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서평단 알림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신동준 지음 / 살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헌철 고순"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구단 만큼이나 술술 외우고 있을 정도로 우리는 조선왕조 500년사에 무척 친근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1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국호가 조선이었으니 우리가 그 전의 고려나 신라보다 시간 상으로 더 가까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선에 대한 사료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자세한 것 또한 그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왕조의 계보를 달달이 외운다는 것이 그리 정상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국사(國史)였고,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세뇌된 역사를 줄줄이 외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우리 역사교육의 실상이었다. 왕조의 계보를 전 국민이 달달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 그러한 역사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사'교육에 대한 비판은 근래에 이르러 봇물처럼 제기되고 있다. 당대의 지배세력들의 구미에 맞게 서술된 국사(國史)와 그것의 주입에 대한 자각과 비판은 매우 필요한 부분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작업이다. 그런 측면에서 왕조 중심의 역사 서술에 대한 비판으로 민중 중심의 역사 서술이 시도되기도 한 것은 고무적이다. 시대에 따라 역사는 항상 새로 쓰여지지만, 시대 정신을 반영한 주관적 태도와 함께 각종 사료와 자료에 근거한 객관적 태도가 잘 조화되어 보다 바람직한 역사 서술과 역사 교육을 이 시대는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역사학자들은 부흥하고 많은 노력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최근들어 다양한 역사 연구자들의 결과물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물들이 모두 긍정적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일례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재발견 혹은 재해석인데, 거대 제국에 대한 반시대적 열망을 조장하면 대중을 현혹시키는 것들을 들 수 있다. 이 책 『조선의 왕고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이하 『조선의 왕과 신하』)도 그런 점에서 비판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조선의 왕과 신하』는 제목에서 표방한 조선의 '부국강병' 전략의 역사라기 보다는 조선이 왜 망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견지한 '조선망국사(朝鮮亡國史)'라고 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선이란 나라는 왕권강화를 통한 강력한 통치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군약신강'의 병폐에 치달아 결국 패망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성리학의 통치 이념인 왕도주의와 공허한 붕당정치 등의 추구로 인해 조선의 신하의 나라가 됐고, 이것이 결국 왕권의 몰락으로 이어져 조선이 부국강병을 이루지 못해 패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가 끊임없이(태조에서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데, 자못 내재적 조선 패망론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나라가 망하는 제1 원인을 "최고 통치권자를 비롯한 위정자와 이러한 위정자를 묵인한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있다"면서 "조선이 패망한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왕권이 미약하고 신권이 강한 이른바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왜곡된 통치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군약신강'이 과연 "왜곡된 통치 구도"인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라도 한 나라의 멸망의 책임을 그 나라의 민중에게까지 돌리는 저자의 논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일제의 제국주의 행보를 탓하기에 앞서 세계사의 흐름에 눈을 감은 채 사변 논쟁과 이전투구의 정쟁을 일삼은 조선의 붕당정치를 철저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자기반성을 하지 않은 채 남만 탓하는 것은 스스로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12쪽)  
   

라고 말하고 있는 저자의 견해가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선순위가 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니 어느 것은 순서를 따지기보다는 그 둘이 각각 다른 측면에서 주장되어야 할 것들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일제의 제국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그것대로 문제시해야 하고, '자기반성'은 또다른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저자의 논리를 따를 때,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치부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의 논점이 위험스러운 것은 이러한 저자의 역사 서술이 현 시대에 있어 잘못된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것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 말기의 상황은 당시의 일본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면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젊은 사무라이들로 하여금 구미 선진국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면서 나라의 앞날을 구상하도록 강력히 뒷받침"했고 결국 조선이 일본에 의해 지배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편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근 1백여 년에 걸쳐 일제의 식민 지배와 조국 분단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국민의 모든 힘을 모아 부국강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있을 수 없다. 치국 방략과 거리가 먼 이상주의에 빠져 수단일 뿐인 이념이 오히려 목표로 변질되는 조선 붕당정치의 전철을 두 번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를 기존의 위정자에게 맡기는 것은 연목구어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인 책임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과거와 달리 국민들이 직접 위정자들을 뽑는 시대를 맞아 '반통치'를 일삼는 이러한 붕당주의자들을 선택한 궁극적인 책임은 주권자인 국민들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통치'와 '반통치'를 엄격히 구분할 줄 아는 국민들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13쪽)
 
   

는 '부국강병'이 만병통치약으로 결론지어진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부국강병이라는 소리다. 저자의 부국강병이라는 것은 결국 강력한 통치력을 지닌 지도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국민들이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강력한 제국을 형성해야 한다는 논리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이 책이 대선을 앞두고 출간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심기가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러한 논리 아래 자신의 입맛에 맡는 단편적 역사들을 오려 붙인다. 나아가 "만일 조선이 태종이 완성한 강력한 왕권 국가로 존재했다면 역사는 다르게 전개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긍정적 언사를 내뱉고 있다. 이것은 광개토대왕이 수백년을 살았으면 전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소리만큼이나 허황되게 들린다. 조선이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군왕과 신하가 서로 조화롭게 통치하는 군신공치(君臣共治)를 표방한 것은 그 자체로는 어떤 근대적 진보성을 띄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전개상 부패하고 이념적 분쟁과 공허로 치달은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패망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라는 판단은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주관적 전제하에 역사를 구미에 맞게 짜맞추고 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려워 보인다.

저자의 이 책 『조선의 왕과 신하』를 세세히 한 자 한 자 따져가며 비판할 만한 가치를 찾기가 힘들다. "그는(양녕대군) 공부를 싫어하고 잡배들과 어울려 나쁜 짓을 일삼았다. 게다가 장인인 김한로가 죄를 지어 물러나자 거만한 상소를 올리는 실수를 저질렀다."와 같은 서술은 이 책 전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저자의 객관적이지 못한 태도가 극명하게 들어난다. '나쁜 짓을 일삼았다'거나 '거만한 상소', '실수를 저질렀다'와 같은 서술은 역사를 연구하는 자의 태도가 못 된다. 그러한 가치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단 저자의 논점 하에 따라 그에 맞지 않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러한 주관적 가치판단이 개입된 서술들로 채워지고 있어 이 책을 신뢰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여기서 멈추기로 하자. 시간도 없거니와 오랜 시간을 내가 이 책에 투자했다는 것이 못내 아깝기도 하다. 몇 가지 건진 것이 있기는 하다. 조선 왕조의 몇몇 부분에서는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고, 그다지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새로운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 중 일부도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한가지 더 한다면, '흥청망청(興淸亡淸)'이 "연산군이 폐위된 뒤" 나타는 신조어로, '흥청(興淸)'이 "장악원(掌樂院)에 적을 두고 소리와 춤 등을 배운 이른바 '여악(女樂)'이라는 관기"를 일컫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들 알았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 몇 가지가 더 있지만 그것을 이유로 이 책이 보다 가치있어 지는 것을 바라기는 어렵다고 본다.

※ 警告 : 本 書評은 알라딘 書評團에 當籤되어 出版社로부터 無償으로 圖書을 提供받아 作成된 것으로 本 書評의 內容을 全的으로 信賴하여 本 圖書의 購買 與否를 決定하는 것은 讀書生活에 深刻한 懷疑를 誘發할 수 있사오니, 이 點 留意하여 주실 것을 當付드리는 바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어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갈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 1939년 8월 作, 시집『오랑캐꽃』에 수록
(윤영천 편, 『李庸岳詩全集』, 창작과비평사, 1995. pp.95~6.)

이 시의 배경은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시절에 '북간도'의 어느 허름한 술막이다. 매서운 추위에 발을 얼리며 두만강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와, 석 달 전 바로 그 두만강을 먼저 건너와 이제는 이름없는 술집 작부로 전락한 "전라도 가시내"가 주인공이다.(윤영천 편, 같은 책, p.232. 참조) 1939년이란 시대의 암울을 생각해 보면, 이 시를 읽는 내내 엄숙해져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용악의 연애감각을 소홀히 할 수 있다.

추운 겨울 두만강을 남몰래 건너와 북간도에 이르러 피곤하고 고통스런 몸이라도 녹이려 어느 허름한 술막에 들어선 '함경도 사내'는 전라도 말을 쓰는 가시내, 이 술막의 작부에게 눈길이 간다. 보아하니 이 가시내도 저 먼길을 걸어 두만강을 건너 질긴 목숨이어가며 이 술막에 들어온 것이리라. 말하자면 동병상련. '까무스레한" 얼굴의 전라도 시골 가시내지만 어딘지 마음이 끌린 이 '함경도 사내'는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느냐는 의뭉스런 말로 수작을 부린다. 너의 눈은 "바다처럼 푸르"구나. 이 전라도 가시내는 '함경도 사내'의 이 고단수의 수작에 빙긋 웃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쳤다면 고작 술 한 잔이나 이 어여쁜 '전라도 가시내'에게 받아먹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함경도 사내'는 고단수다. 척 보면 딱이다. 이 가시내의 '까무스레한' 얼굴에도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이 가득하다는 것을. 이내 '전라도 가시내'는 이 사내에게 손목이 잡혀 힘없이 옆에 주저앉아 그 살아온 내력을, '가난한 이야기'를 눈물 반, 술 반으로 풀어낼 것이다.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메이자"는 이 당돌한 사내의 말 한 마디로 가슴속 응어리진 사연들을 풀어내고, 이내 옷고름 마저도 풀었을 것이리라.캬~

'전라도 가시내'가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분명 울긋불긋 온 산마다 단풍이 든 가을이다. 추운 겨울 북간도의 밤깊은 술막에서 가시내는 이내 고향산천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라 울먹이지 않았을까? "울 듯 울 듯 울지 않"으려고, 진한 농도 걸고, 슬그머니 손도 잡는 이 사내에게"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를 보였던가 보다. '함경도 사내'의 이 고단수의 수작은 끝내 성공하지 않았을까?

'전라도 가시내'의 사투리를 어설프게 써가면서 농도 주거니 받거니,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던 옛시절로 잠시잠깐 돌아가게 해 준 이 '함경도 사내'에게, 그 날 밤은 누구에게도 풀지 않았던 옷고름이며, 살짜기 눈물을 닦아내던 '초마폭'도 이내 풀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도 하룻밤. 추운 겨울 새벽 북간도의 술막의 어느 뒷방에서 문을 열고 초라한 사내가 무덤덤히 나와, '노래도 없이', '자욱도 없이' 얼음길을 걸어가는 풍경. 이 둘의 하룻밤 사랑은 꽤나 아름답지 않은가?

이 겨울날, 서른 즈음에, 이용악의 이 빼어난 시를 읽으며, 그 '함경도 사내'의 고단수의 수작을 이내 부러워하며, 잠도 오지 않는 새벽을 달랜다. 아, 나의 '전라도 가시내'는 어디에 있을까? 경상도 가시내도 좋고, 경기도 가시내도 좋을 것이다. 아무렴, 서울 깍쟁이는 어떠랴. 어느 가시내일지 모르지만, 나도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그래보고 싶구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7-12-2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멜기님의 멋진 해석에 아지매가 첫 흔적 남기는게 미안시럽구만유~~ ^^
멜기님의 '전라도 가시내' 빨리 만나기를 기원하며...... 아자아자!!
 

글을 쓸 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지만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요, 그게 바로 문장부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격식을 갖춘 글쓰기, 이를테면 보고서나 논문 등에서는 문장부호 하나하나의 쓰임을 정확히 알고 써야 하겠습니다. 문학에서도 문장부호가 크게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보통 시에서는 문장부호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어떨 때는 문장부호를 씀으로써 매우 크게 시적작용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장부호의 사용도 하나의 약속임으로 그 기능과 쓰임새를 정확히 알고 사용할 때 효과적인 의미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문장부호를 잘 사용하고 계시는지요?

한 가지 재미난 얘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요즘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르신들까지 휴대전화가 없는 분들이 없으신데요, 휴대전화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분이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 거라더군요.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요, 문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하는 상황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문장부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어느 신혼 부부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이혼 할 뻔 했다는 문장부호와 관련된 웃지 못 할 얘기가 있습니다.

결혼한지 몇 달 안 된 신혼부부가 있었는데요, 하루는 남편이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가던 길에, 모처럼 예쁜 아내와 데이트도 할 겸, 외식을 할 생각으로 문자메시지를 아내에게 보냈답니다. "저녁 먹었어"라고 보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문이 안 오더랍니다. 뭐하느라 문자메시지도 확인을 안하는지, 왜 답문이 없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살짝 화가 나기도 하고, 할 수 없이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요,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뾰로통해 있더랍니다. 남편이 들어와도 아는 체도 안하고 차갑게 방문을 닫아버리고 들어가버렸다는 군요. 왜 그런가 했더니, 아내는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오붓하고 근사하게 저녁을 함께 할 생각으로 장도 보고, 정성스레 요리를 하고 있던 차에, 별다른 얘기도 없던 남편이 갑자기 문자를 보내 자기는 "저녁 먹었어"하니 아내는 화가 날 수 밖에요. 어찌어찌 해서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잘못했다간 결혼한지 몇 달 만에 이혼할 수도 있었더랍니다.

재미난 이야기지요? 우리들이야 이렇게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무척 곤란한 문제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오해의 근거는 문장부호 하나를 썼느냐 안 썼느냐에 있는데요, 만일 남편이 '?'를 붙여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면 이 두 부부는 그 날 밤, 찐~한 밤을 보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그 날 2세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구요. 그런데 이런 사소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문장부호 하나로 인해 더 큰 문제나 오해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다르고 어다른 언어 전달의 문제 중 하나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문장부호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손해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네요.

얼마전 한국어문교육학회에서 펴내는 『어문학교육』제35집(2007. 11.)에 '국어 문장 부호의 몇 가지 문제점'이란 논문이 실려있어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요, 부산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봉국 교수의 논문으로 문장 부호 체계와 사용의 문제 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논문을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문장부호를 위주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상봉 교수는 먼저 우리나라 현행 문장 부호의 체계와 명칭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마침표라고 부르는 '.'의 이름이 원래는 마침표가 아니었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간단히 현행 문장 부호의 체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Ⅰ. 마침표[終止符(종지부)]
     1. 온점( . ), 고리점( 。)
     2. 물음표( ? )
     3. 느낌표( ! )

Ⅱ. 쉼표[休止符(휴지부)]
     4. 반점( , ), 모점( 、)
     5. 가운뎃점( · )
     6. 쌍점( : )
     7. 빗금( / )

마침표와 쉼표 만을 옮겨보았습니다. 이하 따옴표, 묶음표, 이음표, 드러냄표, 안드러냄표 등이 있습니다. 위에서 보듯이 우리가 마침표라고 부르던 '.'이 사실은 '온점'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쉼표라고 부르던 ','는 '반점'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중들이 다들 마침표, 쉼표라고 하니까 1998년 문장 부호에 대한 개정안에서는 세칙을 두어 "온점과 고리점은 '마침표'로 일컬을 수 있다.", "반점과 모점은 '쉼표'로 일컬을 수 있다."하고 은근슬쩍 끼워놓고 있습니다. 이 정도야 언중들의 사용에 따른 민첩한 조처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문장부호의 체계와 규정이 아주 주먹구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답니다.

다시 한 번 마침표에 속한 것들을 잘 한 번 보시지요. 여기에는 물음표( ? )와 느낌표( ! )도 있죠? 그런데 이게 정말 마침표일까요? 마침표라는 것은 문장을 종결한다는 표시인데, 물음표와 느낌표는 반드시 문장의 종결시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랍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참 훌륭한(?) 태도야."라거나 "우리 집 고양이가 외출(?)을 했어요." 등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개정안 세칙에서 느낌표의 사용 예로 "우리는 그 작품으로 백만원(!)의 상금을 탔다."와 "그리하여 그는 끝내 정복자(!)가 되었다."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규정에서의 예만 보아도 물음표와 느낌표가 마침표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니 문장부호 체계가 얼마나 주먹구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을 하면서 김봉국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문장 부호의 체계에 대한 새로운 고려와 개념 규정이 제대로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어의 경우에는 문장 부호에 대해서 정밀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문장 부호의 사용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을 만들어 놓"고 있고, "국제적으로 통용하는 The Chicago Manual of Style(1993)에서는 문장 부호에 대한 규정이 136개 항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김봉국 교수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문장 부호는 우리의 언어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로 이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있는 규정과 약속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어문 규정을 정하고 설명하는 규정집에서조차 문장부호를 지들 맘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규정집을 만들었다면 이 규정집은 무엇보다도 규정에 맞는 부호를 사용해야 하며, 아울러서 규정에 합치되는 예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규정과 규정집이 서로 별개의 존재로 인식된다면 규정과 규정집은 언중들에게 전범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며 문자 생활에 더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갖게 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김봉국 교수 지적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논문 말미에 실린 "문장 부호 사용의 실제"에서 몇가지를 간추리고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문장 부호를 사용할 때 헷갈리고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문답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데요, 여기서도 그런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기로 하고요, 아무래도 논문을 쓰시는 분들에게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살펴보시고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2.1. 주제의 설정'이 맞는 표기인가, '2.1 주제의 설정'이 맞는 표기인가?

여기서는 세칙안에서 "표시 문자가 두 숫자 이상으로 되어 있을 때에는 마침표를 각각 쓴다"는 규정에 따라 '2.1. 주제의 설정'이라고 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정에는 마지막 온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대분입니다. 그러니까 국제적으로는 '2.1 주제의 설정'으로 쓰는 것이 알맞다는 얘기가 되죠. 논문이라던가 연구 보고서 등에서의 이런 표기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쪽으로 맞춰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말의 자음 'ㄱ, ㄷ, ㅂ' 등은 폐쇄음이다(전통적으로 흔히 파열음이라 부른다)"의 문장에서 온점을 괄호 앞 문장 끝에 표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괄호 밖 문장의 끝에 표기해야 하는가?

세칙안에 따르면 "소괄호 안의 문장이 바로 앞 문장과 내용상 긴밀한 관계에 있을 때에는 두 문장의 마침표를 묶어 괄호 밖에 하나만 쓰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마침표를 각각 따로 쓴다"로 되어 있답니다. 따라서 "우리말의 자음 'ㄱ, ㄷ, ㅂ' 등은 폐쇄음이다(전통적으로 흔히 파열음이라 부른다)."와 같이 괄호 밖 문장의 끝에 온점을 찍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래에서는 우리말의 부름말과 가리킴말에 대해서 알아 보고자 한다.(경어법의 전반적인 모습은 제3장에서 다룬다.)"와 같은 문장은 소괄호 안의 문장이 앞 문장과 긴밀한 관계가 아니므로 각각 온점을 찍어야 하겠습니다.

반점과 따옴표가 함께 사용되는 경우 (1) '개나리', '진달래'가 맞는 표기이나 (2) '개나리,' '진달래'가 맞는 표기인가?

우리는 (1)의 경우가 맞습니다. 그런데 국제적인 규정에 따르면 (2)의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이 나은 것 같습니다만, 하여간 혼란스럽네요.

콜론(colon)과 세미콜론(semicolon)의 우리말 명칭과 용법은?

콜론은 우리말로 '쌍점(雙點)'이라고 하며 세미콜론은 우리말로 '쌍반점(雙半點)'이라고 합니다. 쌍점의 경우 한글 맞춤법의 부록에 제시된 문장 부호에 그 용법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내포되는 종류를 들 적에 쓴다(문방사우: 붓, 먹, 벼루, 종이.). (2) 소표제 뒤에 간단한 설명이 붙을 때에 쓴다(마침표: 문장이 끝남을 나타낸다.). (3) 저자명 다음에 저서명을 적을 때에 쓴다(정약용: 목민심서.). (4) 시(時)와 분(分), 장(章)과 절(節) 따위를 구별할 때나, 둘 이상을 대비할 때에 쓴다(오전 10:20 (오전 10시 20분)). 등입니다.

그리고 쌍반점의 경우는 온점과 반점이 합쳐진 것으로 이 두 가지의 특성을 대체로 함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어의 문장 부호에서 사용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쌍반점의 용법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습니다. 영어에서는 자주 사용되죠? 국어에서도 쌍반점을 사용하자는 견해가 제안되기도 했다는 군요.

쌍점이 사용된 경우에 쌍점의 앞뒤 띄어쓰기를 어떻게 할까?

다음과 같이 쓰면 됩니다. "가. 일시: 2007. 7. 7.", "가. 이숭녕(1949:12)"처럼요.

'나이(年歲)를 많이 먹었다', '오구라심페이(小倉進平)가 향가를 해독하였다'와 같은 예문에서 소괄호의 사용이 가능한가?

답은 안 된다입니다. 이때는 대괄호( '[ ]' )를 사용해야 합니다. "묶음표 안의 말이 바깥 말과 음이 다를 때에"는 대괄호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몇 가지의 사례들이 더 있지만 이만 줄이도록 하고요, "문장 부호가 실제 언어 생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어문 규정에서는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에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문장 부호를 사용할 때 헷갈리는 점과 궁금한 점"이 있어도 어문규정이 이 모양이니 어디가서 물어봐야 할까요? 문장 부호에 대한 규정의 조속한 정비를 요구해야 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들도 문장 부호를 정확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12-2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좋은 글을!(느낌표)

멜기세덱 2007-12-24 19:48   좋아요 0 | URL
맞당! 이번 논문에 문장부호들 잘 쓰셨나 모르겠어요? ㅎㅎㅎ

순오기 2007-12-25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알고 있어도 실제 사용에는 소홀한 부분이죠?
아이들한테 가르치면서 제대로 쓰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고 편하게 쓰려는 습관에 잘 안 되고 있어요.
잘 읽었으니 현재의 규정대로 쓰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

멜기세덱 2007-12-27 20:2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정말이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ㅠㅠ;;

순오기 2007-12-29 04:05   좋아요 0 | URL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요?
어제 님이 보내주신 책을 두권이나 받고 보니, 내가 댓글을 잘못 남겼구나 생각했어요.ㅠㅠ
친정가면, 주안역사 서점에서 만나 멜기님께 책도 사드리고 맛난 것도 사드릴게요. 책은 감사히 잘 읽을게요~~ ^^

2007-12-27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오늘 오후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를 찾았다. 'KB국민은행 2007 한국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제3, 4, 5국과 고객 초청 프로기사 지도다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한국바둑리그에 대해 소개하면, 이번이 제3회(혹은 4회)째로 후원기업(8개팀)들이 상위권 프로기사와 선발전을 거친 기사들을 드래프트로 뽑아 팀을 구성하여 야구나 축구의 프로리그처럼 운영하는 대회이다. 작년(혹은 제작년)부터는 다양한 팬서비스 차원에서 각 연고지(후원기업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지역)를 방문하여 대국현장을 공개하고 지도다면기 행사들을 개최하는 투어형식의 이벤트를 열고 있는데, 나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이 투어들을 따라다녔다.

올해는 지방투어 총 4곳을 돌아다녔다. 먼저 지난 여름 1박 2일 일정으로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과 청주(충북 투어)엘 내려갔는데, 그때는 고근태 사범(2006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중국 최강으로 꼽히는 구리9단을 꺽고 한중천원전에서 우승하는 등(당시까지 구리9단이 3연패(혹은 4연패) 중이었는데 혜성같이 등장한 고근태 프로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고근태 프로는 요즘도 잘 나가서 한국 프로기사 랭킹 상위권에 올라있다.)과 지도 대국을 두는 행운을 얻었다. 이어서 수원투어에선 하호정 3단과 5점에 두어 이기기도 했고, 서울투어에서는 송폭풍 송태곤 8단과 역시 5점에 두었지만 무참히 졌다. 그리고 오늘, 오늘은 최강의 기대주로 꼽히는 백홍석 사범과 두었지만 역시 무참히 패, 지금까지 나의 투어 성적은 총 4전 1승 3패가 되겠다.

조금 옆으로 샌 감이 있는데, 한국바둑리그나 이 투어 행사 등 바둑이 살아남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분히 고무적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즐겨보는 바둑TV도 다양한 형식의 시도를 통해 바둑을 보다 활성화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정말 몸부림,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다. 바둑이 올림픽에 한 종목으로 채택되고 스포츠로서 인정받는 상황이지만 역시나 바둑 인구는 줄고 있고 젊은 층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이는 무척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바둑계의 노력이 고무적이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어쩌면 이것이 기존의 바둑 팬들만의 행사 혹은 축제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보다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긴다. 이를테면 어느 광고에서 쇼를 하라면서 바둑 대국 중 옆에서 훌라우프를 돌리는 것처럼, 획기적인 발상 말이다. 하여간 그런 것이 없고서는 바둑이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바둑리그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받기 위해서는 지역 연고제를 정착시키고 각 팀별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야구나 축구처럼 프로기사를 각 팀들이 연봉을 주고 계약하는 방식들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바둑이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 오늘 투어 일정이 끝나고 동호회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다소 시간이 여유가 있어, 서울 온 김에 광화문의 교보문고엘 들렀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서울구경 삼아 가는 곳이 이 교보문고다. 서울 지리에 감감한 나로서는 그나마 이 교보문고만은 이제 잘 찾아다닌다. 교보문고엘 들러 한 시간 쯤 책 구경하고, 몇 권을 사들고 내가 사는 인천으로 돌아왔다.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나는 주안역에서 내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안역에서 내려 역사를 거쳐 나오려는데, 역사 안에 넓직한 공간의 서점이 들어선 것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서점엘 들어가 평소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손에 집어 들었다. 녹생평론사에서 나온 『간디의 물레』(김종철 저),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산문집), 『삶은 기적이다』(웬델 베리 저, 박경미 역)와 『진보의 역설』(그레그 이스터브록 저, 박정숙 역, 에코리브르), 『무례한 복음』(김경재 外 저, 산책자, 2007)을 사버렸다.

 

 

 

 

서점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판국에 역사 안에 비교적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서점이 들어섰다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반가운 마음으로, 나 아니면 잘 안 사갈 것 같은 책들 위주로 골라서 산 것이다. 교보문고에서도 한 보따리를 사가지고 있는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책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사장님께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너무 반갑다고, 앞으로 자주 오겠다고.(그리고 카드를 내놓았지만, 내일이 오픈이라 아직 카드가 안 된단다. 지갑을 열어 탈탈 털어 겨우 현금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인하대 주변엔 얼마전 서점들이 전무하게 됐다. 98년엔 2~3군데 서점이 있었는데(헌책방은 제외하고) 근래에 그중 하나 밖에 남지 않았었다. 그러던 서점이 이내 인하대학교의 구내서점으로 입주하고는 인하대 주변엔 서점이 죄다 없어진 것이다.(헌책방은 한 곳 있지만, 대부분 대학교재들을 팔 뿐이다.) 대학가에 변변찮은 서점 하나 없다는 사실은 못내 불만 스럽다. 인천 시내에서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점이라고는 버스를 타고 주안엘 나가야 2군데 정도 있다. 그리고 인천 터미널 근처에 인천 교보문고가 몇 년 전에 들어섰을 뿐이다. 인천이 이 모양이니 매번 전국에서 애들 성적이 꼴찌인게 당연한 것 같다.

*** 돈을 얼마나 모아야 할까? 내 나이 한 50쯤 되면, 그때는 더더욱 서점을 보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내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 즈음 되서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작은 서점이나 하나 운영하면서 책이나 읽고 소일 하면서 지내고 싶다. 그런데 얼마나 있어야 서점을 차릴 수 있을까? 그리고 책 잘 안팔려도 먹고 살면서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얼마나 될까? 얼마면 되냐고? 근데, 이대로 가다간 얼마나 나발이고 그때까지 땡전 한 푼 모으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맘 같아서는 나중에 나한테 서점 하나 차려준다는 여자 있으면 눈 딱 감고 장가들 수도 있을거 같다. 그럴 능력 있는 여자가 나 같은 것 데려갈 리는 만무하고, 지금부터라도 나중에 서점하나 차려서 먹고 놀 만큼의 돈을 차근차근 모아야 할 듯 싶다. 재테크 관련 책을 읽어봐야 하나?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7-12-2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주안역사에 생겼단 말이죠. 이번에 친정가면 꼭 들려보렵니다.
전 동인천역앞에 '대한서림'단골이었고요. 지금도 친정갔다가 가끔 터미널 영풍문고에서 하나씩 사들고 옵니다. 나의 인천사랑을 누가 알아줄려나? ㅎㅎ
저도 한때 서점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마을도서관으로 만족합니다!

멜기세덱 2007-12-24 19:49   좋아요 0 | URL
주안역 안에 생겼더라구요. 저도 대한서림에 아주 가끔 갑니다..ㅎㅎ
순오기님의 인천사랑은 잘 몰라도, 멜기사랑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ㅋㅋㅋ

순오기 2007-12-25 06:14   좋아요 0 | URL
ㅎㅎ 멜기사랑뿐 아니라 인천사랑도 알아주시지잉~~ㅎㅎㅎ

바람돌이 2007-12-2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예쁜 아이 하나 낳아서 그 아이를 도서관 사서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시는게 나을듯합니다. ㅎㅎ 근데 멜기세덱님한테 제가 인사는 햇었나요? 자주 드나들기는 했는데 전에 댓글을 남겼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가물 가물.... ㅎㅎ

멜기세덱 2007-12-24 19:5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은 아직 아이신가요? 아님....아이를 낳으셨단건가요? ㅋㅋㅋ
저도 자주 뵈었던거 같은데, 안녕하시지요? ㅋㅋㅋ

마늘빵 2007-12-2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이 페이퍼는 서점 차릴 돈 있는 여자를 향한 구애 페이퍼란 말이지 =333

멜기세덱 2007-12-24 19:51   좋아요 0 | URL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말하자면 다목적 페이퍼라고나 할까요...ㅋㅋ

심술 2007-12-2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맞춤법 틀린 게 눈에 띄네요. 찾아보시길. '돈을 얼마나 모아야 할까?'로 시작하는 마지막 문단에 있습니다.

멜기세덱 2007-12-25 00:49   좋아요 0 | URL
크크크, 전 무척 많이 띄네요. 혹시 '안팔려도'를 말하시나요? 띄어쓰기를 해야되는데요.ㅎㅎ 그냥 주저리다보니...ㅋㅋ
몇 개 더 찾아보죠. '되서'는 '돼서'로, '있을거'는 '있을 거'로, '할 듯 싶다'는 '할 듯싶다'로, 아잉...만타...ㅋㅋㅋ근데 수정하기가 귀차나요...ㅋㅋ

심술 2007-12-25 01:35   좋아요 0 | URL
돼서라고 써야 할 되서를 말한 거였는데 님 댓글 읽고 보니 띄어쓰기 잘못된 것도 보이는군요. 뭐 맞춤법이랑 띄어쓰기 틀린다고 세상 끝나는 것도 아니고 좀 게으르다고 잡아 가는 것도 아니니 편하게 삽시다.
 

오늘은 알라디너를 위한 명언이기 이전에 저 스스로를 위한 명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 카테고리의 글들 모두가 그런 것이긴 하지만, 오늘은 얼마 전의 우연찮은 행운도 있고 해서, 성원해 주신 알라디너 지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이 글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연말이잖아요? 한 해 동안 다른 알라디너 분들보다는 턱없이 미미하지만, 많다면 많은 저의 1년 간의 독서를 반성하는 차원이기도 하답니다. 요 며칠 제 머릿속을 맴돌던 명언은 이것이었습니다.

   
 

書中自有千鐘祿(서중자유천종록)

책 속에 천종(千鐘)의 녹(관원에게 주는 봉급)이 저절로 들어 있다.

 
   

정말 그럴까요? 잘 아시다시피 천종의 녹은 아니더라도, 꽤 많은 알라딘 적립금은 들어있더군요. 이 말과 관련해서 성종과 구종직의 이야기가 전해지더군요. 낮은 관직에 머물던 구종직이 어느날 우연히 궁을 거닐던 성종을 만나 그 앞에서 『春秋(춘추)』를 줄줄이 외웠다는군요.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구종직을 성종은 하루 아침에 부교리로 승차시켰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7급정도 공무원이 하루 아침에 장차관급으로 승진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책을 많이 읽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노력에 걸맞는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온 이 행운이 이런 말로 미화하기에는 제게 너무 자격이 없습니다. 고작 리뷰 하나 용케 써서 어떨결에 봉잡은 것 가지고 "書中自有千鐘祿(서중자유천종록)"을 말하니 이 아니 가당찮은 노릇입니까? 민망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계기로 얼마간 숙연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과연 나는 독서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 독서는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럴 때 참 막연합니다. 어떤 가시적인 결과는 전연 보이지 않고, 매일 매일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리뷰를 써서 이주의 마이리뷰도 당선된 적이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책이 내게 무엇을 주었다면, 그것은 부끄러움일 뿐이고, 그 이상은 없습니다. 『88만원 세대』도 『만들어진 신』도 천종록은 커녕 일종록 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괜히 머리싸매기만 할 뿐, 내게 돈이 될만한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재테크 관련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 같은 것을 읽으면 좀 다를까요? 저는 그런 것들을 가급적 읽지 않습니다만, 그런 책을 읽고 천종록을 얻었다는 얘기를 아직은 듣지 못했습니다. 고사를 보아도 그런 책에서 천종록이 나올 것 같지는 않기도 하구요. 『희망의 인문학』의 리뷰가 당선이 되서 꽤 많은 득을 얻었지만, 그것이 제게 진정한 천종록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이 가르쳐 준 것은, 책, 나아가 인문학을 통해 어떻게하면 천종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그 왕도를 얼핏 엿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이 참 정리가 안 됩니다만, 오늘은 이렇게 정리가 안 되는 대로 그냥 주저릴까합니다. 앞으로 저나 여러분이나 책 읽기는 계속하시겠지요? 천 만 금, 억 만 금을 벌기 위해 기를 쓰고 책을 읽으시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무턱대고 읽는 저같은 사람은 간혹 이거 뭔 한가한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그러나 "書中自有千鐘祿(서중자유천종록)"을 생각하면서, 그 천종록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감내하면서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과연 천종록은 무엇일까요? 입신양명도 아니고 일확천금도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아직 진정 잘 모르지만, 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세상에 그나마 쓸만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책이 제게 주는 천종록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올해의 책 중에 가장 값진 것으로『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꼽는데요, 이것은 그 책을 통해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참으로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깨달았기 때문이고, 그러면서도 아무 것도 그런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내가 변화할 때 이 책은 내게 천종록을 준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의 독서가 천종록을 움켜 쥘 듯 하면서도 놓쳐버린 것만 같습니다. 내년에는 좀 달라질 수 있어야겠죠? 여러분들도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미 그렇게 되셨다면, 만종록(萬鐘祿), 억종록(億鐘祿)에 도전해 보시구요. 모두들 편한 밤 되십시오. 멜기세덱이었습니다.

* 이 말의 출처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속담이라고 하기도 하고, 다양한 고사들에서 인용되고 있는 것도 같고,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아마도 중국 北宋(북송) 제3대 황제(997-1022)였던 眞宗(진종)의 권학문이지 싶더군요. 「眞宗皇帝勸學文(진종황제권학문)」의 "書中自有千鍾粟 (서중자유천종속)"의 변형이 아닐까 싶네요. 말이 나온 김에 이 「권학문」을 한 번 감상해 보시지요. 느끼는 바가 참 많습니다.

   
 

富家不用買良田(부가불용매량전)
                                  집을 부유하게하려고 좋은 밭을 사는 것은 소용없다.
書中自有千鍾粟(서중자유천종속)
                                  글 가운데 자연히 천종의 곡식이 있도다.
安居不用架高堂(안거불용가고당)
                                  삶을 편하게 하려고 큰 집을 짓지마라.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
                                  글 가운데 자연히 황금옥이 있다.
出門莫恨無人隨(출문막한무인수)
                                  문을 나설 때 따르는 사람 없다고 한하지 마라.
書中車馬多如簇(서중거마다여족)
                                  글 가운데 수레와 말이 떼지어 있도다.
娶妻莫恨無良媒(취처막한무량매)
                                  장가를 들려는데 좋은 중매 없다고 한하지 마라.
書中有女顔如玉(서중유녀안여옥)
                                  글 가운데 얼굴이 옥같은 여자가 있도다.
男兒欲遂平生志(남아욕수평생지)
                                  사나이가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六經勤向窓前讀(육경근향창전독)
                                  육경을 부지런히 창 앞에 두고 읽어라.

-「眞宗皇帝勸學文(진종황제권학문)」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7-12-2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많이 음미하고 갑니다.
'책을 읽고 변화할 때 천종록을 준 것이 아닐까'에 공감...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나의 삶에 실천해야겠다는 다짐과 같이!

마노아 2007-12-2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사고에서 깊은 깨우침을 새기는 멜기세덱님이 근사합니다. 많이 공감하며 고개 끄덕여보아요.

2007-12-23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