의적 개인이다. (주관적-개인적 공권)




2.


이 책의 기획 중 하나는 이 분산된 인지 시스템이 작동하는 비의식적 인지 집합체를 분석 탐구하는 것이다. 프롤로그 9

 

과학에서조차 생물학적인 비의식적 인지와 기술적인 비의식적 인지 간의 간격은 여전히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의 그랜드캐니언만큼이나 넓다. 10

 

나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긴급한 문제들 중 하나가 지금 진행 중인 이러한 변화라고 본다. 이는 기술적 자율성 시스템의 발전, 인간의 의사 결정이 이 시스템의 작동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 인간이 인지 능력이 있으니 지구상의 지배종이라는 깊은 믿음에서 비롯된 환경 파괴, 그 결과로 다른 생명체들의 인지 능력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성에 관한 문제로 확장된다. 11

 

행성적 인지 생태계. 행성적 인지 생태계는 인간 행위자와 기술적 행위자를 모두 포함하며 윤리적 탐구의 초점이 되기에 적합하다. 10

 

1부 인지적 비의식과 의식의 대가

 

01 비의식적 인지: 인간과 타자들

 

의식은 우리의 사고에서 중심 지위를 차지하는데, 의식이 인지의 전부여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세상의 일관성에 대한 기본적 가정들을 뒷받침하는 내러티브를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반면 인지는 읫ㄱ을 훨씬 뛰어넘어 다른 신경학적 뇌 프로세스까지 확장되는 훨씬 더 광의의 능력이다. 또한 인지는 다른 생명체와 복잡한 기술 시스템에도 퍼져 있다. 의식 너머에 존재하는 인지 능력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나는 이를 비의식적 인지라 부르겠다. 3


갑자기 전방에서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도로로 다시 주의가 쏠린다. 이처럼 의식과 새로운무의식 사이에서 쉽게, 지속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진다. 5

 

소마틱 마커. 특정 상황이나 경험에 대한 감정적 신체적 반응은 표지 marker’ 처럼 작용해 미래에 비슷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영향을 미치는 신호 역할을 한다. 5

 

비의식적 인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반응이 느리고 처리 능력이 제한된 의식이 1000분의 1초마다 뇌로 흘러드는 내부와 외부의 정보 홍수에 압도되지 않도록 해 주는 기능일 것이다. 6

 

기술적 인지의 출현은 한때는 생물학적 유기체에만 있던 인지 능력이 세계 속으로 외재화되었음을 나타낸다. 7

 

환경에 근거한 인지. 환경에 근거한 인지는 근육의 움직임, 시각 자극, 청각 인식을 포함한는 모달 인식 modal의 정신적 시뮬레이션에 지원을 받으며 이것과 얽혀 있는 인지다. 겨울뉴런 회로. 9


사고하기와 인지 (인지생물학 라디슬라프 코바치)

 

코바치는 단세포 유기체조차 환경과 관련된 특징들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서, 이런 특징들과 유기체를 구성하는 분자들 사이에 아무리 조잡하고 추상적이라 할지라도소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핵산 분자 수준만이 아니라 모든 수준의 생명에서 특정 기능을 제공하는 복잡성은 시스템의 구성물로 바뀌는 체현된 지식과 상응한다. 환경은 풍요로운 잠재성을 지닌 장소다. 각 장소는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거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했다는 의미이고, 해결책이 바로 체현된 지식 즉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알고리즘이다. 14

 

코바치는 생명체가 환경과 관계하는 것을 존재성onticity 즉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고 견대는 능력이라고 부른다. 코바치는 생명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모든 가능성을 모든 수준에서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다. 15

 

식물의 신호와 식물 지능에 대한 주장

 

우리는 식물에 뉴런이나 시냅스 혹은 뇌 같은 구조가 있다는 주장에 어떤 증거도 없음을 밝히면서 시작한다. 19

 

문제는 식물이 지능적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다. dfl 모두가 그 용어(지능)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동의하려면 수백 년이 걸릴 것이다. 문제는 식물이 자각하는가가 되어야 한다. 사실상 식물을 자각한다. 20

 

나무가 법적 지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포함된다. 21

 

연구자들이 전기 신호와 화학신호, 유전자 구조, 식물 행동 간의 상호작용을 조사하면 할수록, 지능이라는 대단히 인간중심적인 단어에 어떤 입장을 취하든, 식물이 환경에 대한 광범한 정보를 해석하며 놀랍도록 섬세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도전에 대응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23

 

기술적 인지

 

자기-재생산 자동자

단 이는 컴퓨터가 오작동하거나 전기가 끊어지는 일이 없어야만 가능하다....이들 연구는 논쟁과 질문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유용하고 생산적이었지만, 기술적 시스템이 결코 완전히 살아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기술적 시스템은 완전히 인지적일 수는 있다...인지는 정보와 의미를 연결하는 맥락 안에서 정보를 해석하는 프로세스다. 27

 

정보의 의미는 그것을 해석하는 프로세스에 의해 주어진다. ....프로세스는 맥락 안에서 발생하며, 맥락은 상황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식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인간들 사이의 자연어 발화에 적용되지만, 식물이 흡수하는 화학물질 속의 정보에 반응하는 정보적 프로세스, 문어가 근처에서 잠재적인 짝을 감지할 때의 행동, 계산 매체에서 코드의 레이어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로 잘 설명해 준다. 29

 

시몽동. 안정적인 평형 상태에 이르지 않고 오직 과도기적인 준안정 상태에 머무는 포텐셜 에너지 개념이다. 시몽동은 이 흐름을 정보라 불렀고, 정보가 본질적으로 의미와 연관된다고 생각했다. 30

 

피드 포워드. 정보가 미리 앞서 전달되어, 무언가를 예상하거나 준비하도록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용어. 31

 

인지 분석하기


인지의 세 갈래 틀

그림1 피라미드로서 (인간) 인지의 세 갈래 틀

자각의 양태 비의식적 인지 물질적 프로세스 37 삼중 틀: 역동적인 이질적 위계 조직으로 묘사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40

 

비의식적 인지는 의식보다 훨씬 더 빨리 작동하며, 의식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조밀하고 미묘하며 잡음이 많은 정보를 처리한다. 비의식적 인지는 의식이 잡아낼 수 없는 패턴을 식별하고 거기에서 추론을 끌어내며, 이에 기반해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고, 그 추론과 일치하도록 행동에 영향을 준다. 38

 

살아 있는 유기체는 선택과 결정, 해석이 가능하다. 39

인지는 유연성, 적응성, 진화가능성이 포함된다. 41

 

행위자와 매개자

 

인간/비인간을 대체할 또 다른 구분으로 인지자 대 비인지자를 제안하겠다. 한편에는 인간과 다른 모든 생물학적 생명 형태는 물론이고 모든 기술적 시스템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물질적 프로세스와 생명 없는 객체들이 있다. 43

 

비인지자들. 눈사태, 쓰나미, 토네이도, 눈보라, 모래폭풍, 허리케인 44

이것들은 선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함의를 띠는 인지 집합체에 뿌리박힌 행위자가 아니라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지자는 행위자로, 물질적 힘과 객체는 매개자로 쓰는 것이다. 45

 

더 나은 공식은 이분법이 아니라 상호 침투다. 상호 침투는 인간, 비인간, 인지자, 비인지자 그리고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 과정을 통해서, 그 안에서, 그 너머로 흐르는 연속적이고 어디에나 퍼져 있는 상호작용이다. 46

 

왜 계산 매체는 단순히 또 하나의 기술이 아닌가

기술의 편재성, 다양성,강도로 이루어지는 궤적, 켈 리가 인간중심주의적으로 욕망과 동일시하는 궤적을 따라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47

 

계산 매체는 다른 어느 기술보다도 더 강한 진화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48 계산 매체는 본질적으로 인지 기술이며, 그 이유 때문에 본질적으로 인지적인 종인 호모 사피엔스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우리는 결정이라는 것을 단 하나의 힘 혹은 힘들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프로세스로 생각해야 한다. 49

 

기술적 인지와 윤리

 

부르노 라투르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손실 질량/에너지에서 유추해 윤리적 행위자의 손실 질량이 기술적 인공물이라고 말하면서 이 질문을 건드린다. 여기에서 손실 질량은 우리의 도덕성을 구성하지만 숨겨지고 무시당한 사회적 질량들이다: 기술적 인공물이 도덕적 행동을 유도하고(안전벨트, 과속방지턱) 인간이 습관에 영향을 준다. 50 fitbit 팔찌(스마트 워치) 등의 장비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무의식적 행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누적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51

 

인간행위자와 기술적 행위자가 뒤얽힌 그물망에서 버빅은 인간과 기술 양자가 도덕적 행위성을 공유하며, 암묵적으로는 도덕적 책임까지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행위성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분배된다. 도덕적 행동과 결정은 인간-기술 연합의 산물이다.(타자기, 인터넷) 52

 

행동의 일반적 경향은 그 결과의 총합에 따라 더 유해할 수도, 덜 유해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좋은 결과의 총합과 나쁜 결과의 총합 사이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54

 

기술적 인지 시스템이 우리 주변에 온통 깔려 있고 일반 대중이 모르게 작동하고 있다. 그것들의 효과를 분석하고 평가하려면 기술적 인지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인지를(인간) 의식하고잠 동일시하는 수백 년 묵은 전통에서 빠져나오게 해 줄 견고한 틀이 필요하다. 2. 인간의 인지 생태계가 기술적 인지와 어떤 점에서 다르고 어떤 점에서 비슷한지를 포함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더 정확한 그림도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3. 물질적 프로세스와 인지자들이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57

 

02 비의식적 인지와 의식 간의 상호 작용

 

비의식적 프로세스가 직관을 의식적 자각에 피드 포워드라 수 있게 해 주는 메커니즘, 이 메커니즘에서 시간성이 하는 중요한 역할을 논한다. 59

 

의식의 대가

 

자아는 우리의 유기적으로 연결된 정신적 삶을 특정한 식으로 상상한 산물, 구성물, 모델이다./ 자아를 본질적 특질이나 소유물이라기보다는 아이가 자라면서 갖게 되는 경험, 감정, 삼성을 통해 창조되는 구성물로 본다/의식과 자아 감각이 지닌 기능에는 과거의 경험을 기억으로 회상하고, 미래의 기대를 만들어 내고 기억과 비교해 예상과 결론에 도달하는 정보 처리 기관으로서 역할이 포함된다. 61

 

자아-모델과 자아가 지향성을 가진 대상으로 구성하는 모델. 타자를 의식하고 타자와 관련을 맺지 않는 한 자아 따위는 없다. 62 언어 시스템은 뇌의 인지 프로세싱 네트워크에서 출력된 결과를 고도로 편집된 스냅숏으로 요약한 다음 퍼뜨린다. 63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의식은 사건들을 편집해 관습적 기대에 따르게 만든다. 2. 의식이 지각보다 몇백 밀리 초 늦다. 0.53. 자기 스스로를 주요 인물로 만드는 자아를 소유하는 것이다. 65 우리를 스스로 자아로 인식케 하는 바로 그 기능이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뿌리박힌 생물학적 사회적 기술적 시스템의 복잡성을 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며 우리와 다른 매개자들의 행동의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고 쉽게 착각하게 한다. 66

 

의식과 인지적 비의식에 대한 신경 상관물

 

원형자아는 내가 인지적 비의식이라고 부른 것에 해당한다. 67

 

의식은 오로지 대상, 유기체, 그들의 관계가 재표상될 수 있을 때만 일어난다. 의식이 재표상되려면 당연히 먼저 표상되었을 것이다. 이런 매핑은 원형자아를 발생시키며, 그 안에서 일어난다. 그때 소마틱 마커들이 이 원형자아 수준에서 신체 지도 안으로 조합되고, 이로써 신경신호와 화학적 신호의 기저를 이루는 물질적 프로세스와 의식 사이를 매개하게 된다. 68

 

뉴런 집단들은 재귀적인 재입력되는 연결들을 통해 자기들끼리 연결된다. 69

 

의식에서 시뮬레이션과 재표상

 

시뮬레이션은 세계, 신체, 마음과 더불어 경험이 일어나는 동안 습득되는 지각, 운동, 내향적 상태의 재발제이다. re-enactment 71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당신의 뇌에서 그와 같은 움직임을 가상현실로 시뮬레이션해야만 하는 것과 같다. 겨울뉴런 72

 

환경에 근거한 인지 관점에서 뇌는 감정에 감정적 정서적 태그를 붙여서 기억에 저장한 다음, 비슷한 경험이 일어날 때 시뮬레이션으로 이를 재활성화하기 위해 신체 상태를 이용한다./시뮬레이션은 고도로 추상적인 사고에조차 신체 상태를 그 기반으로 부여하면서 원형자아와 의식 사이 소통 프로세스의 본질적 부분으로 작용한다. 73



볕뉘.


0. 


두 책을 읽으면서, 아니 정리해내면서, 덧보태며 읽으면서 많은 감회와 느낌이 든다.  행정과 법은 왜 이리 고루한가라는 생각이 내내 골치아픈 존재로 가라앉아 있다. 무의식이 아니라 비의식이라고 명명하고도, 분열생성이라는 말을 붙이고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질문과 명명의 장벽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들.  두 책은 그런 면에서 벽을 허물면서도 통합해주는 느낌의 봇물같다.  전태일을 법학과 대학생을 만나고 싶어한 것처럼, 버전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법에 대해 이런 의문들에 새로운 바람과 이름, 깃발을 흔들어주길 바란 것 같다. 


1.


 이교수는 서슴없이 갈파한다. 시와 문학을 법학에 접붙이기를 애용하는 저자답게, 책의 각주는 도움책들로 즐비하다. 그의 서재에 꽂혀있을 책들이 보인다 싶다. 처분하지도 못할 책들을 이 책을 안식년에 오로지 전념하면서 골라내었을 책들의 운명도 느껴진다. 그래 이런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이런 친구만 있다면 시대와 역사에 역행하는 법의 무례함에 똥침도 놓을 수 있으리라는 호기도 전달된다. 그가 있어 고맙다.


2. 


 비의식적 인지. 아메바와 집신벌레도 이 세상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스스로 바꿔낼 수 있다. 놀라울 만한 확장에 더해서 우리는 놀라우리 만큼 생명과 비생명의 인지에 모르고 있다. 


3. 


 행성적 인지 생태계라는 단어와 명명을 공글리고 있다. 가슴과 몸에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품을 수 있는 기쁨이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틈틈이 옮겨적고 있긴 하지만, 가을날이 기후우울을 벗어나게 해 머물 수 없다. 그래도 조금 흔적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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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책을 펼치니 


9월 1일


휘익 휙휙 휘이익 휙휙

파란 호두도 날려버리고

시디신 모과도 날려버리고

휘익 휙휙 휘이익 휙휙


<바람의 마타사부로> 첫 줄이 시작된다.


무더위의 긴꼬리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렇게 바람이 휙휙 불어오는 날이면 희망의 끈을 다시 부여 잡는다. 작은 손아귀의 안간힘들이 느껴지는 날, 그래 우리는 가을을 맞고 있는 것이다.라고 마음을 다시 잡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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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과 교육 등 공공 부문은 앞선 인용문에 쓰여 있는 윤리, 의무감, 자부심, 직업의식, 용기처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내적 동기에 기초해서 겨우 성립되고 있습니다. 내적 동기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책임입니다. 그것도 외부에서 떠넘긴 책임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자기 속에 내재한 책임이죠. 좀더 강하게 표현하면, ‘사명입니다. 67

 

우리가 시간을 들여 함께 야구를 하면서 경기 전체를 관찰하고 파울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듯이,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언어놀이를 조금씩 배우고 함께 언어놀이를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창문이라는 낱말을 언어놀리에 섞어가며 배웠듯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언어놀이를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152

 

미국의 SF 작가 로버트 블록의 단편 중 <부서진 새벽>: 핵전쟁 후 죽음의 재가 흩날리면서 건물 안의 군사령관은 우리나라가 이겼다.”라고 크게 웃는 장면을 되보면서, 이 작품은 100만 명의 핵규탄보다 뛰어나고 큰 울림이 있다고 여긴다. 197

 

<부활의 날> 스미르노프 교수: 들어줄 사람이 없는 세계를 향해 죽어가면서도 계속 얘기합니다. 3개월 전 까지 세속적 생활, 보잘것없은 일상에 빠진 상황에 대해 그는 인류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지나치게 얽매였다고 표현합니다. 또한 그와같은 우리의 인간적인 일상생활에 대해 도리어 애처로울 정도입니다.”라고 말했죠....이 세계가 위태로운 공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저 잊어버린 척했을 뿐이죠. 226-227


볕뉘


1. 


셜록홈즈-마르크스-스피노자. 그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건너뛰지 않는다. 세심한 눈길은 계단의 숫자까지 꿴다. 사소한 하나하나가 어떻게 전체를 움직거리게 만들 수 있는지 결국은 알게된다. 그러니 그들은 사물을 관통하면서 꿰뚫는 법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손끝만 보고 있단 말이다.  능동태와 수동태의 언어화법에 걸려든 당대인은 이분의 구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도와 모만 보고 원할 뿐, 어디에서 개-걸-윷에 느낌을 머물게 할 수 없다. 지독한 불감. 


2. 


과거-미래를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 선물이자 증여다. 간략하면서도 쉬운 글과 쉬운 호흡, 그리 많지도 않은 저자들을 지나다보면, 묵직한 것이 걸린다. 나만의 삶만이 아니라 세계성이란 그물. 그 곳에 찌릿 감전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의도에서 아마 글틀과 글의 음악을 대유했을 것이다. 


3.


지금은 어디쯤일까? 산과 산사이 바위가 내려오고 있는 것일까? 위태롭게 산 정상 위에 바위가 서있는 것일까? 위태로움은 배가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들은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어떻게 될지 실감을 두려워하고 있는 상태는 아닐까? 공포에 가까워 아무 것도 상상하려 하지 않는 상태는 아닐까? 


4.


누군가 외치거나? 누군가 지금 위태로운 상황을 인지하게 만들거나? 나만은 그 바위 아래 돌멩이 하나를 궤거나 하는 시도가 필요한 건 아닌가?라는 질문들을 하고 있다. 지금 밖을 보려는 노력은 스스로 안스러워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까?


5.


산불과 수마, 끊임없는 재해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1인 가족, 관계의 허약함은 쓰나미처럼 몰려올지 모르는 재해와 만일에 대해 대비하지 못한다. 그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다. 대체 왜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단 말인가? 가벼운 상상조차 일상에 접목시키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그 절박함을 외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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