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아니 어제 아침이 되겠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는 왠지 방 안이 침울했었다. 이런 날은 사실 일어나기 싫은 날이다. 오늘 하루, 아니 어제 하루에서 지금까지의 지배적 내 감정은 그렇게 방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침울한 하루. 내 방안에 이렇게 침울한 날은 아침 풍경이 간혹 어둑한 날이다. 비가 오는 날은 십중팔구 방안은 온통 어둑하다. 오늘도 그렇게 어둑했고, 그래서 침울했다. "젠장! 아침부터 비는."
** 그래도 뒤척이다가 몇 분 씩은 지각할 만큼, 딱 그 만큼 TV를 보다가, 이부자리를 벅차고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보다 약간 깨끗하게 씻는다. 그러나 고양이는 하지 않을 면도가 추가된다. 매일 아침 면도하는 일은 참 귀찮은 일이다.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면도를 하지 않으면 그만큼 더 뒤척이거나, 그만큼 더 <그래도 좋아>를 여유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간간이, 자기 전에 면도를 하고 자면 어떨까를 생각하지만, 잠을 자기 전에 씻는 것은 더욱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어서, 면도를 할 생각을 수차례 접은지 오래다.
*** 아침 드라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게 여간 내 직장생활에 폐를 끼치게 아니다. 내가 지금과 같이 규칙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게 된 것은 올해로 3년째가 된다. 지난 2년간 평일의 거의에는 아침 8시에는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9시에는 출근부를 찍었던 것이다. 명색이 올빼미 체질인 내게 아직도 여전히 이 스케줄은 벅차고 고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나름 아침형 인간이 되어서 나를 유혹하는 것은 정말 의외의 곳에 있었다. 그게 바로 아침 드라마다. 2006년 봄쯤에 방영되기 시작한 하희라가 주연으로 출연한 <있을 때 잘해>가 그 시작이었다. 눈을 뜨면 TV를 켰고, 어느날은 MBC가 틀어졌고, 하희라가 오랜 만에 나왔고, 변우민도 나오고, 눈길을 주다가, 드라마에 빠지고 말더니, 매일 아침 TV를 켜면 이 MBC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지각도 참 많이 했지만, 이 드라마를 다 보고나야 뭔가 할 생각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통 이 드라마에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저주를 퍼부었다. 이 드라마만 끝나면 나는 보다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속작 <내곁에 있어>은 최명길이 이윤지와 모녀 관계로 출연한 연속극이었다. 내 방의 TV는 어느덧 MBC에 맞춰져 전원이 꺼졌기 때문에 항상 아침 TV를 켜면 이 후속작이 펼쳐졌다. 이내 이 비련의 두 모녀의 드라마틱한 삶에 빠지면서, 이윤지가 행복해지길 마음속으로부터 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서 다시 한 번 안심했다. 이제는 제대로 살 수 있겠구나.
그런데 왠걸? 후속작 <그래도 좋아>는 어느덧 아침 드라마 체질이 되어버린 내 감성을 확 땡기고 말았다. 김지호를 오랜 만에 보는 것도 좋았지만, 드라마에서 명지역으로 분한 그 신선한 페이스가 무척 내 맘에 들었고, 내일 이야기가 마구마구 궁금해졌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내 출근부의 지각일수도 늘었다. 전자 행정망이 완벽하게 갖춰진 내 직장은 이 구시대적 인권 침해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같은 출근부가 이제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MBC가 아침 드라마 방영 시간을 조금 땡겨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 오늘, 아니 어제 아침도 약 2분을 지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거의 출근을 안했다. 통근버스는 눈길로 인해 2시간 반이 걸려 도착했다. "젠장! 나도 통근버스 타고 다닐걸." 집에서 나오면서 비가 아닌 눈이란 사실에 나는 아해처럼 명랑해졌다. 두 손 가득 눈을 쓸어담아 똘똘 뭉쳐서 이리저리 던져보기도 하고, 아무도 밟지 않은 곳만을 골라 내 두 발길을 남겨두었다. 누가 듣건 말건 조금 크게 노래도 부르고, 뛰기도 하고, 미끄럼도 타고, 그렇게 출근한 나에게, 이런 피해의식을 주다니. 그래서 다시 우울해졌다. 눈이 오고, 살짝 명랑해지고, 다시 우울해 진 날에는, 가만히 조곤조곤 시를 읊어 보는 것이 참 좋다. "에라,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다.
***** 오후에 간간이 졸음이 오던 차에,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내게 저쪽에서는 자기네가 <퀴즈 대한민국>이란다. 일요일 아침에 간혹 눈을 뜨면 보던 KBS의 그 퀴즈 프로 말이다. 여기에는 예전에 내 친구가 나갔다가 결승에서 유학파 출신 농부에게 한 문제도 못 맞추고 떨어진 추억이 있었다. 그런 데서 피디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작가인 듯 싶은 여자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내용인 즉, 자기네 프로에서 참거짓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 감수를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뭔데 그러냐 했더니, 나보고 누구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군지 알려줬더니, 자기네 문제가 참 거짓을 구분하는 건데, "허난설헌은 허균의 어머니다."가 맞느냐? "허난설헌은 허균의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다.'가 맞느냐? 그래서 난 "그렇다."했더니 고맙다면서 전화를 끝는다. 이게 뭐람? 별 같지도 않은 걸 뭔놈의 감수라고 방송국에서 전화를 해댈까? 그 정도면 인터넷에서 몇 초면 찾을 수 있는 걸. 그리고 교수도 아닌 내게 무슨 권위가 있다고 감수를 부탁해. 참 내! 별 꼴도 다 있다. 왠지 낚인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