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가장 긴 실만을 써서 무늬를 짠다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EBS BOOKS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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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에 이 책이 나오자마자 샀던 것은 저자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이 파키스탄 여성 최초로 끈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물리학자라는 점에 우선 끌려서였다. 그는 이탈리아, 스웨덴 스톡홀름대, 미국 하버드대 등에서 연구했고, 2021년 기준으로는 고향인 파키스탄 라호르의 LUMS 과학공과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음으로는 그가 현대 양자역학, 그중에서도 2012년 스위스 제네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세른)의 힉스 입자 발견을 기준으로 지난 300여 년 물리학사의 가장 중요한 여섯 발견을 다룬 대중서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저명한 현대 물리학자들의 추천이 그 가치를 충분히 뒷받침해준다는 생각도 물론 들었고, 마지막으로 제목이 적확하고 유려했다.

 

물리학과의 우리 모두는 그 기사가 어떻게 나왔는지 잘 알았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잘 쓴 기사였다. 그는 연구자들을 희화화하지 않았고, 그들의 연구 경력에 입발림하는 칭찬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기사가 크게 호평받은 것은 그가 연구 정신과 그 연구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제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 기사는 내가 지나다니는 복도 게시판에 꽤 오랫동안, 몇 달 동안 붙어 있었고, 나는 작게 나온 그의 사진과 이름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뭐 그런 쪽이었다. -31

 

 이 책을 살 때부터 다소 걸렸고, 어쨌든 사고 나서도 미뤘던 것은, 결국 저자가 저 내용을 담은 형식이 소설이어서였다.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분야의 구성원이 쓴 자기 분야에 관한 소설은 썩 내키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라면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데, 책만 그렇다. 국문학과나 영문학과 교수가 소설을 쓰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각각 국문학(), 영문학() 자체에 대한 소설을 쓴다면 그 역시 내키지 않는다. 자기 얘기를 그렇게까지하고 싶어한다는 점이 돌부리다. 이 책의 저자와 그 주제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착한 책을 들춰보니, 물리학과 관련된 두 남녀의 미묘한 감정이 이야기의 얼개를 이룬 듯했다. 드라마나 영화는 호불호가 없다고 방금 쓴 주제에, 의사가 쓴, 병원에서 의사들이 연애하는 이야기는 매체가 무엇이든 싫지 않다고 말하기도 싫다. 어쨌든 이 책의 구성을 2012년의 물리학 관계자인 두 남녀가 지탱하고 있음에도 이 부분을 보도자료에 밝히지 않은 편집자의 마음을 이해했다. 나도 최대한 그렇게 썼을 것이다. 로맨스가 전개의 핵심이지만, 주제나 내용의 핵심은 아니니까. 안 쓸 수만 있다면야. 소설이면 이미 충분하지. 그리고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로맨스도 한 스푼 들어갔다는 점을 굳이 밝혀 줬더라면, 저 지점들이 마음을 끌어도, 미리보기로 정성스레 트집 잡고서 주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꽤 높다. 내부인이 자기 분야를 소설로 썼는데 로맨스 요소까지 있다니. 지친다.

 

내가 쓰는 기사에 스스로 점점 만족을 못 느낀다고 털어놓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여전히 과학에 관해 쓰고 싶지만, 다른 식으로 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편집자가 으레 하듯이, 조가 이 새로운 방식이 어떤 것인지 물었을 때 나는 딱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 23~24

이 힉스 보손 기사 말인데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요? 오늘 아침 여기에서 터져 나온 감정에 관해서도 썼어요? 이 연구에 매달려온 사람들, 아니 이 연구 자체가 삶이었던 사람들의 기쁨은 담았어요? 그들의 흥분, 혼란 그리고 그들이 이 연구에 쏟아부은 피와 땀, 눈물은요?” -56

 

 사기 전에 로맨스 요소를 몰랐던 것은 행운이고, 사고서 로맨스만 잡아낸 것은 성급했다. 알고 보니 로맨스가 아니었다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역시나 로맨스는 제 구실을 했다. 단지 그 로맨스 자체가 정말로목적이 아니었을 뿐이다. 아니면 지극히 부수적인 귀결이거나. 남성 레오나르도는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이고, 여성 사라는 끈 이론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다. 두 사람이 힉스 입자 발견을 공표하는 2012년의 세른에서 만난다. 작가는 이 지점을 기꺼이 감수했을 것이다. 둘은 서로에 대한 호감만큼이나 자신의 작업, 저술과 물리학에 충실하다. 로맨스도 결국 그 진지함에서 기원한다. 이 얼개가 저자의 자기 미화라면, 그 설득력은 부족하지 않다.

 

맥스웰의 방정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진동하는 전기장이 진동하는 자기장을 생성하고, 또 그 반대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끝없이 번갈아 진동하는 이 운동이 빛의 요람을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난 거야. 빛은 맥스웰의 이론에서 파동으로 여겨져. 이 방정식에서 도출된 일정한 속도로 전자기장에서 퍼져나가는, 자체적으로 유지되는 물결치는 교란이야. -167

나는 난생처음 보는 듯 밤하늘을 응시했다. 별빛이 무심하게 태양 옆을 쌩 지나치는 대신에 사실상 고개 숙여 인사한다는 것을 과연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컴컴한 깊은 우주 공간에서 이 미묘한 사회적 인사 교환이 기나긴 세월 동안 이루어져왔다. 나는 천체가 얼마나 더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자연의 섬세한 예의범절이 또 뭐가 있을까? -234

방정식들은 자신들이 자취를 남긴 우회로를 충직하게 따라오면 길이 조금씩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반복해서 증명했지. -300

 

 2012년의 두 사람이 자아내는 지난 300여 년의 물리학적 사건들은 널리 알려진 거인들이나 그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시점이 아니다. 모두 뉴턴, 맥스웰, 아인슈타인, 보어 등이 아닌, 이미 그들의 업적, 그들이 바꾼 세상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여전히 경이로워하는 주변 사람들이며, 사건이 여파가 미치는 시점이다. 거대한 당사자의 일방적인 경이가 아닌, 그가 일으킨 경이의 공명을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해냈다. 파키스탄 최초의 여성 끈 이론 물리학자라는 저자의 경험은 책에 담긴 구체적인 사실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너무나 낯선 지식과 전환이 어떤 여지도 없이 납득될 때의 다채로운 경이감을 묘파하는 힘이 된 듯하다. 지금까지 물리학의 경로는 당연하지 않아서 놀랍고, 그 당연하지 않은 것이 제 위치를 당연히 찾아가는 까닭에 다시 놀라운 걸음들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저 당연하거나 당연하지 않아서 걸어온 길이 아닌 셈이다.

 

마치 온기와 보금자리를 제공했던 공리들이 조각나 부서지고, 우리는 춥고 발 디딜 곳도 없는 무지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지. 때때로 이런 식으로 사유 체계에 구멍이 뻥 뚫리는 듯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야. 해체된 조각들을 다시 모아 재구성해서 기존에 제대로 설명했던 것들을 간직하고, 앞으로 나올 새로운 설명이 들어갈 공간까지 갖춘 새 구조를 만드는 거지. -321


 이 모든 경로, 무늬를 가장 긴 실에 함께 물들이기 위해서라면 로맨스는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꽤 효과적인 매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무엇이 알거나 모르거나 결국 혼자서는 버티지 못하고 텅 빈 자리를 마련해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그 사유 체계가 결정적이라는 반증이라면, 그렇게 빈 자리를 갖춘 사람들끼리 만나는 이야기에 엮는 것도 단지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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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는 나중에 조사하면 된다. 흉기만 찾아내면 사건은 끝난다. 즉 흉기를 찾아내지 못하면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미즈노 다다시의 자백을 받아 낼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지금 미즈노는 의식도 없고 취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신문을 위해 며칠 기다렸는데 용의자가 부인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낭떠러지 밑) - P17

형사들 사이에서 자그마한 안도의 한숨이 퍼져 나갔다. 무모한 백컨트리를 시도했다가 조난 사고를 낸 조난자에게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엇보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법이다.
분위기를 다잡듯 오다가 말했다.
"가쓰라, 계속해." (낭떠러지 밑) - P24

"앗, 잠깐......."
누카다의 안색이 변했다.
동시에 무라타도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무라타도 스스로 키워 온 조사 절차와 기술이 있는데, 상사인 가쓰라가 따라와서 무라타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질문을 한다. 수사반에서 둘째가는 실력자라는 무라타의 자부심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방식이다. (낭떠러지 밑) - P28

업무 영역이 아니라고 눈을 감기에는 인간의 목숨은 너무 무겁다. (낭떠러지 밑) - P34

‘노파심에 말해 두지만 이건 잠정 의견이야. 감정서는 나중에 보내겠네. ……물론 결과가 크게 바뀔 리는 없지만. 메모할 준비는 되었나?"
"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쓰라는 통화 녹음 기능을 켰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종이 다발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낭떠러지 밑) - P34

"다시 말해 흉기는 현장에 있었지만 그것이 흉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경우는 부정할 수 있다."
혼자뿐인 회의실에서 가쓰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는 차다. 도네 경찰서에는 차를 맛있게 끓이는 경찰관이 있는 모양이다. (낭떠러지 밑) - P47

현경 수사1과 가쓰라 팀 형사들은 상사가 밤사이 자기들을 제치고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가쓰라를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쓰라의 수사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낭떠러지 밑) - P58

형사가 빠른 걸음으로 물러나자 가쓰라는 빳빳하게 다린 셔츠로 갈아입었다. 넥타이도 고쳐 매고 재킷을 걸치고 휴게실을 나섰다.
창밖을 보니 반달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달빛이 밝혀 주는 하늘은 구름이 적었다. 날씨는 감식 효율을 크게 좌우한다. 사건 발생 소식이 들어오면 먼저 하늘을 보는 것이 가쓰라의 습관이었다. (졸음) - P64

임의수사에는 한계가 있다. 강도치상 사건의 수사본부로서는 다구마를 체포해 조사하고 싶지만 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당연히 체포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무릇 발생해서는 안 될 불행한 일이지만 일어난 이상 수사본부에는 절호의 기회다. 형사가 말했다.
"위험운전치상죄입니까?" (졸음) - P70

경찰관은 담당 사안이 늘어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담당해야 할 사안을 다른 부서에 빼앗기는 것은 그 이상으로 싫어한다. (졸음) - P73

가쓰라는 현장을 확인해 문제를 파악하고 방침을 정해 명령을 내렸다. (졸음)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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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씨와의 만남은 어느 날엔 우박이 내리는 뉴욕의 오래된 레스토랑에서, 또 어느 날엔 안개에 휩싸인 오슬로의 호텔 라운지에서, 때로는 도쿄의 바에서 이래저래 20년 가까이 이어져왔습니다. 배경이 전혀 다른 우리 두 사람의 대화는 앞에서 사카모토 씨가 말씀하셨듯, 신기하게도 매번 같은 지점에 도달하더군요. 바로 피시스와 로고스의 상극. 그것은 두 사람의 인식의 여정(‘세상을 어떻게 써내려갈 것인가‘라는 물음)이 비슷한 궤적을 그려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후쿠오카 신이치) - P11

저는 원래 파브르와 닥터 두리틀(소설 《닥터 두리틀Doctor Dolittle》의 주인공으로, 동물과 말하는 능력을 지녔다-옮긴이)을 동경해 피시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고, 피시스의 정묘함에 자극을 받아 생물학자를 꿈꾸었음에도 언제부터인가 실험용 동물을 죽이고, 세포를 짓뭉개고, 유전자를 조작하는에 매진해왔습니다. 조작적으로 생명을 다루고 요소환원주의要素還元主義(사물을 요소로 분해하면 그 각각의 요소가 단순한 원리로 작동할 것이라 간주하고, 이를 따지면 무엇이든 밝혀낼 수 있다고 여기는 사고법-옮긴이)적으로 생명을 분석했죠. 생물生物학이 아닌 사물死物학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게놈은 매핑되고 유전자에는 등급이 매겨져 모든 것이 정보로서 데이터베이스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생명을 완전히 로고스화한 것이죠. - P1112

그럼 사카모토 씨의 궤적은 어땠을까요. 그는 예술대학교에서 정밀한 음악 이론을 익힌 작곡가로서 전자음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음표를 알고리즘으로 만들고 소리를 완전히 디지털화했죠. 한마디로, 음악의 로고스화에 성공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팝 음악을 작곡하고 영화 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며 선율이 돋보이는 멜랑콜릭한 다수의 명곡을 탄생시켰고요. 그 후 자기 모방을 경계하면서 유리와 금속의 노이즈를 모으고 마른 나뭇잎에서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일회성의 안개 속에서 불협화음과 어긋남을 표현하는 비동조調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아마도 로고스가(즉, 우리의 뇌가) 기술하는 세상이 피시스를 왜곡하여 피시스의 희미한 떨림을 사상捨象(유의해야 할 현상적 특징 외의 다른 성질을 버리는 일-옮긴이)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로고스의 정상에 올라본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었을 겁니다. (후쿠오카 신이치) - P1213

사카모토: (전략) 바꿔 말하면,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기보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저 걷는 걸 즐기는 감각이에요. 제가 만든 음악에도 이런 면이 반영되어 있겠죠. 조각가가 점토를 빚고 돌을 깎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발견한 수많은 소재를 ‘이거 괜찮은데‘ 하는 느낌으로 만지다보면 뭔지 모를 무언가가 만들어질 뿐입니다.
성격이 이토록 다른데도 후쿠오카 씨와의 대화가 늘 흥미로운 이유는 역시 말씀하신 것처럼 큰 의문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서로에게 상당히 중요한, 본질적인 부분일 때가 많고요. - P21

사카모토: ‘내부주법內部奏法‘ 말씀이시죠?
얼마 전, 피아노가 ‘물체もの(‘もの(모노)‘는 물건, 물체, 물질 등 구체적이며 감각적으로 포착되는 대상을 가리키는 일본어 단어인데, 사카모토 류이치는 〈async〉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나타난 돌, 나무, 종이, 파라핀 등 ‘물체もの‘ 그 자체를 작품으로 삼아 인간중심적 사고에서의 ‘대상‘이 아닌 ‘물체‘ 자체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미술 경향 ‘모노하もの派‘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もの‘는 이러한 관점에서 사용된 단어로 보이며, 이후 같은 관점에서 사용된 ‘もの‘는 작은따옴표를 사용해 ‘물체‘로 옮겼다-옮긴이)‘임을 강하게 인식하면서 음악으로서가 아닌 ‘물체‘로서의 울림을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후략) - P30

사카모토: (전략) 예전에는 피아노를 정밀하게 조율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피아노에게 원래의 자연 상태를 돌려주고 싶다, 피아노가 자연의 ‘물체‘로서 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조율을 안 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음정이 엇나가긴 하지만, 음정이란 것도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낸 개념일 뿐 자연의 소리로서는 딱히 어긋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후략) - P33

사카모토: (전략)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에도 약간의 재현성은 있지만 제어된 파라미터parameter(전자악기에서 특정한 음을 내기 위해 설정하는 모든 요소를 일컫는 말-옮긴이)를 디지털적으로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않기 때문에 전원을 켠 후 경과한 시간이나 기기의 발열 등 여러 요소에 의해 소리가 바뀌므로 나중에 재현할 수 없는 소리도 상당히 많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고요. - P3738

후쿠오카: (전략) 제가 무척 인상 깊었던 것은 〈async〉를 완성했을 때 사카모토 씨가 ‘아무한테도 들려주고 싶지 않다, 나만 듣고 싶다‘라고 생각했다는 점이에요. 언뜻 자기애적 발언으로들릴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요컨대, 일회성을 지닌 음악 혹은 소리더라도 복제해 모두와 공유하는 단계에서 복제된 동일성에 묶여버리니까요. 사카모토 씨는 그렇게 되지 않은 상태의, 일회성에 한정된 〈async〉의 음악을 더 아껴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사카모토: 예리하시네요.
지금까지 많은 앨범을 만들어왔지만 〈async〉를 완성했을 때 처음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근본적인 목적은 많은 분이 들어주는 것, 혹은 CD 같은 복제물이 널리 알려지는 것인데 말이죠. 그래서 스스로도 신기했습니다.
앞서 들었던 비유를 쓰자면 지도도 없이,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async〉의 음악을 만드는 동안 ‘산에 오르는 일‘을 ‘어떻게 마무리 짓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붓을 내려놓을 때‘를 무심코 놓쳐버리고 쓸데없는 덧칠을 하게 될까 봐 굉장히 두려웠거든요. 그래서 ‘지금인가? 지금 아닐까?‘ 하고 붓을 내려놓는 타이밍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앨범을 만들었는데, 이 또한 일회성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나 싶어요. - P4142

사카모토: 깨부순다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자기를 빚어서 ‘이것이 제 앨범입니다. 수령 후 부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동봉한 다음, 부술 때 발생한 소리를 저의 음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곤 해요. 그걸 위해 직접 흙을 찾는 여정을 떠나도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 P44

후쿠오카: (전략) 그러나 인간의 뇌는 그 노이즈 중 두드러지는 포인트, 즉 시그널을 묶어 별자리를 검출해내는데, 이것이 바로 과학이 하는 일이죠. 본래 노이즈로 존재하는 자연에서 어떤 종류의 로고스를 끄집어낸다는 면에서 무척 인공적인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는 이 점을 늘 자각하고 있어야 하는데, 무심코 이를 망각하고 시그널이 진짜라고 믿어버리곤 합니다. 인간의 지知의 역사, 특히 근대과학사는 본디 무작위적이며 노이즈투성이인, 일회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재현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법칙을 추려내고, 이 법칙을 통해 논할 수 있는 것만이 과학이며 세상을 나아지게 만드는 과학의 진보라고 약속해왔어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시그널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노이즈들이 존재하죠. - P47

사카모토: (전략) 노이즈를 배제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피라미드가 좋은 예인데,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육체가 혹사당한다 해도 그 사실을 감추려 하잖아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사람들은 노이즈 없는 심플한 아름다움을 좋아하죠. 울퉁불퉁하지 않고 반들반들할수록 찬양과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건축도 곧은 것이 아름답다고 평가됩니다. - P5152

사카모토: (전략) 과학 역시 ‘지‘와 노이즈를 포함한 총체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할 수 없다면 본질적인 진리에는 도달할 수 없을 거예요. - P55

사카모토: (전략) 앨범에 담는 음악은 어느 지점에서 끝나야겠지만,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복수의 시간이 동시에 진행되어 영원히 ‘반복‘이 일어날 수 없는 음악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 P60

사카모토: 나 자신이 자연이라는 걸 깨닫고 난 후부터는 항상 그 사실을 의식하게 됐어요. ‘내 신체는 자연물이라 통제할 수 없다. 매일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며 감기도 걸리고, 병도 걸리고, 태어났으니 죽을 테고, 이윽고 붕괴할 것이다.‘와 같은 생각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엔트로피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 아닌가요? - P9091

사카모토: 로고스로 설명하지 못하면 뉴에이지New Age(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적인 운동을 말한다-옮긴이)의 세계가 되어버리니까요. 미국 과학자 중에도 뉴에이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있지만, ‘요즘 그 사람, 뉴에이지가 다 됐던데‘라는 평가를 듣지 않으려면 로고스적 이해로도 납득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들을 이해시키려면 로고스라는 공통 언어를 쓸 수밖에 없죠.

후쿠오카: 바로 그거예요. 피시스와 로고스의 대립에서 느닷없이 피시스 쪽으로 가버리면, 뭐랄까, 오컬트적으로 접근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리니까요. 세계는 항상 진동하고 있다는 식의 ‘뉴에이지스러운‘ 느낌은 지양하고 싶어요. - P119120

사카모토: 그 발견이야말로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도 시대(1603~1868년-옮긴이)에 미우라 바이엔이라는사상가가 있었는데, ‘고목에 꽃이 피는 것보다 살아 있는 나무에 꽃이 핀다는 사실에 놀랄지어다‘라는 말을 남겼어요. 나무에 꽃이 피는 자연의 섭리야말로 진정 경이로운 것이란 뜻인데, 바꿔 말하면 ‘당연해 보이는 일들이 얼마나 기적적인가‘라는 얘기죠. 후쿠오카 씨가 실험을 통해 느낀 바와 완벽히 일치하는 것 같아요.
이런 인식은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라는 바울의 말과도 연결됩니다. 바울로의 논리는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로 귀결되지만, 결국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할 정도의 기적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런 기적 같은 자연의 섭리가 없었다면, 과연 생명이 이 엄청난 격랑 속에서 38억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요. - P139

사카모토: 비유를 해보자면 지금 설명하신 것처럼 원이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 자체는 물질세계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로, 항상 일어나고 있죠. 그러다 어느 순간 결함이 생기고 나아가 분해 쪽이 근소하게 많아지는 가장 좋은 균형에 도달합니다. 이 우주 안에도 그런 도달의 순간이 분명 존재할 거예요.

후쿠오카: 말씀대로 태양계의 출발점이 46억 년 정도 전이고, 처음 생명이 등장한 것이 38억 년쯤 전이니까 불과 8억 년밖에 여유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 8억 년 사이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해도, 그런 우연의 균형을 잡아낸 순간이 단 한 번이라도 존재했다는 건 정말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사카모토: 시행착오를 겪는 8억 년 동안에는 생명이 되지 못한 채 그저 물질로 끝나버리는 존재도 무수히 많았을 거예요. 그렇게 계승되지 못한, 이른바 생명 동지들의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 있으면 좋을 텐데요. - P170171

사카모토: 맞아요. 누군가에게 연주되어 소리가 되지 않는 한, 음악이라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악보라는 건 ‘뉴턴적‘인 절대공간, 절대시간, 균질한 시공간처럼, ‘그 점을 어디에 두든 똑같다, 그저 값이 다를 뿐‘이라는 사고방식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P175

사카모토: 그렇습니다.
특히 최근 몇 세기 사이, 악보 체계는 보다 복잡해지고 점점 정밀화되고 있어요. 20세기에는 오선지가 너무 조잡하다며 기하학에서나 쓸 법한 모눈종이에 치밀하게 악보를 적어나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죠. 서양음악계에는 애매함이 개입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숫자로 지정하는 악보를 쓴 작곡가도 있고요. 이런 점은 과학과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후쿠오카: 그러네요, 과학과 비슷해요.

사카모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수학과 비슷한 느낌으로 ‘자신의 소우주를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열정을 쏟게 되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접근으로, 아무리 노력한들 악보가 음악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작곡가는 자신이 일종의 신의 관점을 지녔다고 오해하기 십상이라, 그 소우주를 창조하는 일을 최종 목적으로 착각하기도 해요.

후쿠오카: 생명과학 역시 마찬가지예요. 유전자에 적혀 있지 않은 것은 생명현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유전자 만능주의가 횡행하고 있으니까요. - P176177

사카모토: (전략) 악보 만능주의가 옳지 않다고 깨닫게 된 건 어느 훌륭한 연주자가 제가 막 작곡한 신곡을 눈앞에서 연주해준 순간이었습니다. 분명 제가 악보 속에 소우주를 만들어놓았는데, 그녀가 연주를 시작하자 제 머릿속의 그림과는 다른, 더욱 근사한 음악의 우주가 펼쳐지더군요. 그때 ‘아, 그렇구나. 음악이라는 소우주를 만드는 건 작곡가만이 아니었어. 연주자도 똑같이 만들어내고, 때로는 작곡 이상으로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었고 그 이후로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바뀌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이번에는 ‘듣는 사람이 없으면 진정한 음악은 성립하지 않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의 현대음악은 들려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었달까, 청중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예술가답고 멋지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꽤 영향을 받았고요. 그런 제가 바뀐 건 ‘듣는다‘는 행위가 음악의 중요한 요소임을 강하게 의식한 이후부터입니다. 비록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음악의 원환圓環이란 악보를 쓰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듣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성립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죠. - P18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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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세 예능을 읽다 문화와 역사를 담다 22
마쓰오카 신페이 지음, 김현욱 옮김 / 민속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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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예능을 읽다라는 제목을 듣고 처음에는 제아미世阿弥와 리큐利休, 그리고 꽃꽂이의 이케노보 센오池坊専応 등과 같은 명사 중심의 인물 열전 형식으로 풀어가려고 했지만, 오히려 중세 예능에 대한 통상적이지 않은 문제나 주제를 설정한 후에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쪽이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따라 권진勸進’ ‘천황제天皇制’ ‘렌가連歌’ ‘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정하고, 각각의 측면에서 중세의 예능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1

 

 내용에 앞서서 서두에 밝힌 구성의 방향부터 인상적이다. 일본의 전통 예능, 그중에서도 노의 전문가인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 안정적인 구성이 무엇인지부터 짚는다. 그 자신이 언급한 제아미(), 센 리큐千利休(다도), 이케노보 센오(꽃꽂이)처럼 일본 예능 각 분야의 시조격인 인물을 축으로 내세워서 그들의 삶과 해당 분야의 초기 역사를 교차시키고, 또 그런 대가들의 서사를 병치시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전형적인 구성은 과거의 대가들을 현재의 대가인 저자가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음을 최대한 이용해 보는 것이다.

 

 이 책이 저자의 대중 강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효율적 구성의 측면을 더욱 의식하게 된다. 제아미, 센 리큐, 이케노보 센오처럼 일본인이라면, 특히 이런 강의를 들으러 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인물과 그가 세운 분야에 대한, 현재의 대가다운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청중들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저자 자신이 결국은 택하지 않은 당초의 구성에서 굳이 효율성을 찾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반면에 저자가 중세 예능의 특성으로 짚은 “‘권진’ ‘천황제’ ‘렌가’ ‘’”은 그야말로 추상적인 개념인데다가, 현재의 대중들로서는 중세 예능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이 강연에 참석할 정도의 청중들이 당연히 아는 노나 다도 등에 관한 소양은 큰 소용이 없는, 온전히 저자, 강연자의 고유한 관점에서 시작하는 강연이다. 물론 저자가 다루는 내용의 수준은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도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자신이 이미 이 분야가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한 일본인은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우선 낯설다고 여길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등장한 때의 유홍준이 이와 가깝고, 성공적인 사례일 것이다. 현재의 그는 그때의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에, 더 이상 그때의 그와 같지 않다고 여긴다. 즉 이때의 한국에선 그때의 유홍준 같은 전문가가 썩 떠오르지 않는다. 독자가 친한 주제를 낯선 관점으로 어렵지 않게 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중을 고려하면서도 대가다운, ‘자극적인독서 경험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런 책에 대한 만족도는 수렴하기보다는 분산되기가 쉽다. 물론 수렴되더라도 나쁘지 않다. 다행히도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 독자가 모였다는 뜻이어서다.

 

 이 책을 저자가 당초에 생각해 보았던 중세 예술가 열전 식으로 구성했다면, 그들 각각에 대한 저자의 지식, 통찰의 밀도와는 별개로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한 권의 책으로서의 틀과 축은 모두 헐거울 수밖에 없다. 밀도가 높고, 아는 인물에 대한 몰랐던 정보들을 얻어서 전반적인 만족도가 높아지므로, 이 전체 인물들이 모인 이유와 효과에 대한 측면을 생각할 독자의 동기나 공간이 희미해질 뿐이다. 그런 헐거움 자체는 그대로 남는다. 개별 독자들의 그런 기분의 측면보다도 그들에게 전하는 주제 자체를 숙고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세미마루蝉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천황제 내부의 부정이 왕자의 기형적인 신체로 표현된 것이라는 시점에서 보고자 한다. 세미마루(쓰레ツレ)의 경우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누나인 공주는 머리가 곤두서는 사카가미逆髪(시테シテ)‘라는 기형이다. 머리는 여성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곤두서버린다는 것은 결정적인 결함일 것이다. 이러한 기형을 가진 공주가 사가카미이며, 그녀가 경계 지역에 버려졌다. 그에 앞서 앞 못 보는 왕자 세미마루가 경계 지역인 오사카야마逢坂山로 유기되는 부분부터 노 <세미마루>는 시작된다. -78

또는 이에 관해 사신설四神説이라고 하는 신화적 원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낳은 아이는 처음이 아마테라스天照大神이며, 쓰키요미노미코토月読命가 두 번째로 태어난다. 세 번째로 히루코ヒルコ라는 다리를 저는 아이가, 네 번째로 스사노오スサノヲ가 태어난다. 그리고 아마테라스 신의 자손이 천황으로서 일본을 통치하는데, 네 번째 왕자인 스사노오는 저항하고, 세 번째 왕자 히루코는 바다에 떠내려 보낸다. 이 유형으로 해석하면 히루코의 계보에 있는 것이 사카가미이며, 스사노오의 계보에 해당하는 것이 세미마루라고 하는 이해도 가능하다. 양자 모두 부정이라는 것이 신체장애로 형상화되어 경계 지역으로 유기되거나, 배제되거나 하는 일이 실제로 노 <세미마루>에서 나온다. <세미마루>는 전쟁 중에는 공연이 금지되었던 곡이다. 메이지 이후의 천황제는 이러한 부분을 허용하지 않는 천황제였다. 그러나 그 이전의 천황제는 천황의 권위가 약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부분을 허용하는 천황제였다. -79

 

 중세 일본에서 서민들의 자원을 대형 불사(佛事)로 유도하는 선교 활동인 권진의 핵심 수단으로서 노의 원형인 공연 예능이 형성된 측면과 이 예능이 현재까지 일본 문화의 일부인 노로 이행해 온 동인動因으로서 천황제와의 연관성을 짚어 가는 흐름이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먼 과거의 중세 예능이 어째서 현재와 같은 양식으로 여태 살아남았는지 생각하도록, 그래서 결국은 중세 예능이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를 독자가 스스로 새롭게 인식하게끔 돕는 까닭이다. 지금 이 주제를 알아야 하는 가장 본질적인 지점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이 책이 노아미와 같은 개별 인물을 중심으로 짜였다면, 세미마루의 맥락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과거 천황 존재의 이중성가장 정결해야 하는 존재여서, 공연을 올리는 떠돌이 예인藝人과 같은 여항閭巷의 존재들과 그들이 주도하는 예능 활동의 부不淨을 어떻게든 의식, 포섭해야 하는을 지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 전개할 이유도 없었겠지만 말이다그런데 저자는 이 중세 천황의 이중성이란 지점에서도 좀 더 나아간다. 바로 이런 이중성 자체를 은폐, 부정한 메이지 이후 천황제의 근본적 취약성이다. 


 천황제 내부에도 결함, 부정, 기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중세 예능에서 기원한 노는, 이런 부정한 존재를 배제, 배출하려면 먼저 이 존재를 의식, 포섭할 수밖에 없는 제정일치적 역설의 합리화라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메이지 이후로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까지 일본의 천황제는 만세일계의 청정함만 일방적으로 강변했다. 최소한의 중세적 역설마저 거부한 것이다. 그(메이지) 이전의 천황제는 천황의 권위가 약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부분을 허용했다는 저자의 표현은, 그렇다면 천황제 내부의 이런 결함, 부정, 기형에 대한 대응, 표현, 인식 자체를 금지한 메이지 이후 천황의 권위가 과연 강고했을지 의문을 일으킨다.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그런 서사의 측면조차 막아야만 하는 권위란 외피와는 무관하게 내용이 너무 박약하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의 천황제는 이 메이지 유신 후의 과도한 권위주의와 거리를 두었다는 점에서, ‘세미마루의 공연 금지에서 보인 이런 자신감 결핍이 현재의 천황제에도 그대로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천황제가 여전히 지속되는 이상, 중세적 성격뿐만 아니라 메이지 유신 이래의 근대적 성격도 현재의 천황제에 여전히 반영된 까닭에, 천황제가 고결함, 청결함을 고수하기 위해 불결함에 대응한 방식뿐만 아니라, 그런 대응 방식 자체에 역사적으로 대응해 온 2차적, 메타적 방식은 여전히 주목할 가치가 크다. 이처럼 노 세미마루에 천황제의 존재 방식, 즉 중세와 현대를 관통한 일본 역사와 사회의 단서가 있다는 통찰은, 일본 중세 예능이 지금 존재하고 그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세 예능의 구체적 내용, 사실을 말하는 것 이상인 셈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던 선의 유게遺偈에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선종, 특히 임제선臨済禅의 기봉機鋒의 날카로움, 속도, 순간 지향성 등과 같은 것이다. 이는 그때까지의 일본인이 체험한 적이 없는 신선한 감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전광 운운하는 번개 치는 순간의 이미지는 그때까지의 일본문학에서는 중심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 말경부터, 특히 남북조기의 다이헤이키太平記시대가 되어 그러한 것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은, 선이 유입됨에 따라 새로운 감각이 일본문화 속에 주입되고, 그것이 일본문화의 일부가 되어 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3

 

 일본이 중세 시대로부터의 예능을 현재까지 존속시켰다는 사실과 함께, 그 예능의 형식과 내용은 지금까지 항상 변해 왔고, 그 시초로부터 따지면 현재는 크게 변했다는 점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현재 보는 과거의 문화가 근원적, 본래적으로 지금과 동일했으리라는 내 일방적 확신이 너무 깊고 강하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돌아본다. 2025년의 시점에서는 아무리 오래전부터 내려온 예능, 문화라 해도 처음부터 전통적, 중세적이었던 예능은 없다. 어느 시점에든 낯설고 새로운 감각이었기에, 그 감각이 지금 이 시점까지 ‘중세로서’ 남았다


 이제 일본에서는 눈이 먼 황자가 버려지는 노 세미마루를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그 무대의 경지를 당장 열심히 즐기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전혀. 그에 담긴 약점만 잽싸게 알아채서는 기어이 찍어 누른 퇴행적 시대를 겪은 이상에는 더더욱 그렇다. 중세와 전통 문화에 각인된, 중세만도 못했던 근현대의 역행도 그 일부로서 기억, 포섭해야만 한다. 중세는 중세 당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같은 중세로 읽히지 않았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가 읽은 나름의 중세가 있었던 셈이다. 이 사실을 중세보다도 더 중세적이었던 메이지의 중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세보다 소란하며 박약한 권위주의가 납작하게 누른 진정한’ 중세, 전통에 마음 놓고 싶은 사회적 욕구는 내 생각보다 항상 강하다. 맥락이 풍성한 관점을 접한 덕분에 박절한 관점의 갑갑함까지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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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기사에 스스로 점점 만족을 못 느낀다고 털어놓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여전히 과학에 관해 쓰고 싶지만, 다른 식으로 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편집자가 으레 하듯이, 조가 이 새로운 방식이 어떤 것인지 물었을 때 나는 딱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 P2324

기사에 쓸 만한 것이 있을까 주위를 흘깃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 자신의 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궁금해졌다. 그들은 이곳이 월드와이드웹의 탄생지임을 알까? 디지털 우주가 기원한 이곳에서 물리적 우주의 기원도 탐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이가 있을까? - P25

고생물학자나 고고학자와 달리, 물리학자에게는 연구를 시작할 유적이나 화석이 없다. 변하지 않은 채 후대로 전해지는 것이 전혀 없다. 물리학자가 연구하는 모든 것은 변형되고 진화하고 융합한다. 진리는 그냥 발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재현해야 한다. - P25

물리학과의 우리 모두는 그 기사가 어떻게 나왔는지 잘 알았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잘 쓴 기사였다. 그는 연구자들을 희화화하지 않았고, 그들의 연구 경력에 입발림하는 칭찬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기사가 크게 호평받은 것은 그가 연구 정신과 그 연구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제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 기사는 내가 지나다니는 복도 게시판에 꽤 오랫동안, 몇 달 동안 붙어 있었고, 나는 작게 나온 그의 사진과 이름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뭐 그런 쪽이었다. - P31

이론물리학은 대체로 사적인 활동,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열정이 흘러나와 외부 표현물을 찾아낸 듯하다. 나는 설령 의미 없는 소품이라 할지라도, 이 강당의 분위기를 다시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간직하고 싶다. ‘세른 공기: 2012. 7. 4.‘라고 라벨을 붙인 볼품없는 주석 깡통이라도 누군가 팔기 시작한다면, 나는 그걸 사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설 것이다. - P3334

오래전에 찍힌 색 바랜 사진을 통해 나를 사랑하고 따스하게 품어주는 할머니는 갑자기 수수께끼를 간직한 인물이 되었다. - P53

"이 힉스 보손 기사 말인데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요? 오늘 아침 여기에서 터져 나온 감정에 관해서도 썼어요? 이 연구에 매달려온 사람들, 아니 이 연구 자체가 삶이었던 사람들의 기쁨은 담았어요? 그들의 흥분, 혼란 그리고 그들이 이 연구에 쏟아부은 피와 땀, 눈물은요?" - P56

"내 말은요, 독자들에게 모든 사실을 마지막 하나까지 다 들려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냥 그것들이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지만 보여주면 되는 거죠. 연결을 보여주는 거예요. 과학을 보여주세요!" - P57

"아시겠지만, 사상은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마음속에서 구현되는 거죠. 바로 그 때문에 이론 물리학자들이 자신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대중에게 설명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거예요. 우리는 보여줄 물질적인 것이 거의 없고, 모든 활동이 펼쳐지는 장소인 마음속으로 사람들을 초청할 수도 없어요." - P60

그녀가 떠날 때, 나는 손에 쥔 종이를 편다. Breaking.symmetries@gmail.com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억누를 수 없다. 모든 최고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알려주는 주소 같다. - P63

안녕, 사라
처음 두 장이에요. 집필은 가장 좋을 때에도 외로운 과정이 될 수 있어요. - P72

(아이작) 뉴턴은 겉으로 보이는 복잡성 아래 질서가 있다고 믿었고, 비록 결과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을지라도 원인을 보면 자연이 단순하면서 스스로 공명한다고 믿었다. 이를 토대로 그는 일련의 규칙을 제시했다. 교회에 있는 규범에 거의 상응하는 자연철학의 규범을 정립했다. 이 규칙은 단순했다. 만물의 일차원인은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원리로부터 유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인은 반드시 결과보다 단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P115

비슷한 결과들은 동일한 원인에서 비롯될 것이다. 일반진리라고 확언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자연철학에서는 드러난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 외에 다른 원인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 P115

불타는 모습은 그 어떤 전조가 아니라, 그저 태양을 도는 우리 행성처럼 확실하게 규정된 궤도를 따라 지루하게 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었다. 혜성은 운명의 전령이 아니었고, 따라서 두려워할 대상도, 인간사에 조언을 해줄 존재도 아니었다. 우리의 운명을 바꿀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운명이 속박되어 있는 것은 천체다. - P123

"맞아. 거의 같은 맥락이었지. 지상은 천체의 그림자가 아니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견해가 귀족이 관찰한 것에 비해 잿더미나 다름없는 것도 아니야. 어떤 개념의 진가는 그 본질적인 가치에 있는 것이고, 검사와 시연을 견디는 능력에 있는 거지. 자연은 우리 모두를, 왕과 농민을 동일한 규칙에 따라 똑같이 대해. 자연은 천체와 지구를 구별하지 않아." - P126127

"(전략)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야. 아이작 경은 자신의 전설적인 연구가 불완전하고 미완성이라고 고백하면서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개괄했을 때 크게 용기를 낸 거야. 그는 사과도 변명도 하지 않고, 그저 그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지. 뉴턴은 자신이 간파한 중력이 중간에 매개하는 것이 전혀 없이 아주 먼 거리에 걸쳐 작용하는 힘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았어. 이 점을 인정한 것은 그의 실패가 아니라 위대함이었고, 후대 학자들에게 설명하는 일을 맡긴 거지. 그는 이렇게 썼어. ‘자연을 설명하는 일은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세대에게 너무나 어려운 과제다. 확신을 갖고 무언가를 좀 하고, 나머지는 후대의 누군가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낫다." - P129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대학교가 교양 교육의 장소이며, "과학 추구를 삶의 본업으로 삼는" 우리 같은 이들조차도 자신의 연구와 "문학이든 문헌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간에 다른 학문들 사이에 연결을 이루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어. 그는 "과학자들 사이에 팽배할 수도 있는 협소한 직업 정신"과 "사람들이 작은 세계, 자신들의 아주 작음에 더 알맞은 세계로 응결되는" 경향을 경계했어. - P146

이전의 뉴턴처럼, 맥스웰도 수학의 힘을 써서 추상적 관계를 정확히 표현하고, 이론을 세우고 그것으로부터 구체적인 예측을 내놓을 수 있었지. - P157

맥스웰의 방정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진동하는 전기장이 진동하는 자기장을 생성하고, 또 그 반대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끝없이 번갈아 진동하는 이 운동이 빛의 요람을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난 거야. 빛은 맥스웰의 이론에서 파동으로 여겨져. 이 방정식에서 도출된 일정한 속도로 전자기장에서 퍼져나가는, 자체적으로 유지되는 물결치는 교란이야. - P167

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할 때 우리는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은 상황들에서 특정한 수학적 형태가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런 사례들에서 비록 해당 양들의 물리적 해석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관계의 수학적 형태는…… 동일"해. 그에 따라 ‘추론 사슬‘도 서로 아주 비슷비슷하니까, 수학 수수께끼를 푸는 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어. 한 계를 연구하여 얻은 지식을 다른 계를 파악하는데 적용하는 거지. 이런 계의 물질적 측면만 살펴본다면, 우리는 어떤 유사성도 찾아내지 못할 거야. 본질적인 관계를 수학적으로 기술해야만 닮은 점이 드러나.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 사이의 유추를 통해 계속 숨겨져 있었을 연결 관계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수학적 형태의 유사성 덕분이지.

*system, 과학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는 통일된 전체 영역을 가리키는 말. 계 바깥은 환경이 된다. —옮긴이 - P168169

제대로 음미하고 싶어서 원고를 인쇄한 뒤 내가 아는 가장 평화롭고 조용한 곳으로 갔답니다. 와이드너 도서관의 서고예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높은 책장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바깥에 신경을 빼앗길 일이 없고, 온 세계가 책장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축소된 곳이지요. 오로지 희미하게 풍기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어요. 당신의 글이 나를 다른 시대와 장소로 데려갔으니까요. - P172173

맥스웰의 전설적인 방정식을 그렇게 낯선 언어로 읽고 있다 보니, 사실의 객관성과 그것을 우리가 내면화할 때의 주관성 사이의 창의적인 긴장을 새삼 느끼게 돼요. 우리 각자는 자신의 경험이라는 망토로 세계를 덮고 있다는 것을요. - P174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원대한 목적이 최소한의 가정을 토대로 최대한 많은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보았어요. 그리고 그는 그 일을 탁월하게 해냈지요. 통합의 대가인 그는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묶고, 질량과 에너지를 연관 지었지요. 그가 특수 상대성과 일반 상대성의 주역인 빛과 중력의 혼인을 중매하려고 나선 것도 필연적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실패했지요. 그가 양자역학을 완고하게 거부한 탓도 있었어요. 그는 확률 용어를 써서 정립된 이론은 "우리를 신의 비밀에 더 가까이 데려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 P178179

개념은 상품이 아니라, 생명체예요. 어느 개념과 사랑에 빠질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교환이 가능한 것도 아니지요.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가치 있는 것을 이루려면 자신에게 충실해야 해요. - P179180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는 냉철한 과학자라는 신화가 "경험에도 반할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 떠올리기도 어렵다"라고 반대하면서 탁월한 지적을 합니다. "법정에서는 변호사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상반된 주장을 펼친다. 특정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는 상상력은 그 견해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사람만이 지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일이 진행되는 방식이지요. 다른 방법은 아예 없어요. 주관성은 과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강화합니다. 생각이 저마다 다른 아주 많은 이들이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때 좋은 점은 능력에 상관없이 결코 어느 한 사람이 전체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각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열정을 추구해요. 진리는 그 집단적인 노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지요. - P180

아인슈타인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시간이 팽창해 보인다고 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으므로, 이 말은 내 운동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지각이나, 남들의 운동을 보는 내 지각에만 적용된다. 자신의 기준틀에서는 모든 일이 늘 일어나는 그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이들을 본다면, 나는 그들의 시간이 내 시간보다 느리게 흐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만히 있고 내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똑같이 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의 시계가 평소처럼 움직이는 반면 내 시계는 느리게 가고 있다고 지각할 것이다! 이 명백하게 모순되는 현실들 중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방법은 전혀 없다. 둘 다 똑같이 옳다. 모든 논리적 단계들을 밟았다고 해도, 이 불가피한 결론은 여전히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 P204205

우리가 이미 확인했다시피, 중력은 가변적인 힘이다. 힘의 세기를 자동으로 조정함으로써 모든 질량을 지닌 물체가 미리 정해진 비율로 가속되도록 한다. 이러한 사실은 중력의 속성과 가속도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아인슈타인은 그 관계를 알아내겠다고 결심했다. - P220

나는 난생처음 보는 듯 밤하늘을 응시했다. 별빛이 무심하게 태양 옆을 쌩 지나치는 대신에 사실상 고개 숙여 인사한다는 것을 과연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컴컴한 깊은 우주 공간에서 이 미묘한 사회적 인사 교환이 기나긴 세월 동안 이루어져왔다. 나는 천체가 얼마나 더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자연의 섬세한 예의범절이 또 뭐가 있을까? - P234

(닐스) 보어(Niels Bohr)가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을 때, 그 이론은 아직 풋내기에 불과했어. 서툰 10대 청소년처럼 인습 타파적이고, 반항적이고, 어색했지. 기존 학계는 마치 부젓가락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 그러나 모든 청소년이 그렇듯, 양자론은 그냥 환영받기를 원했어. 고전역학에 아직 완전히 세뇌되지 않았고 대담한 새로운 개념을 아직 열린 마음으로 대할 젊은이들에 둘러싸일 필요가 있었어. 아주 격식 없는 분위기인 보어의 이론물리학 연구소는 이 어린 이론이 자라는 데 필요한 바로 그런 양육 환경을 제공하는 집이었어. - P240

사람들은 동료애가 넘치는 코펜하겐 회의가 공식적인 솔베이 회의(Solvay Conferences)와 전혀 다르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와닿은 것은 둘이 같은 씨앗에서 발아했다는 거야. 물리학이 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음으로써 말이지. 어느 면에서는 이런 회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세계가 너무 커서 어느 한 사람의 마음속에 담길 수 없는 광기에 직면해 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해. - P244245

지난 약 15년 동안,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은 나란히 함께 쓰였어. 모순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야. 보어-조머펠트 원자 모형은 전자 궤도가 양자화해 있다고 말하면서도, 고전역학 법칙을 써서 그 에너지를 계산했어. 그 계산은 잘 들어맞았지만, 물리학자들은 뻔히 드러나는 논리적 모순을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있었지. 윌리엄 브래그(William Bragg) 경은 자신이 월요일·수요일·금요일에는 고전 이론을 쓰고, 화요일·목요일·토요일에는 양자론을 쓴다고 말했다. 아마 쉬는 날인 일요일에는 이 지옥 같은 선택의 중압감에서피신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이중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하나의 일관된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어. - P268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는 수학이 길을 열어줄 것이라 믿고, 방정식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어.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 그는 친숙한 대수 규칙들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 듯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몹시 실망스러운 일이었어. 그가 연구하고 있는 양들이 경험과 전혀 들어맞지 않는 기이한 특성을 보여주었어. 이 양들의 곱이 곱하는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였지.
선입견을 버리겠다고 결심했음에도, 그는 이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어. 그것이 자기 이론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 다행히 그 곱셈의 비가환적 특성에 모두가 실망한 것은 아니었어. 괴팅겐의 막스 보른(Max Born)은 이 ‘새로운‘ 법칙이 수학자들이 오래전부터 행렬 같은 가로세로로 배열된 대상들을 곱하는 데 썼던 잘 알려진 법칙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어. 그러니 하이젠베르크가 말하고 있던(자신도 모른 채) 것은 위치와 운동량 같은 양들이 양자 규모에서는 어느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행렬 전체로 나타난다는 거였지. 당연히 이 개념은 낯설었지만, 적어도 수학적 논리에 어긋나지는 않았어.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는 이 연구를 양자론의 서광(Morgenrote)이라 부르고 그것으로 수소 원자의 에너지 스펙트럼을 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예기치 않게 축복을 내리는 은혜를 베풀었지. - P281282

이 발전 단계에서 양자역학은 여러 성부가 함께 노래하는 복잡한 음악처럼 들리기 시작했어. 엄밀한 목소리뿐 아니라 직관적인 목소리도 합쳐졌지. 시각화하려는 사상가도 열정적인 수학자도, 형식 체계의 애호가도 철학자도, 이론가도 실험가도 거기에 속해 있었어. 비록 이 다성부 음악이 더 풍부한 소리를 내긴 했지만, 각 선율들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었고, 불협화음이 확연한 음도 있었어. 그래도 돌이켜보면, 이렇게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끝없이 말을 주고받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빨리 또 멀리까지 양자론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 확실해. - P282283

하이젠베르크 역학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베이곤 하던 물리학자들에게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의)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한 파동의 수학은 상처에 바르는 연고나 다름없었어. - P285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이렇게 말했지. "이 퍼짐은 밀도의 퍼짐이 아니다. 위치의 비결정성, 즉 입자가 특정한 위치 범위 내에 있을 확률의 분포 범위가 더 넓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슈뢰딩거의 파동이 통 안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통이 균일한 밀도의 물질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에든 있을 가능성이 똑같은 입자가 하나 들어 있다는 뜻이다." - P287

많은 이들이 과거의 결정론적인 고전역학에 향수를 느꼈지만, 좌절감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킨 것은 설령 단어들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한다 해도 기존 어휘를 써서 양자 현실을 아예 기술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어. 슈뢰딩거가 말했듯이,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도약은 평범한 사자에서 "날개 달린 사자"—비록 우리의 경험에 속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상상할 수는 있는—로의 전이가 아니라, 원과 삼각형에서 ‘삼각 원‘ 같은 명백히 자기모순적인 실체로의 도약과 비슷한 거야. 더 나아가 그는 그런 모형을 아예 상상조차 못한다고 말했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지? - P288289

사실상 이 터무니없을 만치 직관에 반하는 말은 입자와 파동의 관점에서 묘사하려고 할 때 비로소 이해가 가. 파동을 정확한 위치에 속박하는 방법은 오로지 한 점에 가까운ㅍ곳에서는 서로 보강하고 그 밖의 지점에서는 서로를 소멸시키는 식으로, 파장이 다른 파동들을 아주 많이 덧붙이는 것뿐이야. 그러면 입자를 닮은 아주 선명하게 집중된 ‘태풍의 눈‘이 나오지. 국부화가 이루어졌기에, 이 ‘입자‘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지만, 더 이상 특정한 파장을 지니고 있지 않아.
반대로 파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쪽을 선택하고 광선을 하나의 파장으로 제한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면 위치가 더 이상 정확하지 않아. 파동은 어느 한 지점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야. 반드시 공간의 한 영역에 걸쳐 뻗어야 하지.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물체의 위치나 파장(운동량) 중 한쪽을 더 정확히 알아낼 수 있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반드시 다른 쪽 양의 측정은 모호해지게 돼. - P290291

어쩌면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강력한 교훈은 이것인지도 몰라.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 말이야. 겉으로는 별개인 양 보이는 것들이 더 깊이 파고들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경이로운 근본적인 현실의 서로 다른 측면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 아마 자연의 진정한 모습이 감당할 수 없을 만치 엄청난 까닭에 우리는 걸러진 이미지만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 필터마다 다른 특징을 부각시키고, 대강이라도 전체의 모습을 구성하려면 그 모든 특징들을 종합해야 하지. 이 말이 정말 맞는다면, 아마 우리가 과학에 하는 가장 가치 있는 기여는 세상에 어떤 필터를 갖다 대느냐에 달려 있겠지. - P297

방정식들은 자신들이 자취를 남긴 우회로를 충직하게 따라오면 길이 조금씩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반복해서 증명했지. - P300

마치 온기와 보금자리를 제공했던 공리들이 조각나 부서지고, 우리는 춥고 발 디딜 곳도 없는 무지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지. 때때로 이런 식으로 사유 체계에 구멍이 뻥 뚫리는 듯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야. 해체된 조각들을 다시 모아 재구성해서 기존에 제대로 설명했던 것들을 간직하고, 앞으로 나올 새로운 설명이 들어갈 공간까지 갖춘 새 구조를 만드는 거지. - P321

하지만 과학자들도 참을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야. 1936년 뮤온(muon)이 발견되자, 과학자들은 거의 모욕감을 느꼈어. 뮤온이 존재할 이유가 전혀 없었거든. 뮤온은 어느 모로 보나 전자와 똑같았어. 2백 배 더 무겁다는 것만 빼고. 이지도어 라비(Isidor Rabi, 나중에 노벨상을 받았어)는 이렇게 절망감을 드러냈지. "대체 저걸 누가 주문했지?" - P330

여기 체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42번 버스는 내가 휴식을 취할 때 애용하는 공간이 되었어. 이 버스는 느긋하게 한 시간 반 동안 트리에스테의 중심가에서 국경 근처에 있는 오피치나라는 그림 같은 소도시의 조용한 거리까지 운행해. 완만하게 굽은 길을 따라 가면서 굽이를 돌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경치가 계속 펼쳐지지. 몬루피노의 거대한 석조 건축물, 깊은 곳에서 수정 같은 불빛이 반짝거리는 그로타지간테 동굴, 꼭대기에 승리의 여신 석상이 있는 파로 델라 비토리아 등대를 지나 트리에스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계속 올라가.
승객은 대부분 동네 주민들이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 말에 밴 경쾌한 운율이 아름다운 풍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언덕에 줄지어 있는 나무들을 따라 늘어선 그림 같은 집들이 저녁놀의 무지갯빛 색조에 잠겨 빛나고 있어. 또 해가 지면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녹아들어 마치 딴 세상처럼 빛나고 있어. 이런 환경에서 오페라의 열정적인 노래와 퇴폐적인 멜로디가 나오는 것 같아. 이탈리아의 흘러넘치는 아름다움이 그런 소리들을 불러낸다고나 할까? - P335336

어떤 물체를 대칭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물체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작용이 있다고 말하는—또는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 - P339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이렇게 썼어. "마음에 품은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인내심을 갖고, 질문 자체를 사랑하려고 애써라. 잠긴 방처럼 그리고 지금은 아주 낯선 언어로 쓰여 있는 책처럼. 지금은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 갖고 살아갈 수 없는 해답이 주어질 리 없을 테니까. 한마디로 삶에 충실하기를. 지금은 질문을 품고 살라. 아마 훗날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서서히 답에 다다를 테니까." - P357

물리학자가 무언가를 정준적(canonical)이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이 권위가 있고 받아들여져 있고 표준에 포함될 가치가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한 선택을 의미해요. 논리적 불가피성, 사실상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진술, 아름다움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지요. - P435

우리는 최종 이론이라면 무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기대해요. 단 몇 가지 원리를 선택해서 입력하면, 우리 우주 전체가 독특하면서 필연적인 출력으로 나와야 한다는 거지요. 진정으로 근본적인 이론은 관찰 가능한 모든 양에 관한 구체적인 예측을 내놓아야 해요. 실험의 목적은 이런 값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확인하는 것이 되어야 해요. - P440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어요. "더 포괄적인 이론을 소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자신이 그 이론의 한정된 사례로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물리 이론에 할당된 더할 나위 없이 공평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계속 확장되는 지식에 맞추어 진화하는 기본 틀이지요. 우리는 과거의 이론 위에 새 이론을 구축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요. - P44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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