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다는 농담

 

 

1

 

깊이만큼이나 폭이 문제다. 과학과 공학, 정치와 경제를 모르고도 문학이나 철학만 가지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얼추 알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20세기의 종료와 동시에 죽고 죽고 일백 번쯤 고쳐 죽어 이미 백골이 진토가 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syo가 읽는 책은 늘 철학-문학-철학-문학. 철문철문 아우 한심하다. 그렇지만 소년은 늙었고 학문은 이루기 엿 같으니 깔끔하게 포기할까?

 

하지만 세상 겁나 무섭고 죵니 빠르다. 포기하면 남은 인생 그냥 배추로 살아야 될 판이다.

 

 

 

2

 



미리 본 역자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우엘벡에 대해 문체가 평범하다는 평가가 종종 있다고 한다. , 프랑스놈들 정말 못 말리겠다. 프랑스 소설이 자꾸만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3

 

엉덩이가 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건지, 방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곧 아프다. 열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다. 그러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게 이거 아닌가. 이게 의자인지 의자의 형상을 한 시멘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인체에 비협조적이던 도서관 의자에 앉아 공부하던 시절에도, 같이 공부하러 다니는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내 엉덩이만 늘 불이 났다. 방석은 생활 필수품. 만져보면 말랑말랑한데……. 얘는 대체 왜 어째서 주인의 일상사에 제동을 거는 걸까?

 

 

 

4

 

진짜 연휴가 시작될 모양이다. 나는 책을 읽는다. 배추가 되어도, 자꾸만 어지러워도, 엉덩이가 비명을 질러도.

 

 

 

 

--- 읽은 ---


 

158.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

 

방송만 보고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돌아온 허지웅은 이전의 허지웅과 많이 다른 사람이었나보다. 두 세계에 걸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설명하는 매체로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활자를 택했다는 것은, 그의 본질이 쓰는 사람이라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 나는 쓰는 사람이 좋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활자를 이용하고 그 활자를 축적하기 위해 책을 먹어 치우는 사람은 일단 좋다. 나는 한 번도 나의 죽음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159.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김성민 지음 / 다반 / 2020

 

나는 1권의 책에 100명의 독자가 있으면 최소한 100개의 독서가 태어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100개의 독서는 실상 너무 많이 닮아 있어서 미세한 잣대를, 때에 따라서는 의미가 없다 싶을 정도로 사소한 차이까지 식별하는 잣대를 갖다 대지 않으면 100개의 독서를 진짜 100개로 구분해 떼어놓기는 힘들다. 한 권의 책을 두고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하는 말과 같은 말을 한 번 더 보태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 나는 굳이 그 책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늘 어렵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책 읽은 책에 관대해지는 것 같다.

 

아름다움도 쓸모도 모두 책의 것 같지만 실은 독자의 속성에 가깝다. 정확히는 독서의 속성. 아무도 읽지 않아도 절로 아름답거나 쓸모 있는 책은 없다. 읽지 않으면 독서는 없다. 우리가 아름답고 쓸모없는 이 아니라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다. 아름답고 쓸모있는 독서란 거의 없다. 아름다움을 통해 나중에 쓸모 있게 되거나 쓸모를 통해 언젠가 아름다워질 수는 있지만. 결국 아름답지 않고 쓸모있는 독서와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사이에서 우리는 편향적인 선택을 한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선택하고 나가야 한다. 내가 읽는 책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내가 이 책을 노 저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느끼고 읽어야 끈질기게 읽는다.

 

 

 

 

--- 읽는 ---

세로토닌 / 미셸 우엘벡

체공녀 강주룡 / 박서련

언어의 역사 / 데이비드 크리스털

인간이란 무엇인가 / 백종현

소설가의 공부 / 루이스 라무르

열 문장 쓰는 법 / 김정선

여자 공부하는 여자 / 민혜영

판타스틱 과학클럽 / 최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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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09-2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문철문 너무 좋습니다 ㅎㅎ 사실 전 철학과 문학 구별도 잘 못하겠어요. 로큰롤과 재즈도 구분 못해서 그냥 블루스로 퉁치는거랑 비슷합니다..^^

syo 2020-09-29 11:36   좋아요 1 | URL
추풍님 짧은 음반 리뷰 볼 때마다 제가 드는 생각이 그런 건데요. ˝우와....이게 뭐지?˝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9-29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리뼈가 남아있으면 방바닥에 앉을 때 엉덩이 아프더라구요...덜 진화된 자의 슬픔...(지금 확인해보시죠 진화의 도달 정도)

syo 2020-09-29 15:02   좋아요 1 | URL
확인해봤는데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어느 지점인 것 같아요. 예전에 만난 사람은 확실히 있다고 때리면 아플 거라고 그러던데.....
 

 

생명연장의 꿈

 

 

1

 

어제 이 차를 샀다. 3만킬로쯤 탄 경차다. 언제나 모 안 난 인생을 살고 남들 다 하는 선택을 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三은, 역시 남들 다 그러듯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운전면허를 준비했고, 남자들이 보통 그러듯 1종 보통을 응시했으며. 역시 평균적으로 그러하듯 기능 시험에서 한 번 떨어져 준 다음 무난하게 면허를 취득했다. 그게 15년쯤 되었으니 면허 없던 인생과 면허 있는 인생의 길이가 거의 비슷해진 오늘의 . 그러나 그는 면허시험장을 나선 이후 단 한 차례도 핸들을 잡아본 적이 없었고, 최근 유튜브를 통해 악셀이 아니라 브레이크 페달이 왼쪽이라는 사실을 재습득할 수 있었다. 지금은 syo 앞에 마주 앉아서, 클러치가 그러고 보니까 뭐 하는 거였지? 이러면서 뭔가를 검색하는 모양이다. 쌤 불러서 한 여섯 시간쯤 도로 연수 받으께, 연휴 끝나기 전에 차 끌고 강릉 함 갔다 오까? 회나 시원하이 한 사라 해야지, 라고도 말했다. 회 한 접시에 목숨 한 번 걸어 보자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하다니 진정한 사나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영동고속도로 위에서 찬란하고 덧없이 산화하려고 꾸역꾸역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지구에서의 삶에 미련이 꽤 남았다.

 

 

 

2

 

syo는 머리가 나쁜 편이다. 특히 기억력 쪽은 누가 너 기억력 정말 참담하구나? 라고 해도 화내지 않는 게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어차피 이럴 거 읽으면 뭐하냐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자정 너머 미셸 우엘벡의 세로토닌을 읽다가 궁금해져서 알라딘에 검색해봤더니 고수님들의 굉장한 리뷰들이 발견되었다. syo가 부러운 건 그분들의 밝은 눈도 단단한 글솜씨도 아닌, 기억력이었다. syo는 리뷰를 잘 못쓰는 가운데서도, “이 작가의 전작 얼씨구절씨구는 주제가 이러쿵저러쿵이었던 바, 작가의 관점 변화가 있다/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와 같은 식의 구절은 아예 사용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억이 안 나서! 소립자의 주제가 뭐였더라? 거기서도 야한 거 많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좀 나오네? 헤헤, 야한 할배 우엘벡. 이게 syo의 한계다…….

 


 

 

3

 


연휴에 죽여버리겠다고 패기만만하게 빌려 온 벽돌 두 개.


둘 다 1,000페이지가 넘는다. syo는 프로이센을, 은 피케티를 읽고 있다. 누구도 이길 것 같지 않다.

 

 

 

 

 

--- 읽은 ---


 

154. 괴물이라 불린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

 

긴 감탄사의 운명은 결국 용두사미다. 우와아아아아ㅏㅏ……(음소거).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사이 어디쯤이었고, 이 책은 사이 어디쯤. 다음 책을 한 권 더 읽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우와아아아우와오와!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별개로, 전작과 다른 역자가 번역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취향이다. 검색해보니 다음 작품은 또 새로운 역자가 번역한 듯. 이게 다 뭔 일일.

 

 

 


155. 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 박산호 옮김 / arte / 2019

 

세상에 이치라는 것이 있고, 세상이 만들어진 데 뜻 같은 게 있다면, 일단 박살 난 일상을 중복적으로 무너뜨리진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사건이 사람을 조각내면, 바람이 불 때마다 제 안에 든 조각에 찔려 다시 상처 입고, 다시 아물고, 다시 피 흘리고, 다시 딱지가 앉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금 간 인생들의 시절이.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람을 조각내는 사건이 하나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리가 세상에 되어 퍼지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조각 난 사람을 어떻게든 찾아와 아예 가루로 만드는 시대에 도착했다. 가루가 된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 가루가 되면 아물거나 덧날 상처의 자리조차 남지 않겠다.

 

모든 컷에 움직임이 없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156. 왜 칸트인가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

 

잘은 모르겠지만 칸트의 주저는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판단력 비판을 읽기 위해서는 실천이성비판이 제시하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그 개념들은 또 순수이성비판을 모르고서는 확립되지 않는, 그런 식이랄까. 보통 이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칸트는 유독 체계적인 듯. 그래서 결국 순수이성비판과의 만남으로 칸트를 시작해야 하는데, 만나 보니 걔는 성격이 진짜 극악무도했다. 그래서 칸트와는 시작만 계속 있었지 끝 같은 건 없었고, 맨날 직관의 순수 형식인 시간과 공간 어쩌고 하는 부분에서 좌절의 마일리지만 적립하고 돌아서기 일쑤다. 순수이성에서 안녕하면 실천이성이나 판단력은 냄새도 맡기 어려운 것이 현실. 그래서 머리 꼬리 다 떼고 몸통만 한 권으로 꿰어주는 책이 칸트철학에는 필요하다. 우린 철학자가 아니니까요.

 

칸트 개론서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요놈의 용어 때문이다. 마치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었던 신성로마제국처럼, ‘순수’‘이성’‘비판얘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전적 의미와 다르다. 그게 또 180도로 달라 버리면 원전을 읽다가 모순된 지점을 발견하거나 할 텐데, 그게 아니라 한 15도에서 45도쯤 달라 버리니까, 뭔가 이해가 되는 것 같다고 오해하며 끄덕끄덕 읽어가다가 나중에는 읽히는데도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는 상황이 자꾸 발생하는 것이다. , 우린 철학자가 아니니까요.

 

2회독 하며 느끼는 건데, 요 책은 칸트 입문서 중에서는 정말 제일 좋은 것 같다.

 

 

 


157. chaeg 2020. 9

()(월간지) 편집부 지음 / ()() / 2020

 

잡지를 한 달에 딱 한 권 읽고 있는데, 그게 <>인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다.

 

 

 

 

--- 읽는 ---

사이언스 블라인드 / 앤드루 슈툴먼

세로토닌 / 미셸 우엘벡

언어의 역사 / 데이비드 크리스털

장판에서 푸코 읽기 / 박정수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 김성민

다이어트의 정석 / 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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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9-2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세로토닌 읽어야지 ㅎㅎㅎ 같은 역자가 번역한 뒤라스 소설이 좀 별로라 걱정이 되긴 합니다...

syo 2020-09-27 16:56   좋아요 1 | URL
졸면서 읽습니다.... 적재적소에서 야한데 난 왜 졸리지....?

blanca 2020-09-2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칸트를 시작해얄 것 같은 그리고 그 건 <왜 칸트인가>로.

syo 2020-09-27 16:57   좋아요 0 | URL
시작할 때 좋습니다! 왜 칸트인가. 두둥.

추풍오장원 2020-09-2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띨띨해서 읽고 까먹고 까먹고 그러는데 ㅎㅎ

syo 2020-09-27 16:57   좋아요 0 | URL
저와 띨띨배틀을 벌여보실까요? ㅎㅎㅎㅎ

stella.K 2020-09-2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미니언>을 모처에서 이벤트 도서로 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두꺼운 책이 보기는 좋은데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요.ㅠ
이벤트 도서는 서평을 의무적으로 써야해서 이제 웬만해서 안 하는데
이 책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안 읽을 것 같아 한 건데
대략난감입니다. 그래도 스요님은 워낙 두꺼운 책도 거뜬히 읽어내니
엄살이란 거 알고 있습니다.ㅋ

저도 칸트를 시작하게 되면 저 책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근데 전 이상하게 칸트와 니체를 항상 헷갈립니다.ㅠ

syo 2020-09-29 10:5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철학도 좀 사랑해주세요. 너무 두꺼운 애들 말고, 얇고 귀여운 애들로다가.
스텔라님, 추석 잘 쇠시기를^-^

scott 2020-09-2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웰벡은 플랫폼 소립자 까지 좋았던것 같아요. 이번에 나온 세로토닌은 아침 방송 건강관련 프로그램이 떠올라요 ㅎㅎ

syo 2020-09-29 10:53   좋아요 0 | URL
읽을 때는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아마 이번에도 그러겠죠..... ㅠㅠ

DYDADDY 2020-09-2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두께 비주얼이 엄청나 책 앞에서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베고 자면 오히려 목에 무리가 올 것 같아요. ㅋㅋ

syo 2020-09-29 10:53   좋아요 1 | URL
저기 더 두꺼운 애들 두권 쌓아놓으니까, 뭐랄까 굉장히 복잡한 심정이 되더라구요 ㅋㅋㅋ

2020-09-27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9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양의 모양 2


 

 

생은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회한모든 후회는 결국 존재의 후회로 귀결된다.

전혜린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칫솔을 버렸다. 모가 다 누워서 더 쓸 수가 없었다. 버려도 진작 버릴 것을 오래도 썼다. 미련하게도. 아무리 J라도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미련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모퉁이를 만난 것이다. 끼고 돌면 아무것도 간단히 버릴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길모퉁이를. 빛이 떨어지면 창틀 아래로 잎 그림자만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그건 움켜쥘 수도 없었다. 나타샤 벤자민이라고, 고무나무 종류래. M이 창틀에 화분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J도 웃었다. 웃음 역시 움켜쥘 수 없는 것이었다. 태어나는 순간 지나가 버리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늘 허우적댄다. 창문을 닫고 자는 계절이 왔고, 바람이 불 때면 J의 머리칼은 사정없이 흔들린다. 그새 많이 자랐다.

 

가을엔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있어. Y의 가느다란 검지가 머그잔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저러면 제 손가락 빠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J가 생각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그러고 있더라구, 언제부턴가. 말을 마친 Y가 잔을 입에 가져갔다. 커피가 Y의 입술을 지나 입안으로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쓰디쓴 검은 물을 좋다고 들이켜는 사람들이 J는 늘 신기했다. 언젠가 Y가 이렇게 물었다. 쓴 건 술도 마찬가지잖아. 넌 술은 잘 마시면서 커피는 왜 못 마셔? 그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지나간 것들하고 언젠가는 만나야 하잖아. Y가 말을 이어갔다. 가을에는 지나간 것들이 다시 지나가도, 오래 부대끼지 않고 수월하게 통과한다는 느낌이야. 말을 할 때마다 커피 묻은 Y의 입술이 번들거려서 자꾸만 시선이 갔다. 바람이 불고 이파리들이 가루가 되고 그래서 모든 게 쉬워지는 걸까? 이럴 때 저 입술을 훔쳐야만 한다는 일종의 확신이 데자뷔처럼 갑작스레 J의 심장을 덮쳐왔다. 가을은 짧으니까. 다가갈까? 이러다 가을이 없어지면. 테이블에 왼쪽 팔꿈치를 대고, 왼쪽 어깨를 살짝 밀고, 고개는 오른쪽으로 살짝 꺾으면, 닿을 텐데? 죽은 사람들 노래도 다 죽어버리면. 첫 키스로 너무 괜찮은 그림일 텐데? 그럼 너무 슬프잖아.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할 텐데? 그들이 있던 시간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지면 말야. J의 왼손이 팔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아니었다. 다시 기억해보니, 왜 커피를 못 마시느냐고 물어온 것은 Y가 아니었다. 그건 M이었다.

 

J는 누구보다 출근이 빨랐다. 카드키를 단말기에 접촉하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은 J의 일이었다. J의 일이 되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퇴근이 늦었다. 열린 문을 다시 닫는 것도 J가 하는 일이 되었다. 일은 많았다. 팀장은 J의 설계가 탐탁지 않았고 고객은 불가능한 UI를 요구하며 떼를 썼다. 그런 것들이 그대로 J의 일이 되었다. J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고 충분히 그럴 여유가 있었다. 성실하지 않을 여유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싱크대에 던져놨던 커피잔을 씻고 거기에 다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술을 끊었다. 쓴맛의 총량은 유지된다. 그건 줄어드는 것이 아니어서 대신 J가 줄어들었다. 통장에 돈은 자꾸만 쌓였다. Y와는 아직 자지 않았는데 요즘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Y와 입을 맞춘 것과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 중 뭐가 먼저였을까. J는 요즘 중요하지 않은 질문들을 찾아 묻고, 중요하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피부가 부쩍 푸석해졌고, 수면의 질은 나빴다.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핸드폰 충전기와 TV 셋톱박스에서 나오는 작은 빛까지 모조리 지우고, J는 거실 한복판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틀어막아도 빛은 들었다. 그것으로부터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 희붐한 어둠 속에서 J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 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그런 게 뭔지, 뭐가 상관이 없는지 자기도 알지 못했다. 그런 건 아무도 몰라, 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기도 했다. 그런 게 뭔지 생각하다가, 아무도에 누가 들어가는지 세어보기 시작했다. 어떤 이름은 겨냥했고 또 어떤 이름은 에둘렀다. 어떤 이름은 누르고 어떤 이름은 찾았다. 그러다 마침내 그 모든 이름들이 다 같은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고 J는 몸서리쳤다. 제발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지 좀 마. J는 아무렇게나 꿰어 입고 거리로 나선다. 모자 자꾸 쓰면 두피 망가지고 머리 다 빠진대. J는 모자챙을 꾹 눌러 이마를 가린다. 양손 다 주머니에 꽂고 걸으면 양아치 같아서 보기 싫어. J는 주머니 속 두 주먹을 꽉 움켜쥔다. 또 담배 피면 키스 없다. 마지막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문다. ! 또 쓰레기 함부로! 빈 담뱃갑을 구겨서 길에 던진다.

 

너 어디까지 가려고 나한테 이래.

 

J는 건널목 한가운데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하여 손톱에 박힌 가시와 수많은 잔소리들이별 직후의 쓰라림이 왜 풀벌레 소리를 내는지 이유를 조금 알게 되었을 뿐가을밤의 풀벌레가 불도 켜지 않고 왜 모두 다른 빛깔로 우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안도현, <가을밤의 풀벌레 소리부분

 

 

--- 읽은 ---

 


151. 스트로베리 나이트

혼다 데쓰야 지음 / 이로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

 

표지가 예뻐서 읽어 보았는데 첫 장부터 자식의 똥구멍에서 똥을 긁어내 아내를 먹이거나 제가 쳐먹는 약쟁이 아버지 새끼가 등장해서 기분을 잡쳤다. , 이런 새끼는 제발 얼른 죽었으면 싶었는데 다음 페이지 쯤 바로 죽어서 그나마 나았다. 커터칼로 경동맥이 잘려 피를 콸콸콸 쏟으면서 죽었다. , 바로 읽을 맛이 나는구만? 1살인마 1독자 탄생의 순간.

 

넌 그냥 촌뜨기에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촌스러운 계집애라고. 그런 촌뜨기는 말이지, 저 시골 공원 화장실 뒤에서 몸이나 파는 게 딱…….” 이라는 대사를 동료 경찰에게 치는 경찰이 등장하는데, 거의 모든 대사와 행동이 근본적으로 여혐에 쩔어있는 그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혹시 작가가 도리어 남자를 혐오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 바닥 국룰에 따라 마지막에는 츤데레 모습을 보여주지만, 늦었어요.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남자 경찰이 틈만 나면 시전하는 성희롱의 대향연을 관전하는 것도 역시 포인트. 이게 재밌다고 생각하는 걸까?

 

주인공으로 설정된 히메카와 레이코 경위는 번뜩거리는 데가 있으면서도 어딘가 허술하여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면서 어떻게 바뀌어나갈지 알 수 없지만, 그 시리즈를 내가 따라가며 읽을는지도 역시 알 수가 없다. 그냥 혹은 저냥이다.

 

 


 

152. 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

 

너무 한낮의 연애를 세상에 내놓은 순간부터, 김금희는 향후 10년 동안 syo의 무조건적 별 다섯개를 확보했다. 나는 그녀가 한글로 뭔가를 쓴다면 거기에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헤헤 으헤으헤으허허라고 쓰였더라도 물개박수를 치며 별 다섯을 줄 준비태세가 확립된 편파적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늘 그런 우대권이 의미가 없다. 제값 내고 타셔도 늘 오성급이셔요.

 


 

 

153. 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

 

그래서 이런 몇 가지 난제가 발생한다. 설터 할배가 좋아 금희 누나가 좋아? 그런 걸 묻다니 용기가 있구나 그러나 싸대기는 조심해라! 설터 할배가 이겨 금희 누나가 이겨? 조용해라, 짓이겨버릴라니까. 설터 할배랑 금희 누나 책이 한 권씩 있는데, 그중 한 권을 지금 버려야 돼. 뭘 버릴래? 바로 너의 그 요망한 세 치 혀를…….

 

 

 

 

--- 읽는 ---

강철왕국 프로이센 / 크리스토퍼 클라크

괴물이라 불린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사브리나 / 닉 드르나소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 김성민

모든 것의 처음 / 스튜어트 로스

왜 칸트인가? / 김상환

일단 성교육을 합니다 / 인티 차베즈 페레즈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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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9-25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미소설가는 설터, 한국소설가는 김금희가 좋아 하면 되죠ㅎㅎ저도 둘다 무척 아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부사 나열로 밖에 못 키우는 부족함...날씨가 좋아 그런지 읽는 책이 어째 무럭무럭 늘어나시네요ㅎㅎㅎ

syo 2020-09-27 14:52   좋아요 3 | URL
날씨 요즘 너무 좋네요. 바깥에 자꾸 나다니고 싶어집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날씨한테 외주줬나봐요. 숙주 유혹....

반유행열반인 2020-09-27 15:42   좋아요 0 | URL
연휴 때 가까운 동네 산책 살살 다니셔요. 산성도 거닐어 보시고...

scott 2020-09-2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설터 할배가 더 좋아요. 전혜린으로 시작해서 복자와 설터 할배까지 소요님 페이퍼는 끝까지 읽게 만드네요.^.^

syo 2020-09-27 14:5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설터 할배 좋아요. 전 너무 좋아서 호불호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별로라고 여기는 분들도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모양의 모양 1

 

 

그렇지만 그건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A가 말했다. K는 고개를 저었다. 전기포트에서 이제야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너무 찬 물을 넣었어.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K가 생각했다. A는 이 방에 하나뿐인 낡은 소파에 눕다시피 파묻혀 앉아 있었다. 목을 꺾어 뒤통수를 등받이 윗부분에 올려놓으면 신기하게 졸음이 쏟아지는 소파였다. A가 좋아하는 자세였고 K도 그런 A를 보는 게 좋았다. 침을 넘길 때마다 A의 목젖이 도드라졌다.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거기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가 보지. A가 훽 하니 K를 쳐다보았다. K는 덤덤했다. 커피 뭐 마실래. 이나영? 김연아? 김연아. K가 햐얀색 커피 스틱을 꺼내 탁탁 털었다. 아니, 요즘 김연아 왜 이렇게 예쁘냐? 걔 원래 그랬나? K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 끓는 소리가 한 톤 더 높아졌다. 그래도 그렇지, 개새끼라니. 나더러 개새끼라 그랬다니까? A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닌 게 아니라, K도 가끔씩 A는 사실 개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동그란 눈. 무해한 눈빛. 다부져 보이는 팔은 만져보면 의외로 말랑거렸다. K는 그의 동그란 배를 슥슥 만지는 것을 좋아했고 그럴 때면 A도 뒤집어 놓은 강아지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누가, 인담? , 인담. , 역시 인담. 물이 다 끓어 전기포트의 스위치가 달칵 내려앉았다. 그래도 A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KA의 이야기가 끊어질 때까지 커피 가루가 든 종이컵에 물을 붓지 않았다. 뜨거운 물은 천천히 식을 것이었다. 방이 그만큼 따뜻해지는 동안에.

 

창밖으로 키 큰 나무의 몸통이 보였다. 이른 가을바람이 잎들을 슬쩍 훔쳐보지만 그리 멀리까지 가져가진 못한다. 며칠 전, 사무실 뒤쪽 뜰에 뿌려진 은행알을 줍고 있던 K는 바람에 실려 온 A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틀림없는 A의 목소리였다. 사무실 창문 열어놨나 보네. 은행 냄새 난다고 싫어하더니. K는 가만히 눈을 감고 A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소리는 마치 파도처럼 다가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A가 가까이 있는 것 같다가도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창문이 닫힌 건지 아니면 A가 입을 다문 건지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K는 눈을 떴다. 주변이 조금 더 어두워져 있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워졌을 뿐이라고 K는 생각했다. 아직 일과는 끝나지 않았고, 저녁은 오지 않았다고. K는 사무실로 돌아가 전기포트에 물을 넣고 스위치를 켰다.

 

K는 다시 전기포트의 스위치를 눌렀다. 물은 금방 끓었다. A가 커피를 받아들었다. 인담 진짜 짱나지 않냐? 걔는 걔대로 자기 일을 하는 거지. 여긴 그런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잖아. K가 커피를 홀짝였다. A는 부아가 치밀었다. 왜 내 편을 안 들어줘? 사랑하면 언제나 내 편 돼 줘야 하는 거 아냐? 사랑한다며, , 사랑한다며! K는 종이컵을 입에 물고 A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화를 내려는 거야, 아니면 울려는 거야? K가 물었다. 인담한테는 화를 내고 너한테는 울려는 거야. A의 표정은 말 그대로였다. 아닌데, 나한테는 화를 내고 인담한테 가서 울려는 것 같은데? K는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놀리고는 조용히 A의 이마를 만져주었다. 내가 네 편인 거, 회사 사람들 다 안다. 내가 그렇게 티를 내고 다녔다. 그래, 안 그래. 그래. 너가 나한테 사랑한단 말 한마디 띡 해주고 말 동안,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좀 있으면 사장님도 아실 판이다. 그럼 난 모가지 날라가는 건데. 그래, 안 그래. 그래. 그럼 이제 그만 징징거리고 너 사무실로 복귀하도록. 알아들었나? , 알겠습니다. A는 웃으며 씩씩하게 일어섰다. KA의 옷매무새를 다듬었고, A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K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얼른 나가, 사장님 곧 오셔. , 사장님 오시면 말 좀 해줘. 인사담당관 그 새끼 진짜 막말 심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애들 다 겁나 힘들어한다니까?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복귀해. 너 진짜 이러다 인담한테 개 털린다. 알았어, , 나 갈게, 부탁해! A는 늘 문을 닫지 않는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제 사무실로 걸어가는 A의 뒷모습이 한 마리의 대형견 같았다. 걸어가는 것만 봐도 기분을 짐작할 수 있는 지나치게 솔직한 걸음걸이. 과연 인사담당관은 인사담당관이군.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저게 멍멍이지, 어떻게 사람이야. K는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와 탁자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종이컵을 바라보았다. 컵 속에 남은 커피 양은 서로 달랐지만, 합쳐 놓으면 어떻게든 한 컵이 나올 것도 같았다. 탁자와 맞붙은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지휘관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K는 커피를 치우고, 휴지를 뽑아 알콜성 소독젤을 바른 후 화이트보드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그리고는 작전과로 전화를 걸어서 다음 주 연대장 일정표를 요청했다.

 

9월이 지나갔다. 진짜로 가을이 올 것이다. 마지막 가을이. 가을이 오면 K는 병장이 된다.

 


 

길을 잃는 것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것이고세상사를 잊는 것이고지금 곁에 있는 것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더 멀리 있는 것들은 희미해지는 것이다베냐민의 말을 빌리자면 길을 잃는 것은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고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미스터리에 머무를 줄 아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길 잃기 안내서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나는 부캉이라 말했는데너는 부강이라 발음했다

 부캉이든 부강이든 그냥 좋아서 북항,

 한자로 적어본다北港처음에 나는 왠지 이라는

 글자에 끌렸다 인생한테 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든지 쾌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도현북항부분 

 

나는 '다른 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그 노래도 언젠가는 지긋지긋해진다는 뜻이 아니다그저 하나밖에 없는 어떤 개별 단위가 끝나는 것이다삶은 반복되고진퇴하며연속하는 흐르는 시간이 아니다역사가 시간의 서사라는 (역사주의이데올로기 때문에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그렇지 않다인생은 바로 이곳에서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다.

정희진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읽은 ---


 

148.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로즈마리 퍼트넘 통, 티나 페르난디스 보츠 지음 / 김동진 옮김 / 학이시습 / 2019

 

이 책을 쪼개 읽은 긴긴 날 동안 syo는 알라딘에 10개 가량의 글을 썼는데, 한 번도 이 책에 관해 페이퍼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도 참 나다.

 

핑계를 대자면, 이 책은 다른 책들의 핵심정리 쪽집게 요약서라고 봐도 무방한데, syo가 제아무리 요약을 배제한 페이퍼를 표방한들 책 이야기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요약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결국 요약을 요약하는 꼴이 될 텐데, , 그건 정말 하기 힘들다. 결국 이 책은 읽는 것 이외에 마땅한 소비 방법이 없다. 페미니즘을 보듬고 싶건 아니면 뽀개고 싶건, 이거 한 권 정도 책장에 꽂아 놓고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꺼내 읽는 게 제일 똑똑한 방법 같다.

 

 


  

149. 한 권으로 읽는 칸트

이정일 지음 / 이학사 / 2020

 

함량을 떠나서, 책이라는 물건으로 독서유니버스에 출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고 통과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으면 편집자가 해야 하는 일. 예를 들면 중언부언을 죽이는 일 같은 것. 여기서 syo가 말하는 중언부언은 첫 번째 챕터에 나온 말이 일곱 번째 챕터에 거의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 그런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물론 그런 것도 이 책엔 잔뜩 있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① 칸트에 따르면 범주는 경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② 범주의 근원은 경험에 있지 않다③ 칸트는 이를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을 통해 정당화한다④ 쉽게 말해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문제가 바로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이다⑤ 하지만 사실 범주의 근원이 정확히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 칸트의 연역에도 불구하고 ― 칸트 전문가들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⑥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범주가 경험을 통해 획득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⑦ 어쨌든 칸트는 범주가 경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면서 그 근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힌다⑧ 그리고 그는 이 지점에서 범주를 ― 당대에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던 ― 데카르트의 생득 관념과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⑨ 어쨌든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은 여전히 그 타당성을 놓고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⑩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형이상학적 연역은 그 판독에 있어서 여전히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2-33)

 

- 과 같다.

- 과 같긴 하지만, 맥락상 한번 더 강조할 수도 있겠다.

- 과 완전히 같다. = = = 이다.

- 은 이 맥락에서는 뜬금포다.

- = = .

 

이런 중언부언을 잡지 않아서 위의 두 문단은 알 수 없는 관계를 맺고 말았다. 첫 번째 문단은 범주의 근원이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칸트 전문가들조차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어도 어쨌든 범주의 근원이 경험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반면 두 번째 문단은 범주가 경험에서 획득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논의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왜 저렇게 써야만 했을까?

 

칸트에 따르면 범주의 근원은 경험에 있지 않다. 이를 정당화하고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과정을 칸트는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이라 한다. 그러나 범주의 근원을 정확히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논의 중이며, 칸트 전문가들 역시 범주가 경험을 통해 획득된 것은 아니라는 점 외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대충 이러면 땡 아닌가?

 

초심자에게 중언부언은 때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 계속 튀어나오는 거 보니 요놈 요게 핵심이구나 싶으면 밑줄을 박박 그으며 씹어먹겠다고 덤벼들 수 있다. 그런데 중언부언에도 도가 있고, 그게 고장 난 나침반처럼 동시에 여러 군데를 가리키게 되면, , 울어야지 별 수 없다.

 

결론. 저런 대목이 저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이 책은 내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책은 아니게 되었다.

 

 

 

 


150.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

 

바스라뜨리는 것은 늘 쉽다. 말 한마디로 다 무너져내렸던 그 모든 견고한 것들. 견고해 보였던 것들. 모든 순간이 우리를 움킨다. 헐겁게 한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최선을 다했음에도, 혹은 최선을 다했으므로 결국 한마디 아픈 말이면 충분히 산산조각 날 수 있도록 매일 매시간 허물어진다. 마치 망가지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당신이 움켜쥔 것이 무엇인지, 움켜쥔 마음이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하여 우리는 오해하고 오해한다. 손에 쥔 게 뭔지 좀 보자며 세상이 억지로 내 주먹을 열어내려 들 때,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모쪼록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읽는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하완

어젯밤 / 제임스 설터


 

 --- 갖춘 ---

임마누엘 칸트 생애와 철학 체계 / F. 카울바흐

라캉의 주체 / 브루스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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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9-2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갈이의 계절 가을이로세. 꼬랑내 풀풀 날 것 같은 노란 은행알 바닥에 흩어지는 날들입니다. 저도 어젯밤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가벼운 나날도. 그런데 읽을 게 산더미라 아주 나중에 다시 보겠지...무사하고 무탈한 가을 보내시길 빕니다.

syo 2020-09-24 18:19   좋아요 1 | URL
조만간에 설터 한번 싹 털어야겠습니다. 털갈이에는 설터..... 다 읽고나면 왠지 문장 레벨업하는 느낌

반유행열반인 2020-09-24 18:53   좋아요 0 | URL
아 나도 문장 레벨업 하고 싶으다...장인이 되고 싶어...

syo 2020-09-25 00:31   좋아요 1 | URL
기대합니다. 모쪼록 열심히 해 주세요^ㅂ^

2020-09-21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4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0-09-2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읽으셨나요? syo님 평이 궁금해서 여쭤봅니다ㅎ

syo 2020-09-24 18:18   좋아요 0 | URL
앞쪽 1/4 정도 읽다가 반납했는데, 좋았습니다. 이동진 선생님이 기본적으로 한칼 하시니까요. 읽어보시길 권할게요

독서괭 2020-09-24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퀴어소설인 건가요?? 2도 나오는 건가요?? 기대할게요~^^
중언부언 깔끔하게 정리해주신 거 보고 엄지척~~

syo 2020-09-24 18:1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연재는 아니고... 저 이야기는 저기서 땡이에요 ㅎ 기대하지 마시길^-^
 

 

I’m still looking up

 

 

1

 

옥상에 스툴을 두 개쯤 가져다 놓았으면 싶다. 밤을 어깨에 이고 서면 멀리 산과 산 사이를 흘러 다가오는 금빛 헤드라이트 물결과 채 달아나지 못한 빛으로 희붐하게 젖은 도시의 이마가 보인다. 하나는 내가 앉고 하나는 침묵을 앉혀 나란히 빛의 요란을 응시하는 것. 하루라는 문장의 온점으로 쓰기에 맞춤한 정경이 늘 거기 그대로 있어서 좋다.

 

 

 

2

 

이 어머니가 반찬을 보내 주셨다. 스뎅 김치통 하나 분량은 넘어 보이는 김치가 세 개의 동그란 통에 나눠 담겼고, 이외에도 각종 마른반찬과 소세지 볶음, 어묵 볶음 같은 것들이 함께 왔다. 이네 반찬은 늘 삼삼하다. 어묵은 간장과 물엿을 조금 넣어 다시 볶았고, 소세지는 케첩과 고추장으로 그렇게 했다. 혼자 살며 계속 느끼는 건데, 반찬으로 배가 아니라 냉장고를 채울 때, 그때야말로 뭔가 진짜로 배가 부르다는 기분이다. 요즘 둘이 살 때보다 오히려 더 잘 챙겨 먹어서, 돼룩돼룩 살이 오르고 있다. 1의 자리에서 반올림하면 앞자리가 바뀌는 체중이 되었다. 딱 한 달 만에. 내 배가 이렇게까지 대놓고 3D는 아니었는데. , 여름이라도 끝나줘서 정말 다행이다.

 

 

 

3

 

요즘 어쩐지 섹스에 대해 관심이 가서 그런 제목을 단 책을 자꾸 뒤진다. 하여간, 나이 처먹고 주책이야. 그것도 운동 잘하면 좋다던데, 운동이나 해서 배나 집어넣지, …….

 

 

 

 

--- 읽은 ---

 


144. 거꾸로 섹스

이금정 지음 / 시그마북스 / 2016

 

거꾸로 섹스하는 방법이 궁금하여 이 책을 들춰볼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저자 역시 하고있는 듯. 제목은 <거꾸로 섹스>지만 실체는 <똑바로 섹스>에 가깝다. 섹스는 똑바로 알고 해야 신납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시고, 요렇게 조렇게도 해보세요. 우와! 헤헤…….

 

클리토리스의 구조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좀 충격적이어서 아마 이 지식은 복습 없이도 평생 갈듯. 걔가 글쎄, 눈으로 볼 수 있는 만큼이 전체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실제 전체 구조는 라프라스를 빼닮았으며, 우리는 그동안 라프라스의 동글동글한 머리 부분만을 가지고, 그러니까, , 이렇게 저렇게 영차영차, , 아무튼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라프라스 /얼음타입 포켓몬

 

 



145. 1년만 닥치고 영어

모토야마 가쓰히로 지음 / 이지현 옮김 / 다산북스 / 2017

 

1년만과 닥치고와 영어, 셋 다 어렵다. syo에게는 1년이 10년 같고 닥치는 건 세상 힘들다. 영어는 말해 뭣해. 될놈될이고 나는 언제까지나 한 마리의 아임빠인땡큐앤유일 뿐. 1년과 닥침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여, 화이팅!

 

 

 


146.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

 

원제는 Memory Man. 유치하다. 제목 빨 없이도 오직 내실만으로 미 본토를 초토화시킨 다음, 살짝 폼 나는 제목으로 갈아입고 한반도에 상륙. 우리나라에서 메모리 맨이라든가 기억남따위의 제목을 달고 시작했다면 아마 지금의 절반쯤을 팔고 말았을지도. 어떤 책인가 하면,

 

전도가 유망한 것까지는 아니었어도 노력으로 재능의 고랑을 메우며 용맹정진하던 젊은 미식축구 선수 에이머스 데커는, 첫 번째 프로 리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막강한 태클에 당해 두 번쯤 지옥 문턱에 발을 댔다 뗐다 한 결과,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 사기 같은 기억력을 이용해 경찰로 전업, 역시 사기 같은 기억력으로 보란 듯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모든 게 다 괜찮았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 갖가지 방식으로 죽어 있는 처남, 아내, 어린 딸의 처참한 시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의 인생은 거기서 또 한 번 끝났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잊을 수가 없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상심에 빠진 돼지 부랑자가 되어 쓰레기 같은 인생을 연명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일하던 동료 경찰이 찾아와 가족을 죽였다는 남자가 자수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경찰서에 잠입, 자수한 남자와 대화를 나눠보니, , 까먹는 게 일절 없는 내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얘는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재미있음.


 

 


147.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는 syo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 당연히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한나 아렌트는 비교적 쉽다. 칸트나 헤겔은 쉽다 쉽다 하는 입문서를 봐도 뭔 어쩌자는 건지 도통 모르겠거나, 겨우 알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면 저자가 후려친 것만 핥아놓고 맛집 찾았다고 설레발을 쳐놓은 것이거나, 뭐 그러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아렌트는 개론서로도 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정치철학자다. 그리고 필수선행과목이 없다. 그녀가 15세에 칸트를 섭렵했다지만 그 두 배를 넘게 산 나는 그녀를 읽기 위해 칸트를 읽어둘 필요가 딱히 없고, 그녀가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게 철학을 배웠다지만, 원숭이에게 철학을 배우기 시작한 나는 그녀를 읽기 위해 하 선생과 야 선생을 경유할 필요가 딱히 없다(물론 알아서 나쁠 건 없다). 사상가 자체가 이렇게 친절한 특성을 지니고 있을 때 노나는 건 독자다. 왜냐하면 그를 다룬 개론서들이 웬만하면 잘 읽히고 어지간하면 함량이 충만하기 때문에. 이 책을 포함해 아렌트 개론서를 여러 권 읽어봤지만 나쁜 건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그저 회독 수를 늘리는 것뿐.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렌트의 주저를 직접 읽어도 되겠구나 싶어진다. 이런 느낌을 주는 개론서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있었어도 알고보면 착각이었고…….

 

 

 

--- 읽는 ---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한 권으로 읽는 칸트 / 이정일

여름의 빌라 / 백수린

새의 얼굴 / 윤제림

스트로베리 나이트 / 혼다 데쓰야

Chaeg 2020. 9 / ()(월간지) 편집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 레몬심리

문명과 혐오 / 데릭 젠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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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0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풍오장원 2020-09-2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독 수... 매우 중요하지요 ㅎㅎ

syo 2020-09-21 18:17   좋아요 0 | URL
그렇죠 ㅋㅋㅋㅋㅋㅋ 어디가나 회독이 진리죠.

비연 2020-09-20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는 내가 앉고 하나는 침묵을 앉혀... 흠. 이거 좀 멋진데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시리즈를 다 읽은 저로선... 그냥 갈수록 쏘쏘다 라고 말하고 싶은. 재미가 없진 않으나.
.. 운동 열심히 하세요. 괜히 엄한 단어 가지고 책 뒤지지 말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0-09-21 18:18   좋아요 0 | URL
얼매나 중헌 단언디, 엄한 단어라니요..... 비연님, 듣는 그 단어 섭섭하겠어요.
난 가능하면 걔랑 친하게 지내고 싶단 말이에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0-09-20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멋진 표현 :
도시의 이마가 보인다.
하나는 내가 앉고 하나는 침묵을 앉혀.
재능의 고랑을 메우며
^^


syo 2020-09-21 18:1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역시 syo하면 겉멋이죠! ^-^

난티나무 2020-09-2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라프라스 똑 닮았는데요? 알고 만든 건 아닐까요? ^^;

syo 2020-09-21 18:19   좋아요 0 | URL
설마 그럴라구요 ㅎㅎㅎㅎ
근데 진짜 닮긴 했죠? 으아, 내 동심....

독서괭 2020-09-24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프라스 사진 보고 빵 터졌네요 ㅋㅋㅋㅋ

syo 2020-09-24 18:20   좋아요 0 | URL
너무 적나라한 라프라스 사진을 올렸군요...

토큰 2020-09-2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프라스 글을 보고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습니다^^;;

syo 2020-09-29 10:56   좋아요 0 | URL
아아, 이제는 라프라스를 순진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