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알라딘에서 마련된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감치 서울엘 올라갔습니다. 서울과는 친숙하지 않은 터라, 강연장소인 문지문화원을 찾기가 수월찮더군요. 조금 헤매다가 용케 찾았습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인지 한 3~40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석훈 선생의 강연도 무척 좋았고, 시비돌이님의 주선으로 이어진 뒷풀이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계십니다. 생일이라고 염치 없이 떠벌렸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께서 축하해주시고, 그리고 송구하게도 선물을 보내주셨어요,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Jade님, 마노아님, 혜경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프락사스님도요.ㅎㅎㅎ

*** 강연 후 뒷풀이가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서울에서 밤을 보내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무튼 밤을 지새고 인천행 동반자 라주미힌님과 함께 아침 첫차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라주미힌님과 저는 같은 인천행이지만 신촌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가 그 목적지가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라주미힌님은 1300번을 저는 1600번이나 1601번을 타게 되죠. 그런데 그간 계속 제가 타야할 버스가 항상 먼저 왔었더랍니다. 라주미힌 님께서는 이번엔 본인 차가 먼저 올거라고 확신하더군요. 그런데 이번에도 제 차가 먼저 왔더랍니다. 쪼금 미안했지만.

**** 버스를 기다리면서(꽤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ㅜㅜ;;) 라주미힌 님께 그런 말씀을 드렸더라구요. "차에서 졸다가 연안부두까지 가면 어떡하냐"구. 웬걸 밤을 새운터라 차에 타서 잠깐 책을 보다가 이내 잠에 들었습니다. 일어나보니 연안부두 였습니다. 연안부두는 인천에 살면서도 이번이 2번째 였던것 같아요. 토요일 아침인데도 사람이 꽤 많더군요. 낚시꾼들과 군인들 그리고 여고생들....어디들 가는 것지 모르겠더라구요. 연안부두 터미널 안에 우동집에서 우동 한 그릇을 후루룩 마시고 얼핏 보이는 바닷가를 내다보면서 짠내를 물씬 마시고 왔더랍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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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18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이 손 꼬옥 붙잡고 인천까지 같이 가시는 줄 알았는데, 버스번호 한끝 차이로 신촌에서 바이바이하신 거로군요 ^^ 그 아침의 연안부두 우동집 우동, 정말 맛있었을 것 같아요 ^^ (반가웠어요, 저를 기억하지 못하신 멜기님! --> 알고보면 뒤끝 백만년)

멜기세덱 2007-11-18 23:54   좋아요 0 | URL
'그 아침의 연안부두'는 너무 추웠구요, 연안부두 여객 터미널엔 처음이라 궁금해서 들어갔다가 배가 고파, 그 안에 있는 유일한 음식점이 우동집이더군요. 그다지 맛은 없는...ㅋㅋ 뒤끝이 기시군요. 추운 겨울에는 뒤끝이 길면 욕먹습니다.ㅎㅎ 문을 잘 닫고 다녀야 하니까요.ㅎㅎㅎ

웽스북스 2007-11-19 00:24   좋아요 0 | URL
제가 뒤끝은 백만년 가는데 건망증이 심해서 다 까먹어요- 다음번에 먼저 반갑게 알아보시면 사르르르 다 까먹을 거에요 ㅋㅋㅋ

멜기세덱 2007-11-19 14:13   좋아요 0 | URL
뒤끝이 길다고 하셔서, 은근 긴장했는데요....ㅋㅋ

Jade 2007-11-1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라주미힌 님과 멜기세덱님이 두 손을 꼬옥 잡고 가셨어요? +_+

멜기세덱 2007-11-18 23:55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 님과 두 손을 꼬옥 잡고 가고 싶었다는.......막 이래....ㅋㅋ

마늘빵 2007-11-1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런. 연안부두까지 가셨군요. 이거 서울에서 처음 밤새신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드린 책은 어쩌면 맘에 안들지도 몰라요. 워낙에 저자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인지라. :) 저도 오랫만에 밤샜네요. -_- 토요일인 어제도 새벽에 들어왔는데. 오늘은 다행히 밤에 들어왔고요.

멜기세덱 2007-11-18 23:56   좋아요 0 | URL
역시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쩌면 매번 라주미힌 님보다 먼저가서 벌 받은 것 아닌지도 모르겠구요..ㅎㅎㅎ
예전에 한 두번 서울(영등포)에서 밤을 지새본 적은 있습니다. 바둑두면서요.ㅎㅎ
아참,,,,책은 워낙 맘에 든답니다...ㅎㅎㅎ

순오기 2007-11-1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안부두~~ 내 학창시절 추억이 서린 곳인데... 님은 그곳을 그렇게(?) 두번이나 가셨군요~ㅎㅎㅎ 감기는 안 걸리셨나요? 많이 쌀쌀해졌는데...
김씨네였나? 그들이 부르던 노래 '연안부두'가 생각나네요. ^^

멜기세덱 2007-11-19 14:14   좋아요 0 | URL
그렇게 두 번이나 간건 아니에요..ㅎㅎ
예전에 학원 알바뛰면서 회식한다고....전 회를 못 먹지만....ㅋㅋ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실고 오길래~~ 좋은 노래죠..ㅎㅎ
아~~ 막 노래방 가고 싶어지네....막 이래...ㅋㅋ

마노아 2007-11-1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개강연 못 간게 참 아쉬워요. 저는 신청날짜를 못 맞췄어요. 크흑...

멜기세덱 2007-11-19 14:15   좋아요 0 | URL
공개강연 못 오신게 참 아쉬워요.ㅎㅎ

라로 2007-11-20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뜬금없이 복면달호가 생각날까요?ㅎㅎㅎ
전 연안부두 한번두 못가봤어요~~~.
인천은 항구다~~~인가요???ㅎㅎㅎ

라로 2007-11-22 00:06   좋아요 0 | URL
에이, 첨으로 댓글달았는데 내꺼만 댓글 안달아주구,,,앞으로 댓글 안달까보다!!!흥

멜기세덱 2007-11-22 00:1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진짜 처음이세요? 음...몇 번 달아주셨던거 같은뎅....ㅎㅎ
(실시간 댓글로 만회하려는 몸부림ㅋㅋㅋ)
그나저나, 왜 복면달호에요? 목포도 항구죠....ㅎㅎ
연안부두야, 배탈일 아니면, 회먹을일 있어야 가는거 아닌가요?
배탈일 없으시면, 회잡수러 한 번 들르세요....ㅎㅎㅎ
 

어제 있었던 박완서 선생의 강연 후기를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전날까지 감기몸살로 며칠을 고생하셨다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강연에 임해주셔서 무척 고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첫인상은 뭐랄까, '곱게 늙으신 소녀'(어째 좀 싸가지 없는 표현같지만) 같다고 할까? 76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고은 인상과 조심스런 몸가짐이 마치 수줍은 소녀같았다. 강연 1시간여 전 도착하여 교수님들과 식사를 하러 가시던 중 학생들을 마주쳤을 때는 매우 쑥스러운 듯한 모습이었다. 그 느낌은 강연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번 강연은 조금 졸속으로 추진된 면이 없지 않다. 일주일도 남지 않고 박완서 선생이 강연에 오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강연 준비도 준비랄 것 없이 부랴부랴였다. 이번 강연은 원래 크게 계획된 행사는 아니었다. 매년 학과 학생들이 학술제라는 이름으로 몇몇 동아리들의 발표회에 지나지 않았던 행사였다. 그 한 프로그램으로 문인이나 학자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데, 그런 강연들은 장연스레 조촐할 따름이다.

예년에는 김윤식 교수를 초청한 적이 있었다. 유명세에 비해 대중적인 분은 아니셔서 역시 조촐했다. EBS 강사로 유명세를 탔던 모 야구선수와 동명의 학과 선배를 초청한 적도 있었다. 요새는 대형 학원에 스카우트되어 교사를 그만두었다고 알고 있다. 그 외에 여러분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 강연 만큼은 여러모로 예년의 그 조촐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준비가 워낙 부족한 탓에 강연 후 사진이나 동영상 등도 전혀 남은바가 없다. 사진이라도 찍어서 남겼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가 된다. 학생들이 휴대폰으로나마 찍어둔 사진이 있는지 만방으로 구해봐야겠다. 강연 하루 전 장소가 급변했다. 원래는 100여명 규모의 소강당으로 예정하고 있었으나, 아무리 봐도 좁지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2~300명 규모의 중강당이 자리가 나 급작스럽게 장소를 바꾸었다. 지금 생각하면 장소를 바꾸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강연 당일은 준비한 것 없이 분주했다. 연세가 많으셔서 앉아서 진행되어야 할 것 같아, 단상을 치우고 탁자와 편안한 의자를 마련했다. 마이크를 준비했었는데, 아마도 청중들과 질의응답이 있을 것 같아, 무선 마이크를 준비하느라 방송실을 뛰어다녔다. 이번 박완서 선생 초청에 지대한 공로를 하신 김명인 선생님께서는 전날 조금 우려하셨다. 몸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을 들으셨지는, 내일 혹시나 못 오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연 당일 전화를 주셨는데, 다행스럽게도 박완서 선생이 좀 좋아지셔서 강연엔 차질이 없을 거라고, 아직도 몸살 기운이 있고, 목이 좋지 않으니 강연 때 수시로 마실 수 있는 차를 좀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차를 준비하려는데, 있는게 별 게 없었다. 끽해야 싸구려 녹차였다. 이곳저곳 수소문 끝에 괜찮은 차를 몇 개 구했다. 지금 그 차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강연 내내 박완서 선생이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준간에 따뜻한 물은 한 번 더 따라드렸다.

오후 5시 30분 쯤 되니 학과 학생들뿐 아니라, 소식을 들은 선배들, 그리고 다른 학과 학생들, 근처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강연 장소를 보다 넓은 곳으로 옮겨 천만다행이었다. 6시쯤 되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5분쯤 후에 박완서 선생님을 모시고 교수님들께서 도착하셨다. 청중들은 큰 박수와 함께 부끄럽게 웃음짓는 박완서 선생을 맞았다. 강단으로 올라 마련된 의자에 앉아 강연이 시작되었다.

몸도 편찮으셔서 강연 원고도 따로 마련하지 못하셨다고 했다. 김명인 교수님께서 미리 언질을 주신 것은 강연을 대담형식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이지만 그래서 더 좋은 자리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문학평론가이신 김명인 교수님과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대담을 2~300여명의 청중과 함께 듣는다는 것은 나름 행운이지 싶기도 하다. 대담이 시작되었다.

먼저 김명인 교수님께서 박완서 선생의 근황을 소개하면서 며칠 간 몸살을 앓으셨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와주신 선생께 청중들은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김명인 교수는 이상하게도 박완서 선생은 "대작가, 대문호란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는" 작가라면서 "요즘은 국민여동생이니, 국민배우하는데, 박완서 선생은 국민어머니 혹은 국민할머니 같다. 또한 국민작가라는 표현이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하여 청중들의 호응을 받았다. 40세에 『나목(裸木)』(1970)으로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최근 『친절한 복희씨』에 이르기까지 37년간의 "영원한 현역"으로서의 활발한 작품활동의 힘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를 첫번째로 물었다.

박완서 선생은 체력과 정신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을 그 첫째로 꼽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76의 나이지만 "500년, 1000년을 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단다. 1931년생으로 "이조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시골에서 태어나" 일제시대, 해방, 전쟁, 군사독재, 경제성장 등 격동하는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그 "스쳐간 문화의 깊이"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또한 박완서 선생은 슬그머니 어린 시절의 어머니, 할머니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조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시골마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선생은, 그 당시 본인의 고향을 "자급자족하던 마을"로 기억한다. 어찌나 세상물정에 어두웠던지, 할아버지가 사오신 물감이 덕국(德國) 물감이라고 했는데, 그 덕국이라는 것이 독일임을 아주 나중에야 아셨다면서 "다른 나라가 있다는 걸" 몰랐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런 선생에게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계셨다.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어머니는 언문도 깨치고 한문에도 밝았다. 어머니가 시집 올 때 필사본의 이야기책 한 궤짝을 가져 왔다면서 "무궁무진한 이야기꾼"으로 어머니를 기억한다. 항상 말씀 하실때도 이러저런 이야기를 비유삼아 하셨다. 그런 선생은 한 시구절을 빌려와 "나를 키운 건 8할이 이야기"이고 그건 모두 '엄마의 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박완서 선생이 지금까지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는 그 근원에는 이런 "무궁무진한 이야기꾼"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는 답변이었다.

이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활발한 독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은 전쟁터에 나갈 군인에게는 부족함없는 총알이 마련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찾아보기 귀한 시절, 어린 나이의 선생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독서의 경험이였다고 할 수 있다. 뒤에 한 청중이 박완서 선생 작품 속의 아름답고 다양한 우리말 어휘를 칭찬하며 그러한 어휘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물었는데, 박완서 선생은 다시한번 이 시절의 경험으로 그 답변을 대신했다.

박완서 선생은 여러층의 문학세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이전의 전쟁, 7~80년대의 경제성장과 군사독재,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층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데, 근작 『친절한 복희씨』에서는 또 이와는 다른 박완서 문학 세계를 보여준다고 김명인 교수는 말했다. 말하자면 "'노년의 눈(시선)'으로 사회와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완서 선생은 "어쩌다 보니 노인 이야기가 많았"단다. 장편 『그 남자네 집』이나 『아주 오래된 농담』등에서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썼지않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욕심이 연애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본인은 아직도 "연애감정이나 정서를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 문제는 "연애의 소도구"랄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사랑을 어떻게 해야할지 추측"을 할 수 없다면서, 그렇기때문에 연애소설을 못 쓰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손녀를 만나러 서울 도심에 올라왔을 때의 재미난 이야기를 아울러 덧붙인다. 길을 지나다 어느 "젊은 꽃미남이 아는 척"을 하며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선생은 "이게 웬 떡이냐"하며 좋아하셨단다. 그런데 웬걸 그 꽃미남을 사인을 받으며 "우리 엄마가 팬이에요"해서 씁쓸하셨다는 농담에 청중들은 자지러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알고 싶어하고 끊임없이 젊음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이 박완서 선생이 여전히 활발한 작품을 생산해 내는 원동력은 아닐까? 노년이 되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선생은 그것은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란다. 노년에서의 그런 자유의 느낌을 이번 근작 『친절한 복희씨』에 담아 놓은 것이 아닐까?

이 외에도 얼마간 대담이 오고 갔는데, 박완서 선생은 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조목조목 길게 답해주셔서 몇가지 질문에도 금방 1시간 반이 지나가버렸다. 연신 준비된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 흐뭇해졌다. 예정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청중들의 반응이 뜨거워 몇 사람의 질문을 받기로 했다.

첫 질문은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로, 박완서 선생의 작품 특징이랄 수 있는 과거 경험의 서술이 오늘날의 어린 학생들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렸지 않느냐, 이런 것을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라는 요지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질문을 선생은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선생은 지난날의 아픈 추억을 언급하면서 "아무도 없는 전쟁의 도시 서울에서의 고초"는 "나만 본 것"이었고 이것을 "글로 쓰고 싶"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언젠가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이런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가 경험한 것으로 안온한 세상에 도움과 자극을 주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끝에도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옮겨 본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박완서 선생은 종교와 문학의 한가지 공통점으로 바람직한 것들을 세상에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한다는 의미의 말씀을 했다. 일제시대 말기 쌀을 감쳐둔 것을 찾아내려고 온 순사를 위안부에 끌고 갈 처녀들을 잡으러 온 것으로 알고 딸을 숨겨두었다가, 쌀을 어디 숨겨두었는지 검사하는 쇠꼬챙이에 숨겨둔 딸이 찔려 죽는 모습들을 시골의 고향마을에서 어린 시절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선생은 자신이 글을 쓸 것이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과 참척의 고통을 겪으면서 선생은 아마도 이런 것들을 공감하지 못하는 세상에 전해서 다시는 이런 아픔과 고통이 이 땅에 없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작품을 쓰는 것은 아닐까? 선생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씀이지는 모르지만 본인은 아직 "젊은 감수성은 잃지" 않았다면서 "위험한 것은 진부해지는 감수성"이고, 선생은 그런 "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당당하게 하셨다. "위험한 것은 진부해지는 감수성"이란 말씀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 말씀이 가슴 깊이 울린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평론가(김윤식 교수)가 병을 뒤집어 물이 흐르듯이 읽힌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은 "쉽게 읽히니 쉽게 쓴 줄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에피소드 하나, 어떤 기자가 원고지 10매 정도의 분량의 글을 써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래저래 바빠서 거절했단다. 그런데 이 기자의 대구가 가관이다. 선생은 글을 쉽게 쓰니 그 정도야 몇 시간이면 쓰지 않느냐고 말이다. 선생은 "어디 이런 싸가지 없는 기자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면서 또 한 번 청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지난 시절의 아픔과 참척의 고통을 글을 옮기면서 어찌 쉽게 그것을 쓸 수 있었겠는가? 선생은 글을 쓰면서 글자 한 자에 때문에 막혀서 진도를 나가지 못한 적도 많다면서, 본인도 힘들게 글을 쓰는 작가라고 말해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 외에도 여러 질문이 오가며 대략 2시간 가량의 강연이 모두 끝났다. 선생은 다소곳이 앉아 진솔하고 솔직하게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해주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김명인 교수는 선생이 청중들의 할머니, 자신에게는 어머니 뻘이신데,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친절히 강연에 임해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전했다. 모든 청중들도 그 이상을 고마움을 전했다.

강연을 마치고 청중들의 큰 박수 속에 선생은 자리를 나왔다. 2시간 가량 한 자리에 앉아서 많은 말씀을 전하신 분이 76의 고령이시라는 데 다시한 번 놀랐다. 8시가 넘어 끝난 강연 후 선생은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그 앞에 학생 두 명이 대기하서 섰다가 선생이 나오시는 걸 보고 다짜고짜 사인을 요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사인을 받고 싶어 했지만, 2시간을 강연하신 선생께 감히 그 피곤함을 끼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사인 요청을 받아주셨다. 이를 어쩌랴, 주위에 감히 요청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나는 급하게 책상을 들고 뛸 수 밖에 없었다. 3~40명 가량이 모여들어 갑작스럽게 팬 사인회가 열렸다.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히 사인을 해 주신 선생께 나도 끄트막에 사인을 받았다. 사인을 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 사인하시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은 노년의 나이를 속이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곱게 늙은 손을 가지고 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한 청중이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눈가의 주름을 닮을 수 있을까요"라고. 나도 어떻게 하면 선생의 그 곱게 늙으신 소녀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해지는 지금이다. 아마도 선생의 작품 속에 그 비밀이 숨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많이 남기지 못해 무척 아쉽다.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구하는 대로 이 페이퍼에 올려야겠다. 강연이 끝나고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너무 좋았고 감동을 받았단다. 다음날 김명인 교수님께 선생께서도 "너무 행복했다"고 말씀을 전하셨단다. 박완서 선생님, 행복하셨다구요? 이 말씀을 전해듣고 나는 더 많이 행복해졌다. 정말 잊지 못할 선생과의 만남이었고, 다시 한 번 선생께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 단언하건대, 앞으로 나는 선생의 "꽃미남 팬"이 될 것이라고 굳게 약속한다. "박완서 선생님, 더 행복하시죠?"

* 이전에 선생의 많은 작품을 이상하게도 읽은 것이 별로 없다. 그마나 읽은 것이라고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여자네 집」이 고작이었다. 오신다고 해서 집에 사 두었던 <20세기 한국소설>의 『박완서』에 실린 몇 작품과 근간 『친절한 복희씨』를 부랴부랴 읽었다. 읽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것이 왜 아직까지 선생의 작품을 이렇게 안 읽었을까 의아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은 것은 느낌표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군생활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겠다. 앞으로 선생의 작품을 최대한 읽어볼 작정이다.

* 어느 서재지기께서 몇 가지 질문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내 입장이 선생께 질문을 드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무척 많았는데, 다짜고짜 해볼 것 하는 아쉬움은 조금 있다. 질문 주신 그 분께도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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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1-15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한 자리에 있는 것 같은 후기에 감동 ^^ 저도 나목부터 이분의 팬이었는데, 호미부터 읽기를 쉬었답니다. 멜기님의 글을 보고 다시 친절한 복희씨부터 봐야겠어요.
확인해보니 집에 있는 이분의 책이 12권있네요. 열심히 사들였는데, 사람들이 와서 하나씩 집어가기 딱 좋은 작가라 손이 많이 탔어요. ㅠㅠ
박완서님의 사진과 긴 후기를 올려주신 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멜기세덱 2007-11-15 21:43   좋아요 0 | URL
ㅎㅎ 많이도 가지고 계시네요. 저도 열심히 사서 읽으려구요.ㅎㅎ

순오기 2007-12-13 10:45   좋아요 0 | URL
우리 언니의 생일선물로 보내려고요. 다시 읽어봐도 감동적인 후기예요!

2007-12-14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11-1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부하지 않은 감수성, 힘들게 쓰지만 쉽게 읽히는 글, 벌레의 시간을 증언해야
벌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깁니다. 언니(^^)의 미소가 아름답네요.
저도 친절한 복희씨, 읽어봐야겠어요. 자세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세덱님^^

멜기세덱 2007-11-15 21:45   좋아요 0 | URL
ㅎㅎ 언니....ㅋㅋ
완서 누님이 완소긴 하지만, 혜경님이 언니라 그러면....욕먹어요...ㅋㅋ

2007-11-15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6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412년  오늘(조선 태종 12년) 사헌부의 요청에 의해 부녀들의 외출시 얼굴 가리도록 조처한다.

1487년  오늘은 압구정의 주인공 한명회(1415-)가 세상 떠난 날이다.(조선 성종 18)

1831년  오늘, 독일에서는 철학자 헤겔 세상을 떠났다. 독일관념론의 완성자로 正, 反, 合의 3단계 변증법 창시자다. 그의 대표저서로는 『정신현상학』, 『논리학』, 『법철학 개요』등이 있다.

1840년 11월 14일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 태어난 날이다. 모네는 개인전에서 <수련이 있는 못>을 발표했을 때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그냥 팔레트를 문질러 아무렇게나 발라버린 그림"이란 혹평을 받았지만 그 당시 열린 만국박람회 전시회에서 비로소 인정받게 되었다. 모네는 자기 식의 정원과 수련이 있는 연못을 직접 꾸미고 그곳에서 40여년을 작업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인상-해돋이>는 모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들을 인상파로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의 색은 태양의 광선에 따라 수시로 바뀌므로 대상물 자체의 고유색은 없다고 주장, 새로운 색채 감각으로 그림을 그렸다.

1915년 11월 14일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다.

1917년 오늘은 불운하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났다.

1921년 11월 14일에는 국내 최초로 영화 <월하의 맹서> 제작에 들어간다.

1922년 오늘, 양정고보생들은 일본인교사를 배척하여 이른바 맹휴(盟休)에 들어간다.

1953년 오늘, 한국화가 오숙환이 태어난다. 후에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 미술학부 한국화전공 교수가 된다.

1968년 오늘,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체코의 자유화운동이 소련의 탱크에 무참히 짓밟히고 80여일이 지나 소련군이 체코를 점령한 가운데 체코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열린다. 자유화 운동을 지도했던 두브체크 공산당 서기장등 개혁파들이 친소보수파 당원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두브체크는 이후 공산당 서기장직에서 해임되고 공산당에서 제명된다. 21년 뒤인 1989년 12월 체코의 공산정권이 무너진 뒤 연방의회의장으로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한다.

1969년 오늘 불국사 중창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우주선 아폴로 12호가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4개월여전 발산된 아폴로 11호에 이어 인류 역사상 두번째로 발사된 유인 달 탐사선 아폴로 12호는 달에 착륙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카메라의 고장으로 아폴로 11호 때와 같은 달 착륙 모습을 지구로 전송하지는 못했다. 아폴로 12호는 달의 운석들을 채취하는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발사 열흘뒤인 11월 24일 지구로 무사히 귀환했다.

1972년 11월 14일에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유명한 소설가 주요섭이 세상을 떠난다.

1973년 오늘 호남-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전주에서 순천에 이르는 호남고속도로와 순천에서 부산까지의 남해고속도로는 총길이 358킬로미터로, 광주와 부산의 운행시간을 7시간에서 3시간 반으로 단축시켰다. 두 고속도로는 호남과 영남지역의 경제와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1979년 11월 14일은 다행스럽게도, 멜기세덱이 태어났다.

1980년 오늘, 한국신문협회와 방송협회는 언론통폐합 및 새로운 통신사 설립을 결의한다. 지방지는 1도 1사, 합동통신과 동양통신 통합, 중앙지의 지방주재기자 철수 등,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물리적 강제력으로 언론매체를 폐지 또는 통합한 조치로 언론통폐합의 구체적인 내용은 신아일보를 경향신문에, 서울경제는 한국일보에, 지방지는 1도1지 원칙하에 흡수 통합하고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은 합병, 연합통신으로 발족하며,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은 KBS에 통합한다는 것 등이다. 또한 지방주재 특파원 제도를 폐지하여 신문이 발행되는 지역 밖의 뉴스는 정부지배하의 통신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하는 한편 KBS와 KBS가 주식의 70%를 소유한 준관영 MBC로 2원화함으로써 방송매체를 완전히 장악했다.

1983년 11월 14일에는 아이슬란드 시인 토마스 그뷔드뮌드손 세상 떠난다.

1984년 오늘 동작대교가 개통됐다. 14번째 한강교로 길이는 1,330m에 달한다.

1987년 오늘, 정부는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을 12월 16일로 결정했다. 6월항쟁의 결과로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로 치러지게될 제13대 대통령 선거로 전두환 대통령은 이틀 뒤인 11월 16일 선거일을 공고했다. 민정당 노태우후보, 민주당 김영삼후보, 평민당의 김대중후보, 공화당의 김종필후보등 4당후보들은 대통령 선거일 공고직후 후보등록을 했다. 1971년에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이래 16년만에 다시 치러지게 된 대통령 직선제 선거는 네후보의 4파전으로 압축됐다. 대권주자들은 대통령 후보 등록을 마치고 30일동안의 격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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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14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희 팀장님이랑 생일이 같으시네요 ^^ 생일 축하드려요 멜기세덱님! 시간이 지나고 지날수록, 1979년 오늘의 일을 더욱 '다행하고 감사한 일'로 만들어나가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멜기세덱 2007-11-14 23:46   좋아요 0 | URL
뜻밖에도, 박정희와 생일이 같아서....기분 쪼매 나빠요...ㅋㅋ

마늘빵 2007-11-14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이군요! 축하해욤.

멜기세덱 2007-11-14 23: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삭스 형님...ㅋㅋ

마늘빵 2007-11-15 09:28   좋아요 0 | URL
아아아니. 제가 왜 형님입니까아. 동갑인데에에. 나이 먹는거 싫어요.

멜기세덱 2007-11-15 15:52   좋아요 0 | URL
저보다 생일이 빠르시지 않겠어요? ㅋㅋㅋ
그러니 정확히 하면 형님이시죠...ㅋㅋ

2007-11-14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1-14 23:48   좋아요 0 | URL
ㅎㅎ 생일날 선물 못받은 궁상을 눈치채셨군요.... 전 대놓고 고르겠습니다.ㅋㅋㅋ

2007-11-15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7-11-15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날짜가 지났지만 생일이셨군요. 축하~~~~
내가 인천에서 만나면 좋을 분 1순위입니다!
이 정도 멘트면 생일축하로 괜찮을까요? ㅎㅎ

멜기세덱 2007-11-15 21:45   좋아요 0 | URL
이러면, 제가 인천을 뜰 수가 없잖아요....ㅋㅋㅋ
딴데 살면 막 100순위 처지는거 아니에요? ㅋㅋㅋ

프레이야 2007-11-15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다행스럽게도!!
세덱님, 어제였지만 생일 축하 많이 드려요^^
어여 보관함에 담아두신 책이나 음반 골라서 메모 남겨 주시어요~~
(원수를 갚을 기회를 주세요^^)

2007-11-15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1-15 21:46   좋아요 0 | URL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 맞춰 보세요....ㅎㅎㅎ

2007-11-15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1-15 21:46   좋아요 0 | URL
원수를 너무 심하게 갚으신거 아닌지 몰라요...ㅎㅎ
 

최근 김포외고 입시 문제 유출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학교 선생이란 작자가 학원 원장한테 문제를 넘긴 것이 발단이 된 이 사건이, 오늘 뉴스를 보니 어느 학부모한테도 다량의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 문제의 교사란 작자는 벌써 어디론가 튀어버렸다니, 그 발빠름 하나는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목고는 무슨 개뿔, 그 특수목적이라는 것이 오로지 대학이니, 시험문제 빼내는 것이 문제일리 없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욕을 좀 제대로 드시면 좋겠다.

김포외고 입시 문제 유출 사건으로 경기도 교육청이 궁지에 몰린 듯 한데, 예전에도 문제 유출은 아니지만 교육청이 크게 혼줄난 일이 있었다. 지금 들으면 재미있는 일화지만 당시에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중학교 입시에서였다. 1964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지역 전기 중학입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에도 교육열은 펄펄 끊었다. 얼마나 끓었으면 중학교까지도 시험봐서 들어가겠는가.

당시 전기 중학입시의 공동출제된 선다형 문항 가운데 다음 문제가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1. 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2.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3. 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 1964년 12월 7일 서울지역 전기 중학교 입시 자연과목 18번 문제

 
   

이 문제의 답으로는 ①디아스타제였다. 그런데 보기 ②에 무즙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당시 민간에서는 무즙을 넣어서 엿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즙을 답으로 써서 떨어진 학생의 학부모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로 무즙을 넣어 엿을 만들어 관련 기관에 찾아가 항의하면서 "엿 먹어! 이게 무로 쑨 엿이야. 빨리 나와 엿먹어라! 엿먹어라! 엿먹어라!" 했단다. 이른바 무즙 파동이다.

이 무즙파동이 파동이 된 데에는 당시 해당 교육당국의 우왕좌왕한 대처에 원인이 있었다. 무즙을 답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가 반발이 거세자 하루만에 이 문제를 무효로 한다고 발표했다. 그랬더니 원래 이 문제를 맞춘 학생들의 부모들이 더욱 거세게 반발하자, 다시 이를 무효화 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좌충우돌했으니 파동이 날 수 밖에. 결국 이 문제는 법정으로까지 가게 된다. 서울고등법원 특별부는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 하며, 이 문제로 인해 불합격된 39명의 학생들을 구제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막을 내렸다. 또한 이로인해 청와대 비서실장, 문교부 장관과 차관, 서울시 교육감 등 줄줄이 8명이 옷을 벗게 된다.

다들 잘 아는 이야기겠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엿먹어라'라는 욕이 유래했다는 속설이 있다.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은 것이, 오늘날 '엿먹어라'는 비교적 유효적절히 욕으로써 기능하고 있는데에 이 파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실 '엿먹어라'의 유래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후기 남사당 패들의 은어로 '엿'은 여성의 성기를 가리켰다. 그로부터 '엿먹어라'라는 욕이 시작됐을 것이다. 이것이 보다 근거가 있었보이는데, 무엇보다 '엿먹어라'의 지위가 오늘날과 같이 확립된 데에는 이 무즙파동이 적잖이 기여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무즙파동에 이어 이듬해 창칼파동이 일어나 중학교 입시가 철폐되기에 이른다. 이 두 파동은 당시의 과열된 입시양상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으로 흔히 거론되는데,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과는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즙파동과 '엿먹어라'의 유래가 하나의 오분석이랄 수도 있지만, 무즙파동하면 '엿먹어라'를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이 파동의 피해당사자들은 이 '엿먹어라'에 혼신의 혈기를 담어 당시 교육당국에 내뱉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왕좌왕하는 교육당국으로 인해 울었다가 웃을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엿먹어라'는 욕이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는 기조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페이퍼의 제목을 거창하게도 '욕의 정치학'이라고 붙였지만, 나는 그 거창한 담론을 소화할 능력이 전무하다. 다만 가만히 우리들의 욕들을 살펴보면 소시민들의 정치성을 다소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택시 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이런 노무현 어쩌구"하는 것에서부터 공사판 막노동자들의 세상한탄들에 욕설은 친근하게 올라온다. 이 썩을 놈의 세상에 대한 어쩌면 소극적 반항이랄 수 있는 이러한 욕설은 하나의 정치적 발언은 아닐까?

무즙파동이 '엿먹어라'의 기원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엿먹어라'가 사용되는 맥락하에서는 지극히 정치적일 수 있다고도 보여진다. 이 엿같은 세상에 대고 '엿먹어라'를 외치는 이 민중들은 그 욕설 가득히,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하지만, 자신이 정치적 존재임을 실어내고 있는 것이다.

욕을 보면 그 세상의 모든 부조리들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욕을 하면 교양없는 사람, 못 배운 놈, 저질로 폄하하는 세상만큼 엿 같은 세상도 없을 것이다. 욕은 우리에게 간혹 구수한 맛과 재미를 주기도 하지 않는가. 우리가 가진 모든 정치성을 가득히 실어 세상에 대고 욕이라도 시원히 해낸다면, 그런 욕에 우리 사회가 작게나마 귀 기울인다면, 민중들의 욕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살핀다면, 이 사회는 조금이나마 살만한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욕의 정치학은 그런 의미에서 차근차근 따져보아도 좋지 싶다. 하여간에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들에 대고 욕이라도 시원스레 배설해 내자. 우선 김포외고 파동 책임자들에게 '엿먹어라'를 날려주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엿먹어'야할 놈들에게도 한 방 제대로 날려들 주자. 욕의 정치학은 그나마 우릴 시원하게 해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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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1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헝. 저 사건이 진실이에요? 저런 재밌는(?) 일이.

멜기세덱 2007-11-14 23:44   좋아요 0 | URL
진짜에요....ㅋㅋ

가시장미 2007-11-1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욕 잘하는데....으흐 -_-; 근데, 제가 하는 욕은 정치적의미가 아니라는게...아쉽네요. ㅋㅋ 남에게 상처주는 욕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자제하려고 굳게 다짐했는데.. 이 페이퍼보니... 음.... 조금 다른 생각도 하게되네요.
<- 줏대없는 가시장미 _-_)~ <- 이 이모티콘 이제 좀 식상한데... ㅋㅋ

멜기세덱 2007-11-14 23:45   좋아요 0 | URL
줏대가 좀 없으면 떠 어떻습니까. 가시만 도도히 달고 사셔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바람돌이 2007-11-1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엿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엿 맛있는데 말예요.
보통 욕에서 "개"자가 많이 쓰이잖아요. 개가 불쌍해요. 개가 도대체 뭘 어쨌다고 말입니까?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죠. ㅎㅎ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지 일 년하고 아홉 달째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다를 것 없겠지만,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 것이 아닌 이상에야 자취는 동네 소속감이 있을리 없다. 이곳으로 주소지를 옮겨 주민세를 이 동네에 바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직 별달리 이주 계획은 없지만, 내년에도 여기에 살지는 장담을 하지 못한다. 여기가 우리 동네니 하며 살면 가까이 사는 이웃도 사귀고, 아는 체도 하고, 옆집 사람들과 뭐라도 나눠 먹고 하면 좋겠지마는, 이곳은 언제나 내 맘도 몸도 우리 동네니 할 입장도 못되고, 그러고 싶은 생각도 크게 들지는 않는 여하한 삭막한 도시의 한 동네 구석과 같다.

그러나 아무리 자취를 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한때나마 머물고 잠자고 먹고 싸고 하는 곳에서 말 한마디 건네고 지낼 이웃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근처 슈퍼나 편의점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과 자주 또는 매일 마주치는 것은 자취생들의 일상일 것이다. 정기적으로는 한두 달에 한 번 머리 자르러 가는 미용실이 있을 것이다. 나도 다른 자취생들과는 그 점에서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라면 그 외에는 없다는 것일테다. 미용실은 내가 머리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닌지라 자주 가는 편은 못 된다. 대강 따져보면 한 달 보름 만에 한 번씩, 그러니까 머리가 좀 덥수룩해져서 간지럽고 거치적거린다 싶은 그때쯤에 가까이에 있는 동네 미용실엘 간다. 일 년하고 아홉 달을 살았으니 한 열 번은 넘게 한 미용실을 다닌 셈이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과묵한 성격이라, 이런 데엘 가도 붙임성 있게 말을 한다거나 친한 척을 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어떻게 잘라드리느냐는 질문에도 대충 단정히 시원하게 깎아 달라는 말만 남기고 눈을 감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드문드문 이긴 하나 두세 번이 지나니 슬슬 이 미용실 아주머니는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 살갑게 받아주지는 못하지만 그리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간혹 말을 받아쳐주는 정도는 한다.

내가 자취생활을 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는 곳은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서는 모퉁이의 작은 편의점이다. 담배를 피다보니 하루 한 갑씩은 집에 들어오는 길에 담배를 사야한다. 간혹 마실 물이라던가 필요한 잡다한 것들을 이 편의점에서 산다. 편의점에는 자취생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마련해두고 있어 나는 제각기 필요한 것들을 사러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절대 마다한다. 그래서 편의점은 내가 하루도 거를 수도 없고, 내 생활의 필수품들을 조달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편의점에 들락거린 지 한두 달이 지나니, 편의점 사장 아저씨와 사장 아주머니와 좀 낯설음이 없어졌다. 이 편의점은 내외가 주야를 나눠 일을 본다. 가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지키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 부부가 운영을 하는 듯하다. 그 사정을 알고는 좀 이상하다기보다는, 별 시답잖은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됐다. 근데 시답잖은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저 부부가 교대로 근무를 하다보면 언제 부부생활을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을 묻지도 않았고 이내 덮어버렸다. 알아서들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이 있고 이보다는 어려 보이는 아들이 있다. 별 시답잖은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런데서 연유하기도 한다.

편의점에 들르면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인사도 건네고, 이래저래 말도 주고받는다. 한 날은 딸내미가 모의고사를 본 모양이다. 어째어째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다니던 학교가 어딘지 알게 됐고, 그곳 국어선생님이 내 대학 동기라는 말이 오고 갔다. 그때부터인지 내 정체를 잘은 모르지만, 선생 친구라니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 싶다.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보다 정중해지고 보다 친근하게 대하려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건네는 말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 정도.

오늘은 좀 늦은 저녁 사장 아주머니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건네 왔다. 아들이 초등학생인데 휴대폰을 사달라고 보챈단다. 그건 어림없는 소리고, 본인도 휴대폰이 없다고, 사장 아저씨가 사주지도 않는다고, 사장님이 무서운 분이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장 아저씨는 매우 온화한 분이다. 요즘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예전 텔레비전에 자주 보이던 탤런트 이정섭과 외모와 분위기, 말투가 많이 닮았다고 느낀다. 말도 조곤조곤 여성스럽게 하고 손님들에게도 매우 친절히 세심하게 배려한다. 오히려 아주머니 말투가 덤덤하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아저씨는 작은 키에다가 몸도 삐쩍 말라보여 내외가 외형이 좀 바뀌어야 싶기도 했다. 그 나름대로 잘 어울리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들이 초등학생이란다. 중학생은 돼 보이는 무게감인데, 초등학생이라면 적어도 5~6학년은 되지 싶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다들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는데, 아직 없는 것을 보면 이 사장님이 그리 호락호락한 분은 아닐 것으로 짐작되고도 남는다. 항상 다정하고 부드럽지만 본인의 뜻과 어긋나는 점에서는 단호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버지를 무서워 한데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착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외모지만 이정섭이 그렇듯이 약간은 좀스러운 데가 있어야 더욱 어울리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좀스럽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않는 것이 좀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교육적으로 문제라느니, 잘만 사용하면 해될 것도 없다느니 하는 것을 따질 곳으로 편의점 계산대 앞은 모자란 감이 있다. 그래서 농담 삼아 아드님이 여자 친구가 있으면 휴대폰을 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건넸다. 여자 친구도 없을 뿐더러, 공부를 잘해야 한단다. 상위 5% 안에 들어야 한다나. 그것도 중학교에나 가서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내가 볼 때 이 아들이 공부를 그리 썩 잘하는 편이 아니구나 짐작됐다. 공부를 잘했으면 지금쯤 휴대폰이나 사달라고 보채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당당히 더 비싼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공부만 잘하면 중학교 올라가기 전에 휴대폰을 손에 넣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 말에 공부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해줄 것처럼 하지 않는가. 그런 말은 공부 잘하는 자식들에게는 불필요하다. 아마도 공부를 못하는 애들에게 해당될 것이고, 그런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공약은 실행되기 어렵고, 아무리 떠벌려도 그리 해될 것이 없을 것이다.

물건을 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내 어렸을 적 생각이 이것저것 든다. 시골에 살았던 어렸을 적에 동네에 자전거 붐이 분 적이 있다. 기어가 달린 자전거가 온 동네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였다. 모두들 자전거를 타고 마치 요즘의 폭주족들처럼 모여 온 동네를 빵빵대며 달렸다. 나는 그런 붐에 이른 시기에 참여하지 못했다. 우리 집이 그리 잘 사는 형편도 아니고, 그런 것을 호락호락하게 사줄 어른들도 아니었다. 자전거 붐이 가실 때쯤에야 내게도 자전거가 생겼는데, 그 시기가 지나면 아이템 획득의 그 짜릿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자전거를 타기 위한 균형감 정도를 익혔을 뿐 신나게 동네를 달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전거 붐이 지나고 나서는 비비탄 총의 붐이 이르렀다. 레밍턴이니 스미스니 하는 장난감 총인데, 쏘아대는 비비탄이 여간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권총에서부터 장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이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여러 종의 총들을 들고 총싸움도 하고 편을 짜서 전쟁놀이도 하며 지냈다. 내가 뒤늦게 이 총싸움에 참여한 것은 그간 꼼쳐 두었던 용돈을 털어 몰래 이 비비탄 총을 샀기에 가능했다. 부모님에 걸려서 혼이 났던 기억 또한 또렷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가, 그때는 컴퓨터가 시대의 필수품으로 등장하는 초기여서 이 시골 아이들에게도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온 동네에 컴퓨터 학원 붐이 일었다. 작은 시골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읍내에서 노란색의 컴퓨터 학원 차가 들락거렸다. 아이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방과 후면 학교 앞에서 노란색의 컴퓨터 학원 가방을 들고 노란색의 차를 타고 읍내로 떠났다. 이번에 또한 나는 그 대열의 초기에 합류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못했다가 아니고 안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좀 반대였다. 부모님들은 내게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컴퓨터는 싫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으니 피아노 학원에나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는 거절됐다. 사내놈이 무슨 계집애들처럼 피아노를 배우느냐는 것이다. 두세 달이 지나고나니 학교를 파하면 나는 같이 놀 친구들이 없었다. 여간 심심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컴퓨터학원엘 다니겠다고 했다. 비록 세 달 만에 종을 쳤지만 말이다.

피아노는 급기야 고2때 여름방학 보충수업비를 빼돌려 피아노학원엘 2달간 다닌 것으로 그때의 한을 풀었다. 약간의 좌절과 함께였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왜 이렇게 예전 일들이 기억났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은 국민학교 시절 같은 반 여자아이의 생일날이다. 동네의 다른 아이들은 거의 다 초대를 받았는데, 나를 빼놓은 것이 여간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나를 빼놓다니. 소외감과 시기감을 절실히 받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이런 소외감이나 열등감은 곳곳에서 발생한다. 자전거나 비비탄 총 붐이 일었을 때 아이들의 그 대열에 내가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아이가 집안의 경제사정을 돌아본다는 것은 그리 탐탁찮은 일이다. 이것은 부작용이 강한데, 자기 집은 못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가질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좀 잘못된 쪽으로 가기 십상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을 사주는 데에 그 집안의 경제사정이 전혀 못 미치는 것만은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집도 그러했다고 생각된다. 사 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교육적 문제까지를 우리 부모님들이 고려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걸 가지고 노는데, 그걸 사준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육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소외감과 열등감을 심어주는 것은 이런 소소한 데서 생긴다. 못 사줄 이유가 무엇이냐 이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가 이런 소소한 것에도 빼놓지않고 조건을 건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 조건은 십중팔구 공부와 관련된다. 공부만능주의, 공부지상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몇 등을 하면 사주겠다, 몇 점을 맞으면 사주겠다식 말이다. 그런데 이건 그리 교육적이 못된다. 적절한 거래는 부모 자식 간에 나름 유효한데, 그게 공부에만 집중되는 것은 적절한 것이 못된다는 얘기다. 나는 부모님께 이런 공부거래를 제의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도 못하는 편도 아니어서 대강 중간적도의 순위권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한 번도 공부해라, 몇 등하면 사주겠다는 식의 제의를 거의 받은 기억이 없다. 간혹 이런 무심함에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에는 이게 참 감사한 일이지 싶다. 지금 내가 공부에 그다지 치를 떨지 않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라고 감사한다.

쓸데없는 말들이 많았는데, 집에 들어와서 다시 편의점 집 아들을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굳이 이 아들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대서야 이런데서 오는 소외감을 아이가 맛보는 것은 그리 유익한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공부 잘하면 사준다도 좀 탐탁찮은 구석이 있다. 조금 달리 거래를 해보아도 좋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편의점에서 적당히 심부름이나 일을 시키고 그에 따른 보수를 모아서 네가 가지고 싶은 휴대폰을 사라는 제안이나, 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도 좋지 싶다. 공부가 다가 아닌 것을 이 부모들은 잘 알면서 아이들에게 공부가 다일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능력이 안 돼서 아무리 해도 상위 5%에 달하지 못해, 그때까지 휴대폰 하나 없이 소외감으로 지내는 것은 부모에게도 그 자식에게도 그리 달가운 일이 못 될 것이다. 우리 동네 편의점 집 아들에게 그 부모가 휴대폰을 사주는 것은 별다른 계약 없이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거래를 하자면 공부가 아닌 다른 어떤 창조적 방법이면 좋겠다. 나는 그 아이가 휴대폰을 가질 수 있는, 공부가 아닌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방법이라면 내가 돈을 내서라도 사주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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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7-11-1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위화감 조성의 최고는 '가정조사'(용어 맞나)였지요... 집안 물건까지 조사해 가는건 도대체 뭔 짓인지... 우리집은 당당하게 피아노가 있었음 ㅡ..ㅡ; 전화기는 초등학교 2학년떄 쯤 들여놨던 것 같고..
요즘은 집 평수로 아이들이 갈린다면서요? 88만원 세대에도 잠깐 이런류의 얘기가 나왔던것 같은뎅...

멜기세덱 2007-11-12 01:04   좋아요 0 | URL
요새 아파트 광고 보면서 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한 남자아이가 같은반 여자친구한테 자기네집 가서 놀자는데, 이 여자애가 집에 뭐있냐, 집이 어디냐 뭐 이런 걸 묻는 광고 있잖아요....

마늘빵 2007-11-1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핸드폰이 애들 망치는거 같긴 해요. 현장에서보니. 핸드폰 없이는 단 1시간도 못버팁니다. -_- 점점 스스로가 중독이 되어가는거에요. 문자질 안하면 불안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하고 싶고, 엠피쓰리 듣고 싶고, 사진도 찍고 싶고, 티비도 보고. 애들 동영상도 찍고 싶고. -_- 만능 장난감이더라고요. 나 어릴 땐 레고, 코코블록 이런거 가지고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논거 같은데 요즘은 이런건 유치원 애들이나 가지고 놀겠죠. 아닌가. 유치원 애들도 안가지고 노려나... -_-

무스탕 2007-11-11 12:10   좋아요 0 | URL
애들마다 틀리다고할수 있어요. 우리애들은 올해 초까지 하도 레고블럭(그것도 손가락만큼 작은거 말고 주먹만큼 큰거 있죠?)을 갖고 놀아서 제가 애들 몰래 버렸어요... --;;
그거 통에서 방바닥에 와르르~~ 쏟는 소리가 얼마나 정신 번쩍 깨우는지.. -_-;

웽스북스 2007-11-11 16:46   좋아요 0 | URL
핸드폰이 애들 망친다! 에 완전 공감 500% 에요, 교회에서도 보면 애들이 저한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선생님, 핸드폰좀 줘봐요' 였거든요- 게임하고, 문자보고, 사진보고, 이러는 게 재밌나봐요, 애들 때문에 잠금 해놨어요;;

마늘빵 2007-11-12 00:04   좋아요 0 | URL
으 무스탕님 저도 어릴 때 어머니가 몰래 누구 줘버려서 얼마나 서운했는데... -_ㅠ 좋아하는 몇몇 캐릭터라도 가지고 싶었는데...

멜기세덱 2007-11-12 01:07   좋아요 0 | URL
휴대폰이 애들 망칠수도 있고 어른도 망칠수도 있고 그렇겠죠.ㅎㅎ 그거야 부모들이 적절히 조치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망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문제는 휴대폰이 애들 망친다는 신조가 있다면 안주사면 되는데, 그런 신조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라는 거죠..ㅎㅎㅎ

무스탕 2007-11-1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큰 애가 6학년인데 전 아직 핸드폰 안사줬습니다. 사달라고 조르지요. 친구들도 많이 갖고 다닌다고요. 그러면 중학교 가면 사준다고 미룹니다. 일단 초등학교엔 콜랙트콜 전화가 있어서 잔돈이나 카드가 없어도 엄마랑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하고 친구들의 대부분이 갖고 있다면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절반정도인것 같더라구요. 큰 애를 사주면 작은애(2학년이에요)도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고 합니다. 일단 다른 조건 없이 제가 정한 기준은 중학생입니다.
시험때가 되면 일단 조건은 붙입니다. 몇 점 이상되면 원하는 뭔가를 사주겠다고요. 물론 평소에도 사줍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종의 보상품(?)을 걸어놓으면 목표의식이 뚜렷해 진달까요? 점수를 받아와서 상품을 획득했을땐 더욱 좋아하더라구요.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해서 채찍은 많이 사용하지 않고 당근을 주로 사용하는데 좋은 결과일때가 더 많습니다 ^^

개인적으로 피아노 치는 남자를 멋져라~♡.♡ 하는데 멜기님 고2때의 슬쩍 외도가 호감도 84% 급상승 시켰습니다 ^^*

멜기세덱 2007-11-12 01:1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을 키우시는 노련미가 물씬 풍기네요.ㅎㅎㅎ

근데요, 지금 피아노는 못친답니다. 그때 2달을 하면서 바이엘 하까지하고 16주 반주완성하다가 말았거든요. 개학하고 나서 다닐 시간도 돈도 없어서....그런 이유도 있지만, 같은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베토벤을 막힘없이 치는 것을 보고 좌절을 맛봐서리....

좀더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 그때 확실히 배워보자는 생각입니다. 호감도가 좀 떨어지겠군요...ㅋㅋㅋ 근데 지금까지 제 호감도가 별로 안 좋았었나 봐요....ㅠㅠ;;

무스탕 2007-11-12 08:48   좋아요 0 | URL
엄머나~ 멜기님. 무슨 말씀!!
기존의 호감도도 상한선에 달락말락 했었는데 이번 뻬빠로 인해 천정을 뚫고 튕겨져 나갔다니까요?
어떻게 끌어내릴지 걱정입니다. ㅎㅎㅎ

웽스북스 2007-11-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대 때 빼먹음 당한 적이 있었어요- 별로 친한 애도 아니었는데, 괜히 혼자(는 아니었겠지만,) 초대 못받으니까 섭섭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뻔뻔하게 갔었어요- 그야말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가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숨바꼭질 하고 잘 놀다 왔어요- 쓰고나니 싸이코같다 하하하 -_- 근데 다른 생일파티들 기억은 잘 안나는데 이 생일파티 기억은 생생한 걸 보니 나름 그때의 상처가 각인이 돼있나봐요- 아! 근데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거길 갔던 걸까 ;; ㅋㅋ 하튼 생일초대 이런 거 은근 민감해요- 저는 생일초대는 미안해서 친한 애들만 몰래몰래 했었고,(이게 더 나쁜가?) 크리스마스 카드같은 건 반 친구들 전체한테 쓰고 그랬었어요 거의 연례 행사로 막 한달 전부터 준비하고 막 ㅋㅋ 때로는 받은 애들도 황당해했었어요- 우리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했던가? 생각했을 거에요 ㅋㅋ 그래도 누군 주고 누군 안주고 이런 건 역시나 마음이 어려워요

멜기세덱 2007-11-12 01:13   좋아요 0 | URL
우리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한 걸까요? 안 친해도 그런거 받으면 기분은 좋던데....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ㅎㅎㅎ
예전에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기를 권장하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는데....ㅎㅎㅎ 사실 받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ㅎㅎㅎ

웽스북스 2007-11-13 00:21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올해는 지난번에 혜경님께서 소개해주신 유니세프카드를 몇장 사서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사각사각 써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 점점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좋아져요 ^^

2007-11-11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1-12 01:14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저는 애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으려고요.ㅎㅎㅎ

그냥 줄줄줄 써내려가다보니, 타자가 정확지 못했네요.ㅎㅎ 사실 평소 오타가 굉장하답니다.ㅎㅎㅎ(수정 완료)

Koni 2007-11-1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들 가운데 휴대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말 많이 갖고 있지는 않던걸요. 있으면 자랑거리가 되지만 없다고 소외감을 느낄 정도일까요? 아, 물론 어떤 동네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멜기세덱 2007-11-12 01:1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휴대폰이 위화감을 일으킬수도 있겠네요. 아이들이 꽤 있던데요...

프레이야 2007-11-1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등 하면 50만원 정도 하는 애완견 사줄게, 이러는 엄마도 있어요.
여긴 휴대전화를 아이들이 거의 갖고 있어요. 우리집 작은딸도 3학년인데 언니
쓰던 거 물려받아 쓰고 있구요. 정말 제가 볼 땐 불필요한데 워낙 아이들이 거의
갖고 있다보니 자꾸만 그런 것들에 매달리는 것 같아요. 며칠 전부턴 닌텐도 사달라고
은근/강압 조르고 있어 골치에요. 고가의 게임기로 알고 있는데 말이에요.
아직은 제가 꿋꿋이 버티고 있는데 자꾸 저러면 흐흑.. 이 녀석(아니 딸이지만)
정말 맘에 안 들어욧!! 우리 자랄 땐 어땠구, 이런 소리 늘어놓으면 완전 구닥다리 취급
당하겠지만 갈수록 문제다 싶어요.

멜기세덱 2007-11-12 13:13   좋아요 0 | URL
닌텐도 그게 게임기만은 아니더라고요....후배녀석들꺼 뺏어서 해보니깐....머리회전엔 좋겠더라구요....두뇌나이가 너무 높게나오는게 탈이지만...ㅋㅋㅋ

프레이야 2007-11-12 13:33   좋아요 0 | URL
그게 그런거에요? 엄마의 마음이란 참.. 흐흑..

2007-11-12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2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