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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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엄마가 죽었다. 카뮈가 이와 비슷한 문장을 남긴 이후로, 다른 누구도 이런 문장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된 것 같다. 일생에 오직 한 번, 실제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를 빼면.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러나 이 말들을 내뱉기 어려운 것이 사실 카뮈 탓은 아니다. 나는 입으로, 손가락으로, 심지어는 침묵으로 저 문장을 수십 번 이상 뱉어내면서, 그때마다 아프고 슬프면서, 많이 생각했다.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장 멀리 밀어내는 단어가 엄마라서, 그 엄청난 척력을 찍어누르고 한 문장으로 묶기 위해서 마음의 힘을 많이 소모하는 것은 아닌지를.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153)

_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2

 

엄마는 길지 않은 생의 아래쪽 절반을 암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싸우다 갔다. 지금의 나보다 고작 몇 살이 더 많았던 나이에 첫 암을 만났다. 그놈은 골수에 생겼다. 골수 이식을 두 번 받았고, 오랜 시간을 무균실에서 지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나 모르게 넘겼다고 나중에 들었다. 몇 개의 천운이 있었고, 천운과 천운 사이를 의지로 이어붙이며 엄마는 암과 싸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암이 끝나고 새로 나는 머리와 눈썹은 이전의 것들보다 굵고 진해서 좋다고, 엄마는 말하며 웃었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엄마는 그 후로도 10년은 날것을 먹지 않았다. 과일도 익혀 먹었다. 주기적으로 내원했고, 엄마의 이런저런 혈액 수치는 우리 가족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가 낭보가 되었다가 했다. 일희일비했지만 며칠이면 잊고 우리는 살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아버지가 암에 걸렸고,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고, 나는 군대를 갔고, 아버지가 죽었고, 내가 전역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엄마는 꾸준히 엄마였다. 10년이나 무사했으니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모두들 말했지만 그건 엄마에게 그저 말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 공포, 절망, 그리고 외로움. 정말로 그 모든 걸 다 겪은 사람은 말을 하는 우리가 아니라 말을 듣는 엄마였다. 암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엄마에겐 그랬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렇지 않았고, 우리는 안일했으며, 결과는 처참했다.

 

 

 

3

 

배변이 원활하지 않고 소변에 살짝 핏기가 비친다고 엄마가 처음 말했을 때, 우리가 한 것은 병원에 가보라는 말이 다였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병원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암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만했고, 엄마는 혹시나 암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회피했다. 암 환자 가족들은 안다. TV에서 의사들이 불러주는 발암 물질을 외우고, 암에 좋다는 각종 먹거리들과 조리법을 노트에 꼼꼼하게 적어가며 암의 가능성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도망치는 사람이, 정작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병원 가기를 피하는 일은 하나도 모순적이지 않다. 암을 통과해온 사람에게,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훨씬 무서운 것은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하여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다


뒤이어 우리가 한 것은 병원에 가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도 엄마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까지 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과에서는 CT촬영을 권했고, 방사선과에서는 이 CT를 들고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아닐 거라고 말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있었고, 맞을 것 같다고 대답하는 엄마의 마음속에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예감이 이기고 희망은 졌다. 엄마의 생은 엄마에게 두 번째 암을 선고했다. 요관암 3. 예후가 나쁘기로 유명한 암이었다. 이미 방광과 신장에 전이가 있었다. 수술했고, 신장 하나와 방광의 일부를 떼어냈다. 2019년이었다. 림프 전이를 막지 못했고, 2020년부터 항암에 들어갔다.

 

 

 

4

 

당신은 죽을 거라고 끝내 알리지 못했다. 엄마에게 당신의 죽음에 대해 알려준 것은 죽음이었다.

 

 

 

5

 

  "미뤄야…… 만해…… 조금."

  "지금 미뤄야 한다고요?"

  "아니, 죽음을."

  엄마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매우 강하게 강조해서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죽고 싶지 않구나."

  "그럼요, 엄마는 다 나으신걸요!"

  그러고 나서 엄마는 조금은 헛소리를 했다.

  "내 책을 발표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여자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젖을 물려야 해."

  동생은 옷을 입었다. 엄마가 의식을 거의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엄마가 외쳤다.

  "숨이 막혀."

  입이 벌어지고, 살이 쏙 빠진 얼굴에서 유난히 커 보였던 두 눈이 부풀어 오르듯이 확장됐다. 경련을 일으키면서 엄마는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쿠르노 씨가 "언니분께 전화 드리세요"라고 말했다. 푸페트가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교환원이 30분이나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나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사이 푸페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엄마 곁을 지켰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흐릿한 눈을 하고는 주저앉은 채 숨만 겨우 쉬면서 말이다. 그렇게 끝이 났다.

  "의사들 말로는 촛불이 꺼지듯이 돌아가셨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동생은 흐느끼며 말했다. 간병인이 답했다.

  "하지만 보호자분, 제가 보증하건대 어머니께서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어요." (126-127)

 

그래도 고생 덜하고, 일찍 가신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남겨진 사람을 위한 말이었고,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최선을 다해 조심스러워하는 기미가 보였다. 나중에는 내가 먼저 그 말을 하게 되기도 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요. 길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보았다. 죽음이 엄마에게 들이닥치는 모든 순간을 세세히 보았다. 그걸 모두 본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다. 엄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100km를 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몸이 떨리고 눈이 자꾸 뒤집어졌다. 내 손을 힘있게 맞잡지 못했다. 내 말을 듣고 있었겠으나, 숨을 쉬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무서웠을 것이다. 아파, 아들, 나 너무 무서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인데 말할 수 없어서 더욱 아프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 고통과 공포 속에서 마지막 남은 몸부림을 치는 엄마를, 나는 보았다. 나만이 보았다.

 

당신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고생 덜하고 일찍 가신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위로의 말을 어렵게 건네는 그 따뜻한 마음 뒤에 눌러두었을 슬픔을 나도 위로하고 싶어서, 길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편히 가셨을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같은 죽음 뒤에, 남은 이들이 주고받은 거짓말들만 남았다. 죽음은 그렇게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다. 자기도 채 온전히 믿지 않는 말을 던져 믿음을 주고, 돌아오는 말을 들으며 믿음을 더하고. 끝내 모두가 그렇게 믿거나 믿기로 결정했을 때, 죽음은 1차적으로 완성된다. 그 누빔점으로부터 시작해 죽음은 완전한 완성을 향해 가고, 그 길 위에서 남은 이들의 슬픔은 시간에 풍화된다.

 

 

 

6

 

영성체를 위한 기도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영성체를 했다. 신부는 다시 한 번 짤막하게 설교했다. 그의 입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이 불려 나왔을 때 나와 동생은 둘 다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이름은 엄마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 이름은 엄마의 생애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생활을 하던 시절을 비롯해 과부였던 시절과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마지막 시기마저도 포함하는 생애 전체 말이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145-146)

 

막내삼촌이 엄마의 추도 예배를 집전했다. 삼촌의 추도사는 남은 이들의 엄마, , 누나, 동생, 고모였던 사람을 단지 그렇게 호칭하다가 끝났다. 이름은 말해지지 않았다. 그 이름은 분향소의 입구 모니터에 쓰여 있었고, 상주가 서명해야 했던 몇몇 서류에 적혀 있었으며, 비석에 새겨져 그 이름 주인의 뼛가루 위를 덮었다. 그러나 말해지지는 않았다. 행정과 자본의 영역에서 엄마의 이름을 삭제하기 위해 나는 몇 번 그 이름을 입에 올려야 했다. 삭제되기 위해 호명되는 이름. 그런 이유로 불리는 것이 그 예쁜 이름의 마지막이라면 너무 슬플 것이어서, 다가오는 명절에 나는 엄마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껏 그 이름을 불러주기를 청할 작정이다.

 


엄마는 이름으로 있을 재 자와 향기 향 자를 썼다정말이지 이름 같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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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맑음 2021-08-31 1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을 닮으셔서 syo님이 멋지시군요~!
어머님 처럼 아름다운 글입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서 감당하기 힘이 드네요ㅠㅠ 재향님은 분명 행복 하실 꺼에요..
이렇듯 아드님의 사랑이 애틋 하니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글을 읽는 지금이 제게도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syo 2021-09-01 13:28   좋아요 4 | URL
보잘 것 없는 글에 대한 칭찬, 좋은 말씀, 위로, 명복을 빌어주신 것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맑음 님께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좋네요. ㅎㅎㅎ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mini74 2021-08-31 14: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명절이 되면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시던 프로를 좋아하시던 색과 꽃과 산을. 좋아하시던 영화와 책을 볼때마다 슬프고 그리워요. 어쩌다 마주치는 흔적들엔 그리워서 울게 되고요. 자연스러운 일인걸요. 그렇게 그렇게 지나도 보면 그립고 슬픈데 너무 보고싶은데 그런 말들 그런 기억들을 눈물대신 웃으며 할 수 있을거예요. 저도 아직은 힘들지만요. 마음으로 한 번 안아드리고 갑니다.

syo 2021-09-01 13:29   좋아요 4 | URL
어, 안아주시고 가셨네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조금씩 잊고 조금씩 기억하고 그렇게 분류하면서 사는 게 남은 사람들 일이겠지요.

감기 조심하세요. 날이 춤습니다.

2021-08-31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1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8-31 2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님이 한 페이퍼에 한 권의 책을 쓴 거 처음 본 거 같아요. 그만큼 쇼님의 삶과 공명하는 부분이 큰거겠죠? 이렇게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는 거 보면 쇼님 애도의 기간을 너무나 잘 보내고 계신 거 같아요. 페이퍼에서도 향기가 나네요.

syo 2021-09-01 13:31   좋아요 3 | URL
네 ㅎㅎㅎㅎ 저는 무척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울컥울컥 하는 건 있지만 그것조차 그정도면 양호할 정도입니다.

툐툐님 감사합니당

봄밤 2021-09-01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어머님 모습이 참 멋지고 아름답네요. 어머님 글 많이 많이 적어주세요. 그 사람을 기억하고 쓰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애도의 방법인 것 같아요. 더 이상의 추억을 만들 수 없는 건 아픔이지만 그간의 시간들을 아로새길 수 있는 건 축복이니까요. 늘 syo님의 글에 묘한 위안과 위로를 얻어요.

syo 2021-09-01 13:32   좋아요 3 | URL
ㅎㅎㅎ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요즘 봄밤님 글 읽으면서 문장 많이 다듬습니다. 아직 멀었지만.
비도 오고 날도 추워지니까,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2021-09-01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 님,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이런 말밖에 못하겠네요 이런 책 보면 더 어머님이 생각나겠습니다 저세상에서는 편안하셨으면 합니다 그러실 거예요 어머님이 저 위에서 syo 님하고 동생분 지켜보실 거예요


희선

syo 2021-09-01 13:33   좋아요 4 | URL
때마침 이 책이 책상 위에 놓여서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펼쳐보기 전까지 무슨 내용인지 몰랐거든요.


희선님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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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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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랬다

 

 

1

 

어떤 원한은 원하는 마음이 짓는 무서운 표정이다. 어떤 악의는 아끼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뱉는 잔인한 말실수다. 그것들이 그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는 이유는 원한과 악의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원하고 아끼는 그 마음 때문이다. 사랑의 뒷면에, 그것들은 있다. 사랑이 끝나지 않으면 그것들도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끝나지 않으면 사랑도 끝나지 않는다. 그때는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의 뒷면에, 사랑은 있다. 이것은 수사적으로는 같은 말이지만 서사적으로는 반대말이다. 서사에서, 사랑의 이면에서 원한을 발견하면 이야기는 시작되고, 원한의 이면에서 사랑을 발견하면 이야기는 종료된다. 그렇다면 뒷이야기는 누가 굴리는가.

 

내가 굴릴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관념으로, 감각으로.

 

 

 

2

 

그러면 이야기는 과연 끝이 나는가? 사랑이 끝나지 않으면 이야기도 끝나지 않는다. 줄여 쓰면 더 좋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마주/기대서서, 이 책 대불호텔의 유령은 왜 있는가/읽는가?

 

이 소설을 간과하려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는(신형철) 이유는 사랑을 그만두려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애-관계가 아니라 사랑-감정에 대해 말하자면 단언컨대, 절대로 사랑하지 않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사랑한다. 5cm 거리에서 바라보면 눈동자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호수가 되는 사람을, 병석에 누워 갈아 만든 과일 주스를 삼키는 엄마를, 외로울 때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몸을 비벼오는 고양이를, 주로 멍청하고 가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지만 그래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그래서 우리에겐 그 모든 사랑의 뒷면을 차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나 혼자 두는 체스가 아니어서, 우리가 내 머릿속 가장 완전한 사랑의 조각상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현실의 사랑은 반드시 침식된다. 그 상처의 틈바구니를 악의는 가장 좋아한다. 달콤한 케이크에 먼저 앉는 곰팡이처럼. 그럴 때 내가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듣는 것은 들리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왜곡된다. 5초 전의 기억조차. 나는 종종 내가 아니다. 나는 절대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뭐지? 유령인가?

 

에밀리 브론테일지도 모르지.

 

그게 무엇이건, 내가 무엇이기만 하다면.

 

 

 

3

 

이해의 범주는 늘 포근하다. 그렇게 느낄수록 침입은 더욱 불쾌하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웅성대는 소리를 듣는 일은 괴로워도 도망칠 수 없는 과업이다. 최소한 쓰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원한이 공유하는 특성 가운데 하나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 혼자 이해하게 되거나,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나 혼자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바깥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가끔 내 바깥에 내가 있다.

 

영현아,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거야.”(161)


이 말을 하는 이의 마음과 듣는이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어서, 오래 머물러 생각했다. 이해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서,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되도록,

 

 

 

1'

 

사랑 이야기라면 환장하는 syo가 환장했으니 틀림없다. 이 소설은 원한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소설이 전혀 아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걱정은 넣어두셔도 좋겠습니다.

 

이건 그냥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다른 많은 이야기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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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8-28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설도 리뷰도 수미쌍관 ㅎㅎㅎㅎㅎ알라딘 한가운데에서 사랑 외치는 syo님 리뷰 답습니다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8-28 17:04   좋아요 4 | URL
우왕 각 잡고 다시 읽으니 원한, 원하는, 악의, 아끼는, 이 라임만으로도 다했다! 언어의 요정ㅋㅋㅋㅋ

syo 2021-08-28 21:13   좋아요 3 | URL
ㅎㅎㅎ 반님비행기는 여전하군요. 알면서도 으쓱으쓱 하게 됩니다!

scott 2021-08-28 16: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사랑꾼 ㅎㅎ

syo 2021-08-28 21:14   좋아요 2 | URL
정답 😍

독서괭 2021-08-28 17: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사랑쟁이 syo님~~^^

syo 2021-08-28 21:14   좋아요 3 | URL
괭님도 정답 😍

새파랑 2021-08-28 18: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랑 이야기라면 환장하는 syo‘님이 환장한 사랑이야기라니, 흥미로을거 같아요~!!

syo 2021-08-28 21:14   좋아요 3 | URL
음, 환장할만한 사랑이야기라는 것은 아니었고,
사랑이야기면 환장하는 제가 환장한 거 보니 사랑이야기구나- 정도입니다 ㅎㅎㅎㅎ

붕붕툐툐 2021-08-28 18: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것으로서 내 플친님들의 <대불호텔의 유령>의 평가는 부정 3, 긍정 2가 되었다.

syo 2021-08-28 21:15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ㅎ 호불호가 쎄네요, 이 책 ㅎㅎ

다락방 2021-08-28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덧붙인 문장은 되게 저격으로 읽혀요. syo 님 글솜씨라면 저렇게 덧붙이지 않아도 이 책 좋다고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텐데 굳이 남의 감상을 가져와 부정할 필요는 없지않나요.

syo 2021-08-28 21:32   좋아요 4 | URL
에, 저한테 저격의 의도 같은 게 없었을 거라는 건 다락방님도 아실거라 생각해요. 진의에 대해서 더 설명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 저격으로 읽혔다는 말씀은,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사과할게요.

이 책은 제가 읽기에 막 꼭 읽어보라고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조건 거를 정도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미 작성된 많은 평들이 이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정보로 주어질 때, 아, 이 책은 걸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다른 분들이 그런 평을 남기는 게 온당치 않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평이 혹시 저처럼 이 책을 좋게 읽을 수도 있었을 누군가의 독서 의지를 꺾는 일이 될까 걱정했던 거고, 그래서 저는 그렇지만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다른 분들의 감상과 제 감상이 정반대되는 상황이라, 어느 정도 충돌 없이는 그런 설명은 불가능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저건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지만 사실은 제가 이 리뷰를 쓸 때 가장 먼저 써넣은 문장이었어요. 덧붙인 것이 아니었고, 다른 모든 글들이 저 문장에 덧붙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분의 감상을 부정한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 일이지요. 반대되는 감상도 있다는 말, 딱 그 정도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리고 지금 이 댓글을 달면서 다락방님 서재에 다시 갔다오고 나서야, 다락방님이 쓰신 마지막 문단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그냥 다른 분들의 비슷한 평을 여러 개 읽고 뭉쳐서 두루뭉술한 느낌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 느낌과 다른 제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썼던 건데, 이게 이렇게 대놓고 때리는 것처럼 보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초딩 2021-09-0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주의 북플 뉴스레터 선정 축하드려요~

syo 2021-09-04 16: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한테는 메일이 안 와서 몰랐네요.
아직도 모릅니다 ㅎㅎ

초딩 2021-09-04 17:0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자기 정보에 그런 메일 안 받는 설정이 있데요 ㅎㅎㅎ 혹시 모르니 한 번 획인 해보세요

thkang1001 2021-09-04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금주의 뉴스레터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syo 2021-09-04 16: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축하받을 일인줄도 몰랐어요. 메일도 아직 안 와서 ㅎㅎㅎ
그러나 감사합니다^-^

scott 2021-09-10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이달의 당선 2관왕 추카~
주말 三님과 행복하게 ~

syo 2021-09-10 21:25   좋아요 1 | URL
지금 三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한 편입니닼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1-09-10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syo 2021-09-10 21: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독서괭 2021-09-10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 축하드려요^^

syo 2021-09-10 21:25   좋아요 0 | URL
괭님도 축하드려요 ㅎㅎㅎㅎ

새파랑 2021-09-10 1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Syo님은 최고~!! 축하드려요~!!

syo 2021-09-10 21:26   좋아요 1 | URL
또 이러신다.
최고라시길래 살펴 보니 새파랑님도 2관왕,
˝내가 최고다˝라는 주장을 쓰리쿠션으로 하십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9-10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삼님께 안부를...^^
참! 모르시겠죠?

syo 2021-09-10 21:27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ㅎ
그는 지금 제 눈앞에 썩은 표정으로 앉아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1-09-11 00:25   좋아요 0 | URL
ㅎㅎ

서니데이 2021-09-10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syo 2021-09-10 21:2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ㅎㅎ

bookholic 2021-09-10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syo 2021-09-10 21:27   좋아요 2 | URL
요즘 갑자기 이달의 당선작 축하 분위기네요 ㅎㅎㅎㅎ 어색하면서 감사합니다 ㅎ

초딩 2021-09-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syo 2021-09-13 2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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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주윤 선생님께,

 

생판 모르는 마당에 다짜고짜 사랑해서 죄송한 저는 알라딘 마을에서 책 읽고 독후감 쓰는 syo라는 잡놈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언젠가 꼭 한번은 선생님의 작품을 향한 저의 끓는 애정을 담아 힘찬 응원의 아리아를 들려드려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요, 어느덧 겨울은 가고 바깥에 봄은 오고 있어서요. 이때가 좋은 때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저의 경우, 우리 비혼/미혼인 들의 영원한 2학기 기말고사 설 명절역시 다소간 마찰은 있었으나 비교적 무탈하게 통과할 수 있었기에 흥겨운 마음 금할 길이 없는지라 그 금할 길 없는 흥에 대판 취해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졸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번 설 어떻게 지나셨는지요. 혹시 그간 장동건도 똥 누고 방귀 뀐다는 아버님 말씀에 감화되셔서 똥 잘 누시고 방귀 시원하게 뀌시는 장동건강한 남자분 만나 혼례를 올리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제가 물색없이 우리 비혼/미혼인카테고리에 작가님을 함께 묶는 빅실례를 범한 건 아닐까 저어됩니다. 물론 아닐 것 같긴 합니다. 아니지요?

 

저는 처음 선생님의 글을 만났을 때, 어떤 운명 같은 끌림을 느꼈습니다. 이건 곱게 말한 거구요. 간략하게 말해서, 제가 쓴 줄 알았습니다. 이런 대목이요.

 

하루의 대부분을 산송장처럼 누워 지낸다. 늦잠 자고 일어나 낮잠 자고, 낮잠 자고 일어나 늦잠 자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반복되는 늦잠과 낮잠 사이에 이렇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그마저도 누워서 가능한 일이니 딱히 침대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 먹고 싸는 일만 어떻게 좀 해결된다면 평생을 누워서 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한창때에 왜 그러고 사느냐 물으신다면, 모르겠다. 세상만사 모두 귀찮다. 젊은 놈이 별소리 다 한다며 혀를 끌끌 차신다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젊은 놈도 사람이니 귀찮음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다. 나는 사는 일이 진심으로 귀찮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매일 그렇다.

 

혹은 이런 대목도요.

 

  그리하여 나는 내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걸리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을 때까지 계속, 계속. 얼마큼 많이 읽어 보느냐 하면은 턱이 빠지기 직전까지, 목소리 쉬기 직전까지, 열 받아서 아이패드 작살내기 직전까지. 쉼표를 여기 찍었다가 저기 찍었다가 하면서, 숨울 여기서 쉬었다가 저기서 쉬었다가 하면서, 그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꾸만 읽어봐야 한다.

  그렇게 아무리 읽어 보아도 어디에 쉼표를 찍는 게 더욱 적확한지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마감이 있는 게 너무나 고맙다. 마감이 없었더라면 나는 성대결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식하게 글을 쓰는 것도, 굳이 이럴 필요까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의 느낌은 사뭇 다르지 않은가. 문장에서 느껴지는 결연함이 다르잖아. 나만 느낀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하여튼 나는 그래.

 

이건 우리가 매사를 귀찮아하지만 만사를 귀찮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겠고, 또 읽기에 따라서는 귀찮지 않은 일에 그럴 필요까지 없는최선을 다하느라 그 나머지 일이 대체로 귀찮은 인간이라는 이야기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 두 개의 문단은 한 인간의 성격이 굉장히 정합적임을 보여주는 증거인데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모순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거죠.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거울 속의 제가 말해주니까요. 선생님과 저의 차이라고는 고작 선생님은 여자고 저는 남자라는 것(고작이 아니군요), 그저 선생님이 저보다 글을 더 잘 쓰신다는 것(그저도 아니군요) 정도랄까요. 그런 몇몇 요소들을 제외하면 선생님과 저는 겁나 닮았다고 일단 저는 우겨볼 텐데, 이런 우김조차 우린 닮았다니까요. 증거를 대 볼까요. 지금, 누워 계시죠?

 

이주윤 선생님, 선생님은 뭐랄까. 참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선생님의 다른 책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는 얼마나 팔렸나요. 저는 그 책이 잔뜩 팔려서 선생님께서 계속 쓰는 삶을 이어나가시길, 그래서 선생님이 쓰신 글을 자주 읽을 수 있기를 겁나 앙망했습니다만, 뭐라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의 책은 제가 읽고 즐기기에는 너무 좋지만-그것은 제가 선생님의 개그 코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이 책 사라고 추천하기는 좀 애매한 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노릇인가 하면, 제 친구 새끼들은 대체로 올해 책 두 권 읽으면 내년에는 당당하게 독서를 거를 수 있는 메탈-멘탈Metal-Mental을 지닌 친구들이오라, 그 녀석들이 평생을 읽고서 떠날 책이래 봐야 채 100권이 넘지 않을 모양인데, 100권 중 한 권을 추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일단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선생님의 책을 권하기가 다소 아리송까리송해진 것입니다. 게다가 제가 애들에게 선생님의 책을 권한다면 아마도 야, 이 책 겁나 웃겨- 라는 추천사를 부착하게 될 터인데, 선생님의 말재간이 제겐 너무나 웃기지만 직장생활과 부부싸움과 육아-현재 선생님과 제가 공통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세 가지-에 트라이앵글 초크를 당하고 있는 저 상처 입은 짐승들의 거친 감수성에도 맞물릴지 확신이 없는 상황이랄까요. 우리 같은 소수의 인간들은 웃고 웃기는 것조차 소수소수해야만 하는 운명인 것일까요? 그 답은 제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의 글이 제게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잡소리로 가득한 편지를 띄운 것이지요. 언제 결혼할 거냐는 물음이 언제 행복할 거냐는 물음과 연결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그 사람들이 웃는 곳에서 웃지 않는 우리들이 그 사람들이 웃지 않는 곳에서는 잘도 웃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마다의 언어가 있다면 모두 같은 언어를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웃음과 같은 문법의 웃음을 가지고 귀찮은 하루하루를 그래도 이어나가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정보는 그야말로 생활정보지요. 저와 같은 얼치기 독자에게 선생님이 필요하듯, 계속 쓰는 삶을 지향하는 선생님께도 저 같은 얼치기 독자나마 필요하실 거고, 우리는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낄낄대며 이러구러 생활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입니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않은, 더 정확히 말하면 같이 있지 않아도 혼자 있는 게 아니라서 어렵게 같이 있을 필요가 없는, 책과 독후감으로 혼자서 같이 있는, 선생님과 저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거부권은 없으십니다. 그런가보다 하세요. 저는 물지 않습니다. 훈련을 꽤 잘 받았거든요. 그리고 이빨도 시원찮습니다.

 

그럼, 마이클 잭슨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유아낫얼론하니,

위아더월드니라.

 

좋은 봄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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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3-0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도서관 왔는데 내친김에 이 책 빌려갑니다 ㅎㅎ^^

syo 2021-03-03 12:0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제 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할까봐 걱정했는데,
다른 댓글들을 읽어보니 페넬로페님의 선택을 지지하는 게 저 하나만은 아닌가보네요 ㅎㅎ
모쪼록 즐거운 독서 되시길.

난티나무 2021-03-0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무 좋아요. 👍
책 두 권을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근데 별은 네 개, 그래서 빼신 거겠죠? 읽을 목록에 추가추가!!

syo 2021-03-03 12:03   좋아요 0 | URL
저는 보통 웃기거나 슬프거나 혹은 감탄스럽거나 해서 ‘엉엉 울 정도‘가 되면 별 다섯을 매기는데요 ㅎㅎㅎ
재미있는 책이고, 읽고 있자면 희한하게 작가님의 인생을 응원하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ㅎ

행복한책읽기 2021-03-02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를 이주윤 작가 세일즈맨으로 임명합니다. 쾅쾅쾅!!! 기혼자인 나에게 땡큐하게 만들다니. ㅋㅋ 오늘 반납 있어,(그 스피노자, 펼쳐보지도 못한) 도서관 갈 건데 대출하겠음^^
syo님 셤 끝나니 글의 향연이 펼쳐질판. 아이 좋아라~~~~^^

syo 2021-03-03 12:05   좋아요 0 | URL
글 올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지났더니, 이주윤 선생님의 이름이 뜨문뜨문 북플에 보이네요!
제가 한 건 팔았군요 ㅋㅋㅋㅋㅋㅋㅋ

부족한 글 늘 아껴주시는 읽기님.
그러나 아시다시피(그리고 글에서 드러났다시피) 저는 굉장한 게으르니스트여서 ‘글의 향연‘은 아무래도 개최가 어렵겠습니다 ㅎㅎ

stella.K 2021-03-02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주윤 작가가 또 책을 썼군요.
옛날에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인가
와이프가 너무 사랑스러운데 너무 부지런해서 남자가 너무 피곤해했는데
이 와이프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죽어요.
그때부터 남자는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오죠.
그 영화 앞부분만 보고 나중에 결말이 어떤지 아직도 확인을 안 해봤어요.
지금도 볼 수 있나 모르겠어요. 제목도 활실한지도 모르겠고...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이거 대따 재밌는데...

syo 2021-03-03 12:07   좋아요 0 | URL
이 책이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보다 먼저 나온 책입니다.
재밌기로는 난형난제지요.
웃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진짜 고질병이네요. 낫질 않는다.....


blanca 2021-03-02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누군가 했더니 내가 읽고 웃다 쓰러졌던 책이네요. ㅋㅋ<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저는 이 시리즈 다 좋더라고요. 작가가 이 리뷰 꼭 읽었으면 좋겠네요.

syo 2021-03-03 12:0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그 책도 재밌죠!
저는 쓰러지진 않았지만 읽다가 책을 몇 번 집어 던졌어요! 와재밌어! 이러면서...
다음 책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3-02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의 시작에 애독자 편지 받은 이주윤 선생님은 좋겠네요 ㅎㅎㅎㅎ

syo 2021-03-03 12:11   좋아요 1 | URL
이주윤 선생님이 이 편지를 읽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도 사람인데,
그리고 한낱 백수인 syo조차 가끔씩 검색창에 이름 석자 때려넣곤 하는데,

감은빛 2021-03-0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체 뭘 먹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요?
아니 질문을 바꿔야겠군요.
뭘 읽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요?
근데 syo 님이 읽은 책들은 다 여기 서재에 있으니,
이건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군요.
그럼, 제가 이렇게 멋진 글을 못 쓰는 이유는
syo 님 만큼 책을 읽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군요.

사랑 고백을 받은 작가님이 너무 부럽네요. ㅎㅎ

syo 2021-03-03 12:13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읽고 이주윤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던 질문을 그대로 제게 하시는군요 ㅎㅎㅎㅎ
세상에는 워낙 재밌고 좋은 글이 많으니까,
자꾸자꾸 먹다 보면 조금씩 내 글도 재밌고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불확실한 희망을 품고
이것저것 와구와구 먹는 중에 있지요^-^

라로 2021-03-03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샘난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1-03-03 12: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누가요??

Cinema Paradiso 2021-03-0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안녕하세요~

저는 syo님의 글을 재밌게 읽고 있고 Syo님의 알라딘 친구이기도 한 시네마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

저는 요즘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살롱 <북카페 아트시네마> 카톡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에 (syo님 포함) 알라딘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 다같이 모여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고, syo님도 참여하셨으면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Syo님. 예전에 이런 글을 남기셨죠?
‘Syo는 책과 노래라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사람이라고’ 시대가 시대인지라 노래방을 가기 힘들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북카페 아트시네마>가 Syo님의 새로운 유희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북카페 아트시네마
https://open.kakao.com/o/g34W35Eb

syo 2021-03-03 12:2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시네마님.
이런 공간이 있었군요.

제가 원체 게으름쟁이라 열심히 활동할 것 같지는 않지만,
부러 방문하셔서 링크까지 남겨주시니 안 들어가 볼 도리가 없네요 ㅎㅎㅎㅎ

또 봄. 2021-03-0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덕에 재미난 책 알아갑니다.
보자마자 구매했어요! :)

syo 2021-03-05 20: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오랜만이에요 또 봄님.
즐거운 독서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공쟝쟝 2021-03-08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윤 선생님. 아마, 이런 전상서는 읽어보시겠지요. 설마, 안읽겠어요? 그래서 저도 댓글로 얹어가자면.
선생님 글, 좋아합니다..! 당신의 유머!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사랑한대요, 사랑한대요~ 얼레리 꼴레리~😝
아무튼 다음 책은 팔리셔야 하시니 전 살껍니다. 쭉 써주세요!

syo 2021-03-08 15:18   좋아요 0 | URL
검색하실 거 같아요. 작품 읽어보면 어쩐지 검색하실 것 같은 느낌이야 ㅋㅋㅋㅋㅋ
그리고 남의 사랑을 놀리지 말아요 ㅋㅋ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폴리아모리 에세이
홍승은 지음 / 낮은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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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이야기는 전부, 세상에 왕왕 있는 사랑 없는 연애의 경우를 제외하고 하는 이야기다. 나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할 수 있는 말도 없다.

 

 

 

*

 

연애와 사랑은 완전히 다르다. 치명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다름을 잊어버리고, 그 탓에 연애는 완전히 망하고 사랑은 치명타를 입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연애를 잘 안다/한다고 말할 때, 그 알고 하는 영역에서만큼은 사랑과 연애는 한 몸이다.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사랑은 사랑이고 연애는 연애라서, 연애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도 사랑에 대해 말할 수야 있지만 누가 형이상학적으로 사랑하고 연애할 수 있단 말인가. 연애와 사랑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관계와 그 관계에 투사되는 다양한 감정들은 모두 정치적/권력적/형이하학적이다. 그리고 정치적/권력적/형이하학적 공간에서 사랑은 연애라는 실천과 육체적으로 엮여 있다. 하여 이 공간에서 연애에 대한 앎은 사랑에 대한 앎이고, 연애에 대한 무지는 사랑에 대한 무지가 된다. , 우리가 하는 모든 사랑은 개별적인 사랑이고, 개별적인 사랑이므로 장소, 시기, 대상, 기분, 건강, 취향, 가치관, 미적 감각 등등 무수히 많은 구성 요소들의 조합에 따라 그 모양이 결정되고 또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실천 중인 사랑에 대한 100%의 앎이란 100%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게 초 단위로 자신의 각도를 180도씩 바꿀 정도까지 대책 없이 변화무쌍한 존재는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예컨대 180도씩 두 번 돌면 360도라는 사실이 변화에 관한 일종의 바운더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어떤 관계든 그에 관한 유의미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우리는 상대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 어디며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상대의 분노를 녹이는 만능열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최소한 떡볶이보다 불족발이 더 효과가 크다는 정도는 알 수 있다. 불완전한 지식이라도(어차피 모든 지식은 불완전하다) 유효하며, 감사하게도 충분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실천적으로 보면, 모든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연애(관계/대상)에 대한 앎은 사랑에 대한 앎과 분리되지 않는다.

 

바로 이 모순이 우리의 사랑과 연애를 어렵게 만든다. 연애는 사랑과 완전히 다른데도 연애에 대한 앎이 사랑에 대한 앎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오작동한다. 사랑에 대한 관념에 차이가 큰 두 사람 사이에 연애/관계에 대한 지식(그러므로 사랑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쉽게 망한다. 그리고 그 망함을 통해 우리가 원망하거나 반성해야 하는 것은 연애, 그러니까 사랑에 대한 실천적 노력의 부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사랑을 원망한다. 그래서 사람을 원망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더 어려운 길로 간다.

 

과연, 연애에 대해 모르고서 사랑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더 엄밀히 말해서, 내가 어떻게 연애하는 줄 모르고서, 내가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지면, 그리고 사랑이 망하면(이건 당연히 연애의 국면이다), 나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배우게 된다는 사실이 그 답이 되겠다.

 

 

 

*

 

그래서 syo라는 놈은 자기 사랑(자기 연애, 그러므로 일부분 그냥 자기)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

 

스물한 살 먹은 해, 첫 연애를 시작했다. 10월이었던가?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할 것들을 처음 가르쳐준 사랑이었으니 실효적 첫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그 이후로 정말 내가 생각해도 희한할 정도로 꾸준히 연애를 해오고 있는데, 처음 연애를 시작하고 15년이 조금 더 되는 시간 가운데 만나는 사람이 없었던 기간은 다 더해야 반년이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던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다.

 

연애를 오래, 혹은 많이 한 것은 하나도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건 연애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잘하는 거라 쳐도 개별적인 그 연애를 잘하는 것일 뿐, 모든 연애에 확장해서 적용하기에 쓸만한 지혜가 생기지도 않는다. 언젠가 장기간 연애를 하던 내게 갓 연애를 시작한 친구 놈이 상담을 청해와서 무슨 깨우친 자라도 되는 양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지만, 실제로 그 친구의 연애에 도움이 된 것은 내가 아니라 그 옆에 앉은 다른 친구(당시 짧은 연애 후 2년째 애인구함 상태)의 지나가는 한마디(터무니없었는데!)였다. 그런 무용함은 내수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앞 연애를 통해 얻은 연애에 관한 앎은 뒷 연애를 풀어 나가는데 도움이 거의 되지 않거나, 도움이 되는 만큼 방해가 되는 바람에 결국은 제로섬이거나 했다. 그럼 그게 다 말짱 헛거란 말인가, 15년 동안 한 거라고는 연애밖에 없는 나는 그럼 한낱 이산화탄소제조기였단 말인가, 하며 고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연애가 실제로 연애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애 바깥 영역에서도. 연애를 통해 얻은 상대방에 대한 지식은 다음 연애를 위한 지식이 되지 않았지만 연애하는 나에 대한 지식은 다음 연애를 위한 지식이 되었고, 그것은 다른 곳에서도 쓸만한 지식이 되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연애하는 모양새를 보며 나에 대해 배웠고, 철들고 나서부터는 거의 계속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연속적으로 나를 배울 수 있었다. 길고 부드럽게 배웠기 때문에 아프지 않게 배웠다.

 

내가 동성을(그러니까 동성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것도 연애였다. 그날 나는 평범한 데이트 중이었고, 그러니까 그날 그 오빠는 나를 왜 사랑해?”하는 질문 역시 처음 듣는 것도 아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을 듣고 동공에 지진이 나면 일이 점점 커질 수 있다는 것이야 공지의 사실이므로, 나는 멋있어 보이기 위해 몇 개의 답을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고 물을 때마다 다른 답을 해줄 수 있었다. 아마 그녀도 진심으로 궁금했다기보다 심심한데 이놈이 이번에는 무슨 번지르르한 말을 하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에서 물어봤던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건 일종의 유희였고 그날 대답 역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번지르르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저 아이를 사랑할까? 누가 공대생 아니랄까봐, 저 아이의 특성 중 없어도 내가 사랑하는 데 문제가 없을 부차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사상해나가는 기법을 이용해서 그 방정식을 풀어보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 아이가 여자라는 요소가 제외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다. , 나는 동성을 사랑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구나. 정확히 말하면 동성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쪽이 더 가깝겠다. 그래서 훗날에 내가 어떤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도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런 일에 놀라지 않는 자신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 게 여자를 사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르더라도 여자A를 사랑하는 것과 여자B를 사랑하는 것 사이의 다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다. 처음 그 사람과 키스 했을 때 내가 한 생각은, ‘남자랑 하는 키스는 이렇구나가 아니라 얘는 혀보다는 입술 쪽이구나였다.

 

폴리아모리에 대한 생각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나는 개개의 사랑이 개별적인 사랑이라면 두 개 이상의 사랑이 동시에 전개될 수 없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아버지와 나에게 있지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더 많이 사랑할수록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랑을 이렇게 구분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부모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 대상의 수와 무관하게 총량이 정해지지 않는데, 왜 연인에 대한 사랑은 그렇단 말일까? 연인에 대한 사랑이 육체관계가 개입된다는 특성이 있기에 독특성을 인정해야 한다면, 육체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연애감정, 연애감정과 분리된 육체관계, 그리고 연애관계가 육체관계를 독점해야 한다는 생각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자를 향한 연애감정이 생길 수 있는지와는 무관한 윤리학적 논쟁이 된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폴리아모리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그에 대한 증명도 당연히 연애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나는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있고, 그 두개의 사랑은 엄연히 달랐다. 달랐으므로 나는 그게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 사람을 사랑하는 내가 저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서 이 사람과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했지만, 최소한 내게 있어 유의미한 변화를 찾기는 어려웠다. 나는 언제나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순간에는 다른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해야 할 일, 미뤄놓은 업무, 읽어야 할 책, 앓고 있는 부모님, 망해가는 내 앞날 등등의 모든 외부의 것들을 까먹어버리고 눈앞의 저 사람과 지금 여기 이 순간만을 볼 줄 아는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놈일 뿐이었다. 똑같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것이라는 인식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했던 것은 물리적인 배분 이외에 딱히 없었다. 그와 만나는 만큼 나와 만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업무나, 행사, 인간관계로 인해 나와 만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보통(?)의 관계였다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추가적인 시간의 손실만큼 서운함이 들진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주 64시간 근무하는 여친을 만나면서 주 52시간 근무하는 다른 보통(?)의 연인을 만나는 사람들을 볼 때 생기는 감정 이상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어떤 조건일 뿐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과 섹스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이 만들어준다는 그 오르가즘을 나는 만들어주지 못하던 동안 질투심과 열등감 같은 것을 느끼긴 했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기보다 가부장제의 영향 아래에서 자란 내가 남자란 말이지~’로 시작하는 근본 없는 성관념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나하고만 섹스했더라도 내 퍼포먼스가 부족했다면 나는 비슷한 수준의 열등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녀가 나와 섹스하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나 아닌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걸 못 들은 척하던 나는 실제로 , 겁나 민망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오래 전, 다른 섹스 중에 복부가 압박되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뀐 여친의 방귀소리를 못 들은 척할 때 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내 자신이 폴리아모리스트라고 생각했고, 이웃님의 서재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이 책은 내게 실용서가 되리라고 짐작했다. 그러니까, 서울에 올라와 친구 과 둘이 살기 전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었던 것처럼, 이미 폴리아모리의 마인드는 확인한 내가 추후 다자연애를 하게 된다면 갖춰야 할 태도랄지 취해야 할 행동 양식이랄지, 뭐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저렇게까지 지나치게 나를 잘 아는 나도 모르는 나는 언제나 있다.

 

현재진행형 폴리아모리 에세이속 모든 페이지에는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관계에 대한 관념을 확장하기 위한 그들의 치열한 노력이 묻어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었던 도전과 위기들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고, 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그들이 느꼈던 고통이나 희열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새어 나온다. 나는 하나도 모르는 일들이었다.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폴리아모리스트라는 생각에 확신을 잃어버렸다.

 

 

 

*

 

나는 동시에 두 명을 사랑해본 적은 있지만, 동시에 두 명과 연애해본 적은 없다. 하나의 사랑은 연애의 국면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건 내가 바라지 않으면서 바라기도 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만약 그때 두 번째 사랑을 연애로 전환하려 시도했다면, 반드시 첫 번째 연애는 박살났을 것이고 사랑도 끝났을 것이다.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두 개의 연애를 하는 것은 다르다. 관계에는 반드시 정치적/윤리적 지평이 들어서야만 하고, 어느 윤리가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나에 대한 상대의 사랑을 볼모로 잡아 내 윤리를 강요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연애관이나 윤리를 상대에게 설득시켜 그것에 참여하게 할 의지도 역량도 자신감도 없는 자신을 잘 알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두 번째 사랑의 연애화를 포기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저 모노아모리 연애 중 다른 사람에게 흔들렸을 뿐인 사람과 나 자신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한 연애를 숨기고 다른 연애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걸 폴리아모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두 사람을 향한 마음이 진실이라고 하면, 그렇게 불러도 되는 것일까? 사실 폴리아모리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자체로 어떤 윤리적 면책특권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명사일 뿐이다. 하지만 명징한 관계와 그 관계를 위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떤 이름만큼은 획득하겠다는 시도는 종종 그 관계를 정당화(자기 내부에서만이라도)하려는 욕망에서 태어난다. 나는 한 연애를 숨기고 다른 연애를 해나가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윤리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폴리아모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중들이 떠올리는 어떤 문란한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하는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연애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건 그들의 일일 뿐이고, 그 자체로 내가 응원할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소한 나에 대한 나의 개념은, 내가 관계에 대한 노력의 경험도 없이,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다양한 국면들에 대한 이해도 없이, 아픔도 희열도 없이 그저 상상만으로, 그냥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내 자신을 폴리아모리스트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정도로 명확해졌다.

 

그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연애 없는 사랑은 상상이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관계는 관계라기보다 관계의 이데아에 가깝다.

 

박원의 <노력>이라는 노래에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라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은 틀렸는데, 그 노래에서 말하는 사랑은 노래의 시작 전에 이미 끝나있기 때문이다. 끝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끝난 사랑은 그냥 끝난 사랑이다. 사랑은 당연히 노력을 수반한다. 사랑이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개념은 사랑의 발생이나 사랑이 파생하는 어떤 감정들(끊임없이 퍼주고 싶은 마음들)에 대해서는 일견 진리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과정이고 그 과정은 관계라는 기반시설 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동안 끊임없이 그 관계를 유지보수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내가 밖에서도 관계 때문에 그렇게 노력에 노력을 하는데, 딱 하나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한테까지 그래야겠냐. 그 사람한테만큼은 기대면 안 되냐.” 라는 말을 했던 친구는 결혼을 했다.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얼마만큼이냐 하면, 노력하지 않은 만큼은 사랑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그 남은 사랑이 크고 충분할 만큼. 그건 내가 폴리아모리스트인지 아닌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폴리아모리나 모노아모리나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것 같다.

 

 

 

*

 

그러나 폴리아모리스트와 모노아모리스트는 획득한 역량에 차이가 있을 것도 같다.

 

일대일의 인간관계와 일대다, 혹은 다대다의 인간관계는 유지보수비용이 다르다. 한 사람과 대응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해 알면 되지만, 내 앞에 A, B 두 사람이 서면 나는 AB를 각각 알아야 함은 물론 AB의 관계도 알아야 한다. 그 관계란 더 복잡하게는 쪼개면 A가 생각하는 BB가 생각하는 A로 쪼개지고, 심지어는 ‘AB와 나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같은 몇 겹의 주름들까지 고려해야 할 일도 종종 생긴다. 그래서 일대다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일대일의 관계만 가지는 사람에 비해 양적으로 월등한 경험치를 쌓는다.

 

또한 같은 일대일의 관계라 해도, 예컨대 연인관계와 친구, 부모, 직장동료, 이웃을 대하는 방식은 제각각 다르다. 그 가운데 아마도 가장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는 관계는 연인일 것이다. 근본적으로,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을 놓고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사람은 연인뿐이다. , 같은 일대일 관계라는 가정에서,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다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에 비해 질적으로 독보적인 경험치를 쌓는다.

 

그 양적, 질적 레벨업이 동시에 일어나는 관계가 어쩌면 저 폴리아모리스트의 관계가 아닐까. 나는 이 책 속 세 사람이 자신들의 삶을 사랑과 관계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하는 것에 조금의 불만도 없다(그렇게 정의했던가?). 물론 그들이 자기의 삶을 걸고 어떤 실험에 돌입하려는 의지로 관계를 시작한 것은 당연히 아닐 테고, 그냥 사랑했고, 사랑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무겁고 불안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불투명한 여행길에서 그들이 획득한 가장 값진 것은 폴리아모리적 연애라는 어떤 형식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존하는 것을 지나 그다음에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관계들을 발견하고 열어젖히기 위한 체력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연애 밖에서도, 오히려 연애 밖에서 더 다양한 관계들을 만들고 또 부수며 살아간다. 시대와 환경은 틈만 나면 우리에게 새로운 형식, 새로운 내용의 관계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기존의 관계 틀을 갱신하라고 성화다. 때로는 그 요청들을 감당하기 버겁고 따라가기 지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이미 세상은 멈춤과 뒤쳐짐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작동하는 러닝머신이고, 설령 우리가 달려가길 멈추더라도, 멈춘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또 살게 하는 것 역시 관계다. 그러니까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잘 마무리하고, 또 아예 새로운 관계틀을 형성할 수도 있는 그런 역량들은 우리 삶의 기초체력이 된다. 그 체력, 나는 그걸 가지고 싶고, 그걸 훔치지 않고 합의된 관계 속에서 많은 것들을 통과하며 직접 길러내는 경험 영역 아래에서만 폴리아모리스트가 되면 좋겠다. 지금 내가 아는 나는 그런 나다.

 

 

 

*

 

새로운 삶을 향한 실험은 늘 필요하고, 늘 일어났다. 비록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루어졌을지라도, 실험이 없었던 시기는 없다. 실패는 다른 실험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결국 실험은 실패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실패하기도 한다. 그 사랑의 실패가 무서울 수도 있고 실험이 무서워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종종 무섭다. 하지만 실험이 무섭더라도, 그 무서운 실험을 하는 사람들까지 무서워하지 않아도 좋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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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1-20 17: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분명 같은 책을 읽었는데 논문을 쓰셨어요 syo님은 ㅋㅋㅋㅋ 더 말을 보태지 않아야 겠다. 그냥 겁나 노력해야겠다. ㅋㅋㅋ

syo 2021-01-20 17:22   좋아요 6 | URL
점심 딱 먹고는 자, 리뷰 하나만 쓰고 공부해야겠다- 했는데 지금 저녁 준비하고 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1-20 17: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이제 syo님한테 이 책 1번째 마니아 빼앗기겠다...시무룩...

syo 2021-01-20 17:23   좋아요 3 | URL
ㅎㅎㅎ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반님 마니아1번이 syo라는 사실을....
아, 그것도 옛날 이야기군요. 그 자리 다른 분께 뺏긴 게 벌써 언제야 ㅋㅋㅋㅋㅋ
부디 행복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1-20 17:29   좋아요 2 | URL
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로 2021-01-21 00:36   좋아요 2 | URL
반열님 무안하구나요. 이건 나도 아는 얘긴데 ㅎㅎㅎ😜😜😜

2021-01-20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0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1-01-20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발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222222222222222222x2222222222222222222222

syo 2021-01-20 20:03   좋아요 2 | URL
왜 글자를 읽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까요? ㅎㅎㅎ

2021-01-21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4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1-01-23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번 글은 엄청 길고 또 어렵군요.

그 사랑이라는 것이 범주가 넓기도 하고 반대로 좁기도 하고, 여기저기 다양한 종류로 구분하거나 묶거나 할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저는 그 폴리아모리스트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단순히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면 거기에 속하는 건 아니겠죠?

syo 2021-01-24 21:38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주저리주저리 써놨지만 저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ㅎㅎ
폴리아모리스트가 뭔지는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사랑하는 일은 자연적으로 어떤 태도나 책임 같은 것이 유발되는데 사람마다 그 태도와 책임의 크기와 방향을 다르게 설정하니까, 그래서 한 명만 사랑할 때도 사랑이 그렇게 복잡한 건데, 여럿 사랑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하려면 훨씬 더 고려할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을 것 같아요.

공쟝쟝 2021-01-2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쌀가마니를 푹 터뜨려버린 책이 분명하구요, 그렇다면 폴리아모리, 아모르파티~~~ (엥?)

syo 2021-01-24 21: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프사가 ‘아모르 파티‘랑 되게 잘 어울리는 그림인데? 작게 봐서 더 그런 듯 ㅋㅋ

다락방 2021-01-27 10:55   좋아요 0 | URL
나는 폴리아모리 관심 1도 없는데 ㅋㅋㅋㅋㅋㅋ 아모르파티에 현웃 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1-25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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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읽는지에 대해 많이 묻는다. 읽기의 장점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읽기란 그나마 허들이 낮은 활동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쓰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물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쓰기의 장점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쓰기란 간단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기 어려운 활동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왜 읽는지, 그 답을 찾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그게 정답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러나 왜 쓰는지에 관해서라면 나는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이는 상처를 극복하는 쓰기를 말한다.

 

말해지지 못한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곪다가 어느 작은 계기로 무너지기도 하고불현듯 터져 나오기도 한다언제나 긍정적이고 행복하기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상처와 슬픔절망을 말하기는 어렵다말하는 순간자신이 불행한 존재로만 보일까 두렵기도 하다그러나 글은 존재를 고정하지 않는다상처와 고통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글을 쓰고 나면그다음을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_ 13

 

또 어떤 이는 마모된 세상에 한 줌의 자유를 던져넣는 쓰기를 말한다.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존재를 자유하는 언어를 구사하고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내가 쓴 글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답이라고 여겨졌던 상식에 글쓰기를 통해 질문을 던지면그 질문은 파장을 일으켜 누군가의 실제 삶에 자유를 선물할 수 있다.

_ 61

 

또 누군가에게 글쓰기란 변화다.

 

나는 글의 고유성과 힘은 문장력 이전에 서사와 질문에서 나온다고 믿는다내가 통과해 온 시간을 말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기에 내 이야기를 쓸 때 글은 가장 고유해진다입간판 글을 통해서 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지만그 메시지가 읽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기엔 한계가 있었다보기 좋은 말옳은 말사이다 발언은 껌처럼 잠시 달게 씹을 수 있어도 나 자신이나 타인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_ 117

 

또 누군가에게 글쓰기는 공감이며,

 

글은 내 세계로 타인을 초대하고타인의 삶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나는 더많은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썼으면 좋겠다그 문을 통과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닿고 싶다순전히 독자로서 내 욕심이기도 하다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상상이 될 수 있다상상은 머리가 아니라 다양한 몸의 구체적 서사에서 시작되니까.

_ 121

 

냉정한 자기 인식이다.

 

글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그 점이 나는 두렵다혼자 쓰고 읽는 일기와는 다르게 타인에게 글이 읽히면 내 한계가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가감 없이 드러나는 내 인식의 한계를 접할 때마다 멈칫하고내가 쉽게 타인의 고통을 글의 기폭제로 이용할까 봐 긴장한다때로 글은 삶을 쉽게 왜곡하고비틀고조롱하니까언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한계를 폭로하고 해체하는 글쓰기는 가능할까.

_ 141

 

그렇다면 나의 쓰기는 나에게 무엇이 될까.

 

내가 글로 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들의 목록이다.

 

나는 싸우지 않는다.

나는 자랑하지 않는다.

나는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극복하지 않는다.

나는 주지 않는다.

나는 고치지 않는다.

나는 이기지 않는다.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반면 내가 글로 하려고 애쓰는 것은 딱 하나라서 목록이 없다. 나는 나를 만든다.

 

나는 내가 사랑을 탐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찍 알아챈 총명한 아이였다. 남다르고 싶은 욕심은 사랑받고 싶은 더 큰 욕망의 조악한 가면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내 세상이 넓어지는 만큼 충분히 남다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이 괴로워하던 나의 모양새는 사랑을 잃은 사람의 몸부림과 닮아 있었다. 사랑을 받는 동안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지만, 사랑을 잃으면서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나는 나를 새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때는 그런 것이 필요한 줄도 몰랐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고른 방법은 우연히도 읽기였고, 뜻밖에도 쓰기였다. 그리고 우연히도 뜻밖의 내가 만들어졌다. 나는 나를 썼고, 내가 쓴 내가 나를 만들었다. 그것 외에 나를 만든 것이라면 더는 다른 모습으로 에두르지 않고 직접 육박해왔던 사랑들을 꼽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하기 전, 하는 중, 하고 난 후의 그 모든 사랑의 순간들에 대해서조차 써야만 했고 썼다. 나는 쓰는 내가 좋았고, 쓰는 나를 사랑해주는 그 사람들이 좋았다. 좋은 것들이 내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나를 빚었다. 그 마음들을 잊지 않겠다고 썼다. 써야만 했다. 그렇게 써야만 하는 줄도 모르고서. 때론 글이 나를 앞섰고 때론 내가 글을 앞섰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내가 되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내가 되었다. 나는 기어이 내가 쓰는 내가 되었고, 아직 쓰지 못한 내가 되기 위해 기어이 썼고, 내가 쓰는 것들을 끝내 사랑하는 내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와 싸웠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상대가 오롯이 나였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자랑하거나 가르치려 들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글들을 오직 나만 읽었기를 바란다. 나는 글을 글을 쓰면서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했을 것이고 그 사람이 준 상처들을 극복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글들은 거기서 효용을 다하고 재처럼 화석처럼 흔적만 남았기를 원한다. 내가 고친 것은 나 말고 없었으면 좋겠고, 내 모든 승리는 내 안에서만 이루어졌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나를 더 많이,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싶다. 내가 사랑을 탐내는 사람이라는 걸 일찍 알아낸 총명한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내게 가장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걸 똑바로 아는 어른으로 컸다.

 

내가 아는 나는 쓰는 걸 좋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틈만 나면 헛소리를 해대고 끝없이 개소리를 뱉을 셈이다. 내가 쓰는 글을 몇 명이 읽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 글을 처음 읽는 사람이 바로 나인 동안에는, 나는 계속 글을 쓸 작정이다.

 

나는 언어의 힘과 한계를 믿는다. 그것들이 앞뒤에서 나를 밀고 갈 것이다. 언젠가 나는 어딘가에 닿을 것이고 거기가 어딘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곳이 내게 좋은 곳이고 나다운 곳임을 이미 믿기에 쓰는 일을 겁내지 않는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도착하면 좋겠지만, 그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에게 좋은 자기다운 곳에 가 있겠다면 그쪽이 나는 더 좋겠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들이 전부 어느 만큼씩은 나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결국 나의 글쓰기는 이유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일지도. 이처럼 가볍고 사적인 이유만을 가진 나니까 오히려 더 쉽게 할 수도 있겠다 싶은 말을 기어이 하자면,

 

당신이 쓰는 글이 당신을 데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거기가 어딘지 아는 당신과 모르는 당신, 혹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는 당신까지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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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1-18 0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홍승은 이 책 좋았는데 그거 읽고 쓴 이 리뷰는 더 좋네요. 같은 걸 읽어도 쓰는 수준이 난 부끄러운 수준ㅠㅠ올해 첫 리뷰 잘 읽었습니다. 계속 더 많이 써 주세요ㅎㅎ

syo 2021-01-18 10:00   좋아요 2 | URL
별말씀을 다하시는구나. 아침에 다시 읽고 이불킥 팡팡팡했답니다.

붕붕툐툐 2021-01-18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멋있다!!👍

syo 2021-01-18 10:01   좋아요 1 | URL
😎 ㅎㅎㅎㅎㅎ 나 그대로 믿는다? 믿어요? ㅎㅎ

붕붕툐툐 2021-01-18 12:36   좋아요 2 | URL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하나 2021-01-18 1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쓰는 글이 당신을 데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syo님!! 멋있다!! 👍👍

syo 2021-01-18 13:12   좋아요 1 | URL
오늘 벌써 3엄지 획득했네요. 웬일이래 ㅎㅎㅎㅎ

라로 2021-01-1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syo 2021-01-19 11: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빠바박 쓰고 계시는구나!

공쟝쟝 2021-01-1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어 느무 근사한 페이퍼라 말잇못.. 저마다 자기에게 좋은 자기다운 곳으로... 가자 가자 우리 같이가요~~~

syo 2021-01-19 11:5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막상 또 가자 가자 같이가요 하니까 어쩐지 낯가리게 된다? ㅋㅋㅋ

공쟝쟝 2021-01-19 13:46   좋아요 0 | URL
각자 가자고 ㅋㅋ

syo 2021-01-19 14:54   좋아요 0 | URL
그럽시다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1-19 15:20   좋아요 0 | URL
각자 도달한 그곳에서 멀리서 안부를 묻자 오겡끼데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