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샬럿 브론테가 나한테 맞는다고, 나에게 맞는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두컴컴한 실내와 폭풍이 몰아치는 저녁과 끝없는 황무지를 사랑하고, 미친 듯한 집착과 멈추지 않는 광기와 그리고 간절한 애원에도 뒤돌아서는 그런 단호함을 사랑한다. 샬럿보다 더 어두운 영혼 에밀리 브론테의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도 사랑한다. 물론 제인 오스틴의 반짝반짝함과 허위를 꼬집는 재치도 사랑하지만.   

 


<벨기에 에세이>를 읽는다. 일기를 쓰지 못하는(않는) 게으른 나는 부러워하며읽는다. 일기, 편지, 에세이 모음집을 읽는다. 앤 브론테의 목소리를, 에밀리 브론테의 목소리를 듣는다.


 

12시가 넘었다. 앤과 나(에밀리)는 말끔하게 챙겨 입지도 않았고, 침대 정리도 안 했고, 공부도 안 했지만 나가서 놀고 싶다. 우리는 저녁으로 삶은 쇠고기와 순무, 감자, 사과 푸딩을 먹기로 했다. 부엌은 잔뜩 어질러져 있다. 앤과 나는 나장조 피아노곡 연습을 끝내지 못했다. 태비(브론테가에 헌신했던 하인)는 내가 그녀 앞에 펜을 내려놓자마자 말했다. "거서 빈둥거리지 말구 감자나 좀 까?" 나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당장 하겠습니다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바로 일어나서 칼을 집어 들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감자 껍질은 다 벗겼다). (1834 11 24일 월요일)  

 


이 얇은 책에 선택된 일기 일부 중에 감자 껍질 벗기는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감자와 감자 껍질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 에밀리, 샬럿이 감자 껍질 벗기는 에피소드.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1 <집 안의 천사 죽이기>에서 울프는 이렇게 쓴다.

 



















소설은 희곡이나 시보다 훨씬 쉽게 들었다 놓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작품을 쓰다 말고 아버지를 간호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감자 싹을 도려냈다. 여성은 공용의 거실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만큼, 인물을 관찰하고 성격을 분석하는 데 눈이 뜨였다. 그녀가 받은 훈련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집 안의 천사 죽이기>, 54)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은 여성의 삶을 얼마나 옥죄었던지.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도 피해 갈 수 없는 효도의 의무와 식사 준비. 간호와 감자 껍질 벗기기. 자신이 먹을 것은 자신이 준비하는 게 윤리적이다. 그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윤리가, 그 예의가, 그 책무가, 그 의무가 여성에게만 부여된다는 데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The Bronte Sisters>의 중고 등록 알림이 왔다.  ‘중고 등록 알림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무척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네 권에 3만원이라니 이건 뭐, 바로 구매 각이다. <Villette> 원서로 가지고 있고, <Wuthering Heights>은 물론이요, <Jane Eyre>는 원서만 두 권이고, 이북도 다 있지만, 어머 이건 사야 해! 이렇게 촐랑대다가 다른 책이랑 같이 구입한다고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그만 판매종료되고 말았다. 이 책만 바로 결제했어야 했는데. 이 귀한 책 구매하신 이웃님!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매우 축하드립니다. 제가 많이 부러워하고 있어요.

 
















슬픔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을 때, 갑자기 내가 엄청 두꺼운 브론테 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억이 밀려온다. 그래? 나한테 브론테 책이 있어? 사진첩에 들어가 검색에 ‘bronte’라고 쓴다. ! 맞아! 내가 이 책을 샀네. 친절하기도 하셔라, 2022 1 12일이구나. 근데 이 책 어디 있지? 어디 갔니,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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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8-27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아쉽습니다. 이웃님이 아닐지도요… ^^

단발머리 2023-08-27 20:11   좋아요 1 | URL
일단 수하님 아니시고요 ㅋㅋㅋㅋ 한 분 패쑤!!! 🤪

건수하 2023-08-27 20:20   좋아요 1 | URL
그럼요! 저는 원서는…. 😵‍💫

단발머리 2023-08-27 20:21   좋아요 1 | URL
🤣🤣🤣전 일단 구입만 ㅋㅋㅋㅋ

독서괭 2023-08-27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사진이 멋져요! 왼쪽 그림은 무슨 그림인가요?
저도 아뉩니다 ㅋㅋ
감자껍질 벗기기 ㅠㅠ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에도 창작에 끊임없이 방해당하는 얘기들 나오던데요 ㅠㅠ

단발머리 2023-08-27 20:29   좋아요 1 | URL
왼쪽 그림은 친구가 큰 사이즈 작은 사이즈 선물해 준.... 제가 앞으로 꾸미고 싶은 어떤 방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저도 가지고 있는데 엄청난 방해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데 방해하는 아가들....

잠자냥 2023-08-27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제가 좀 빨랐군요?!

단발머리 2023-08-27 20:29   좋아요 0 | URL
헐? 진짜요? 진짜에요????????????????

잠자냥 2023-08-27 20:3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이 아시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장난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8-27 20:40   좋아요 1 | URL
아아아앙아ㅏ아아앙 저 사진 좀 올려주세여~ 댓글 달려고 대기 중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수하님 패쑤 독서괭님 패쑤 잠자냥님 패쑤 ㅋㅋㅋㅋㅋ 당신은 누구십니까…..

다락방 2023-08-28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도 너무 멋있고 글도 너무 좋습니다. 저는 단발머리 님이 브론테 자매를 좋아하고 그걸 확신하며 말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도 너무 좋아요.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혹은 그 일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거기에는 나만의 고유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저느 이 글 읽으면서 단발머리 님이 생각하신 것처럼 ‘나에게 맞는‘ 작가가 누구인가 생각했는데 현재는 ‘줌파 라히리‘만 생각납니다. 크 -

단발머리 2023-08-30 20:48   좋아요 0 | URL
저는 브론테를 좋아합니다. 폐쇄된 공간, 환경 속에서 가족 밖에 없었고 더 이상 만날 사람이 많지 않았던 넉넉치 않은 생활의 브론테 자매, 남매들이 이룩해낸 업적을 존경합니다. 그 꼿꼿함을, 대담함을, 끈질김을 저는 사랑합니다.

다락방님께는 진짜 ‘줌파 라히리‘가 딱이네요. 그리고 이승우. 그리고 리 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