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거리에 젖은 우산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그렇게 봄이 끝나는 줄도 모르고. (장미흔) - P11

나는 세이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고, 그 손바닥을 물었다. 약간 긴장되어 축축해진 손바닥의 약한 살갗을 뚫고 피가, 모든 갈증과 고통을 잊게 하는 황금빛 핏방울이 단 두어 방울, 내 목구멍으로 흘러들었다. 머릿속에 눈부심이 퍼져 갔다. 나는 강력한 힘, 생명력이 내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들어 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곳에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 생태계의 일부다. 계약을 맺을 때마다 늘 몰아치는 압도적인 감정이 나를 흔들었다.
계약의 증거로 세이의 손바닥에는 작고 붉은 반점이 남았다. 착색된 핏자국처럼 보여서 나는 늘 그 흔적이 탐탁지 않았지만 세이는 한참 들여다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장미 꽃잎이라도 새긴 것 같네."
황홀해하면서 세이는 나를 향해 파도처럼 미치는 자신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이 느낌이야.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바로 이게 필요했어."
그 말대로 세이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곁에 없을수록 더욱 느껴지는, 공백이 길어질수록 더욱 필요해지며 갈증을 일으키는, 그러나 유일하게 빨아들일 수 없고 내 몸속에 함께 흐르고 있는 피.(장미흔) - P1415

광장에는 인간들이 잘 모이지 않았다. 수많은 인간들이 내뿜는 생기를 자연스럽게 흡수할 길이 막히면 운 나쁜 한두 명에게서 집중적으로 뽑아낼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하루이틀 일이다. 범죄로 이목을 끌면 안 된다. 인간 사회의 혼란은 우리의 적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온종일 대중교통을 타거나 대형마트를 돌아다니며 허기만 겨우 면하는 나날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고요, 도서관과 미술관, 공연장의 들뜬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장미흔) - P1516

이 행성에 고여 있던 감정들, 넓은 우주 전역에서 사람들이 끌고 온 그곳 별들의 먼지, 갈 곳 없는 해묵은 것들이 돌아가고 싶어 한다. 호림이 부적에 실어 내보냈던 상념, 집착, 그리움, 원망…… 그런 것들과 꼭 닮은, 호림은 들리지 않게 울려 퍼지는 거대한 부름을 온몸으로 들은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외로운 호명 소리.
호림은 점점 더 멀리 우주로 떠나가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은빛 고래가 파도를 차고 높이 솟구치는모양으로 빛이 검푸른 우주로 한껏 뻗어 올랐으나, 결국 별을 거역할 수 없었다. 다시 수면 밑으로 철썩하고 빠져들듯 빛 조각들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묶여 버린 것처럼 다시 행성으로 가라앉아 사라진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마음들.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 P8485

샤워를 마치고 테이블로 가자 또다시 보존식이 아닌 사람 손으로 만든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모조란으로 만든 오므라이스와 정직하게 감자로만 버무린 감자샐러드, 뜨거운 커피 한 잔. 옆에는 역시 손으로 쓴 메모지가 붙은 채로.
‘다음엔 진짜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어 줄게.‘
간단하지만 젠답다. 구구절절 더 쓸까 말까 고민하며 메모지 위에서 펜을 멈춘 채 한참 고민했겠지. 언젠가부터 잠에서 깨면 여기저기 메모가 붙어 있곤 했다. 다음엔 어딜 같이 가자, 뭘 해 주고 싶다, 그때 이런저런 일 있던 것 기억나? 만나게 되면 그 일같이 이야기하자, 혼자만 되새기니 재미없다, 꿈에라도 와 주면좋겠다, 그렇게 둘 사이에 약속이 쌓여 갔다. 메모를 소중하게 든 호림의 입가에 퍼져 있던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다. 호림은 유운에게 말을 걸듯 혼자 중얼거렸다.
"유운, 난 가끔 젠을 봐. 이 배 여기저기에 젠이 있어."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 P86

우리가 영원히 같을 수 있을까. 우리가 여전히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게 맞을까. 내가 잠든 동안 내가 모르는 너의 시간에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변했을지, 나와 완전히 같다고 확신할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 P87

갈망이 뒤틀리면 쌍둥이처럼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우리가 여전히 사랑일까.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 P89

그들은 꼼짝도 않은 채 눈을 감고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우주 끝에서 간신히 당도한 지구의 밤이 사막과 그들을 내려다보며 파랗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사람이 여전히 사람을 사랑한다는 미신을.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 P94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변신해 있던 게 아니었나 보다. 주은은 자신이 아주 예전부터 서서히 이런 존재로 변화하던 중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는 무감각한 기계에 꼭 들어맞는 영혼이 되는 걸까. (만세, 엘리자베스) - P151

그동안 들키지 않기만을 조마조마하게 바랐다. 껍데기를 빼앗겼지만 회사일을 대신 해 주는 청소기가 생겨서 잠깐 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라도 좋으니 알아차려 주길 원했다. 아니, 알아차려야 한다. 엘리자베스의 정체를 박살내고 폭로해줘야 한다. 자조적으로 월급쟁이는 사회의 부품이라고들 하지만 원치 않게 자리를 대체당한 채 자신이 무의미한 부품이라고 까발려지고 싶진 않았다. (만세, 엘리자베스) - P160

은진을 깨우려는 듯 가볍게 하늘이 흔들렸다. 하늘이 흔들리다니, 은진은 의아하게 눈을 크게 떴다. 그 앞에서 시야가 살짝 일렁이며 투명한 어떤 것이 드러난다. 지금껏 은진이 무심하게 보던 것은 하늘의 모든 색을 투과하여 은은하게 되비추는, 바로 비늘이었다. 하나하나가 은진의 손바닥보다 훨씬 큰데, 잘 갈아 놓은 돌의 심장인 듯 심해의 깊은 눈인 듯 푸르고, 곤충의 날개보다 얇으며 날카로운 우윳빛 광택이 흘렀다. 그런 수많은 비늘로 감싸인 것이 구름과 산에 가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늘 끝까지 뻗어 있었다. (용의 만화경) - P216

"나는 세상의 에너지체, 기억정보, 세상의 모든 언어와 지식. 시인들은 내가 기억과 기도로 이루어졌다 하고, 학자들은 내가 데이터만 충분하면 무엇으로든 변용할 수 있는 정보의 총합이라 한다. 나는 계속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필요한 모든 것을 모아 왔어." (용의 만화경) - P230

"꿈을 보여 주는 건 간단해. 단 한 명의 의식 속에 영화를 틀어 주는 셈이니까. 하지만 현실을 조작해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어 내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에너지와 정보, 장치가 필요하지."
"그리고 그 프로세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게 저 존재로군요."
은진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비취처럼 맑게 펼쳐진 하늘에 순간순간 번득이는 비늘, 그 무수한 비늘로 몸을 감싸고 허공에 누워서 스스로를 세상의 거대한 연산 기계로 바꾸어 작동시키고 있는 존재를 문득 은진은 알게 되었다. 김용 씨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나 보다.
세상을 복제해 작은 온실 정원을 만들 수도 있는 자가, 깜박이는 촛불처럼 부질없이 스쳐 갈 뿐인 한 인간에게 진짜 자신을 보여 주었다. 굳이 대학원 붙박이로 인간 시스템에 서툴게 적응해 가며 사람들 사이에 애써 자신을 남겼던 것처럼. 그래서 은진은 눈치채고 말았다—이 용은 사실 인간을 좋아하는구나. (용의 만화경) - P232233

바람이 불자 살얼음처럼 걸려 있던 무지개가 산산이 흩어져 지상으로 뿌려졌다. 푸르던 나무와 수풀의 단조로운 색채가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넘실거렸다. 김용 씨가 손짓을 하자 조금 일찍 불려온 노을이 하늘 위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구름의 아래쪽부터 분홍색과 연자주색이 부풀더니, 땅 위의 단풍처럼 강렬한 금빛과 진홍빛이 얼룩덜룩하게 번져 나갔다. 하늘의 비늘들은 이리저리 휩쓸리듯 남색부터 오렌지색까지 투명하게 비쳐 보였다. 대지도 창공도 용광로 속에서 서로 뒤엉켜 물어뜯고 녹아 가는 것만 같다. 다시 여리고 말갛게 태어나기 위해. (용의 만화경) - P234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은진은 미래였다. 은진 또한 빠르게 시간 뒤로 밀려나 과거가 될 때까지는. 어쩔 도리 없이 흩어지는 우리는 가끔은 뜻하지 않게, 이렇게 필연적으로 연결되나 보다. 인간이라서. (용의 만화경) - P248

한 눈으로는 지금 여기를 보면서 다른 한 눈으로는 계속해서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동시에 있고 동시에 없다. 그렇게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보이는 현실은 어떤 무늬를 그릴까.
"마치 만화경 같겠네요."
은진은 선심 쓰듯이 김용 씨에게 쿠키 하나를 건네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김용 씨는 순순히 받아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눈으로는 지금 여기를, 다른 한 눈으로는 어지러울 정도로 과거와 미래를 경이롭고 혼란스럽고 괴로우면서도 부서지지 않는, 끝없이 새로운 만화경을 보고 있다. 어둡고도 찬란한 그 무늬들. 단 혼자만의 만화경을 본다. 언제까지나 눈을 뗄 수 없어. (용의 만화경) - P249250

믿고 싶다. 우리는 서로 이렇게 다른 존재고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해서 우주의 가장자리처럼 멀어지고 있지만, 은진은 옆에서 흐느적거리던 바람 인형이 사라지고 김용 씨가 일부나마 본모습을 드러낸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일부러 그쪽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옆에 있다는 자체로 지금은 충분하다고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크고도 작으며, 젊고 새롭고 동시에 오래되고 늙은 용. 아름다운 존재가 잔잔하게 웃음소리를 냈다.
"이제 안 가. 지겹도록 오래 볼 거야, 우리는, 아마 백 년만큼. 왜냐하면—" (용의 만화경) - P265

은우는 부재중 통화가 두려웠다. 전화를 받지 못하면 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반복되리란 미망에 사로잡혔다. 이번에는 M에게, M 스스로 맺은 끝이 올까 봐. 동시에 받기만 하면 괜찮으리라는 믿음과 덧없는 위안이 그 안에 있었다. 찰나 반짝거리는데 지나지 않지만 그것만이 전부인 안식이. (M과 숨) - P275

"내게 감사하거라. 아무도 너희 주제를 제대로 알려 주지 않으니까. 흥, 대체 쓰고 버릴 것에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마법사를 왜 ‘골무‘라 부르는지 아니? 특히 너희처럼 처음부터 한계가 빤한 하급 마법사 말이다. 골무가 어디에 쓰이지? 골무는 어디 있지? 손가락과 바늘 사이. 그래, 너희가 할 일이 그거다. 전장에서 기사들 화살받이나 해서 시간 벌어 주는 쓰임이 고작이라고."
그러나 골무도 다 같은 골무가 아니었다. 타고난 마력부터가 적어 금방 바닥나는 하급마법사, 그래서 양성소에서 떠밀려 온 신입으로 금방금방 대체되는 이들은 평범한 천 골무이며 소위 말하는 자투리 골무이다. 그보다 능력이 조금 낫다면 가죽 골무, 청동 골무 순으로 불렸다. 보통의 하급 골무도 오래 갈고닦으면 여기까지 올라갈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투리 골무겠지.
그 위에는 물론 은 골무와 금 골무가 존재한다. 검사관의 조사에서 최소 중급 이상으로 판정받은 특별한 자들. 타고난 능력도 대단한데 더 운 좋게 강한 비호와 후원까지 주어져 엄격한 학업과 수련을 마친 고급 마법사들 말이다. 청동까지는 대지주와 영주도 고용할 수 있으나, 은이나 금의 경우는 왕족과 대공을 위한 존재였다. 그 격차가 너무 아득하게 멀어서, 나로서는 절망조차 사치였다. 너희는 무가치하다는 다네트 씨의 비관에 길들여져서 그저 덤덤할 뿐. (소모품 마법사) - P301302

이 안은 너무 어두컴컴하고 저 밖은 아프도록 환하다. (소모품 마법사)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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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수학 좀 대신 해 줬으면! - SF 작가의 수학 생각
고호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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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는 가벼운 생각들이 참 다양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배웠다. 언제나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인데도, 읽는 내내 부담스러운 대목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학이라는 과목에 특히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을 수학 전문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아는 덕이 크다고 생각했다.

 

 ‘진정한수학은 사칙연산의 밖이나 그 너머에 있다는 말이 정말로 퍽 참신한 통찰이라고 자신하는 듯한 말을 퍽 자주 듣는다. 날마다 듣는 말이야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보다 더 놀라울 것도 없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며, 틀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충분히 원론적인 교훈이 됐을 뿐이다. 게다가 결국 너무나 많은 사람의 삶에서 수학이란 사칙연산 속에서 맴돈다는 괴리까지 있다. 사칙연산의 영역조차 쉽지 않았는데, 정작 수학은 그 너머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칙연산이 아닌 수학의 정체에 호기심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애초에 수학은 사칙연산조차도 아닌 신비로운 무엇이라는 오해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진퇴양난이고 앞에 호랑이 뒤에 이리인 셈이다. 사칙연산의 수학 아닌 수학은 익숙하고 지겨우며, 수학다운 수학은 들어봤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없다. 어쨌든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내기 녹록한 조건은 아닌 셈이다. 이 책의 저자는 수학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저널리스트로서 바로 이런 문제를 충분히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찾은 해결책은 비교적 신선한 최근의 사례, 혹은 저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 그리고 이 사례나 경험과 연결되는 다양한 수학적 사고의 측면에 있다.

 

2016년 독일 분자 식물 생리학 및 생물물리학 연구소의 제니퍼 뵘(Jennifer Böhm)을 비롯한 연구자 15명은 무려 식물도 수를 세는 능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주인공은 바로 식충 식물인 파리지옥이다. 파리지옥은 먹이가 와서 앉으면 잎을 오므려 붙잡은 뒤 소화액을 분비한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고 먹이를 잡기 위해 파리지옥은 곤충이 잎에 몇 번 접촉했는지에 따라 움직인다. 두번 접촉하면 잎을 오므리고 세 번쯤 더 접촉하면 소화액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다섯 번까지는 셀 수 있는 셈이다. -151

 

 그는 이 책에 이미 익숙하고 지겨운 수학 아닌 수학인 사칙연산을 억지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나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넣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고 이런 수학 이야기들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런 현대 수학의 연구 성과나 수학적 사고에 관한 지식을 이미 충분히 접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이 책을 계기로 자신이 생각하는 수학이 애초에 무엇이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을 기회도 될 것이다.

 

 사칙연산은 진정한수학이 아니라는 말은 우선 고작더하기 빼기를 틀리는 것은 결국 그 문제들이 의도한 수학 자체를 배우고 익히는 능력 자체와는 무관하는 위로의 의미도 없지 않다. 그 수학 자체의 존재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새롭지도 짜릿하지도 않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다. 진정한 수학이란 무엇일까? 이를테면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를 다루는 뉴스를 볼 때 아주 간신히 접하는 것이 그런 내용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수학과 오히려 멀어지는 이유가 되기 십상이다.

 

재야의 수학자가 대단한 발견을 한다는 판타지는 유혹적이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는 기존 수학 이론의 전복을 꿈꾸는 야심 찬 아마추어 수학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심만 너무 커 아집에 빠지게 된다면, 논문은 못 내고 신문에 광고만 내는 사이비 수학자가 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 -38~39

 

 그런 까닭에 이 책에 담긴 짧은 수학 이야기들은 더 각별하다. 하나하나가 중요한 사고의 단서를 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것이 아무리 수학적이라 해도 어쩌면 너무 소소하거나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나 한 사람이 기존의 모든 이론 체계를 뒤집을 수 있다는 야심에 내 발상과 이상이 너무 소중하다는 아집까지 더해질 때의 파국을 지적하는 부분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제도와 절차가 아니라고 말할 때 홀로 옳았던 이들의 극적인 사례들에 기대서 모두의 반대를 단지 돌파해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하게 되는 왜곡이, 수학에 대한 통념과도 닿아 있다는 사실은 익숙하면서도 예리하다. 어디에나 있는 그 당연하고 소소한 지점들이 수학에서도 예외가 아닌 까닭이다. 누구나 알고 어디에나 있는 점들로부터 가볍게 선을 그어 수학으로 잇는 법을 이 책은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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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마름을 보고 있다. 대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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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아껴서 증오하다 미친 삶이 내 것이 아니더라? 그 삶이 누구 것인지도 내 문제가 아니고. 사람 귀한 줄을 영영 모르는 삶이니까 충분해. 누구도 혐오할 가치가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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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사진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을 글로 적어보시라. 그리고 그 방법대로 판단하는 과정을 밟아보시라. 틀린 답을 내기 일쑤다. 논리와 언어로는 그 방법을 잡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늘 하는 일이니 분명히 가능한 일인데, 그 방법을 일일이 표현하려 들면 난감해진다. 아직 우리가 이해하는 언어로는 구체적으로 작성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가 우리 몸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광근) - P9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서당개에게 5만 년어치의 글을 들려준다면? 기계 학습을 돌리는 컴퓨터에게 5만 년어치 책을 주입해주면 학습 결과로 얼추 글을 쓰는 서당개를 만들어 준다. 종종 엉터리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해낸다. (이광근) - P10

컴퓨터의 원천 설계도를 선보인 튜링(Alan Turing)의 업적이 사실 그런 것이었다. 튜링은 1930년대에 기계적인 계산이 뭔지를 명확히 정의한다. 그 정의 덕분에 컴퓨터로 하는 온갖 문제 풀이 능력과 한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의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유지된 덕분에, 파악했던 것들이 지금까지 사실로 유지될 수 있었고,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가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전속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광근) - P11

이 책에서 내가 논의할 알고리즘은 조금 특별한 것들이다. 대부분의 알고리즘과는 달리, 디자인한 사람이 모르는 환경에서 그 알고리즘들이 실행될 수 있다. 그 알고리즘들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그 환경을 효과적으로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운다. 상호작용을 충분히 하고 나면 그 알고리즘들은 더 똑똑해진다. 어떤 전문성을 가지게 된다고 할까. 알고리즘에 미리 심어 넣은 전문성이 아니라 실행하며 외부 환경에서 배워 익힌 전문성이다.
이런 알고리즘을 에코리즘ecorithm이라고 부르겠다. 에코리즘이 따르는 학습을 얼추거의맞기probably approximately corect, PAC학습이라고 한다. 이 학습 모델은 성공적으로 학습했다는 게 뭐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를 판단하는 틀을 제공한다. 그 안에서 디자이너들은 알고리즘이 배운 전문성이나 그것을 배우는 비용을 재 볼 수 있다. (이광근) - P18

따라서 인덕(학습)의 정의는 수학적인, 명확한 것이어야 한다. 튜링 테스트같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 튜링의 기계적인 계산의 정의 같아야 한다. 튜링이 계산을 애매하게 정의했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튜링 시절 그럴듯하게 들렸을 기계적인 계산의 정의는 어떤 게 있을까? 이런 건 어떤가. "어떤 일이 기계적으로 계산 가능하다는 것은 다음의 경우만이다. 그 일을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예를 들어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계산할 수 있는 경우." 이런 정의가 그럴듯하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테지만, (튜링이 계산에 관한 지금의 개념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 1936년에 이런 애매한 정의로 시작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21세기의 정보 혁명은 싹트지 못했을 것이다. - P11

이 책의 핵심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학습 현상을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한 것이다. PAC 또는 얼추거의맞기probably approximately correct 모델이라고 한다. 이 모델은 학습 과정을 계산 과정으로 보는데, 특히 그 연산 횟수가 제한된 것으로 한다. 생명체는 너무 긴 시간을 학습에 쓸 수가 없다. 다른 일도 해야 하거니와 수명 때문에도 학습 시간이 마냥 길 수는 없다. 또, 이 모델은 학습 중에 외부 세계와 주고받는 횟수도 비슷하게 제한된 것으로 한다. 그리고 학습으로 유기체가 새로운 정보를 분류하는 데 틀리는 경우가 적어야 하지만 항상 맞을 수는 없다는 점을 담고 있다. 인덕induction, 歸納은 ’아마도’가 낀다. 그래서 늘 백 퍼센트 정답만 인덕할 수는 없다. 정답과 조금 어긋난 것을 만들 여지가 늘 있다. 또 세상이 갑자기 변하면 학습한 것은 언제라도 쓸모 없어질 수도 있다. - P11.12

이 책에서는 이런 에코리즘의 언어를 써서 진화, 학습, 지능을 설명하려고 한다. 에코리즘이라는 알고리즘으로 생명의 진화 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만족해야 할 것이 많다. 특히 제한적인 횟수만 환경과 상호작용해서, 그리고 제한적인 자원만 사용해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에코리즘도 그렇고 그걸 품고 고안된 일반 학습 모델(얼추거의맞기probably approximately correct, PAC 학습이라고 부르는)도 그런 제한된 자원량 이상을 소모하지 않는 알고리즘이 되도록 정의한 것이다. 이런 알고리즘으로 설명되는 자연 현상은 우리 경험에 익숙한 것(학습, 유연한 반응, 그리고 적응 등)부터 진화와 지능까지 광범위하다. - P26

기계적인 계산으로 자연 현상이 이해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비교적 최근 아이디어지만, 자연의 비밀을 밝히는 데 사용하는 무기의 하나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물리의 법칙을 표현하는 데 수학 방정식이 유용하다는 아이디어, 실험실의 실험이 화학 세계의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아이디어, 그리고 사회과학에서 통계 분석이 인과 관계에 관한 실마리를 준다는 아이디어들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기계적인 계산의 관점이 유용하다는 아이디어도 그런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34

컴퓨터과학의 대상은 컴퓨터가 아니다.
천문학의 대상이 망원경이 아닌 것처럼.
—다익스트라(Edsger Dijkstra) - P37

튜링이 보인 건 기계적인 계산이라는, 혹은 생각 없이 한 스텝 한 스텝 실행하는 정보 처리라는 애매한 개념이 체계적으로 정의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기계적인 계산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계산이 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 P40

멈춤 문제halting problem의 불가능에 대해서 주의해야 하는 점은, 모든 기계에 대해서 그 멈춤 여부를 정확히 답하는 기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든‘과 ‘정확히‘가 핵심 조건이다. 몇몇 기계에 대해서만 정답을 내는 기계는 가능하다. 혹은 모든 기계에 대해서 답을 내지만 때때로 틀린 답을 내는 기계는 가능하다. 모든 기계에 대해서 항상 정답을 내는 기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P44

튜링 3원소 중 하나인 기계적인 계산의 정의, 이게 그래서 중요한 시작이었다. 튜링은 그 모델로 기계적인 계산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을 모조리 잡아내려고 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현상까지 모조리, 사람이 창의성이나 영감을 이용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별생각 없이 하는 일들이라면 모두 튜링기계로 표현하려는 게 목표였다. - P46

컴퓨터과학과 물리학이 주로 사용하는 수학도 차이가 있다. 튜링 이전의 수학은 연속한 세계를 다루는 것continuous mathematics이 지배적이었다. 물리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수학이다. 변화가 한없이 작은 양으로도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세계다. 하지만 튜링기계는 연속하지 않는 모델이다. 변화가 뚝뚝 끊겨서 일어나는 세계를 다루는 이산수학discrete mathematics의 세계다. 튜링 이전까지는 이산수학은 거의 연구되지도 않았다. 사실 튜링의 영향이라고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데, 이산수학이 부상하게 된 것이 튜링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다룰 학습과 진화 등의 현상을 정의할 때도 이산 모델이 가장 튼튼한 모델이 된다. 학습과 진화의 핵심 현상을 끄집어내는 데 가장 유효한 것이 이산 모델들인 것이다. 연속 모델이 결국에는 큰 관심을 받겠지만, 첫 스텝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을 정의하는 데는 연속 모델보다는 이산 모델이 직관적이다. - P50.51

여담으로, 현재의 과학 분야 전반에서 계산 복잡도의 중요성을 흡수하는 과정에 있지만, 전통적인 과학 교육은 아직 그런 상황을 준비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계산 복잡도로 보면 전통적인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푸는 문제들은 모두 현실적인 비용에 풀 수 있는 것들로 제한되어 있다. 산수도 그렇고 선형대수도 그렇다. 이 상황은 당연히 이유가 있지만(현실적인 비용으로 할 수 있는 방법만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 문제들만 다루는 교육은 잘못된 인상을 남긴다. 쉽게 정의되는 문제는 모두 효율적으로 풀린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러면 학생들이 잘못 준비될 수 있다. 전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계산적으로 비용이 현실적인 풀이법을 찾아야 한다는 기준을 간과할 수 있다. - P55

그림 3.4 무작위randomized 알고리즘의 예. 임의의 모양이 사각형 안에 그려져 있다고 하자. 그 모양의 면적을 어림잡는 방법으로 그 사각형 안에 점을 무작위로 찍어서 그 중에서 모양 안에 들어가는 점들의 비율로 계산하는 것이다. 조건은 점은 사각형 안에 어디에나 동일한 확률로 찍는 경우여야 하고, 각각의 점 찍기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크게 틀리는 경우는 아주 운이 나빠서 균일하게 점을 찍지 않게 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점점 더 많이 점을 찍으면 줄어들게 된다. 무작위 알고리즘은 근본적으로 이런 식의 성공 보장을 한다. - P58

현재까지 다항 시간 안에 인수 분해를 하는 알고리즘은 양자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무작위 알고리즘(BPP) 중에도 없다. 인수의 존재 여부를 알아내는 것과 인수를 찾아내는 것 사이의 어려움은 기하급수로 차이가 난다. 이 차이가 암호 시스템들의 기초다. 예를 들어 RSA 암호시스템에서는 두 개의 큰 소수 p, q를 골라서 곱한 결과 x를 공개하고 p, q는 내가 비밀로 가지고 있는다. 다른 사람들이 x를 가지고 내게 보낼 메시지를 암호화하면 나만 p, q를 가지고 그 암호화된 메시지를 풀 수 있다. 임의의 소수 p, q를 만드는 일은 임의의 수를 선택하고 소수인지를 확인하면 되지만, 암호화된 메시지를 엿들으려면 x를 인수분해해서 p, q를 알아내야 하는데 이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 인수분해 문제는 BOP에 속한다. 즉, 양자 컴퓨터로는 다항시간 안에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양자 컴퓨터가 실현 가능할지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 P63

가설 P≠NP는 현재는 물리 법칙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 물리 법칙도 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물리 법칙은 당연히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게 아니다. 계산에 대한 가설이 물리 법칙과 역할이 비슷한 이유는 누군가 틀렸다는 증거를 내놓기 전까지는 가설로서 유용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가설은, 다항 시간에 마칠 수 있는 알고리즘은 NP-완전 문제들에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에 이 가설이 틀렸다고 밝혀지면 물론 좋은 일이다. 모든 NP-완전 문제들을 푸는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찾아낸 셈이므로, 그게 충분히 효율적이면 혁명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 P66

알고리즘의 풍부한 능력에 대한 또 다른 면은 이런 것이다. 아주 간단한 알고리즘인데 그 실행 양상은 우리 같은 유한한 존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실행 양상을 파악할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잘 알려진 것이 있다.
다음의 알고리즘이다.

1. 양의 정수 n으로 시작한다.
2. n=1일 때까지 다음을 반복한다:
(a) 만일 n이 짝수면 n을 n/2로 바꾼다.
(b) 만일 m이 홀수면 n을 3m +1로 바꾼다.

예를 들어, n=44에서 시작하면 다음의 값들을 만든다. 44, 22, 11, 34, 17, 52, 26, 13, 40, 20, 10, 5, 16, 8, 4, 2, 1. n의 첫 값이 정해지면, n의 다음 값들을 차례로 계산하는 것은 간단하다. 알 수 없는 것은 시작하는양의 정수가 뭐가 되었든 만들어지는 숫자열이 항상 끝날지 여부다. 수학자 콜라츠(Lothar Collatz)가 1937년에 낸 문제인데 그 이후로 많은 양의 정수로 시작해 봤는데 모두 1을 만들고 알고리즘이 끝났다. 그러나 (그 문제가 얼마나 간단한지에 대비해서 놀랍게도) 누구도 증명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경우 늘 끝나는지, 아니면 어떤 양의 정수의 경우 끝나지 않는지.
콜라츠 문제는 간단한 알고리즘에 숨은 근본적인 복잡성에 대한 한 예다. 특히 그 알고리즘은 외부 환경과는 완전히 격리되어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이었다. 입력이란 것도 필요 없이 구성할 수 있다. - P69.70

학습은 많은 단계를 통해서 달성되는데, 각각의 단계를 따로 놓고 보면 그럴듯하지만, 뭐 하자는 건지 어디로 향하는지 무심하다. 이 단계들은 큰 그림의 계획하에 작용하는 알고리즘을 따른다. 그 때문에 각 단계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단계들이 모두 모여서 뭔가를 이루는 일종의 수렴 과정이랄까.
진화도 비슷하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진화의 많은 작은 단계가 따로 놓고 보면 크게 의미 있지는 않다. 하지만 큰 그림을 품은 알고리즘 스타일의 계획 아래 발맞춰 진행되면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다. - P77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학습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경고 시그널로도 볼 수 있다. 실험 데이터를 많이 모은다고 반드시 대상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게 돕는것은 아니다,라는 경고. 단적인 예로, 개별 사람들의 행동이 가까이서 관찰되어 왔고 수천 년 동안 널리 기록되어 왔지만 아직 우리는 그런 행동을 만드는 뇌의 작동 방법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생물학 연구방법에 대해 참고할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 P86

의식 현상을 계산 과정으로 보자는 아이디어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그 ‘계산 과정‘이라는 것이 대단히 폭넓기 때문이다. 만능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계산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뇌 모델이나 생각 과정 모델은 매번 그 시대의 첨단 기계 장치들로 바뀌어 왔기 때문에, 혹자는 컴퓨터가 현재로선 첨단 기계지만 미래에는 또 바뀌게 될 거라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라고 본다.
컴퓨터가 모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기계적인 계산을 컴퓨터가 실행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단순히 현재 가장 첨단의 복잡한 기계 장치이기 때문에 자격이 있는 게 아니다. 컴퓨터가 하는 계산이 기계적인 계산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진지하게 보는 것이다. - P91

우리의 과제는 논리가 놓치는 직관의 세계가 뭔지, 그리고 그 세계로 가는 과학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직관의 세계를 논리적인 가이드에 준해서 잘 작동하는 세계로 정의하고, 그 세계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직관 혹은 상식이 발휘하는 능력은 명확한 논리적인 가이드가 없는 세계에서 좋은 판단을 해내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논리가 없어 보이는 세계를 논리의 그물로 온전히 길어 올리는 일이다. 논리적인, 수학적인 이론을 세우는 일이다. - P92

두 개의 가정만 있으면 인덕을 이치에 맞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두 개의 가정은 논리를 위해서 필요한 면도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학습 과정에 늘 깔려있는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가정은 변동 없다는 가정invariance assumption이다. 학습한 결과가 사용되는 미래 상황은 학습할 때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가정이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사한다면 예전 도시에서의 경험은 새 도시에서도 도움이 된다. 두 도시 상황이 대단히 다르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변동 없다는 가정을 조금 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렇다. 어떤 상황들이 있는지, 그리고 상황마다 얼마나 자주 발생할지가 학습 전후로 변동이 없다는 가정이다. 이 가정은 세상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고, 변하더라도 어떤 규칙성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런 규칙성이 세상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난 한 시간 동안 해가 지평선을 향해 꾸준히 내려가고 있었다면, 앞으로 한 시간 동안도 해는 꾸준히 지평선에 가까워지리라고 우리가 예상하듯이. - P96.97

깊은 신경망(deep neural net, DNN, 딥뉴럴넷) 알고리즘이 (PAC 학습 알고리즘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기계 학습에서는 잘 사용되고 있는 많은 알고리즘의) 한 예다. DNN 알고리즘은 실험적으로는 PAC 알고리즘의 양상을 보인다. 정확도를 올리는 데 필요한 학습 시간이 기하급수로 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용되는 실제 DNN 알고리즘들이 PAC 알고리즘인지는 아직 엄밀히 증명된 바는 없다. PAC 알고리즘이려면 모든 분포의 샘플들에 대해서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자격이 안 되지만 쓸모 있는 알고리즘은 흔하다. NP-완전 문제를 푸는데, 실제 현장에 출현하는 입력들에 한해서는 다항 시간에 답을 내는 알고리즘이 종종 있다. 그런 알고리즘은 NP-완전 문제를 다항 시간에 푸는 알고리즘은 아니다. 모든 입력에 대해서 다항 시간에 답을 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DNN 알고리즘들이 이와 유사할 수 있다. 이상적인 PAC 알고리즘 자격은 안되지만 현실에서는 쓸모 있는. - P114

그런데, 그런 함수(많은 데이터에 숨은 간단한 함수)를 다항식 비용으로 인덕하는 건 대부분 불가능할 것 같은 이유는 데이터를 더 많이 봐야만 정답 함수의 면모가 드러나서가 아니고, 있는 데이터에서 정답 함수의 면모를 끄집어내는 과정, 이 과정 자체가 다항식 비용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다. - P121

내가 믿는 바, 사람들이 복잡한 개념을 학습할 수 없는 주된 걸림돌은 데이터가 아니다. 적당한 개수의 샘플 데이터에서 규칙성을 도출해내는 계산 과정의 복잡도가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행성 궤도가 타원형을 그린다는 것을 인덕하는 데 큰 어려움이 바로 이것이었다.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데 수백 세대가 걸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타원형 궤도라는 개념이 사람들이 쉽게 도출할 수 있는 규칙성 중에 한동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P121

정리하면, 학습의 한계를 이해하려거든 계산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P=NP로 판명되거나 그에 버금가는 예상외의 강력한 결과가 나온다면, 모든 다항식 복잡도(P 클래스)의 함수가 다항식 개수의 데이터만 있으면 학습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P=NP는 아니라고 컴퓨터 과학자들이 널리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모든 P 클래스 함수가 데이터만 있다고 학습 가능한 건 아닐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즉, 데이터 안에 학습할 함수에 대한 모든 게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학습 가능한 함수들의 경계를 파악하는 데 충분치 않다. - P123

[RSA(Rivest-Shamir-Adleman) 암호 시스템의] 공개 열쇠를 인수분해해서 짝꿍열쇠의 핵심 부품을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큰 수의 인수분해를 현실적인 비용으로 할 수 있는 디지털 컴퓨터 알고리즘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 P124

정규 언어를 학습하는 일은, 다항식 개수의 문장들만 보고(문장마다 그 언어에 속한다 속하지 않는다 여부가 표시되어 있다) 학습한 후 새 문장이 오면 해당 언어의 문장인지 답을 내주는 일이다. 정답 언어의 오토마타를 추정해 내는 게 한 방법이다. 원칙적으로, 오토마타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문장을 받아서 얼추 거의 맞게probably approximcately correctly 판단해 주는 가설을 추정해 내는 거다. 촘스키 이후로 수십 년 연구해 왔지만 그런 학습 알고리즘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1980년대에 그 실패가 말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규 언어를 PAC 학습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존재하면 RSA 암호 시스템을 깰 수 있다고 증명되었다. 그런 암호 시스템이 깨질 수 없는 한 정규 언어를 학습하는 기계적인 방법은 없다. - P126

내 생각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접근 가능한 목표를 모두 좇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배울 게 풍부한 환경에서는 선생이 없더라도 계속 학습할 수 있다. 그 덕에, 이전에 학습한 개념을 갈고닦는 것뿐 아니라 접근 가능하기만 하면 전혀 새로운 개념도 배울 수 있다. - P131

진화가 PAC 학습의 한 예라면, 진화도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종 목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때그때의 목표가 진화에도 있어야 한다. 진화를 목표 없는 경쟁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경쟁만으로 어떻게 단순한 단백질 회로가 시각이나 달리는 기능을 하는 정교한 시스템으로 발전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비유로, 주식회사를 생각해 보자. 다른 회사들과 경쟁하는데 경쟁만으로 회사의 여러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이윤 창출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행동이 나온다. 꼭 경쟁만이 회사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 P144

여기서 ‘최선‘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오해가 없기를, ‘최선‘이 최적을 뜻하는 건 전혀 아니다. 인류는 최선을 좋은 진화 과정의 결과로 출현한 것이다. 최적의 결과를 좇은 진화의 목적물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최선‘으로 의미하는 바는 아주 지엽적인 의미다. 하나의 개체와 하나의 환경에 대해서 어느 한순간에 ‘최선‘이라는 뜻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어떤 행동은 현재 환경에서 다른 행동보다 더 이득이 된다. 우리 몸의 일곱 번째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함수들 중 좀 더 좋거나 좀 더 나쁜 함수가 있고, 하루에 먹을 초콜릿 양에도 좋은 양이 있고 나쁜 양이 있다. 뭐가 더 좋은지는 그때그때 환경에 따라 변한다. 현재 행동 때문에 다음번에 가장 유익한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 현재 환경에서 지금과 다음번 행동 조합만을 따저서 가장 큰 이득을 만드는 행동을 유도하는 함수가 ‘최선 함수‘다. - P146

진화 과정은 학습 과정과 똑같다. 학습할 수 있는 목표를 좇는 학습 과정은, 이미 배운 것에 조금씩 새로운 것이 덧붙여지면서 차례차례 쌓여간다. 그리고 그전에 배운 대부분이 유지된다. 진화 과정도 같다. 다양한 생물종에 걸쳐서 유전체의 많은 부분이 유지되며 변화가 조금씩 쌓여간다. 변함없는 부분들은 아마도 바뀌지 않는 게 좋은, 중요하고 복잡한 진화 결과를 표현하는 부분들일 것이다. 지구상에서 생명체에 공통으로 필요한 생화학 기초 정보 같은, 이 부분이 조금만 바뀌면 유기체는 불가능하다. 유전체의 다른 부분은 굉장히 빠른 진화 과정을 겪으며 변한다. 잘 작동하고 있고 유용한 장치를 만드는 유전 정보는 버리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진화에 꼭 필요하다. 학습에서도 그렇듯이. - P150.151

이렇게 쉽게 부서지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근거 없지만 상식선에서 하는 생각 과정을 명확하게 결정된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한, 이치 따지기reasoning 시스템이 논리적인 방식이건 확률적인 방식이건 쉽게 부서지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 표현한 정보가 내부적으로도 부대끼고 표현 대상이 되는 바깥 세계와도 동떨어지면서 그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논리 추론의 의의는 무너지게 된다. 근거가 있는 생각 과정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원칙을 가지고 잘 구성되었겠지만, 근거 없이 상식적으로 진행되는 생각 과정에 대해서는 어떤 유용한 보장도 할 수 없게 된다. - P188

레지스터가 아주 소규모일 수밖에 없는 실용적인 이유가 뇌에서도 똑같이 성립한다. 작업보따리working memory를 관리하는 회로들이 꽤 복잡할 것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잘 조정하는 일도 복잡할 것이다. 복잡하고 빠른 장치를 대용량으로 갖추기에는 비용이 너무 클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음의 눈이 한순간에 다룰 수 있는 정보 조각이 몇 개 안 되는 것이다.
작은 작업보따리는 결코 궁극의 제약 사항이 아니다. 뇌는 단순 계산만이 아니라 학습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더 심한 제약들이 있다. 마음의 눈을 통해 보는 시야가 좁은 것은 세계를 학습하는 데 꼭 필요하다. 더 많은 정보에 주의를 기울일수록 그로부터 패턴을 도출해내기는 더 복잡해진다. 7±2개가 시야 범위와 계산 효율 사이의 적절한 균형인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그렇게 작은 조리개를 통과하게 됨으로써 현실적으로 학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P197.198

인간에게서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기 전에 일어난 진화 과정과 수정된 후의 학습 과정이 너무 비슷해서 이 둘을 경계면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의 성격 중에 어느 것이 5.5살 이전 경험에서 배운 것이고 어느 것이 그 이후에 익힌 것인지 구분하려고 한다고 하자. 말이 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탄생 순간이 모든 게 시작되는 지점은 아니다. 우리가 수정되거나 탄생했을 때, 이미 우리는 많은 중요한 것들을 반 정도 학습한 형태로 가지고 있다.
타고난 것이냐 길러진 것이냐는 틀린 질문이다. 계속되는 변화의 과정 중에서 거의 아무 순간이나 잡아서 억지로 묻는 식이기 때문이다. - P215

사람의 초기 학습 본능은 세계가 중립인 것으로 생각하게끔 진화했을 것이다. 주어진 모든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표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부모나 선생은 이런 상황을 이용할 수 있다. 학습이 신속히 진행하도록 돕는 정보를 내놓으며 아이의 학습을 도울 수 있다. 반대로, 나쁜 경우 호도할 수도 있다. 왜곡된 정보를 내놓아서 학습 알고리즘이 잘못된 일반화로 신속히 수렴하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은 우연의 일치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간다. 학습할 수 있는 것은 거리낌없이 좋고 앞에 놓인 정보를 중립적으로 보려는 경향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행동을 믿게 된다.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속이려고 드는 게 아니라고 본다. 식당에 가서는 그 식당 대표 음식을 먹고 있다고 믿게 된다. - P216217

추가적인 이유가 있을 듯싶다. 왜 학습 알고리즘들이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부터 가설을 부지런히 만드는지. 예전에 논의한 퍼셉트론perceptron 알고리즘이 처음 제안되었던 이유는 한 스텝 한 스텝 진행되는 것이 뇌 모델과 비슷해 보여서인데, 이 알고리즘의 또 다른 성질은 소위 온라인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예시를 몇 개를 보았건 간에, 매번 예시를 보면 새 가설을 잡는다. 우리 뇌가 그런 온라인 알고리즘을 구현한 것이라면(그렇다고 나는 믿는데) 매번 예시를 보고 가설을 내놓으려 할 것이다. 우리 뇌는 성급하게 판단하도록 짜여 있는 것이다.
성급한 판단은 중립적인 세계에서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이득일 것이다. 한 번 만나고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점도 한 번 가보고 판단한다. 빈약한 증거로 성급하게 편견을 가지는 경향은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본다. 빈약한 정보로도 일단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가진 결과일 것이다. - P218

누구나 그렇듯이 우리 각자는 개별적으로 우리 의견이나 느낌을 위해서 투쟁하고 행동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우리 느낌과 의견이 다른 사람 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정당화할 수있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 P221.222

제일 정교한 이론 있는 기술은 그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론 없는 분야(사회과학을 포함해서)에서, 우리의 의사 결정은 가장 정교한 지적 도구로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PAC 학습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불확실성에 휘둘린다. - P226

이 책에서 사람의 인지를 어떻게 보는지 정리해 보면 이렇다. 사람이 이해하는 개념은 계산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후로 모종의 알고리즘 스타일의 학습 과정으로 얻어진. 그런 개념은 또 통계적인 과정에서 온 것이다. 학습 과정이 통계적인 증거로부터 기본적인 타당성을 끄집어 낸다는 의미에서. 즉, 증거를 더 많이 볼수록 우리의 확신이 증가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마음의 눈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바깥 세계와 내부의 기억 장치가 만난다. 우리는 이 마음의 눈을 통과하는 정보를 통제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마음의 눈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신경계 회로들은 지식의 거대한 합을 만들고 있는데 이는 많은 진화와 학습이 축적된 결과다. 다윈 방식으로 다시 이야기하자면, 우리의 지식은 차례차례 일어난 작은 변화를 통해서 축적해 온 것이다. 각 변화는 학습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고, 이치 따지기는 이런 회로를 마음의 눈 안에서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뇌 시스템은 이론 없는 것을 다루도록 진화했지만, 이론 있는 결정을 할 때도 같은 회로를 사용한다. - P227

나는 항상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e‘이라는 용어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내 주 전공이 그 분야라고 말하는 것도 좀체 꺼려왔다. 다익스트라(Edsger Dijkstra)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컴퓨터과학의 선구자로서 공헌한 것이 많기도 하지만 뚜렷한 의견과 촌철살인의 위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내게 어떤 공부를 하냐고 물었다. 기억할 만한 대화를 만들려는 욕심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이렇게 답했다. "AI(인공지능)요." 그가 즉각 되받았다. "I(지능)를 연구하지 그래요?"
‘지능‘이 ‘인공지능‘보다 더 일반적이라면, 그의 말대로 당연히 더 일반적인 문제를 파야 한다. 그것이 더군다나 지능과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되돌아보면, 그동안 내가 해왔던 공부가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인공지능 관련해서 이야기한 모든 것이 사실은 광범위하게 일반 지능에도 모두 적용된다. - P233

어떤 문제에는 간단한 방법이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가까운-이웃nearest-neighbor 알고리즘이다. 답안 예시들이 있고 가설은 만들어 내지 않는다. 새로운 질문이 주어지면 답안 예시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것을 찾아서 그 답안대로, 혹은 답안을 참고로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최근의 자연어 번역이 이 기술을 사용해서 성공한 경우다. 두 언어 사이의 번역 예들을 어마어마하게 모아 놓으면, 새로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에 대한 값진 정보가 거기에 있다. - P238.239

인식 능력에서 아기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준비되어 태어난다. 간접적인 증거로,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일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상식들을 모두 정의하려고 할 때 만난 어려움이 있다. 소설을 이해하려면 소설에는 표현되지 않은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서 소설에는 없는 것들이다. 성인이 읽는 복잡한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에서도 거의 같은 분량의 상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튜링의 꿈에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지만, 아기들은 놀랄 만큼 잘 학습된 상태로 태어나고 더 잘 배울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 P244

튜링은 기계를 프로그램하는 것과 기계가 배우게 하는 것 사이의 딜레마를 이야기했다. 그는 학습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때 다음의 주장이 힘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학습한 기계가 일종의 고정된 프로그램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그런 프로그램을 프로그래머가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주장이었다. 기계 학습이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에 학습한 결과를 같은 일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학습 과정을 통하지 않고는 모든 관련된 인자 값을 가진 학습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 P256

학습이 가진 중요한 장점은, 학습은 학습 시스템이 과거에 학습한 지식과의 관계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전달하는 예시마다 학생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의 예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예시들은 이런 방식으로 학생이 이미 익힌 지식과 관계를 맺는다. 선생이 정확히 그 관계가 뭔지를 모르더라도 그렇게 작동된다. 이런 의미에서 가르치기는 프로그램 짜기보다 훨씬 더 생동적인 행위다. 학생의 이전 지식이 학습의 주고받는 과정에 자동으로 동원되기 때문이다. - P257

우리 조상들이 지구 위에서 겪은 익스트림 생존 훈련과 똑같은 유산을 로봇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한 그들은 인간이 스위치를 끄는 것에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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