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샬럿 브론테가 나한테 맞는다고, 나에게 맞는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두컴컴한 실내와 폭풍이 몰아치는 저녁과 끝없는 황무지를 사랑하고, 미친 듯한 집착과 멈추지 않는 광기와 그리고 간절한 애원에도 뒤돌아서는 그런 단호함을 사랑한다. 샬럿보다 더 어두운 영혼 에밀리 브론테의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도 사랑한다. 물론 제인 오스틴의 반짝반짝함과 허위를 꼬집는 재치도 사랑하지만.   

 


<벨기에 에세이>를 읽는다. 일기를 쓰지 못하는(않는) 게으른 나는 부러워하며읽는다. 일기, 편지, 에세이 모음집을 읽는다. 앤 브론테의 목소리를, 에밀리 브론테의 목소리를 듣는다.


 

12시가 넘었다. 앤과 나(에밀리)는 말끔하게 챙겨 입지도 않았고, 침대 정리도 안 했고, 공부도 안 했지만 나가서 놀고 싶다. 우리는 저녁으로 삶은 쇠고기와 순무, 감자, 사과 푸딩을 먹기로 했다. 부엌은 잔뜩 어질러져 있다. 앤과 나는 나장조 피아노곡 연습을 끝내지 못했다. 태비(브론테가에 헌신했던 하인)는 내가 그녀 앞에 펜을 내려놓자마자 말했다. "거서 빈둥거리지 말구 감자나 좀 까?" 나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당장 하겠습니다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바로 일어나서 칼을 집어 들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감자 껍질은 다 벗겼다). (1834 11 24일 월요일)  

 


이 얇은 책에 선택된 일기 일부 중에 감자 껍질 벗기는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감자와 감자 껍질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 에밀리, 샬럿이 감자 껍질 벗기는 에피소드.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1 <집 안의 천사 죽이기>에서 울프는 이렇게 쓴다.

 



















소설은 희곡이나 시보다 훨씬 쉽게 들었다 놓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작품을 쓰다 말고 아버지를 간호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감자 싹을 도려냈다. 여성은 공용의 거실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만큼, 인물을 관찰하고 성격을 분석하는 데 눈이 뜨였다. 그녀가 받은 훈련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집 안의 천사 죽이기>, 54)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은 여성의 삶을 얼마나 옥죄었던지.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도 피해 갈 수 없는 효도의 의무와 식사 준비. 간호와 감자 껍질 벗기기. 자신이 먹을 것은 자신이 준비하는 게 윤리적이다. 그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윤리가, 그 예의가, 그 책무가, 그 의무가 여성에게만 부여된다는 데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The Bronte Sisters>의 중고 등록 알림이 왔다.  ‘중고 등록 알림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무척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네 권에 3만원이라니 이건 뭐, 바로 구매 각이다. <Villette> 원서로 가지고 있고, <Wuthering Heights>은 물론이요, <Jane Eyre>는 원서만 두 권이고, 이북도 다 있지만, 어머 이건 사야 해! 이렇게 촐랑대다가 다른 책이랑 같이 구입한다고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그만 판매종료되고 말았다. 이 책만 바로 결제했어야 했는데. 이 귀한 책 구매하신 이웃님!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매우 축하드립니다. 제가 많이 부러워하고 있어요.

 
















슬픔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을 때, 갑자기 내가 엄청 두꺼운 브론테 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억이 밀려온다. 그래? 나한테 브론테 책이 있어? 사진첩에 들어가 검색에 ‘bronte’라고 쓴다. ! 맞아! 내가 이 책을 샀네. 친절하기도 하셔라, 2022 1 12일이구나. 근데 이 책 어디 있지? 어디 갔니,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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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8-27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아쉽습니다. 이웃님이 아닐지도요… ^^

단발머리 2023-08-27 20:11   좋아요 1 | URL
일단 수하님 아니시고요 ㅋㅋㅋㅋ 한 분 패쑤!!! 🤪

건수하 2023-08-27 20:20   좋아요 1 | URL
그럼요! 저는 원서는…. 😵‍💫

단발머리 2023-08-27 20:21   좋아요 1 | URL
🤣🤣🤣전 일단 구입만 ㅋㅋㅋㅋ

독서괭 2023-08-27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사진이 멋져요! 왼쪽 그림은 무슨 그림인가요?
저도 아뉩니다 ㅋㅋ
감자껍질 벗기기 ㅠㅠ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에도 창작에 끊임없이 방해당하는 얘기들 나오던데요 ㅠㅠ

단발머리 2023-08-27 20:29   좋아요 1 | URL
왼쪽 그림은 친구가 큰 사이즈 작은 사이즈 선물해 준.... 제가 앞으로 꾸미고 싶은 어떤 방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저도 가지고 있는데 엄청난 방해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데 방해하는 아가들....

잠자냥 2023-08-27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제가 좀 빨랐군요?!

단발머리 2023-08-27 20:29   좋아요 0 | URL
헐? 진짜요? 진짜에요????????????????

잠자냥 2023-08-27 20:3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이 아시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장난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8-27 20:40   좋아요 1 | URL
아아아앙아ㅏ아아앙 저 사진 좀 올려주세여~ 댓글 달려고 대기 중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수하님 패쑤 독서괭님 패쑤 잠자냥님 패쑤 ㅋㅋㅋㅋㅋ 당신은 누구십니까…..

다락방 2023-08-28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도 너무 멋있고 글도 너무 좋습니다. 저는 단발머리 님이 브론테 자매를 좋아하고 그걸 확신하며 말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도 너무 좋아요.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혹은 그 일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거기에는 나만의 고유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저느 이 글 읽으면서 단발머리 님이 생각하신 것처럼 ‘나에게 맞는‘ 작가가 누구인가 생각했는데 현재는 ‘줌파 라히리‘만 생각납니다. 크 -

단발머리 2023-08-30 20:48   좋아요 0 | URL
저는 브론테를 좋아합니다. 폐쇄된 공간, 환경 속에서 가족 밖에 없었고 더 이상 만날 사람이 많지 않았던 넉넉치 않은 생활의 브론테 자매, 남매들이 이룩해낸 업적을 존경합니다. 그 꼿꼿함을, 대담함을, 끈질김을 저는 사랑합니다.

다락방님께는 진짜 ‘줌파 라히리‘가 딱이네요. 그리고 이승우. 그리고 리 차일드.......
 



















지난주에는 정말 오랜만에 독서 모임 언니들을 만나기로 했다. 갈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서둘러 보내고, 빨래를 돌리고, 동작을 건너 뛰어가며 45분짜리 요가를 20분 만에 끝내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꺼내고 일부를 건조기에 넣고, 그리고 청소기를 한 바퀴 돌린 후, 샤워를 하면 나갈 수 있겠다 싶었다. 건조기에 들어갈 옷과 옷걸이에 걸어야 할 옷을 분리하면서, 나는 이 일을 모두 끝내야 언니들을 만나러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르자, 얼른. 서둘러! 이 일을 다 끝내야 놀러 갈 수 있어. 팥쥐 엄마 없는데도 나는 콩쥐인가. 신데렐라도 아니면서 이 모든 일을 끝내야만 나가 놀 수 있다니.

 


 




오늘 퇴근하고 나서는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고 엄마표 가지전을 씹으며 세탁기에 빨래를 넣었다. 아침에 깎아 둔 복숭아를 먹고 나서 바로 청소기를 꺼냈다. 청소기를 한 바퀴 돌리고 나면 빨래가 다 되었을 테고,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넣고, 샤워를 하고 나면, 나는 다시 놀러 나갈 수 있을까.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을 읽고 있다. <감시와 처벌>로 가는 길이 이토록 머나먼 길인지 몰랐도다. 푸코에게 가는 길에 품이 이렇게 많이 들 줄 몰랐도다. 이틀 동안 읽고 이 문단을 주웠다.

 


푸코는 지식을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연속적 실체로 보지 않는다. 다음으로 푸코는 지식을 이성적 사유 행위의 결과로 보면서 그 지식에 보편적 진리의 자격을 선험적으로 부여하는 계몽주의적 논리를 거부한다. 푸코에게 지식은 이성적 사유의 힘에 추동된 것도, 보편적 진리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시대에 따라 뚜렷한 차이와 단절을 보이는 불연속적인 것이며, 순수한 이성적 사유가 아니라 당대의 다양한 물질적, 비물질적 조건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식은 결코 시대를 뛰어넘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119-120)

 



지식은 결코 시대를 뛰어넘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는 푸코의 지식에 대한 관념은 페미니즘에 닿을 수밖에 없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 여성은 천성적으로 모성에 적합하다는 통념, 여성은 성적으로 소극적이라는 믿음, 이러한 지식과 지식들은 그러한 지식이 만들어진 시대 상황 속에서진리로 작동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페미니즘은 아니야, 여성도 남성만큼 이성적이야라고 응대하지 않는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야?’라고 묻는다. 그 지식이 만들어진 시대를 묻고, 그 지식이 사회와 문화, 종교와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것임을 논증한다.

 

 



부지런히 읽어도 끝나지 않는 머나먼 길. 내게는 자갈치가 있으니. 푸코 헤어스타일을 참고해 일부러 고른 것은 아니었음을. 굳이 밝혀 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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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8-25 0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푸코헤어스타일과 자갈치 ㅋㅋㅋㅋㅋㅋ 빵 터집니다 ㅋㅋㅋㅋㅋ
아휴. 그 많은 일 해치우고 잘 놀러 나가셨겠죠? 신데렐라가 따로 없네요. 토닥토닥.

단발머리 2023-08-26 19:39   좋아요 1 | URL
자갈치가 2+1이라 사왔더니 아직도 남아있네요. 즐겁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많은 일을 해치우고 저는 매우 즐겁게 놀다 왔습니다. 간만에 힐링 타임을 가졌지만 중간중간 갖게 되는 ‘열변의‘ 페미니즘 모먼트 ㅠㅠㅠ 그에 더해 한결같은 맘으로 직장맘들 존경합니다!!
맛있는 거 먹고 쉬는 일,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 놓치지 마세요. 저도 그럴게요!!!

다락방 2023-08-25 1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코 멋있어 보여요! 그건 아마도 뒤의 책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 가득가득한 책장안에 폭 들어가 있는 푸코!!
역시 제 책구매는 아직 멀었다느 생각을 합니다.

저는 너무 어려워서 읽기를 다시 시도하지 않는 푸코이지만, 단발머리 님 화이팅 입니다!! 단발머리 님은 Hal Su It Da!!

단발머리 2023-08-26 19:41   좋아요 1 | URL
물론입니다. 뒤메질과 푸코는 책정리에 극과 극을 보여주지만, 중요한 건 우리의 책구매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책을 주문(?)하였으며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어려워도 성의 역사 완독하신 분이여서 제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화이팅은 감사해요. 화이팅 없으면 못 읽어요 ㅠㅠㅠ 히잉
 






 














방학 내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씨름하고 있던 큰아이는 책을 사 준다면 열심히 읽겠다 큰소리를 쳤다. 최근에 쟝님이 추천해 준 <기억의 뇌과학>을 살짝 권했지만 자기는 이 책이 더 좋겠다 해서 그래라 그럼, 하면서 큰아이가 고른 <천 개의 뇌>을 구입해 주었다.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었는지, 아롱이는 느닷없이 <현대사상입문>을 읽고 싶다고 했나 보다. 큰아이가 그 책은 집에 있어, 엄마 책, 이라고 말해서 아롱이는 책(구입)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큰아이는 1학기 때 기숙사에 있어서 집에는 주말에만 왔고, 나는 저 책을 주로 회사에서 읽었는데, 쟤는 언제 내가 저 책을 읽었던 걸 봤을까. 집에 오자마자 책을 찾던 큰아이는 <현대사상입문>을 아롱이에게 건넨다. 책을 손에 든 아롱이의 눈빛이 묘하다. 나란히 서서 책을 펼치며 큰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진짜 베스트셀러 많이 읽어. 교보에 엄마가 읽던 책 많더라고.

 


아이야, 엄마가 베스트셀러만 읽는 건 아니란다. 그러니까 엄마는 이 책을 샀는데 말이지.

 


















지지난 주부터 <감시와 처벌>을 읽고 있다. 나는 '이해란 핵심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줄여 말할 때의 위험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핵심의 도출, 요지의 산출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이 책의 요지는 이 문단이다.

 


, 권력은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지배계급이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이며, 피지배자의 입장을 표명하고 때로는 연장시켜 주기도 하는 효과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권력은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다만 단순하게 의무나 금지로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그들을 포위공격하고, 그들을 거쳐 가고, 그들을 가로질러 간다. 권력은 그들을 거점으로 삼는데, 이것은 마치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거점으로 삼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이 권력의 이러한 관계들은 사회의 심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지, 국가와 시민들 사이에 혹은 국가와 계급들의 경계 사이에 있는 관계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66-7)

 


이 문단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권력이 지배 계급의 특권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라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권력이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을 포위 공격하고, 거쳐 가고, 가로질러 간다, 는 말이 좀 어려웠다. , 권력이 지배 계급의 으로서만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입장을 표명하고 연장하는 효과로 작동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싶었다. 마침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마주하고 있어서, 이 문단이 이해가 잘 안된다, 이 책은 어렵다, 이런 평범하고 무난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 번역 문제도 있고. 그런 경우 원서로 읽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불어로? (나 불어 읽을 수 있는 사람이야? @@) 아니, 왜 불어로 읽어, 영어로 읽어야지. 그렇지? 영어로 읽어야겠지? 그래서, 나는 빛의 속도로 <Discipline and Punish : The Birth of the Prison>을 주문했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저 부분을 펼쳐서 읽어보았다.




 













 





천천히 읽었다. 이건 내 숙제가 아니고 과제도 아니고. 나는 급하지 않으니까. 혹시, 혹시나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러나, 한글 번역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직역이어서 어디 하나 고칠 곳이 없었고, 그 문장을 그대로 이해하면 충분한 것이었으며, 그게 바로 한글 번역본이었으니. 다시 찾아온 절망.

 



 












에 굴하지 않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딱 한 권 남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읽기>를 구매했다. 나는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었고, 후퇴할 생각도 없었으니. 그러나, 빠밤!

 


권력은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지배계급이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이며, 피지배자의 입장을 표명하고 때로는 연장시켜 주기도 하는 효과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권력은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다만 단순하게 의무나 금지로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그들을 포위 공격하고, 그들을 거쳐 가고, 그들을 가로질러 간다. 권력은 그들을 거점으로 삼는데, 이것은 마치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거점으로 삼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권력의 이러한 관계들은 사회의 심층 속에 깊숙이 내려가 있는 것이다. (25-6)

 

 

25-6쪽은 <감시와 처벌>에서 내가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문단의 해설인데, 저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똑같다!!’ . 어쩌란 말인가. 절망했으되 포기를 모르는 나는, 다시 돌아간다. <현대사상입문>이다. 읽었지만 또 읽는다.  <3. 푸코 : 사회의 탈구축>  

 




김치냉장고 위에 푸코 올려놓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많지는 않을 거라 짐작한다. 김치 냉장고(식민 시대의 잔존을 청산하지 못한 비극적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의 필수품) 위에(‘내 책상을 가지고 있지만 열대기후 시대 에어컨 문제로 아이들에게 단기 대여해서 현재 책상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여기) 푸코(나의 숙제이며 또한 과제) 올려놓고 사진 찍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이며 서울 시민이고, 여성이며 기독교인이고, 주부이며 이제 노동자이기도 한 나의 푸코 읽기. 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나는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얘들아. <현대사상입문>을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베스트셀러만 읽는 건 아니란다. 그러니까, 그건 아니야. 그게 아니긴 한데, 완전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니긴 아니란다. 아니야,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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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8-22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난 어떤 분도 이 책 읽고 계시더라구요. 우와, 푸코 영어로 읽어, 멋지다.

단발머리 2023-08-22 17:39   좋아요 0 | URL
끝까지 다 읽겠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진짜에요. 확실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8-22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네 베스트셀러는 기준이 달라요. 너무 너무 훌륭해요. 누가 현대사상입문을 베스트셀러라고 할까요? 그걸 베스트셀러로 취급할 수 있는 단발머리님댁은 우리나라 교양수준을 확 끌어올릴거예요. 모두가 본받아야 해요. ^^
이 글 읽으니 평소 심도있는 단발머리님 글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겠습니다. 공부는 이렇게 해야지요. 책 읽다가 모르는 문장 나오면 어쩌라구 하면서 오늘의 저를 또 반성하게 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3-08-22 17:43   좋아요 0 | URL
<현대사상입문>이 베스트셀러는 아니겠지만서도 저희집이 그런 중차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믿어주셔서 제가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친구들과 푸코 읽기를 하고 있거든요. 저는 딱 두 권‘만‘ 읽으려고 계획 중입니다. <감시와 처벌>이랑 <광기의 역사>인데요. 처음부터 삐그덕거리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바람돌이님!!

건수하 2023-08-22 18:34   좋아요 1 | URL
제가 아래 단 댓글도 이런 뜻이었어요. 단발머리님 댁은 왜 출판계가 어려운지 모를 것이다… ^^

단발머리 2023-08-22 18:44   좋아요 0 | URL
알게 되어야 합니다. 단발머리네집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22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가 조금 더 직관적인 것 같기는 한데.... (먼 산).
<감시와 처벌> 읽기를 보루로 장만해뒀지만...


얘들아, 교보문고에 베스트셀러만 있는 건 아니야. 거긴 책이 엄청 많잖니. 그게 다 베스트셀러면 출판계가 왜 어렵겠..
(왜 출판계가 어려운지 이해가 안 되지?)

단발머리 2023-08-22 17:46   좋아요 1 | URL
영어 원서를 중심으로 읽어볼게요, 라고 댓글을 달고 싶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읽는데까지 읽어보겠습니다.

큰아이 말로는 베스트셀러 코너가 아니라 가운데 넓은 통로에 놓여 있다고 해요. 교보문고에서 밀고 있는 힙한 책들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 있는 책들 다 베스트셀러였음 좋긴 하겠어요. 더 많이 팔려야 좋은 작가들 많이 나오고.... 선순환...

2023-08-22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3-08-22 17:50   좋아요 1 | URL
세상에.... 여러분!! 제게는 <감시와 처벌> 불어판을 확인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비댓으로 하시면 어떡해요? 그럼 저만 공부되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씀하신 부분은 아마도 ‘피지배자의 위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배자가 고정시킨(?)) 그 위치를 다시 만들어낸다’ 정도의 의미인 듯합니다. 그러니까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피지배자의 포지션을 정해버리고 그걸 재생산-유지한다는 뜻 아닐까요?

귀한 댓글에 저의 이해도가 55% 상승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매우매우 심히 감사드립니다!!


다락방 2023-08-22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상황에서 책 없이 집으로 돌아오다니. 저였으면 그러면 다른 책을 다시 골랐을 것 같은데요. 기어코 득템하리라! 하는 마음으로다가 ㅋㅋㅋㅋㅋ 역시 제 욕심은 …

단발머리 2023-08-22 17:51   좋아요 1 | URL
책에 욕심 없는 1인은 이미 가슴팍에 뉴진스를 품고 있어서요. 하니로도 충분했던 거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집에 돌아와서 책을 펴고는 ‘흠....‘ 이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책은 펼치지 않았다는 소식입니다.

잠자냥 2023-08-22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김치냉장고 위에는 푸코가 있군요? 즤집 김치냉장고 위에는 2호가 있습니다.
아침 출근할 때 거기 있던데 지금도 있을 듯 ㅋㅋㅋㅋ

얘들아, 근데 베스트셀러조차 안 읽는 엄마들도 많단다;;;;

단발머리 2023-08-22 17:53   좋아요 2 | URL
아.... 김치냉장고 위의 2호라면, 푸코의 불어판이 오더라도 당장 자리 비켜줘야지요. 잠자냥님 댁은 좌석 지정제로 운영되나요?
아니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집사님들을 기다리는 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

베스트셀러라도 읽는 엄마들이 더 많아져야겠다 생각하다가.... 책 제일 많이 사는 연령층이 3,40대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출판계의 큰손들 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22 19:54   좋아요 3 | URL
그것은 애들책 문제집 때문에 그렇다고 하던데요… ㅠㅠ

책읽는나무 2023-08-22 20:44   좋아요 2 | URL
수하 님..ㅋㅋㅋㅋ
근데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30대 때는 애들 그림책,동화책
40대 초반까지는 애들 문제집...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ㅋㅋㅋ

단발머리 2023-08-22 21:14   좋아요 2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ㅋㅋㅋㅋㅋ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 건 사실인 거 같아요. 문학 인문학 쪽도 그럴 거구요. 남자들이 자기계발서를 더 읽는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많이 읽는다고 알고 있어요.
기사 검색하다가 못 찾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중...... ㅠㅠㅠ

거리의화가 2023-08-22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 책이 베스트셀러인가?싶긴 합니다만(알라딘에서는 사회과학 23위군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저 입문이라는 글자에 궁금해서 사보시는 분들도 많을 거란 생각이...)!
지금까지 단발머리님께서 올려주시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이 논리적 사유와 성찰이 필요한 것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늘만 해도 <감시와 처벌> 저 책은 푸코의 대표작인데 책에서 이해 안가는 부분을 체크하고 원서를 뒤져 확인하고 생각하고 다시 다른 책을 뒤지는 과정들은 열의와 정성이 필요한 과정이지요. 공부가 그리 단순하다면 어찌 공부가 되겠습니까^^; 아무튼 단발머리님의 책 읽기는 늘 본받을 점이 많아요. 계속 응원합니다!ㅎㅎ

단발머리 2023-08-22 18:18   좋아요 1 | URL
저 책을 베스트셀러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해요. 근데 저희집 아이들은 엄마가 ㅋㅋㅋㅋㅋ 쉽고 가벼운 이를 테면 ‘베스트셀러‘를 읽는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제가 막 ˝아니야!!!!˝ 이렇게 외칠 수는 없고ㅋㅋㅋㅋㅋㅋ 저는 그럴 때, 그래 가벼운(?) 베스트셀러야, 편하게 읽어, 이렇게 말하기는 합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하던 사람이 아니고 또 공부를 잘했던 사람도 아닌지라 ‘헤매이고 헤매이는‘ 시간이 많습니다. 목표가 없으니 더 그렇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설프고 부족한 저의 공부법을 응원해주시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막 뭉클합니다.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님!

건수하 2023-08-22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감옥의 대안>이 2월에 나왔는데 이게 더 쉽다고, <감시와 처벌>이 너무 어려우면 일단 이거부터 읽으라고 하는 글을 방금 보았습니다 (...)

단발머리 2023-08-22 18:28   좋아요 1 | URL
가격이 착하네요. 구입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앗! 도서관에 있네요. 일단 도서관 책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불끈!) 너무 감사해요, 수하님 짱!!

건수하 2023-08-22 18:43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핵심 문장을 파악하셨다는 것은 거의 읽으셨다는 뜻이군요… 그러면 저 책은 꼭 안 보셔도 될 것 같은데 ^^;;

단발머리 2023-08-22 18:45   좋아요 1 | URL
아니요, 수하님 ㅠㅠㅠ 저 이제 막 30% 지점 통과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문장이 핵심 문장인 거 같다고 현재에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을 확률이 ㅋㅋㅋㅋㅋㅋㅋ
매우 높을 수도 있겠습니다!!

달자 2023-08-22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녀분들께세 단발머리님의 독서 취향을 너무 모르시는 건 아닐런지~~ 베스트셀러‘만‘이라니 ㅎㅎ 깊은 독서를 하시는 단발머리님의 독서 습관 본받고 싶습니다!

단발머리 2023-08-22 18:29   좋아요 1 | URL
자녀들은ㅋㅋㅋㅋㅋㅋ 저의 독서 취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알라딘에 리뷰를 올리지 않는(못하는)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요.
좋은 말씀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뽜야!!

은오 2023-08-22 1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서 사서 비교하고 번역엔 문제 없구나 하는 단발님 멋있어서 기절.. 얘들아 아니 자녀분들, 단발님을 제게 주십시오.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8-22 19:46   좋아요 0 | URL
우리집 애들은 그러게ㅋㅋㅋㅋㅋ 왜 그럴까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8-22 1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공부 잘하시는 분. 해당 문장에 별표. 형광펜. 밑줄. 가로 인덱스. 세로 인덱스. 모든 페이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글씨들이 적혀있다는 것을 소신 알리오며. 저는 이런 문장들을 적어두었습니다.

푸코의 권력관으로 현실 세계를 이해하려면........ (사실 윗 문단의 번복인데요) ‘특권‘을 찾기 보다는 ‘관계망‘을 찾아내야 함. (저는 이 관점을 페미니즘 공부하고 정희진 책을 읽으며 직관적으로 이해했고요, 그건 참 인간을 낯설게 하고 무섭게 하더라고요. 그때 일기를 많이 썼습니다.. 모든 관계가 힘(권력)으로 보이거든요. 특히 부모-자식 관계와 사랑이말이지요.)
권력은 단순하게 의무나 금지로서 집행되는 것이 아니다 -> 친밀함, 설득, 협박, 좋아요, 영향력을 미치는 식으로 행사!

마지막으로 이런 문장을 적어뒀습니다. *권력을 ‘내면화‘하면 질서를 재생산하는 사람이 된다. 권력은 일면적인 것이 아님.* 이건 아마 제가 등록한 푸코 수업에서 선생님이 말씀 하신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정말로 중요한 건 제 생각에는 뒷 페이지인데요.
<68p. 요컨대 ~ 69p.것이다.> 까지요. 저는 그 문단 읽다가 울컥했어요,
권력에대해 이해하기 위해 푸코가 포기해야한다고 말한 관념들을 적어보겠습니다. <폭력과 이념 대립, 소유권의 은유, 계약의 모델, 정복의 모델, 이해관계가 있는 것과 이해관계가 초월한 것과의 대립, 인식의 모델, 주체의 우월성.> 그러니까 이런 (근대적)사고방식을 우리가 포기할 수 있을까요? 포기해보자를 염두에 두고 읽어가긴 합니다.

이렇게 적으니까 불친절하네요.
같이 읽자고 한 사람이니까 친절하게 조금 더 해설된 책 텍스트 쳐서 가지고 올게요. 출처는 <처음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미셸 푸코> 부분입니다. 이 책 재밌어요. 저는 모든 각종 해제들을 통틀어서 이 해제(?)가 가장 이해하기 수월했습니다.

264
푸코는 기존의 권력관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모두 권력을 하나의 실체, 하나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비판합니다.
우선 권력이 실체가 아니라 함은, 기존의 국가 혹은 정당 단위의 거시적 정치만이 진짜 정치라고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비판입니다. 거시적 실체적 권력관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의 전복 및 혁명 혹은 대통령 바꾸기와 같은 거시적 차원의 정치고, 개인의 정체성 투쟁, 가령 동성애, 장애인, 외국인, 여성주의 담론 등은 그에 종속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푸코는 권력을 *근본적이자 미시적인 사소한 일상적인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러한 거시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관점은 하나의 오류라고 봅니다.
이에 관련된 또 하나의 오해는 이러한 푸코의 관점이 미시적인 작은 권력들에만 사로잡혀서 정작 중요한 권력의 거시적 차원을 방기한다 혹은 그러한 차원에 무력하다는 비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푸코의 미시 권력관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푸코의 미시 권력관은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이 탄생한다고 주장하며, 거시적인 것은 이러한 무한하게 작은 미시적 권력들의 효과로서 드러나는 권력 현상의 *가장 가시적인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중략) 거시정치를 바꾸려고 하는 동기나 이유 자체도 결국은 일상의 미시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관심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푸코가 권력-지식론을 통해서 수행하고자 하는 바는 정확히 *권력에 대한 이러한 경제주의적 관점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어딘가.. 익숙하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우리의 페미온냐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저는.. 이러한 권력관이....(어쩌면 낙관이며 비관인데요) 탄핵촛불 이후 한국 사회가 검토했어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엄기호 선생님의 <리셋>에 나왔더라고요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23-08-22 20:12   좋아요 1 | URL
˝푸코의 권력관으로 현실 세계를 이해하려면........ (사실 윗 문단의 번복인데요) ‘특권‘을 찾기 보다는 ‘관계망‘을 찾아내야 함. (저는 이 관점을 페미니즘 공부하고 정희진 책을 읽으며 직관적으로 이해했고요, 그건 참 인간을 낯설게 하고 무섭게 하더라고요. 그때 일기를 많이 썼습니다.. 모든 관계가 힘(권력)으로 보이거든요. 특히 부모-자식 관계와 사랑이말이지요.)
권력은 단순하게 의무나 금지로서 집행되는 것이 아니다 -> 친밀함, 설득, 협박, 좋아요, 영향력을 미치는 식으로 행사!˝

위의 문단을 읽으니까 조금 이해가 되네요. 제가 다시 풀어볼께요.

권력은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지배계급이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이며, 피지배자의 입장을 표명하고 때로는 연장시켜 주기도 하는 효과라는 것이다. (66쪽)

; 권력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고, 오히려 overall effects이다. 권력은 지배계급의 ‘소유물‘ 또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전략적 입장이 만들어내는 ‘효과‘로 기능한다. (여기가 제가 어렵다는 부분.... ) 이러한 권력은 피지배계급의 입장을 표명하는 데에도 기능한다.

의문 ... 그렇다면 이런 구조, 이런 사회, 이런 문화의 총체로서의 권력이 작동하는데 피지배계급이 ‘동조‘ 내지는 ‘협조‘한다는 뜻인가. 권력은 일면적인 것이 아니라 하셨으니까요. 그런 권력의 작동을 원하는 주체에 지배계급 뿐만 아니라 피지배계급도 포함된다는 뜻인가. 아....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윤석열이 우리나라의 최고권력으로 자리하는데에 기득권층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요구가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권력을 원했고, 그래서 그런 권력을 얻었다?!?!!!!!!!!!!!!

공쟝쟝 2023-08-22 21:02   좋아요 2 | URL
다시 정리하면 권력은 소유(쥐고 휘두르는 것)가 아니라 관계망이다. 어어....(최근에 푸코와 철학자들 이라는 책에서 마지막 심세광 선생님의 자기배려부분에서 읽어서 기억하고 있는데요.. 제가 이해한 바를 이야기처럼 풀면).. 권력이라는 그물이 촤라락~ 이렇게 펼쳐져 있으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 망에 쌓여있어요. 일케일케 내가 옆에있는 사람이랑 같이 땡기고 욜케절케 움직여볼수 있다는... 뭐. 저항의 지점들은 언제나 있다는 이야기는 대충 그런 이야기고. 이 그물은 줄이 하나잖아요? 거미줄도 줄이하나이듯 ㅋㅋㅋ 부분들은 한 줄의 실로 엮여있는 거죠. ....... 하... 시각화 시키는거 싫은데.......(ㅋㅋㅋ) 시각화 시켜서 이해하면 좀 더 이해하기쉽죠 ㅋㅋㅋㅋㅋㅋ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으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좋아하는 희진샘의 표현은 이거예여. 권력을 다루는 것은 날선 장도의 꿀을 핥는 것과 같다. 달지만 조심해라. 혀 날라간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 쓰기 3권>은 그런 푸코의 권력관을 샘 방식으로 소화해서 아름답게 써주셨더라고요. 그런데 푸코의 권력관을 이해하기 위해 또 이해해봐야하는 건 푸코의 몸에 대한 관점과 푸코의 인간에 대한 관점인거 같아요 ㅋㅋㅋ 끙... 공부는 끝이없고.... 긁적긁적...

단발머리 2023-08-22 21:18   좋아요 1 | URL
음음.... 읽으면서 쟝님 댓글 들여다보면서 찬찬히 살펴볼게요. 소유가 아니라 관계망이다. 근데 누구는 쥐고 흔들고 휘두르는 거 같던데요 ㅎㅎㅎ

공부는 끝이 없고 몸을 피곤케 한다고.... 제가 전에 그랬죠? 맞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8-22 1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워 <현대사상입문>이 베스트셀러예요? 깜놀~ 했는데 위에 댓글 보니 베스트셀러까진 아닌가 보네요 ㅎㅎ 아니 무려 <감시와 처벌> 읽는 엄마에게 베스트셀러만 읽는다고 하다니.. 아직 세상을 모르는군여 ㅋㅋㅋ
단발님의 이해하려고 파고드는 노력! 완전 멋집니다. 푸코는 제게 아직 너무 먼 당신이지만 저도 언젠가…..

단발머리 2023-08-22 20:21   좋아요 2 | URL
베스트셀러는 아닌데 좀 힙한 느낌이더라구요.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더라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는 <감시와 처벌> 이외에도 다른 가벼운(?) 책들도 많이 읽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런 저의 현재를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너무 먼 당신입니다. 멀어요, 멀기는 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8-2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는 큰 아이에겐 <현대사상 입문>책도 베스트셀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ㅋㅋㅋ
아이가 말하는 베스트셀러의 기준이 조금 다른 것 같단 생각이 들구요. 결론은 울 엄마 최고!의 눈빛을 쏘았을 것 같군요.ㅋㅋㅋ
우리들의 알라디너 2세들은 엄마의 책장이 보석장이란 걸 깨달아 뭔가 깊은 영감을 얻을 날이 올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단발 님 본받아 울 집 김치 냉장고에도 저렇게 책을 멋지게 올려 놓아볼까..싶네요.
맨날 연체되어 독촉 문자 받고 있는 도서관 책들 뒤죽박죽 쌓아두고 다림질 할 옷들 쌓아두는 용도라 김치 꺼낼 때마다 옮기느라 귀찮아 죽겠는데 음....저렇게 멋있게....음....^^

건수하 2023-08-22 21:10   좋아요 2 | URL
김냉에 다들 다른 것들을 쌓아두시는군요… 전 먹을것 관련된 것들인데 ^^;;

책읽는나무 2023-08-22 21:15   좋아요 2 | URL
김냉 위엔 먹을 거 쌓아두는 게 정답이란 생각이 퍼뜩 듭니다.ㅋㅋㅋ

단발머리 2023-08-22 21:23   좋아요 2 | URL
책나무님 / 에궁 ㅋㅋㅋㅋㅋㅋㅋ 저희 아이들이 울 엄마 최고! 라고 생각했다기 보다는요. 엄마가 읽으니 나도 읽는다. 엄마가 읽으니 쉬워보인다. 저희집 애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아주 가끔, 5년에 한 번 정도 집에 책이 많아 좋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각자 자기 책을 읽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책을 김치냉장고 위에 쌓아두는 이유는 말이죠. 어디 한 구석, 의지할 구석이 없기 때문입니다ㅋㅋㅋㅋ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요. 앞에 뒤에 옆에 다들 어딘가에 뭔가가 있습니다. 전 김치냉장고에 쌀 넣어두었는데 밥 할때마다 이리저리 옮기느라 항상 바쁩니다 ㅋㅋㅋㅋㅋ

수하님 / 저 책들 옆칸에 먹을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보이지 않을테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쿠키와 커피, 그리고 기타 과자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3-09-07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저기 북클립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필요해서 여기저기 검색 중이었거든요.^^

단발머리 2023-09-10 12:48   좋아요 1 | URL
ㅋㅋㅋ 필요한 걸 찾으셨다니 기뻐요!!
저도 알라딘 친구 방에서 보고 검색해서 구입했다지요.
 




 












마녀사냥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대개 직업이 없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배후에서 활동하는 다른 행위자들이 준비한 계획을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집집마다 방문해서 마녀 색출자에게 지불할 돈을 수금하거나 마녀로 고발된 사람을 매복 기습하고 처형하는 일을 이들이 한다. (133)

 


실비아 페데리치가 이 부분에서 언급하는 마녀사냥의 장소는 현재의 아프리카이다.

 


마녀사냥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대개 직업이 없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지시를 받는 경우가 많고 마녀를 체포하고 처형하는 일에 동원된다. 당연히 마녀사냥마녀 처형에는 비용이 들고 몰수된 마녀의 재산은 여러 절차를 통해 이들에게 급여로 지급된다.

 


가족의 재산 특히 토지분배와 관련해서 여러 아내와 형제 가운데 질시와 경쟁이 발생하는 일부다처제 가족 구조도 마술 고발을 초래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그리하여 마녀로 고발당한 여자들 중에는 새엄마와 후처들co-wives의 경우가 가장 두드러지게 많았다. 심해지는 토지 부족 현상은 이런 갈등을 더 심화시켰는데, 그 이유는 남편이 자신의 모든 아내를 부양하기가 어렵게 되고, 아내들 사이에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심각한 경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46)

 


분배받을 재산이 있고, 아직은 젊은 여성인 새엄마와 후처들이 마녀로 고발당하는 경우, 이는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재산 분배와 관련된 분쟁이 마녀사냥을 동원했음을 보여준다.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공동체에서 남성은 자신의 경제력에 따라 다수의 여성을 아내로 맞을 수 있다. 남성에게 사회적 자원이 집중되는 환경에서, 남성의 자원을 좀 더 많이 점유하기 위해서는 경쟁 상대인 여성들을 제거할 필요가 생기는데, 마녀사냥은 이런 전쟁에 매우 적합한 양식이다. 이 전쟁 속에서 남성의 첫째 부인이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당히유리할거라 상상할 수 있는데, 이는 첫째 부인의 자녀들이 이미 장성한 경우 마녀사냥에 동원되는 노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부르주아의 아내는 사회적 체면 유지라는 업무를 제공함으로써 가정 내 노동의 업무는 더 적게 수행한다. 제공한 노동과 무관하게 보상받기 때문에, 여성들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더 부유한 남성에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상향혼을 향한 경주는 여성 노동의 무가치성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에 속한 남성과의 결혼으로 여성의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다 해도, 이것이 여성을 그 계급에 속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여성은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1)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 주적>의 크리스틴 델피의 해석을 빌려오면 이해는 더욱 명확해진다. 여성의 노동은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본인이 제공한 노동과 무관하게 보상받는다.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제공받는 부양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선의 혹은 부에 달려있다(50). 오늘 한 여성을 (아내 혹은 애인으로) 선택했던 남성이 내일 다른 여성을 선택할 경우, 새롭게 선택된 여성의 삶의 질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그 계급에 속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여성은 남성 혹은 공동체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그 계급에서 축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녀가 첫째 아내이든 혹은 넷째 아내이든 차이가 없다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여성은 언제든지 사회 최하층으로 몰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여자들이 서로를 마녀로 고발하는 일이.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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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이가 무슨 가수 앨범을 사야 된다고 교보문고에 가자고 했다. (계산대에서 뉴진스로 밝혀짐) 나도 교보문고를 좋아하지. 약속 있는 사람을 빼고 셋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아이들은 앨범을 구경하러 가고, 나는 원서(읽지도 않고 부지런히 사기만 하는 원서) 코너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방송이 나온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저자 최은영 작가님의 팬 사인회가 00 코너 앞쪽에서 있습니다. , 나도 최은영 좋아하는데. 제일 먼저 번호표를 받아 제일 앞에 줄을 서게 된 부러운 사람들의 등을 쳐다보다가 옆에 있는 직원에게 살짝 물었다. 제가 지금 책을 사면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 지금 구매하시면 대기 번호 50번 정도 되실 거에요. 작가님은 언제까지 계시나요? 한 시간 정도요. , 그럼, 지금 책을 사서 줄을 서고, 한 사람당 대략 2분 정도 걸린다고 했을 때! 사람들 다 책을 두 권씩 들고 있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말고도 대략 몇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면서 눈으로는 최은영 작가를 쳐다본다. 열심히.

 


최은영 작가는 연두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퍼프 소매의 귀엽고 단정한 스타일의 원피스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었는데 양말이 흠…. 양말 색깔과 운동화와 원피스가 약간 미스 매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스매치인가 아닌가, 저게 요즘 유행인가. 양말 고르는 안목이 없어서 혹은 다른 옷과의 조화를 파괴하는 감각의 소유자로서 나의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는 데까지 이르고. 나는 계속 서서 최은영 작가를 바라본다. 사람들은 사인을 받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나는 서 있다. 저도 작가님 좋아해요. <쇼코의 미소>에서부터 좋아했…  

 







좋아하는 작가좋아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한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서 존재한다. 작품은 작가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오래간다. 작품은 작가가 도달할 수 있는 역량의 최대한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오래오래 기억되는 고전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다르다. 작가는 보통의 사람보다 더 낫거나 더 근사하지 않다. 다만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잘 표현해 낼 줄 아는 사람일 이다. 우리는 작가를 사랑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만들어낸 문장, 그가 만들어낸 생각, 그가 상상한 세계가 아름답기 때문이고, 혹은 그의 문장, 그의 생각, 그가 상상한 세계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우리의 추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작가가 지어낸 언어로 된 집 안에서, 우리는 한편으론 안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해한다. 우리는 그렇게 작가를 사랑한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이 그의 생각은 변한다. 위대한 사상의 주창자, 위대한 작품의 창작자가 가끔 터무니없이 변해 버리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녀/그는 변한다. 고정된 정체성을 작가에게, 인간인 그녀/그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뜻이다. 가끔 우리는 작가의 일면을 발견한다. 성경처럼 마음에 새겼던 작품의 창작가가 사실은 옹졸한 여성 혐오자라는 걸 발견하는 그런 느낌을, 우리는 모두 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겨울에 <부활>을 읽었는데, 15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감화를 받았다. 네흘류도프의 회개와 결신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나는 평생에 <부활>을 가장 위대한 책으로, 가장 완벽한 책으로, 내 인생의 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소피아 톨스토이의 일기를 읽고 나면, 적어도 이 책을 내 평생의 책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앞으로도 <부활>을 혹은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그를 영원히 미워해야 하는가. 밀어내야 하는가.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게, 열다섯의 내게, 인간 존재의 의미와 헌신, 그리고 정신적인 부활의 숭고함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그만큼이다. 나는 그가 나에게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그리고 그렇게 그와 이별하면 된다.

 


방법은 작가들의 개인적인일화에 관한 책을 읽지 않는 것일 테다. 그런 종류의 책들을 읽은 후에 작가에 대한 호감이 상승하기보다는 호감이 반감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의 어두운혹은 불성실한혹은 비윤리적인일면을 모른다는 것이,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뜻인가. 작가님, 나쁜 행동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해주세요. 내가 모르게 나빠 주세요, 제발.

 


지행합일의 작가라니. 세상에. 만약 그런 작가가 있다면,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기보다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만나자마자 나를 싫어하겠지. 저는 지행합일의 정반대인 표리부동의 화신으로서. 제 말의 반의반도 지키지 못하며. 제 글의 10분의 1만큼도 살아가지 못합니다. 부디 저의 목을 쳐주십시오.

  

 


어떤 사람의 본질을 파악했다는 그 판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최대한 유보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의 일면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단점으로 보이는 그 지점을 다른 사람은 좋아할 수 있고, 내게는 무한히 장점인 그 지점이 다른 사람에게는 참아낼 수 없는어떤 지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만, 유독, 냉정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똑똑하고 성실하고 대단하고 그리고 멋진 면을 가지고 있지만, 자주 옹졸하고 괴팍하고 무례하고 그리고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판단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우리 각자는, 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좋아하는 이유도 싫어하는 이유도 각각이다.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글을 잘 쓰려면 문장 쓰는 기술,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 그리고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글 쓰는 기술은 외모입니다. 롱다리, 브이라인, 에스라인, 빨래판 복근 같은 것이죠. 내용은 사람이 가진 것이에요. 체력, , 재능, 지식입니다. 감정 이입 능력은 성격, 마음씨,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흔히 외모를 부러워하고 돈과 지식을 선망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격과 마음씨와 인생관입니다


글쓰기도 인생과 같습니다.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231)

 

 


나는 이게 그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생각은 단언이 아니고 추측이다. 내가 찾은 그의 측면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쓰기에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마음은, 쉬이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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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12 2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양말이 궁금한데 양말은 보이지 않네요?! ㅎㅎ

저는 작가에 대해서는 더 냉정한 잣대를 적용하는 편인데요. 작가는 죽어도 글은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작가의 기준에 제가 부합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글쓰기를 포기했답니다. ㅎㅎㅎ

단발머리 2023-08-12 23:01   좋아요 2 | URL
제가 진짜 양말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ㅋㅋㅋㅋㅋㅋ 색상이 기억나지 않네요. 사진도 없구요.

작가에 대해 더 냉정한 잣대를 적용하는 분이시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잠자냥님 말씀대로 글이 남을테니까요. 저는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편이라 작가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으며 잘 실망하지 않고.... (물론, 평생 까방권 회원이신데도 자꾸 실망펀치 날리시는 강준만 선생님은 예외)

잠자냥님이 생각하시는 작가의 기준을 쪼금만 낮추시고 오래오래 글쓰기 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바람돌이 2023-08-12 2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냥 서점에 갔는데 작가 사인회를 하고 있는 동네.... 이럴 때 서울 사는 사람이 약간 부럽기는 합니다. 물로 저는 제가 사는 부산을 매우 사랑하긴 합니다. ^^ 만약 저기 사인회를 하고 있는 작가가 최은영 작가가 아니라 황정은 작가였다면 저는 무조건 책을 사서 사인 받을 때까지 죽치고 앉아 있었을듯요. ^^ 우연히 교보에 갔는데 황정은 작가가 사인회를 하고 있다 뭐 이런 상황 너무 근사할 거 같아서 단발머리님 부럽습니다. ^^
잠자냥님에서 시작된 작가에 대한 이야기들 글들이 다 너무 좋네요. 저도 뭔가를 쓰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또 막 드는데 일단 눌러 앉힙니다. 쓸 내용이 생각이 안나서요. ^^

코로나 다 나으셧어요. 휴유증 없이 나으신거죠? 그래도 건강 조심하세요. ^^

단발머리 2023-08-12 23:10   좋아요 2 | URL
제가 저번에 그냥 교보문고에 갔을 때는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가 있었더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그만!!!!!!) 그 때는 사람들이 작가님에게 영어로 질문을 ㅋㅋㅋㅋ 만약 황정은 작가를 보게 되면 그 때는 바람돌이님께 알려 드릴게요. 급한 알라딘 댓글이 달리면 저인줄 아세요!!

눌러 앉히지 마시고 바람돌이님의 생각을 공유해 주세요^^

코로나는 거의 다 나았고요. 저는 행복하고 건강하고 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님, 굿나잇!!

페넬로페 2023-08-12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머리속에는 글이 가득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양말까지는 신경쓰지 못한 건 아닐까요.
교보에서 우연히 최은영 작가 사인회 한다는 걸 봤다면 저는 무조건 책 사서 사인 받았을 거예요.
작가에 대한 평가는 좋아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에 대해 좀 다르게 나올 것도 같아요.
좋아하는 작가에게 좀 더 관대할지도 모르겠어요.
작가에 대한 페이퍼 읽으니 저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3-08-13 08:12   좋아요 1 | URL
네, 페넬로페님 말씀대로 작가의 머리속에는 글이 가득할 거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무심히 신은 양말은 찰떡궁합이었는데 제가 좀 감각이 부족하다 보니 ㅋㅋㅋㅋㅋ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작가를 살피고 ㅋㅋㅋㅋ
페넬로페님의 작가에 대한 평가 이야기 저도 동의합니다.
맞아요. 우리는 좋아하는 작가에게 더 관대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저는 그렇습니다^^

은오 2023-08-13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님! 이 페이퍼 진짜 감탄하면서 읽었어요. 왤케 좋죠? 단발님도 역시 생각과 느낌을 글로 잘 표현해낼 줄 아는 분...
톨스토이가 그런 인간이었군요.. 부활이 부랄이 되는 마법.. 아니 그래도 열다섯살의 단발님께는 부활인 걸로 ㅋㅋㅋ
내가 모르게 나빠 달라는 거 그거 아이돌 팬들이 아 연애해도 되는데 들키지만 말라고 하는 거 같네요 ㅋㅋㅋㅋ 그렇가고 연애가 잘못은 아니지만 알고싶지 않다 ㅋㅋㅋㅋ
전 단발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단발머리 2023-08-13 08:18   좋아요 1 | URL
은오님의 이 반가운 등장 ㅋㅋㅋㅋㅋ 우리 은오님 오래오래 방학해야 하는데... 개학아, 오지 마라...
톨스토이에 대한 실망은 고마웠던 기억으로 덮으려고. 해요. 그래도 그 전에 <안나 카레니나> 읽었던 거는 잘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톨스토이 어마무시합니다. 그 고집과 아집과 고집과 아집 ㅋㅋㅋㅋㅋㅋ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한다가 진짜 정답이죠! 저는 답을 내놓고 좋아하는 편이지만(좋아하는 이유를 끝까지 파헤침), 은오님의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함‘이 진정한 ‘애정‘ 아닐까요?
저도 은오님을 좋아할 판입니다!!! (좋아한다고 하면 도망갈까 살짝 떠보는 중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14 08: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은영 작가의 양말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은 미스 매치가 아니라 부러 한 매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런 원피스를 입은 후에 자 양말은 이걸 신자! 라는 생각으로 신은 그런 양말. 의도한 코디. 저는 최은영 작가가 몰타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는 걸 안 순간부터, 이 작가는 선해 보이지만 그러나 자기만의 고집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물론, 누구나 그렇지만요. 응 나는 이걸 이렇게 할거야, 누가 뭐래든!의 무대뽀 태도가 최은영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고, 양말은, 바로 그런 성격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안보고 추측해본 겁니다. 봤다면 어쩌면 저는 으앗 너무 좋은 조합이다! 할지도 모르지만요. ㅎㅎ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기 싫은 이유가 단발머리 님이 여기에 쓰신 것과 같은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누군가 쓴 에세이를 읽으면 너무 갑자기 그 사람이 보여버리거든요. 물론 제가 보는 면은 그 사람의 일면이지요. 보여주고자 하는 면과 굳이 보지지 않으려는 면이 글로 인해 작가도 모르는 사이 보여지기도 하잖아요? 어쨋든 그것들은 모두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닐텐데, 보여지는 걸로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보이지 않았던 면에 대해 알게됐을 때 아 그런 사람이 아니었네 하면서 돌아서거나 다시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일테고요.

저는, 사람을 미워하는 게 너무 괴로워요. 저는 미움이란 감정이 찾아오면 너무 괴롭습니다. 고통스러워요. 제발 미움이 내게서 물러가기를 바라는데 한 번 시작된 미움은 쉬이 물러가지도 않아요. 그래서 미움이 찾아오길 원하지 않고 미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로 하여금 미움이란 감정을 들게 한 사람을 그래서 더 미워하게 됩니다. 저를 그토록 괴롭게 만들어서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를 거부하게 되고 또 누군가를 지나치게 가까이 하는 것도 거부하게 됩니다. 미워하기 싫어서요. 미움이 너무 괴로워요. 싫은 작가라면 다음부터 안읽으면 되고 좋아하는 작가는 찾아 읽으면서 독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겠지요.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그 독자만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독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믿고 자신의 의지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지냅시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3-08-19 14:0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첫번째 문단 읽고 나니
아... 미스매치가 아니었겠구나 확신이 드네요. 그렇습니다. 최은영 작가님이 그럴리가 없지요 ㅎㅎㅎ

저는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 중에서도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는 좀 더 많이 듣고 싶거든요. 작가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서 전 그것도 좋구요. 그래서 만약 로스와 관련된 글이라면... 어떤 에세이든 읽고 싶을 거 같구요. 싫어하는 면, 작가의 너무 가까운 모습을 발견할 거라는 걱정보다 제게는 궁금증이 더 크다고 할까요.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그 독자만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독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믿고 자신의 의지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지냅시다, 단발머리 님!

......... 저 다락방님 문장대로 ㅋㅋㅋㅋㅋㅋ 이렇게 글 쓰면 되는데 왜 이렇게 길게 썼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믿고 제 의지대로 읽어나가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좋아하겠어요! (불끈!!)

건수하 2023-08-16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이 언급하신 작가들을 저는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사실 단발머리님이 좋아하시는 또 다른 작가들 중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중요하다, 또 그 마음은 쉽게 알 수 없다는 말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위에 다락방님이 쓰신 ‘독자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믿고 자신의 의지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에도 동감이구요.

오늘 어떤 책을 찾다가 단발머리님이 좋아하시는 작가와 책들이 주르륵 달려있는 페이퍼를 읽었답니다. <화성 연대기>도 있었고, <킨>, <포트노이의 불평>도 있었구요. 그 페이퍼에서 책 몇 권을 제 보관함에 추가했어요.


단발머리 2023-08-19 14:08   좋아요 1 | URL
제가 언급한 작가들 중에 수하님이 좋아하지 않는 작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ㅎㅎㅎ 다락방님 댓글처럼....... ‘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믿고 저의 의지대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면서 또 다른 작가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려고 합니다. 우리 같이 읽어가면서 좋아하는 작가를 같이 ‘발굴‘하는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올 여름 저희집 최애 작가이구요 ㅋㅋㅋㅋㅋ 옥타비아 버틀러는 뭐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필립 로스는 사랑이죠. 수하님의 보관함의 책들이 리뷰로 변신할 날들을... 기다릴게요!!!

김수정 2023-08-19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들 책들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댓글도 작가수준이네요~~~

단발머리 2023-08-19 14:03   좋아요 0 | URL
네... 그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