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 메타버스를 건너 디지털 대전환까지
이상직 지음 / 이다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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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과 관련된 법적 쟁점들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현재 상정 가능한 다양한 문제를 하나하나 깊이 있게 접근한다기보다는 넓게 펼쳐 놓는 방식에 가깝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의 IT 산업 초창기부터 이 업계에 참여해 온 법률 전문가로서, 인공지능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산업인 IT 산업과 한국 법률을 아우르기에 적절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이런 역량을 갖춘 전문가들도 각자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기본적으로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초래할 문제들에 대한 법률적 대응을 한국 IT 산업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쪽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한국 IT 산업의 사업 모델로서 안착할 만큼 성장하거나 그 가능성과 편의성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해외의 사례나 일부의 문제들에만 집착하는 피상적인 관점 탓에 가장 강한 규제 수단인 법률로 인공지능(산업)의 잠재력을 제약하게 되는 상황을 이 책은 가장 우려한다. 


EU의 인공지능법을 베끼는 것은 퍼스트 무버를 꿈꾸는 국가로서 할 일이 아니다. 입법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EU 기업 대비 국내 기업의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 수준, 산업발전 정도와 경쟁 여건을 검토해야 한다. EU 인공지능법의 국내 도입이 국내 데이터, 인공지능 산업발전 또는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될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해야 한다. -216쪽


 따라서 법률 전문가로서 이 책의 저자는 법률의 효용보다 그 일률성, 경직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더 우려하는 편에 속한다. 그에 더해 그가 변호사로서 정부 부처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지만, 주로 IT 기업이나 그 기업과 업무를 수행하는 법무법인에서 일해 왔다는 점도 법률에 대한 이러한 입장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정부에게 법률이 권한의 근거라면, 기업에게는 제약이나 간섭의 나열이다. 저자가 법률과 규제의 불가피성보다 불필요성에 더 주목하는 것도 그의 이력을 아울러 생각하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 ‘당연히’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될 수밖에 없다―는 느슨하고 다소 시대착오적인 주장과 밀접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이 그 일에 열중하도록 해야 한다. (중략) 시장에서 고객을 만족하게 하는 일에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ESG로, 따로 돈을 들여서 할 일이 아니다.”(350~351쪽)와 같은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원론적이고 부정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기업과 사회의 접점을 고객으로 축소시키는 이런 주장이 기업의 본질을 상기시키는 순기능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기업이 이윤을 창출시키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과정에서 그 이윤 관계와 무관한 사회 전체에는 부담과 갈등만 발생·전가시키는 문제는 이미 충분히 드러나서 쌓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기업과 고객만 서로 행복하고 마는 그런 관계, 거래는 애초에 없었고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그래도’ 기업의 본질은 고객 만족이라거나 단지 그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뿐이라고 비껴가는 반응도 이미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야말로 “말이 그렇단 말이지.”라는 식이다. 그러나 바로 ‘고객 중심’과 같은 수사(修辭)를 내세운 기업들이 저지르는 위법, 탈법들을 보면, 이른바 ‘기업의 본질’은 그것이 겨우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합리화에 그칠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그런 모순 자체를 외면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한국 IT 산업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고객 만족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 역시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외면하거나 방치하는 원인이 될 소지가 적지 않다. 법률을 이용한 규제의 경직성, 일률성이라는 문제가 크다는 저자의 통찰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역할과 책임을 고객과의 관계로 축소, 회피하는 이른바 ‘기업의 본질’이라는 가공의 개념을 내세우는 이상, 인공지능이 오직 기업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전락하여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법적 규제를 자초하는 사태가 도래하리라는 사실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부족 사태를 빠뜨릴 수 없다. 마스크 등 감염병 예방에 중요한 생필품 판매에서 중복 구입을 막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 포털을 이용해 중복 구매 여부를 확인했다. 이때 구매자, 주민등록번호, 구매 이력 등을 수집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엄격한 동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에 따라 감염병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골고루 공급하려는 공적 이익이 동의에 관한 정보 주체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면 그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개인정보보호법 제58조에 따라 공중위생 등을 위해 긴급하게 일시적으로 처리되는 개인정보로서 개인정보보호법 적용의 예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등 재난 시의 필수품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등 동의의 예외를 인정하되, 개인정보를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입법적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 102~103쪽

우리는 어떤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규제 법률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급성장하는 플랫폼 빅테크 기업은 기존 규제만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 섣불리 규제했다가 오히려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국내 경쟁환경 및 글로벌산업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이 정부조달, 법률시장 등 공공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공성을 효율성, 경제성으로 대체하면 공익을 침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변호사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의뢰인을 위해 싸워야 한다. 플랫폼에 종속되면 그것이 가능할까? 이길 소송을 지는 억울한 의뢰인이 나올지 모른다. -283쪽


 이 책은 인공지능이 한국 사회와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파급력과 여러 문제점만을 우려하여 법률을 제정해서 사전적·사후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점에서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그 법적 쟁점에 대한 이런 접근 방식이 IT 기업들은 인공지능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거나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수준의 매우 시대착오적이며 책임 회피의 소지가 농후한 관점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는 문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고객 만족이라는 이른바 ‘기업의 본질’을 빙자해, 실상은 기업의 핵심적 본질인 기업 자체의 책임과 의무는 격하시키거나 회피하려는 집요한 의도와 선전이, 인공지능과 IT 기업을 둘러싼 쟁점들에서도 언제든지 사회와 제도를 오도(誤導)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결과적으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오랜 논제의 존재를 상기시켰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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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기자가 되고 나서 3년 동안 퇴행성 뇌질환, 특히 알츠하이머 병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의 질문 목록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질문 목록 아래에 답까지 달린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은데, 이 궁금증은 알츠하이머 신약이 나오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의 궁금증으로 알츠하이머 신약개발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궁금증을 정리해나간다면, 그 정리된 무엇을 본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얻을지 모르고, 적어도 남들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쓰려고 했던 이유다. - P5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간절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사람의 의지는 높다. 간절함과 의지는 시장에서 돈으로 드러난다. 2017년 미국 나스닥에서 기업공개(IPO)를 했던 바이오테크가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은 디날리테라퓨틱스(Denali Therapeutics)였다. 주당 18달러, 시가총액 17억 달러 규모였다.
디날리테라퓨틱스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는 바이오테크다. 전 세계적 규모의 대형 제약기업인 제넨텍(Genentech)에서 중추신경계(central nervous system, CNS)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던 멤버들이 모여서 시작했다. 디날리테라퓨틱스는 퇴행성 뇌질환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원인을 짐작해 잠재적 원인을 겨냥한 약을 찾아, 이중항체(bispecific antibody, BsAb)로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을 통과해 뇌에 치료제를 전달하는 방법을 개발한다. 여기에 신약개발 과정의 모든 단계, 즉 전임상/환자 선정/표적 참여 효과(target engagement)/약력학적 평가(pharmacodynamics, PD)/약효능평가 단계에 적합한 바이오마커를 활용한다. 또한 디날리테라퓨틱스는 개발하는 모든 후보물질의 단계별 바이오마커 현황을 공개한다. 임상시험에서 활용할 적당한 바이오마커가 아직 없다면, 앞으로 어떤 바이오마커를 개발할 것인가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 P295

알츠하이머병 신약개발에서 2018년은 분기점이 될지 모른다. 기대를 모았던 전 세계적 규모의 대형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의 임상시험이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2018년 상반기에는 임상 2b~3상을 하던 미국 머크(MSD)의 BACE(ß-site amyloid precursor protein cleaving enzyme 또는 ß-secretase) 저해제 베루베세스타트(verubecestat), 진판델 파마슈티컬(Zinfandel Phar-maceuticals)의 PPAR-γ 작용제(agonist) 피오글리타존(pioglita-zone),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의 PDE9A 저해제인 BI409306, vTV 테라퓨틱스의 RAGE(receptor for advanced glycation end products) 저해제 아젤리라곤(azeliragon) 등 7개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이 중단되었다. 대부분은 초기 알츠하이머 병 환자 대상 치료제로 개발하던 신약이었고, 알츠하이머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신약(disease modifying drug) 개발‘ 임상시험들이었다. - P297

화이자는 ‘꺼진 불 다시보기‘도 진행한다. 연구나 임상시험이 중단된 프로젝트 가운데 유망한 신약개발 프로젝트 3개를 떼어내(spin-off) 이를 다시 들여다보는 세레벌테라퓨틱스(Cerevel Therapeutics)라는 바이오테크의 지분 25%를 사들였다. - P298

그리고 2019년 3월 발표된 아두카누맙 임상3상 실패로 바이오젠-에자이 두 기업의 시가총액 265억 달러가 사라지면서 최고 기록을 세웠다. 아두카누맙 임상3상 실패는 가장 큰 액수의 시가총액이 사라진 이벤트였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가장 기대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실패의 역사는 약물 디자인과 임상시험 프로토콜 개선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두카누맙의 가장 큰 실패는, 아두카누맙이 가장 성공에 가까워졌을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 P299

머크는 BACE 저해제인 베루베세스타트를 적용해 APECS 임상3상을 진행했다(NCT01953601). BACE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세포막에 있는 아밀로이드 전구 단백질(amyloid precursor protein, APP)로부터 만들어진다. APP는 신경세포의 성장과 자가 수선 기능을 수행한다. 원래 역할을 마친 APP 는 용해성 (soluble)이 있는 형태로 잘리고, 분해되어 없어진다. 그런데 BACE와 감마 세크라테아제(γ-secretase)가 APP를 자르면서 문제가 생긴다. 끈적거리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응집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응집해가는 것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뇌 곳곳으로 퍼져 쌓이면서 플라크(plaque)를 형성한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플라크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 P301

실패한 BACE 저해제 임상시험은 10개에 이르며, 모두 비슷한 양상으로 실패했다. 뇌척수액 안의 독성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최대 90%까지 줄였지만, PET 촬영 이미지 분석을 해보니 이미 쌓여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플라크는 없애지 못했다. 즉 새로 만들어지는 독성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만 막을 수만 있을 뿐이었고, 환자의 증상을 나아지게는 하지 못했다. 전구 알츠하이머병 환자나 경도인지장애 환자 뇌에는 이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최대치까지 쌓여 있고, 이를 없애지 못하니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베루베세스타트는 초기 알츠하이머 병 환자 대상 임상2/3상에서 뇌척수액 안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60%를 줄였지만, 대조군 대비 인지손상은 악화되었다(doi: 10.1056/NEJMoa1812840). - P303

알파시누클레인(α-synuclein)을 타깃하는 파킨슨 병 치료제는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을 촉진하는 인산화를 막고,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체가세포 사이로 전달(cell-to cell transmission)되는 것을 막아 병기 진행을 늦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응집된 알파시누클레인을 타깃해 이웃 세포로 이동하는 것을 억제하는 항체치료제가 개발 시도의 다수를 차지한다. 로슈, 애브비, 바이오젠 등은 임상1상을 끝냈고,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개념입증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2017년 다케다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임상1상 시작을 앞두고 있는 알파시누클레인 항체 MEDI-1341의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사들이면서 경쟁에 뛰어들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MEDI-1341 임상1상 개발을 진행하고 이후 후기 임상은 다케다가 진행하며, 개발과 상업화 비용, 판매에 따른 이윤을 함께 나누는 내용이었다. 상업화까지 성공하면 다케다가 아스트라제네카에 최대 4억 달러를 지불한다. - P315

전략 4. 혈뇌장벽 통과
혈뇌장벽 통과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꼭 풀어야 하는 숙제다. 케미컬 의약품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큰 것은 900Da까지 되는 것도 있다. 500Da보다 크면 혈뇌장벽을 통과하기 어려운데 케미컬 의약품도 뇌로 가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나와 있는 케미컬 의약품 가운데 98% 정도는 혈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한다. 통과를 한다고 해도 케미컬 의약품으로 퇴행성 뇌질환의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응집된 형태의 단백질을분자 화합물로 타깃하기 어렵다. 많은 저분자 화합물 치료제는 문제를 일으키는 효소의 활성 자리(active site)에 들어가 활성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응집 단백질은 보통의 경우 일정한 패턴으로 뭉친 덩어리다. 저분자 화합물이 응집된 단백질 사이에 들어가더라도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PET 추적자가 응집 단백질 사이로 들어가고, 몇몇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이 응집 단백질 틈으로 들어가 독성을 띄지 않는 형태로 응집을 풀어주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지만, ‘치료‘라는 관점에서 효과를 보여준 적은 아직 없다. 다만 병리 과정에서 작동하는 인산화 효소를 저분자 화합물로 저해하는 컨셉은 연구 중이다. - P317318

케미컬 의약품은 보통 단백질 활성 자리에 결합해 활성을 저해하면서 치료 효과를 낸다. 그런데 프로탁(proteolysis targeting chimera, PROTAC)은 몸속의 효소를 매개로 타깃을 분해해버리기 때문에, 적은 약물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적은 양의 약물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전신 노출도 줄어들고 부작용도 적을 것이다. 치료 타깃 활성을 저해하면 돌연변이가 생겨 활성 자리가 달라지면서 약물 내성이 생긴다. 그런데 프로탁은 치료 타깃 자체를 분해하는 것이라 내성을 피할 수 있다.
프로탁은 기존 케미컬 의약품으로 타깃하기 어려웠던 단백질을 특이적으로 잡을 수 있다. 암이나 신경 질환에서 병의원인이 되는 BRD4는 BRD2, BRD3, BRD4의 효소 활성 자리가 비슷해 저분자 화합물로는 BRD4만 선택적으로 타깃하기 어렵다. 그런데 프로탁은 효소 외부위에 결합할 수 있어 하위 그룹까지 타깃할 수 있다. - P323

지금까지도 알츠하이머병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모르고, 대규모 임상시험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많다. 적어도 지금까지 치료제 후보물질의 임상시험 실패율은 사실상 100%이니, 위험도 큰 분야다. 비용과 위험이 모두 크다보니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참여자는 등장하지 않고, 실패를 했더라도 경험이 있는 바이오젠, 일라이릴리, 로슈 등이 계속 도전한다. 대신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의 전략은 매우 초기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투자하거나, 전 세계적 규모의 제약기업들끼리 손을 잡고 연구하는 방향으로 수정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케다의 알파시누클레인 치료제 개발 협약, 아스트라제네카와 일라이릴리의 아밀로이드 항체 개발 제휴 협약, 바이오젠과 에자이의 아두카누맙, BAN2401, BACE 저해제 등의 후기 임상 공동 진행 등 비용과 위험을 대형 제약기업들끼리도 나누려고 한다. 다른 질환에서는 경쟁을 벌이지만, 알츠하이머 병 신약개발에서만큼은 성공을 위해 뭉치는 전략이다. - P326

Off-target 부작용은 치료 타깃이 아닌 다른 타깃에 약물이 결합해, 이를 저해하거나 독성이 나타나는 경우다. 몸 안에 단백질의 종류가 너무 많고,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들도 많으며, 단백질끼리 복잡하게 작용하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즉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Off-target 부작용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충분한 시뮬레이션으로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 당국에 제출하는 많은 독성 시험 데이터는 거의 Off-target 부작용에 대한 것이다. 규제를 통과해 판매가 되다가 뒤늦게Off-target 부작용이 발견되어 퇴출당하기도 한다.
Off-target 부작용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독성에 주목해서 이야기를 했을 뿐,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약물 재창출(repositioning)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임신한 여성이 입덧 치료 목적으로 복용했을 때 기형아를 출산해 문제가 되었던 탈리도마이드의 유사체인 레날리도마이드가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로 쓰이거나, 심혈관 질환 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발기부전 치료제로 쓰이는 비아그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P338339

선천면역 시스템에서 기억작용
선천면역세포의 기억 작용은 며칠에서 최대 3개월까지 유지되며, 후성유전학적 리프로그래밍(epigenetic reprogramming)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왔다. 대부분의 연구는 혈액 안에서 돌아다니는 단핵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조직에 오랫동안 있는 대식세포 등의 골수성세포에도 면역기억이 작용하는가와 병기진행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부터 적응면역 시스템뿐만 아니라 골수성세포(myeloid cells)에도 기억 작용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가 맞다면 골수성세포의 일종인 미세아교세포에도 기억 작용이 있을 것이고, 이를 이용해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해질 것이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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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의 잘못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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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남처럼 되어야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지만,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이 주체적일 수 없다. 타인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경쟁하는 동안 결국 나라는 주체적인 삶이 아니라 남들과 같은 수동적인 삶을 사는 인생이 되고 만다. - P23

인공지능은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도 있다. 두 개의 인공신경망을 경쟁시키는 방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가짜를 만드는 인공신경망과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인공신경망을 반복적으로 경쟁시키면 가짜의 정밀도가 높아진다. 이 과정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창작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고흐의 그림을 모방하는 인공신경망 A가 있다. 다른 인공신경망 B는 그 그림이 가짜인지 판별한다. 그러면 인공신경망 A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인공신경망 B는 다시 이것이 가짜인지 판별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인공신경망 A는 고흐의 그림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인공지능이 창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 P28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연산, 분석, 논리 작업 등의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반도체)가 있으며, 이 중 메모리 반도체에는 정보를 기록하고 기록된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램(RAM)과 기록된 정보를 읽지만 수정할 수 없는 롬(ROM)이 있다. 이와 달리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개인컴퓨터용 중앙연산처리장치(CPU), 스마트폰 응용프로세서(AP) 같은 것이 있으며, 따라서 설계 능력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에는 인간의 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가 주로 사용된다. 이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와 달리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부분과 연산을 담당하는 비메모리 부분의 활동이 같은 곳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따라서 정보의 저장과 연산을 차례대로 하는 기존 반도체와 달리 학습과 추론 등의 정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 P29

이제 기업의 관심은 더이상 사지 않는 고객에게 어떻게 하면 계속 더 팔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고객의 입맛에 맞는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려 한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고객이 원하는 방법으로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 제공해, 물건 여유분을 남길 필요가 없다. 재고를 관리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것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더 성장할 방법은 없을까? 고객에게 더 팔 수 있는 것은 없을까? - P33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을 이용해 소비의 새로운 지평에 관해 말한다. 워쇼스키 감독은 영화 〈매트릭스〉에 참여하는 배우들에게 장 보드리야르의 책을 읽고 촬영에 임하라고 했다. 시뮬라시옹은 현실에 실제 있는 사물을 그대로 베낀 이미지 또는 기호가 현실을 대체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실제의 사물이 없어지면 베낀 이미지가 더 진짜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것이 시뮬라크르다. 시뮬라시옹의 결과로 현실에서는 없거나 없어진 사물이지만 가상의 세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가상공간 매트릭스가 그것이다. - P34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대해 인공지능에 직접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는지 보자. 인공지능의 오작동이나 의도적인 행위로 인해 사람의 생명, 신체나 안전에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공지능을 운영하는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물으면 해결된다.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허용하면 인공지능을 활용해 사업하는 기업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줄 수도 있다. 법인격을 가지는 인공지능이 자신의 재산으로 책임지고, 그 인공지능의 운영자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줌으로써 법적인 면에서 사람과 같이 취급할지에 관한 논의는 다소 공허해 보인다. - P43.44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고 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기계 오작동으로만 보고 나사 몇 개 뺐다가 끼우거나 리부팅하면 될까? 인공지능에 맞게 감정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 주입해야 할까? 물론 먼 훗날의 일이다. 인공지능에 인격을 부여하는 순간 인간의 가치가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법인격 문제는 지금 당장 처리하려 서둘기보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차분히 논의해야 한다. - P45

2019년, 야당 원내대표의 국회 본회의장 교섭단체 연설이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등장했다. 이를 두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한 뉴스 배열이 공정한지 논란이 있었다. 포털이 특정 정당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 P53

차별이 발생하는 원인 중 첫째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설계, 기획 단계에서 업체의 편견이 들어갔을 때다. 내비게이션이나 가상비서 프로그램의 목소리는 대부분 여성이다. 이용자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라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용자의 요구나 명령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편견이 서비스의 기획에 반영되었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둘째는 이용자 등 외부 요인이 개입해, 인공지능 가상비서가 이용자의 성희롱 발언을 학습하거나 수용하면서 편향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에 투입되거나 학습하는 데이터가 잘못되었을 때도 우려된다. 인공지능이 SNS 등 온라인에 게시된 글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 이를 학습한다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표현함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여성을 혐오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셋째, 인공지능이 고객의 편견을 찾아내어 마케팅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편향성을 띨 수있다. - P54.55

인공지능이 발전하려면 기업이 서비스 기획 단계부터 고객과 약자 보호 기능 설계, 단계별 필터링,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고객위원회 설치까지 스스로 공정성을 확보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고객과 시민단체의 상시적인 설명 요구, 이의제기 등 견제 시스템을 가동해야만 한다. - P60

옛 한국전기통신공사(지금의 KT)에서 전화번호부를 발행한 때가 있었다. 당시 종이책 중에서 글자가 가장 작으면서도 두꺼운 책으로, 집전화에 가입한 사람의 이름, 주소와 전화번호가 들어있었다. 요즘이라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엄하게 처벌할 것이다.
이웃과의 협력이 절대적인 농경사회에서는 마을공동체와 생사를 같이했고, 옆집에 자녀가 몇 명이고 몇 학년인지, 집 안에 수저가 몇 벌인지, 호미가 몇 개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지냈다. 자연스럽게 개인정보의 공유가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산업화, 개인화가 진행되고 직장을 달리하는 이웃이 늘어갔고 사생활이 중요해졌다. 정보화시대가 도래해 인터넷,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편리함을 얻었지만 덩달아 보이스피싱 등 범죄 목적의 개인정보 침해로 사생활의 불안감도 높아졌고 이에 따라 피해 예방과 구제가 중요해졌다. 데이터,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활용으로 고객의 기호, 성향까지 파악해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능정보화시대에서는 개인정보 보호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 P92

데이터 활용은 개인정보의 안전한 보호를 전제로 한다. 데이터에 관한 정보 주체의 권리는 어떤 점이 중요할까? 데이터의 법적 성격을 규명하고 데이터에 어떤 법적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지도 명확히 해야 분쟁을 최소화해 보호와 활용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민법은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물건으로 보기 어려운 데이터에 소유권, 점유권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데이터의 성격에 따라 인격권, 재산권 등을 인정할 수 있고, 재산권의 대상이 되는 데이터는 거래도 가능할 것이다. 사생활 정보가 들어있다면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초상권이 인정될 수 있고, 창작물에는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다.
나아가 개인이 가진 데이터 또는 데이터에 관한 권리를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데이터를 회사에 현물 출자하고 주식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데이터를 보험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대상이 되는 데이터를 특정해 별도로 관리할 수 있고 데이터에 대한 공정한 가치평가를 위한 법적 시스템이 갖추어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 P99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부족 사태를 빠뜨릴 수 없다. 마스크 등 감염병 예방에 중요한 생필품 판매에서 중복 구입을 막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 포털을 이용해 중복 구매 여부를 확인했다. 이때 구매자, 주민등록번호, 구매 이력 등을 수집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엄격한 동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에 따라 감염병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골고루 공급하려는 공적 이익이 동의에 관한 정보 주체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면 그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개인정보보호법 제58조에 따라 공중위생 등을 위해 긴급하게 일시적으로 처리되는 개인정보로서 개인정보보호법 적용의 예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등 재난 시의 필수품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등 동의의 예외를 인정하되, 개인정보를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입법적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 P102.103

데이터가 물건이면 데이터를 가진 자에게 소유권이 있다. 민법 제98조는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정의한다. 같은 법 제211조에서는 자신이 가진 물건을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권이라 한다. 그래서 특정 형태의 유체물이 아니어도 배타적으로 지배,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이면 물건이다. 공기, 물은 물건이 아니지만, 일정한 범위를 구획해 지배하거나 탱크, 병 등에 가두어 관리할 수 있으면 물건이 된다. 데이터는 사용하거나 복제해도 닳거나 없어지지 않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쓸 수 있으며, 다른 데이터와 결합해 전혀 다른 성격의 데이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데이터 자체로는 물건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데이터를 다른 데이터와 구분할 수 있는 저장장치에 보관하고 제3자가 쉽게 열어보거나 이용할 수 없게 배타적으로 지배, 관리한다면 물건이 될 수 있다. - P104.105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우리가 실리콘밸리 기업에 아무런 대가 없이 노동을 제공하고 그 기업이 세계를 통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많은 일자리가 없어진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공지능 시대 노동을 어떻게 정의하고 평가할 것인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만든 개구쟁이 등장인물 톰 소여를 기억하는가? 어느 따뜻한 일요일, 벤이 톰 소여에게 속아 페인트칠을 했다. 그 친구의 노동에 톰 소여처럼 "너도 재미있게 놀았잖아"라고 말하는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는 더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 - P106.107

개인정보를 이용한 피싱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받아 본 메일이 있다. 아프리카 정치인, 사업가 또는 미망인이라며 곤경에 빠졌으니 비자금 반출을 도와주거나 고수익을 보장하니 투자하라고 한다. 회신하는 사람에게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돈을 뜯어낸다. 어떻게 이런 어수룩한 속임수가 통할까? 메일을 교묘하게 만들면 오히려 손실이 커진다. 메일을 받은 사람 대부분이 속아 응답한다면 인적, 물적, 시간적인 면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어수룩한 속임수를 쓴다면 회신하는 피해자가 많지 않지만, 연락만 해온다면 속이기 쉽고 돈을 뜯어내기 쉽다는 것이다. - P112

마지막으로, 조직이나 윗사람과 핵심 목표, 가치가 다르면 과감히 떠나야 한다. 실행 수단을 논의할 때 의견 차이가 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토론과 설득을 거쳐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 그러나 목표가 다르면 갈라서야 한다. 몸과 마음을 다칠 이유가 없다.
인공지능 시대도 인공지능보다 사람이 먼저다. - P164

"신기술은 들어도 몰라요. 그 회사 대표의 눈빛이 번득이는지, 말에 자신이 넘치는지, 어떤 위기라도 헤쳐 나갈 배포가 있는지 봅니다. 그 느낌이구나 싶을 때 돈을 씁니다."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지인의 말이다. - P181

골프 선수 최경주는 최고의 벙커샷은 벙커로 공을 날리지 않는 샷이라고 했다.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자율주행은 사람의 생명, 신체 안전에 위급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도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 운전자 스스로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을 해야 할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작은 피해를 가져오는 선택을 해야 할까? 사람의 가치는 한 명이든 백 명이든 차이가 없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 보행자는 자율주행을 위해 양보할 것은 없다. 새로운 세상이 와도 보행자 안전은 최우선이다. - P213

EU의 인공지능법을 베끼는 것은 퍼스트 무버를 꿈꾸는 국가로서 할 일이 아니다. 입법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EU 기업 대비 국내 기업의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 수준, 산업발전 정도와 경쟁 여건을 검토해야 한다. EU 인공지능법의 국내 도입이 국내 데이터, 인공지능 산업발전 또는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될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해야 한다. - P216

우리가 사는 지구가 평화로워서인지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인지 사람을 포함해 지구에 사는 많은 생명체의 사회적 지능이 높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사원에는 긴꼬리 마카크원숭이가 살고 있다. 관광객의 카메라, 핸드폰, 지갑, 안경 등 고가의 물건을 노린다. 머리핀, 모자 정도는 훔쳐봐야 관광객이 웃고 지나갈 뿐 신경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고가의 물건을 훔쳐야 관광객에게서 음식 등 더 나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캐나다 심리학자 장 베티스트 레카 교수의 연구 결과다. - P226

인공지능 범죄는 범죄 대상을 정교하게 선정하고 알아챌 수 없는 속임수로 피해를 줄 수 있다. 데이터의 수집, 이용, 가공, 결합, 분석을 통해 수많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동시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속임수가 정교하기에 똑똑한 사람도 속아 넘어간다. 고액 자산가, 기업 대표 등 특정인을 범죄 대상으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 P227

향후 입법에 반영할 사항은 있을까? 인공지능을 범죄 기획, 설계에 따라 설치, 작동시키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 죄질이 나쁘고 피해가 크다면 가중처벌해야 한다. 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해야 처벌할 수 있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있다. 그래서 범죄에 이용되는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있어야 하는지 정의를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 P229

우리는 어떤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규제 법률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급성장하는 플랫폼 빅테크 기업은 기존 규제만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 섣불리 규제했다가 오히려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국내 경쟁환경 및 글로벌산업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이 정부조달, 법률시장 등 공공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공성을 효율성, 경제성으로 대체하면 공익을 침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변호사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의뢰인을 위해 싸워야 한다. 플랫폼에 종속되면 그것이 가능할까? 이길 소송을 지는 억울한 의뢰인이 나올지 모른다. - P283

NFT(Non-Fungible Token)는 같은 코인이지만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와 다르다. 다른 코인으로 대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비트코인은 특정 디지털 자산에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비트코인 간에 차별성이 없다. 다른 코인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 점이 NFT와 다르다. 비트코인은 한 개당 달러나 원화 환산 가격이 같으며 시세의 등락도 같다. 그런데 NFT는 각 토큰마다 고윳값이 있어서 가격이 다르게 책정된다. 예를 들어 고흐의 그림을 NFT로 만든 것과 고갱의 그림을 NFT로 만든 것은 가격이 다를 수 있다. - P300

인공지능에 완벽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우리를 닮았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은데 인공지능에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공지능을 이해해야 해결책이 나온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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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자리 - 시민을 위한 헌법 수업
박한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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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대부분의 제도, 특히 법률과 법체계는 인위적으로 이식된 서양의 제도다. 이렇게 이식된 제도는 우리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준다. 하나는 역사적 단절로 인한 이해의 곤란이고, 또 하나는 번역된 외국어가 주는 소통의 곤란이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헬렌 켈러가 촉각에만 의지해 언어를 습득했듯 법학을 이해하고 그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해석과 창조를 병행해야 하는 고통스럽고 지난한 작업이다. 특히 한 국가의 역사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헌법의 경우 더 큰 고통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32~33

다소 순환논법처럼 보이지만, 헌법재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산물로서의 헌법재판소를 이해해야 하고, 헌법재판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헌법적 당위로서의 헌법재판을 이해해야 한다. 헌법재판과 헌법재판소는 양차 대전 전후의 극단적인 정치적 혼란과 헌법 파괴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37

 

 한국에서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대한민국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재판소가 하나의 원내 정당을 해산시켰으며 대통령도 한 사람 탄핵시켰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사건은 모두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참여했다. 박근혜 탄핵 사건의 경우에는 재판 도중에 박한철 소장의 임기가 만료되어 퇴임했지만, 청구일(2016.12.9.)부터 선고일(2017.3.10.)에 이르는 총 92일 중 절반 이상의 기간에 재판장으로서 참여했기에 실질적으로 이 사건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인 박한철 전 헌재소장은 현재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한국 헌법이 구체적·실질적으로 갖는 의미를 한국의 일반 독자, 즉 한국 국민들에게 설명할 적임자인 셈이다. 비록 그의 대표적인 판결인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나 박근혜 탄핵 사건의 결론에 저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한국 헌법에 대한 단순한 의견이 아닌,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한국 헌법에 대한 구체적·추상적인 해석의 실질적인 기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인 박한철의 판단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 책의 저자가 판결했거나 참여했던 사건들의 결론만 놓고 책의 내용을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판결의 결론에서 드러난 그의 이념적 지향보다도 그 지향을 지지(支持)한 법적·논리적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배울 수 있었다. 한국 헌법의 법적·역사적·사상적 맥락을 가능한 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함으로써, 한국 헌법재판소가 한국 국민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중요한 판결들의 목적과 의의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한국 헌법은 단지 직관적으로 단번에 와 닿거나 정반대로 너무 추상적이어서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아닌, 특정한 역사적 경험과 사상적 지향이라는 맥락을 의식해야만 그 의미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사실을 저자는 설득력 있게 보여 주었다. 이 책에서 현행 한국 헌법 속에 있는 어떤 용어나 개념보다도 독일의 사상가인 카를 슈미트나 임마누엘 칸트,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의 이름, 미국 헌법에 관한 내용들이 훨씬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런 접근의 한 예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헌법 해석은 그 문언 자체뿐만 아니라 그 개념들이 한국 헌법에 도달하기까지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의 헌법에서 거쳐 온 의미의 이력(履歷)을 파악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여기(헌재 2014. 12. 19. 2013헌다1)서 통진당 주도 세력이란 동일한 이념 성향을 가지고 통진당의 창당을 주도하고 주요 당직에 포진하면서 당직 선거를 비롯한 주요 사안에서 당의 의사 결정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당의 지도부 집단을 말한다. 따라서 이석기에 대한 내란 음모죄 공소사실 내용에 특정해 적시된 소위 지하 혁명 조직 RO: Revolutionary Organization와는 구별된다. 헌재 재판부는 통진당 주도 세력의 목표와 활동 전반, 즉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한 후 결론을 도출했으며, 법원의 형사재판과는 달리 RO의 존재 여부나 조직 및 활동은 별도의 판단이나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138~139

 

 이 책에서 소개한 헌법재판 중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의문이 남는 사건을 꼽는다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헌재 2014. 12. 19. 2013헌다1)이다. 이 정당이 한국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었다는 판단만으로, 그들이 이 한국의 헌정(憲政) 체제에 실질적 위해를 가할 정도의 실질적·구체적인 조직·역량·가능성 등에 대한 판단 없이도 헌법이 자유를 보장하는 정당 해산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타당한지 온전히 납득되지는 않아서다. 하지만 이 책은 현행 한국 헌법에 명시된 정당해산심판의 존재 자체가, 1차 세계 대전 이후 성립된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이 그 체제를 이질적 체제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서 너무도 무력했으며 끝내 독일이 파멸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상기시킨다. 오래전 대학 시절 헌법 개론강의에서 정당해산심판의 이 역사적 연원을 이미 배웠음에도 실제로 발생한 통진당 해산 사건에서는 그 배운 바를 놓치고, 단지 지금 이 정당의 해산이 합당한지만을 지엽적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했다.

 

 결국 이 사건에서 한국 헌법이 헌법재판의 유형 중 하나로 명시한 정당해산심판이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 도입된 취지 자체가 나치당과 같이 이 헌법상의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는 정당을 사전에 통제함으로써, 헌법과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정당이 그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이용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결국 헌법과 민주주의를 변질시키는 사태의 반복을 방지하는 데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관점으로는 통진당 해산 사건에서 입증해야 할 주요 쟁점은 첫째, 통진당에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의 원리, 법치국가 원리”(131~132), “국민주권의 원리,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제도, 복수정당 제도”(135)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한국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는 세력이 존재하는지의 여부, 둘째, 이렇게 한국 헌법의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는 집단이 통진당 자체의 주도 세력인지의 여부였다. 여기서 한국 헌법재판소는 이 두 가지 쟁점이 입증되었다고 판단한 까닭에 통진당의 해산을 선고했다.

 

 드러난 사실들을 확인했을 때 이 두 가지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판단에는 재판 당시나 현재나 이의가 없다. 즉 실질적으로 현행 한국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마땅히 이를 해체함으로써만 실현이 가능한 체제 변혁, 즉 북한과 같은 정치 체제를 추구하는 집단이 통진당에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 집단이 통진당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납득할 수 있다. 따라서 통진당의 표면적인 강령·주장 이면의 실질적인 의도·목적이 현행 한국 헌법 체제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궁극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므로, 이 사실을 나치당의 역사적 교훈에 근거한 정당해산심판의 도입 목적에 반영한다면 통진당 해산 결정은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 나치 역시 집권 이전에 공식적으로 바이마르 헌법 체제의 타도를 주창하지는 않았기에 통진당의 표면적 주장, 공식적 절차만으로 그 당의 위헌적 성격을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또한 당시 통진당의 대표였던 이정희 전 의원은 이 해산 사건의 최후 변론에서 우리 국민 누가 수령제를 대한민국에 도입하는 헌법안에 찬성하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통진당이 우리 국민이 자신의 제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 이런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이 한국에 이식될 가능성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통진당에 제기한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위헌적 요인을 한국 국민의 의사에 결부시키는 이런 주장 역시 매우 부적절하다. 19348월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독일의 국가 원수(대통령)과 정부 수반(총리)의 권한을 모두 이양하는 내용의 독일국 국가원수에 관한 법률은 국민투표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어 이른바 총통제가 수립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국민 투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드러난 독일 국민의 의사가 히틀러와 나치당에 바이마르 헌법 체제를 자의적으로 변질시킬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이 19348월 독일의 국민투표는 정당해산심판의 역사적 연원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정당이 국민투표에 개입하는 상황 자체를 선제적으로 방지하는 것이 정당해산심판의 목적인 까닭이다.

 

 결국 북한식 사회주의가 현행 한국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한국의 정당에 허용될 수 없는 위헌적 이념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국민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까닭에,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정희 전 의원의 주장은 국민의 의사에 따라서는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국민투표로 표현된 국민들의 총의(總意)로 바이마르 헌법 체제를 파괴하도록 허용했던 것이 19348월 히틀러의 국민투표였고, 현행 한국 헌법의 정당해산심판은 이 헌법의 기본 질서를 바꾸려는 정당을 해산시킴으로써 그 정당이 국민투표라는 헌법상의 절차를 이용할 수 없게끔 하려는 것이 그 주요 목적이다. 정당해산심판과 국민투표가 이런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시 한국 국민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자신의 제도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논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정희 전 의원이 대표한 통진당의 위헌성을 충분히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버리고 도주했던 이승만의 말마따나 국민이 원한다면”, 북한식 사회주의를 통일 한국의 헌법 이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이는 결국 현행 한국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가 통진당의 의사가 아닌 국민의 의사에 따라 포기될 수 있다는 의미인 까닭이다. 북한식 사회주의가 현행 한국 헌법에 위배되는 까닭에 추구하지 않는다고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의도는 충분히 드러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헌법 해석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일단 통진당이 한국의 헌정 질서를 전복시킬 구체적·실질적인 계획이나 시도가 없었음에도, 그런 의사를 가진 세력이 통진당을 주도했다는 사실만으로 정당 자체를 해산하는 것이 정당해산심판이라는 제도를 따로 헌법에 정해두었다는 사실에 부합하는 결론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다시 말해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해산을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지, 쉽게 만들려는 취지의 제도는 아닌 까닭이다. 반헌법적인 정당을 해산시키는 것이 이 제도의 목적이라고 해도, 이 심판을 헌법재판소가 하는 이상은 그 정당의 반헌법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세분해서 판단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정도의 차이를 불문하고일단 반헌법성이 입증된 모든 정당은 예외 없이 당연히 해산시켜야 한다는 관점 역시 한국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비추어 볼 때 모순이 있다. 그런 까닭에 정당해산심판에서 심판 대상 정당의 반헌법적인 이념이 어느 단계까지 실행되었는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 점은 이 책이 한국의 헌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모든 이론과 관점을 아우르지는 못했다는 하나의 예시다.

 

 또한 몇몇 부분에서는 저자의 보수적인 편향성이 더 부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먼저 오늘날 지젝이나 아감벤 또는 무페 같은 캐비아 좌파들이 즐겨 사용하는 정치적인 것이라는 용어는 (후략)”(272)의 부분이다. 여기서 캐비아 좌파철갑상어알(캐비아)을 먹는 귀족생활을 하면서 사회주의를 논하는 프랑스 좌파를 뜻하는 단어인데 외적 신념과 내적 생활이 괴리된 좌파 인사들을 비웃는 말이다. 결국 이들 철학자에 대한 가치 평가가 내포된 표현인데 이 대목에서 지젝 등의 사상과 일상의 괴리를 논한 것이 아닌 이상 이런 식의 표현을 굳이 사용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이들에 대한 저자 본인의 평소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전직 헌법 재판관으로서 대중들의 한국 헌법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에서는 좀 더 사려 깊은 표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념적으로 이들 철학자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바가 있다면 그 측면을 지적·비판해야지 굳이 인신공격에 가까운 표현을 따라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딥 스테이트(deep state)는 처음에는 주로 튀르키예(터키) (중략) 사용되었으나, 20173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도청당했다고 주장하고 극우 매체인 브레이트바트 뉴스(Breirbart News)가 이를 딥 스테이트 게이트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보편화되었다. 현재는 법제도를 초월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 카르텔을 의미하는 정치학적 용어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340, 4120번 각주)라는 서술의 문제다. ‘딥 스테이트는 저자 자신이 서술했듯이 도널드 트럼프의 주장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다분히 미국 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려는 목적과 의미의 음모론적 용어다. 저자는 이것이 초법적 권력 카르텔을 칭하는 용어로 이미 보편화되었다고 서술했지만 이것은 성급하고 일방적인 서술로 보인다. ‘그림자 정부등 이런 의미를 지닌 용어는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딥 스테이트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민주당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 위한 트럼프의 음모론을 상징하는 유행어에 가까워서 공식적인 용어로 적절치 않다는 지적조차 존재한다. 저자는 딥 스테이트가 좌파와 우파,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초법적 권력 카르텔 일반에 쓰이게 되었다고 판단하여 이 말이 보편화되고 의미가 확장되었다고 서술한 듯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게 이념적으로 평등한 용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음모론자와 포퓰리스트, 미국 공화당이나 세계의 우파들이 자신들의 반대파에게 던지는 저주에 훨씬 가깝다. 저자에게는 이미 이 단어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 단어 자체가 모두에게 가까워졌다고 단정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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