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 - 소세키의 당고집부터 백 년 된 여관까지
여지영.이진숙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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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사는데, 굳이 도쿄에 가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주제 파악 못한 소리다. 아니다, 실은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기는 하다. 휴가를 내서 일본에 간다면 역시 교토에 가고 싶으니까. 도쿄에 가면 이곳을 베끼려다 말아 먹은 서울이 생각나지만, 교토에서는 굳이 한국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그동안 몇 번 다녀왔지만, 여전히 도쿄로 향하는 길은 좀 어렵다.

 

 올해 초에 며칠 시간을 내 도쿄에 다녀왔다. 1월이어서 아직 겨울이라고 부를 법한데도 제법 포근했다. 산토리홀에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를 들었고, 우에노(上野)의 도쿄국립박물관에서는 안진경(顏眞卿) 특별전의 제질문고(祭姪文稿)와 이공린(李公麟)오마도권(五馬図巻)을 보았으며, 우에노노모리미술관에서는 베르메르 특별전을,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루벤스 특별전을 보았다. 도쿄는 도쿄다웠다.

 

호메이칸은 서민을 위한 여관이다.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과거, 특히 전쟁 시에는 군인들의 사택이었고, 전쟁이 끝나고는 집을 잃은 사람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지방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다. 이때 지방에서 온 아이들 중에는 가난한 아이도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에게는 쌀이나 잡곡 등을 숙박료 대신 받았다. -249

 

 45일 중에서 앞의 2박은 숙소가 마침 우에노 근처의 호메이칸(鳳明館)이었던 덕분에,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저 세 미술관을 한 번에 모두 둘러보았다. 딱히 료칸(旅館)을 동경하지 않고 서민풍의 숙소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1898년에 지은 오래된 건물을 아직까지 여관으로 쓰고 있다기에 한번 묵어 보고 싶었다. 마침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근처 도쿄대학 학생들을 겨냥한 하숙집이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무릎 꿇고 시중드는 여주인과 종업원이 있는 그런 격식 높은 료칸이라기보다는, 학생 시절에 수학여행의 숙소로 묵었을 법한 정취가 감도는 여관에 가까웠다.

 

 하지만 실은 허름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은 그 나름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켜왔다는 사실이야말로 어느 격식보다도 대단한 것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적절한 요금을 받고, 그에 맞는 안온한 시설과 접객의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 요소들 사이의 현실적인 균형을 찾아내는 감각과 그 가치에 대한 확신이 계승되어야만 가능한 까닭이다. 이만한 규모와 자본의 도시에서 이런 적당한 공간과 그 지향이 지금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쿄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며칠 전 우리 가게(세이운도인방)에 스물두세 살 정도로 보이는 손님이 찾아왔다. 막 취직을 했는데 자신만의 도장을 갖고 싶어 물어물어 찾아왔다고 했다. 나로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다. 물건에 대한 철학을 가진 것이 고맙고, 그것이 좋은 고집으로 보였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신이 지닌 물건에 대한 고집이나 좋은 것을 구분하는 안목을 지녔고, 작은 도구건 큰 도구건 상관없이 원하는 물건에 대한 생각과 고집이 훌륭했다. 그래서 솜씨가 좋은 장인이 많았던 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문화가 없다. 장인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유다.” -237

 

 도쿄의 각 지역에서 저마다 개성과 가치를 지닌 상점들을 하나씩 뽑아서 소개한 이 책은 오래된 가치를 대를 이어 계승하는 공간과 그곳의 사람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쉽게 상상하는 일본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여 주고 있지만, 그 매장들이 현재 처한 난관과 미래에 닥칠 위기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솔직하다. 그들이 지금까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지켜온 원칙과 그것을 가능케 한 저력을 존중하고 이방인으로서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그러한 과거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변화와 압력을 극복하도록 도와 줄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않는다. 오래된 가게란 앞으로도 오래 갈 가게이기도 하지만, 이미 충분히 오래되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이 책에서는 이미 없어졌거나 곧 없어질, 혹은 지금쯤 없어졌을지도 모를 가게들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애초에 지금 여행객들이 꼭 찾아가야 할 명소로 이곳들을 소개하는 대신, 한 가게가 도쿄의 거리에서 그 동네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물려받은 전통과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면 오래도록 가게를 이어갈 수 있다는 비결은 물론 정성스럽고 위안도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도 당연히 존재한다. 가게가 오래되었으므로 없어졌다면 한편으로는 스산하면서도 실은 무척 자연스럽다. 적어도 오래되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어떻게든 버티는 가게보다는 훨씬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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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 - 소세키의 당고집부터 백 년 된 여관까지
여지영.이진숙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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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개하는 오래된 상점 이야기 속에는 어쩌면 대단하게 비쳤던 일본의 장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애잔함이 있다. 사무라이 때부터의 신분 세습으로 남을 넘볼 수도 없었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역전이 안 되는 사회, 오직 주어진 환경에서만 순응하고 살아야하는 이미 정해진 신분의 숙명 때문에 장인이 계속 태어났다. (이진숙)-7쪽

일본의 격식 있는 음식점들은 작은 이쑤시개 하나에도 품격을 더한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가이세키 요리를 내면서 후식과 이쑤시개를 아주 싼 것으로 쓰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무리가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고급 음식점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쑤시개 전문 브랜드가 ‘사루야‘다. (사루야さるや, 이진숙)-44쪽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건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이토야ITOHya, 여지영)-184쪽

일본의 술은 청주, 탁주, 소주의 구분 없이 모두 니혼슈(日本酒)라고 한다. 그 가운데 사케는 가장 맑게 거른 상태의 ‘청주’를 말하는데 흔히 사케 또는 니혼슈라 칭한다. 사실 청주는 우리에게는 정종(正宗)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중략) 일본의 맛있는 술, 정종이 우리나라로 넘어온 건 일제강점기 때다. 마산에서 생산한 ‘대전정종’, 부산의 ‘앵정종’, 인천의 ‘표정종’ 등의 상표에서 술을 만든 회사나 가문을 나타내는 대전(大典), 앵(櫻), 표(瓢) 등을 떼어버린 게 바로 ‘정종’이다. 그러니 청주를 정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소주를 ‘진로’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토시마야혼텐豊島屋本店, 여지영)-196쪽

“어머니가 사도 좋다고 하기 전에는 마니아가 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중요하죠. 지금 마니아들은 모두 좋은 어머니를 두었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보기만 하고 사지 말라는 것은 옳지 않아요. 가지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한 노력을 가르쳐야 해요. 이게 중요하죠.” (장난감천국 2초메 3번지おもちゃ天国2丁目3番地, 여지영)-215쪽

“인장을 전각할 때는 마음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형태가 가지는 아름다움을 탐닉해야 한다. 그 다음 글자를 구현하기 위한 테크닉, 즉 힘 조절이 필요하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물론 처음에는 힘이 든다.” (여지영, 세이운도인방青雲堂印房)-236쪽

“며칠 전 우리 가게에 스물두세 살 정도로 보이는 손님이 찾아왔다. 막 취직을 했는데 자신만의 도장을 갖고 싶어 물어물어 찾아왔다고 했다. 나로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다. 물건에 대한 철학을 가진 것이 고맙고, 그것이 ‘좋은 고집’으로 보였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신이 지닌 물건에 대한 고집이나 좋은 것을 구분하는 안목을 지녔고, 작은 도구건 큰 도구건 상관없이 원하는 물건에 대한 생각과 고집이 훌륭했다. 그래서 솜씨가 좋은 장인이 많았던 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문화가 없다. 장인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유다.” (세이운도인방)-237쪽

호메이칸은 서민을 위한 여관이다.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과거, 특히 전쟁 시에는 군인들의 사택이었고, 전쟁이 끝나고는 집을 잃은 사람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지방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다. 이때 지방에서 온 아이들 중에는 가난한 아이도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에게는 쌀이나 잡곡 등을 숙박료 대신 받았다. (여지영, 호메이칸鳳明館)-249쪽

(클래식 음악 킷사喫茶 라이온의) 초대 사장 야마데라 야노스케는 라이온의 모든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를 직접 제작하며 큰 애착을 보였고, 자신의 마지막을 라이온에서 보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기까지 했다. 결국 야노스케 씨의 장례식은 라이온에서 치렀으며,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레퀴엠을 틀어놓고 그를 보냈다고 한다. (여지영, 라이온ライオン)-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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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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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자주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것일까? 2004년부터 지금까지 이 서재 블로그를 오랫동안 써 왔고 그 다음에는 트위터에서 꾸준히 떠들고 있지만, 어디서나 다른 이용자들이 여성으로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이 그렇게 생각한 경우가 아마 좀 더 많았던 듯도 하다. 애초에 스스로 여성이라고 말한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 보여야겠다거나, 보이고 싶다는 의도로 글을 쓰지도 않았는데도 너무나 당연하게 내가 여성이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꽤 자주 보고는 한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상수의 입장을 압축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대답이 있긴 했다. 아무리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도 상수가 대답을 거듭하다가 지쳐, 군대 면제였어요,라고 하면 모든 게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37

 

 처음부터 여성으로 보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연애 상담을 해 주는 언니가 되어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게 된 반도미싱의 과장대리 공상수를 보며 내가 겪었던 소소한 오해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당연했다. 게다가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점도 그와 같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아버지는 전직 국회의원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못내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의 면모는, 결국 병역도 언죄다 페이지도 아닌 아버지와 그의 지위,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와 그의 죽음,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친구의 죽음에서 기인한다. 상수가 한국에서 칭송받는 이른바 남성성을 그렇게 우회하고서도, 어떤 성취감이나 뿌듯함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에 이 작품의 현재성이 빛난다. 지금 한국 남성이 그저 인간성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대단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모자라다는 사실을 섬세하면서도 명료하게 보여 주었다.

 

경애는 자기가 인생을 길게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기회라는 것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285

경애가 온종일 엎드려만 있는 유령 같은 학생이라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마음이 너무 강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해 있었을 뿐이었다. -279

 

 이야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도 간신히 사람 구실만 하면 얼마나 한심한지 납득시키는 것이 상수의 역할이라면, 경애의 역할은 그 빈 구멍들을 느릿하게 빠짐없이 막는 것이었다. 경애는 깊고 오랜 상처와 함께 살고서도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심지를 굳히며 성장해 왔다. 더 유복한 환경에서 같거나 비슷한 상처를 지닌 상수와 견주면, 경애가 얼마나 굳건한지 납득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애 역시 19세에 세상을 떠난 E의 존재를 직시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삶을 가누지 못했다. 어설픈 산주와의 너절한 연애가 그 단면일 듯하다. 모든 면에서 상수보다 충실하게 상실을 경험한 경애조차도 여태 비틀거릴 정도로 불시의 참사는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상수의 눈물만 남았다면 그저 감정 과잉의 원인이 되었을 과거가, 경애의 목소리 덕분에 여태 기억하고서도 끝내 치유하지 못한 그 고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물론 상처를 이기지 못한 상수 덕에 그것을 견딘 경애의 심지가 드러났으니, 둘 중 하나면 충분하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그들(경애와 상수)이 처음 서로를 식별했던 공장 뒤편의 그늘진 창고와 비교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성과는 별로 없고 자랑스러운 성공들은 자꾸 다음을 기약하며 미뤄질 뿐이지만 적어도 둘의 시간은 따로가 아니라 함께 흐르고 있었다. -292

 

 서로 무관할 두 사람을 희미한 사건으로 잇고, 그 단서를 겨우겨우 더듬으며 양쪽 끝의 경애와 상수가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과 구도가 여러모로 절묘한 작품이었다. 이 흐름이 둘 중 어느 한 사람, 특히 남성인 상수의 노력에 기대지 않고 각자가 제 역할을 하며 이루어져서 더욱 빛났다. 경애와 상수가 저마다 자신만의 실패를 딛고서야, 서로에게 향할 수 있었다. 그들은 상대를 기다릴 때조차도 이미 조금씩 가까워졌던 셈이다. 뛰어넘지 않고서 먼 길을 돌아온 덕에 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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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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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에서 팀장대리란, 팀장은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는 사람을 일컬었다. -11쪽

경애는 언제나 어찌 되었건 살자고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렇게 말해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24쪽

아무래도 마음을 잃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날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페이지의 어느 신실한 기록들도 자기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30쪽

간소하지 않다는 건 실용적이지 않다는 뜻이었고 회사에서 하게 될 ‘노동’이라는 데 감이 없다는 것이니까. -31쪽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가난과 폭력, 배신과 거짓말, 종교, 정치, 국적의 차이, 집안싸움, 부모 반대, 언니 또는 형의 반대, 동생의 반대, 베프나 은사의 반대 혹은 기르는 고양이나 개의 반대, 윤리적 판단-불륜, 제삼자의 출현-같은 일종의 유형들이 있었다. 그렇게 소멸은 정확하고 슬픈 것이었다. -35쪽

물론 상수의 입장을 압축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대답이 있긴 했다. 아무리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도 상수가 대답을 거듭하다가 지쳐, 군대 면제였어요,라고 하면 모든 게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37쪽

식장에 가서 무슨 오기인지 50만원을 축의금으로 내고 계단식 연단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평소에 신지도 않던 펌프스 때문에 발가락의 찌릿찌릿한 통증을 참아가며 식당에 가 잔치국수를 먹는 일. 관계의 변화는 그렇게 등 떠밀리듯 왔다. 우리 헤어져, 하는 선언이나 다 관둬, 하며 뒤도는 동작이 아니라 식권을 받아 식당으로 가 남들이 다 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그 절차를 기꺼이 밟으며 그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오는 것이었다. -59~60쪽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그런 여름날 속에서 경애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맥주와 옥수수뿐이었다. 어느날 시장에 갔다가 옥수수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경애는 이삼일에 한번씩 나가서 옥수수를 사왔다. 옥수수의 힘센 잎들, 동물의 것처럼 부드러운 수염, 그리고 아주 꽉 차오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으로 문득 들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듯 어떤 환기가 들면서 산다, 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다. -96~97쪽

경애가 (전 애인인) 산주와 (산주의 새 애인인) 그 여자 선배의 SNS를,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계정에는 선배가 갖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정갈한 쿄오또의 식당들, 고양이, 사회적 공헌을 게을리하지 않는 외국계 기업들에서 생산하는 목욕용품과 화장품, 외국의 식자재들과 유기농과 요가, 유년 시절을 환기하게 하는 놀이공원이나 비스킷, 인디밴드의 영상, 프랑스 소설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모든 예쁘고 환한 것들 사이에는 산주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100쪽

그녀(경애의 엄마)는 경애가 친구들을 잃고 우울증을 겪었을 때에야 깨달았다. 자기가 믿을 게 자신의 두 손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 아기 역시 믿을 건 엄마의 두 손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102쪽

상수도 한때 베트남을 공략해야 한다고 회의시간에 열변을 토하기도 했지만 자기가 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126쪽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다라니 얼마나 절망적인 말인가. 기껏 뭔가를 했는데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라면 얼마나 맥이 빠지는가. 상수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묵 같은 상태의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겉으로는 중량감 있는 색채에, 기포 하나 없이 단단해 보이지만 숟가락질 한번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는 묵 같은 인생. -127쪽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아름다워서 때로는 어떤 풍경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경애는 생각했다. -138쪽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139쪽

상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기숙학원의 생활조교가) 그렇게 강렬한 강도로 자기를 다그치고 닦달했던 상태가 그냥 기숙학원과의 계약이 끝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니. 그렇다면 대체 자기를 그렇게 조련할 수 있는 권리는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나. -149~150쪽

상수는 이따금 죽은 어머니와 나눈 대화들을 맥락 없이 떠올리는데 그중 하나가 엄마, 엄마는 뭐가 어려워? 하고 물으면 어머니가 설핏 웃으면서 오늘이 어려워,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167쪽

집이 변해가는 데는 외부의 영향보다는 내부의 소진이라는 맥락이 있었다. -171쪽

어머니가 지냈던 삿뽀로는 눈이 한 해에 6미터나 오는 눈의 나라라고 했지만 상수가 기억하는 삿뽀로는 넓게 펼쳐진 감자와 옥수수와 무와 당근 같은 것들의 도시였다. -178쪽

경애는 베트남의 여자들, 오토바이 위에 앉아서 시동을 걸고 버스와 택시의 경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묘기를 부리듯 빠져나가는 어리고 젊고 늙은 모든 여자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189쪽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 사람과 깊은 유대를 맺거나 내가 그 사람을 좀 안다는 자부심을 얻는 것과는 다르게 무기력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200쪽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었다. -208쪽

(베트남인 직원인) 헬레나가 나름대로 파악한 (베트남에 있는 한국 거래처) 관리자들의 선호 중에는 술, 돈 이외에 가족 안부와 김치,라는 단어도 있었다. 헬레나는 어떤 영업자는 한국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클라이언트의 한국 집에 들러 베트남으로 보낼 물건을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중에는 무려 10킬로그램이나 되는 김치와 깍두기도 있었다고. 그렇게 보니 헬레나의 노트는 그간 호찌민 지사를 거쳐간 영업사원들의 마케팅 비망록이기도 했다. 그건 어떤 친절과 다정, 도전, 혹은 을의 생존법, 아부, 설득, 포부, 패기의 기록이었다. -211쪽

˝경애씨, 내가 영업 비밀 하나 가르쳐줄까? 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야.˝
˝뭔가요?˝
˝여기서는 절대 금방 떠날 사람처럼 굴면 안돼. 떠나는 사람들한테 사이공은 지쳤거든. 일주일 있더라도 이십년 있을 것처럼 행동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기 마음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버티는 줄 알아?˝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는데요?˝
˝내가 한 이삼일 내로라도 짐 싸서 한국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 안 그러면 못 버텨.˝ -218쪽

경애는-나중에 서른 살이 넘어-그날 E의 집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장면이 없었다면 E를 추억할 공간이 오직 영화관과 전철역 플랫폼 그리고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리뿐이었을 거였다. -240쪽

호찌민 사람들에게 중국동포란 한국인보다는 명백히 중국인에 가까웠고 그래서 경계심이 있었다. 몇해 전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영토분쟁이 있었을 때는 반중 감정이 격해져 중국계 공장들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고 한국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들도 개인적인 린치를 당할까 두려워 외출을 못했을 정도였다. -249쪽

어차피 곧 밤이 되겠지만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고 싶지는 않은 것, 그런 건 욕심이 아니지 않은가 싶어서. -264쪽

경애가 온종일 엎드려만 있는 유령 같은 학생이라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마음이 너무 강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해 있었을 뿐이었다. -279쪽

경애는 자기가 인생을 길게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기회라는 것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285쪽

그들(경애와 상수)이 처음 서로를 식별했던 공장 뒤편의 그늘진 창고와 비교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성과는 별로 없고 자랑스러운 성공들은 자꾸 다음을 기약하며 미뤄질 뿐이지만 적어도 둘의 시간은 따로가 아니라 함께 흐르고 있었다. -292쪽

˝호찌민 사람들 중에 마트에서 닭을 사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 공장 닭들이 얼마나 맛이 없는지 에일린이 먼저 알려줬어요.˝ -293쪽

그렇게 밀려난 자리에는 왜 하나같이 햇볕이 들지 않는 것인지, 앉아 있으면 정오가 왔는지 저녁이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306쪽

생각해보면 경애가 파업 이후 회사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버틴 건, 버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버려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멸 속으로. -307쪽

지금이라도 가서 잡으면 산주는 경애의 인생에서 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가서 나한테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고 있지,라고 한다거나, 나한테 사과할 말들이 있지 않아, 한다거나 아니면 저녁은 먹었어? 혹은 적어도 오늘은 돌아가,라고 한다면. -311~312쪽

경애가 부당전보와 관련한 유인물을 내밀어도 누구는 받지도 않고 지나가고, 암암리에 지각비를 받는 부서들의 직원은 경애를 좀 밀치면서도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실제 시간보다 이분쯤 빠르게 설정되어 있다는 심증이 공유되어 있는 출퇴근 리더기에 간신히 카드를 긋는 것이었다. -315쪽

이별이 분노나 실망감, 적의 같은 단일한 감정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품고 살아가기가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간순간 전혀 반대의 감정이 몸을 부풀려 마음을 채우기에 아픈 것이었다. 경애는 아프다고 생각했다. 아픈 것을 대체할 다른 말은 없었다. -316쪽

그렇게 해서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 -318~319쪽

하지만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오늘만 견디는 데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수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고 오늘이 있으면 당연히 내일이 있고 내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해결이 되든 되지 않든 마음을 쓰다가 하루를 닫는 사람이고 싶었다. -330쪽

시간이 쌓인 것, 굽은 것, 견디는 것, 부러지지 않는 것,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것, 색이 바랜 것, 유연한 것, 아주 슬프지는 않은 것은 오후의 퇴근길에 나선 이들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344쪽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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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대하여 - 다니자키 준이치로 산문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고운기 옮김 / 눌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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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인과 사귀기 전, 80일간 교토에 머물 때에 이 도시는 그늘이 빛나고 빛은 그늘질 때가 많아요.”라고 전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아직 이 책을 읽기 전이었지만, 내용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던 까닭에 나름대로 의식하며 건넨 말이었고, 애인은 그 맥락을 잘 알고 있었다. 교토는 그늘이 그저 가라앉게 버려두지 않고, 빛이 아무렇게나 흩어지도록 들이붓지도 않아서 구석구석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꾸며야 사람과 거리가 지루하지 않을지 항상 깊이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오래되었다고 무작정 받들지 않고, 새로 나왔다고 그저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여러 가지 향토요리를 둘러보면, 현대에는 도시인보다 시골 사람의 미각이 훨씬 더 확실하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화려함이 있다. 그래서 노인들 중에는 점차 도시를 단념하고 시골로 은둔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골 거리도 은방울꽃 모양의 장식용 가로등 따위가 설치되어 해마다 교토처럼 되기 때문에,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늘에 대하여)-p.65

 

 그러다 보니 때로는 모두가 교토를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늘이니 마냥 어두워야 하고, 빛이라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무슨 큰 깨달음인양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의외로 많으니까. 심지어는 이 책의 저자인 저 다니자키 준이치로조차도 좋았던 과거에서 멀어지는 옛 수도를 사뭇 호들갑스레 걱정할 정도다. 물론 그가 그늘에 대하여를 쓴 1933년이라면 거리에 은방울꽃 모양의 가로등만 놓여도 밤의 어둠이 송두리째 사라진 듯 불안했겠지만, 역시 경박한 불평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이미 40대 후반이었던 그는 캄캄한 어둠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을 허무는 조금의 빛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나는 우리가 이미 잃어 가고 있는 그늘의 세계를 오로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 되불러 보고 싶다. 문학이라는 전당의 처마를 깊게 하고, 그 벽을 어둡게 하고,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것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쓸데없는 실내장식을 떼 내고 싶다. 어느 집이나 모두 그런 것이 아닌, 집 한 채 정도만이라도 그런 집이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 어떤 상태가 되는지, 시험 삼아 전등을 꺼 보는 것이다.

_1933. 12 (그늘에 대하여)-p.67

 

 그는 이 글의 끝에서 자신은 그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인공적인(그리고 서구적인) 빛이 침입할 수 없는 세계를 다시 이루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범위를 좁히더라도 왜 굳이 문학만이 사회와 동떨어져서 음예(陰翳)가 아닌 암흑(暗黑)을 추구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집집마다 놓인 전등, 골목마다 선 가로등이 밤을 낮으로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금에 와서 보면 너무도 당연한데, 세계의 변화를 찬찬히 숙고하기보다 부르르 반발부터 한 탓에 마치 어둠이 아닌 그늘이 없어질 것처럼 역정을 낸 셈이다.


한 가지 일이 만 가지 일이다. (게으름을 말한다)-p.87

 

 게다가 사회의 전등과 격리된 문학이라고 해 보아야, 기껏 한다는 소리는 방종하여 노골적인 것보다도, 내부로 억제된 애정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서, 때로 무의식적으로 말씨나 몸짓 끝에 드러나는 것이 한층 남자의 마음을 이끈다. 색기라는 것은 대개 그런 애정의 뉘앙스이다.”(연애와 색정, p.137)라는 수준의 구차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서 남성이 이런 색기에 끌릴는지는 몰라도, 어째서 여성이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듯 숨기지 못하며 표현해야하는 것일까. 다니자키는 물론 여기에 대해서 어떤 숙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때 지난 망상을 언제까지고 중얼대기 위해서 어떤 빛도 들지 않는 골방, 혹은 문학이 필요하다고 자인한 셈인데, 이렇게 소수의, 고립된, 신념만 강한 문학이 얼마나 해로운지 충분히 확인한 현재로서는 역시 어둠에 빛을 들이대서 새로운 그늘을 만들어야 한다고 되새길 뿐이다.

 

나는 꽃구경을 좋아해서, 봄에는 뭐니 해도 화려하게 꽃이 한창인 경치를 보지 않으면 봄의 기분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데, 이때도 역시 지금의 요령으로 간다. 빈틈없는 철도성에서는 매년 산들의 눈이 녹아서 스키를 탈 수 없게 된 때부터 서서히 꽃 선전을 시작해, 4월 중은 꽃구경 열차를 내보내는 것은 물론, 다음 일요일에는 어디가 볼 만한 곳인지, 어디가 곧 만개할 정도로 피었는지 일일이 게시를 해 주고 있으므로 조용한 꽃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장소를 피해서 돌아가면 괜찮다. 어쨌든 꽃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명소의 꽃에 한정하는 것은 아니어서, 보기 좋게 핀 오직 한 그루의 벚꽃이 있으면, 그 나무 그늘에 휘장을 펴고 찬합 도시락을 열면, 마음 어딘가가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p.170

 

 물론 이 책 속의 글에서 그가 무턱대고 암흑과 음예를 혼동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경험했던 그늘의 미묘함에 집착한 나머지, 더 이상의 빛을 완고하게 거부했을 뿐이다.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그늘을 말할 때의 섬세하고 경묘한 표현은 그 그늘 혹은 문화의 미래를 염려할 때의 편협하며 장황한 훈계와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8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다니자키의 역할은 음예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뿐이었음이 꽤나 분명하지만 일본에 오래도록 드리웠던 전통의 그늘이 마치 사라질 듯 끊임없이 급변한 당시의 시점에서는 이 둘이 뗄 수 없는 인과로 오해되었을 법도 하다. 다니자키 같은 사람 덕에 여태껏 교토의 그늘이 옛 모습을 좀 더 지켜 냈다고 역성은 들 수도 있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들만 굳이 골라서 아쉬워하는 사람에게는 별반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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