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아니 어제 아침이 되겠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는 왠지 방 안이 침울했었다. 이런 날은 사실 일어나기 싫은 날이다. 오늘 하루, 아니 어제 하루에서 지금까지의 지배적 내 감정은 그렇게 방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침울한 하루. 내 방안에 이렇게 침울한 날은 아침 풍경이 간혹 어둑한 날이다. 비가 오는 날은 십중팔구 방안은 온통 어둑하다. 오늘도 그렇게 어둑했고, 그래서 침울했다. "젠장! 아침부터 비는."

** 그래도 뒤척이다가 몇 분 씩은 지각할 만큼, 딱 그 만큼 TV를 보다가, 이부자리를 벅차고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보다 약간 깨끗하게 씻는다. 그러나 고양이는 하지 않을 면도가 추가된다. 매일 아침 면도하는 일은 참 귀찮은 일이다.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면도를 하지 않으면 그만큼 더 뒤척이거나, 그만큼 더 <그래도 좋아>를 여유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간간이, 자기 전에 면도를 하고 자면 어떨까를 생각하지만, 잠을 자기 전에 씻는 것은 더욱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어서, 면도를 할 생각을 수차례 접은지 오래다.



 

 

 

*** 아침 드라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게 여간 내 직장생활에 폐를 끼치게 아니다. 내가 지금과 같이 규칙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게 된 것은 올해로 3년째가 된다. 지난 2년간 평일의 거의에는 아침 8시에는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9시에는 출근부를 찍었던 것이다. 명색이 올빼미 체질인 내게 아직도 여전히 이 스케줄은 벅차고 고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나름 아침형 인간이 되어서 나를 유혹하는 것은 정말 의외의 곳에 있었다. 그게 바로 아침 드라마다. 2006년 봄쯤에 방영되기 시작한 하희라가 주연으로 출연한 <있을 때 잘해>가 그 시작이었다. 눈을 뜨면 TV를 켰고, 어느날은 MBC가 틀어졌고, 하희라가 오랜 만에 나왔고, 변우민도 나오고, 눈길을 주다가, 드라마에 빠지고 말더니, 매일 아침 TV를 켜면 이 MBC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지각도 참 많이 했지만, 이 드라마를 다 보고나야 뭔가 할 생각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통 이 드라마에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저주를 퍼부었다. 이 드라마만 끝나면 나는 보다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속작 <내곁에 있어>은 최명길이 이윤지와 모녀 관계로 출연한 연속극이었다. 내 방의 TV는 어느덧 MBC에 맞춰져 전원이 꺼졌기 때문에 항상 아침 TV를 켜면 이 후속작이 펼쳐졌다. 이내 이 비련의 두 모녀의 드라마틱한 삶에 빠지면서, 이윤지가 행복해지길 마음속으로부터 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서 다시 한 번 안심했다. 이제는 제대로 살 수 있겠구나.



그런데 왠걸? 후속작 <그래도 좋아>는 어느덧 아침 드라마 체질이 되어버린 내 감성을 확 땡기고 말았다. 김지호를 오랜 만에 보는 것도 좋았지만, 드라마에서 명지역으로 분한 그 신선한 페이스가 무척 내 맘에 들었고, 내일 이야기가 마구마구 궁금해졌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내 출근부의 지각일수도 늘었다. 전자 행정망이 완벽하게 갖춰진 내 직장은 이 구시대적 인권 침해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같은 출근부가 이제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MBC가 아침 드라마 방영 시간을 조금 땡겨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 오늘, 아니 어제 아침도 약 2분을 지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거의 출근을 안했다. 통근버스는 눈길로 인해 2시간 반이 걸려 도착했다. "젠장! 나도 통근버스 타고 다닐걸." 집에서 나오면서 비가 아닌 눈이란 사실에 나는 아해처럼 명랑해졌다. 두 손 가득 눈을 쓸어담아 똘똘 뭉쳐서 이리저리 던져보기도 하고, 아무도 밟지 않은 곳만을 골라 내 두 발길을 남겨두었다. 누가 듣건 말건 조금 크게 노래도 부르고, 뛰기도 하고, 미끄럼도 타고, 그렇게 출근한 나에게, 이런 피해의식을 주다니. 그래서 다시 우울해졌다. 눈이 오고, 살짝 명랑해지고, 다시 우울해 진 날에는, 가만히 조곤조곤 시를 읊어 보는 것이 참 좋다. "에라,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다.




***** 오후에 간간이 졸음이 오던 차에,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내게 저쪽에서는 자기네가 <퀴즈 대한민국>이란다. 일요일 아침에 간혹 눈을 뜨면 보던 KBS의 그 퀴즈 프로 말이다. 여기에는 예전에 내 친구가 나갔다가 결승에서 유학파 출신 농부에게 한 문제도 못 맞추고 떨어진 추억이 있었다. 그런 데서 피디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작가인 듯 싶은 여자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내용인 즉, 자기네 프로에서 참거짓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 감수를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뭔데 그러냐 했더니, 나보고 누구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군지 알려줬더니, 자기네 문제가 참 거짓을 구분하는 건데, "허난설헌은 허균의 어머니다."가 맞느냐? "허난설헌은 허균의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다.'가 맞느냐? 그래서 난 "그렇다."했더니 고맙다면서 전화를 끝는다. 이게 뭐람? 별 같지도 않은 걸 뭔놈의 감수라고 방송국에서 전화를 해댈까? 그 정도면 인터넷에서 몇 초면 찾을 수 있는 걸. 그리고 교수도 아닌 내게 무슨 권위가 있다고 감수를 부탁해. 참 내! 별 꼴도 다 있다. 왠지 낚인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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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12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멜기님이 아침 드라마 매니아라니? ㅋㅋㅋ 멜기세덱이 아닌 새댁이군요! ^^
난, '있을 때 잘해' 이후 아침드라마든 밤중 드라마든 아무것도 안 보는 자유를 누리고 있지요. 이 자유, 참 소중해요!! 한번 느껴보세요~~~~ ^^
허참, 허난설헌이 허균의 어머니냐고 묻다니? ㅉㅉㅉ

마노아 2008-01-1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의 사연은 한참 끄트머리에 나오는군요^^ 그래도 아해처럼 즐겁게 웃으며 읽었어요. 싱긋^^

웽스북스 2008-01-1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조선시대가 모계사회였던 것도 아니고, 저런 걸 왜 굳이 감수를 받을까요? ';
 
나와 닮은 유명인사?

야구선수 마쓰이와 조지 벤슨, ㅋㅋㅋ

근데, 노무현은 뭐지? ㅠㅠ;;

간디 선생님까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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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1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유명인사와 닮으셨군요^^ㅋㅋㅋ

라주미힌 2008-01-11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retty zinta는 인정할 수 없음... 도저히.. ㅡ..ㅡ;;;

글샘 2008-01-1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과 헤어 스탈과 입 벌린 각도가 닮으셨네요. ^^ ㅎㅎㅎ

순오기 2008-01-12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거 하는 님들 덕에 얼굴도 볼 수 있다는 거, 좋은 프로그램이군요. ^^
 

<새 冊에 눈길주기>란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으면서부터, 거의 매일 수차례 신간목록을 훑어본다. 도서종합과 부분별로는 고전, 문학, 대학교재, 역사, 사회과학, 인문학, 종교 등에 한한다. 그런데 6일이 지나서야 두번째 눈길주기를 쓰게 된다. 내가 눈이 높은 것이라기보단, 내 관심사항들이 세상의 관심사항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눈길주기는 이런 책들이다.

 [동양고전]
 노자, 『노자』, 이강수 역, 길, 2007.

 출판사 <길>에서나오는 '코기토총서' 그 10번째다. 연세대 철학과 이강수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사실 그간 출간된 코기토총서에 모두 눈길이 간다. 그런데, 이 총서의 첫번째 책이 『장자 Ⅰ』이다. 이 책의 공동 번역자도 역시 이강수 교수인데, 아직 2나 3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이 책이 나온 것인데, 그건 좀 그렇다. 하여간 장자도 나머지가 마저 나오길 바라며 이 책을 찜해둔다.

 [문학/시]
 이재무, 『저녁 6시』, 창비, 2007.

 중견시인 이재무의 시집이다. 요새는 시집 장사가 거의 제로라는데, 올 해부터는 나부터라도 시집들을 열심히 사봐야겠다. 창비 시집과 문학과지성 시집들을 싹 한 번 모아보고도 싶다. 이재무 시와는 사실 아직 안면식이 거의 없는듯 하다. "내면의 진정성과 충일을 향한 의지와 더불어 부정한 현실을 좌시할 수만은 없는 시인의 연륜과 결기로 충만한 시편들이 실려 있는 이번 시집에서는 이재무 시세계가 얼마나 더 농익어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책소개의 말만을 귀담아 둔다.

 [문학/소설]
 김사과, 『미나』, 창비, 2008.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김사과? 이름도 독특하고, 이상하다. 처음들어보는 이름인데, 2005년에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했단다. 표지도 발랄하고 제목또한 야릇하다. 이름만큼이나 독특할른지 그건 읽어보고야 알 것이지만, 추천글에서의 첫 대목이 "이상한 소설이 도착했다."다. 이상한 소설? 아무튼 그간 한국문학, 특히 소설책들에 관심을 주면서도 덥썩 물지는 못했다. 간간이 소설과 함께하는 삶이 그나마 위안이 될 2008년이었으면 한다.

 [인문/언어]
 노무라 마사아키, 『한자의 미래』, 송영빈 역, 커뮤티테이션북스, 2007.

 일본은 한자때문에 우리보다도 훨씬 고생할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한자 사용을 역사를 추적하면서 그 한자의 미래가 어찌될 것인지를 서술하고 있다. 목록과 책소개를 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전체 논지는 일단 한자의 미래는 조금 암울하다. 내 견해하고는 좀 다른 부분이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름 유익할 것이다. 저자가 예측하는 한자의 미래가 어떨지는 책장을 열어봐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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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재무의 '저녁 6시'가 끌리는군요~~~~ 이상한 소설도 조금은 ^^
 

關關雎鳩(관관저구), 관관하며 우는 물수리는

在河之洲(재하지주), 황하의 모래톱에 노닐고

窈窕淑女(요조숙녀), 어질고 품위 있는 아가씨는

君子好逑(군자호구). 군자의 좋은 짝일세.

參差荇菜(참치행채), 크고 작은 마름풀을

左右流之(좌우유지), 이리저리 찾고

窈窕淑女(요조숙녀), 어질고 품위 있는 아가씨를

寤寐求之(오매구지). 자나깨나 구한다네.

- 『詩經』「관저(關雎)」편 첫 연.(김영 역)

물수리도 꽌꽌거리며 제 짝을 찾고, 정답게 모래밭 위를 거닌다. 남아가 장성하여 군자가 되어서는, 좋은 배필을 찾아야 하는 법. 저 들밭에서 이리저리 잘잘거리며 마름풀을 따는 처자들 중에, 군자의 배필이 될 요조숙녀는 누구일까?

누구일까? 『시경』의 이 「관저」편 첫 머리가 오늘은 유난히 새삼스러운 것은, 어느덧 나도 군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關關雎鳩(관관저구)'가 더욱 벅차게 맴돌고, 나의 짝은 누구일까? 어디에 있을까? 이러다가 '오매' 단풍 들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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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8-01-1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이 시는 처음 고등학교 입학한 1학년 국어교과서 화랑의 후예에서 처음 배웠는데, 그때 참 옛날 사람들은 사랑노래도 참 멋스러웠구나 싶었다죠. 멜기님은 군자시니 요조숙녀만 있으면 될 터인데 마름풀 밭을 잘 살피셔야겠습니다.ㅎㅎ

멜기세덱 2008-01-07 23:52   좋아요 0 | URL
국어교과서에 그런거 있었어요? ㅎㅎ 근데, 그게 요새는 풀밭 찾아헤매면 아무도 없어요...ㅋㅋㅋ

로렌초의시종 2008-01-07 23:59   좋아요 0 | URL
예~ 요즘 가르치는 애들 교과서 보니까 빠진 것 같더라구요. 저희 6차 교육과정 때는 있었어요. 김동리 씨가 쓴 소설이었어요.(작가가 너무 구닥다리라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시를 읊었던 작중 인물(문제집 식 표현;;)은 별로 매력없었는데, 시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바람돌이 2008-01-0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노골적인 구애시가 시경에 있나요? 시경이 가지는 무게감과 안어울리긴 하지만 오히려 신선해서 좋네요. ㅎㅎ 멜기세덱님도 올해는 그럼 단풍들기전에 짝을 찾으시기를 바랄게요. ㅎㅎ

멜기세덱 2008-01-07 23:59   좋아요 0 | URL
시경이라는 게 당시 민가에서 불려지도 노래들을 채집하여 기록한 것들이 160여 편이라고 합니다. 이것 외에도 서정시들을 많이 담고 있죠. 특히나 공자는 이 관저편을 일러 "樂而不淫(낙이불음), 哀而不傷(애이불상).", 즉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낙이불음, 애이불사의 지극한 서정을 시경을 통해 맛보는 것도 운치가 있지 않을까요? 무게감을 조금 덜어내셔도 좋을 것 같아요.ㅎㅎ

이매지 2008-01-0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에는 멜기님의 짝을 꼭 만나시기를! ㅎㅎ
멜기님의 짝은 왠지 엄청난 포스를 가진 분이실 듯. :)

멜기세덱 2008-01-08 00:00   좋아요 0 | URL
그래야죠....
근데, 이제 저는 버리시는 건가요? ㅋㅋㅋ
글구, 저는 '엄청난 포스'를 감당 못해요...ㅋㅋ

이매지 2008-01-08 21:39   좋아요 0 | URL
아. 이 때 포스는
지와 덕을 겸비한 분이예요 ㅎㅎ
그나저나 전 멜기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ㅋㅋ

깐따삐야 2008-01-0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씨를 총각으로 바꾸고 군자를 깐따삐야로 바꾸면 완전 제 마음이네요.^^;

멜기세덱 2008-01-08 00:07   좋아요 0 | URL
ㅋㅋ, 뭘 새삼스레 찾으시려고....ㅋㅋ
너무 멀리서 찾지 마세요..ㅎㅎ

다락방 2008-01-08 12:49   좋아요 0 | URL
아가씨를 총각으로 바꾸고 군자를 다락방으로 바꾸면 완전 제 마음이네요.^^;

멜기세덱 2008-01-08 21:44   좋아요 0 | URL
이러면 되겠네요, 총각을 멜기로 바꾸면 만사오케이...?

다락방 2008-01-08 22:00   좋아요 0 | URL
아, 네. 그렇군요.
만사 오케이. 후훗


하하하하

2008-01-08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8-01-0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그만큼 외롭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거에요. 공개적인 구애뻬빠닷.

멜기세덱 2008-01-08 10:06   좋아요 0 | URL
오호ㅡ, 통재라, 군자의 마음을 소인이 어찌 알리요. ㅋㅋㅋ

무스탕 2008-01-0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조숙녀분 찾으시거든 꼭 자랑하세요~ ^^

멜기세덱 2008-01-08 10:07   좋아요 0 | URL
누가 뺐어갈까봐, 꼭꼭 숨겨둘래요...ㅋㅋ

웽스북스 2008-01-0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조숙녀가 저런 뜻이었군요- 나는 왜 요조숙녀 뜻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을까 (요조숙녀 하면 괜히 김희선이 젤 먼저 떠올라서 ㅎㅎ)

멜기세덱 2008-01-08 21:45   좋아요 0 | URL
그런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죠? 姚(예쁠 요)를 써도 좋을텐데...ㅋㅋ

순오기 2008-01-0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오매 단풍들것네~~는 영랑생가에 가면 절로 나와부러~~~~~~~~ㅋㅋ

멜기세덱 2008-01-08 21:47   좋아요 0 | URL
김영랑 생가가 어디였더라? 그런데 막 구경하고 다니면 참 좋겠는데요.ㅎㅎ
일단 요조숙녀부터 먼저 구하고요...ㅎㅎ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무자년(戊子年)의 벽두에 쓰는 서평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2년 겨울(12월 10일 제1쇄 발행)이고 내가 읽은 판본은 2007년 2월 15일 발행된 제9쇄다. 저자 더글라스 러미스가 이 책의 내용은 구술한 것은 그러니까 밀레니엄으로 떠들썩하던 그 무렵 혹은 그 후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쓰여졌던 글도 부록으로 담겨있다. 더글라스 러미스란 사람은 말하자면 친(親)일본 미국인이라고 할까? 국적을 옮겼다는 얘기는 못들었으니 아무래도 맞는 표현이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러미스는 정말이지 일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런점에서 '친일파'란 단어의 '친'보다 이 사람에게 수식된 '친'이란 접두사가 더욱 진정성을 가지고 있지 싶다. 이 말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전체적인 논지의 주요 대상이 일본이란 소리다. 우리나라의 박노자처럼, 그는 비록 국적을 분명히 옮긴 우리나라 사람인 것이 러미스와 차이가 있지만, 너무나도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본이란 나라에 친절히 충고하고, 정중히 부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2007년이 저물면서다. 최대 이슈였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오래 전에 수중에 넣어두었던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유인즉, 이 책이 현대적 · 당대적 현실에 지극히 요구되어지는 것이면서도, 2008년부터 5년을 말아드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그 직접적 원인이라고 해야겠다. 제목 그대도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도 안되면 인수위원회 위원들에게, 그도 안되면 허공에다 대고라도, 해야만 했다. 최근 들리는 말에 의하면 대운하 건설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는 비보에 더욱 절실해져서, 며칠을 묵혀둔 이 책의 서평을 이 늦은 밤 시간에 쓴다. 어느 옛 노래처럼 '사랑해요'라고 쓰지는 못하는 처지가 못내 안타깝지만, 그래도 쓴다면 이 나라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 가득히 담고 쓰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압도적' 지지 속에 당선되었다. 숫자 놀음 같은 것은 접어두고, 선거 결과만을 놓고 보아도 이런 '압도적'이란 말이 그리 무색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선거율이 낮다고 해도 50% 가까운 득표율을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간 진보적 성향의 젊은 층들도 대다수 이명박을 선호했다는 대선 결과 분석을 보면서, 그들이 보수화 된 것이 아니라, 실용을 추구한 것이라는 평가를 한나라당 대변인이 내린 것이 오래 기억된다. 다른 말로 하면 현실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명박이 이 당면한 한국적 현실에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런가? 이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러미스는, 내가 좀 무식하게 옮기자면, "현실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라고 말한다. 이명박이 실용하고 현실이더냐? 웃지 못할 노릇이다.

이 책의 제1장 "타이타닉 현실주의"는 이런 상황을 절묘하게 비판한다. 우리가 현실주의라고 떠들지만 그것은 진정한 현실주의가 아니라고 말이다. 타이타닉 호가 빙산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빙산은 아직 보이지 않아서 현실적이 얘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상황, 결국 빙산에 부딪혀 파멸하게 되는 것이 분명 우리에게 놓인 현실임을 어찌 모르느냐고 목놓아 부르짖는다.

   
 

누군가가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비상식, 비현실주의적입니다. 왜냐하면, 타이타닉호라는 배는 전진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저마다의 일거리가 없어져,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진한다는 것이 타이타닉호의 본질인 것입니다. 전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모두가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오늘날, 세계 전체에 퍼져있는 현실주의는 그러한 현실주의라고 생각됩니다.

현실주의적인 경제학자가 타이타닉호에 "전속력으로"라는 명령을 하려고 합니다. "속력을 떨어뜨리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타이타닉호의 논리, '타이타닉 현실주의'입니다.

어째서 그것이 논리적이고 현실주의적으로 들리는가. 도무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17쪽)

 
   

이번 대선의 핵심 키워드는 '경제'였다고 한다. "살리고 살리고 명박이가 살리고"라는 슬로건을 지어줄 걸 그랬다. 그러나 러미스가 반문하듯이, 과연 경제성장만이 우리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주겠냐는 물음에 나는 회의적이다. 먹고 사는 어려움을 덜어준 박정희에게 그나마가 어디냐고 감사하기에는 내 머리가 너무 커졌다. 얼 쇼리스가 『희망의 인문학』에서 말하듯이 가난한 사람들이 지배체제의 무력적인 힘에 의해 그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그때의 배고픔은 잊었지만, 오늘 우리는 여전히 가난의 설움을 씻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배고픔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우리 부모님이 겪었던 가난이란 설움을 내가 또다시 겪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현실인 것이 엄연한 이상, 내가 그 누구에게 감사를 전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되지는 않는다. 경제 7% 성장을 자신하는 그에게 분배 7%의 성장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비정규직이 7% 줄어들고, 내 봉급이 7% 인상되는 그런 기대를 해도 좋은가? 주가가 이 배로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부동산 시세도 오르기를 기대하는 기대치에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없는 자들에게 주어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현실이 아닐까? 경제성장이라는 논리하에 우리의 이명박 선장이 이끄는 타이타닉호는 전속력으로 내달을 기세다. 한반도 대운하를 파느니 마느니가 앞으로 분분하겠지만, 그 안에 경제성장은 좋은 것이야라는 '현실주의'는 하느니 마느니를 떠나 모두가 공유하는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러미스의 "그건 현실주의가 아니야"란 목소리가 거기에 낄 수 있으면 좋겠다.

러미스가 주목하는 또다른 잘못된 현실주의로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논란이다. "일본 평화주의는 비현실적이다"라는 현실에 대해 러미스는 차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반박해 나간다. 전쟁이 끊임없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 무력화(無力化)를 추구하는 것은 자못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평화를 추구한다면서 펴나가는 정책들은 도무지 얘네들이 평화를 원하기는 한 것인가 의아스럽기만 하다. 미국이 그 대부지만, 우리나라도 전혀 예외는 아니다. 최근 국회에서 파병연장안이 통과된 것을 보면 뻔하지 않은가? 눈 앞에 보이는 이득만을 현실로 아는 이 현실주의자들에게 감히 누가 제대로된 현실을 보여줄 수 있을까? 러미스의 이 책을 이명박을 쫓아다니면서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금방 청와대 경호실의 대통령급 경호에 막혀 좌절되고 말 것이다.

다시 경제성장으로 돌아오면서 러미스는 '제로성장'은 어떤가 하고 제안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무한한 추구는 자연에 대한 무한대의 이용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 자연이라는 것은 무한대가 전혀 아니라는 뻔한 사실은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전세계 나라들이 자꾸 성장만 하면, 지구는 지금 '아파요'인데, 자꾸 들볶으면 죽지않고 배기겠는가? '제로성장'을 말하는 러미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2008년 벽두에 있어 소중하게 여겨진다.

   
  일본의 이와 같은 상황, 요컨대 제로성장 상황은 '불경기'라든가 '불황'이며, 큰 문제라고 신문의 경제면에는 씌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매우 의미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냐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제로성장을 '엔진 고장'이라 여기지 말고, 기꺼이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제로성장을 오히려 정부와 나라 전체의 적극적인 정책으로 삼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 나의 제안입니다. 앞으로도 경제성장을 계속하며 풍요로운 사회를 추구해 갈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 없이 제로성장 상태로도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 문제설정으로 관점을 바꾸자는 것입니다.(94~5쪽)  
   

일본만이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이런 "문제제기, 문제설정으로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더글러스 러미스가 그 대안으로 '대항발전'을 내놓고 있지만, 일단은 우리의 관점부터 먼저 바꾸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명박을 선택한 인간님네들께서 과연 성장만이 제일인가 하는 물음을 머리속 한 구석에서라도 그려주었으면 한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과한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며칠 전 녹색평론사에서 격월간 발행하는 《녹색평론》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먼저 읽고 나서는, 봄이 오면 자전거를 튼튼한 놈으로 구입할 예정이다. 책 값을 좀 줄여야 하더라도 말이다. 고백하지만 그간 자연을 꾸준히도 더렵혔던 인간으로서 이제라도 좀 녹색에 대해 생각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께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운하를 파신다고 하시니, 나라도 '녹색'으로 옷해입고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녹색을 생각하고, 경제성장 하시겠다는 나리들에게 "그거 아니어도 나 행복할 수 있거든요."라고 말하고 다녀야겠다. 그게 내 새해 벽두에 비는 소원내지 각오다. 이명박 당선자께 마지막으로 한마디 전하자면, "나 앞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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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8-01-03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함.. 졸려~ 이 글 쓰느라고 나를 살살 피했던 거군요 ㅋㅋ
낼 읽어볼게요.. 지송~~~

멜기세덱 2008-01-03 17:27   좋아요 0 | URL
이 글은 어제 새벽에 발동이 걸렸더랍니다.ㅋㅋ
글고, 내가 언제 자기를 피했다고 그래요...ㅋㅋ

웽스북스 2008-01-03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얼마 전에 구입했는데 ^^ 푸하님이 추천해 주셔서요~ ^^
리뷰는 책 읽고 나서 자세히 읽어보게요 반갑습니다!! ㅋㅋ
(불면증도 반갑고 책도 반갑고)

멜기세덱 2008-01-03 17:28   좋아요 0 | URL
앗, 이 죽일놈의 불면증....요즘 제가 미쳐요.!!

마노아 2008-01-0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에요~ 저도 이 책 사놓고 아직 못 봤는데 다시금 시선이 갑니다. 저도 2008년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_<)

멜기세덱 2008-01-03 17:28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행복해보여요....

쥬베이 2008-01-03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고 갑니다. 이명박 관련부분 웃겨요^^
'이 책을 이명박을 쫓아다니면서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금방 청와대 경호실의 대통령급 경호에 막혀 좌절되고 말 것이다.' 압권ㅋㅋ

고양이 2008-03-1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노혜경이라고 합니다.
라디오21에 님의 서평 소개하려고 합니다.
허락해주실 것으로 믿고 미리 소개해 버릴랍니다. 괜찮지요?
^^;;;;;

멜기세덱 2008-03-19 17:4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미리 소개해 버리시고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ㅎㅎ
워낙에 미천한 글이라서.....
근데, '라디오21'은 뭐하는 곳이죠? 제가 라디오를 잘 안 들어서리...ㅎㅎ

고양이 2008-03-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라디오21은 인터넷라디오방송국이고요. http://www.radio21.tv/
제가 님의 글을 소개한 프로는 노혜경의 캣츠아이 라고, 매주 월~금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화, 사람, 관심, 뭐 이런 주제입니다.
매월 책 한 권씩을 청취자들과 함께 읽자, 이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3월의 도서가 이 책이에요. 오늘 책 이야기 하면서 블로그 뒤적뒤적 하다 보니 님의 글이 나오는데, 제가 처음 이 책 소개할 때 했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더이다. 그래서 반가운 김에^^;;;;;

미리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라디오에서 책이야기를, 그것도 함께 읽자 그러면서 한달씩 하려면 어떤 형식을 갖춰야 하는지 다양하게 실험하는 중입니다. 인연이라고 저는 주장하고 싶고, 그러니 가끔 조언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양이 2008-03-20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이 책을 선택할 때 이미 님의 글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어요. 알라딘, 교보, 다음과 네이버의 블로그들의 독후감을 다양하게 참고했거든요^^ 그때 님의 글을 아마 읽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저 인연이 아니라 대단한 인연인 게죠. 저 혼자만의 주장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