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무자년(戊子年)의 벽두에 쓰는 서평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2년 겨울(12월 10일 제1쇄 발행)이고 내가 읽은 판본은 2007년 2월 15일 발행된 제9쇄다. 저자 더글라스 러미스가 이 책의 내용은 구술한 것은 그러니까 밀레니엄으로 떠들썩하던 그 무렵 혹은 그 후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쓰여졌던 글도 부록으로 담겨있다. 더글라스 러미스란 사람은 말하자면 친(親)일본 미국인이라고 할까? 국적을 옮겼다는 얘기는 못들었으니 아무래도 맞는 표현이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러미스는 정말이지 일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런점에서 '친일파'란 단어의 '친'보다 이 사람에게 수식된 '친'이란 접두사가 더욱 진정성을 가지고 있지 싶다. 이 말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전체적인 논지의 주요 대상이 일본이란 소리다. 우리나라의 박노자처럼, 그는 비록 국적을 분명히 옮긴 우리나라 사람인 것이 러미스와 차이가 있지만, 너무나도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본이란 나라에 친절히 충고하고, 정중히 부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2007년이 저물면서다. 최대 이슈였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오래 전에 수중에 넣어두었던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유인즉, 이 책이 현대적 · 당대적 현실에 지극히 요구되어지는 것이면서도, 2008년부터 5년을 말아드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그 직접적 원인이라고 해야겠다. 제목 그대도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도 안되면 인수위원회 위원들에게, 그도 안되면 허공에다 대고라도, 해야만 했다. 최근 들리는 말에 의하면 대운하 건설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는 비보에 더욱 절실해져서, 며칠을 묵혀둔 이 책의 서평을 이 늦은 밤 시간에 쓴다. 어느 옛 노래처럼 '사랑해요'라고 쓰지는 못하는 처지가 못내 안타깝지만, 그래도 쓴다면 이 나라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 가득히 담고 쓰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압도적' 지지 속에 당선되었다. 숫자 놀음 같은 것은 접어두고, 선거 결과만을 놓고 보아도 이런 '압도적'이란 말이 그리 무색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선거율이 낮다고 해도 50% 가까운 득표율을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간 진보적 성향의 젊은 층들도 대다수 이명박을 선호했다는 대선 결과 분석을 보면서, 그들이 보수화 된 것이 아니라, 실용을 추구한 것이라는 평가를 한나라당 대변인이 내린 것이 오래 기억된다. 다른 말로 하면 현실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명박이 이 당면한 한국적 현실에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런가? 이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러미스는, 내가 좀 무식하게 옮기자면, "현실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라고 말한다. 이명박이 실용하고 현실이더냐? 웃지 못할 노릇이다.

이 책의 제1장 "타이타닉 현실주의"는 이런 상황을 절묘하게 비판한다. 우리가 현실주의라고 떠들지만 그것은 진정한 현실주의가 아니라고 말이다. 타이타닉 호가 빙산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빙산은 아직 보이지 않아서 현실적이 얘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상황, 결국 빙산에 부딪혀 파멸하게 되는 것이 분명 우리에게 놓인 현실임을 어찌 모르느냐고 목놓아 부르짖는다.

   
 

누군가가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비상식, 비현실주의적입니다. 왜냐하면, 타이타닉호라는 배는 전진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저마다의 일거리가 없어져,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진한다는 것이 타이타닉호의 본질인 것입니다. 전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모두가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오늘날, 세계 전체에 퍼져있는 현실주의는 그러한 현실주의라고 생각됩니다.

현실주의적인 경제학자가 타이타닉호에 "전속력으로"라는 명령을 하려고 합니다. "속력을 떨어뜨리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타이타닉호의 논리, '타이타닉 현실주의'입니다.

어째서 그것이 논리적이고 현실주의적으로 들리는가. 도무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17쪽)

 
   

이번 대선의 핵심 키워드는 '경제'였다고 한다. "살리고 살리고 명박이가 살리고"라는 슬로건을 지어줄 걸 그랬다. 그러나 러미스가 반문하듯이, 과연 경제성장만이 우리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주겠냐는 물음에 나는 회의적이다. 먹고 사는 어려움을 덜어준 박정희에게 그나마가 어디냐고 감사하기에는 내 머리가 너무 커졌다. 얼 쇼리스가 『희망의 인문학』에서 말하듯이 가난한 사람들이 지배체제의 무력적인 힘에 의해 그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그때의 배고픔은 잊었지만, 오늘 우리는 여전히 가난의 설움을 씻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배고픔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우리 부모님이 겪었던 가난이란 설움을 내가 또다시 겪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현실인 것이 엄연한 이상, 내가 그 누구에게 감사를 전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되지는 않는다. 경제 7% 성장을 자신하는 그에게 분배 7%의 성장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비정규직이 7% 줄어들고, 내 봉급이 7% 인상되는 그런 기대를 해도 좋은가? 주가가 이 배로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부동산 시세도 오르기를 기대하는 기대치에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없는 자들에게 주어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현실이 아닐까? 경제성장이라는 논리하에 우리의 이명박 선장이 이끄는 타이타닉호는 전속력으로 내달을 기세다. 한반도 대운하를 파느니 마느니가 앞으로 분분하겠지만, 그 안에 경제성장은 좋은 것이야라는 '현실주의'는 하느니 마느니를 떠나 모두가 공유하는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러미스의 "그건 현실주의가 아니야"란 목소리가 거기에 낄 수 있으면 좋겠다.

러미스가 주목하는 또다른 잘못된 현실주의로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논란이다. "일본 평화주의는 비현실적이다"라는 현실에 대해 러미스는 차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반박해 나간다. 전쟁이 끊임없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 무력화(無力化)를 추구하는 것은 자못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평화를 추구한다면서 펴나가는 정책들은 도무지 얘네들이 평화를 원하기는 한 것인가 의아스럽기만 하다. 미국이 그 대부지만, 우리나라도 전혀 예외는 아니다. 최근 국회에서 파병연장안이 통과된 것을 보면 뻔하지 않은가? 눈 앞에 보이는 이득만을 현실로 아는 이 현실주의자들에게 감히 누가 제대로된 현실을 보여줄 수 있을까? 러미스의 이 책을 이명박을 쫓아다니면서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금방 청와대 경호실의 대통령급 경호에 막혀 좌절되고 말 것이다.

다시 경제성장으로 돌아오면서 러미스는 '제로성장'은 어떤가 하고 제안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무한한 추구는 자연에 대한 무한대의 이용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 자연이라는 것은 무한대가 전혀 아니라는 뻔한 사실은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전세계 나라들이 자꾸 성장만 하면, 지구는 지금 '아파요'인데, 자꾸 들볶으면 죽지않고 배기겠는가? '제로성장'을 말하는 러미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2008년 벽두에 있어 소중하게 여겨진다.

   
  일본의 이와 같은 상황, 요컨대 제로성장 상황은 '불경기'라든가 '불황'이며, 큰 문제라고 신문의 경제면에는 씌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매우 의미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냐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제로성장을 '엔진 고장'이라 여기지 말고, 기꺼이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제로성장을 오히려 정부와 나라 전체의 적극적인 정책으로 삼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 나의 제안입니다. 앞으로도 경제성장을 계속하며 풍요로운 사회를 추구해 갈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 없이 제로성장 상태로도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 문제설정으로 관점을 바꾸자는 것입니다.(94~5쪽)  
   

일본만이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이런 "문제제기, 문제설정으로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더글러스 러미스가 그 대안으로 '대항발전'을 내놓고 있지만, 일단은 우리의 관점부터 먼저 바꾸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명박을 선택한 인간님네들께서 과연 성장만이 제일인가 하는 물음을 머리속 한 구석에서라도 그려주었으면 한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과한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며칠 전 녹색평론사에서 격월간 발행하는 《녹색평론》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먼저 읽고 나서는, 봄이 오면 자전거를 튼튼한 놈으로 구입할 예정이다. 책 값을 좀 줄여야 하더라도 말이다. 고백하지만 그간 자연을 꾸준히도 더렵혔던 인간으로서 이제라도 좀 녹색에 대해 생각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께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운하를 파신다고 하시니, 나라도 '녹색'으로 옷해입고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녹색을 생각하고, 경제성장 하시겠다는 나리들에게 "그거 아니어도 나 행복할 수 있거든요."라고 말하고 다녀야겠다. 그게 내 새해 벽두에 비는 소원내지 각오다. 이명박 당선자께 마지막으로 한마디 전하자면, "나 앞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요."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승주나무 2008-01-03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함.. 졸려~ 이 글 쓰느라고 나를 살살 피했던 거군요 ㅋㅋ
낼 읽어볼게요.. 지송~~~

멜기세덱 2008-01-03 17:27   좋아요 0 | URL
이 글은 어제 새벽에 발동이 걸렸더랍니다.ㅋㅋ
글고, 내가 언제 자기를 피했다고 그래요...ㅋㅋ

웽스북스 2008-01-03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얼마 전에 구입했는데 ^^ 푸하님이 추천해 주셔서요~ ^^
리뷰는 책 읽고 나서 자세히 읽어보게요 반갑습니다!! ㅋㅋ
(불면증도 반갑고 책도 반갑고)

멜기세덱 2008-01-03 17:28   좋아요 0 | URL
앗, 이 죽일놈의 불면증....요즘 제가 미쳐요.!!

마노아 2008-01-0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에요~ 저도 이 책 사놓고 아직 못 봤는데 다시금 시선이 갑니다. 저도 2008년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_<)

멜기세덱 2008-01-03 17:28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행복해보여요....

쥬베이 2008-01-03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고 갑니다. 이명박 관련부분 웃겨요^^
'이 책을 이명박을 쫓아다니면서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금방 청와대 경호실의 대통령급 경호에 막혀 좌절되고 말 것이다.' 압권ㅋㅋ

고양이 2008-03-1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노혜경이라고 합니다.
라디오21에 님의 서평 소개하려고 합니다.
허락해주실 것으로 믿고 미리 소개해 버릴랍니다. 괜찮지요?
^^;;;;;

멜기세덱 2008-03-19 17:4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미리 소개해 버리시고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ㅎㅎ
워낙에 미천한 글이라서.....
근데, '라디오21'은 뭐하는 곳이죠? 제가 라디오를 잘 안 들어서리...ㅎㅎ

고양이 2008-03-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라디오21은 인터넷라디오방송국이고요. http://www.radio21.tv/
제가 님의 글을 소개한 프로는 노혜경의 캣츠아이 라고, 매주 월~금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화, 사람, 관심, 뭐 이런 주제입니다.
매월 책 한 권씩을 청취자들과 함께 읽자, 이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3월의 도서가 이 책이에요. 오늘 책 이야기 하면서 블로그 뒤적뒤적 하다 보니 님의 글이 나오는데, 제가 처음 이 책 소개할 때 했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더이다. 그래서 반가운 김에^^;;;;;

미리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라디오에서 책이야기를, 그것도 함께 읽자 그러면서 한달씩 하려면 어떤 형식을 갖춰야 하는지 다양하게 실험하는 중입니다. 인연이라고 저는 주장하고 싶고, 그러니 가끔 조언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양이 2008-03-20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이 책을 선택할 때 이미 님의 글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어요. 알라딘, 교보, 다음과 네이버의 블로그들의 독후감을 다양하게 참고했거든요^^ 그때 님의 글을 아마 읽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저 인연이 아니라 대단한 인연인 게죠. 저 혼자만의 주장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