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월이고 내일이면 入春이다.

봄바람이 찬바람을 밀어내고 따스하게 내 피부에 닿으면

그땐 이 한 달의 독서에 풍성함이 깃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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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의 정체
정재학 지음 / 동문선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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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민주적 시장경제의 길, 민주주의총서 05
조영철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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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비를 팔다- 우상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정환 옮김 / 모멘토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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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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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찌니라.

- 신명기 24장 5절

 
   

허본좌께서 대선 공약으로 결혼하면 1억인가, 5천 만원인가를 준다고 했었는데, 낙마를 하시고 지금은 구치소에 계신다. 애를 낳으면 또 돈을 준다고 했었더랬다. 그리하야 국민 1인당 평생 15억 인가를 국가로부터 받는다고 그랬던가? 근데, 생각해보면 허경영의 허무맹랑한 공약 중에 제일 맘에 드는 공약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뭐 짜장면 값이 한 그릇에 100만원이 될 거라고도 하지만 말이다.

세상에 남자로 태어난 이들에게, 그 중에서도 남편으로 채택된 이들에게, 아내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은 막중한 의무다. 어쩌면 가장 신성한 의무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별 시덥잖게 깝쳐대는 저 국방의 의무보다는 신성하다.

한국이란 사회의 남편들에게, 그 중에서도 저물어가는 남편들에게, 이 의무는 간혹 고문이 되기도 한단다. 난 잘 모르지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유의 남편들은, 대부분 그 정력을 쓰잘데기 없는 곳에 쏟아버렸기 때문에 고통스런 의무가 되버린 게 아닐까? 자의 건 타의 건 간에, 그럴 것만 같다. 이것도 하나의 사회적 착취 구조 속에 자리하고 있는 비극이다.

허본좌의 저 대단한 공약과 신명기의 저 명쾌한 명령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면 어떨까? 결혼해서 1년 동안 유급휴가를 주는 것. 그래서 아내를 즐겁게 해주라는 것. 페미니스트를 고려해서 살짝 틀면, 서로를 즐겁게 해주라는 것. 교수들에게 안식년이라 걸 주는 데에 그 나름대로 의미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수들이 몇 년에 한 번 하는 그 걸, 교수 아닌 사람들에게도 평생에 한 번은 줘도 좋겠다. 아니 줘야 좋겠다.

갓 결혼한 신혼 부부에게, 마음껏 즐거울 1년을 주자. 적어도 출산율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이 신명기 24장 5절 말씀을 올해 기도제목으로 삼아 기도해라. 이명박 장로께서도 기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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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傳千古心(서전천고심)  글은 옛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니

讀書知不易(독서지불이)  글 읽기란 쉽지가 않을 줄 아네

卷中對聖賢(권중대성현)  책 속에서 성현을 마주 대하니

所言皆吾事(소언개오사)  말씀하는 것이 모두 내 일이라네

- 李滉(이황), 『退溪集(퇴계집)』에서

 
   

더 이상 무슨 첨언이 필요할까? 우리가 이황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일'로 체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나 더 책을 읽어야 그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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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1-3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군요!

멜기세덱 2008-01-31 01:32   좋아요 0 | URL
제가요? 부끄럽게....ㅋㅋ

순오기 2008-01-30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공감~~~~

멜기세덱 2008-01-31 01:33   좋아요 0 | URL
아, 왜 슬프실까요?

세실 2008-01-3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이 있는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 글입니다.

멜기세덱 2008-01-31 01:34   좋아요 0 | URL
같은 말이겠지만, 깊이 있게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 글이죠.ㅎㅎ
 
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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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 시 양식 중에 하이쿠(俳句)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정형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양식일 것이다. 5-7-5의 음절로 이루어진 하이쿠는 달랑 한 줄이다. 꼭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식으로하면 17자만으로 시를 쓴다는 것인데, 시가 짧은 만큼 쓰기도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실 시는 생략과 절제가 미덕이다. 압축의 미. 그것이 극도로 발휘되는 시 양식이 이 하이쿠다. 단 한 줄에 시인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하이쿠다. 그래서 쉽지 않다. 한 줄로 시인의 마음을 담아내고 그것을 듣는(읽는) 사람들에게 큰 여운과 감동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이쿠는 한 문장의 시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감행한다. 송곳에 찔린 듯한 딴끔한 충격. "마음을 찌르는 생의 의미가 있고, 유머가 있으며, 그리고 그림 같은 묘사가 있다." 특히 하이쿠의 대가 바쇼(芭蕉)의 시가 그렇다. 그의 시는 "단순하고, 쉽고, 운율이 있으며, 시적이다. 동시에 단검으로 찌르듯 생의 핵심에 도달한다."

일본의 하이쿠는 매력적인 시 양식임에 분명하다. 서양의 학자들도 이런 하이쿠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하이쿠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시인 중에 이 하이쿠를 가장 잘 쓸 것 같은 사람은 누구보다도 안도현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전문,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1994.)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안도현의 이 시에서는 하이쿠가 가지는 매력들을 물씬 풍기고 있다. 짧은 시일수록 그 안에 삼라만상을 담을 듯한 넓이와 깊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비록 안도현은 하이쿠 시인이 아니지만, 그의 시에서는 하이쿠가 가지는 다양한 장점들을 담아내면서, 단순하면서도 쉽고, 운율감이 있으며, 시적 여운을 길게 남긴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는/누구에게 한 번 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며 삶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안도현은 1984년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데뷔한 이래(엄밀히 말해 데뷔작은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낙동강」이다.)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 『외롭고 높고 쓸쓸한』등을 내놓으며 작품성과 함께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는 인기 시인이 되었다. 단적으로 그는 본격문학 가운데 가장 잘 팔리는 시인일 것이다. 그는 1998년 '소월시문학상'을 받으면서 그 시의 문학성도 높은 경지에서 인정을 받는다. 그러니까 우리 시인들 가운데 몇 안 되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는 시인인 셈이다. 그가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의미가 있기도 하다. 이 상이 소월의 시적 정취와 경향을 따르는 시인들에게만 주는 것은 아니지만, 안도현의 경우 소월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서 이 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시는 소월의 시 만큼이나 운치 있게 읊기 좋다. 이후 『그리운 여우』(창작과비평사, 1997.),『바닷가 우체국』(1999),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문학동네, 2005.),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 2004.)등을 펴내며, 안도현은 그야 말로 한국의 대표시인으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안도현을 말하는 자리에는 으레 섬진강을 터잡은 김용택 시인을 언급하게 된다. 이 둘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은 점에서 이 둘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이 둘의 출발도 어떤 점에서는 비슷하다. 김용택이 섬진강에 터잡은 시골 초등 교사였다면, 안도현은 전라도 이리(현 익산) 시골마을의 중등 교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안도현은 전교조 해직 교사 시절은 오래 겪는다. 우여곡절 끝에 복직이 되었지만, 이후 그는 큰맘을 먹고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들어선다. 여기에는 이래저래 비판도 많았다. 그것은 차치하고 그가 글쓰고 시만 쓰며 살겠다고 나선 데에는 작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시대에 시만 쓰고 먹고 살기가 안도현인들 쉽겠는가마는, 그나마도 안도현이였기에 그에 대한 대중적 사랑이 그나마 전업작가로 나선 그를 먹여살리기가 가능했지 싶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가 전업작가로 나선 이후 더욱 아름답고 좋은 시를 내어놓느냐는 것일 테다. 내가 볼 때,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안도현은 전업작가의 길에서 다시 선생의 길로 살짝 귀로한 것 같다. 우석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에서 버젓이 '교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수도 선생이지만, 이전의 그것과는 물론 그 성격이 다를 것이다. 시를 평생의 업으로, 시만 쓰면서 살겠다고 나선 그가, 이제는 시인으로서 다다를 어떤 뛰어난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시인은 애써 부인하겠지만, 나같은 범인이 선뜻 반론을 펴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제는 그처럼 시를 쓰면 살겠다는 이들에게 시의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교수 안도현이 제자들에게 던지는 화두이면서 시론, 시학이다. 그러므로 이번 시집은 안도현이란 시인의 시 인생에 있어 또 한 번의 중요한, 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

- 「공양」전문

 
   

이 시는 이번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의 첫 머리에 실린 시다. 말하자면 서시인 셈이다. 비록 제1부 첫머리에 갇혀 있지만, 이번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담고 있는 시다. 대부분의 시집에서 이처럼 첫머리에 얹힌 시들이 그 시집의 키워드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보통이다. 아무튼 이 시에서 안도현은 시쓰기는 '공양'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싸리꽃을 위한 산벌의 날갯짓, 칠꽃의 향기,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 소낙비의 오랏줄, 매미울음. 이것처럼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며, 그 향기를 널리 퍼뜨리고, 슬퍼하며, 감싸주고, 울어주는 그 무게와 넓이와 길이와 깊이가 간절해 지는 것. 이것에는 '공양'하는 마음이고, 시를 쓰는 마음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를 쓰는 마음이라면, 시를 쓰는 시인의 자세는 '구름'에게서 배울 수 있다. "저 구름은, 바라보는 일이 직업이다"(「독거」부분), 홀로 "우두커니 앉아 바라보기만 하는" 구름처럼 세상과 자연과 사물과 삶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는 시작된다. 박형준이 지적하듯이 이 시집 전체가 하나의 바라봄의 시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안도현은 그 바라봄이 어떻게 시로 태어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지금까지의 시들이 보여주는 바도 세상과 자연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봄이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를 궁금해"(「빗소리」)하는 것이 시가 된다.

시인 안도현에게 시란 '철길'이기도 하다. "멀리 가보고 싶어 자꾸 번지는 울음소리를 땅바닥에 오롯이 두 줄기 실자국으로 꿰매놓은 것"이다. "길을 달려왔으나 정작 길을 데리고 오지는 못하였다는 자책이 물소리가 되어 발목을 묶는다"(「탁족도(濯足圖)」부분)는 시인의 마음이 "두 줄기 실자국"처럼 꿰매져 시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안도현의 시들은 "수면에 욜랑욜랑 무늬를 짓는 빛의 시문(詩文)을 베껴두었다가 밤 들면 어두운 창가에 걸어"(「탁족도」부분)두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는 한없이 바라보다가, 달빛의 시문을 베껴두기도 하고, 멀리 바라보는 그곳에 가고싶은 마음을 "두 줄기 실자국으로" 아쉽게 꿰매놓음으로써 시를 써내고 있는 것이다.

안도현의 이런 바라봄은 그저 관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간절한 마음이고 따스한 마음이며 애처로움의 마음이다. "기러기 알을 조심스럽게 가슴에 품는"(「기러기 알」부분) 마음이다. 때론 "밥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혼자 남아 날이 새도록 달을 돌리는 아이"(「목판화」부분)의 마음처럼 "참 철없"는 마음이기도 하다. "벌레도 사람도 반반씩 사이좋게 나눠먹는"(「콩밭짓거리」부분) 마음이 안도현 시인의 그 바라봄에 깊게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아무래도 순수한 아이의 마음, 곧 동심이다. 그래서 일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깔스런 음식이야기가 이 시집의 제2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것은 시인에게 추억이고, 아름다움이며, 시간을 넘어선 오랜 사랑이다. "눈발의 이동경로를 따라 북방에서 남으로 내려왔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맛있게 자셨"던 어머니가 해주던 '명태선'을 이제는 "아들과 함께"(「북방(北方)」부분) 맛보는 지금, 그 추억과 사랑이 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먹음직한, 맛깔스러운, 담백한,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애틋한 음식이다. 그래서 시는 이 음식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나는 음식의 시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통영 바다는 두런두런 섬들을 모아 하숙을 치고 있었다

  밥 주러 하루에 두 번도 가고 세 번도 가는 통통배

  볼이 오목한 별, 눈 푹 꺼진 별들이 글썽이다 샛눈 뜨는 저녁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아 여자 생각하던 평안도 출신이 있었다

- 「백석(白石) 생각」전문

 
   

안도현은 옛시인 백석을 무척 사랑한다. 백석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이번 시집의 제2부 음식시편들에 오롯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시인 백석이 음식을 소재로 많은 시를 써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시집의 음식시편이 백석의 영향이 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안도현은 백석의 시에서 한 구절을 따와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제목을 삼기도 했을 만큼 백석을 사랑한다. 그래서일까? 안도현은 점점 시인 백석을 닮아가고 있는 것도 같다.

   
 

  건진국수에는 건진국수,라는 삼베 올 같은 안동 말이 있고 안동 말을 하는 시어머니가 여름날 안마루에서 밀가루박죽을 치대며 고시랑거리는 소리가 있고 반죽을 누르는 홍두깨와 뻣센 손목이 있고 옆에서 콩가루를 싸락눈처럼 술술 뿌리는 시누이의 손가락이 있고 칼국수를 써는 도마질 소리가 있고 멸치국물을 우리는 칠십년대 녹슨 석유곤로가 있고 애호박을 자작하게 볶는 양은냄비가 있고 며느리가 우물가에서 펌프질하는 소리가 있고 뜨거운 국물을 식히는 동안 삽짝을 힐끔거리는 살뜰한 기다림이 있고 도통 소식없는 서방이 있고 때가 되어 사발에 담기는 서늘한 눈발 같은 국수가 있고 찰방거리는 국물이 있고 건진국수 옆에 첩처럼 따라붙는 조밥이 있고 열무며 풋고추며 당파를 담은 채반이 있고 건진국수에는 누대의 숨막히는 여름을 건진국수가 안동 사람들을 건졌다는 설이 있다.

-「건진국수」전문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백석,「모닥불」전문

 
   

이 두 시를 놓고 보면, 시적 구조나 방법에서부터 시적정서까지도 무척 유사하다. 무미건조하게 소소한 것까지 나열하고 있는 것같지만, 그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시적 정서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안도현은 어쩌면 의도적으로, 때론 무의식적으로 백석을 흉내내고 닮아가고 있다. 설마 그가 '백석시문학상'을 노리고 그런 것일까? 아니, 백석을 사랑하는 탓일 게다. 안도현의 음식 시편들이나, 백석에게서 영향을 받은 시편들이나 그것이 백석이란 한계에 머물지 않고 안도현 만의 다른 시편들로 형성하면서 또다른 시적 아름다움을 풍기는 것은,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이 시편들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안도현은 백석만큼이나 사랑스럽다.

안도현은 이번 시집에서 바라봄의 시학과 음식의 시론을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가 백석이라는 시인에게서 느끼고 배운 바가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이것을 다시금 그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안도현의 시학으로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예천 태평추」부분), 그렇게 그는 시를 써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시를 쓸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간절함과 철없는 순전함으로 시를 쓰고, 삶을 살아가면 어떨까 넌즈시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집이 안도현에게 있어서 매우 유의미하면서도, 우리에게 또한 아름답게 가치 있음은 바로 거기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제 안도현은 할 일을 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져도 좋고, "아무 이유 없이 걷"기도 하며,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를 맡아도 보고, "가끔 소낙비를 흠씬 맞기도 하면서, 때론 철없이 혼자 우는 것"(「가을의 소원」부분)이 소원이란다. 그렇게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울음들이 있는 한, 그는 우리에게 이 시 '공양'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의 울음은 곧 시가 될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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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29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의 관심도서였기에 저도 사서 읽었지요. 그날 가방속에 있었고 돌아오는 전철에서 다시 꺼내든 시집.
즐거운 시간 뒤로 하고 광주입성했답니다!

멜기세덱 2008-01-30 02:14   좋아요 0 | URL
저도 며칠 전 읽었는데요, 아주 좋았습니다.ㅎㅎ
그리고 오늘 안도현, 김사인 북콘서트에 갔다가 듣지는 못하고 사인만 받아왔는데요, 항상 이분들 뵐 수록 설레요...막.....ㅋㅋ

로쟈 2008-01-2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하지는 않은 '백석 계보'의 적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멜기세덱 2008-01-30 02:17   좋아요 0 | URL
백석의 매력이 안도현 시인을 통해서 한층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백석의 계보를 제가 꿰고 있지는 못하지만, 백석의 영향을 느껴지는 시들이 제법 되는 것 같아요. 김사인 시인도 그렇고요. 백석을 가히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러도 족하지 싶어요.ㅎㅎ
 

   
 

여기 충주라는 지방엔 달래강이라고 있는데, 달래강은 어떻게 해서 달래강인가 하믄 옛날에 이제 아들 하나, 딸 하나 오뉘를 두고 살다가서, 부모 두 분이 다 돌아가시니까 두 오뉘가 살며 농사를 져 먹으며 사는데, 원 이짝에 있었는지 저짝에 있었는지 그거는 모르는데, 달래강을 건너가 농사를 짓다 보니까 소낙비가 오니까 달래강 물이 많아졌어. 과년한 오빠하구 과년한 동생하고 둘이 밭을 매, 농사를 짓다가 그래 되니까 옷을 벗구서 강을 건너오다 보니까, 그만 참 (이야기를 망설이며, 조사자의 눈치를 보면서) 저어 마음에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를 벗은 걸 보니까 그 자지가 일어서니까, 그만, "야 이놈 너 일어설 때 일어설 일이지, 이런데 일어서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낫을 가지고 일하러 갔다가 낫으로 제 부자질 뚝 자르고,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어. 그러니까 그 동생이 하는 말이, "날 보고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하고 자꾸 울고 앉았어. 그래서 통곡을 하다 그 동생도 그만 오빠가 죽은 데서 그만 죽었대. 그래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그랬다 해서 그래 달래강이라 이름을 지었어.

(<달래강 유래>, 『한국구비문학대계』, 3-1, 96면; 강등학 외,『한국 구비문학의 이해』, 월인, 2002, 145~146면에서 재인용.)

 
   

아직도 여느 시골 마을에 가면 '달래고개'가 하나쯤 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우리 동네에도 작은 언덕배기를 일컬어 '달래고개'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달래가 많이 나서 달래고개려니 했던 이 고개가 그와는 전연 다른 전설이 있음을 안 것은 대학 4학년 구비문학 강의에서였다. 그때 이 전설을 듣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전설은 우리나라 전역의 많은 지방에서 전해진다. 이런 종류의 전설을 광포전설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달래고개> 전설과 함께 <장자못> 전설, <아기장수> 전설, <오뉘힘내기> 전설 등이 있다. 개인적 추측으로는 이 <달래고개> 전설이 가능 광포하지 않은가 한다.

한국에서 전해지는 설화 중에 이 <달래고개> 전설은 '드물게 근친상간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 전설이다. 이런 드문 모티프를 가진 전설이 전국적으로 광포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또한 아이러니하다. 인용한 것은 <달래고개>의 변형으로 고개가 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비슷하다. <달래고개> 전설에서는 부모를 잃은 두 오누이가 고개 중턱의 작은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이렇게 장소와 상황만이 약간이 변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대동소이하다.

이 전설에 대해 학자들은 "욕망과 윤리의 갈등으로 빚어진 오라비의 자살과, 그 죽음 앞에서 발해지는 누이의 절규는 윤리보다 선행하는 생명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과 실존문제에 대한 인간적 물음이 집약되는 부분"이라고 평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 전설이 내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로는 부족할 것 같다. 혹자들이 생각하듯 근친상간 모티프에 대한 천박한 흥미만도 아니다. 이 전설을 알게 된 이후로 '달래고개'를 생각할 수록 두 오누이의 비극적 삶이 길게 슬퍼진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비극들이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과 실존문제"에까지 이르면 더욱 그러할 것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반인간적이며 반생명적이 문제들도 아직 여전히 '달래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달래나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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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2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EDPS중에 '진달래'라는게 있었는데 아실려나? ^^
=========>진짜 달라면 줄래? 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