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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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전신인 「웃는 남자」는 「디디의 우산」을 부숴 만든 단편이다." 


황정은은 작가의 말에 그렇게 썼다. 지금도 『파씨의 입문』에 가만히 자리 잡고 있는 「디디의 우산」은 황정은의 소설 중 내가 제일 사랑한 것이었다. 디디는 내가 제일 아끼는 주인공이었다. 디디는「웃는 남자」에서 죽었다. 그런데도 나는 「웃는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디디가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나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울 것을 황정은도 알았을 것이다. 그도 울었을 것이다. 내가 이 짧은 글을 쓰면서 울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도 황정은은 그렇게 했다. 황정은은 그런 작가다.


처음 「디디의 우산」을 지은 손을, 그것을 부순 손을, 새로 「d」를 지은 손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할 사람은 황정은밖에 없다.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부족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황정은이 전부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그의 모든 소설이 망작이라 해도 이 사실은 나에게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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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학년 선배들은 살리스베리 공원의 길을 달리고 있었지만 나는 양키 스타디움의 시원한 잔디 위를 달리고 있었다. (309쪽) 


이 책의 문장들은 간결하고 재치있다. 묘사가 뛰어나며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장은 309쪽에서야 나온다. 이 문장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려면 거슬러 가 봐야 한다. 홀링은 지금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8학년들은 같은 팀임에도 불구하고 7학년인 홀링이 앞서 나가는 것을 제지한다. 홀링은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거친 길로 달린다. 그러나 그는 최고의 야구 선수들과 게임을 한 양키 스타디움을 떠올리고 있다. 가슴이 기쁨으로 꽉 찼던 그 순간 덕분에 홀링은 "발이 거의 땅에 닿지 않을 정도"다. 어린이가 한계를 박차고 나가는 순간의 힘은 이런 기억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문장을 읽으면 눈물이 차오른다.


그렇다면 홀링은 어쩌다 최고의 선수들과 야구를 했을까? 그것은 홀링의 친구 대니가 아주 멋진 거절을 했기 때문이다. 대니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홀링이 출연한 연극을 보았기 때문이다. 홀링이 연극을 한 것은 셰익스피어를 읽었기 때문이다. 홀링이 셰익스피어를 읽은 것은...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이어지고 쌓이는지, 직접 읽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홀링의 성취가 온힘을 다해 스스로 이루어낸 것임을 알게 된다. 문학이 어린이에게 어떻게 스며드는지, 어른은 어린이와 얼마큼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어린이는 어떻게 혼자서 어른이 되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어른이 된다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뒤로 갈수록 많이 울었고, 그보다 많이 웃었다. 읽고 나면 마음이 환해진다. 어린이문학이 이렇게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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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다 알 수 없는 시를 읽을 때면 가끔 외우고 싶다. 그 말들을 입속에 말아 넣고 굴리고 녹여서 어딘가에 갖고 있으면 뜻을 몰라도 괜찮은 채로 그것들과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형도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다. 우울이나 허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런 말들이 왠지 좋았다. 알 수가 없어서 외우고 녹였다. 그때는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는 구절(「진눈깨비」)을 좋아했고, "그 춥고 큰 방에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보며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고 하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자주 떠올렸다. 남들이 인용하는 「엄마 걱정」 속 "찬밥처럼 방에 담겨" 천천히 숙제하는 아이는 애써 외면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이 시집 속 어느 말을 떠올리고 놀란다. 받아들이기에는 힘이 모자란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를 갉아대다가 문득, 이것들을 어딘가에 넣고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 입속에서 「빈 집」의 말이 굴러나왔다.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혀에 녹여 갖고 있던 말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차례가 되었다고 나 대신 나선다.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시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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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19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적 있어요.
기형도의 시에서도 그랬어요.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저는 이 구절이요.
이 구절을 가끔 저도 모르게 떠올려요.

네꼬 2018-01-19 22:02   좋아요 0 | URL
시는 참 특별해요. 기형도 시는 더 그렇고요. 다락님이랑 같이 읽으니까 더 좋아요.

북프리쿠키 2018-10-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데. 네꼬님처럼 느낌을 풀어내고 싶네요.
잔잔하고 담백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코드네임 X』에서 파랑은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비밀 노트를 펼쳤다가 그 속으로, 1991년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 파랑 나이의 엄마는 첩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빠의 얼굴도 모르는 -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소년,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는 것처럼 취미가 있는 소년, 처음 하는 첩보 활동이 체질에 맞는 소년. 파랑은 어쩌면 익숙한 주인공이다. 그런 면에서 파랑이라는 인물보다, 그와 엄마, 즉 바이올렛의 관계가 두드러진다. 어린이책에서 흔히 등장하는 ‘지금은 소시민이지만 한때는 영웅이었던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내세운 점이 흥미롭다.


파랑이가 모를 뿐 현실에서도 엄마는 큰 상자를 번쩍 들고, 맨손으로 트럭을 세우는 등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험 중에 만나는 바이올렛은 그보다도 훨씬 발랄하고 힘이 넘치며 신입 요원 파랑을 이근다. 『코드네임 K』에서도 바이올렛과 미지의 인물 '코드네임 K'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모험 속에서 바이올렛과 파랑의 관계는 파랑만 알고 있다. 그래서 '코드네임' 시리즈는 파랑이가 엄마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파랑이 잠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 2017년의 엄마는 1991년의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엄마는-바이올렛은, 걱정하면서도 파랑이 다시 모험 속으로 들어가게 돕는다. 엄마라기보다는 동료, 또는 선배, 스승의 모습이다. '코드네임'이라는 근사한 별칭은 바이올렛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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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아버지는 아담한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멜로디를 살짝살짝 바꿔 가며 연주해 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곁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그럴 때면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카펫에 선명한 사각형을 새겨 놓곤 했다. 내가 트럭과 자동차를 사각형 안으로 몰아넣으면 마치 그 차들이 빛의 도시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34쪽) 


화가가 글로 묘사하는 어린시절의 풍경들이 그림보다 훨씬 선명하게 떠오른다. 선교사 부부의 손자로서 중국에서 태어난 영국인 아기는 아들이 강인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를 실망시키며 미국, 캐나다, 인도를 전전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전쟁의 광풍, 정착하지 못하는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꾸준히 혼자 자라는 어린이. 그의 외로움과 걱정, 가끔씩 빛나는 낙천성이 침착하게 그려진 책이다. 기억도 기억이지만 그것을 침착하고 끈질기게 글로 표현하는 힘이 결국 그림도 그리게 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노먼 록웰의 그림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반가웠다. 올해 첫 독서로 일과는 상관 없는 책을 골라 들었는데 결국은 쓰는 일과 그리는 일, 어린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그림책 『냄새차가 나가신다!』로 유명한 제임스 맥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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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01-02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네꼬 2018-01-04 22:05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