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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시작되었다. 빨간 날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배치의 기쁨과 슬픔을 논하려면 우선 빨간 날과 검은 날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 그러니까 검은 날 아침에(혹은 그 하루 중 그 어떤 시간이라도)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예를 들면 학생이랄지 직장인이랄지 뭐 그런 신분이어야 하는 것이다. 365일이 휴일이었던 1년과 그 전의 1년과 또 그 전의 많은 1년 들을 거쳐오는 동안 연휴에 대한 개념원리가 흐려졌던 syo였는데, 일(은 아니고 아직까지는 일 비스무리한 것)을 시작하면서 단숨에 잊고 살았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래, 연휴란 이런 것이었지. 아오, 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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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도 그러한가?
워낙 일 이슈가 지배적인 이 나라의 담론 구조상, 일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조차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추론할 수 있고, 심지어 어떤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자기가 일을 하며 겪었던 양 호들갑스럽게 묘사하며 듣는 사람을 속여 넘길 수조차 있다. 일에 대한 경험을 얻기 위해 일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은 일과 일을 둘러싼 사건, 감정, 정치, 관습과 윤리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일이 임금노동과 동일시되고 가정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일은 ―대표적인 사적 영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공적인 것으로 여겨지기가 쉬워졌다. 하지만 여기에 내가 일의 사유화라고 부르는 과정을 일으키는 기제들이 추가로 작동한다. 첫 번째 기제는 물화物化다. 오늘날 "생계를 꾸리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기보다는 자연 질서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그 결과, C. 라이트 밀스가 썼듯이 우리는 의무로서의 일, 시스템으로서의 일, 삶의 방식으로서의 일보다는 특정한 일자리, 혹은 일자리 부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인용구에서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것처럼, 노예가 "처음에는 자신의 군주가 권력을 누린다는 사실에 불평하지 않고, 다만 군주의 폭정에 불평"하듯이, 우리는 이런 사장, 저런 사장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뿐 사장에게 그런 권력을 준 시스템에 주목하지 않는다.
_ 케이시 윅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14쪽
백수의 왕이라 불리었던 syo의 그 길고도 길었던 제위 기간 동안에 그가 많이 한 생각들은 대충 이랬다. 나는 왜 가난할까? 취직을 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왜 취직을 하지 못했을까? 능력이 없으니까. 나는 어떤 인간일까? 취직을 하지 못한 인간. 취직을 하지 못한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가난하고 능력 없는 한심한 인간. 뭐가 뭔저고 뭐가 나중인지도 모를 이런 생각들을 뺑뺑이 돌리며 자아를 돌려깎는 동안, 왜 이런 생각들은 아예 할 수 없었던 걸까? 나는 왜 가난할까? 물려받은 부동산이 없으니까. 나는 왜 취직을 하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노동 말고도 신나고 재미나는 일들이 너무너무 많으니까. 나는 어떤 인간일까? 취직을 하지 않은 인간. 취직을 하지 않은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뭐 그게 이런 인간 저런 인간으로 정의할 만큼 특별한 일인가 싶네.
모이시 포스톤Moishe Postone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와 서비스가 분배되는 구체적 메커니즘은 사회 관습이나 정치권력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임금노동의 사회적 역할은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으며, 땜질할 수는 있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고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아래의 노동이 갖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기능을 명확히 하고, 동시에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이 노동의 산업적 형태와 자본주의적 관계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을 문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노동을 공적인 것이자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사적인 것으로, 개인적으로, 존재의 조건으로 만들려는 압력, 그 결과 탈정치화하려는 압력에 맞서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_ 케이시 윅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19쪽
포이어바흐는 헤겔과는 상이한 개념 구도를 통해 헤겔의 곤경을 돌파하고자 했다. '인간' '유적 본질' '소외'가 그것이다. 그의 비판은 기독교의 본질을 분석하며 제시한 '종교가 인간의 유적 본질의 소외'라는 테제에 가장 잘 드러난다. 인간의 유적 본질이 소외되어 대상화 된 실체가 종교이며 그것이 다시 우리를 지배하는 관계에 놓인다는 사실이 종교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임에도, 인간은 자신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본질을 대상화해 낯선 실체로 투사함으로써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낯선 존재인 신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가 형성된다. 이로써 이제 종교에 의해 지배받는 인간이라는 구도가 해명된다. 이렇게 인간은 본래 자신의 본질이었던 것을 외부로 투사해 낯선 것으로 만든 다음 그 낯선 것의 지배를 받는데, 그것이 바로 소외이다.
이러한 종교 비판의 핵심은 '인간을 깨우친다'는 것이다. 이 소외론의 구도는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마르크스의 국가 비판의 틀로 옮겨져 활용된다. 종교 비판을 통해 '천상에 대한 비판'이 '지상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헤겔의 주장처럼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고, 그것은 특수한 것으로서의 시민사회를 지양하는 보편국가 속에서 그 보편성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종교의 소외 구도처럼 역으로 국가는 오히려 인간 본질의 실현인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그 본질을 낯선 것으로 만들어 투사한 외적 실체가 됨으로써 인간들을 지배하는 소외된 대상이 된다. 이제 과제는 국가를 해체하고 시민사회 속에서 인간의 유적 본질을 실현하는 일이다.
_ 백승욱, 『생각하는 마르크스』 117-118쪽
천상의 비판을 지상의 비판으로 끌어오고, 노동을 당연한 것, 사적인 것, 존재의 조건으로 만들려는 악독한 놈들의 시도에 맞서서 마르크스는 싸웠다. 그런 그조차 노동 그 자체,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음영에 포획되어 네 가지 방식으로 소외된 노동 너머의 진정한 노동을 어떤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건, 노동을 인간이 세계를 파악하고 자신을 정립하는 필수적 수단으로 보는 헤겔의 후계자로서 당연한 입장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보면, 한 하늘을 이고는 살 수 없는 존재들이 각각 신봉하는 대상인 베버와 마르크스 사이에, 뜻밖에 닿는 부분이 있는 셈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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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하려는 가장 큰 일은 노동윤리의 폭파인 것 같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라는 질문은 ‘겁나 오래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이노무 각박한 세상 ㅈ까라 그래!’하는 자본주의 비판에서 멈춰서는 게 아니라, ‘입에 풀칠하는데 노동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단 말이냐?’하는 식으로 노동윤리 자체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더 읽어봐야 하겠지만.
기본소득 이야기가 이어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못하게 하는 말씀이 세상을 오래 풍미했고, 노동의 대가로서의 소득을 기본값으로 놓는 풍조(따라서 불로소득이라는 말에는 어떤 음흉하거나 비겁한 이미지가 슬쩍 묻어 있기도 하다)는 풍조가 아니라 신조에 가깝다.
일하지도 않는 것들한테 퍼주면 무너지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세상이 무너진다는 말의 역사다. 반상의 법도가 무너지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어쩌고저쩌고 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당대에는 최고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었고,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가장 근접한 인간들이었다. 이런저런 혁명과 진보와 새로운 지식 들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시대가 왔고, 에피스테메가 교체되고 나니 그들이 기반했던 지식과 사상은 더없이 낡은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는 오늘날 도리어 반상의 법도가 일찌감치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의 근간이 흔들렸던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늘 그런 일이 벌어진다. 오늘의 도그마dogma가 내일은 독사doxa로 밝혀지고, 후대의 사람들은 전 시대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고 비윤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들을 신봉하고 살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다. 지금 추파춥스를 쪽쪽 빨며 어린이집에서 블록을 쌓고 있는 아이들 역시 나중에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똑같은 표정을 지을 거라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syo가 페미니즘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그에 대한 판단을 계속 유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 물결은 신분 철폐, 노예제 철폐, 인종차별 철폐 등 각종 철폐의 성공적 역사(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와 너무도 닮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건 결국 이렇게 될 일이다 싶어서, 후대의 눈에 이해 못 할 조상님으로 남고 싶지는 않아서.
노동윤리 역시 어쩌면 같은 과정을 밟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이 책을 읽어나간다. 기술과 사회제도에 관한 많은 책들을 버무려 읽어야 나올 답이겠지만, 이 책에는 이 책의 역할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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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syo 역시 노동은 해야 하는 한 마리의 슬픈 짐승일 뿐이라서, 며칠 전 연수원 동기에게 마니또 선물로 이 책을 건넸다.
"지금 뭐라고 했어?"
"축의금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해. 그까짓 오만원 내가 내준다고."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그깟 오만원 아끼려고 내가, 이러는 것 같아?"
어째서인지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원이 더 비싸다는 거.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바쳐야 한다는 거. 디즈니 공주님 같은 찰랑찰랑 긴 머리로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빚쟁이들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뭐라도 트집 잡아 깎아내린다는 거. 그걸 빛나 언니한테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는."
구재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구나, 그래서 쟤가 화가 났구나,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 알아듣겠다는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결혼 준비하는 내내 지겹게 봐온 눈빛이었다.
_ 장류진, 「잘 살겠습니다」
눈물을 닦고, 아무튼 잘 살자, 동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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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