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고 말지 저미고 지랄

 

  



누가 그렸나, 이 불꽃을. 타들어 가는 저녁의 늑골을. 허공의 틈새가 깃털처럼 위험하고 그 아래서 용암을 휘감은 어느 미친 남매가 미친 입맞춤으로 심장을 녹이고 있을 것만 같다.

  

 

 

--- 읽은 ---

 


356. 꽈배기의 멋 

최민석 지음 / 북스톤 / 2017

 

- 일독(180123)

- 재독(210914)

 

최민석 선생님께 미쳐 있던 그때가 벌써 4년 전. 그때도 syosyo였지만 그래도 그 syo는 오늘의 syo와는 약간 다른, 더 쭈구리였던, 그러니까 syo라고 쓰긴 하지만 실은 ssshyo에 가까웠고, 웃을 일이 많이 없어서 웃을 일이 생기면 열심히 웃었다. 호호 웃었다고 호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시절 그때 내 배꼽을 책임져 주었던 최민석 선생님. 지금은 무엇을 하시는지. 이 책과 이 책의 이란성 쌍둥이 꽈배기의 맛은 웃기기로 치자면 선생님의 출세작(?) 베를린 일기보다는 확실히 덜하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어떻게든 매주 에세이를 써내기 위해 눈물나는 집념으로 어영부영 해나가는(?) 태도가 담겨 있어서, 오늘의 syo는 이 책에서 느끼는 바가 좀 더 있다.

 

문학이라는 세계는 걷다 보면 포기하고 싶을 만큼 끝없이 넓다. 하지만 글을 쓰는 해가 길어질수록 이 넓은 세계에서 나만의 자리 하나 차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광대한 사막에서 정착하기 어려운 것처럼, 드넓은 문학의 세계에서 작은 자리 하나 차지해 정착하는 것은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벅찬 일이다. 그것이 비록 꽈배기 좌판만 한 자리일지라도,

  하여 내가 바라는 글은 명문도 아니고, 미문도 아니다. 심금을 울리지 않더라도, 꽈배기처럼 나만의 온전한 성격과 선명한 색깔이 담긴 글이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생각을 품고 꾸준히 쓰고 고치다 보면, 어느 날 내 글을 보고 스스로 . 꽈배기 같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꽈배기는 유기농을 넘보지도, 장인 위치를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확실히 자기 자리에 버티고 서서, 고운 갈색과 흰 설탕이 눈처럼 박힌 자태를 내보일 때까지 뜨거운 기름과 간지러운 설탕을 견뎌낼 뿐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게 꽈배기의 멋이라 생각한다.

_ 최민석, 꽈배기의 멋

 

 

 


357. 둥근 발작

조말선 지음 / 창비 / 2006

 

  저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저것은 침대처럼 무겁다

  저것을 버려야 한다고 결정하자

  저것은 망가진 침대

  저것이 망가진 것뿐인데

  나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침대를 옮기고 있다

  저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내 몸 위로 침대가 버려진다

  내 몸에 이렇게 방이 많았나

  방마다 망가진 침대가 들어앉는다

  이렇게 좁은 입구를 뚫고

  어떻게 네가 들어온 거니?

  나는 어쩌자고 침대를 낳을 생각을 한 거니?

  좁아터진 방마다 침대가 만삭이다

  일요일에 해치울까?

  엘리베이터는 아직 수리중이야

  신호등 앞에서만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들은

  줄곧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

  폭신한 구름다리를 들고 서 있는 골짜기들처럼

  나는 무거워진다

_ 조말선, <망가진 침대>

 

매트리스가 망가졌다. 201월 이 집에 처음 들어오면서 산 것이니 바꿀 때도 되었지. 애초에 무슨 마약 꿀잠 어쩌고 하는 짜친 수식어가 잔뜩 붙은 싸구려 메모리폼 매트리스였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반년쯤 쓰니 메모리폼이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했다. 가운데가 좀 꺼졌는데 얘가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별 수 없이 한동안 가생이에서 자기도 했다. 잔재주고 미봉책이다. 그래도 그냥 자는 것은 견딜 만하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찾아오면 나는 내일이라도 당장(일단 지금은……) 이 매트리스를 찢어발기고 스프링 빠방한 놈을 새로 들여오고 싶은 마음, 갈망이 아니라 분노에 가까운 그런 마음을 먹게 된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몇 푼 돈이 아니라 내 무릎과 그녀의 허리다. 버리자. 버리자.

 

하고 마음을 먹으니, 버릴 일이 더 요원해진다. 저 덩치를 어떻게 내놓을 것이며, 새로 들여올 놈은 무슨 종류의 얼마짜리를 고를 것인가.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온몸과 마음이 침대에 점령당했다. 그리고 결국 다시 미룬다. 이사할 때 다 짐인데 일단 집 재계약 되는 거 봐서 결정할까, 한두 푼도 아닌데 가성비 좀 더 두드려 보고 결정할까, 일단 그냥 토퍼 하나 올려볼까……. syo는 잘 버리는 편이지만,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버리기 전에 어쨌든 한 번은 그것으로 꽉 채워지기 때문이다.

 

 

 

 


358.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셀린 벨로크 지음 / 류재화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

 

원문과 번역 중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완전하지 않은 문장이 자꾸 등장한다. 생략할 만한 개연성이 없는 자리에 주어가 실종상태라든가, 콤마를 중심으로 나란히 걸리지 말아야 할 문장들이 걸려 있다든가 하면 몰입은 쉬이 깨진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뜻밖에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원래 그래, 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너조차 네 것이 아니거든, 그냥 내던져, 포기해, 관조해. 이런 조언은 웬만해선 실행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어지간히 실패해 본 경험이 쌓이면 갑자기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사회는 무척이나 다종다양한 실패를 점점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일에는 그야말로 압도적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아마도 쇼펜하우어는 점점 더 힘을 얻어나가지 않을까.

 

현재는 유동적이다. 매 순간 우리는 다음의 목표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목표에 도달하면 다시 다른 목표가 생긴다. 삶은 결코 '현재'가 아니며 항상 다가오는 것이 있다.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열망들 속에 수많은 열정과 신념, 자존심, , 노력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일이면 다른 소용없음과 더불어 산산이 흩어지는 추억의 물살들이 될 텐데? 우리는 공 뒤를 뛰어가는 사람을 닮았다. 공을 잡는 즉시 다시 되던져 또 잡으려 하는…….

_ 셀린 벨로크,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359. 예술가의 일

조성중 지음 / 작가정신 / 2021

 

호쿠사이는 89세에 눈을 감았다. 삼라만상을 그리려 했던 화가답게 오래 살았지만, 그는 주어진 시간에 만족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호쿠사이가 남긴 말은 이렇다. “내게 5년이란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진정한 화가가 될 텐데…….” 3만여 점 그림을 그리고, 서양에 큰 충격을 줬으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화가의 마지막 말은 겸손의 언어가 아니다. 70년 내내 그림만 그렸지만, 아직도 못 그린 것이 많아 비통해하며 갔다. 호쿠사이에게 죽음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어떤 예술가는 오로지 예술만을 위해 최대한의 삶을 살다가 떠나기도 한다.

_ 조성준, 예술가의 일

 

데이비드 보위는 하이힐에 드레스를 입었고 다이앤 아버스는 흉측하다고 여겨졌던 인물들을 사진 찍었다. 말러는 교향곡의 문법을 깨부수고 모더니즘 예술의 축이 되었지만 당대에는 조롱받는 작곡가였고, 니진스키는 무용의 한계를 삭제한 대가로 외설의 오명을 쓰고 체포되었으며, 호쿠사이는 라이벌 화단의 화풍까지 습득하고 스승으로부터 파문당한다. 그들은 뭔가 다른 것을 했고, 그에 따르는 괴로움을 감내하거나 무시했다. 동시대는 무지했으나 시간은 그들의 편이어서, 오늘 이런 책이 나왔고,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동안 그들을 가두고 억압하고 조롱했던 사람들은 시대의 음화陰畫로 박제되었다.

 

 

 


360, 361, 362. 소오강호 4, 5, 6

김용 지음 / 전정은 옮김 / 김영사 / 2018

 

 


--- 읽는 ---

무서운 속도 / 장만호

Chaeg 2021. 9 / ()(월간지)편집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 마야 괴펠

행복해지려는 관성 / 김지영

나를 살리는 철학 / 알베르트 키츨러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 / 이서수 외

발견, 한서라는 역사책 / 강보순, 길진숙, 박장금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기시미 이치로

뺨에 묻은 보석 / 박형서

이불 밖은 위험해 / 김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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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9-16 19: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기 하늘이나 여기 하늘이나 이어붙인 자국 없이 하나일 것 같은데 왜 다르죠? 나는 왜 저런 거 못봤지? 했더니 이마트 열고 장바구니 채우고 있었네요… 배를 채우느라 석양은 놓치는 멋없는 삶… 저는 아직 11년도에 산 라텍스매트(가벼운 아이들을 재움)랑 18년도에산 라텍스매트(얘가 좀 더 새거라 내가 잠)도 그대로 쓰고 있네요…

syo 2021-09-16 20:03   좋아요 3 | URL
저거 실제 하늘보다 더 빨갛게 찍혔어요.
실제로는 붉은 빛 도는 주황색에 가까웠는데 갤럭시가 무슨 최적화 모드라면서 알아서 보정해줌.....
진짜 하늘 보면서는 그냥 좋다 좋다 그러고 말았는데 보정된 사진 들여다보다가 울컥하는 사이버리즘 감수성....

살 때 좀 괜찮은 걸 샀으면 좋았을 텐데, 싼 맛에 샀더니 쌈마이네요.

새파랑 2021-09-16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사진도 멋지고 시도 멋지고 ^^ syo님의 쭈그리(?) 시절은 상상이 안가네요 😄

syo 2021-09-16 21:00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 저는 지금도 쭈굴한데요?!

독서괭 2021-09-16 20: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최민석 선생님은 라디오북클럽에서 열연 중이십니다(?)
저도 syo님 글 보고 <베를린 일기> 읽었어요. 근데 글보다 말이 더 재미난 분인듯요 ㅎㅎ

syo 2021-09-16 21:01   좋아요 2 | URL
거기 계셨군요 ㅎㅎㅎ
<베를린 일기> 진짜 재밌게 읽었었는데, 심지어 말을 더 잘하신다구요?! 😲

독서괭 2021-09-16 21:12   좋아요 1 | URL
여기저기 나오시던데 못 들어보셨어요? 라디오북클럽 최민석의 스포일러 들어보세요. 연기를 잘하십니다 ㅋㅋ

햇살과함께 2021-09-16 21:59   좋아요 1 | URL
저도 최민석 작가님 연기 너무 재밌어서~ 책을 아직 안읽어봐서 궁금하더라구요^^

syo 2021-09-16 22:15   좋아요 2 | URL
이렇게 연기칭찬이 자자하다니.... 연기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감상이 필요한 시점이네요 ㅎㅎ

청아 2021-09-16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녁 노을이 기막혔는데 역시 syo님 놓치지 않으시고 감성도 기막히게 살리셨네요👍👍

syo 2021-09-16 21:01   좋아요 2 | URL
창밖을 봤는데 뭔가 누르스름하길래 바로 옥상에 뛰어올라갔지요 ㅎ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21-09-16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사진은 오늘 저녁 사진이죠?
저도 깜놀했습니다. ㅎㅎ

syo 2021-09-16 21:02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좋았죠? 저 사진은 카메라 어플의 필터빨이 있긴 하지만 하늘 꽤 좋았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9-16 21:57   좋아요 1 | URL
근래 알게된 단어 중 현타 (現time)가 있는데요, 현타 의미로 점점 더 쇼펜하우어 사상이 앞으로 힘을 얻어 갈 거란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

syo 2021-09-16 22:15   좋아요 1 | URL
현타가 그런 뜻이 있었다니 ㅋㅋㅋㅋㅋ 제가 아는 현타는 ‘현자타임‘ 하나뿐이온데.....

독서괭 2021-09-16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망가진 매트리스 얘기에 19금을 섞어주시는 센스ㅋㅋ

syo 2021-09-16 21:03   좋아요 2 | URL
최초엔 더 구체적이었지만 백스페이스를 꽤 눌렀지요. 후후후후.....😏

오늘도 맑음 2021-09-16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겁나 멋지네요~! ‘저물고 말지 저미고 지랄’
그 아래 빨강으로 잡아먹힌 사진까지 오~!
제대로 찢었네요~!! 매트리스 새로 들이실때 충간소음도 생각하셔야겠어요^^
끝으로 데이빗 보위는 사랑입니다🥰

syo 2021-09-16 22:16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 저는 데이빗 보위 이름만 알았지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이 책 읽고 흥미가 쫙 붙었습니다.

오늘도 맑음 2021-09-16 22:51   좋아요 2 | URL
영화 ‘벨벳 골드마인’ 보세요. 데이빗 보위 직행열차입니다. 넷플릭스에도 들어와있어요^^ 과연 견딜 수 있으려는 지요ㅎㅎㅎㅎㅎㅎ

공쟝쟝 2021-09-16 2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외람된 말씀이지만 매트리스 교체대신 섹스를 끊어보심은 어떨런지요..?

syo 2021-09-16 22:16   좋아요 2 | URL
외람의 극치시네요. 제 서재에서 그런 말씀을 끊어보심은 어떨런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9-16 22:17   좋아요 2 | URL
푸핫!!!! 저는 어 왜 애인의 허리? Syo님 허리가 아니고? 했다는요. ㅋㅋㅋㅋㅋㅋ 고정관념 타파!!! ㅎㅎㅎ

syo 2021-09-16 22:1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뭐라 말을 보태기가 굉장히 애매하네욯ㅎㅎㅎㅎ

공쟝쟝 2021-09-16 22:28   좋아요 3 | URL
- 이내 변심할 4B 올림 -

초딩 2021-09-16 2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기억 안 나서 구글맵 켰습니다.

저 사진은 쿠바 하늘 같아요! 이말 하려고요
근데 전 쿠바 안 가봤습니다 ㅎㅎ
예전 아주 쪼금 좋아하던 사진작가가 찍은 쿠바하늘이 저랬어요.
안테나가 좀 많았습니다. 다른점은.

syo 2021-09-19 20:39   좋아요 1 | URL
저도 쿠바 안 가봤어요 ㅎㅎㅎ
쿠바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보고 꼭 가보고 싶었는데,
사실 그렇게 무슨 드라마 무슨 영화에서 보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다 가보려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올 판이네요.

붕붕툐툐 2021-09-17 0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제가 사랑하는 최민석님의 책이 재독, 게다가 쇼님도 빠져 계신 적이 있다니 퀄리티 올라가는 거 같은 이 기쁜 마음 뭔가요?
요즘에 라디오 다 접으시고 집필 중이시라고 합니다. 전 40일간의 남미여행 넘 재밌게 읽었어요!!^^
그나저나 매트리스가 꺼졌는데, 쇼님의 무릎과 그녀의 허리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진심 하나도 모르겠는데용?😝

syo 2021-09-19 20:4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저의 호불호는 퀄리티와 무관하다는 것이 다년 간의 제 서재 생활로 증명이 되더라구요. 좋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네......

매트리스와 무릎과 허리가 무슨 상관이냐면, xxxxx가 xxxxxx할 때, xxxxxx 되면 xxx트 xxxx 잖아요? 그래서 xxxx인 거죠.

설명이 지나치게 상세했다.....😎

서니데이 2021-09-17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명절과 좋은 주말 보내세요.^^

syo 2021-09-19 20:43   좋아요 2 | URL
긴 연휴네요.
서니데이님도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기원합니다^-^
 

 

저🦃끼는오리🦅끼중년🦜끼

 

 

 

1

 

특별한 일 없이 주말이 스윽 지나갔다. 그런 스윽들을 그윽하게 쳐다보는 법을 좀 익혀야 하겠다. 나의 인생은 앞으로도 대충 이런 식일 것이니까.

 

갑자기 좀 더웠다.

 

놈은 여전히 삐꾸다. 서울에 온 이후로 운전할 일이 없어서 차는 거의 일주일째 주차 중이다. 가끔씩 시동을 걸어줘야 한다며 일요일 내내 무슨 율동 공원인지를 가자고 졸라댔다. 낮에는 더워서 안 간다고 했고, 점심부터는 속이 별로 안 좋아서 됐다고 했다. 저녁에 또 가자고 하길래, 꼭 가고 싶으면 너 혼자 차 타고 나가서 햄버거라도 먹고 오라고, 나는 저녁 거를 생각이고 너도 밥 하기 싫을 것 아니냐고 그랬더니 같이 가서 햄버거 먹잔다. 속 안 좋다고 개새끼야. 그럼 사 와서 나중에 속 좋아지면 먹으란다. 그럴 거면 너 혼자 가서 사와도 되겠네, 하니까 입을 꼭 다물고 업무에 집중하는 척한다. 지금 직박구리 폴더 정리하고 있는 거 다 아는데. 밤 아홉 시에도 진짜 안 나갈 거냐고 한 번 더 물어온다. 안 간다고, 기필코 차를 몰아야 되는 거면 혼자 성남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했더니 한숨을 쉬고는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저건 무슨 분리불안 걸린 오리 새끼도 아니고 왜 저러지?

 

오늘 회사에 다녀오자마자 첫마디가 뭐지, 그 눈빛은?”이다. 첫마디가 속은 좀 괜찮냐?”가 아닌 그따위 너이기에 소개팅녀에게 너는 걷어차인 것이다. 그리고 발전이 없는 그런 너이기에 앞으로도 너의 연애는 요원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너를 용서하겠다. 네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바지가 도착했는데, 택배 비닐에 중년을 디자인하다, XX라는 글귀가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의 무심함과 한심함에 분노를 더하지 않아도 너의 중년은 벌써 충분히 안쓰럽기 때문이다…….

 

 


2018년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며 이성 (혹은 동성) 교제, '연애'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 20대 남성의 비율은 20퍼센트입니다. 이 고독의 깊이를, 이런저런 연애를 10대 후반부터 해온 저로서는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_ 박노자, 미아로 산다는 것

 

혼자가 곧 외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로움과 타인의 존재는 관련성이 없지 않다. 관계가 형성되면 나는 타인과 섞이고 동시에 확장된다. 외로움은 무균, 증류수 같은 결정(潔淨)적이고 결정(結晶)적인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 관계는 그 단단함과 순결성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_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연애결혼요? 무슨 원시시대 사고방식을 얘기하시는 건가요! 요즘 누가 연애결혼을 얘기하나요?" 대사 부인이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그 어리석은 구습이 아직 근절되지 않은걸요." 브론스키가 말했다.

  "그런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정말 안됐어요. 이성에 따를 때만 행복한 결혼이 된다고 난 생각해요."

  "그렇죠. 하지만 이성에 따른 결혼의 행복이 얼마나 자주 먼지처럼 흩날리던가요. 미처 예견하지 못한 열정이 나타나서 말이죠." 브론스키가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성에 따른 결혼이라고 부르는 건 둘 다 열애를 해 본 적이 있을 때를 말하는 거예요. 그건 마치 성홍열 같죠. 우리 모두 앓게 되는."

  "그럼 백신처럼 사랑을 인위적으로 접종하는 법을 배워야겠네요…….“

_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2



 

우선 <여성과 공동체 전복> 꼭지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여성의 가정 내 생산성을,(임금을 받지 않은 채 부담해야 하는 실제 가사노동뿐 아니라) 여성 역할의 복잡성을 살펴보면서 규명하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장 먼저 여성들을 서로에게서, 남성에게서, 자식에게서 분리하고, 여성 개개인을 가족 안에 가두려는 역할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마치 스스로 누에고치 안에 갇혀 죽어 가면서 자본을 위해 비단을 남기는 번데기 같다. 주부들이 이 모두를 거부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자신을 노동 계급의 한 집단으로,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위가 가장 강등된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 투쟁의 전반에서 주부의 지위는 매우 중요하다. 주부의 지위가,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지지하는 기둥, 바로 가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을 보완하는 인물, 바로 주부에 반대하고 여성의 개별성을 긍정할 수 있는 계획을 마땅히 제안해야 한다. 주부 역할의 생산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마땅히 내놓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기본적인 육체적 기능의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게 시급히 요구해야 한다. 생산적인 창조성과 함께 가장 먼저 강탈당하는 성적 기능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아 제한 연구가 이토록 더디게 진행되고, 거의 전 세계에서 임신 중절이 금지되고 결국 '치료' 목적으로만 허락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이것들을 요구하는 것은 안이한 개혁주의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자본주의적으로 관리되면 거듭해서 계급 차별, 특히 여성 차별을 만들어 낸다.

_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페미니즘의 투쟁, 54

 

페미니즘의 투쟁이라는 제목을 단 책에서 첫 번째 투쟁(앞으로 몇 개의 투쟁이 더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은 주부의 투쟁으로 가사노동의 중단을 의미한다. 이런 주장의 근본에 깔린 문제의식은 사회적 생산과정으로부터 배제되고, 게토화한 가정이라는 영역 속에서 가사노동만으로 자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여성의 입장이다.

 

여성이 직접적이고 사회화된 생산에서 분리되어 가정 안에 고립된 결과, 동네를 벗어나 사회적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전부 사라지고, 사회적 지식을 쌓고 사회적 교육을 받을 기회도 빼앗겼다. 여성은 산업 투쟁 및 다른 대중 투쟁을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기획하는 경험을 폭넓게 가질 기회를 박탈당하는데, 이는 교육의 기본 원천인 사회 저항 경험을 거부당하는 일과 같다. 사회 저항 경험은 당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능력과 힘, 당신이 속한 계급이 가진 능력과 힘을 알려주는 경험이다. 따라서 여성은 고립되어 있기 대문에 고통을 받으며, 여성이 무능력하다는 신화가 사회와 여성 자신에게 더욱 굳건하게 자리 잡는 이유도 여성의 고립 때문이다.

_ 같은 책, 34-35

 

달라 코스따는 우선적으로 가정이 사회적 생산과정으로부터 배제될 이유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가사노동 역시 사회가 주워섬기는 그 생산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세 가지를 댄다.

 

첫째, 임금 없는 노예제에 기초한 노예제의 생산성.

 

임금 노동을 정의할 때, 흔히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구조가 어마어마한 양의 사회 서비스를 사적 활동으로 탈바꿈시켜 주부에게 떠맡긴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가사노동이 본질적으로 '여성의 노동'인 건 아니다. 여성이라고 빨래나 청소를 하면서 남성보다 자아를 더 많이 실현하거나 남성보다 덜 힘들진 않다. 빨래나 청소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므로 사회 서비스이다. 자본은 정확히 자본주의 가족 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남성을 이런 사회 서비스 역할에서 '해방'시켰다. 따라서 남성은 온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착취당하게 된다. 남성들은 자신을 노동력으로 재생산해 내는 여성을 부양할 충분한 돈을 자유롭게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본은 가정 내 여성에게 이런 서비스를 떠넘기는 데 성공했고, 그만큼 남성을 임금 노예로 만들었다. 동시에 여성이 노동 시장에 유입되는 것도 통제했다.

_ 같은 책, 38-39

 

둘째, 수동성의 생산성

 

가족 안에서 여성의 수동성은 그 자체로 '생산적'이다. 첫째, 여성은 집 밖 세상에서 남성이 겪는 모든 억압의 배출구가 된다. 동시에 여성은 남성이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가 통치하면서 주입한 권력욕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자본주의적 조직화에 기여하는 생산적인 존재가 된다. 여성은 자본주의적 조직화가 초래하는 사회 긴장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둘째, 자율성을 완전히 부정당하기 때문에 좌절을 느끼고, 이 좌절을 언제나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연속적인 욕구, 즉 소비 비슷한 것으로 승화해야만 하므로, 여성은 생산적인 존재가 된다.

_ 같은 책, 47

 

마지막으로, 훈육의 생산성이다.

 

가족 안에서 여성이 맡은 역할의 세 번째 측면은, 여성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억압하는 인물,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규율을 강조하는 사람이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앞서 논의했듯이 여성의 인격이 특수한 유형의 저해를 받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편이라는 폭압, 가정이라는 폭압, 자신의 전 존재가 '영웅적 어머니와 행복한 아내'라는 이상형을 거부하는데도 그런 이상형이 되고자 고군분투해야 하는 폭압 아래에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폭압에 시달리고 힘이 없는 이들은,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면 처음 몇 년간 함께 지내면서 유순한 노동자와 작은 폭군들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교사가 학교에서 하는 일과 동일하다.(여기에 남편이 합세한다. 학부모-교사 모임이 존재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여성은 노동력 재생산을 책임지면서 한편으로는 내일의 노동자가 될 자식들을 훈육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이 오늘 하루 노동할 수 있도록 단련시킨다.

_ 같은 책, 53

 

이것으로 가정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특성, 즉 가정이 사회적 생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syo의 첫 번째 궁금증은 해결이 되었다. 가사노동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사회적 노동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단은 아래다.

 

그런데 사회화된 생산에서 배제된다고 해서 자연히 사회화된 투쟁에서도 배제되는 건 아니다. 물론 투쟁을 하려면 가사노동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투쟁은 이전까지 가정이라는 고립된 게토 안에서만 자아를 찾을 수 있었던 여성에게 대안적 자아를 제공한다. 투쟁의 사회성 안에서 여성은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새로운 자아를 부여하는 힘을 발견하고 실행한다. 새로운 자아는 새로운 사회적 영향력이 되고, 될 수밖에 없다.

  사회 투쟁의 가능성은 여성이 가정에서 하는 노동의 사회생산적 성격에서 생겨난다. 비록 지금은 집 안에서 제공되는 사회 서비스들이 여성의 역할과 사실상 동일시되고 있지만, 그것만이 유일하게 혹은 주도적으로 여성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생산적이게 만드는 건 아니다. 자본은 이 가사노동의 환경을 기술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자본이 당분간, 적어도 이탈리아 내에서만큼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은, 핵가족의 중심축으로부터 주부의 지위를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사 노동이 자동화되기를 기다려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가사노동의 자동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핵가족의 지속은 이 서비스들의 자동화와 양립할 수 없다. 이 서비스들을 정말로 자동화하려면, 자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을 파괴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완전히 자동화되기 위해서는 가족이 사회화될 수밖에 없다.

_ 같은 책, 41-42

정리하면, 

 

1. 사회화된 생산에서의 배제가 투쟁에서의 배제로 이어지지 않는다.

2. 투쟁은 사회적 활동이며 여성에게 실질적 자아를 제공한다.

3. 여성의 새로운 자아는 사회적 영향력이 된다.

4. 그러므로 23은 선순환관계다.

5. 달라 코스따가 가사노동의 사회생산적 성격을 증명해야 했던 최종적인 이유는, 가사노동의 권위를 담보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가사노동자들의 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아니며(이것은 과정에 그치는 것 같다), 사회 투쟁의 가능성과 기능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23의 선순환을 더욱 매끄럽고 견고하게 만들 것이고, 그 순환 속에서 여성과 사회 전체는 함께 발전해나갈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 내부에 존재하는 세력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비춰 볼 때,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및 그에 뒤따른 요구 사항들은 마치 지금의 가사노동 환경이 만들어 낸 제도화된 노예제를 더욱 견고하게 지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노동 임금 지급 요구가 현실에서 사람들을 집결시키는 목표로 작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요점은, 기껏해야 거리 시위에 가끔 참여할 준비를 하고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임금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 주부를 집 안에 평화롭게 남겨두지 않는 투쟁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주부라는 우리의 역할 그리고 우리 존재를 고립시키는 게토가 된 가정을 거부하면서, 가사노동의 전체 구조를 당장 깨부술 수 있는 투쟁 방식을 찾아야 한다. 가사노동 중단뿐만 아니라 주부 역할 전체를 끝장내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작점은 가사노동을 어떻게 해야 더 효울적으로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투쟁의 주인공으로서 어떻게 위치를 점할 것인가이다. 요컨대, 가사노동의 생산성이 아니라 투쟁의 전복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_ 같은 책, 41

 

 

 

3



 

쇼펜하우어는 사랑을 우리가 종적 번식을 하도록 자연이 창조한 환각이라고 본다. 사랑의 목표는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 하나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식을 낳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일에 쓰이는 희생자로, 모든 것이 자연의 계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자연은 종의 생존에 관한 일만 고려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분야에서 항상 협조적이지 않다. 세상에 자식을 내놓는다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커플이 끔찍한 행위를 해야 하는 진짜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연은 우리가 약간 판단력을 잃도록, 그래서 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자행하도록 우리를 도취시킨다. 사랑은 이런 알싸한 취기다. 황홀경으로 다가올 쾌락을 약속해 주니 평생 자신의 상대에게 매달리고 싶어진다. 그것이 그토록 몽환적인 만큼 우리는 완전히 미칠 준비가 되어 있다. 비극은 그다음에 시작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기도취 속에서 상대의 심장과 영혼에 닿기 위해 대화를 시적으로 꾸미지만 결국 상대의 몸을 겨냥한 것이다. 사실 유일한 목표는 성행위다. 우리에게 얼마나 성관계가 중요한가. 이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이 때문에 자살한 남자들의 예를 드는데, 그들의 '아름다운 애인'이 육체적으로 그들의 것이 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감정으로 되돌려 받는 것으로는 안 된다. 그들의 금욕에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랑이라는 가면 아래 양심을 속이기 위해 자연은 행동한다. 그 목표는 숭고하다. 최고의 개체를 수태하기. 오로지 그것을 위해 자연은 증식과 종의 영속, 더 나아가 종의 재생을 목적으로 사랑을 나눌 보완 상대를 탐색한다.

_ 셀린 벨로크,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이게 정말이라 치면,

 

콘돔이라는 위대한 발명품이 질김과 얇음을 동시에 성취함에 따라 번식이 따르지 않는 성적 만족이 가능해짐으로써 이제 성적 본능은 번식이라는 목표 달성에 주요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 이 시대의 성적 본능이란 꼬리뼈나 맹장 같은 흔적기관,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남자의 유두처럼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새로운 목적(?)으로 쓰이는 기관이 되었다. 이런 사실을 베이스로 깔고, 만약 진화에 충분한 세월이 주어진다면 번식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이 발달될 본능은 무엇일까? 그건 당연히 돈에 대한 본능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 성욕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번식할 수 없고 돈이 있으면 성욕이 없어도 번식할 수 있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신자유주의도깨비 나라이기 때문. 따라서 앞으로 인간은 다른 인간이 아니라 지폐를 보면서 두근거림을, 비트코인을 떠올리면 성욕을 느끼는 고오오등한 존재로 진화할 모양이다.

 

 

 

--- 읽은 ---



350. 이까짓,

써니사이드업 지음 / 봄름 / 2021

 

집이라, 그것은 마치 불가능의 다른 이름 같다. 이까짓 시리즈의 1호가 이까짓, ‘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털에서 집으로의 격변도 놀랍지만 집이 이까짓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마음도 든다. 물론 털이 그랬듯이 이 책도 실제로 집을 이까짓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일즈포인트를 들여다 보면 아무래도 이까짓아무튼나란히 서는 것은 요원할 듯. 책은 무난하다.

 

신발과 옷을 고르는데 신경을 쓰는 만큼, 이젠 들고 다니지도 못할 집까지 취향을 따지는 시대가 됐다. 뉴스에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으로 떠들썩한데, 어째서 SNS 속 친구들은 다들 그림 같은 집에서 우아하게 살고 있는 걸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글을 쓰는 사람인지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도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브이로그에 영상도 찍어 올려봤지만, 전세로 간신히 구한 오래된 빌라는 어딜 찍어도 한 구석이 못났다. 내 주머니 사정으론 어떤 앵글에서 바라봐도 간지 터지는 그런 집을 갖기란 평생 불가능이란 말은 너무 마음 아프니까 그냥 쉽지 않을것 같다. 갖고 싶은 옷, 갖고 싶은 가방은 도리질 한 번 하면 잊을 수 있지만, 최소 2년 이상을 눈 뜨고 눈 감을 때까지 쳐다봐야 하는 집을 어떻게 내 마음속에서 치워둘 수 있을까. 콤플렉스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유튜브나 SNS에서 멋진 집을 볼 때마다 심장이 콕콕 쑤시는 걸 보면, 집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기 위해선 꽤 오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_ 써니사이드 업, 이까짓,

 

 

 


351. 냄비는 둥둥

김승희 지음 / 창비 / 2006

 

  콩에 햇빛을 주지 않아야 콩에서 콩나물이 나온다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긴 기간 동안

  밑빠진 어둠으로 된 집, 짚을 깐 시루 안에서

  비를 맞으며 콩이 생각했을 어둠에 대하여

  보자기 아래 감추어진 콩의 얼굴에 대하여

  수분을 함유한 고온다습의 이마가 일그러지면서

  하나씩 금빛으로 터져나오는 노오란 쇠골고리 모양의

  콩나물 새싹,

  그 아름다운 금빛 첫 싹이 왜 물음표를 닮았는지에 대하여

  금빛 물음표 같은 목을 갸웃 내밀고

  금빛 물음표 같은 손목들을 위로위로 향하여

  검은 보자기 천장을 조금 들어올려보는

  그 천지개벽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어두운 기간 동안

  꼭 감은 내 눈 속에 꼭 감은 네 눈 속에

  쑥쑥 한시루의 음악의 보름달이 벅차게 빨리

 

  검은 보자기 아래―― 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사이였다

_ 김승희, <콩나물의 물음표>

 

 

 

 


352.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 김도연, 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

 

"마리암, 네가 가진 두 문화를 이젠 받아들이렴. 마음을 편히 가져." 

  "그게 싫다는 게 아니에요. 남의 상처를 보고 환상을 품는 위선자들에게 화가 난 거예요.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정중하게 내 상처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를 지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위선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고요."

  "마리암, 증오와 분노로는 아무것도 이길 수가 없단다."

  "그들의 신분이 부러워요. 자부심도 강해 보이고요. 난 절대로 그런 확신을 가지고 파리의 거리에 발을 딛지 못해요. 언제나 이리저리 확신 없이 흔들리거든요."

  "주먹을 펴라. 나를 보고 주먹을 펴. 단 한 순간도 내 말을 잊지 마라. 네가 간신히 손에 쥐게 된 것을 절대로 망가뜨리지 마라." 

  "무슨 말씀이에요? 이해를 못하겠어요."

  "아니, 넌 잘 알고 있어.,내 귀여운 손녀야. 주먹을 펴. 네가 간신히 손에 쥔 것을 망가뜨리면 안 돼."

  나는 힘줄이 튀어나온 할머니의 주름진 손과 언제나처럼 아름답게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본다. 내 눈앞에서 할머니 손가락들이 천천히 펴진다. 꽉 쥐었던 주먹이 꽃이 피듯 열린다. 할머니가 손을 내민다.

_ 마리암 마지디,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A4 한쪽 혹은 조금 넘는 분량의 모자이크 이야기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 그런데 그 모자이크 하나하나가 저마다 그림이다. 나는 늘 이런 글이 쓰고 싶었다. 긴 이야기에서 끊어낸 것처럼 보이는 한 토막의 이야기. 앞뒤가 당연히 있을 것이며, 읽는 이가 그 공백을 상상하며 메워나가도록 이끄는 이야기.

 

 

 


353. Chaeg 2021.7.8.

()(월간지)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우리는 반 고흐가 남긴 그림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외로운 예술가를 온전히 다 가지지 못했습니다. 시대의 유행이나 유명인의 영향력은 산업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 고흐의 그림을 조금 더 순수하게 바라보고 그 가치를 알아챈 사람들이 동시대에 훨씬 더 많았더라면, 소박한 삶의 풍경에서 수많은 서사를 꺼내 놓을 수 있었던 반 고흐의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눈들이 조금만 더 열려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유명인의 그림 구입은 세간에 떠들썩하게 알려지고, 미술계 역시 대부분의 경우 이를 환영하곤 합니다. 실제로 매우 긍정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유명인이나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작가 혹은 작품만을 따라서 추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순수하게 그림과 교류할 수 있는 나만의 안목을 갖는다면, 더욱 다채로운 예술가들이 희망을 안고 우리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가며 역사에 남을만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여름, Chaeg68호에서는 그림을 보는 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우리 곁에 머무는 소중한 것들을 지금 알아보고, 계속 지켜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_ Chaeg 2021.7.8.시작하는 글

 

이런저런 책을 바삐 읽는 와중에도,은 어떻게든 읽고 있다. 페이퍼를 쓰다 보면 여기가 분명 책 이야기하는 공간인데도 책 이야기는 대충 찌끄리고 쓸데없이 내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자꾸만 경로 이탈을 감행하는데, 이런 미친 경향을 바로잡지 않고 한 달을 그냥 두면 사진을 올리고, 두 달을 그냥 두면 노래를 올리고, 세 달을 그냥 두면 유튜브를 시작하려 들지도 모른다. 파국이다. 멸망이다. 그나마 이 계간지나 격월간지가 아니라 월간지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까딱하면 사진을 올릴 것 같은 그 일촉즉발 위기일발 이런x발의 상황에 짠하고 의 신간이 나오고, 나는 을 읽으며 겨우 본분과 초심을 상기한다. 그러면 개비스콘에 담근 위장처럼 안정적인 상태를 회복하고 다시 개운하게 한 달을 가는 것이다. 이번 호는 미술, 미술 역입니다.

 

😍 사랑하는 전지윤 선생님에 대한 몇가지 정보를 더 입수했다. 선생님은 40대 중후반, 예술학을 전공하셨다고 한다. 후후후…….

😉 이 책을 읽고 요런 깜찍한 구성을 고안하게 되었다. 앞으로 본문에는 책 정보를 더 넣고, 잡소리는 요렇게 아래쪽으로 빼면 어떨까?

🙄 근데 그게 될까? syo에게 글속에서 잡설을 빼라는 것은 흡사 무척추동물에게 척추를 빼라고 지시하는 것과 같은데.

 

 

 


354.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1

 

28개의 고전에서 삶을 받쳐 줄만한 것들을 찾아내는 독법서다.

 

28작품은 이렇다. 몇 개나 읽으셨는지?

 

1. 데미안 / 헤르만 헤세

2. 오즈의 마법사 / 라이언 프랭크 바움

3. / 장 폴 사르트르

4.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5.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7. 어린 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8. 좁은 문 / 앙드레 지드

9.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10. 위대한 개츠비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11.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12. 지상의 양식 / 앙드레 지드

13.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14. 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5.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16. 인간의 대지 / 생텍쥐페리

17. 구토 / 장 폴 사르트르

1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19. 변신 / 프란츠 카프카

20.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21. 안네의 일기 / 안네 프랑크

22. 마지막 잎새 / 오 헨리

23.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24.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의

25.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26. 여자의 일생 / 기 드 모파상

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28.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syo는 두 개 빼고 다 읽었다.

 

편집과 수정이 꼼꼼하지 못했음이 목차에서부터 대뜸 드러난다. 7의 생텍쥐페리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인데, 16의 생텍쥐페리는 그냥 생텍쥐페리다. 앞에서 한 번 나왔으니까 이름은 생략한 건가 싶지만, 3의 장 폴 사르트르가 17에도 장 폴 사르트르인 것을 보면 그냥 실수인 듯. 톨스토이는 1823 두 번 나오는데 이름도 없이 성만 등장하고, 24의 경우, 다른 이름들과 달리 헤르만 헤세가 붙어 있다.

 

작품 하나와 개념 하나가 엮여서 각 꼭지를 이루는 책이다. 데미안자아’, 오즈의 마법사여행을 접붙이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짝꿍이 찰떡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사르트르의 의 짝꿍으로 독서를 끌어앉혔는데, 읽어 보면 아, 착 달라붙지 않은 애들이 만나서 그런가 이 꼭지는 좀 부실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를 보면 작가 장재형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내면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바로 그 답이 고전 문학에 있다고 대답한다. 고전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는데 이렇다.

 

첫째, 고전 문학은 타임머신처럼 과거 속으로 여행할 수 있다. 고전 문학은 그 작가의 삶과 인생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래서 작가와 작가가 만들어 낸 등장인물들과 소통할 수 있다.

  둘째, 고전 문학은 우리에게 다양한 간접경험과 창의성을 제공한다. 우리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

  셋째, 고전 문학 속에서 우리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던 여러 감정과 맞닥뜨린다 ()

  넷째, 고전 문학에서 우리는 어떻게 힘든 삶을 극복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

  다섯째, 고전 문학은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

 

고전 문학은 타임머신처럼 과거 속으로 여행할 수 있다라는 괴랄한 문장은 차치하고, 선생님이 예로 든 다섯 가지 이유는, ‘고전 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이전에 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로 제시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이라는 부제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지 못한다. ‘한 개의 혀는 모든 인간이 가지는 성질인데, 굳이 <‘아시아에 사는인간은 혀가 한 개>라는 문장(역시 틀린 말은 아니지만)을 사용하겠다면 진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혹은 혀가 한 개라는 특성 말고 진짜 아시아에 사는 인간들만 보유하는 특성을 제시하든가.

 

 

 


355. 소오강호 3

김용 지음 / 전정은 옮김 / 김영사 / 2018

 

 

 

--- 읽는 ---


꽈배기의 멋 / 최민석

소오강호 4 / 김용

둥근 발작 / 조말선

페미니즘의 투쟁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 셀린 벨로크

꽤 유쾌하고 쓸모 있는 과학 / 빅토리아 윌리엄스

끝내주는 괴물들 / 알베르토 망겔

뺨에 묻은 보석 / 박형서

저는 주식 투자가 처음인데요 : 기본편 / 강병욱

교양으로 읽는 기독교 / 손석춘

이불 밖은 위험해 / 김이환

예술가의 일 / 조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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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13 21: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재형의 독서리스트는 제게 만족감을 주네요.
페미니즘의 투쟁 너무 정리를 잘해주셔서...잘 읽었어요.
연애, 결혼, 여성, 집... 연결되는 주제들 속에 오늘은 삼님이 안됐다는 느낌!
읽고 싶은 책들 담아갑니다.

syo 2021-09-13 21:21   좋아요 4 | URL
저것이 정리라기보다는 재배열에 가깝습니다..... 고작 30쪽 남짓 읽은 거거든요;;;
마지막까지 쪼개고 재배치해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三을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애 버릇 나빠져요 ㅋㅋㅋㅋㅋ

mini74 2021-09-13 2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직박구리폴더 ㅎㅎㅎㅎ 무슨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은 리뷰 ㅎㅎㅎ삼남의 부산함속에서도 부지런히 책을 읽으셨군요 . 전 4권빼곤 다 읽었는데 진정한 독서였는지는 의문점이 ㅠㅠ 가사노동에 대한관점이 새로우면서 해답을 주는 듯 해요. 중년의 직박구리는 왠지 슬프네요 ㅠㅠ

syo 2021-09-13 21:22   좋아요 3 | URL
직박구리를 아시는군요..... 온갖 오명을 뒤집어 쓴 불쌍한 새여....
근데 진짜 깜짝 놀랐어요. 중년 패션을 표방하는 데서 바지를 사다니.... 아니 우리가 그런 나이가 되긴 되었지만....

초란공 2021-09-13 21: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분리불안 삼님 어떻합니까^^;; ㅋㅋ

syo 2021-09-13 21:23   좋아요 3 | URL
오늘은 당당하게 혼자 차 몰고 어디 간 모양입니다.
차 보러 갔다와야겠다- 하고 나가더니 한 시간 가까이 안 들어오네요.
아니면 차에서 핸드폰으로 직박구리 폴더 보고 있나.....

scott 2021-09-13 21: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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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님에게 소요님은 정신적 기둥!!

syo 2021-09-13 21:23   좋아요 3 | URL
우와 싫다 그런 기둥 ㅋㅋㅋㅋㅋ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21-09-13 21: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슬픈 날엔 스피노자였는데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네요. ㅎㅎ 이 책도 읽어 봐야겠습니다. 이전처럼 책 내용이 책 제목에 부합하는지 확인차 ㅋㅋ

syo 2021-09-13 21:25   좋아요 3 | URL
ㅎㅎㅎ 저도 이 시리즈 좋아해서 키에르케고르 빼고는 다 읽어봤는데, 그 중 스피노자가 제일 괜찮았던 것 같아요. 아리스토텔레스도 좋았던 것 같고. 근데 이 책은 문장이 좀....

독서괭 2021-09-13 21: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17권 읽었(던 것 같)네요. 이해 안 되는 것은 연금술사. 전 이 책이 참 별로여서 그뒤로 코엘료는 쳐다도 안 봤는데 고전으로 들어가는군요.
그나저나 삼님 참… 어떡해.. 삼님에게 집착당하는 syo님은 어뜩해…

syo 2021-09-13 21:33   좋아요 4 | URL
저는 수능 치고 집에 와서 연금술사 봤는데 수능을 망하고 봐서 그런가 되게 감동적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때 이후로 한동안 파울로 코엘료 좋아해서 나오는 거 다 봤는데 11분인가 그거 읽고 버렸어요..... 나는 못해봤는데!! 하면서 ㅋㅋㅋ

三이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에겐 직박구리가 있으니까요.

붕붕툐툐 2021-09-13 2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 전 완전-그럴 줄 알았지만- 하위네요. 13권~ㅋㅋㅋㅋ
삼님의 바지 배달 읽는 저도 함께 짠하네요~ 그나저나 20대 남성 연애비율이 20%라고요? 맙소사! 20대 남성을 노려야겠군요!!(저 80%중엔 15살 이상 연상도 거뜬하게 사귈 사람이 분명 존재할 거야. 하하하하하!!)

syo 2021-09-16 19:36   좋아요 1 | URL
……천잰데? 😲

새파랑 2021-09-13 22: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14권 읽었네요. 역시 남자 둘이 살면 재미있는거 같아요 😆 서로 까고 ㅋㅋㅋㅋㅋ

syo 2021-09-16 19:37   좋아요 2 | URL
바깥에서 보면 희극이지만 안에서 보면 비극입니다...... 권하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

막시무스 2021-09-13 22: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4권 완독 보고드리고요! 가을 바람 솔솔불기 전에 삼님의 연애기가 연재되길 응원합니다! 삼님과 동지애 이입 차원에서 한캔 남은 비장의 찡따오 따고 잘게요! 즐건 한주되십시요!ㅎ

syo 2021-09-16 19:38   좋아요 2 | URL
연애기는 무기한 연기입니다.
최근 느끼는 건데, 요즘 외모도 점점 더 아저씨화되고 있어서.....

페넬로페 2021-09-13 23: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8권 완독 보고 드립니다^^
저기서 ‘달과 6펜스‘가 젤 감동적이었어요.
거 참,
삼님이 어디 좀 가자고 하시면 같이 나가 주시구랴~~
둘이서 제부도도 다녀 왔으면서^^

syo 2021-09-16 19:3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제부도가 다 소용없게 되었네~ ㅋㅋㅋㅋ
왜이렇게 꼬숩지? ㅎㅎㅎㅎㅎ
 


사선斜線

 

 

 

1

 

은행이 익어가고 밤은 제법 쌀쌀하다. 약간 가을이고 가을 syo가 조금씩 오고 있다. 가을은 늘 책을 많이 읽는 계절이었다. 왠지 그냥 그랬다. 산책길도 커피도 가을에 더 맛있고, 하늘도 연인도 가을에 더욱 예쁜 법. 들여다보고 만질 것들이 잔뜩 있는 가을, 나의 가을.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여름보다 겨울보다 조금은 더 오래 머물게 되는 아름답고 책 읽기 좋은 나의 가을. 사람은 겨울에 나이를 먹지만 읽고 쓰는 syo의 성장판은 항상 가을에 열리지.

 

1식어갈 때마다 씩 빗나가는 사람이 되는 옹골찬 가을이기를.



    

초보적인 배움은 무언가를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모방을 넘어서, 나와 전혀 닮지 않은 그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할 때 나 자신에게서 저절로 발생하기 때문인가. 나는 한 번도 인력거(친한 친구의 이름이다.)를 따라 하고 싶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점이 의아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어느 정도 따라 하고 싶어 하는데 말이다. 인력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많은 걸 배웠는데, 친구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친구와 비슷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친구와 나 사이의 빈 공간에서 나의 것도 친구의 것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발생하고 우리의 영혼이 그 빈 공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잡초처럼 쉭쉭, 자라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친구인 자들은 빈 공간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_ 문보영, 일기시대

  

  나의 목소리가 매일

  대기에 가까워진다.

 

  내 입술은

  내 목소리 바깥의 것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아, 하고 입술이 동그래질 때

  어,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_ 하재연, <인어 이야기 2> 부분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완만한 고개에 올라서자 멀리 떨어진 곳에 가로등이 보였다. 세 개의 가로등이 또 다른 모퉁이를 향해 점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로 내려갔다. 불빛의 조그만 언저리 바깥은 대부분 어둠에 잠겨서, 공중에 떠 있는 길을 둥실둥실 가는 듯했다. 귀신일까요, 우리는, 귀신일지도 모르죠, 이 밤에, 또 다른 귀신을 만나고자 하는 귀신, 하고 말을 나누며 탁하게 번진 달의 밑을 걸었다.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_ 황정은, 백의 그림자

 

 

 

2



 

이탈리아에서는 여성 해방 운동이 좌파 및 학생 운동과는 다른 고유한 자율성을 구축했다. 그러면서 좌파와 학생 운동 진영에서도 분명 논의하고 있던 문제, 즉 사회 차원에서 어떻게 투쟁을 조직할지를 두고서는 그들과 충돌했다. 좌파가 제안하는 사회 투쟁은 공장 투쟁의 기계적 확장과 투영에 그치고, 이 투쟁을 이끄는 중심인물은 여전히 남성 노동자였다. 여성 해방 운동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정을 사회적 차원으로 간주하며, 여성을 사회 전복의 중심인물로 본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스스로를 자신이 놓인 정치적 틀의 모순점으로 상정하고, 정치 투쟁과 혁명 조직을 보는 전체 관점의 문제를 다시 열어젖힌다.

_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페미니즘의 투쟁, 1. 여성과 공동체 전복이탈리아판 서문 (24-25)

 

이 꼭지의 요지는, 가정이 사회로부터 분리/고립되어 있거나 혹은 열위적/종속적 구조물이라는 구도(이 구도에서 여성 해방은 가정으로부터 탈출하여 사회로 진입하는 개별 여성 단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친다)를 거부하고, ‘가정자체를 사회적 차원으로 해석하겠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가정에 사회적 의미를 새로이 부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가정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음에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호도되어 온 사회적 특성의 존재를 드러내겠다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그 특성, 가정은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정으로부터 박탈하고 독점한 그 잊힌 차원의 좌표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무엇이 사회를 사회로 만드는가. 그 힌트는 앞쪽 문단에 제시되어 있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이 소비의 중심이자 숨은 노동력 예비군인 건 맞지만, 우리는 가족이 그에 앞서 생산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가족이 자본주의를 위해 생산하지 않고 가족이 사회적 생산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집 안의 여성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없다고 가정해, 이 여성들을 생산자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생각이 자본주의에 꼭 필요하다면, 생산 거부, 즉 노동 거부는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

_ 같은 책, (23)

 

생산. 사회는 생산하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는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곳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곳이 사회라는 이 순환적 정의 속에 숨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가정에서의 노동 거부가 곧 사회적 생산의 거부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질문, 그러니까, 어떤 생산의 중단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측정하면 그 생산이 사회적 생산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뉘앙스에서 두 번째 질문이 생겨난다. ‘사회적 생산을 판단하는 방법은 저런 귀류법歸謬法과 유사한 방식(없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뿐인가? 이것은 여러 판단 방법 중 하나에 그치는가? 그리고 이와 연결되어 나타나는 세 번째 질문, 만약 사회적 생산을 판단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면, 가정 내의 여성의 생산적 노동이 사회적 노동인지를 판단할 때 다른 어떤 방법이 아닌 귀류법적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어떤 메타적 억압이 존재하는가?

 

이 세 질문을 염두에 두고, 두 번째 꼭지 여성과 공동체 전복을 읽는다.

 

 

 

3

 

의 첫 소개팅은 미래의 어느 맥주맛을 위한 한 꼬집 농담으로 마무리된 듯하다.


 

"길게 늘어진 숲속의 산꿩 꼬리 기나긴 꼬리…… 정말이야, 밤이 깊으면 시간이 안 가. 죽죽 늘어져. 그러면 내가 살아온 날도 떠오르고 날 떠난 사람도 떠오르고. 긴긴밤을 그리며 나 홀로 뒤척일까…… 슌짱, 인생은 고독한 거야. 이만큼 살았는데도 어째서 이렇게 밤마다 외로울까?"

  그날 밤 나는 독립한 따님이 쓰던 이층 작은방에 누워 잠을 청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치사짱의 쓸쓸한 모습이 나의 미래 같기도 하고, 모두의 인생 같기도 했다. 인간은 저마다 긴긴밤을 뒤척이며 홀로 걷고 있구나. 그런, 슬픈 동물이구나.

_ 정수윤, 날마다 고독한 날

 

"사람이 진짜 아는 건 자기가 길들인 것뿐이야. 이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 가게에서 다 만들어진 물건을 사거든.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줘!"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해. 먼저 풀밭에 그렇게, 나랑 조금 떨어져서 앉아. 나는 너를 슬쩍 쳐다볼 텐데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 대신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는 거야."

_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 읽은 ---


347.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

 

- 일독(1809xx)

- 재독(210910)

 

지금 이 마음. '오늘의 나'에게 딱 맞는 '오늘의 빵'을 찾는 마음. 쟁반에는 아직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풍요롭다. 이대로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빵집을 나간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던 회의 시간의 내가 떠올랐다(물론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 손으로 고를 수 없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인생 같았는데 그 순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답다고 느껴진다.

  '당연히 이쪽이 맞아.'

  아직까지 빈 쟁반을 든 처지이면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되었든 내 삶의 온갖 선택 사항들도 이런 마음으로 고를 수는 없을까?

  '아직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쟁반을 든 나'라는 인물로 한 발 한 발 나긋하고 점잖고 구수한 당당함을 지니고 싶어졌다.

  물론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늘 하루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 정도는 '어차피 안 고를 빵'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어떤 빵집에서는 빈 쟁반인 순간이 오히려 반짝이니까.

_ 임진아,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일독 때는 임진아 선생님의 문장에 굉장히 반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까 그때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조막조막 귀엽긴 한데, 내가 그렇게 환장하며 좋아했었다고? 흐음….   


커피를 내리고, 빵을 고르고, 이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활동으로 스스로를 톡톡 두드려보면서 이 순간의 내가, 오늘의 내가, 이달, 올해의 내가 무엇을 바라며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계속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을 닮고 싶다.

 

 

 


348. 붉은 칼

정보라 지음 / 아작 / 2019

 

실은 표지에 확 끌려서 읽었다. 


그래서 그녀는 붉은 비단 칼집 안에 숨겨진 칼날을 소년에게 보여주었다.

  소년도 제국인들이 그러하듯 총은 알았으되 칼은 알지 못했다. 길고 가느다란 칼날이 배 밑바닥의 어스름한 불빛에 빛나자 소년은 넋이 나간 듯 매혹되어 손가락으로 만지려 했다. 그녀는 소년이 다칠까 봐 깜짝 놀라서 내민 손을 얼른 붙잡았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소년의 손은 단단하고 거칠었으며, 따뜻했다.

  소년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어둡고 차가운 배 밑바닥에서, 소년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붉은 비단 칼집에 감싸인 칼 곁에 누웠다. 소년은 그녀의 상처와 흉터와 흔적들을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소년을 향해 몸을 열었을 때 소년은 몇 번이나 그녀에게 괜찮은지, 정말로 괜찮은지, 진심으로 원하는지 되풀이해서 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그렇다고, 괜찮다고, 원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소녀는 소년을 뜨겁게 껴안았다. 소년은 격렬하고 절박했고 그녀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마치 쾌락이 아니라 고통인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녀가 소년에게 괜찮은지 물었고 소년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소년은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죽었다.

_ 정보라, 붉은 칼

 

요런 대목이 괜찮았다. 뜨거운 순간조차 맺음이 차가운 문장. 소설의 대부분은 전쟁 및 전투 신인데, 그보다는 사랑하고 주장하는 부분이 읽기 좋았다. 얼개는 신박함에 무릎을 탁 칠 정도는 아니었다.

 

 

 


349. 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이석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

 

독서는 모험과 낭만이라는 꿈을 향해 성실성과 결단력으로 인간 정신의 전역을 활보하고 측량하는 영혼의 고고학이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찾아 떠나는 내면의 여행입니다. 우리 시대의 석학 이어령 선생은 독서는 씨뿌리기이며, 변화이며,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과 백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의 인생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같아서도 안 됩니다. 모험과 도전, 꿈과 낭만과 용기를 찾는 정신은 내면의 여행인 독서와 온몸으로 떠나는 독서인 여행으로부터 나옵니다.

_ 이석연,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나도 나만의 독서노트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던 적이 있긴 하다. 왜 포기했더라. 그전에, 그걸 왜 만들기로 했더라.

 

독서에 대한 믿음이 저렇게 확고한 사람들은 멋있다. 하지만 그저 그런 마음만 가지고 어느 수준 이상의 책이 써지는 것은 아닌 듯. 독서에 대한 믿음에 더해 읽고 쓰기까지 잘하는 사람은 부럽다. “내면의 여행인 독서와 온몸으로 떠나는 독서인 여행이라는 말은 내게 이석연 선생님이 멋있음을 넘어 부러움의 겨드랑이를 살짝살짝 건드리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표현이다.

 

 

 

--- 읽는 ---

소오강호 3 / 김용

이까짓, / 써니사이드업

냄비는 둥둥 / 김승희

페미니즘의 투쟁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일기 시대 / 문보영

냉장고를 여니 양자역학이 나왔다 / 박재용

진보의 상상력 / 김병권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 마리암 마지디

Chaeg 2021.7.8. / ()(월간지) 편집부

Now Write 장르 글쓰기 1 : SF 판타지 공포 / 낸시 크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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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10 2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삼님의 연애기는 이 한문장으로요?ㅠ

syo 2021-09-10 21:30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 망했어요......

막시무스 2021-09-10 21:32   좋아요 3 | URL
으~~~~~~~ 오늘 밤은 맥주 안마실라고 했는데 제가 대신 위로주 마셔드리겠다고 꼭 전해주십시요!ㅠ

syo 2021-09-10 21:33   좋아요 4 | URL
네, 막시무스님은 대신 위로주 마셔주시고, 저는 대신 연애를 해줄 생각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scott 2021-09-10 2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삼님 등장 ㅎ 한꼬집 농담 ㅜㅜ 담번엔 꼬옥 !

syo 2021-09-10 21:31   좋아요 4 | URL
제놈도 이를 악 문 모양입니다 ㅎㅎㅎㅎㅎ

다락방 2021-09-10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삼님 왜.. 🥺

syo 2021-09-10 21:33   좋아요 2 | URL
어제였던가 카톡으로 통보받았어요...
아까 퇴근해서 지금 2시간동안 말 한마디를 안하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9-10 2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지요?ㅎㅎㅎㅎㅎㅎ
재독에서 실망한 느낌은 왠지 몇 년 흐른 후 첫사랑을 우연히 만난 느낌? 내가 얘를 그렇게 사랑했다고???ㅎㅎㅎ
가을 syo님 기대합니다!!

syo 2021-09-10 21:47   좋아요 3 | URL
가을을 위한 쓸쓸 에너지 충전중입니다.
겁나 뜨겁게 호호 불어가면서 연애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17년째 솔로 생활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글을 뽑아내는 가을 syo가 온다!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 가을은 털갈이 없이 무탈한 나날 보내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ㅎㅎㅎ

syo 2021-09-10 21:52   좋아요 4 | URL
가을 털갈이 안 한지 오래입니다!! 제가 무슨 털짐승도 아니고 🐕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1:53   좋아요 2 | URL
그럼 물고기입니까 비늘짐승?!?! 날짐승??ㅎㅎㅎㅎ

syo 2021-09-10 21:57   좋아요 3 | URL
제가 바로 거두지도 말라는 검은 머리 짐승입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2:00   좋아요 2 | URL
그 말씀 거두소서 ㅎㅎㅎ 흰머리가 보입니다….

syo 2021-09-10 22:01   좋아요 3 | URL
들켰군 🧑‍🦳

오늘도 맑음 2021-09-10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예쁘네요. 정말 가을이에요~^^

syo 2021-09-10 23:4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맑음 님께도 늘 쾌청하고 좋은 가을 되시기를^-^

페넬로페 2021-09-10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주 한 캔 마셨는데 한 캔 더 따야겠어요^^
삼님 소식 듣고요~~
가을이네요**

syo 2021-09-13 20:40   좋아요 1 | URL
三의 저 비루한 인생이 비루할 때마다 맥주를 드신다면 알콜 중독이 생기실지도 모릅니다.
한 캔만 하세요 ㅎㅎㅎㅎ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9-11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는 글 마지막 문장. 훔치겠음^^

syo 2021-09-13 20:4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공짜예요.

책읽는나무 2021-09-11 0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노랫말이~ㅜㅜ
쓰라리겠지만 툭툭 털고 담번엔 꼭!!!

syo 2021-09-13 20: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쟤는 쓰라린데 저는 웃습니다.
다음이라고 뭐 그리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만 조금은 나아지겠지요 지도 사람인데-

단발머리 2021-09-11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기시대> 나두 집에 있어요. 읽지는 않고 있지만, 집에 있기는 하다고요 ㅎㅎㅎ <페미니즘의 투쟁> 쇼님의 질문들 좋아요. 다만, 그 밑에 질문에 대한 답도 좀 달아두시라~~~~ from 답을 모르겠는 어떤 사람

syo 2021-09-13 20:41   좋아요 0 | URL
<일기시대> 좋아요. 너무 잘 써서 나는 쓰지 말아야 되나 또 혼자 진지하게 고민함.....😣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읽고 있어요.... 답이.... 나오겠죠??

페크pek0501 2021-09-11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진아 님의 글 좋은데요. - ˝오늘 하루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 정도는 ‘어차피 안 고를 빵‘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재밌는 표현 같아요.

저도 독서노트를 갖고 있어요. 어떤 때는 3분의 2를 읽고 더 이상 안 읽어도 될 책을 독서노트에 적어 넣기 위해 완독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책 번호를 매기거든요. 번호의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는 게 뿌듯하답니다. ^^

syo 2021-09-13 20:4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한다 하는 독서가들은 독서노트를 가지고 있는 법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그런 훌륭한 걸 쓸 일이 없겠어요 🤣

그레이스 2021-09-11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모 비아토르‘라는 말도 좋고,
‘한권 읽은 사람과 백권 읽은 사람의 인생이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 🌒 ...🌓... 🌔... 🌕... 🌖... 🌗... 🌘
책을 읽습니다^^

syo 2021-09-13 20:4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이야, 달빛배치 정성스럽다.....
좀 감동 받아서 오래 쳐다봤어요 ㅎㅎㅎ 저런 구성도 가능하군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9-1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좋군요!

syo 2021-09-13 20: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산책갔다 돌아오는 길에.

라로 2021-09-1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뭡미까? 사진도 잘 찍는 거에요??!!!
저의 독서노트는,,,음 말을 말자..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1-09-13 20: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겁나 땀 삐질삐질 흘리며 언덕 올라오다가 정상에서 띡 마주친 광경이어서 그냥 띡 찍었어요. 띡띡. ㅎㅎ
 

 

초겨울사거리 6

 

 

 

오목한 것이 있어서,

 

그 안으로 너와 내가 들어가고, 다른 것들도, 예를 들면, 바람과 그늘과 새소리도 들어가고, 키스와 건널목과 벚꽃잎도 들어가고, 시간과 중력도 들어가고, 9월도 들어가고, 소매를 걷어붙인 처음 보는 셔츠와 비 오는 날의 맛이 나는 커피 두 잔도 들어가고, 목소리와 미소로 흥건한 오르막과 내리막들도 들어가고, 낮과 밤과 모든 만져지는 것들과 만져지지 않는 것들이 다 함께 빙글빙글 말려 들어가는 오목한 것이 있어서,

 

그 부드러운 경계에 서면 사건의 지평선에 올라선 빛처럼 모든 것들이 그 안으로 안으로 쏟아지듯 허물어지듯 되돌아가듯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그런 크고 오목한 것이 만약 우리에게 있어서,

 

들숨 날숨 한 번씩 오가는 시간이면 우리가 충분하게 가득 채워낼 무한하고 오목한 것이 있어서, 우리가 제일 먼저 그 안에 있어서, 쏟아지듯 허물어지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내며, 다 비벼내며, 바람이 만드는 그림자를 새소리에 얹어내며, 건널목마다 벚꽃잎 모양의 입술 자국을 찍어내며, 시간이나 중력이나 9월처럼 알쏭달쏭한 것들도 어떻게든 한아름 껴안아내며,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만지지 않은 날 밤에는 만져지는 것들을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것들을 만지지 못한 날 밤에는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함께 만질 수 있다면, 그런 아늑하고 오목한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영영 그 안에서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좋아서,

 

 

 

그래서 우리는 늘 시작해버리고 만다. 그게 무엇이든. 어떻게 되든. 사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악의? 그까짓 것들.

_ 강화길, 대불호텔의 유령

 

쇼바는 고개를 돌려 슈쿠마의 얼굴이 아닌 신발을 보았다. 그가 슬리퍼처럼 신는 낡은 모카신으로, 뒤축의 가죽은 항상 접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말에 쇼바가 조금 실망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지그시 힘을 주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할 필요는 없어." 그녀가 다가앉으며 말했다.

  그들은 아홉 시까지 그렇게 함께 앉아 있었고, 그러자 불이 들어왔다. 길 건너편 집의 현관에서 몇몇 사람들이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텔레비전들이 커졌다. 갔던 길을 돌아오던 브래드포드 부부는 아이스크림 콘을 먹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쇼바와 슈쿠마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어 둘은 일어나서 슈쿠마의 손이 여전히 쇼바의 손에 감싸인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_ 줌파 라히리, 일시적인 문제

 

타협하는 사람만이 '창조 이전과 같은 카오스인 사랑의 신비'에 상처 입지 않는다. 즉 그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신 그들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고 이 세상의 인습에 의해서 지지되고 오래 살 수가 있다.

  그러나 무서운 사랑의 정열에 몸을 태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서로가 자기의 초월을 상대방에게 맡겨 버리려고 생각하고 또한 그것을 영원화하려는 무모한 의도를 갖는다.

_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읽은 ---



337.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지음 / 산지니 / 2018

 

헌책방이나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이야기를 엮은 책에는 고난과 역경, 무심한 편견의 공격, 수지타산의 어두운 수렁과 그로 인한 방황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들어있었다. 그런 글을 읽으면 꺼질 듯 말 듯한 초를 손바닥으로 겨우 감싸고 바람 부는 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는 마음이 된다. 꺼지지 마요, 망하지 마요, 힘을 내요……. 하지만 기도로 배가 부르면 세상 만사 걱정이 없겠지. 결국, 책을 덮을 때는 아, 이래도 되는가, 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여 책으로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물심양면의 포화를 한껏 맞아가며 깎이고 바스라지는 세상이, 살만한 세상인가- 하며 혼자 착잡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역경? 편견? 적자? 맞아, 그런 거 다 있지. 하지만 나는 달린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고,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니까. 달리는 내가 기껍다. 으하하하하, 위대할손 나의 끈기!!!!! 이런 패기가 문장 문장마다 깃들어 있어서, 독자가 지치지 않는다. 그게 이반 일리치 덕분일까?

 

이러나 저러나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선생님 화이팅- 이긴 하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풍경은 조금 전과 완전히 달랐다. 꽃들은 바람이 부는 결에 따라 계속해서 흔들렸다.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던 그곳엔 벌과 나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곤충들이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이 거대한 풍요로움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들을 마주하며 처음으로 '평화로움'이라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이 평화로운 풍경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끊임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생명들로 가득한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내가 바라보는 풍경 속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이 멋진 풍경을 멀리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그 속에 깃든 수많은 비밀들을 외면했던 것이다.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그 후로 나의 목표는 '평화'가 되었다. 평화는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축제와도 같은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터전을 그런 풍경으로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내 삶의 목표를 '통장'이 아니라 '꽃밭'으로 정해도 좋지 않을까?

_ 윤성근,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338. 관자

신창호 지음 / 살림 / 2013

 

어릴 때는 노자 장자가 흥미로웠는데, 나이가 드니까 관자 묵자 한비자가 매력적이다. 지키는 새끼는 없고 지키라고 윽박지르는 새끼만 잔뜩 있던 게 공맹의 도가 지닌 역사다 보니 그쪽으로는 아무래도 눈길이 잘 가지 않고. 뭐든 새로운 주제에 흥미가 생기면 일단 살림지식총서 있는지 살펴보는 건 습관이다. 다 읽고 관자를 들였다.

 

 

 


339. 벽화

김영산 지음 / 창비 / 2004

 

  언제부터인지 밤이 편안하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시를 쓰지 않아도 된다

  커단 서른아홉의 중턱에서

  어느 시인은 서슴없이 꿈을 버린다 했는가

  나는 마흔을 바라 무엇을 버리는가

  애인이여 늙는 애인이여

  나는 밤을 괴롭지 않고 자고 일어나 어제처럼

  19층 아파트 젖은 벽을 타는

  눈 내리는 장엄을 볼 것이다

  나는 쏟아져내리는 흰 벽의 벽화를 그리겠고

  벽만 찬 벽만 바라보면 된다

  오래 머무르며 바라본 사람의 등이 그린

  벽화

  길을 가는 사람의 등이 그리는

  벽화

  모든 옛날의 눈 보내야 온다

  그러니 눈은 수직으로 내리지 않고

  벽을 어루며 온다

  벽화는 기울면서 그려진다

_ 김영산, 벽화 4

 

syo도 어느덧 마흔이라는 것이 코앞에서 알짱거리는 나이. 거울 속에는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녀석도 어제의 거울 속에서 그제의 그 녀석을 바라보며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겠지. 또 하루 멀어져 가는 게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또 하루 멀어져 간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뭔가 아는 척했던 그 서른 즈음처럼, 어느덧 마흔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는 시간. 알지 못하는 시와 노래들이 잔뜩 있다. 어떤 벽에 어떤 기울기로 기울어 어떤 마흔을 그릴 것인지, 거울에 대고 아무리 물어봐도 그 속에 든 애어른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340. 의 속삭임

루이자 메이 올컷 지음 / 김서령 옮김 / 폴앤니나 / 2021

 

하지만, 삼촌, 그건 신사답지 못한 거 아녜요? 전 아직 친절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삼촌은 어린 조카의 소소한 부탁을 거절할 만큼 야박한 사람도 아니고, 어린 조카는 마음만 먹으면 애교 있게 조를 줄도 안단 말예요. 이제 그만 대답해 주세요, ?”

  이 정도면 꽤 당돌해 보이겠지? 나는 삼촌의 목에 팔을 두르고 세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발칙하게 그의 무릎에 올라앉았다. 그는 잠깐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니 갑자기 나를 껴안고 입술과 볼 그리고 이마에 찬찬히 키스를 퍼부었다. 열정적인 삼촌의 태도에 나는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수치심이 분노로 바뀌고, 단호하게 놓아달라 내가 말할 때까지 삼촌은 일그러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야, 꼬마 아가씨. 내 무릎에 앉을 땐 너 좋자고 그랬겠지만 이젠 나를 위해 여기 앉아있어야 할걸. 너를 좀 더 길들여야겠어. 그럴 필요가 있어 보이거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이런 쪽으론 내가 경험이 좀 있거든. 가이도 그랬어. 타고나길 야생 매 같았지만 이젠 내가 부르면 순한 비둘기처럼 날아온다니까. 뭐야! 뭐 이런 맹랑한 악마가 다 있어?”

  나는 정말 그랬다. 맹랑한 악마 같았다. 그의 냉담한 모습에 분노한 나머지 이성을 잃은 상태로 갑자기 허리를 숙여 내 두 손을 잡고 있던 그의 희고 아름다운 손을 물어버렸으니까.

_ 루이자 메이 올컷, 밤의 속삭임


시빌이 겪은 고초가 당연히 시빌의 잘못은 아니지만, 잘못이 있건 없건 사람의 진심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 된다. 그런 짓을 하면 전혀 예측치 못한 방식의 체벌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벌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

 

무난한 소품 같다. 루이자 메이 올컷 하면 아무래도 작은 아씨들일 텐데, 그걸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접한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씨들 마음은 기가 차게 잘 그려내겠구나 싶긴 하다.

 

 

 


341. 술 수업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5

 

도대체 예술을 배워서 어디 쓰냐는 폭력적인 질문에 대한 길고 친절한 대답이다. 그러나 늘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답이 필요 없는 사람들한테만 와닿고, 대답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답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애초부터 궁금해서 질문한 게 아닌 것처럼.

 

우리가 창의력, 창의성이라고 할 때는 보통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렇게 단순히 새로운 시각만을 강조하는 것은 몹시 위험합니다. 그것은 자기 확대에서 비롯되는 자기 함몰, 즉 자신만의 세계에 유폐될 위험을 안고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 욕망의 발현에만 치중하는 탐욕을 부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죠. 창의성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뜻하지 않습니다. 망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짜 창의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꼭 필요합니다. 먼저, 전문성입니다. 피카소가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정밀하게 그리다가 대상의 진실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예술세계를 열었듯이, 우선 이전부터 축적된 능력을 학습하고 익혀서 전문적인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그 대상을 향한 애착입니다. 애정 없이는 어떠한 대상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그 일을 발전시킬 수도 없습니다.

_ 오종우, 예술 수업

 

 

 


342. 마키아벨리

퀜틴 스키너 지음 / 임동현 옮김 / 교유서가 / 2021

 

자신이 만났던 통치자들과 정치가들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기록으로 남길 무렵 마키아벨리는 그들 모두가 한 가지,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교훈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이 착수했던 일에 실패했다. 그렇지 않고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그것은 적절한 정치적 판단이 아닌 운으로 이루어낸 성공에 불과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적인 결점은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체사레 보르자는 언제나 자만에 빠져 있었고, 막시밀리안 황제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거나 우유부단했으며, 율리우스 2세는 늘 성급하고 충동적이었다.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깨닫지 못했던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성격이라는 틀에 시대를 끼워맞추려 노력하는 대신에 자신의 성격을 시대의 상황에 맞게 적응시켰더라면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었으리라는 점이다.

_ 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이 책은 개정판이다. 한겨레출판에서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이전 책을 syo는 너무나 사랑하였는데, 그것은 뭐랄까, 개론서의 표본 같은 존재랄까, 하여튼 미친 개론서 덕후의 포지션이 도무지 침착을 허락치 않는 책이었다. 알고 보니 그 책은 Oxford 대학 출판사에서 나오는 ‘A Very Short Introduction이라는 시리즈의 한 권을 옮긴 것이었는데, 최근 교유서가에서 그 시리즈를 선별적으로 번역하여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는 중. 그렇게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마키아벨리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난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악명을 부여한 군주론이외의 다른 저서들을 조망하고, 그 책은 마키아벨리의 네 가지 얼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점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지옥에서 돌아온 양아치, 도덕으로 똥 닦은 남자의 이미지가 마키아벨리의 1/4, 그것도 왜곡된 1/4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이겠다.

 

긴 말을 했지만 사실 긴 말 필요 없지. 미친 개론서 덕후가 인정하는, 한글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마키아벨리 입문서입니다.

 

 

 


343.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

 

잘한다! ,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부러 도망치지 말고 진즉 좀 읽어둘걸. 짧은 그림책이라 활자 수 대비 비싸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죽어가는 모양인데, 지금 할아버지와 손자가 있는 공간은 할아버지의 사라져가는 기억을 형상화한 점점 좁아지는 광장의 어느 벤치다. 이런 설정은 뻔하고 유치하기 쉬운데, , 글을 겁나 잘 써 버리니까, 이건 뭐 펀치가 어디로 날아올지 알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서 그냥 이제 나는 얻어터지는 일만 남았겠구나, 언제쯤 도착하려나 그 펀치- 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만 넘기게 된다. 이런 대목. 이런 비유. 꼭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거라고는 정주행뿐이겠군요, 배 선생님…….

 

  "선생님께서 어른이 돼서 뭐가 되고 싶은지 쓰라고 하셨어요."

  노아가 얘기한다.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먼저 어린아이로 사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썼어요."

  "아주 훌륭한 답변이로구나."

  "그렇죠? 저는 어른이 아니라 노인이 되고 싶어요. 어른들은 화만 내고, 웃는 건 어린애들이랑 노인들뿐이잖아요."

  "그 얘기도 썼니?"

  "."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시던?"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니?"

  "선생님이 제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신 거라고 했어요."

  "사랑한다."

_ 프레드릭 배크만,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344.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정인호 지음 / 웨일북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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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의 미혼여성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연예인 1위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송중기’, ‘현빈’, ‘송승헌’, ‘박보검등을 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전국노래자랑>MC송해. 30대 후반 미혼여성들의 마음을 관찰해보면 이렇다. 송해 선생은 1927년생으로 나이가 아흔 살이 넘었다. 그런데도 잔병 하나 없이 너무나 건강하다. 후배 개그맨인 엄용수는 아직도 송해 선생님은 소주를 됫병으로 드신다고 한다. 나이 90세에 이토록 건강하니 무엇이 부러우랴. 또한 나이 90세에 직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송해 선생은 30년 세월동안 <전국노래자랑>의 국민MC로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안정적 소득에 인기까지 먹고 살 수 있으니 여성들의 이상적 배우자로 꼽힐 만하다. 이러한 현상을 송해 효과라고 한다. 송해 효과는 지나친 긍정보다 오히려 현실적 부정을 강조해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현상을 말한다.

_ 정인호,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이런 게 있다고? 싶어서 녹색창에 송해 효과를 검색해 봤는데, 나오지를 않는다. 송해 선생님이 어느 광고에 등장해서 그 회사 매출이 어떻게 되었다든가, 어떤 프로에 등장해서 패널들 눈물을 쏙 뽑아냈다든가 하는 식으로 송해 효과라는 표현을 쓰는 기사들이 몇 건 검색될 뿐이다. 그럼 이 송해 효과라는 말은 정인호 선생님이 이 책에서 만드신 말인가? 웃자고 하신 이야기인가? 모르겠다. 저 대목은 뭔가 약간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니들 말대로라면 니들이 진짜로 원하는 사람은 바로 송해 선생님이겠네?)……. 모르겠다. 노명우 선생님의 세상물정의 사회학과 이 책을 같은 계통에 배치한다면 두 권 중에 어느 쪽을 권할지는 명확하다.

 

 

 


345. 보통의 우리가 알아야 할 과학

윤석만 지음 / 타인의사유 / 2020

 

그래도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말 속의 최소한한다에 대해 늘 생각이 많다. 처음에는 대체 그걸 누가 정하며 그걸 누가 정하는지는 또 누가 정하며- 뭐 그런 무한연쇄에 대한 고찰이었지만, 요즘은, 과연 뭔가를 최소한만 알고 지나가는 게 정말 되는 일인지가 궁금한 중이다. 관심이 없는 것은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자꾸만 잊어버리게 되고, 관심이 있는 것은 자꾸만 알고 싶고 알아도 더 알고 싶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싶은 것들과 알든 모르든 상관없는 것들이 있어서, 후자에 대해서는 최소한알기 어렵고 전자에 대해서는 최소한알기가 어려운 것. 신학 시대의 과학뿐 아니라, 과학 시대의 과학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알면 좋지. 근데 실은 관심이 먼저다. 관심이 생기면, ‘보통의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이상의 것들을 가르쳐 주는 과학책을 알아서 뒤지겠지. 그러나 관심이 없다면? 그렇다면 이 책인가?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는 과학책과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는 과학책 중 어느 책이 더 많이 읽히는 과학책이 될지를 생각해보면,

 

오늘날 다수의 종교인들도 지동설을 과학이 아니라 상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리라고 믿엇던 신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변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의식으로 인지할 수 있는 만큼의 진리를 엿보고 있을 뿐입니다.

_ 윤석만, 보통의 우리가 알아야 할 과학

 

 

 

346. 소오강호 2

김용 지음 / 전정은 옮김 / 김영사 / 2018



바로 그때, 왼편 산자락 위로 별똥별이 쐐액 지나가며 어두운 하늘에 길고 긴 꼬리를 남겼다. 의림이 말했다.

  "의정 사저는 별똥별을 보고 옷고름을 묶으며 속으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만약 별똥별이 사라지기 전에 옷고름을 다 묶으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던데, 정말 그럴까요?"

  "모르겠소. 한번 해봅시다. 그렇게 손이 빠를 것 같지는 않지만."

  영호충은 웃으며 대답하고 옷고름을 잡았다.

  "사매도 미리 준비하시오. 아차 했을 때는 늦소."

  의림도 그를 따라 옷고름을 잡고 까마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밤은 유달리 별똥별이 많았다. 금방 별똥별 하나가 하늘을 갈랐지만 너무 빨라 의림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의림은 포옥 한숨을 쉬고는 좀 더 기다렸다. 두 번째 별똥별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꼬리를 늘이며 나타났다. 의림은 재빠르게 움직여 매듭을 지었다.

  "잘했소, 정말 잘했소! 성공했군! 관세음보살님이 보우하사 반드시 소원을 이루게 될 거요."

  영호충이 기뻐하며 말했지만 의림은 도리어 한숨을 쉬었다.

  "매듭을 짓느라 소원 비는 것을 깜빡했어요."

  영호충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미리 생각해두시오. 속으로 외고 있다 보면 매듭 때문에 소원을 잊어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의림은 옷고름을 잡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소원을 빌지? 무슨 소원을?'

  영호충을 흘끗 바라보는 그녀의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의림이 수줍어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때 마침 별똥별 몇 개가 잇달아 하늘을 가로질렀다.

_ 김용, 소오강호 2

 

이렇게 신필 진선생은 알퐁스 도데 싸닥션을 가볍게 날린다. 왕복으로 훅훅.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생텍쥐페리도 얼결에 같이 한 대 맞았다.

 

 

 

--- 읽는 ---

빵 고르듯 살고 싶다 / 임진아

붉은 칼 / 정보라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 마리암 마지디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 노트 / 이석연

하품의 언덕 / 문보영

살면서 한번은 경제학 공부 / 김두얼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이치조 미사키

살인자의 건강법 / 아멜리 노통브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당신을 위한 책 / 이경수

미아로 산다는 것 /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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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9-09 2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님, 태그 만든거 왜 나 오늘 알았어요? 잘했어요, 잘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먼저 읽을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9-09 21:00   좋아요 3 | URL
선캄브리아기부터 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9-09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9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9-09 2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님! 三님 오늘 페이퍼에 출연 안하시니 허전,,,,, ㅎㅎㅎㅎㅎ

syo 2021-09-09 21:14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그 꼴 지겹도록 보실 판인데요 뭐 ㅎㅎ

붕붕툐툐 2021-09-09 23: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왠지 모르게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담아갑니다! 줌파 라히리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용!^^

scott 2021-09-10 00:54   좋아요 2 | URL
툐툐님 줌파+ 전혜린도 추천 합니돵!ㅎㅎㅎ

붕붕툐툐 2021-09-10 08:03   좋아요 2 | URL
전혜린 메모메모
오! 제가 읽은 작품도 꽤 많이 번역하셨네요! 심지어 이 분 책을 읽은 듯도 합니다! 전혜린님 번역도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syo 2021-09-10 21:2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알라딘의 진짜 AI scott님......

청아 2021-09-10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살인자의 건강법>재밌게 읽었어요ㅋㅋㅋ리뷰 고대하겠습니다😊

syo 2021-09-10 21:23   좋아요 1 | URL
앗 잠들기 전 시간대에 배치했더니 몇 쪽 읽다가 자고 몇 쪽 더 읽다가 자고 이래서 집어던지려고 했더니 안 되겠다 ㅋ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9-10 0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다 싶더니 책이 한가득.
웬일로 접근하고픈 책도 수두룩.
하여 주섬주섬 보관함에 쏘옥쏙. ^^

syo 2021-09-10 21:24   좋아요 2 | URL
오 라인마다 글자 수 맞추신 건가요 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21-09-10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자>는 제나라의 환공을 보좌한
그 관이오가 맞는지 궁금하네요.

그렇게혜윰 2021-09-10 14:12   좋아요 1 | URL
맞지 않을까요? 우리가 흔히 관중으로 알고 있는.

syo 2021-09-10 21:2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바로 그 관이오관중관자입니다.
 

 

의 귀환

 

 

 

1

 

그가 돌아왔다. 영영 돌아왔다. 젠장.

 

 

 

2

 

애초에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과 서울에서 공무원하는 syo가 함께 살려고 성남에 집을 구했으나, 반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 이 집에는 서울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사라졌고(백수됨), 동시에 서울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사라졌다(오송 발령). 그래서 이 집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소기의 목적과 전혀 다른, 백수가 책 읽고 글 쓰고 밥 짓고 연애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으니, 이것은 운명의 장난질인가.

 

백수만 노났다. 둘은 부대껴도, 혼자 살기에는 적당한 집이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서울 본사 인사총무팀 직원 두 명이 동시에 이직과 사직을 감행하는 바람에 결원이 생겼고, 급하게 이 서울로 소환되었다. 엊그제까지 오송의 논밭을 소형차로 달리던 은 이제 대한민국의 심장, 강남역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며칠 전까지 이직을 생각하고 있던 은 이번 발령이 만족스러운 모양. 여기 빈자리 생기면 메꾸러 투입되고, 또 저기 빈자리 생기면 그쪽으로 튕겨 나가는 입지에다가 심지어 자기 전공도 아니고 입사했던 부서도 아닌 곳을 빙빙 돌리는 회사에서 syo 같았으면 벌써 이직을 알아봤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천하태평이다.

 

 

 

3

 

1년 남짓 오송에 살았던 이 용달차에 싣고 올라온 짐은 양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 좁은 집에. 쓸 수 있는 모든 용을 다 보았지만 여전히 내 동선 위에 잡동사니들이 얹혀 발에 차인다. 20,000개쯤 되어 보이는 컵라면을 보면 그의 오송 식생활을 능히 짐작할 수 있고, 지나치게 많다 싶은 휴지와, 휴지보다 부피가 적은 책들을 보면 그의 취미생활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관인 것은 판촉물인 듯 보이는 곽티슈인데, 커다란 글씨로 여대생 다방’(?), ‘69다방’(!)이라고 쓰여 있다. 이 미친놈아 이런 걸 부끄러워서 어떻게 집에 두고 쓰냐- 따졌는데, 은 덤덤하게, 대구에서 엄마가 쓰라고 올려 보내주신 거다, 된장, 매실액, 고기 굽는 불판이랑 같이- 한다. 그러고 살펴보니 그 다방이라(고 주장하)는 곳 지역 번호가 053이긴 하다. 탈룰라.

 

, 누가 이 집에 들이닥치기 전에 저 민망한 것을 소진해야만 하는데…….

 

 

 

4

 

그래서 휴방 중이었던 남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다시 재개될 것 같다. 아 귀찮아.

 

 

 

5

 

, K씨와의 만남은 그녀의 사정으로 또 미루어졌다고 합니다.

 

 

 

 

--- 읽은 ---

 


329. 사랑이 아닌 것은 별 

사이하테 타히 지음 / 정수윤 옮김 / 마음산책 / 2020

 

  나의 가치가 너의 욕망으로 규정될 정도라면, 나는 그런 가치 필요 없어. 사랑과 희망이라는 언어의 보호도 필요 없다. 죽은 물고기가, 러브레터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교실. 다 함께, 라는 말에 섞여들지 못하면 죽을 거래. 무서워.

  외로움이, 나를, 너에게 팔고자 한다.

  사랑해달라고 조르는 건 폭력이다. 그러니 꼭 끌어안고 싶다고 말해본다. 차라리 욕정으로 말하는 게 믿음이 간다고 했던 애가, 누구였더라.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냥 결혼해 아이를 낳고 죽는 인생은, 평온한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너보다 훨씬 더 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네가 살아 있는 의미 같은 건 지워줄 듯한, 그런 살갗을 걸치고, 너는 살아 있다. 좋아해. 심장을 내민다는 각오로,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오늘도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자기가 죽으면 여기저기 화제가 될 거라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그다음엔 죽어도 좋은,

  폭력적인 감정 밤, 외롭니, 죽어도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 사람을 버려두고 떠나며,

  죽어보고 싶다 밤, , 아침,

_ 사이하테 타히, 교실전문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사실 모두 성욕이었다. 그러니 여러분 사랑에 목을 매는 일은 목을 매다는 일입니다. 멈추세요. 믿지 마세요. 그냥 죽자구요. 이 별을 좀 편하게 해주자구요-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좋은 사랑이라면 하고 싶은데 그 불가능성이 보여서 길고 느슨하게 좌절하고 환멸하다가 그것을 태도로 삼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환멸은 그냥 힙해 보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힙하게 환멸하려면 적절한 배치, 배합, 배려, 자신을 향한 끝없는 배신 같은 것들을 달성할 줄 알아야 하겠다는 걸 배웠다. 나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지니고 있는 편인데, 그동안 참 폼이 안 났겠구나 싶다.

 

 

 


330. 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

 

앞으로 험난하겠구나, 혹은, 이거 모터 달린 돛단배에 노 저은 듯 치고 나가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까지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충분한 것은 뭐 모든 책이 비슷하겠지만, 추리 소설은 유독 그렇다. 내게(내가 추리 소설을 읽는 데에) 잘 맞는 문체와 아닌 문체가 있고, 잘 맞는 경우 트릭 이해, 심리 이해, 동기 이해, 줄거리 이해, 심지어 작품 의도 이해까지 도합 십해가 일사천리로 획득되는 반면, 아닌 경우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의욕도 없고 하여간 없는 것 투성이인 독서로 끝나는 것. 처음 읽은 노리즈키 린타로는 앗, 이거다! 할 정도로 syo같은 추리 소설 삐약이에게 걸맞았다. 줄줄이 읽어나갈 생각입니다.

 

그런 기대를 한다고 해도, 제가 그 사람들 구미에 맞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애당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 경시가 쌀쌀맞게 툭 내뱉었다. “필요한 건 네가 등장함으로써 사건에 뭔가 곡절이 있다고 세상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거지. 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을 정도야.”

  “그렇게 뜻대로 될까요?”

  “. 세상 사람들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이름에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으니까,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멋대로 사식을 곡해할 거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 생각하고는 새 불씨를 찾아 나서겠지. 그러는 사이 누군가 익명의 관계자라고 자칭하며 시답잖은 소문을 흘릴 테고. 사이메이 여학원을 망가뜨리려는 음모가 있다느니 뭐니 하는, 멍청한 놈들이 환호할 유언비어를 말이야. 네 이름이 등장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겠지. 진짜 불씨는 따로 있구나, 사이메이 여학원은 함정에 빠졌구나, 하면서. 스캔들이 무마되면서 학교 이미지도 지켜지는 거지. 그리고 네 사건 파일에는 미해결이라는 세 글자가 찍힐 테고. 이게 실제 시나리오야, 알겠어?”

  “한심하군요.”

  “그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시나리오야. 하지만 두고 봐, 분명 내 말대로 될 테니까.”

  “그럼 제 입장은 뭐가 되죠?”

  “그렇긴 하지.” 진절머리 난다는 목소리로 경시가 말했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꾸며도, 너 같은 건 높으신 분들의 편리한 선전도구에 불과해.”

_ 노리즈키 린타로, 요리코를 위해

 

 

 


331. 천국보다 성스러운

김보영 지음 / 변영근 그래픽 / 알마 / 2019

 

영희의 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그는 오십 세에 은퇴했고 일을 하지 않은 지 올해로 십 년이 되었다. 그는 소박한 사람이라 삶에 그다지 바라는 것이 없다. 부귀영화도 좋은 집도 세계 일주도 원치 않는다. 단지 삼시 세끼 따뜻한 밥과 된장국이 그의 방 앞에 놓이기를 바란다.

  그는 이처럼 소시민적이 꿈을 이루기가 왜 이토록 고단한지 매일 의문한다. 어쩌면 강성주의자들이 젊은이들을 홀렸을지도 모른다. 공산주의자들이 뭔가 했거나 정부 차원에서 모종의 음모가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처럼 선량하고 무해한 사람이 이토록 구차하게 살 리가 있는가.

  그의 아내는 그 대단찮은 노동을 참 힘들어했다. 참 게을러빠진 사람이었지. 남들 다 하는 일인데 뭐 그리 힘들다고. 평생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먹고살았으면서 말이지.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밥하는 게 시원찮아졌다. 언제부터인가는 시들시들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제 누가 내 밥을 해주느냐고 육성으로 말하며 울었다. 딸애는 새벽녘에 나갔따가 저녁에야 돌아온다. 한동안은 여동생이 와서 밥을 해주었고 또 한동안은 조카애들이 왔다. 하지만 다들 슬슬 발이 뜸해지더니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무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는 신세 한탄을 한다. 요새 세상이 어떻게 되어먹었기에 아내까지 잃은 불쌍한 늙은이 하나 돌볼 사람이 없단 말인가.

  그는 채널을 돌리며 구차함을 잊고자 한다. 그는 선한 사람이고 사는 게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다가도 고작 삼시 세끼 먹기가 왜 이리 서러운가 싶어 울화통이 터지곤 한다.

  그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