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은 ---



256. 사조영웅전 2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사조영웅전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가 전설의 무공비급 <구음진경>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치열한 욕망이다. 물론 그런 무공이 결국 주인공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무협의 국룰.

 

오늘은 그 <구음진경>의 일부를 훔쳐내 불완전한 무공을 익혔다가 남편(주인공 곽정이 엉겁결에 비수를 찔러 죽였다!)과 함께 사악한 존재의 대명사로 강호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어느 여인의 슬픈 사연을 한번 들어보자.

 

난 원래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소녀였지. 부모님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랐어. 그땐 이름이 매약화梅若華였어. 불행히도 부모님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신 후 나쁜 사람들에게 많은 고초를 당했는데…… 사부이신 황약사께서 나를 구해 도화도로 데려가 무공을 가르치고, 이름도 매초풍으로 바꿔주셨어. 사부님의 제자들은 모두 풍자 돌림이었거든. 진현풍이라는 사형이 있었는데, 눈썹도 진하고 눈도 컸지. 붉고 잘 익은 복숭아를 따주기도 하고, 무공도 가르쳐주면서 나를 극진히 대했어. 때론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심하게 야단치기도 했지만 모두 나를 위해서라는 걸 난 알고 있었어. 사형이 제2대 제자였고, 난 제3대 제자였지. 우린 함께 무술 연습을 하며 자랐는데, 그러면서 은연중에 사형의 마음속엔 내가 있었고, 내 마음속에도 사형이 자리 잡았지. 그러던 어느 봄날 저녁, 복사꽃이 만발하게 핀 날 복숭아나무 밑에서 사형이 갑자기 나를 꼭 껴안았어.”

_ 김용, 사조영웅전 2

 

아오, 풋풋해라! 꼭 껴안고 거기서 땡 했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 그게 될 턱이 있나.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그다음 진도를 빼버린 바람에 그들은 이제 사부한테 걸리면 팔다리 잘릴 판이다. 사부라는 황약사는 동사서독할 때 바로 그 동사東邪인데, 보시다시피 동사의 저 사악하다할 때도 쓴다.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잃은 후 한층 더 개차반이 된 동사가 행복한 부부의 꼴을 연출하는 매초풍과 진현풍을 보며 허허 그래 이렇게 된 마당에 너희라도 만발하게 핀 복숭아나무 밑에서 성실하게 물고 빨고 막 행복하렴, 하며 그들의 사랑을 응원해 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나도 알겠는데 그들이 몰랐을 리가. 그래서 그들은 은밀히 도화도를 나오기로 결심하고 그때 <구음진경> 하권을 훔쳐 도주. 그런데 상권 없이 하권만 가지고 나왔더니 기초도 내공도 다질 길이 없었던 거라, 결국 사람의 백골을 가지고 연공하는 사악한 방법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진현풍과 매초풍은 흑풍쌍살이라는 무시무시한 악명을 얻고 강호를 떠돌면서 사람을 죽여가며 불완전한 무공을 익히다가 곽정과 그의 일곱 사부를 맞닥뜨린 것. 이미 원수지간이었던 그들은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고, 그 아비규환의 와중에 진현풍에게 사로잡힌 어린 곽정이 비수로 찔러 그를 죽여버린 것이다. 결국 매초풍은 죽어가는 남편을 안고 도망치는데…….

 

눈앞이 갑자기 캄캄해지면서 전혀 앞을 볼 수가 없었지. 남편이 말했어. ‘난 이미 틀렸소. <구음진경>은 가슴에…….’ 이것이 남편의 마지막 말이었어. []

  난 빗속을 뚫고 미친 듯이 달렸어. 처음엔 남편의 몸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는데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더군. 나도 점점 추워졌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 ‘당신 정말 죽은 거예요? 그렇게 무공을 익혀놓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거예요? 누가 당신을 죽였죠?’ 난 그렇게 울부짖으면서 남편의 배에 박힌 비수를 뽑았어. 피가 뿜어져 나왔지. 나도 남편을 따라 죽기로 결심했어. 내가 옆에 없으면 남편이 저승에서 얼마나 허전하겠어? 난 칼끝을 혀 밑에 갖다 대었어. 혀 밑이 내 급소, 즉 연문이거든. 그때 문득 칼에 새겨진 글씨가 만져졌어. 자세히 더듬어 보니 양강이라고 새겨져 있더군. , 양강이라는 자가 죽였다고 확신했지. 이 원수를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어? 죽더라도 우선 양강이라는 자를 죽이고 나서 죽어야지. 그래서 남편의 품속을 더듬어 <구음진경>을 찾았지. 그런데 온몸을 뒤져도 책은 없었어. 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시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의 가슴을 더듬을 때 문득 피부가 좀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

  회상이 이에 미치자, 목에서 고통 어린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마치 비가 퍼붓던 그날, 황량한 그 숲속으로 되돌아가 있는 듯했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세히 만져보니 가슴 피부에 깨알 같읕 글씨와 그림이 새겨져 있었어. 그렇게 걱정하더니 결국 책 내용을 바늘로 가슴에 새겨놓고 책을 없앴던 거야. 사부님같이 대단한 분도 책을 빼앗겼잖아? 가슴에 새겨두면 그가 살아 있는 한 책도 그의 것이 되는 셈이지. 난 칼로 남편의 가슴 부분의 가죽을 벗겨냈어. ‘잘 보관할게요. 이것이 있는 한 난 당신과 함께 있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이제 슬프지 않았어. 그런데 갑자기 누가 하하, 웃더군. 웃음소리가 너무 음산하고 공포스러웠어. 알고 보니 내가 웃고 있더군. 난 손으로 땅을 파고 남편을 거기 묻었어. 남편이 내게 구음백골조를 가르쳐줬는데 결국 그걸로 남편을 장사 치른 셈이지.

_ 같은 책

 

이 모든 게 황약사 그 도른자가 제자들의 섹스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이다! 내 와이프 죽은 이후 도화도에 더이상 섹스는 없다? 아아, 청춘 남녀들이 응? 복숭아 꽃 막 떨어지는 아름다운 섬에서 응? 땀 흘려 무공을 익히다 보면 눈도 맞고 막 그러는 게 섭리 아니냐고 이 양반아. 거스를 걸 거슬러야지……. 그렇게 섹스에 엄하게 굴었지만 정작 자기 딸 황용은 이제 곽정하고 섹스해서 딸 낳고, 그 딸은 또 후속작 신조협려 주인공 양과하고 섹스를 못 한다고 양과의 팔을 칼로 잘라버릴 것이다……. 못하게 하지 맙시다. 그것은좋은 것이다あれはいいものだ

 

 

 


257. 얼어 죽어도 아메리카노

이솜 지음 / 필름(Feelm) / 2020

 

쪼꼬파이 먹으려고 교회 갔다가 엉겁결에 취미 붙여서 주말마다 일독을 거듭, 결국 전역 전까지 최소 20번은 읽은 syo의 최애 <전도서>에 이르기를,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하시었다(전도서 19). 수없이 곱씹어 봤지만 여전히 그 말은 뭐랄까, 좌절과 위안의 샴쌍둥이 같은 느낌이다. 내가 쓸 모든 글들이(심지어 읽을 것들도) 이미 와 있으리라는 준엄한 경고. 어차피 뭘 써봐야 반복일 뿐인 마당에 글 같은 거 써서 뭣하냐고 따지는 냉소쟁이 장남과, 어차피 이미 한 일을 다시 하는 처지이기는 나같은 설치류나 도 선생님 톨 선생님 같은 공룡이나 똑같은 셈이니 신경쓰지 말고 계속 써내면 된다는 둔한 막내 놈이 멱살 잡고 싸우는 꼴을 두손 묶고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경이 되어 전도서를 읽는 동안, 전투복 입은 까까머리 아이들은 설교 공격을 귓등으로 빗겨 흘리며 격하게 졸고 있고……. 정말이지 헛되고 헛되고 헛된 주말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전부 이미 세상에, 심지어 나무 많이 있다는 것을 같은 장르의 책 몇 권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 권을 더 세상에 내놓는 기분에 대해 짐작하다 보면, 결국은 전도서 생각에 도달한다. 그리고 답은 없다. 내 선에서는 그냥, 읽을 때는 조금 더 너그럽게 넘어가고(허허, 좋은 말씀이면 되었지) 쓸 때는 최대한 가혹하게 쪼아보는(단어! 어순! 조사! 문장! 문장! 문장, 임마!) .

 

우리는 때때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쉽게 말하곤 한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고. 가깝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배려와 다정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_ 이솜, 얼어죽어도 아메리카노

 

 

 


258. 인생 사용법

존 러벅 지음 /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8

 

좋지만 무난한 격언 말씀에 그친다. 이 책보다는, 그렇지, <전도서>를 추천해본다. 그 책은 정말이지 굉장한 <인생 사용법>이다.

 

평생 아무런 슬픔도 겪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빛이 있다면 반드시 그림자도 있는 법이니까. 장미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불평하기보다 오히려 가시가 꽃을 보호해준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은 없으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도 피할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복잡다단하고, 이 세상은 여전히 너무나도 어리숙하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존재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과 힘의 본질과 특성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슬픔과 고통을 예견하고 있어야만 한다.

_ 존 러벅, 인생 사용법

 

마지막 문장은 좀 괜찮은 것 같다. “그러니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슬픔과 고통을 예견하고 있어야만 한다.”

 

 

 


259. 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

 

말재간 없고 무뚝뚝한 남자가 조용한 블로그에 쓰는 글 같은 문체라서 그 속을 헤엄쳐 지나가기가 수월치 않았다. 일본 에세이에서 자주 보는 바로 그 말투…….

 

어쩌라고- 하는 감각이 없지 않다. 인물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왜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사는 게 다 이해하기 어렵고 알 수 없는 것들이긴 한데…… 생각해 보면 온다 리쿠는 아주 예에에전부터 syo하고는 안 맞았다.

 

혹시나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한 대목 옮겨본다. 스키마와라시가 대체 뭥? 싶으신 분들에게 설명도 좀 하고. 꼭 흥미를 유발하거나 설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그럼 스키마와라시는 어디에 깃들어?”

  나는 그렇게 물었다.

  스키마와라시. 한자라면 틈 극자를 써서 극간동자隙間童子일까.

  갑자기 기묘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벽장 아랫단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상자 옆 좁은 공간에 누군가가(물론 아이다)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다.

  호리호리 가늘고 긴 팔다리가 보이지만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글쎄다. 굳이 말하자면 사람의 기억일까.”

  형은 생각하며 대답했다.

  예상한 대답과 달라서 나는 당황했다.

  “기억에 깃들다니, 어떻게?”

  “지금 이야기처럼.”

  형은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사람과 사람의 기억 사이에 깃드는 거야.”

  형이 검지를 머리에 가져다 댔다.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기억을 맞춰가는 동안에 그 녀석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지. 무언가를 떠올리려 하면 정말은 없었던 그 녀석이 서서히 존재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혹시 그런 녀석 없었어?’, ‘있었지?’, ‘맞아, 있었어. 그런 녀석.’ 이런 식으로. 화제가 되면 될수록, 사람이 늘면 늘수록 그 녀석의 존재는 더욱 확실해지지.”

  분명 그 녀석은 있었다.

  “모두가 사실이라고 공유하면 그 녀석은 존재했던 것이 돼.”

_ 온다 리쿠, 스키마와라시

 

 


260.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

 

만화, 웹툰, 웹 소설 같은 것에 잠시만 피폭되어도 우리는 바로 알 수 있다. 참신한 상상력, 독특한 구성 능력을 지닌 사람이 세상에 참 많구나. 나는 소설이라고는 웹 소설만 읽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걸 몇 개 읽고 나면, 어지간한 이야기는 다 밍밍해지고, 어지간한 상상력은 다 불충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의 그 느슨한 설정들! ‘꿈을 파는 백화점이라는 상상력이 참신하게 느껴지신다면 당신은 아직도 행복할 기회가 있습니다. 부디 너무 이른 시기에 만화, 웹툰, 웹소설을 만나지 마시기를.

 

그런 걸 떠나서, 문장 자체의 미숙함도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

 

내가 몇 마디 했더니 글쎄, 자기들만 날아다니는 꿈은 만들 수 있으니 물건 끊기고 싶지 않으면 참견하지 말라더군요.

_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자기들만 날아다니는 꿈은 만들 수 있으니라는 문장의 어디가 문제인지를 배우는 것은 아마 중학교 때쯤이 아닐지. 저 문장이 등장인물의 발화이며, 그 말을 하는 인물이 지금 살짝 흥분 상태라 어순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개연성 있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면 좀 더 티를 내야 한다. 저 인물은 지금 한 따옴표 안에 열 문장에 달하는 말을 하고 있는데, 나머지 문장들은 전부 구어를 모사하는 소설적 구어체의 일반 공식에 최대한 부합하고 있다. 작가가 의도한 말실수가 아니라는 것.

 

2권은 읽지 않아야겠다.

 

 

 


261. 세상에서 가장 쉬운 회계학

구보 유키야 지음 / 안혜은 옮김 / 2015


- 일독(1804xx)

- 재독(210802)




 


262. 만화 경제학 강의

조립식, 조윤형 지음 / 길벗 / 2018

 

 

 

--- 읽는 ---

슬픔이여 안녕 / 프랑수아즈 사강

사조영웅전 3 / 김용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 리디아 더그데일

필요가 피로가 되지 않게 / 안나미 아쓰시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 / 양자오

글쓰기의 쓸모 / 손현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인생 수업 / 법륜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 이수영

벽이 만든 세계사 / 함규진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 도나 저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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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8-03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262권…저는 올해 내내 읽어도 그 반절 읽을까 말까 한데…

syo 2021-08-03 10:04   좋아요 3 | URL
불의의 타격을 받아 조금 지체되었지만 탄력을 얻어 치고나가는 중입니다..... 500권 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어렵겠네요.....

독서괭 2021-08-03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것은 좋은 것이다.. ㅋㅋㅋ 그걸 막은 게 이런 비극의 시초가 되다니. 정말 안 막아야겠네요.
반년동안 250여권을 읽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syo님의 올해 실적이 기대됩니다!

syo 2021-08-05 10:59   좋아요 0 | URL
400권으로 하향조정했습니다......😥

이하라 2021-08-03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못해서 팔을 자른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그리 생각하니 욕구 불만이란 게 살벌한 거였네요. 인용하신 문장만으로도 김영사의 김용소설 번역이 몰입감있고 유려하다는 게 느껴지네요. 김영사의 새로운 번역본으로 다시 한번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포스트입니다.^^

syo 2021-08-05 11:01   좋아요 0 | URL
물론 100퍼 못 해서 자른 거라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만 ㅎㅎㅎ

저는 해적판이나 다른 번역판을 읽은 적이 없어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꽤 괜찮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붕붕툐툐 2021-08-03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번 넘게라닛! syo님의 전도서 사랑이 엿보이네용~ 그리고 해석도 탁월해용! 자기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너그러운 거 넘 어렵죠?(전 둘다에 매우 너그러운 타입~ㅋ)

syo 2021-08-05 11:01   좋아요 0 | URL
전도서 너무 유려합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헛되고 헛되고 헛 헛 헛-

바람돌이 2021-08-0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조영웅전 사랑담은 무협지인가 했더니 엽기무협인가요? 남편의 가슴가죽을 벗기고 이것이 있는 한 나는 당신과 함께 있는거라니.... ㅎㅎ 우리 풍씨가 원한 것은 무림비급일까요? 남편의 가슴쪽 피부였을까요? ^^

syo 2021-08-05 11:03   좋아요 0 | URL
못지 않게 기이한 이야기들이 꽤 나옵니다.
특히 사랑에 얽힌 것들이라면.....
연애 이야기에 환장하는 syo가 김용 선생님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또 그렇습니다.😍

공쟝쟝 2021-08-03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나게 여름에는 안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라서 안된다 그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다 안된다 댓글달고 왔는 데... 알라딘 내의 황약사가 나였구나... 아니... 아니.. 내가 사부라니... 내가..내..가 사부라니..!!...(내가 ㄱㅈ라니 버전으로)

syo 2021-08-05 11: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회적으로는 거리두기 하고 사랑적으로는 거둬두기 하겠다!

단발머리 2021-08-03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전도서 좋아해요.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전 12:12)

공부 많이하면 피곤합니다ㅋㅋㅋㅋ 물론 많이 안 해도 피곤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8-04 13:56   좋아요 0 | URL
그럼 어떻게 해야해요.... 공부 해요? 공부 그냥 관둬요?

syo 2021-08-05 11:07   좋아요 0 | URL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수이 2021-08-05 13:11   좋아요 0 | URL
쇼님이 놀래요 ㅋㅋㅋㅋㅋ
 

  

Rehabilitation

 

 

 

그냥 숨만 쉰다. 그것도 일이다. 가만히 사는 것도 가만히 있으면 절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한번 궤도를 세게 이탈하고 나면 다시 무심無心과 상심常心을 찾기 위해 재활이 필요하다. 하루에 몇 통씩 전화를 받는다. 어제는 엄마 옷들을 수거함에 내놓는다고 잠깐 핸드폰 없이 나간 사이에 누나가 나한테 전화 2, 동생에게 전화 1번을 했던 모양.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울리는 전화를 동생이 받았더니 대뜸 왜 전화를 안 받냐고 소리를 높이는 누나. 둘 다 안 받아서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다고.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저 사람들은 정말 우리를, 특히 나를, , 아니 하나도 모르는구나 싶었다.

 

syo에게 슬픔은 무작정 부딪혀가며 이겨내는 것도 아니고, 슬픔 바깥의 다른 것에 몰두하며 이겨내는 것도 아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은 슬픔 속에 길을 낸다.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슬픔, 가치 있는 슬픔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만의 방법으로 길을 내어 그 안에서 슬픔을 걷는다. 식어가는 엄마의 몸을 만지며 실컷 울다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도리어 서글픈 영정을 바라보다가, 엄마의 가루를 폭넓은 붓으로 쓸어모아 유골함에 담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syo는 생각했다. 나는 이 장면을,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마음을,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마음을 둘러싼 풍경을,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마음을 둘러싼 풍경이 멈추어 있는 이 순간을, 언젠가 쓰게 될 거라고. 그 지면이 종이일 수도, 픽셀일 수도, 혹은 내면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이 순간은 쓰일 거라고. 그것은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그렇게 될 거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순간을 문장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모든 번역은 읽기 위해 이루어지듯, 번역된 슬픔은 견뎌지는 것. 그것은 슬픔의 팔다리를 자르거나 입을 틀어막거나 아름다움을 위해 슬픔을 남용하는 일이 아니라, 슬픔에 길을 내어 언제고 그 길을 걸어낼 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자신을 쓰는 사람이라고 믿는 이가 슬픔 속에 사는 방법은 이렇다.

 

내가 번역한 나의 슬픔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

 

때로 그것에 울고 격침될 수 있겠으나, 한번 난 길이 반복해 걸음으로써 더 분명한 길이 되듯이, 슬픔은 슬픔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나는 조금 더 선명한 사람이 되어 살 것이다.

 

 

 

--- 읽은 ---



251. 도시를 걷는 문장들

강병융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

 

슬로바키아의 수도는 브라티슬라바. 슬로베니아라면 이런저런 책을 통해 파편적으로 귀에 익힐 기회가 있는 류블랴나(수도다)라는 도시 하나 정도 알고 있어도 많이 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데, ‘프투이라는 도시도 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에는 폴리트비체라는 곳이 있고, 루마니아에는 클루지나포카라는 데가 있다. 좀 더 지명도 있는 나라 이탈리아에는 트리에스테’, ‘우디네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었다.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곳들. 지구는 참 넓고도 꼼꼼하구나.

 

책읽쟁이로서 도시마다 한 권의 책을 배치한다는 컨셉에 끌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라면 이 도시의 가슴팍에 무슨 책을 달아줄까. 내가 가본 도시들(모두 조선의 도시들)을 주욱 떠올리며, , 하나의 도시에 한 권의 책도 붙일 수 없다면 나는 책도 도시도 제대로 읽고 걷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그냥 인생은 그대로 인생이다.

  지독하게 자연스러워 지독해서 운명이라고 말해버리고 나면 오히려 괜찮아지는 그런 운명의 인생. 소설의 결과가 과하게 슬프거나 극단적으로 처절해도, 읽는 이의 삶이 그보다 더 슬프거나 처절해서 공감은 되어도 나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 상황을 깨달으며 폴란드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그 맛이 썼다. 마치 발치카 9번처럼.

  여전히 내 주변의 관광객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행복하다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고, 아주 보기 좋게 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형형색색의 건물들도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우리 삶의 차이는 어쩌면,

  딱 맥주 맛의 차이 정도일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발치카 No.9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들판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맞다.

  우리 삶의 들판에도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지금도 불고 있고, 앞으로도 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맥주도 인생도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 언제나 부는 바람 앞에서.

_ 강병융, 도시를 걷는 문장들

 

 

 


252.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윤태영 지/ 위즈덤하우스 / 2019

 

좋은 문장에 대해 말하는 책을 계속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뭔가 많이 뽑아낼 필요도 없다. 한 권에서 딱 한두 가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좋은 문장의 공식들을 흔들어 미묘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한두 가지의 지침만 얻으면 된다. 선생님께는 선생님의, syo에게는 syo의 좋은 문장이 각각 있겠으나, 그것은 불변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변했다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 변화의 궤도를 칭할 때, 발전이라는 선형적 이름을 붙이기도 어색하고 나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 것도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냥 춤을 추는 것이다. 춤을 추는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어느 순간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 그 순간 바로 거기서 최대한 아름답고 싶은 마음을 욕심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과 앞뒤 순간들의 연속을, 바로 여기와 아까 거기와 다음의 저기 사이의 연결을, 그러니까 움직임 전체를 아름답게 하고 싶은 마음은 욕구에 가깝다. 나는 더 나아지고 싶지만, 스스로 나아갔다고 생각한 걸음을 타인이 퇴보라고 판단하는 위험으로부터 완벽히 달아날 수 없음을 안다. 누가 뭐래도 그저 내가 보기에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게 아니다. 누가 뭐래도 그저 내가 보기에 좋은 문장을 생각하며 추는 춤의 궤적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쓰는 일을 삶에 뭉친 사람에게, 완벽한 문장에 도달한다는 것은 마치 완벽한 삶이라는 게 있기라도 하다는 말처럼 허망하고 달콤한 환상이다. 신기루다.

 

퇴고할 때는 자신의 글이 상상력의 요소를 적절하게 갖추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글을 읽다 보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접하게 되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되는지, 독자의 입장에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콘텐츠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뜻밖의 낱말이나 멋들어진 표현 하나가 독자에게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서며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_ 윤태영,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253. 사조영웅전 1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무협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주인공 곽정의 탄생. 이 둔하고 얼타기 바쁜 영웅이 이제 남은 7권의 책에서 종횡무진하며 독자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얘만 보면 진짜 숨이 막힌다. 신필 김용 선생님이 배출한 스무 명 남짓한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정석에다 인간승리의 표번인데도 어쩐지 인기는 없는 희한한 히어로.

 

심지어 소질머리도 없다. 웬만한 무협 주인공들은 어느 정도 재능은 있는 법인데.

 

너도 배웠느냐?”

  곽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저 멍청하게 서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칠괴는 타뢰가 무척 똑똑한 반면, 곽정은 아둔한 것 같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한소영은 장탄식을 하며 눈시울을 붉혓다. 전금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저들 모자를 강남으로 데려가 구 도장에게 맡깁시다. 내기는 우리가 진 것 같아요.”

  주총도 한 마디 했다.

  “쟨 자지리 너무 형편없어. 무공을 배울 만한 재목이 아니야.”

  한보구도 한숨을 내쉬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싹이 노란 것 같아.”

  칠괴는 강남 말로 한마디씩 푸념을 늘어놓았다. 한소영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타뢰는 곽정의 손을잡고 희희낙락 집으로 돌아갔다.

  강남칠괴는 6년 동안 갖은 고생을 감수하며 겨우 곽정을 찾아내 뛸 듯이 기뻤는데, 그의 자질이 형편없다는 사실에 다시 좌절감을 맛봤다.

_ 김용, 사조영웅전 1

 

, 저렇게 모두에게 좌절감을 준 미련퉁이 곽정이 어떻게 최강자 동사서독남제북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수가 되는지 지켜보자. 남은 7권을 읽으며…….

 

 

 


254. 논어에 반하다

김석 지음 / 북오션 / 2018

 

그 유명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입니다. 그런데 원문이 동어 반복의 간단한 문장인데다 공자의 정치적 성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집니다.

  첫째는 이를 존재 명제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임금은 임금이고, 신하는 신하이고, 아비는 아비고, 자식은 자식이다로 읽는 것인데, 이는 위계적 신분질서 그 자체를 강조하고 이를 공고히 하는 것이 정치라는 뜻이 됩니다.

  둘째는 앞의 일반적 해석처럼 당위 명제로 읽는 것입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 맡은 바 직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정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조건 명제로 보는 것입니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신하가 신하다워지고, 아비가 아비다워야 자식이 자식다워진다는 것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지배층이 모범을 보여야 좋은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솔선수범의 논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는 해석입니다.

  넷째는 명령 명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비록 임금이 임금답지 못해도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해도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으로 맹목적으로 충효를 강요하는 그야말로 봉건적인 논리입니다.

  이처럼 논어의 문장은 매우 압축적이어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뜻이 크게 달라지고 보수적으로도 진보적으로도 해서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 말을 한 공자의 얼굴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지요.

_ 김석, 논어에 반하다

 

정말 이렇다. 논어는 하나일진대 검색하면 무한한 논어 책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논어를 읽는 방법이 다양해서이다. 똑같은 책이 하나 없다. 한문이 원래 좀 그런 듯. 그래서 동양철학 개론서 읽기는 서양철학 개론서 읽기와 양상이 조금 다르고, 이것저것 읽어도 나쁘지 않다. 게중 마음에 드는 해석을 하는 책이 나타나면 몇 번 읽어도 좋겠다.

 

 

 

 


255.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 서양 고대 철학편

김재훈, 서정욱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

 

요즘은 만화로 본다는 식의 책들도 꽤 읽을만해진 것 같다. 아니면 내 수준이 지속적으로 퇴락중이든가.

 

어쨌든 애들한테는 이런저런 좋은 책이 많아진 세상이다. 라떼는 철학 같은 거 보려면 원전번역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건 그냥 읽지 말라는 뜻이다. 추천도서목록 같은 거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초심자라는 뜻인데, 그 초심자들에게 바로 원전 읽으라며 목록 뽑아주는 사람들은 진짜 양심도 없다. 댁네들도 내가 밑도 끝도 없이 푸리에 트랜스폼 들이밀면 그게 뭔가 입문서 개론서부터 찾을 것이다. 그거 되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도.

 

세상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는 자연철학에서 출발해 세상에 있는 것들의 진실과 존재 이유를 따져묻기도 하고,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 지식과 논리를 방편 삼는가 하면, 올바른 지성으로 인간세계의 총체적인 학문을 구축하고자 했던 고대 철학은 삶을 대하는 바른 생각과 태도를 모색한 윤리학으로 이어지며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주어진 삶과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고귀한 사유와 실천의 여정이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말이죠!

_ 김재훈, 서정욱,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 서양 고대 철학편

 

 

 

 

--- 읽는 ---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 이솜

슬픔이여 안녕 / 프랑수아즈 사강

스키마와라시 / 온다 리쿠

인생 사용법 / 존 러벅

만화 경제학 강의 / 조립식, 조윤형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 이나이즈미 렌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강신주

어떻게 이상 국가를 만들까? / 주경철

나는 장자다 / 왕멍

세상에서 가장 쉬운 회계/ 구보 유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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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30 14: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프던 어머님께서....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를 때 제가 종교가 있었으면 좀 더 간절하게 어머님의 명복을 빌어줄 수 있겠다싶은데 안타깝워요. 부디 이제 아프시지 않고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쇼님 말씀대로 슬플 땐 그 슬픔을 온전히 느끼는것이 또 슬픔을 이겨나가는거라고 생각해요.

syo 2021-08-03 08:43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많이 괜찮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아무렇지 않게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예요. 이제 불의의 습격만 조심하면 되겠습니다.....^-^

2021-07-30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3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1-07-30 17: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슬픔을 번역한다는 말.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다행입니다. syo님에게 글이 있어서.
근데 달러구트를 읽고 계세요..?

syo 2021-08-03 08:44   좋아요 1 | URL
달러구트! 하도 난리길래 읽었는데! 허허허허......

그레이스 2021-07-30 1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방법을 알고 계시는것 같아서...!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떠올리게 되는 글이네요.
보내드린 후에도 이별은 계속되는것 같아요
위로를 전합니다.

syo 2021-08-03 08:45   좋아요 2 | URL
말씀 듣고 보니까 생각나서 책장을 보니 <애도 일기>가 꽂혀 있네요.
처음 저거 읽었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이제는 좀 다를 수도 있겠어요.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붕붕툐툐 2021-07-3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픈데.. 슬프면서 멋있으면 반칙입니다~

syo 2021-08-03 08:45   좋아요 1 | URL
😎 훗.......

2021-08-01 0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3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녁에 마저 먹자

 

 

 

새벽 내내 엄마는 잠 못 들고 뒤척인다. 뒤척이면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그러면 나는 부스스 일어나 감은 눈으로 엄마 다리를 주무른다. 얼음을 갖다 대면 통증은 조금 더 빨리 가라앉는다. 통증이 썰물처럼 밀려가면 엄마는 갯벌처럼 답답하다. 나는 그저 다독일밖에. 답답해. 답답해 미치겠어. 아니야엄만 안 미칠 거야. 사람 미치는 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 엄마는 다시 뒤척인다. 뒤척이면 아프다. 아프다, 아파. 이 다리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다리를 주무르며 내가 말한다. 식칼 가져와서 확 잘라버릴까? 엄마가 웃는다. 헤헤


그런 새벽이 꿈처럼 지나가면 한낮에도 우리는 좀처럼 깨지 않는 꿈속에 나란히 누운 사람들 같다. 우리는 지쳤다. 몽롱하다. 한여름이다. 나는 덥고, 엄마는 추웠다가 더웠다가 한다.

 

과일 트럭이 지나가는 듯했다. 자두 한 소쿠리 삼천 원, 사과가 오천 원. 자두 먹고 싶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엄마가 말했다. 엄마, 어차피 못 먹잖아. 다 토하잖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내가 대답했다. 자두 한 소쿠리 삼천 원, 사과가 오천 원. 자두 먹고 싶어. 토하면 엄마가 힘들잖아. 그래도 괜찮겠어? 나는 꼼짝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내 귀찮음에다가 엄마 걱정이라는 가면을 씌우고 이게 다 당신 탓이라는 시그널을 던졌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두를 사서, 끓는 물에 삶아서, 껍질 벗기고, 갈아서, 빨대로 마시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밤새 당신의 다리를 주무르고 투정을 받아내느라 이렇게 뻗어있는데 아무리 환자라지만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자기 생각만 할까. 어차피 먹지도 못할 자두를. 그러는 동안 트럭은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어느덧 자두까지는 들리는데 사과가 들리지 않는 거리. , 자두 먹고 싶어. 엄마는 앵무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나 지갑을 챙기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는 현관을 박차고 나갔다. 골목을 돌아 나가는 트럭을 붙잡고 자두 한 봉지를 샀다. 자두는 노랗게 덜 익었고 크기도 고르지 않아 맛이 없어 보였다. 침도 고이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물을 끓이고, 자두 다섯 개를 돌돌 삶아내고, 도마 위에서 껍질을 벗기고, 칼로 과육만 저며내어 믹서기에 갈았다. 갈아 놓으니 색이 예쁜 한 컵 분량의 걸쭉한 자두 주스가 만들어졌다. 엄마는 누운 채로 내가 이 자두 주스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장만 보던 사람의 눈동자가 내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숟가락으로 떠서 천천히 입에 넣어주고 한 술 넘길 때마다 심호흡 두 번과 얕은 호흡 두 번을 시켰더니 토하지도 않고 반 컵을 잘 마셨다. 토할 것처럼 기침을 시작하면 가슴을 쓸어주며, 아니야, 아니야, 그냥 기침이야, 토할 필요 없어, 아니야, 했다. 남은 반 컵은 이따가 저녁에 마저 먹자. 엄마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다시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은지 어릴 적 방학마다 놀러 갔다던 김천 큰아버지 댁을 이야기했다. 맑은 물이며, 빽빽이 헤엄치는 고기며, 물레방아며, 대구에서 김천까지 두 살 어린 동생과 단둘이 찾아갔던 열 살 그 시절의 기억 같은 것들을 줄줄이 읊으며, 다 나으면 다시 꼭 가봐야지, 했다. 나으면. 개구리랑 메뚜기 같은 것도 막 잡아먹고 그랬나? 나는 괜히 말을 돌렸다. ‘나으면으로부터 야비하게 도망쳤다.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 두 시간 뒤였다.

 

별다른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엄마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말이 어눌해졌다. 급히 재 본 혈압은 220이었다. 나는 119에 전화를 했고, 동생은 엄마를 달랬다. 엄마, 지금 너무 위험한 것 같으니까 일단 구급차 불러서 병원에 갔다 오자. 엄마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입으로 말을 뱉었다. -- 아니야, 갔다가 괜찮아지면 바로 다시 집에 올 거야. 병원에 입원하는 거 아니야. 이제는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엄마는 간신히 말소리를 만들어냈다. ----

 

그게 우리가 들은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다.

 

구급차에서, 그리고 응급실 침대 위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거칠게 헐떡이던 엄마는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숨을 쉬다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 남매는 그 자리에서 두 시간을 더 울고 식어가는 엄마를 만지며 이런저런 말을 건네다가 돌아왔다. 밤이 늦어서 분향소는 다음 날부터 모시기로 하고 엄마는 안치실로, 우리는 집으로,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었는데, 노랗고 걸쭉한 자두 주스가 반 컵, 남아 있었다. 만약 그때 자두를 사러 나가지 않았더라면(그 마음은 정말 순간적인 변덕에 가까웠다) 아마도 나는,

 

어제 삼우三虞를 마쳤다. 다음에 엄마를 보러 갈 때는 원색의 꽃 몇 송이 사야겠다. 엄마의 손이 닿으면 쉽게 시드는 화분이 없었다.

 

 

 

--- 읽은 ---


 

247. 응답하는 사회학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

 

정수복 선생님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것들은 파리 생활에 대한 책이거나 책에 대한 책이었다. 그래서 syo에게 선생님은 에세이스트였다. 공저인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속 좌담 꼭지에서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시는 것을 보고서야 선생님이 사실 사회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선생님에 대해 뭔가를 더 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선생님은 더 흐릿해졌다. 사회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사실은 사회학자였다는 정보는 왜 그 사람을 덜 선명하게 만드는가.

 

선생님 역시 유사한 고민을 하셨던 것이다. 대중에게 사회학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며 또 무엇일 수 있으며 또 그 무엇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류 학계 바깥을 떠돌던 선생님의 인생은 저 질문에 대해 자신의 몸과 삶으로 하는 대답 그 자체였던 듯. 그리고 이 책은 그 대답의 요약본에 가깝다.

 

구성은 이렇다.

 

1: 사회 구성원과 괴리된 강단 사회학의 대안으로 예술로서의 사회학을 제안

2: 그런 대안을 만들어내기까지 사회학자로서 살아온 스스로의 삶에 대한 사회학적 자기분석

3: 이미 새로운 사회학의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내고 있는 세 명의 사회학자에 대한 분석

 

다소 길지만, 일독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예술로서의 사회학이 어떤 개념인지 제시하는 대목을 인용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삶이 앎의 근거가 되는 사회학, 학문의 숙성과 인간적 성숙이 함께 가는 사회학, 개성이 드러나는 자기만의 사회학, 감동을 주며 마음을 위로하는 사회학,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학, 타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는 사회학, 삶의 고통과 환희, 좌절과 역경에 귀 기울이는 사회학, 그렇게 함으로써 자유와 평등, 진리와 정의가 살아 있게 만드는 사회학을 하고 싶었다. 그런 사회학을 '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대비시켜 '예술로서의 사회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학을 말하는가?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우선 문학, 예술과 대화하는 사회학이다. 소설이나 시, 그림이나 조각작품, 사진이나 영화처럼 보통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삶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사회학이다. 사회학은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런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어떻게 짜여 있으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모색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사회학은 문학 · 예술과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문학과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사회학은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하고 통제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고 현실을 비판하고 현실을 넘어서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학이 되어야 한다.

_ 정수복, 응답하는 사회학

 

 

 


248.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

 

옮겨적어 놓겠다고 따 놓은 대목이 50군데 정도 되었으니, 시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선생님의 산문 역시 좋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다 읽고 덮어 놓은지 스무 날이 지난 지금,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을 하기로 했었는지 곰곰 생각하는 중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스무 명이 스무 편의 시를 낭독했다. 태어나서 처음 시를 쓴 사람도 있었고 이미 유명한 시인들도 있었다. 평등하게 섞여 자신의 시를 읽었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학예회처럼 설렜다. 그 작품들이, 떨리던 목소리들이 정물화처럼 내 가슴에 놓여 있다. 심정 아프게 하는 시가 많았다. 일상의 괴로움을 안고 시를 지으며 달랬으려니. 모든 사람의 혈관에는 시어가 흐르고 있다. 모든 사람의 손바닥에는 시인이라는 징표가 새겨져 있다. 손금을 찬찬히 보면 ''라고 적혀 있다.

_ 김이듬,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249. 모르면 호구되는 경제 상식

이현우 지음 / 한즈미디어 / 2019

 

250. 재무제표 처음공부

대럴 멀리스, 주디스 올로프 지음 / 백승우 옮김 / 신현식 감수 / 이레미디어 / 2018

 

 

 

--- 읽는 ---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 윤태영

도시를 걷는 문장들 / 강병융

프로이트 : 20세기의 해몽가 / 피에르바뱅

사조영웅전 1 / 김용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 리디어 더그데일

왜 읽을 수 없는가 / 지비원

논어에 반하다 / 김석

나의 사랑, 매기 / 김금희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 서양 고대 철학 편 / 김재훈, 서정욱

Chaeg 2021. 6 / (월간지)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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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8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30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inema Paradiso 2021-07-28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틀 전에 냉장고에 있던 마지막 자두를 먹었는데.. 먹먹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yo 2021-07-30 14:03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앞으로 만날 모든 자두에다 기억을 칠해 놨네요.
시네마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7-28 19: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동안 안 보여서 좋은 일 있으신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했는데 그새 어머니를 보내드렸군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건 슬픈 일이지만 아드님이 갈아 준 자두 주스
마시고 돌아가셨으니 여한은 없으셨을 것 같네요.
그리고 언제나 간단 리뷰를 이렇게 올리고 계신 걸 보면
스요님은 앞으로도 흔들림없이 잘 사실 거라 믿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평안히 안식하고 계실 거예요.
지금 어머님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당신이 없어도 꿋꿋하게 잘 시는
스요님의 모습일 겁니다. 힘내십쇼.
저도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syo 2021-07-30 14:04   좋아요 1 | URL
저는 늘 그렇듯, 주변에 계신 많은 분들의 위로와 걱정에 힘입어 씩씩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엄마는 엄마 있는 데서, 저는 제가 있는 데서 열심히 행복해야지요.

스텔라님 감사합니다^-^

거북이독서 2021-07-2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자녀분들 내려다 보시며 편히 계실거에요
마음 잘 추스르시고,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syo 2021-07-30 14:04   좋아요 0 | URL
거북이독서 님 감사합니다.
힘 내겠습니다^-^

단편선 2021-07-29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참 무심한 사람이라, 그 탓에 syo님의 블로그에 찾아와 자주 글을 읽으면서도 댓글 한 번 남길줄을 몰랐네요. 매사 무심한 탓에 울지 않은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울컥해버렸네요. 감히 무슨 마음인지 짐작하진 않으려 합니다. 다만 응원한다고,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있는지도 몰랐던 알라딘 비밀번호까지 찾아서 로그인해버렸습니다. 저 혼자 syo님의 글을 읽다 내적 친밀감을 쌓아버렸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꼭 위로를 전하고 싶은데 서투른 마음과 말주변 때문에 쉽지 않네요.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슬픔은 슬픔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잘 간직하시고 또 syo님만의 방식대로 힘내실거라고 믿겠습니다. 아 참, 늘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syo 2021-07-30 14:06   좋아요 0 | URL
번거롭게 로그인까지 하시게 만들었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게 딱 제 마음입니다. 슬픔은 슬픔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syo는 syo의 방식대로.
제 맘을 들여다보신 것처럼 격려해주셔서 신기했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비종 2021-07-29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아침에 읽고 점심에 또 읽고 저녁에도 읽고. 자기 전에 누워있는 지금도 읽습니다. ‘읽은‘이후에 쓰신 글이 빠른 배경처럼 휙 지나갑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문장을 쓰고 싶은데 몇 번을 읽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어봅니다. 읽을 때마다 눈이 시리고 목구멍이 아파오고 가슴속이 따끔거립니다.
그래도 무슨 말이든 해드리고 싶은데 일렁이는 말들이 꺼내어지지 않네요...그래서....이렇다구요..

syo 2021-07-30 14:07   좋아요 1 | URL
슬픔을 전염시키려는 의도가 없어서 죄송스럽기도 하면서,
또 감사하기도 합니다.
따뜻한 말을 고르기 위해 애쓰셨다는 그 말씀이 가장 따뜻한 문장입니다.
고맙습니다^-^

2021-07-29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30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1-07-29 14: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머님께서 이제는 고통없는 곳에서 평화를 누리고 계실거에요.
작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던 때가 생각나서 마음이 더 아프네요. syo 님 힘내세요.

syo 2021-07-30 14: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격려와 염려를 받아서, 하루가 다르게 마음이 회복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독서괭 2021-07-30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syo님 지난 글 읽고 나서 안 보이시기에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제가 휴가내고 육아하느라 서재를 잘 둘러보지 못하는 사이 이 글이 올라온 걸 이제야 알았네요..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실은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으며 syo님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이 책과 어머님의 자두 이야기가 연결되어 떠오를 것 같아요. 이를 악물고 자두 사러 일어났던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하셨던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어머님께서도 아들이 정성스레 갈아준 자두주스를 드실 수 있으셔서 얼마나 마음이 기쁘셨을지…
저는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신데, 언젠가 닥쳐올 그 순간에 syo님의 글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소식 알려주셔서 고맙고, 힘들어도 건강 잘 챙기시길 빌어요.

syo 2021-08-03 08:41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저는 하루하루 기하급수적으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습격하듯 덤벼드는 슬픔이 있겠지만 그것은 그때 문제고 일단 지금은 좋습니다. 많은 서친분들의 격려 덕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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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therapy

 

 

 

이제 남은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비로소 우리를 남을 사람으로 만들었다. 남은 시간에 대해 물었다. 그저 평범한 대답이었다.

 

나는 무엇을 했느냐 하면, 빨래를 했다. 우유를 개수대에 붓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내놓고, 빌려 놓은 책을 모조리 반납했다. 현금을 조금 찾아두었다. 기차표를 예매했다 취소했다. 휠체어와 호스피스에 대해 알아보았고 몇 개의 수기를 읽었다. 최대한 웅크린 채로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목적어가 생략된 문장을 몇 번 내뱉어 보아도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다.

 

엄마는 아직 모른다. 곧 알게 될 것이다. 통증이 알려줄 것이다.

 

 

 

--- 읽은 ---



242.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안정희 지음 / 중앙books / 2015

 

한 바닥의 감상, 한 장의 사진, 간혹 한 구절의 소설 인용. 그렇게 두세 가지 구성요소를 세트로 하여 80군데의 여행지에 대해 서술한 책.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깨달은 것들이 대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정작 '사색''도시'도 부족하여 '좋은'에 도달하기에도 조금 부족한 책 같다. 참 여기저기 다녀 좋겠구나 싶으면서도 이 정도가 엑기스라면 그렇게 다닐 것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이란 모든 익숙한 것들에서 떨어져 나와 낯선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도시에 사는 사람에겐 번지가 중요하지만, 세상엔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제 글에는 번지 없이 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의 향기가 배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도 이 향기를 따라 길을 떠날 수 있길 바랍니다. 길 위에 서면 새로운 풍경이 보이고 새로운 길이 열리니까요.

_ 안정희, 사색하기 쉬운 도시에서

 

, 어느 여행책에나 다 있는, 그래서 이 책에도 있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인, 이제는 전국민의 일반상식인 여행의 효용이 또.

 

 

 


243. 여성, 타자의 은유

김애령 지음 / 그린비 / 2012

 

얼마 안 되는 부피지만, 얼마 안 되는 책은 아니다. 발췌를 위해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거의 책 한 권을 통째로 옮겨적게 생겼다. 선생님의 다음 책은 은유의 도서관이다. 다음 책을 읽고 다시 돌아온다면,

 

주체가 자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체는 우선 언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의 언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를 말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이야기하는 주체의 가능성은 열린다. 주체의 파편화된 시간 경험을 그러모으고, 자기를 이야기로 구성하는 능력을 통해, 주체는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다. 그렇게 주체는 변화와 다름의 계기들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된다.

  그러나 오뒷세우스의 이야기 안에서, 오뒷세우스가 모험 중에 만난 수많은 타자들은 언어도 이야기도 갖지 못했다. 단지 주체가 된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오뒷세우스가 전하는 대로 표상된 타자로서만 우리에게 기억될 뿐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타자의 모습은 오직 주체가 전하는 대로만 남겨져야 하는가? 타자의 참된 이야기, 대신 이야기된 것이 아닌 타자로부터의 이야기는 어디에 떠돌고 있는가?

_ 김애령, 여성, 타자의 은유

 

 

 


244. Do it! 파이썬 생활 프로그래밍

김창현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2020

 

쉽긴 한데, 결국 다른 책들을 볼 수밖에 없다.

 

 

 


245.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박지향 지음 / 김영사 / 2021

 

정치적 관점이야 개인의 것이므로 나와 차이가 있다고 해서 딱히 말을 엮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서술 방식에 대해서는 좀 다르다. 이 책은 자체적으로 그다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평등을 까고 싶으셨던 거라. '기회의 평등'을 당신이 주장하는 '공정'이라는 가치에 부여한 다음 남은 평등은 '결과의 평등'이라며 매도한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완전히 하나하나 모든 걸 다 똑같이 만들자고 말한다고. 그렇게 평등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왜소하게 만든 다음 사망 선고를 내리면서 평등은 자유와 양립할 수 없지만 공정은 그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건 뭐랄까, 한 명의 온전한 인간에게 갑자기 넌 니가 아니라 너의 왼발이라고 주장한 다음, 이 술집은 인간들에게 술을 파는 곳이지 왼발에게 술을 파는 곳이 아니므로 지금 당장 그 술잔을 내려놓고 가게 바깥으로 꺼지라고 하는 느낌이다.

 

그러고는 '공정'이라는 것을 페어플레이에 비유하시는데 거기서부터는 아, 이 책을 좋게 읽기는 틀렸구나 싶었다. 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선수 개개인의 페어플레이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심판의 공정한 경기 운영에 달린 것이다. 페어플레이라는 건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결국 선생님의 공정은 니들이 이런저런 부정과 반칙 저지르지 말고 하라는 것.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정과 정정당당 사이의 미묘하지만 의미 있는 차이를 스리슬쩍 뭉개면서 책임을 개인에게 전적으로 떠넘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권력 자체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권력은 무조건 억제해야 한다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는다. 반면 민주주의는 권력이 많고 적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 다수에게 있는지 소수에게 있는지에 집중한다. 즉 자유주의는 어떤 권력이든 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권력을 제한하려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권력을 다수가 지니고 있다면 그 권력의 속성이 무엇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또 다른 차이점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시각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라 주장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한다. 이를테면 자유주의는 어떤 인위적인 장애도 없는 상황에서 열심히 노력해 최고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이념이다. 한편 민주주의는 과도한 경쟁을 좋아하지 않고 많은 사람과 좋은 이웃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이념이다.

_ 박지향,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이런 대목에 도달하면 후려치기와 이분법적 사고가 동시에 버무려진 책을 읽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당연히 공정/정정당당하지 않은 서술이다. 대놓고 그렇다고는 하지 않지만, 문장의 구도로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립 개념처럼 배치, 주장한다. 그리고 저 극단성. 선생님 당신께서 몸 담고 있는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권력을 제한한다는, 그러니까 조정의 여지가 있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민주주의는 다수가 권력을 지니고 있으면 권력의 속성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는다라는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syo 역시 결과적으로 봤을 때 틀렸다고 해도 될 만한 다수의 결정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다수를 이루는 개개인들이 무언가를 지지할 때는 그 속성이 무엇인지 따져본 다음 이해득실과 도덕정의관념을 저울질 혹은 버무려가며 선택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삭제하고, 그냥 커다란 덩어리로서의 다수의 결정에 대해 나이브하게 서술하신 것.

 

사실 이런 후려치기는 자유주의의 속성에 대한 서술에도 있다. 자유주의는 어떤권력이든 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권력을 제한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자유주의자들이 과연 자신의 권력도 제한하려 할까? 그들이 그렇게 알아서 착착 자기 권력을 제한할 줄 알았다면, 국가가 독점금지법 같은 걸 들고 나와서 그들의 권력을 제한할 일도 없었겠지. 그쪽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면서요. 누군가 나와 자기 권력을 제한하려 시도하는 순간 그 시도야말로 권력이라고 말하며 제한하려 들기는 하겠지만, 자기 권력이란 뭐 아무리 모으고 모아도 무한히 부족해서 우주의 끝날까지도 영원히 부족한 상태겠지요.

 

 



246. 처음부터 물리가 이렇게 쉬웠다면

사마키 다케오 지음 / 신희원 옮김 / 강남화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1

 

중학교 수준. 여기도 고양이가 등장한다. 쉬운 수학/과학책에는 고양이. 이거슨 일본국의 풍조인가?

 

 

 

--- 읽는 ---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 김이듬

젠더 트러블 / 주디스 버틀러

나의 첫 머신러닝/딥러닝 / 허민석

이 짧은 시간 동안 / 정호승

응답하는 사회학 / 정수복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 / 양자오

사조영웅전 1 / 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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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7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07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7-07 13: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군지 주어는 생략하고) 역사 다루신 저 교수님, 저희 어머니가 돌보던 아기 사는 집 가사도우미님이 저분 집에도 다니셨는데 엄청 넓은 집 핸디형 충전 청소기만 건네고(그러니까 물걸레질 무릎꿇고 치라고) 여하간에 노동자에게 가혹한 분으로 들었답니다….더 할말은 줄임 ㅋㅋㅋㅋ

syo 2021-07-07 13:42   좋아요 4 | URL
굉장히 정합적입니다...... 끄덕하게 되어버리는군요.

독서괭 2021-07-07 13: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속시원하게 까주시네요. 이런 리뷰 넘 좋습니다.
syo님, 감히 위로를 건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위로를 건넵니다...

syo 2021-07-07 13:5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되어가는 정황이 어쩌면.... 싶었던게 오래인지라 세상 무너지는 충격은 아니었지만.....

난티나무 2021-07-07 14:15   좋아요 3 | URL
저도요…syo님

페넬로페 2021-07-07 14: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내내 어머니의 소식이 궁금했어요
누군가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힘내라는 말도 너무 힘든 사람에겐 힘든 말이라고요.
다시 곰곰 생각했어요
그럼 어떤 말을 해야할까?
그래도 전 그냥 힘내라고 하고 싶어요
힘 낼 수 있는 사람이 힘을 내야만 하니까요~~
또 힘들어도 힘을 내면 어느 순간에 신기하게도 힘이 나더라고요^^

syo 2021-07-07 17:39   좋아요 1 | URL
저는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허허허허.
조금씩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겠지요.
힘 내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힘 내야죠 ㅎㅎ

붕붕툐툐 2021-07-07 14: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한 번은 누구나 다 경험해야할텐데.. 그럼에도 언제나 이런 상황은 놀랍고 두렵네요. 더 많이 함께하시길 매 순간이 찬란하시길..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을 위로랍시고 전합니다.

syo 2021-07-07 17:40   좋아요 1 | URL
후회거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을 해나가야겠다 싶어요.
툐툐님 감사합니다^-^

수이 2021-07-07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힘내 라고 하면 뻔한 소리인데 뻔한 소리밖에 할 게 없네. 힘내 친구야

syo 2021-07-07 17:4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아직까지는 괜찮으니, 꾸준히 괜찮을 수 있게 엄마가 천천히 안 아프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scott 2021-07-07 16: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쇼님 힘내세요
저도 오늘 부모님 모시고 병원 다녀왔지만
희망과 긍정의 힘으로!
이말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syo 2021-07-07 17: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사실 뭐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태긴 한데.... 정신 바짝 차려야겠지요.

2021-07-18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벽독서


 

 

흐릿하게 비에 이긴 빛이 유리를 넘지 못하고 다만 두드린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아서 비로소 모든 소리가 들리는 시간, 더벅머리 남자가 아직 책 앞에 앉아 있다. 묵독한다. 묵독에 특히 잘 녹는 새벽이 있다. 남자가 새벽을 녹인 활자를 들이켠다. 중력이 없는 활자는 마실수록 가벼워져서, 남자의 질량은 한없이 새벽으로 수렴해간다. 빗줄기가 식히는 것은 이 세상의 밑창. 낙하하는 것들의 착하고 꾸준한 음성이 거들면 읽기는 한결 수월하다. 왜일까.

 

수십억 년 전, 끓어 요동하는 지구를 식힌 많은 물들도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 있어 천천히 굳는 지구를 차근차근 읽으며 바다와 대륙을 짚어 최초의 이름을 말해 보았을 것이다. 아직 우주는 새벽, 무한히 펼쳐지는 공간을 달리는 광자들이 빛의 속도로 그 소식을 전한다. 어느 은하 어느 항성의 작은 행성에 최초의 활자가 태어났대, 동시에 최초의 독자가 태어났대, 그래서 최초의 독서가 있었대, 우리는 기록한다, 우리는 전한다, 아직 우주는 새벽, 최초의 독서는 새벽에 있었어, 이제부터 무한대의 새벽이 올 것이고, 더 큰 무한대의 독서가 올 거야, 독서하는 이들이 어느 새벽에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거야,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새벽에 깨어 읽어야 해, 새벽에 읽어야 해, 새벽은 읽기 좋은 시간이야.

 

새벽은 읽기 위해 태어났어.

 



책을 읽으면 삶이 나아질까. 여기에는 "꽤 그럴 것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삶에 있어서 '농도''밀도'는 중요한데, 내 경우 그 밀도를 책을 읽거나 쓴 사람들과의 만남, 혹은 책을 둘러싼 수많은 내용을 통해 채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책 한 가지만 이야기하며 마치 책 바깥의 삶은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싫어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안에 완전히 들어오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책이 바로 그런 세계다.

_ 이은혜, 읽는 직업

 

책 읽기는 물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강을 건널 때는 온몸이 젖을 수밖에 없지만 작은 개천을 건널 때는 물방을 튀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깊은 강을 건너다가는 몹시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고, 작은 개울이라도 물이 불었을 때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비가 온다면 어느 물가를 건너더라도 온몸이 다 젖을 것이다.

_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독서는 인류가 피할 수 없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법이다. 독서는 우리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방식이다. 이 장대하고 가능할 성싶지 않은 독서 계획이 우리 앞에 줄지어 있는 한, 우리는 숨을 거둘 수 없다. 나는 아직 빌레트를 다 읽지 못했으니 죽음의 천사에게 나중에 다시 오라 전하라. 거기에는 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는 희망이 있다. 나 믿노니, 이것이 책이 인류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모든 생은, 최고의 생조차도, 끝은 슬프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는다. 우리가 듣고 싶은 목소리는 영원히 멈춰버린다. 책은 끝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드러낸다. 제인은 로체스터와 결혼할 것이다. 엘리자는 사악한 노예주 사이먼을 저지할 것이다. 장발장은 자베르를 이겨낼 것이다. 핍은 에스텔라의 짝이 될 것이다. 악한 이는 나가 떨어지고 정의로운 이는 번창하리라. 우리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책들이 있는 한, 아직은 배를 돌려 안전한 항구를 찾을 기회가 있다. 포크너의 말마따나, 그저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아직도, 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_ 조 퀴넌,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 읽은 ---


238. 사람의 씨앗

전호근 지음 / 메멘토 / 2021


슬픈 것들은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워서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은 아름답지 않아서 아름답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름다운 게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쓸데없이 밝은 아이였다. 세상이 꽤 밝았다. 모든 것이 저마다의 이유로 아름다웠으므로, 모든 것을 가지고 시를 쓸 수 있었다. 시라는 게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누구나 사랑할 수 있었고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돈을 많이 벌었고 많이 썼다. 사람들을 울렸고 사람 때문에 울었다.

 

그리고 이제 슬픈 것들은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움이 뭔지 내게 알려준 것들을 적잖이 만났다. 더이상 시를 쓰지 않고, 못 읽는 책이 늘었다. 돈은 벌지 않는다. 그래서 적게 쓴다. 울리지 않고 울지 않는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가끔은 모든 것이 아름답던 시절의 내 잔해가 고개를 든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 잊을 수 없는 것, 버릴 수 없는 것으로 내 안에 심어놓은 씨앗 같다. 사람의 씨앗을 심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만난 슬픔들,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 시들, 사람들, 울린 사람과 울리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씨앗이 되는 시기. 그리고 책. 가장 값싸고, 그런데도 가치가 크고, 그런데도 사랑받지 못하는 우리의 씨앗.

 

읽어야 할 책은 언제 읽어도 좋지만 어떤 시기에 읽으면 더욱 좋다. 인간의 인생 모든 국면에서 동등한 크기의 가치를 가지지는 않지만, 특정 시기에 읽기에는 좋은, 가치의 그래프가 어느 지점에서 송곳처럼 솟아오르는 책들이 있다.

 

사람의 씨앗을 심으면 사람이 난다. 사람이 뭘까. 세상에 여러 씨앗이 있을 건데, 그중 어떤 것이 사람을 사람으로 싹틔우는 씨앗일까. 전호근 선생님은 동양철학자다.

 

리뷰를 쓸까 하다가 그만한 분량이 안 나올 것 같아서 토막글을 써갈겼더니 아, 엉망진창이다.

 

내가 몇 달 동안 병으로 누워 있으면서 주자의 글을 한 번씩 보았는데 마치 바늘이 내 몸을 찌르는 것 같았고 잠이 확 꺠는 것 같았다.”

  정자중에게 보낸 편지글의 한 구절인데, 그가 선현의 글을 어떻게 대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가 활동했던 때는 결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화와 당쟁이 격화되어 탁류가 도도히 흐르는 암흑의 시대였다. 하지만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빛나는 것처럼 그는 그토록 어두운 시대에 자신을 수양함으로써 오히려 세상에 드러났다.

  책을 읽다가 바늘에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없다면 아직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다.

_ 전호근, 사람의 씨앗

 

 

 


239. 오후의 글쓰기

이은경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

 

놀리는 거 아니에요. 저 진지합니다. 글솜씨를 타고나지 않은 우리는 매우 여유롭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점점 더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이를 악물고 쓰거나 잘 써야겠다고 불타오르는 만큼 잘 쓸 수 있다면 주먹을 힘껏 쥐어야 마땅하겠지만 글은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에요. 최대한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쏟아 성실하게 뚜벅뚜벅 다가가야 해요.

  잘 쓰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잘 쓰고 못 쓰고에 신경 쓰지 마세요. 잘 쓰려고 노력하는 순간 힘이 들어가고, 며칠 못 가 그만두게 됩니다. 무언가를 글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에 뿌듯함을 느끼세요. 완성한 글을 꼼꼼히 다시 읽으며 마음에 들지 않아 하거나 가까운 누군가에게 보여줘 괜한 핀잔과 지적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오늘도 다짐대로 쓰긴 썼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스스로 칭찬하세요. 그래야 잘 쓸 수 있어요. 잘 쓰려고 애쓰는 것보다 매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게 훨씬 빠른 길이에요.

_ 이은경, 오후의 글쓰기

 

컴퓨터라면 286이라는 물건부터 쓰기 시작헀으니 키보드를 두드리며 지낸 세월이 30년을 거진 다 채웠다. 그렇게 오래 치면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분당 800타는 두드리게 된다. 1초에 키 13개 이상을 누른다는 뜻이니까, 초당 4글자 정도를 만드는 속도다. 그렇다면 1분에 240, 10분이면 2,400, 한 시간이면 14,400자를 찍어낼 수 있다. 에누리해서 14,000자를 생산한다 쳐도, 200자 원고지 70장이다. 오타 고치고 뭐 어쩌고 해서 대략 20% 날린다고 봐도 55장이다. 하지만 시간당 55장 속도로 글자를 찍는 syo, 실제로 한 시간 동안 만들어내는 글은 15장이 채 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효율.

 

문장마다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

 

문장마다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라는 한 문장이 나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처음에 그건 한 문장에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건/그건에서 그건을 골랐고, ‘그것은/그건에서 다시 그건을 골랐고, ‘그건뒤에 쉼표를 찍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찍지 않았다, ‘한 문장에/문장에서에서 한 문장에를 골랐다가 이내 문장마다로 아예 고쳤다. ‘문장마다앞에 내가를 넣어서 그건 내가 문장마다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보니 그건을 빼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니 내가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치웠다. 여기까지 하고 나니 뒤에 있는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를 고쳐 생각해 볼 힘이 고갈되었다. 따라서 저 한 문장은 최종적으로 문장마다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로 결정되었다. 만약 앞 문단과 저 문장 사이에 한 줄의 공백을 넣지 않았다면, ‘문장마다앞에 접속사 하나를 넣기로 결정했을 거고, 그걸 위해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접속사들을 뒤져 하나씩 넣어보고 입말로 발음도 해봤을 것이다.

 

모든 문장이 이런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나도 사람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문장이 저렇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글이 느리다.

 

syo는 천재가 아니다. 오히려 둔재에 가깝다. 다 만들어진 문장의 나열을 관람하는 분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우선 나는 한 문장을 써내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천재가 아니다. 그리고 문장마다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껏 애를 써서 만들어 낸 문장들도 대체로 평범함의 범주에 갇힌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 없는 둔재다. 그리하여 매일 쓰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럼에도 이은경 선생님의 말씀은 따를 수가 없겠다. 그럴 마음도 없다. 나는 저렇게는 글솜씨를 키울 수가 없는 인간이 되었고, 이제 글쓰기 태도에 대한 책은 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울 게 없어서가 아니라 배울 수 있는 게 없어서.

 

 

 


240. 모두의 데이터분석 with 파이썬

송석리, 이현아 지음 / 길벗 / 2019

 

소멸한 지 벌써 10년도 더 된 공대생 야성을 회복하고자 최근 코딩 책을 좀 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런 책이 뭐 어떻다 평할 수 있는 실력이 될 때까지는 책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대사를 복붙할 예정입니다.

 

라고 세 번째 쓰고 있는데, 이제 조금씩 뭔가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나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241. 마르크스의 자본론읽기

최형익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

 

상품, 화폐, 시초축적, 임금노동, 잉여가치, 자본의 유기적 구성, 이윤율 저하의 경향적 법칙. 최형익 선생님은 여러 개념들 중 이 일곱 가지를 자본론을 관통하는 동시에 초심자가 알아둘 만한 것들로 생각하시는 듯하다. 보시다시피 세창출판사의 이 읽기시리즈는 작은 판형의 소책자라서, 소책자의 기능만 한다. 지나가야 한다. 지나가려고 읽는 책이다.

 

 

 

--- 읽는 ---

응답하는 사회학 / 정수복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 김이듬

여성, 타자의 은유 / 김애령

Do it! 파이썬 생활 프로그래밍 / 김창현

젠더 트러블 / 주디스 버틀러

마르크스 캐피탈 리딩 인트로 / 에르네스트 만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데이터 분석을 떠받치는 수학 / 손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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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7-05 02: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전 왠지 syo님은 문득 영감이 오면 슈루룩 써내려가는 스타일일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면 이 독서량과 쓰기량이 설명이 안 된다..) 한땀한땀 수놓는 노력파였군요. 저도 문장마다 더 공들여 읽겠습니다.

syo 2021-07-05 17:20   좋아요 3 | URL
딱히 더 공들여 읽으실 필요까지요 ㅎㅎㅎㅎ
공을 들이고 말고가 아니라 퀄리티가 문제인 것이지요.....

유부만두 2021-07-05 05: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읽어야 예의일 것 같아서, 이른 아침에, 두 번 읽었습니다. (전호근 저자의 책 담아가고요)

syo 2021-07-05 17:37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 아닙니다. 스크롤 휙휙 내리면서 드르륵 읽으시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동방예의지국..

그렇게혜윰 2021-07-05 1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도 시절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syo 2021-07-05 17:38   좋아요 4 | URL
그러게요. 좋은 때 좋은 책 만나는 것 정말 좋은 일이지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5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자본론을 읽는 사람이 있군요. 마르크스는 불멸?? ㅋ
글구요, syo님 책 제목 낳으셨네. <새벽은 읽기 위해 태어났어> 가즈아~~~~^^

syo 2021-07-07 11:0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마르크스 관련된 책은 아직도 꾸준히 나온답니다.
수염쟁이 맑선성님은 개론서나 연구서 같은 게 가장 활발히 나오고 있는 철학자 중 한명이지요.

scott 2021-08-06 15: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이달의 당선 추카!!

소요님 새벽 독서 책들 모조리 장바구니 속으로~@@

syo 2021-08-08 12: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syo 2021-08-08 12:22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 님도 축하합니다^-^

새파랑 2021-08-06 16: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의 표본! Syo님 완전 축하드려요^^

syo 2021-08-08 12:22   좋아요 1 | URL
페이퍼와 리뷰 둘 다의 표본 새파랑님도 축하합니다ㅎㅎㅎ

독서괭 2021-08-06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 축하드려요^^

syo 2021-08-08 12:2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늘 고맙습니다 독서괭님^-^

초란공 2021-08-06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축하드립니다~ 이과도 문과도 적성이 안맞아라고... 당황한 저는 그냥 책을 안읽어서 어디 끼어넣을 데가 없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어요 ㅋㅋㅋ 그래서 책을 읽어보자 했는데 이제 노안이와서 ㅋㅋㅋ 문과와 이과 어디에도 안맞는 생으로 만족해야 할까봐요... 이제 syo님께 물어봐야겠네요. 대개 두 가지 질문이겠네요. 그 책 야합니까? 아니면 활자 큰가요? ㅋㅋ

syo 2021-08-08 12:25   좋아요 0 | URL
이과와 문과의 범주를 초월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초란공 님께서 하신 질문이 어떤 책에 대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초란공 2021-08-08 12:49   좋아요 0 | URL
아^^ 책소개를 많이 해주셔서 syo님께 물어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ㅋ

초딩 2021-08-06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이달의 당선 페이퍼 축하드립니다~

syo 2021-08-08 12:25   좋아요 1 | URL
아유 초딩님도 축하드립니다.
축하 분위기 영 어색하네요 ㅎㅎㅎ

초딩 2021-08-08 20:05   좋아요 0 | URL
어색해야 새롭지 않겠습니까 ㅋㅋ

이하라 2021-08-06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syo 2021-08-08 12: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님^-^

서니데이 2021-08-06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syo 2021-08-08 12:26   좋아요 1 | URL
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ㅎㅎㅎ

황후화 2021-08-06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

syo 2021-08-08 12:26   좋아요 2 | URL
아유 ㅎㅎㅎㅎ 감사해요 황후화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