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았다, 요놈

 

 

 

1

 

이제 와 하는 고백이지만 사실 syo는 책 읽기가 무섭다! 가능하면 읽지 않고 싶다. 그래서 읽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 괜히 인터넷 창을 열었다 닫았다, 딱히 쓸데없는 유튜브 영상을 굳이 봤다 말았다, 괜히 산책하고, 괜히 팔굽혀펴기도 하고, 목도 안 마른데 제로 콜라 드링킹, 배도 안 고픈데 식빵을 구워 햄스터처럼 뜯어 먹는다. 심지어는 돌돌이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포집하고 에어프라이어에 쌓인 먼지도 닦는다. 그렇게 부릴 수 있는 모든 딴청을 다 부리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서, 결국 여기는 벼랑 끝이고 나는 더 이상은 못 가- 하는 표정으로 책상 쪽을 바라본다. 혹시 그사이 책이 어디 급한 볼일이라도 보러 자리를 비우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서. 당연히 그럴 리는 없고, syo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퀄리티 높은 베지테리언 뷔페에 공짜로 초대받은 티라노사우루스의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는 이걸 읽어야 해…….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는, 끝까지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탈출은 없다. 그저 연기와 지연, 그리고 칼 같은 추심이 있을 뿐이다…….

 

 

 

2

 

은 어찌 된 영문인지 지난 주말에도 고백에 실패했다. 그냥 다이렉트로 우리 제대로 만나봐요를 꽂기로 했는데 그걸 못 꽂았고, 부질없이 뚝섬 근방을 떠돌다가 syo가 심부름 시킨 밀도 식빵이나 사 들고서 돌아왔다. 울지 않았지만 울고 있었다. syo가 말했다. 나는 너를 26년을 알고 지냈는데 아직도 너를 모르겠다……. 그러자 이 대답했다. 그러면 나를 36년 동안 알고 지낸 나는 어떻겠노…….

 

 

 

3


좌측부터 정체 모를 팔뚝, 애기 syo(1)의 얼굴 반쪽, 엄마(27), 아빠(28)

 

 

엄마(성공한 화교ver.)

 


퇴폐소년 syo(10)

 



그리고 그 퇴폐의 서막

 

 

 

--- 읽은 ---



287. 날마다 고독한 날

정수윤 지음 / 정은문고 / 2020

 

와카和歌는 일본의 시가 양식이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로 치면 시조와 비슷한 존재감이겠지. 비교적 잘 알려진 하이쿠俳句와도 조금 다른 것이 하이쿠가 5·7·517음짜리 단시라면, 와카는 5·7·5·7·731자로 된 정형시로, 일반적으로는 단카短歌와 통용되어 쓰인다고도 한다. 잘 모른다. 검색해서 뒤져보니 그렇다는 듯. 하이쿠가 맞는 사람이 있고 와카가 맞는 사람이 있겠다. syo는 여지없이 와카 쪽이다. 다변에 문장도 만연하는 syo는 아무래도 긴 것이(와카도 사실은 짧은 축이지만) 좋다. 사랑을 둘러싼 감정들에 저항력이 약해서 더욱 그렇다.

 

사랑에 관해 짧은 말은 불가능하다. 축약은 반드시 생략이다. 생략은 곧 추상이고, 추상抽象은 필연적으로 차이를 사상捨象한다. 사랑은 내 사랑이 다른 어떤 사랑과도 (크게든 작게든) 다르다는 사실을 주장함으로써 존재하고 증명함으로써 튼튼해진다. 그래서 사랑의 마음은 다변을 욕망한다. 말과 글이 마음의 주변을 빙빙 돌며 추는 춤,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의 궤적은 그저 변죽이 아니다. 그 사랑의 지문이다. 물론 짧고 묵직한 한 마디로, 혹은 침묵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고요한 눈빛과 따스한 손길만으로 그 모든 길고 무한한 말들을 대신할 수 있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기적에 가까운 행운은 사실 두 사람이 함께 겪어온 시간 속에 녹아 있는 많은 말과 행동, 마음 들을 전제로 한다. 자주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랑의 마음이 축약되고 빗대어진 짧은 문장을 만났을 때, 우리는 사실 그 문장에 공감하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우리의 기존 경험에 공감한다. 그 문장이 겨냥하는 마음을 이해한 것 같지만 실은 내가 지나가고 지나온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문장이 사랑을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랑을 진짜로 들여다보기에 17자는 너무나 짧다. 31자도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하이쿠나 와카를 조금도 폄훼하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 남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겪은 사랑을 이해할 수 있고, 겪지는 않았으나 좋든 싫든 겪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는 사랑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해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전제 아래에서 도리어 압축과 생략, 비유와 상징을 동원한 아름다운 사랑의 문장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이 길었군!

 

와카 하나에 짧거나 긴 에세이 한 편. 소담하게 잘 차려진 식탁같다. 선생님의 말결에 처음부터 끝까지 슴슴하니 맛이 있어서 주제넘게도 선생님의 맘결도 추측해보게 된다. 따뜻했고, 위로가 되었다.

 

흔들리는 인간은 본인은 괴로울지라도 외부에서 보면 그 결이 대단히 반짝여 보인다. 흔들리는 수면이 아름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완벽하게 정돈된 사람은 인형 같아서 사람의 결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무척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물보라처럼 빛나고 있다고. 마구 걷고 울고 감정을 토해내는 건 힘들지만 약간 떨어져 보면 그 자체로 예술이다. 격정적인 사랑의 토로는 우리를 모두 예술가로 만든다.

_ 정수윤, 날마다 고독한 날

 

 

 



288.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1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

 

사기를 읽으면 뭐랄까, 인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 같은 게 보인다. 바꿔 말해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시기도 먼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인간성과 올바름 운운하며 지들끼리 와글와글 싸우고 있는 형편없는 암흑시대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아니 이 시대 놈들은 무슨, 처자식 굶기고 지 일 하는 것이 위대한 멸사봉공 정신인 양 군다.



이건 치수 사업에 성공한 우 임금의 사례다. 보면 일 일 거리면서 또 섹스는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어차피 자기도 몸은 한 개면서, 잠시라도 자기 없으면 이놈의 사업이 도무지 안 돌아간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음도 알 수 있다.

 



또 이건 뜻밖에 빵 터진 장면. 이건 관중과 포숙의 스토리 일부인데, 그들의 일화를 보면 포숙은 굉장한 호인(호구)이다. 그런 그의 특징을 드러내고 싶었는지 이희재 선생님은 포숙을 시종일관 웃는 눈매를 가진 남자로 묘사했는데 그 덕에 모든 것을 용서할 듯 인자한 표정으로 양아치야.”라는 대사를 치는 무시무시한 캐릭터가 탄생했다.

 

 

 


289. 자두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0

 

, 이런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게 잘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시간의 도움이 조금 필요하겠다. 이 이야기에서 간병은 가부장제가 투약하는 환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하나의 파열음으로 기능하는, 서사에는 주된 동시에 주제에는 종된 요소지만, 탈상으로부터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syo는 자꾸 그 병원의 풍경, 간병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환자-보호자 사이의 소소한 전쟁과 그에 따라 황폐해지는 마음의 궤적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해서, 뭐랄까, 붓질을 들여다보느라 그림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관람객이 된 기분으로 읽고 말았다. 나중에 다시 읽어도 좋겠다. 이런 분량을 경단편이라고 하나 본데, 좋았다.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았고, 한 이야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길이에 맞다고 느꼈다.

 

병원 본관에 있으면 장례식장이 전혀 보이지 않아. 본관은 죽음을 피하려고 오는 곳이잖아. 그러니 죽음을 떠올리는 장례식장을 보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장례식장에서는 이쪽 본관이 잘 보여. 가장 낮은 자리니까 고개만 돌리면 높은 곳이 전부 보이는 거지. 죽음의 쪽에서 삶을 바라보는 건 얼마든지 허락된다는 듯이 말이야. 어머니 장례식 때 한밤중에 이곳 본관의 빛을 쳐다보며 참 외롭다고 생각했어.”

_ 이주혜, 자두

 

 

 



290. 아무튼, 바이크

김꽃비 지음 / 코난북스 / 2021

 

바이크를 모르는 사람은 이 책 속의 바이크 자리를 무엇으로 바꿔 넣고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만으로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되긴 한다. 그럼에도 이번에 확실히 느꼈는데, 이 아무튼 시리즈는 저자 선생님들의 필력과 매력이 들쑥날쑥해서, 표제와 관련해서 아무런 지식도 관심도 없는 상황에서 읽었다가 뭔가를 얻어 나오기는 쉽지 않겠구나 싶다.

 

 

 


291.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줄게

타케미야 유유코 지음 / 신동민 옮김 / 강혜린 일러스트 / ()소미미디어 / 2019

 

남녀 주인공이 귀여운 대목은 지나치게 귀여워서 좋았다. 귀여움이라는 것은 아무리 지나쳐도 지나치지 않거든. 물론 겁나 일본 느낌이긴 하다(작위적인 느낌이 듬뿍 있는 대사랄지, 뭔지 알죠?). 그런 점에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다.

 

작가 약력을 보니 경쾌한 회화극을 축으로 남녀 간의 생생한 연애를 그리는 작가로서 강한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하는데, 진짜 완벽한 소개글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좋아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고백과 초반의 알콩달콩까지는 정말이지 이 양반이 이쪽 재능으로 팔아먹는구나 싶을 정도로 괜찮았는데, 후반부는 망. 얘네를 그냥 그대로 둬도 좋았겠다.

 

지금부터는 내가 널 지킬게.”

  “선배가 저를 동정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동정이 아냐.”

  “이런 지독한 꼴로 나타나서 동정하지 말라는 것도 말이 안 되기는 해요. 하지만.”

  “소중할 뿐이야.”

  “……선배는 너무 다정해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불쌍한 저를 가만두지 못하고…… 하지만 두고 가세요. 부탁이에요.”

  “너를 두고 가면 어디든 지옥이야. 어디든 망할 곳이야.”

  몸을 빼려 하는 하리의 뺨을 나는 놓지 않았다. 아프지 않도록, 하지만 손바닥으로 강하게 양쪽 다 감쌌다.

  “하리는, 예뻐.”

  바보 같은 말이지만 진심이었다. 처음에는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예쁜 마음도 바로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표정이나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하리에 관한 모든 것이 예쁘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하히를 계속 보고 있고 싶었다. 하리가 그저 행복하게 웃고 있기를 바랐다.

  “……그럴 리, 없어요. 선배는 불쌍한 저를 동정하고 있을 뿐에요. 그게, 보세요. 저는 이래요. 이렇게나 더러워요.”

  ”예뻐.“

  ”, 보이죠……? 이미 이렇게 됐어요. 이제 무리예요. 이제 못 버티곘어요. 저는 이미, 죽었어요…….“

  ”안 죽었어. 절대로.“

  헐떡이듯이 말을 찾았다. 하리는 예쁘다. 하리는 죽지 않았다. 지금의 하리는 마치, 그렇다.

  ”꽃다발 같아.“

  나는 웃고 있을까. 웃고 있으면 좋겠다. 하리와 만난 기쁨이나 환희가 제대로 전해지고 있으면 좋겠다.

  _ 다케미야 유유코,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줄게

 

와 겁나 오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치만 고딩들이 저러는 거는 진짜 진심인 거잖아 ㅋㅋㅋㅋ 귀엽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보보이죠이런 건 하지 말지 ㅋㅋㅋㅋㅋ 일본 애들은 저렇게 말하나 ㅋㅋㅋㅋ

 

 

 


292.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 지음 /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

 

- 일독(1805xx)

- 재독(210816)


우치다 선생님은 참 말을 잘하셔. 무슨 말을 해도 있어빌리티가 폭발한다니까. 그것은 공부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타고난 재능인 걸까? 이렇게 말이 승한 사람들은 말이 많고, 그렇게 말이 많아지다 보면 자기 말에 이기지 못하거나 자기 말에 모순되는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데, 선생님은 어떨까. 설령 그런 면이 있다 하더라도 나 같은 나부랭이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 하여튼, 우치다 선생님은 참 말을 잘하셔. 그래서 내가 이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고 못 배긴다니까. 봐봐, 이 말도 안 되는데 말이 되는 것 같은 마력과, 말이 되는데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매력 사이에서 춤을 추는 절묘한 말빨을.

 

실은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 작업입니다. 아무리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수수께끼를 풀기 어려워도, 우리가 인내심을 갖추고 추리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지막에 탐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을 때 '오 과연, 그런 것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는 '다 읽은 나'를 상정하기 때문입니다. '다 읽고 난 나'가 보증인이 되어주기 때문에 '지금 읽는' 것이 가능합니다. 만약 끝까지 다 읽는다 해도 범인도 못 잡고, 수수께끼도 풀리지 않고, 모든 것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추리소설을 읽을 수 없을 겁니다. '읽고 있는 나''다 읽은 나'는 모래밭 양쪽에서 굴을 파는 두 아이와 같습니다. 계속 파 들어가는 사이에 점점 맞은편에서 굴을 파는 상대방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얇은 모래벽이 무너지면 손과 손이 만나고 바람이 훅 통합니다. '아아, 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는다는 것은 그런 식으로 '내가 다 읽은 것을 기다린 나'와 다시 한 번 만나는 것입니다.

_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전체를 줄이자면, 모어母語의 우리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우리를 통째로 활용하는 글쓰기를 위하여, 모어가 가진 모든 실현된/잠재된 가능성을 답사할 것.

 

 

 

--- 읽는 ---

사조영웅전 5 / 김용

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 / 박동섭

라이브 경제학 / 강성진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과학 / 가토 토시노리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 스티븐 러벳

마음의 평온을 얻는 법 / 플루타르코스

여성의 천재성 / 제니스 캐플런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 김경준

치유하는 나무 위로하는 숲 / 마르코 멘칼리, 마르코 니에리

클래식은 처음이라 / 조현영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 민이언

지그문트 프로이트 / 캘빈 S.

임마누엘 칸트 / F. 카울바흐

궤도의 과학 허세 / 궤도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2 / 이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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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17 20: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삼님 대답은 마치 초보운전자의 문구˝미치겄쥬? 지는 환장하겄슈˝를 연상케 하네요ㅎ
어머님 미모가 정말 뛰어나셨군요. 이런 미모에 배우를 안하신건 심은하 은퇴후 결혼보다 더 심각한일. 죄송합니다;;😳

syo 2021-08-17 20:37   좋아요 5 | URL
제 친구지만 뭐랄까요, 참, 면목 없는 존재입니다......

엄마 미모 베스트 사진은 동생이 거의 다 후려갔습니다. 욕심많은 녀석 같으니.

반유행열반인 2021-08-17 20: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엄마도 예쁘고 애기도 예쁘고 글도 예쁘게 쓰고…

syo 2021-08-19 16:55   좋아요 2 | URL
애기는 예뻤지만...... 세월은 예쁘지 않았다...... 😫

새파랑 2021-08-17 20: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열반인 님의 말에 완전 공감이 되네요. 사진 보니 어머님 미모가 엄청나시고 행복이 느껴지네요 ㅜㅜ 그래도 책이 가장 큰 탈출구 같아요~!!

syo 2021-08-19 16:55   좋아요 1 | URL
책을 향한 새파랑님의 지극한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저는 이놈의 웬수같은 책 아오 아오 하면서 사는데요 ㅎㅎㅎ

scott 2021-08-17 21: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케미아 유유코 말 처럼 엄마에게 소요님은 꽃다발 같은 아들 ㅎㅎㅎ

syo 2021-08-19 16:5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꽃다발로 시작하여 칡넝쿨로 마무리된 아들......

잘잘라 2021-08-17 2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인박명..!! 죄송🥴😔 어릴때(아주 아주 아주 어릴 때!), 심각하게 걱정했던 주제라, 어머니 사진 보자마자 자동으로 튀어나왔어욥.😷입다물..

syo 2021-08-19 16:5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장수까지는 아니어도 박명도 또 아니어서 괜찮습니다. 허허허허.

잠자냥 2021-08-17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트 무효……

syo 2021-08-19 16:57   좋아요 1 | URL
10여개의 댓글 가운데 그것을 지적하는 분은 잠자냥님 뿐이라고 아뢰오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8-19 16:59   좋아요 0 | URL
다들 그거 지적하고 싶었으면서 아닌척해서 참으로 섭섭했다오....
더불어 아버님 마이크 대박 ㅋㅋㅋ 그 시절 그 마이크. ㅋㅋㅋㅋㅋ

syo 2021-08-19 17:1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잠자냥님,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를 놓치지를 않으신다

단발머리 2021-08-17 2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치다 님의 책은 요기 위에 것까지 딱 두 권 읽었는데, 쇼님처럼 한 번 더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히면서도 배울게 많아서 참 좋았어요.
어머님 미모 너무 눈부시네요. 배우같으셔요. 엄마 닮았네요, 쇼님은.

syo 2021-08-19 16:58   좋아요 0 | URL
몇 번씩 읽어도 좋은 책이지요, 우치다 선생님 책들.
뭔가 쉽고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좀 약하고 후려친다는 느낌이 강한데, 유독 이 선생님만은 다르시다......

페넬로페 2021-08-17 22: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은 곱고
우리 아기 syo는 넘 귀엽고^^
하트까지 귀염 뿜뿜이네요~~
삼님은 언제나 신스틸러입니다**

syo 2021-08-19 17:00   좋아요 1 | URL
어쩐지 많은 서재 친구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三.
신은 그만 스틸하고 남부끄럽지 않게 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소원입니다.....


mini74 2021-08-17 22: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헉 김용. 제 청춘을 후려가신 분 ㅎㅎㅎ 어머님 진짜 에쁘심 홍콩여배우 주인 느낌도 나요 ㅎㅎ

syo 2021-08-19 17:0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전세계에서 김용 선생님이 후려가신 청춘만 모아서 나라를 세워도 즉시 인구수 1등 국가 되지 않을까요!

책읽는나무 2021-08-17 2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은 미인,아버님은 미남이셔서...syo님의 어린 시절 예쁜 아이였군요!!!
어머님쪽을 많이 닮으셨어요.
이런 응답 시리즈 같은 옛날 사진
참 뭉클하군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독서행진
삼삼칠 박수 👏 👏 👏

syo 2021-08-19 17:02   좋아요 1 | URL
저한테도 참 좋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거울을 보면 한숨만 나고 세월이 무상하네요 ㅋㅋㅋㅋㅋ
책나무님 감사합니다^_^

수이 2021-08-17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퇴폐소년 쇼님 귀엽습니다. 우치다 다쓰루 챙겨갑니다. 하트 쇼님은 음 쩜쩜쩜인데 그 옆에 어머님 환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에서 사랑이 뿜어져 나와요. 잘 컸다 우리 쇼님

syo 2021-08-19 17:03   좋아요 0 | URL
잘 컸는지는 잘 모르겠고 아직도 크고 있는 느낌입니다! 으하하하 😆

바람돌이 2021-08-18 0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미모때문에 쇼님 퇴폐가 가려져서 안 보입니다.
20대의 어머님은 하희라인줄.... 닮으셧어요. ^^
날마다 고독한 날 담아갑니다. 막막 끌리는 책 소개입니다.
그리고 우치다 다쓰루 책은 무려 1805년에 처음 읽으셨군요. 우리 쇼님은 지금 그럼 연세가????? ^^

수이 2021-08-18 13:2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루?!!!!

수이 2021-08-18 13:29   좋아요 1 | URL
2018년 5월이던데요 다시 가서 보니까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1-08-18 13:31   좋아요 1 | URL
아 비타님 제가 착각했군요. 쇼님 연세에 절할뻔...ㅋ

수이 2021-08-18 13:3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저도 절할 뻔_ 옆에서

syo 2021-08-19 17:0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두분에게 두 번씩, 4절 받을 뻔 했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8-18 07: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퇴폐소년 syo. 꺄오~~~~~ 느무느무 귀엽구만유. 그 소년이 자라 책읽기를 무서워해 책을 먹어치우는 청년이 되었다지요. 올해만 벌써 292권을 먹었구, 날마다 책을 찢어먹고 삶아먹고 구워먹고 볶아먹고 데쳐먹는다죠. 하여 책살이 뒤룩뒤룩 붙었대요. 꼬~~~십니다^^ <날마다 고독한 날> 업어가유~~~ 딱 내 심정^^

syo 2021-08-19 17:05   좋아요 0 | URL
책살이라는 것은 굉장히 참신한 표현인데, 그건 대체 어디에 찌는 것입니까 ㅋㅋㅋㅋㅋㅋ
읽기님 늘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syo는 책을 먹어치우는 청년이 아닙니다.




중년이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8-18 1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꺅! 드뎌 힙한 옛날 사진 공개!!
어머니 진짜 너무 미인~ 하희라님 느낌 있다에 저도 한 표를! 근데 뭐 쫌 쇼님도 귀엽네요~ㅋ
근데 뭐 책 읽기 도망간다더니 너무 많은 책을 삼키신 거 같은데용~ 책 읽기 좋아하셨음 큰일 날 뻔 하셨어요~ㅎㅎㅎㅎ

syo 2021-08-19 17:08   좋아요 0 | URL
힙스터 사진은 동생 앨범에....
애기라면 모름지기 그렇듯이 애기 syo도 한껏 귀여웠습니다. 제가 봐도 귀여운 걸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8-18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삼때문에 웃음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8-19 07:07   좋아요 0 | URL
어제는 컨디션이 안좋아서 짧게 댓글 달았는데,
syo님 글 감동이었어요.
한편의 드라마?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고 메시지도 있는...
사진과 책으로 syo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인간극장?
추억은 추억대로 붙들고 현재의 할 일을 찾아가시는, 아직 진행중이시겠지만...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읽어버린 나 가 만나는 지점에서 회복과 생성이 있기를...

syo 2021-08-19 17:10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의 댓글은 언제나 우아하고 고급져서 부끄럽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三을 팔아먹으면서 이러구러 살아나가 보겠습니다 ㅎㅎㅎㅎ
늘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1-08-2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이 글을 이제야 정독했습니다.. 일단 어머님 미모가 과장이 아닌 것 인정. 아름다우시네요. 애기 syo님 웃는 얼굴도 넘나 귀엽구요ㅋ 삼님의 고백은 언제쯤 성공할 것인가. 이대로 흐지부지되는 것만은 안 되는데요 ㅠ 상대분이 고백하셔도 좋을 텐데.
근데 syo님, <아무튼, 사랑>으로 기획서 한번 보내보세요(진지함).

syo 2021-08-22 11:2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은 원래, 입으로는 누구나 이 정도로 할 수 있는 거예요. 누구나 다 됩니다 ㅎㅎ
심지어 三조차 될지도 몰라요 ㅋㅋㅋㅋ
 

 

초과

 

 

1

 

보이차에 대해서라면, 여름에 바닥 닦느라 썼다가 그대로 처박아 뒀던 걸레를 가을에 문득 꺼내서 빨아놓은 물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에는 잘만 마신다. 맛도 좋다.

 


누군가를 만나 자신이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한 편의 시를 읽고 예전과 다른 삶을 꿈꾸는 것.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하얀 연기로 변하는 것처럼 물리적 변화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가능할까? 나는 그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것은 어제 내려서 홈통에 고여 있던 빗물이 오늘 아침 작은 종을 울리는 것처럼 미세하고 일상적인 신비일 수도 있고, 바늘로 우물을 파는 것처럼 더디며 부질없는 노력으로 비칠 수도 있다. 만물이 변하듯 사람도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거나 무섭도록 외로운 사람이다. 나는 매일매일 사람들과 부딪쳐 내 안의 선한 신이 태어나기를 바란다.

_ 김이듬,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2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달력과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달력처럼 아무리 맞대어도 맞아들어가지 않고 딱 한 뼘씩만 빗나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길고도 낡은 사랑을 하게 된다. 서로를 고치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아주 닮았거나 아주 다르지는 않고, 조금만 다르다.

 


  사람은 죽었거나 살아 있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따뜻해야 하고

  사람은 잊혀졌거나 잊혀지지 않았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눈물이 글썽해야 한다

_ 정호승, <부도밭을 지나며> 부분

 

 

 

3

 

회의주의자가 논리주의자가 되는 이유는 회의밖에 하지 않으면서도 회의 이외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을 추상하는 형식에 대한 집착, 모순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불관용이 그들의 기본 태도가 된다. 코앞의 일을 통과하는 데 몰두하느라 형식과 양식을 따져볼 여력이 없는 사람, 자기의 모순을 이해하거나 용서하거나 모순이 아니라고 자기를 속이며 사는 것으로도 벅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은 회의주의를 할 시간이 없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다. 더구나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을 믿는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이다. 인공지능이 존재하는 세상의 모습을 바꿀 수 있을지라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을 바꿀 수는 없다.

_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공부

 

 

 

4

 

왜 어떤 사랑은 끝이 없을 거라고 믿는 바람에 소소한 것들을 놓치는 일이 축적되다가 끝나고, 또 어떤 사랑은 반드시 끝이 있을 것만 같아서 사소한 것들에도 불안을 쌓다가 끝날까?

 


흔히 리스크가 크면 손실이나 이익도 크고, 리스크가 적으면 손실이나 이익도 적다고 이해하는데 이건 수학의 가장 기초적인 공식, 덧셈이나 곱셈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수학에도 곱하면 오히려 작아지는 답이 있듯 리스크도 복잡한 여러 경우의 수가 있다. 리스크가 증가하면 이익에 대한 불확실성도 증가하고 손실 가능성도 증가한다는 의미다. 보통 변동성이 큰 시장이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변동성에 따라 기대수익이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리스크가 크다고 알려진 것 자체가 리스크를 줄여놓은 상태라는 걸 알아차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 흔히 주식시장에서는 돈을 버는 활황기에는 리스크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주가 폭락기에는 리스크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생각한다. 폭락장에서 얼마나 깊고 멀게 손해가 발생할지 모르니 그 리스크가 너무 커 보여 아무도 주식을 사지 않아 급락한 것이다. 사실은 그 시기가 리스크가 가장 줄어 있는 때다.

_ 김승호, 돈의 속성

 

 

 

5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이도 저도 아닌지가 뭐 그리 중요하냐, 뭐가 됐든 똑바로 사는 게 중요하지- 라는 의견은 정론인 동시에 훌륭하다. 그러나 일견 큰 의미 없어 보이는 본성론이 사회의 모양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크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지금 똑바로 사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인간에게 어떤 본성이 있어도 환경이 그의 선한 본성을 발휘될 수 없게 하거나 문명이 그의 악한 본성을 억누른다는 가정, 인간에게 어떤 본성이 없다면 결국 그 인간의 성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환경과 문명이라는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그 환경과 문명의 생긴 꼴을 좀 주물러보길 워하는 개혁가, 새것을 가져다 놓기를 바라는 혁명가, 아예 싹 다 치워버리기를 바라는 아나키스트들에게, 현재의 틀에 변동이 생겼을 때 인간이란 동물이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무시할 만한 이야기가 못 된다.


 

가정소설은, 이미 하나의 실체로 현존해 있었으며 소설의 관습에 따라 관계를 형성해왔던 개인들을 가리키기보다는, 18세기와 19세기의 지배적 이야기 형식과 자신을 구분하는 일에 더 힘을 쏟았다. 지역, 분파, 당파에 따라 정체성을 표현하는 다수 이야기들은 특정 형태의 욕망이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확인해 줄 수 없었다. 이와 달리, 가정소설은 인간 욕망이 정치사와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전개시킨다. 바로 이 점이 욕망은 전적으로 주관적이며 정치적으로 코드화될 수 있는 행동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환상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다. 물론 욕망은 정치적으로 코드화된 이런 행동을 발생시킨다.

_ 낸시 암스트롱, 소설의 정치사

 

 

 

6

 

모든 사랑은 언젠가 서술되어야 하는가?

모든 사랑의 서술은 단지 해명일 뿐인가?

 

모든 사랑은 다르다고 여기면서, 왜 나는 어떤 사랑이 우리의 사랑과 닮았다고 생각하거나, 그 사랑의 결말이 아름답지 못했을 때 우리의 사랑 역시 아름답지 못한 결말을 맞을 거라는 선고를 들은 사람처럼 불안해지는가?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_ 장 그르니에,

 

 

 

--- 읽은 ---



279. 문해력 공부

종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

 

백종원 선생님의 성공 비결도 문해력, 안창호 선생님도 문해력, 괴테 선생님도 문해력. 두루 읽어보면 김종원 선생님이 말하는 '문해력'이라는 것이 다른 경영/자기계발서에 자주 등장하는 통섭적 직관이나 통찰력, 요즘 선호되는 분위기인 '인사이트'라는 힙한 용어와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외견상 새로워 보이는 용어를 선택하시고 미시는 이유를 나의 부족한 문해력으로 짐작해보면…….

 

틀린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게 아니라.

 

하늘의 반짝이는 별도 빛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나를 스치는 바람에게도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이유가 있다. 비도 갑자기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릴 준비가 갖춰져야 내릴 수 있다. 별 그리고 구름과 공기,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한 자는 갑자기 내리는 비가 갑작스럽지 않다. 쏜살같이 빠르게 이동하는 바람도 반짝이는 별도 그는 충분히 이해한다.

  바라보지 않는 자에게만 그렇게 느껴질 뿐, 세상에 벼락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것은 없다. 번개처럼 빠른 트렌드와 새로운 기술의 이동이 그에게는 마치 느릿느릿 움직이는 굼벵이처럼 보인다.

  깨달음은 공부나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수백 개의 또 다른 존재와 수백 개의 지식을 떠받치는 하나의 굳센 기둥을, 바라보거나 짐작하고 연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_ 김종원, 문해력 공부

 

 

 


280. 언제까지나 내성적으로 살겠다

에비스 요시카즈 지음 / 강한나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19

 

, 그러셨군요?

 

나는 이렇게 산다!! 가 너무 강해서 뭔가 일반화한달지 배운달지 하려는 의욕이 사라져버렸다. 내성적으로 좀 살아보려고 그랬더니만….

 

 

 


281. 사조영웅전 4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그런 것이 아니다. 잘 생각해 보거라. 황상의 적들은 모두 고수였네. 무공은 여러 문파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지. 그 심오함과 오묘함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어. 그 모든 사람의 초식을 깨뜨리려 한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느냐? 그는 깊은 산속에 몸을 숨기고 무공을 연마하는 데만 심혈을 기울였다네. 밤낮으로 무공만을 생각했을 뿐 그 어떤 잡념도 없었어. 그러는 사이에 40여 년 세월이 흘러버린 거야.”

  “40년요?”

  “그래. 전심전력으로 무공을 연마하다 보면 40년 세월은 쉽게 가버리는 거라네. 나는 여기서 이미 15년을 지냈는데, 사실 별것도 아니지.”

  주백통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황상은 그 소녀가 이미 노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감개무량했어. 하지만 그 노파는 병으로 운신도 하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 숨만 헐떡이고 있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운명이었어. 황상이 수십 년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깊은 원한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네.”
  여기까지 말한 주백통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우, 사람은 모두 죽게 되어 있다네. 이게 바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병이라는 거야. 끝날 때가 되면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가 없는 법이지.”

  곽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사형과 그의 일곱 제자는 날마다 양생과 수양에 전념했지. 그렇다고 그들이 죽지 않는 신선이라도 될 것 같은가? 그래서 나 같은 큰 도사는 그런 것은 아예 하지 않는 거라네.”

  곽정은 멀거니 듣고만 있었다.

  “그 적들은 원래 40~50세 먹은 사람들이었네. 거기에 40년이 지났으니 하나씩 죽지 않았겠는가? 하하하! 그러니 그는 애초에 초식을 깨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저 누가 오래 사나 겨루었으면 되는 거지. 40년 동안 겨루다 보면 하늘이 대신 적들의 목숨을 거두어갈 것 아닌가?”

_ 김용, 사조영웅전 4

 

 

 


282. 책 Chaeg 2021. 6

()(월간지)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한국 사회는 은근히, 때로는 대놓고 연령, 성별,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을 구분 짓는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실수를 하거나, 보이지 않는 다양한 선을 부주의하게 넘지 않기 위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스스로의 가장 작은 버전에 수렴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시아인으로, 입양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내러티브에 맞추기 위해 외부 환경에 지속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삶을 의미한다. 자라나면서 나는 백인 사회에서 종종 소수 인종으로 일반화되거나 고정관념으로 물든 진부한 표현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내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 의제와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점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긍정적인 일을 하면 내 한국성이 언급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내 외래성이 강조된다. 아시아인, 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나와, 또 내가 느끼는 감정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더 깊게 관련된다. 그것은 항상 포함보다는 분리에 관한 것이었다.

_ 호정 아우드네르데, Being Asian

 

 

 


283.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 심영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7

 

실은 좀 지루하다. 이 책에서 입을 여는 모든 생물들은 그대로 상징이고 의견이며, 지나치게 상징이고 의견이다. 지혜는 직접적으로 독자를 타격하고, 막강한 만큼 해석의 여지가 크지 않다. 모든 말이 하나의 길을 향해 간다. 이 책은 고정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새롭게 읽히는 책의 대명사로 바로 이 책을 떠올린다.

 

맞다. 책은 하루하루 다르게 읽힌다. 우리가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에 필요한 것은 읽는 것, 사는 것, 그리고 다시 읽는 것으로 이루어진 회전체다. 그 회전체 위에서 실은 모든 책이 어린 왕자. 우리가 어린 왕자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물론 이 책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시간의 흐름 위에서 천변만화하기 때문인 동시에, 실은 다른 책들 역시 그렇다는 것을 이 책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야 한다. 어린 왕자는 우리에게 다시 읽기의 소중함을 말하고 자기 별로 돌아간 것이다.

 

내 삶은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은 모두 비슷비슷하고 사람도 모두 비슷비슷해. 그래서 난 좀 지루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삶은 햇빛이 비치는 것 같을 거야. 나는 다른 모든 발소리와는 다른 발소리를 알아듣게 될 거야. 다른 발소리는 나를 땅 밑으로 숨게 하지. 네 발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잘 봐!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나한테 아무 쓸모도 없어. 밀밭을 봐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지. 서글픈 일이야. 그런데 네 머리카락은 황금빛이잖아.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황금빛 밀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럼 나는 밀밭에 부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고…….“

_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284. 뭘 해도 운이 따르는 사람들의 10가지 습관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 박재영 옮김 / 센시오 / 2021

 

허망하다…… 예쁘고 당연하여 허망한 말뿐이다. 이러면 또다시 <전도서>를 찾게 된다. 헛 헛 헛

 

 

 


285. 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나이즈미 렌 지음 / 최미혜 옮김 / 애플북스 / 2018

 

책과 삶을 잇는 으로라는 조사의 끈끈함을 생각해 보면, 책으로 살고 있다는 표현이 가능하려면 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syo 역시 나름 책과 함께, 책으로 버무리면서, 책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살고는 있지만 책으로라니?

 

작가, 교열자, 디자이너는 물론, 서체 제작자와 제지공까지, ''이라는 물건을 둘러싼 사람들 인터뷰한 책. 책에 관련된 직업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는 진부한 동시에 사실상 아무 말도 안 한 것과 다름없는 말을 감상으로 남기려니까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은 이 책의 인터뷰이들이 각각의 직업 영역에서 발휘하고 있는 스킬이랄지, 일에 임하는 태도랄지, 하는 그런 것들을 주의 깊게 읽고 배움을 얻었으면 좋았겠지만, 늘 그렇듯, 일의 기쁨과 슬픔은 고단수 백수의 몽롱한 시야에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인간은 풍부한 상상력을 펼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발견한 후에는 꾸준히 계속하려 하지요. 좋아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마음껏 살리려고 궁리합니다. 저는 그런 세계를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기려고 해요. 제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써온 것도 그러한 생각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계속 써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게 그 사람의 마법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_ 이나이즈미 렌,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286. 그림 속 경제학

문소영 지음 / 이다미디어 / 2014

- 일독(200625)

- 재독(210813)

 

역사 - 그림 - 경제의 연결고리에서 그림의 위치는 주요한가 부차적인가. 예를 들어, 그림을 통해 역사나 경제를 읽을 수 있는데, 경제나 역사를 통해 그림을 읽을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하다면, 그림을 수단으로 역사/경제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역사/경제를 통해 그림을 이해하려는 시도 가운데 일반독자가 더 많이 선택하는 것은 어느 쪽이며, 그건 왜 그럴까?

 

차치하고, '이해'의 측면에서 보면 그림은 효율 괜찮은 촉매인 듯.

 

경제사의 시간 흐름과 회화 역사의 시간 흐름을 철로의 평행선으로 삼아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좋은 책이다.

 

이렇게 미술과 정치경제적 변동, 그 저변에 깔린 경제학과 철학의 흐름은 몇 겹의 고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그 고리를 찾아나가는 통섭의 여정이다. 예술의 꽃인 명화들에서 경제학 코드를 찾아 경제·정치·사회적 변화의 역사를 좀더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책이다.

  그림은 경제와 역사의 미적 증인, 텍스트보다 모호하지만 더 강력하고 매혹적인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통해 우리가 과거를 더 생생하고 흥미롭게 보면서 그 시대에 대해 수동적으로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유추와 상상을 해볼 수 있다. 게다가 과거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게 된다.

_ 김소영, 그림 속 경제학

 

 

 

--- 읽는 ---

완전사회 / 문윤성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 스티븐 러벳

에스에프 에스프리 / 세릴 빈트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김광현

서울은 그렇게 / 임혜연 외

아무튼, 바이크 / 김꽃비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줄게 / 타케미야 유유코

날마다 고독한 날 / 정수윤

한 권으로 끝내는 재무제표 읽기 / 금융가의 방랑자

망내인 / 찬호께이

치유하는 나무 위로하는 숲 / 마르코 멘칼리, 마르코 니에리

민주주의의 정원 / 에릭 니우, 닉 하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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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8-1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전도서인가요..?
정의가곧법이라는~ 저책 궁금해요. 다음 페이퍼 기다리겠습니다 ㅎㅎ

syo 2021-08-14 20:1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안녕하세요, 전도서 전도사입니다😄
 

 

끝의 시작

 

 

 

1

 

다시 대구다.

 

이번 주에는 엄마 집을 싹 다 비워보려 했지만 실패다. 아마 다음 주에 한번 더 내려와야 할 듯. 박스에 넣어 베란다에 쌓아둔 관계로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던 책들이 발굴되었다. , 내가, 내가 이걸 샀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내가- 하는 책들이 많았다. 뭐가 됐건 당시에는 납득이 갈 만한 이유가 있어서 사놨겠지만 지금에서는 애를 써도 이게 왜 나한테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어디 책만 그렇겠는가.

 

그리고 또 어디 내가 오늘 납득한 책들이 내일도 그렇겠는가.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길게 하지는 않기로.

 


 

2

 

동생이 앨범을 정리하면서 이거 봐라 이거 봐라 내밀어 댄 사진들은 이미 몇 번씩 본 사진인데도 하나같이 다 새로웠다.

 

늘 하는 말이지만 어린 엄마 젊은 엄마는 진짜 말도 안 되게 예뻐서 같이 사진 찍는 다른 사람들한테 이만저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힙스터였던 할아버지의 다양한 재능(금기서화에다 낙농에 박제에 심지어 버스회사 경영도 하신 국민학교 선생님이셨다)을 풍성하게 물려받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엄마지만(똑같이 했다던 찌개 맛이 매번 달랐다……), 그 와중에 또 만은 몰빵 받았는지, 불국사 대웅전 앞에서 찍은 사진의 패션이 자뭇 21세기적이다. 네 분의 이모 삼촌 가운데 이런 사람은 또 없다.

 

이제는 아버지 사진 가운데 절반은 지금의 syo보다 어린 아버지가 찍혀 있다. 그런데도 관상만큼은 그렇지가 못해서, 이렇게 닮은 얼굴인데도 지금 이 기세라면 마흔 다섯 나보다 서른다섯 우리 아버지가 형으로 보일 듯하다. 나와는 이래저래 애증으로 버무려진 삶이었지만, 이 양반도 고생 고생은 진탕 하고 살았구나 싶어 짠하기도 했다. 내가 제사를 폐했으니 장례식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던 큰 딸이니 작은 아들이니 하는 친구들도 딱히 제삿밥을 차려주진 않을 것 같고, 우리 아버지도 참 배고픈 삶을, 배고픈 죽음을 살고, 아니지 죽음을 죽고(?) 있겠다. 저기서도 엄마한테 밥 차려 달라고 하진 않겠지. , 않겠구나. 아버지는 어디 가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확실히 좋은 데 가 있을 것. 우리 엄마가 못 가면 거기 갈 사람 정말 몇 없다.

 

 

 

3

 

그래도 그들 역시 서로에게 다정했던 시기는 있었음을 증명하는 몇몇 사진들이 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사진들 속에서 그들은 웃고, 웃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한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말년의 엄마라면 이렇게 내가 아버지와 자신을 묶기라도 하는 듯한 글을 쓰는 것조차 학을 떼며 싫어했겠지만, 그런 엄마의 마음과는 별개로 몇몇 사진 속에서 나는 사랑을 본다. 가족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는 여자를 본다.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마음을 본다. 그리고 그 이후 천천히 바스라졌을 감정들과 돌이킬 수 없이 박살났던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들이 남기고 그러므로 끝내 지켜야 했던 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 사진을 찍었을 때의 그 마음, 그 순간을 영원에 박제하고 싶었던 그 치기 어린 동시에 예뻤던 그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가족이라는 관계와 필요충분으로 엮인 게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가족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족이 아닌 데로부터 얻으려 노력하면 끝내는 얻을 수 있으며, 필요한 것은 실은 마음의 깊이와 지속력이라는 것을, 나는 우리 가족의 탄생과 쇠락, 그리고 종말을 통해 배웠다.

 

묶지 않고 묶는 것, 그건 더 순수한 만큼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 읽은 ---



273.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장우진 지/ 알에치이코리아(RHK) / 2021

  

세기말 파리, 우리가 우연히 시선을 던진 그곳에는 항상 무하가 있다. 침실 머리맡의 장식 패널, 어제 읽다 잠들어 버린 책 속의 삽화, 그리고 그곳에 꽂아둔 엽서에서 그를 만난다.

  그의 그림이 광고하는 회사의 코르셋을 드레스 아래에 입고 그의 그림이 그려진 접시와 주전자, 그리고 르페브르 위틸의 과자를 곁들여 한가한 티타임을 가진다. 아이들은 그가 광고하는 네슬레의 분유로 배를 채우고 어른들은 모에 에 샹동의 와인으로 입술을 축인다. 페르펙타 자전거를 타고 나선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그가 표지를 그린 라 플륌을 한 권 사고, 식당에 들러 그가 디자인한 메뉴를 보며 식사를 주문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라 베르나르가 출연하는 새로운 연극 포스터를 보고 서둘러 잘 차려입고서는 르네상스 극장으로 향한다. 연극이 끝나고 감동이 가시지 않자 푸케 보석 상점에 들러 사라 베르나르가 무대 위에서 걸친 액세서리와 비슷한 것을 하나 고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포스터를 그린 모에 에 샹동의 와인으로 가슴을 진정시킨 뒤 무하 풍의 가구로 채워진 방으로 돌아와 <황도12>이 그려진 달력에서 내일의 일정을 확인한 후 침대에 들어 주기도문과 함께 명상한 뒤에는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_ 장우진,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일단 뛰어들 것낮은 자리에서 작은 것들을 만들며 즐거움 속에서 기다릴 것버려지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겁내지 말 것버리고 버려도 도무지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비로소 나의 것.

 

확실히 무하는 매력적이었다처음 무하를 접한 게 십수 년 전이지만아직까지도 그가 그린 그림을 만나면 그냥 스치게 되는 법이 없다이거무하네그런 것 치고는 인간 알폰스 무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반 고흐나 툴루즈-로트렉의 삶에 대해서는 열심히 찾아 읽었던 것과 대조적인데 왜 무하를 무시했는지는 모르겠다무하의 작품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관심을 이 책을 손에 들었다면 확실히 아쉬운 대목이 없을 수는 없다없는 것은 선택의 여지다.

 

신경을 좀 더 썼으면 좋았겠다 싶은 문장들도 꽤 있다두 개만 짚자면,

 

그의 화실은 불 꺼진 난로와 더러워진 벽지 그리고 테이블 밑으로 쥐들이 기어다녔다.’(57)

: 난로의 불은 꺼졌고 벽지는 더러웠으며 테이블 밑으로 쥐들이 기어다니기까지 한 것인지아니면 난로와 벽지와 테이블 밑으로 쥐들이 기어다닌 건지 애매하다앞이라면 주술호응 실패고뒤라면 지울 것들을 다 지워내지 못한 문장이다.

 

그의 작품은 굳게 닫힌 미술관의 유리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이 닿는 거기에눈이 머무르는 어느 곳에나 있는 대중을 위한 예술이 되어가고 있었다.’(93)

: 장우진 선생님이 콤마를 아끼는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어느 곳에나 있는’ 뒤에 콤마 하나를 찍지 않고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 대중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는 모호한 문장을 만드셨을까.

 




274. 인생수

법륜 지음 / 유근택 그림 / () / 2013

 

어디서든 이 책이 발견되던 시절이 있었다. 북카페에도 미용실에도 이 책은 있었다. 배우며 사느라 인생이 벅찬데 인생을 사는 법마저 배워야 하는가 싶은 마음에, 제목만 봐도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도 가끔, 아니 자주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그냥, 남들 다 봤다고 하니까 나도- 하는 마음으로 읽었을 뿐.

 

syo는 훌륭하지만 당연한 말을 으로 펴내는 것을 왜 싫어하는가. 그건 뭘 높이 치고 또 뭘 업신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인가. 이것은 쓸데 없는 다독이 선사하는 가장 해로운 독 가운데 하나다. 이 문장을 이미 다른 (많은) 책에서 읽었고, 이 이야기를 이미 다른 (복수의) 책에서 들었다는 것. 일 년에 열 권 읽는 이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가 지난 몇 달 동안 몇 번쯤 들은 이야기가 되고, 한 달에 두 권 읽는 이들의 눈에 기발한 문장이 클리셰의 반경 안쪽에서 포착되는 것.

 

지겨움, 깊은 지혜를 마주할 때마다 채 음미에 들어가기도 전에 먼저 내 혀에 얇고 끈적한 막을 쳐놓는 독서의 적.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입니다. 늘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곧 행복한 인생이지요.

_ 법륜, 인생수업

 

 

 


275. 잘 먹고 잘 싸운다, 캡틴 허니 번

김여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

 

전투력 측정불가의 히어로 랭킹 1위 캡틴 허니 번(남지영). 히어로 협회 회장이자 전대 캡틴인 캡틴 불칸의 딸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히어로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그녀는 히어로로서 부족한 점이 하나도 없지만, 체중에 비례하여 능력이 막강해진다는 속성 때문에 언론은 늘 그녀가 해결한 사건보다 그녀의 체중 변화를 보도한다. 히어로 동료 새끼들은 강한만큼 강하게 빻았고 그녀는 늘 어리고 예쁜 히어로 김소희와 비교를 당한다. 한편 김소희는 히어로가 되고 싶으나 여성 히어로에게는 사건이 배당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캡틴 허니 번을 제외한 모든 여성히어로들처럼 연예계에서만 활동하는 중-

 

이런 초기설정에서 벌어지는 한판 활극을 담은 이야기인데,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되고 심지어 환영하지만, 그래도 캐릭터들이 너무 전형적인 동시에 지나치게 평면적인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접수부 부장이라는 작자는 '아재 꼰대'의 이데아에서 0.1만큼의 특수함도 추가되지 않는 식인데, 모두가 이런 식이면 좀 아이들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느낌이 든다.

 

우리 지영이 몸무게 하나로 검색어 1위까지 올랐네? 좋겠다. 나는 밀입국자 체포 때나 겨우 올라갔는데.”

  “사진 꼴 봐라. 여자애가 좀 웃지, 이게 뭐냐?”

  “시끄러워!”

  협회 건물 깊숙한 곳에 있는 회의실.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나를 놀려 대는 놈들을 보니 짜증이 치솟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정상적인 회의는 무리겠구나.

  믿기지 않겠지만 깐족거리며 웃는 저 세 명은 공식 랭킹 2위에서 4위까지의 최상위권 히어로들이다. 놈들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쳤지만 이들은 내 말을 무참히 씹으며 인터넷 뉴스들을 하나하나 읽어 주는 정성을 보여 줬다. 정말 친절하기도 하지. 감동받은 내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 임무 수행 보고를 하러 왔으면 일이나 해.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들지 말고!”

  “지영아, 하늘 같은 오라버니들에게 야라니, 예의는 밥 말아 먹었냐?”

  “, . 요즘은 예의도 밥 말아 먹을 수 있어요? 어쩐지 남지영 덩치가 점점 커지더라~”

  “큰일 났네. 싸가지 없고, 예쁘지도 않고, 대학도 못 가고, 뚱뚱하기까지! 너처럼 최악만 모으기도 힘들겠는데? 그것도 능력이다.”

  …하아, 이래서 난 이 시간이 정말 싫다.

_ 김여울, 잘 먹고 잘 싸운다, 캡틴 허니 번



 


276. 산책하는 침략자

마에카와 도모히로 지음 / 이홍이 옮김 / 최재훈 그래픽 / 알마 / 2019

 

성큼성큼 보폭이 큰 문장. 익숙해지기 전에 재빠르게 교체되는 챕터. 문체는 뭐랄까, 다소 틱틱대는 말투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어서 밉지 않은 친구 같다. 외계인 선발대는 설렁설렁 산책하며 동네 주민을 대상으로 개념이라는 것을 훔쳐내는데, 개념을 잃은 지구인들이 무슨 일을 벌이리라 생각하며 읽어나갔지만 뜻밖에도 이야기의 마지막엔 사랑이 있었고, 그럼 syo는 진다. 사랑 앞에 필패하는 그야말로 사랑성애자(애성애?) syo의 개인 취향에 척 달라붙은 결말! , 울뻔했지만 이야기를 할 수가 없네…….

 

참 많은 것이 다 슬펐다. 신지를 잃는다는 것. 신지를 사랑했던 것. 신지와 함께했던 삶이 건조한 정보로 바뀐다는 것.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떤 말도 이어 붙이지 못한다는 것.

  "정말 괜찮은 거지?"

  "빨리 해."

  제발 부탁이니까 빨리 해. 지금 머릿속이 그걸로 가득 찼으니까.

  

  "고마워. 그거 가져갈게."

_ 마에카와 도모히로, 산책하는 침략자

 

 


277. 표범처럼 멋지게 변신하는 삶, 사기

황희경 지음 / 메멘토 / 2021

 

표변豹變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마음이나 행동 따위를 갑작스럽게 바꾼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첫 번째 정의가 표범의 무늬가 가을이 되면 아름다워진다는 뜻으로, 허물을 고쳐 말과 행동이 뚜렷이 달라짐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이 말은 주역周易』「혁괘革卦상육효上六爻에 나온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는 문구에서 유래한 것으로, ‘군자는 표변한다는 좋은 말이다. ‘잘 사는 삶이란 표범의 무늬가 아름다워지듯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나쁜 상태에서 좋은 방향으로,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멋지게 변신하는 삶이며, ‘잘못 사는 삶이란 그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삶일 것이다.

_ 황희경, 표범처럼 멋지게 변신하는 삶, 사기

 

사기 열전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청년이 있었다. s모 청년의 실명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하여간 그래서 그 청년은 도서관에서 김원중 선생님 번역의 사기 열전을 빌렸고, 다 못 읽고 반납하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까지 고이 반납했다. 마음먹기-대출-독서-포기-반납-마음반납으로 이어지는 이 패망의 연쇄를 네댓 번 쯤 반복하면서 기간상으로는 5회독 같은 1회독, 내실 면에서는 1회독 같은 5회독이 이러구러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청년은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아는데, 아주 잘 아는데, 지금은 중년이 된 그 청년은 정말이지 솔루션이 안 선다……. 그런 와중에 또 자기를 독서 멘토로 고 있는 멍청한 친구 녀석(역시 누군지는 밝히지 않겠다)에게 야, 책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면 그 책은 반드시 이거지- 라며 사기로 사기를 쳤고, 멍청한 친구 녀석은 그 즉시 두 권 5만원 하는 세트를 구매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가? 아쉽게도 그 친구 역시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한 채 여전히 그냥 그 친구로 남아 있으며, 그 친구가 사놓고 몇 쪽 보다가 집어치운 사기 열전 두 권은 우리 집, 아니다, s모 중년의 집 책장 위에 가로로 누워 있다.

 

왜 그들은 망하는가? 사기가 실은 좋은 책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다. 사기는 당연히 좋은 책이다. 읽는 법이 틀렸던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목표 없이,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따위의 애기 장래희망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접근하면 저 훌륭한 책에서도 뽑아낼 것이 없다. 그렇지만 만약 조금 더 선명한 그림을 가지고 들어간다면?

 

사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러므로 사기 속 다양한 인간군상들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여러 삶의 관점 가운데 이 책이 선택한 것은 표변하는 삶이다.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제일 좋은 지혜는, 사기를 읽고 나서 아슈발 이거 사기잖아- 가 아니라 와진짜 이게 사기지- 라고 외칠 수 있으려면 추구하는 인간상을 들여다보는 렌즈의 초점거리를 미리 조절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겠다.

 

 

 


278. 왜 읽을 수 없는가

지비원 지음 / 메멘토 / 2021

 

좀 길지만 한번 옮겨 적어 보겠다.

 

"우리는 한나 아렌트와 바우만을 통해 이 제도에 충실한 인간이 어떻게 ''이 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우리'. '우리'가 과연 누굴까?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혹시 앞에 한나 아렌트와 바우만에 대한 언급(이야기)이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렇지 않았다. 아렌트와 바우만은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짐작건대 뒤에 '악의 평범성''아이히만'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는 아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아렌트의 책을 말하는 듯싶다. 바우만은 지그문트 바우만을 말하는데, '제도에 충실한 인간이 어떻게 악이 되는가'를 언급하는 책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같다. 둘 다 쉽게 읽기 힘든 책이다. 하지만 '아렌트와 바우만을 통해 이야기를 들은 우리'라는 표현은 명백히 한나 아렌트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 책들을 읽은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누구일까? 필자의 동료 연구자일 수도 있고, 한나 아렌트/바우만 저작 세미나나 독서 모임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은 분명 '우리'가 맞을 것이다.

  아렌트와 바우만을 모른 채 이 책을 집어 든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 '우리'라는 지칭은 절대 고의는 아니겠지만 누군가를 배제하고 난 뒤의 '우리'. 아렌트와 바우만의 책을 알고 있어도 그 책들이 어떻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처지에서 예문을 읽었을 때 느낀 것은 소외감이다. 나는 분명 저 '우리'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 소외감을 안고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아렌트와 바우만의 '이야기'를 다 읽고 다시 이 ''을 읽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독서의 선후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_ 지비원, 왜 읽을 수 없는가

 

사실 이 대목을 옮긴 시점에서, syo가 덧붙일 말은 없는 것 같다.

 

 

 

--- 읽는 ---

문해력 공부 / 김종원

허삼관 매혈기 / 위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

사조영웅전 4 / 김용

chaeg 2021. 6 / ()(월간지)편집부

그림 속 경제학 / 문소영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 이나이즈미 렌

언제까지나 내성적으로 살겠다 / 에비스 요시카즈

주민의 헌법 / 박주민

공대생도 잘 모르는 재미있는 공학 이야기 / 한화택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 민이언

이름들 / 박훌륭

뭘 해도 운이 따르는 사람들의 10가지 습관 / 우에니시 아키라

블루의 과학 / 카이 쿠퍼슈미트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1 / 이희재

날마다 고독한 날 / 정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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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8-11 13: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표변이 그런 뚯이었어요?? 전혀 몰랐네요. 좋은 것 알고 갑니다.
근데 우리 중년이예요..? 아직 불혹 아니니 청년이라 치면 안 되나요..? 흑 ㅠ
이번 syo님의 1-3글은 참 너무 좋습니다. 마음 아프기도 하고.. 미소가 나오기도 하고…

syo 2021-08-11 13:58   좋아요 4 | URL
공무원질을 해보니 행정적으로 ‘청년‘이라는 이름을 단 혜택들이 대부분 35세까지더라구요..... 우리는 이미.... 🤧

2021-08-11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1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1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1-08-11 13: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Syo님‘읽는‘중 책들 재밌는 표지 몇 개 눈에 들어오네요.쓱싹ㅋ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도 젊은시절 사진보면, 리즈시절 알파치노를 참 많이 닮으셨지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8-11 13:53   좋아요 4 | URL
우리 아빠는 조형기 닮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심지어 킬러조 그 분 마냥 운전도 엉망진창…(아직 안 돌아가시고 어디 살아 있긴 하지만…)

청아 2021-08-11 13:57   좋아요 3 | URL
아 마초 스타일 외모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8-11 13:59   좋아요 6 | URL
우리 아빠는 나 닮았어요 🤣

그레이스 2021-08-11 14: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의도적인것 같지는 않고 거기에 ‘있는‘, 어느 곳에나 ‘있는‘ 으로 읽어야 할듯요
있는을 꾸미고 있는 부사절
;알폰스 무하 마지막 줄

syo 2021-08-11 14:15   좋아요 3 | URL
ㅎㅎ 네
분위기상 그렇게 읽었지만, 컨텍스트에 기대지 않고 그냥 문장 자체만으로 여지없게 만들 수 있으셨을텐데 그러지 않으신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8-11 14:17   좋아요 3 | URL
아 네!
제가 syo님 정서를 못 읽었네요

죄송;; ~!^

syo 2021-08-11 14:19   좋아요 4 | URL
별 말씀을요 ㅎㅎㅎ
그런 오해가 발생했다면 백이면 백 syo의 글이 미숙해서 그런 겁니다. 장우진 선생님 뭐라할 입장이 못 되네요 ㅋㅋㅋㅋ 아유부끄러

그레이스 2021-08-11 14:34   좋아요 1 | URL
더 죄송!

얄라알라 2021-08-11 14: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과 함께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반납하였다는 s 모 청년은 이미 글로써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니 ˝훌륭한 사람˝ 이상 아니신지요?

언젠가 어플로 살짝 실물을 가린 s모 청년의 사진을 보며, 이건 B*에스감인가? 싶었는데, 역시 그 외모의 계보가 분명했군요. 같이 사진찍는 이들에게 민폐가 될 정도의 아름다움을 이어받으셨나봅니다.

소개해주신 책들, 모두 생소합니다. 이렇게 Syo님의 페이퍼 열독자이면서 책밭의 교집합 만들기에는 이렇게나 게으르다니. 매번 ˝0네!˝하고 뒤돌아서서, 더 안 찾봤나봐요^^;;

syo 2021-08-11 14:22   좋아요 4 | URL
북사랑님 🥺 제발 제발 난리나기 전에 B*S의 *이 U였다고 선언해주세요... 살려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s모 중년은 여러 서재친구님들의 오구오구에 힘입어 그나마 사람구실 하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

syo 2021-08-11 14:30   좋아요 5 | URL
아니 북사랑님.....
이건 아니지요 ㅋㅋㅋㅋㅋ B*S라고 쓰셨다가 B**으로 수정해버리시면, 제가 B만 알려줬는데 지혼자 그 이름도 찬란하신 분들 언급한 거라고 설레발친 놈처럼 되버리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진짜 아니예요 북사랑님 ㅋㅋㅋ

2021-08-11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1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21-08-11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저에게 별 2개짜리 책을 읽고 허망한 마음으로 책장을 둘러보다 저 책을 클릭한 제 손가락을 후회하고 있었거든요.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길게 하지 않으신 이야기에 공감합니다~ㅎㅎ

3.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수학 문제집 뒤편에 부록으로 딸린 정답과 풀이과정이 세세하게 적혀있는 해설 페이지를 보는 듯했습니다.^^

273. 무하의 그림은 순정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킵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일단 뛰어들 것~버리고 버려도 도무지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비로소 나의 것‘ . 힘을 주는 문장이네요.^^

274. 두번째 단락의 첫 문장에서 순간적으로 맨 앞부분을 주술로 읽었습니다.ㅋㅋㅋ ‘syo는 훌륭하지만~‘^^;
한 얘기 또 하고 다시 하고 도돌이표 안에서 복붙이 일어나는 건 그 지경으로 지겹도록 들어야 그나마 실천으로 이어질까해서이지 않을까요. 독서량이 비루한 저도 같은 얘기 반복되는 건 딱 질색이라서 책 속에 담긴 내용이 인용하신 문장들의 향연이라면 책꽂이에 그냥 꽂아놓아야겠군요

275, 276 인용하신 문장 첫 줄 오타(ㄱ~ㅆ, 깨)가 또 신경쓰이는 나비종^^;;

277. 저는 좀 더 내공을 쌓고 시도해봐야겠군요..

278-1. 옮기신 글을 읽으니 속이 후련해집니다. 부실한 저의 이해력을 한탄하며 종종 느끼던 소외감을 이해받은 것 같아서요.
278-2. 첫 번째 단락 마지막 줄, ‘세마나‘, 두 번째 단락 3째줄, ‘소외가‘...

syo 2021-08-14 09:23   좋아요 2 | URL
꼼꼼하게 읽고 오탈자를 다 잡아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ㅎ
아주 엉망진창이네요..... 😞

나비종님이 투여하신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이었어야 했는데, 망했네요. 죄송합니다....

stella.K 2021-08-11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로웠겠어요. 마치 어딘가 꿍쳐 둔 돈 뭉치를 발견한 느낌은 아니었을까요?ㅋㅋ

syo 2021-08-14 09:23   좋아요 1 | URL
아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이네? 새롭네? 이러고 덮고 말았어요.....

stella.K 2021-08-14 14:2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뇨. 난 책을 얘기했는 거인데...
내가 이런 책도 사놨었구나. 읽어야지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중엔 아니 왜 내가 이런 걸...? 하는 것도 있겠지만.ㅋ

붕붕툐툐 2021-08-12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옛날 사진이니 공개도 좀 하고 그럽시다. 저 진짜 힙스러운 옛사진 넘나 좋아하거든요~ 제가 본 쇼님이 맞다면 어머님 미인, 아버님 미남은 따놓은 당상인 거 같습니다. 무서운 유전의 힘!!ㅎㅎ

syo 2021-08-14 09:24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어제 앨범 다시 한번 보면서, 이런 사진은 한번 올려 볼까? 그러고 있었어요 ㅎㅎㅎ
엄마는 미인이지만, 아버지와 저는 그냥 두 아저씨에 불과합니다....

2021-08-12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4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원심력

 

 

 

1

 

내가 나의 언어를 가르친다. 배우는 마음과 가르치는 마음이 같은 마음이어서 내 언어는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이 원래 생긴 결을 따라 점점 진해지고 찐득해진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욱 어제 같은 나, 나의 언어는 어제 방향으로 달리는 내일이다. 멈추어 선 시간 위의 머리 둘 달린 짐승이다.

 

나는 내게 언어를 가르치는 나를 해고할 수 있을까. 내가 오직 하나의 언어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면, 천 권의 책이 결국 한 권이 되고 만 개의 문장이 결국 한 줄이 되는데, 이 무서운 파국의 바깥쪽을 꿈꾸며, 물이 반쯤 든 양동이를 빙글빙글 돌리듯이, 언제고 원 궤도 밖으로, 접선 방향으로, 튀어나갈 듯 팽팽하게, 구심과 원심이 동적으로 평형하는 그 터질듯한 문자의 세포벽을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2


 

특정 텍스트의 물질적 구성은 텍스트 자체의 내적 구성보다는 해당 텍스트가 극복한 재현 형식과 더 많이 연관될 것이다. 가정소설은 처음엔 귀족적 글쓰기 전통에 도전했고 이후엔 노동자계급 문화를 거부했다. 나는 이런 사유를 더 밀고 나가 특정 텍스트의 내적 구성은 텍스트가 기호를 통제할 권한을 얻기 위해 상반되는 재현 형식들과 벌이는 투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겠다. 이런 점에서 텍스트의 외부와 대립되는 텍스트의 내부는 없으며,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구분도 없다.

_ 낸시 암스트롱, 소설의 정치사

 

이 대목이 바로 50페이지에 달하는 서론의 고갱이이며, 남은 450페이지를 통해 성공적으로 논증된다면 이 책을 단순한 영국소설사 책이 아니라 예술철학 영역의 고전에 자리시킬 키 포인트가 되겠다. 서론의 나머지 부분은 이 문단을 위한 개념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다.

 

재현 이전에 일단 재현 대상이 먼저 존재한다는 (당연해 보이는) 명제 자체가 실은 특정한 재현 형식이 구사하는 테크닉이라는 관점, 그게 우리 눈에 당연해 보이는 것은 사실 그 테크닉이 우리의 인식에 미치는 효과라는 지적도 인상적이고, 그런 기술을 동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내용 자체, 그러니까 실은 재현 대상까지 창조해 내는 주체가 바로 재현 형식이며, 창조되는 재현 대상은 그 재현 형식이 다른 재현 형식과 싸워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유리한 방향으로 구성된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것이 재현 형식이라는 용어다. 이는 장르트렌드’, ‘양식’, ‘스타일등 우리가 자주 쓰는 말들이 지시하는 영역과 일부 교집합을 형성하는 동시에 그것들이 가리키지 못하는 어떤 애매한 지점을 조명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재현 형식이라는 용어를 적확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남는 독서가 될 것 같다.




3


은 지난달 초쯤 첫 소개팅을 나간 이후 syo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고는 기회 되는 주말마다 꼬박꼬박 그분을 만나고 있는데어제는 네 번째 만나는 날이어서 이제 정식으로 만나보자는 말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었던 것그래서 나는 멘트를 만들어줬고그것은 우리 사귀자!”라고 말하기엔 늙었고 내 아를 낳아 도라고 말하기엔 아직 섣부른 우리의 현 상태에 맞는 구성으로써요약하자면 1. 나는 연애를 하면 이런 이런 걸 하는 그림을 그려왔는데 2. 그걸 당신하고 하면 좋겠어요하는 구조였다그런데 어제 집에 돌아온 은 굉장히 애매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정황을 들어보니 이게 마인드컨트롤과 시뮬레이션 없이 현장에 나갔다가 준비된 뉘앙스를 살리지 못했던 것. 1을 애매하게 내뱉은 상태에서 2를 시전하는 바람에 구조가 와르르 박살 난 모양이다그래서 들은 대답이 지금은 더우니까 바다는 다음에 생각해 봐요였던 것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한 걸 보면 까인 건 아닌 것 같은데만날 때마다 다음에 만나면 뭐 할까 하는 대화를 나누었던 사정을 떠올려 보면 아무래도 저건 고백이 고백으로 인식되지 않은 상황 같다그렇지만 마음은 어느 정도 전달이 된 것 같고손잡고 집 근처까지 바래다 주겠다던 당초 계획은 당연히 실행이 안 됐고그래서 목하 그들은 지금 애매하다.

 

세상에는 이렇듯 애매한 것이 참 많다.


그렇지만 저들의 애매한 관계보다 더 슬픈 것이 바로,

 

 

 

--- 읽은 ---



268. 애매한 재능

수미 지/ 어떤책 / 2021

 

애매한 재능이다. 저들이야 다음주 쯤 되면 뭐가 됐든 되겠지만, 애매한 재능은 어떻게도 되지 않는다. 내가 내 재능이 애매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잘 되면 어어,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어서 죄책감이 들고, 못 되면 이게 다 재능이 없어서 그렇지 안 될 거야 난 아마, 싶어서 패배감이 드는 것. 때로 애매한 재능은 없는 재능보다 더 슬프기도 하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재능이 없는 것을 알기 어렵다. 재능의 유무를 알아채는 데도 적정량의 재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재능이 없어…….“ 라고 말하며 슬픔에 빠지는 사람들은 실은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애매한 재능, 그러니까 충분치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포기하거나 밀고 나가거나 결정을 해야 하는데, 경험상, 포기하면 편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도달할 수 없는 곳을 넘보지 않으면 시간은 걸려도 조금씩 마음이 낙낙해진다.

 

신춘문예에 계속 도전할 때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뭘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내 개성을 찾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죠. 어쨌든 글의 형식으로 세상에 접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단련된 글쓰기 재능으로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 작가로 살면서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듣고는 대학 동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언니는 나를 범재라고 표현했다.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아서 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그 말을 듣고는 맞아, 난 천재는 아니지씁쓸했다. 그 말이 내게 별 재능이 없다는 말처럼 느껴져 서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범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왔다.

범재. 평범한 재주를 가진 사람.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보통의 재주를 가진 사람.

  []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은 얼마나 분명한 경지인가.

_ 수미, 애매한 재능

 

 

 


269.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

 

- 일독(분명히 이걸 읽긴 읽었는데)

- 재독(210806)

 

처음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 했던 생각을 이번에도 역시 했다. ‘철학’ ‘’ ‘읽기는 싹 다 괴롭지. 아무렴, 정말이지. 괴로우면 안 해야 하는데 왜 하는 것이지, 인간은 왜 그런 것이지. 몰라, 하지만 그런 것이지, 인간이란 그런 것이지, 그런 것이 인간이지.

 

가뜩 철학도 어렵고 시도 어려운데, 철학으로 시를 읽는다거나 시로 철학을 읽는다거나 하는 변태같은 착상을 왜 하는 걸까? 그것이 syo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필요나 효용이 있긴 있기 때문일텐데 말이지……. 아직 그건 알듯도 말듯도 하다. 갈 길이 멀다.

 

10년 된 책이고 모르긴 몰라도 첫 읽기도 대충 그 정도 된 것 같은데, 이번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은 내 인생이 뭐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인가 싶어서 다소 숙연해지긴 했다. 그래도 확실히 읽기는 쉬웠다. , 내가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도 그다지 어렵다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 내가 그렇지…….

 

시인이나 철학자들은 자기 몸에 맞는 자기만의 옷을 만들어 입는 데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시와 철학을 읽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로부터 제스처를 배워서 그것을 흉내 내서는 안 됩니다. “! 저 친구는 저렇게 자신의 삶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구나. 나도 그래야지. 이제 더 많이 내 감정과 생각을 돌아봐야겠다.” 이제 시인이나 철학자들을 선생님이나 정신적 멘토로 숭배하지 마세요. 그들이 남긴 시나 철학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여겨 외우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삶이니까 말입니다. 여러분이 느끼고 고민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도록 노력하세요. 언젠가 여러분도 자기만의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어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_ 강신주,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270. 사조영웅전 3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3권의 포인트는 주인공 곽정이 이제사 주인공다운 활약을 펼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러니까 이 세계관에서 고강하기로 손꼽히는 무공인 항룡십팔장을 전수받는 대목에 있다. 동사서독이라는 말은 영화 제목으로도 쓰여서 유명한데 풀 버전은 동사서독남제북개중신통이다. 그들은 이른바 천하오절이라는 이름의 다섯 고수인데, 이 시점에 명실상부 최강자였던 중신통 왕중양은 이미 사망했고, 남은 사절이 다음 최강자를 가릴 날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항룡십팔장은 네 고수 중 북개(北丐, 북쪽의 거지라는 뜻. 대륙의 왕초, 삼백만 중국 거지의 총대장이시다) 홍칠공의 비전 무공으로서 그 이름만 봐도 용이니 십팔이니 겁나 쎌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겁나 쎄다. 곽정은 목하 동사 황약사의 고명딸인 황용과 썸을 타면서 유람 중이었는데 황용 이 소녀는 세상 모르는 게 없고 못 부리는 기예가 없으며 뭐든 한번 들으면 척척 외워버리는 이 세계관 최고클라스 똑똑이인 것. 갑자기 튀어나와서 닭고기를 좀 내놓아보라고 따져드는 저 거지 영감이 딱 봐도 자기 아버지와 동서남북하며 세상을 나눠 먹는 홍칠공이거든. 그래서 황용은 꾀를 부려 그로 하여금 곽정에게 항룡십팔장을 전수하게 만든다. 홍칠공이 무공 좋고 인품 좋고 다 좋은데 딱 하나, 식탐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황용이 세헤라자드 전법을 동원, 끝나지 않는 요리의 향연으로 홍칠공을 붙잡아 놓고 곽정 쿵후 과외를 시킨 것이다. 홍칠공은 원래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마음이 동하면 3일을 들여서 자기 무공 딱 한 초식만 전수하고 떠나는 습벽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백주부나 빅마마나 뭔 킴 뭔 킴 못지 않은 황용의 요리실력과 곽정의 우직하(다고 쓰지만 멍청하다고 읽느)ㄴ 성격의 콤비네이션에 말려들어 항룡십팔장의 무려 열다섯 초식을 전수한 것이다! , 항룡십오장! 그게 얼마나 곽정과 어울리는 무공인가 하면,

 

초식 하나를 배울 뿐인데도 한 시진 이상을 소비했다. 곽정이 미련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내공의 기초는 이미 잡혀 있는 터라 이처럼 간결하고 힘이 많이 들어가는 심오한 무공을 배우기에 적당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하더니 두어 시진 후에는 기본이 잡혀갔다.

  홍칠공이 덧붙였다.

  “그 아이의 장법은 허와 실 가운데 허를 훨씬 많이 쓰는 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겨루다 보면 틀림업시 계략에 빠져 벗어날 수가 없지. 그 애가 쓰는 수많은 허를 받아내고 이번에는 실이다 생각될 때도 허가 나올 거야. 반대로 허인 줄 알고 방심할 때 실을 쓰는 거지.”

  곽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 장법을 깨뜨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비결은 바로 아예 허실을 따지지 안흔 것이다. 상대방이 장법을 쓰면 허든 실이든 그냥 항룡유회를 한 번 쓰는 거지. 이 초식을 보고 나면 장법을 거두고 초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면 깨뜨리는 거야.”

  “그다음에는요?”

  홍칠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가 그 다음이야, 이 녀석아? 그 아이가 무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지금 가르쳐준 초식을 막지는 못한단 말이다!”

곽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막지 못하면 다칠 거 아니에요?”

  홍칠공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장력을 뿜어낼 줄만 알고 거두지를 못한다면 힘의 경중과 강온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 아니냐? 그렇다면 어찌 천하에 둘도 없는 장법, 항룡십팔장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곽정은 ,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한 가지 생각을 굳혔다.

  ‘내가 쓰고 거두는 것을 모두 배우지 못한다면 황용에게는 절대 시험해보지 말아야지.’

_ 김용, 사조영웅전 3

 

곽정은 곽정이다. 새끼.

 

 

 


271. 어려웠던 경제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미키 헤이스케 지음 / 이성희 옮김 / 김종선 감수 / 팬덤북스 / 2020

 

소략하다. 은행이나 병원, 주민센터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며 읽으면 좋다. 한 꼭지 읽고 고개 들어 전광판에 내 번호 떴나 보고.

 

 

 


272. 어떻게 이상 국가를 만들까?

주경철 지음 / 김영사 / 2021

 

여기에는 우리의 삶이 개선될 수 있고, 사회는 진보할 수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건설하는 게 가능하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이 믿음은 그냥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고대나 중세에는 사회 전체를 개선하고 국가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꿔나간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이런 점에서 유토피아주의 문학작품은 근대의 기획이다. 비록 스토리가 허무맹랑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현실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깔려 있다. 유토피아적 상상은 막연한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출발하여 이상적인 방향을 타진하는 탄탄한 꿈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서 가상의 국가 구조 모델을 구상해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토피아주의 작품은 정부 구성, 경제 작동 방식, 종교 제도부터 음식과 의복, 남녀 간 교제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모든 일을 꼼꼼히 디자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_ 주경철, 어떻게 이상 국가를 만들까?

 

그러니까 유토피아/디스토피아 문학은 계속 쓰여야 하고 우리는 오늘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애들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부터 읽어 보자는 자세는 반쯤 무익한 것이다. 유토피아 문학만큼은 고전의 시간축이 물구나무를 섰다는군요. 덮으세요. 토머스 모어를 덮고, 우리 시대의 SF를 읽자구요!

 

 

 

--- 읽는 ---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장우진

소설의 정치사 / 낸시 암스트롱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

잘 먹고 잘 싸운다, 캡틴 허니 번 / 김여울

산책하는 침략자 / 마에카와 도모히로

표범처럼 멋지게 변신하는 삶, 사기 / 황희경

허삼관 매혈기 / 위화

주민의 헌법 / 박주민

인생수업 / 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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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8-08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글은 일단 좋아요 눌러놓고 내일 출근해서 컴퓨터로 정독할 예정임다~^^

독서괭 2021-08-0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유토피아 제껴도 된다.. 끄적끄적 요점 체크.
<소설의 정치사>는 인용하신 부분도 어려운데 SYO님 해설도 어렵다!! 안 읽어야겠다..끄적끄적
오랜만에 나온 삼님의 소식 반갑습니다 ㅋㅋ 그분들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 계속 연재 부탁드려요!
<허삼관 매혈기> 읽은 것 나와서 반갑습니다!

syo 2021-08-09 18:29   좋아요 2 | URL
2댓글이 다 독서괭님... 역시 👍
삼이는 연애를 하긴 할 각인데 제가 독점중계권을 따낼 예정으로 협상중입니다......
페이퍼 쓸 거 풍성해지겠네 ☺

나비종 2021-08-1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심력>
1-1. 언어가 멈추어 선 시간,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머리가 둘이어도 언어의 다리는 현재에 서 있으니 그 언어는 지금 현재에 있다.
1-2. 구심력이 없으면 원심력도 없다. 접선 방향으로의 해방은 자유인 듯 하지만 이후의 유영은 등속 운동이라서 변화없이 지루할 지도 모른다. 팽팽한 긴장감이어도 터질듯한 무서움이어도 조금씩 방향이 바뀌는 원운동이 낫지 않나. 쳇바퀴라는 생각이 들면 반경을 넓히면 될 일이다. 혹은 문자의 세포벽을 세포막으로 몰랑몰랑하게 만들면 선택적 투과성을 지니니 파국의 안과 밖을 아우르게 될 지도... 물론 반대로 선택되어 몹시 곤란해지는 난감함을 만들지 않으려면 많은 내공이 필요하겠지만요.^^

2. 엄청난 문장이나 내용이 불현듯 떠오르면 시로 쓸거냐 산문으로 쓸거냐 갈등을 하거든요. 한동안 재현 형식의 싸움에서 시가 헤게모니를 장악했는데, 요즘은 산문에 꽂혀서 구구절절 문장으로 구현합니다. 그러면 시로 담았을 때와는 내용이 달라지게 되거든요. 산문의 형식에 맞게 내용이 맞춰지게 되죠.
(질문) 4개의 문장 안에 무려 ‘텍스트‘란 용어를 9회나 시전하신 낸시 님의 쭝얼거림이 이런 의미인가요?^^;;

3. 애매한 재능에 대해 쓰신 문장들이 많이 와 닿습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이러다가도 간혹 욕심이 생길 때가 있거든요. 나노급의 감성과 감탄스러운 센스와 넘사벽의 독창성과 기발한 유머와 어떤 묵직한 만연체를 시전하셔도 거뜬한 가독성을 겸비한 글을 보여주시는 syo님이 스스로를 애매하다 하시니 제 자신을 들여다보며 생각이 많아집니다.ㅡㅡ;

syo 2021-08-10 09:1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ㅎ 원글보다 고퀄의 댓글이어서 한참을 읽었네요.

1-1과 1-2에서 구심력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나비종님의 관점을 추론하는 일은 어렵겠네요.
반드시 오해하거나 이해했다고 오해하겠지요.

2에 대해서라면 일부는 맞게 보셨고 일부는 정반대로 보셨습니다. 재현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큰 틀에서 보면 맞는데, 재현 형식이 다른 재현 형식과의 싸움에서 유리하도록 재현 대상 자체를 ‘구성‘한다는 말은, 그 형식이 시동을 걸기 전에 그런 대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어서, ˝엄청난 문장이나 내용이 불현듯 떠오르면˝이라는 말씀처럼 내용이 형식에 선행하는 글쓰기와는 맞게 빗대어지기 어렵겠습니다. 실제로 저 책의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재현 형식‘ 자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 싸움을 위해 재현 형식을 창조하고 그 재현 형식이 재현 대상을 창조하는 역사적 구도인 것 같아서요.

3에 관해서는 과찬이셔서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ㅎㅎㅎㅎ

나비종 2021-08-10 12:32   좋아요 0 | URL
대대댓글로 syo님을 번잡하게 만들어드릴 의도는 없었지만 무릇 무식한 인간은 배움의 열정이라도 들끓어야하기에..^^;

1. 관점을 추론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합니다. 선택적 투과성을 지닌다면 물질이 드나들 수 있으니까요.ㅎㅎ 다만 노폐물과 영양소의 이동 방향이 반대로 되면 곤란하지만요.
‘접선 방향으로, 튀어나갈 듯 팽팽하게, 구심과 원심이 동적으로 평형하는 그 터질듯한 문자의 세포벽을‘ 이 부분은 몇 번을 읽어도 언어에 대한 절박함이 느껴지는 문장이라 많이 와닿습니다.^^

2. 음.. 핵심은 ‘기호를 통제할 권한‘을 위한 배틀이군요. 그래서 소설에 정.치.사.라는 말이 붙은 걸까요.
청자와 백자를 틀에 넣어굽는 방식이라면 일단 귀족적이냐 서민적이냐 의도한 틀을 먼저 선점하여 마련해놓고나서 비로소 거기에 내용물을 쏟아붓는다는 말씀이군요. 원하는 분위기의 집 외관을 이루는 뼈다귀를 만들고 그에 맞게 내부 인테리어 소품을 채운다는 의미요. 이번에는 제대로 해석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syo 2021-08-11 12:37   좋아요 1 | URL
저자의 의도는 제가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차치하고,
제 독해와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어서 나중에 제가 이해한 바를 페이퍼로 다시 쓰던지 해야겠어요 ㅎㅎㅎ

나비종 2021-08-10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1번에서 박을 밖으로 바꿔주실래요? 몇 번 읽다보니 읽을 때마다 자꾸 걸려서ㅋㅋ...조금의 오타도 참지 못하는 나비종 올림

syo 2021-08-10 09:13   좋아요 0 | URL
바로 수정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깜짝 놀랐네요.
감사합니닼ㅋㅋ

모운 2021-08-1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우리 사귀어요 해. 멋없어 보여도 심플하다. 1,2 단 나누고 뉘앙스 살리고...복잡해!

syo 2021-08-11 12:41   좋아요 0 | URL
이렇게 써서 그렇지 사실 실제로 말로 하면 복잡할 게 하나도 없었어요. 몇 문장 되지도 않고.

˝우리 사귀어요˝ 이 말도 커피 마시면서 다른 이야기 하다가 앞뒤 다 잘라먹고 갑자기 생각난 듯 저 문장만 툭 던지는 건 아니잖아. 그 앞에 서론 좀 떼고 분위기도 좀 잡겠지. 그리고 ˝사귀어요.˝ 하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상대방의 대답만 기다리며 노려보는 것도 아니고, 그 뒤에도 몇 마디 붙겠지. 그렇게 다 치면 결국 비슷해져.....


모운 2021-08-1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정적으로 심플하게 말했을 때 멋없어보이면 뭘해도...

syo 2021-08-11 12:43   좋아요 1 | URL
아니야, 언어의 힘이라는 게 있다고....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모운 2021-08-1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의 힘은 알겠지만, 나는 어쩐지 三씨한테 맞는 방법은 조금 더 심플한 쪽인 거 같기두...

syo 2021-08-14 09:26   좋아요 0 | URL
내 글을 좀 보고 三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26년째 보고 한 동안은 거의 매일보다시피 했던 나도 늘 쟤가 새롭다.....

모운 2021-08-11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 아마추어야☺️
 

 

 

 

 

어느덧 딱딱한 복숭아는 들어갈 때가 되었다고, 아쉬울 여유도 없이 분주한 나 대신 아쉬워하던 사람이 그래도- 라는 말과 함께 복숭아를 보내왔다. 이 여섯 알의 복숭아에서 올해를 끝마친다면 한 알에 두 달을, 한입에 열흘은 베어 무는 셈이겠다. 복숭아는 목을 넘어가면서 그윽해지는 과일. 크게 베어 물어 지나치게 꼼꼼히 씹지 않고 삼키면 여름의 어떤 짓궂은 장난도 다 용서할 수 있는 맛이 난다.

 

좋은 일들은 대체로 겨울에 있었다. 여름은 그저 여름이기만 해도 힘든데 어찌 된 일인지 슬프고 괴로운 일의 시작이나 끝 중 최소한 하나는 여름에 온다. 여름이 길어지면 내 슬픔과 괴로움도 길어질 테고, 나는 추운 나라 서늘한 벌판을 생각하는 일이 잦다. 밤과 친해진다.

 

그저 이 여름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버티는 것은 그래도 이 여름이 복숭아가 있는 여름, 복숭아를 보내주는 마음이 있는 여름이기 때문에.

 

성남이다.

 

 

 

--- 읽은 ---



263.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 김남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9

 

- 일독(안녕이 하이인지 바이인지도 모르던 시절)

- 재독(210803)


아름다우면서 에두르지 않는 문장.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옮겨 적은 것 같은 마음. 천재의 펜은 이렇게 작동하는 것이로구나.

 

어느 날 저녁 안의 목소리가 그런 우리 둘을 떼어놓았다. 시릴은 내게 몸을 맞대고 길게 누워 있었다. 석양 무렵의 그림자와 불그스름한 빛살 한가운데서 우리는 거의 옷을 벗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안을 착각하도록 했던 것 같다. 그녀가 단호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시릴은 당연히 부끄러워하며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이어 내가 그보다 천천히 일어나며 안을 바라보았다. 안은 시릴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마치 그제야 그의 존재를 감지했다는 듯 나직하게 말했다.

  "그쪽과는 더 이상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녀가 말했다.

  시릴은 대답하지 않고 내게 몸을 기울이더니 어깨에 입을 맞추고 자리를 떴다. 그 행동은 나를 놀라게 했고, 마치 약속의 의미라도 담고 있는 듯 감동시켰다. 안은 무슨 다른 것을 생각하는 듯 심각하고 냉담하게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시선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 혹시 그녀가 다르게 생각했었다고 해도 시릴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잘못이었다. 나는 순수하게 예의 차원에서 민망해하는 태도를 취하며 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내 목에서 솔잎 하나를 떼어낸 다음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안의 아름다운 얼굴에 특유의 경멸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안을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게 하면서 내게는 약간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마뜩잖고 싫증 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런 종류의 심심풀이 놀이가 대부분 병원에서 끝난다는 걸 알아야 해."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선 채로 이야기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지독히 불편했다. 안은 움직이지 않고 똑바로 서서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나는 이야기를 하려면 안락의자, 붙잡을 만한 물건, 담배 한 개비, 다리 흔들기, 다리가 흔들리는 걸 바라보기 같은 것이 필요했다.

  "이 일을 과장해서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난 시릴과 그저 입맞춤을 했을 뿐이라고요. 그런 일로 병원에 갈 일이 생기지는 않잖아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부탁인데 그 청년을 더 이상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말에 토 달지 마. 넌 열일곱 살이고, 난 현재의 네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어. 네가 네 삶을 망치게 두고 볼 순 없어. 게다가 네겐 해야 할 공부가 있잖아. 공부만 해도   오후 시간이 모자랄 거야." 내 말을 믿지 않는 기색으로 안이 말했다.

  그녀는 등을 돌리더니 침착한 결음으로 별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망연자실한 채 그 자리에서 못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안의 말은 진심이었다. 내 논리, 내 부인에 그녀는 경멸보다 더 지독한 형태의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마치 내 존재가 없는 것처럼, 그녀가 줄곧 알아왔던 나 세실이 아니라 진압해야 할 그 무엇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그녀가 그런 식으로 처벌해 마땅한 대상인 것처럼.

_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이라는 캐릭터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의 영역 밖에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토대가 될 만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가 옳기 때문에 타인을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갈 자격이 있고 심지어 그럴 의무가 있다고 스스로 철석같이 믿는 타입. 세실은 이제 하루에 몇 시간씩 골방에 갇혀 베르그송을 공부해야 하고, 시릴과 만나려면 안의 눈을 피해야만 한다. 안에게 세실의 말과 생각은 그저 교정 혹은 무시의 대상일 뿐이고(“난 천박한 말은 싫어. 재치 있는 농담이라도 말이야.”, “요즘 유행하는 생각이구나. 하지만 그건 가치가 없어.”) 안의 그런 태도는 예민한 세실의 마음에 상처로 자꾸만 축적된다. 하지만 안은 그런 걸 모른다.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옳으니까. 내가 옳은 사람은 늘 그런다.

 

그러면서 자기 상처에는 또 지나치게 예민한 안은 결혼할 사람(세실의 아버지)이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바로 집을 뛰쳐나가 차를 절벽 아래로 몰아 자살한다. 그 사건은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과 슬픔이었지만, 읽는 syo는 그저 통쾌할 뿐이었다. 그녀는 항상 세실을 어리고 모자란 아이 취급하며 훈육하려 했지만, 상처를 견디는 마음에 관해서라면 그녀야말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세실은,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들 마음속 슬픔 창고에 안의 죽음을 저장한 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264. 짧은 시간 동안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4

- 일독(1804xx)

- 재독(210804)   


  바지락칼국수 국물 위로 떠오른

  조갯살을 날렵하게 집어먹는다고 해서

  내가 붉은어깨도요새가 될 수 있겠는가

  바지락 조개껍질에 아직 남아 있는

  갯벌의 잔모래를 씹어먹었다고 해서

  잔모래에 아직 남아 있는

  파도소리에 고요히 귀기울였다고 해서

  내가 가슴붉은도요새의 가슴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먼저 썰물이 되지 않고서는

  내가 먼저 새들이 자유롭게 발자국을 찍어대는

  맛있는 갯벌이 되지 않고서는

  어떻게 머루처럼 까만 민물도요새의

  눈동자에 걸린 수평선이 될 수 있겠는가

  이제 돌아가실 날만 남은

  틀니뿐인 늙은 아버지와

  자장면보다 맛있는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며

  식탁 위에 젓가락으로 수북이

  조개껍질을 쌓아놓았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거룩한 패총이 될 수 있겠는가

_ 정호승,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며> 전문

 

활자로는 보이지만 음성으로는 들리지 않는 종이 위의 시도 좋지만,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채록하여 활자에 매어둔 듯한 시도 좋다. 이 시인 말고는 누구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시들도 눈부시지만, 누구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고르고 부드러운 말들로 길을 잡아나가는 시들도 찬란하다.

 

 

 


265.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리디아 더그데일 지음 / 김한슬기 옮김 / 현대지성 / 2021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에 내 이름을 적어 넣은 날, 고르지 않은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새벽까지 앉아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의 모호한 구획과 포함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죽음을 삶에 반대되는 어두컴컴하고 무서운 수렁으로 생각하면서도,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삶의 한 부분으로, 대단원으로 향하는 피할 수 없는 전개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게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의 끝단이라면, 죽음이 삶의 마지막 단추라면, 죽음을 생각하면 좋을 시간이 비단 아침뿐일까.

 

혼자 죽지 말기를. 죽음의 순간에 공동체가 나의 죽음에 뭔가를, 내 죽음이 공동체에 또 뭔가를 더하는 풍성한 삶은 늘 죽음을 잊지 않고 준비하는 현명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아침, 바그다드의 상인이 하인을 시장으로 보냈다. 하인은 심부름을 간 지 얼마 안 돼 집으로 돌아왔다. 겁을 먹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인은 상인에게 이야기했다. "장을 보다가 어떤 여자가 등을 떠밀기에 뒤돌아봤더니 죽음이 지척에 있었습니다. 죽음이 저를 위협했어요. 주인님, 제발 말을 빌려주세요. 죽음을 피해 도망가야겠습니다. 사마라까지 말을 타고 가서 죽음이 저를 찾지 못하도록 숨어야겠어요."

  사연을 들은 상인은 하인에게 말을 빌려줬다. 하인은 지체하지 않고 사마라로 떠났다. 그날 오후, 상인이 직접 시장에 갔다가 사람들 속에 서 있는 죽음을 목격했다. 상인은 죽음에게 그날 아침 하인을 위협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죽음이 대답했다. "위협한 게 아니었소. 놀랐을 뿐이죠. 오늘 밤 사마라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바그다드에서 봤으니 얼마나 놀랐겠소?“

  바그다드 상인 이야기는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도, 재촉할 수도 없으니 언젠가 마주하게 될 사마라의 밤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 또한 삶의 일부다.

_ 리디아 더그데일,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266. 나의 사랑, 매기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


- 일독(1902xx)

- 재독(210804) 

 

인간은 매사에 서투르다. 관계를 다루는 일에는 더욱 그렇다. 특히 사랑을 운전하는 일이라면 인간은 악셀이 왼쪽인지 브레이크가 왼쪽인지 헷갈리니까 눈 감고 한번 생각해 보려 드는 위태천만한 운전자 비슷한 주제에 운인지 뭔지 잘도 안 죽고 사랑하는구나 싶을 때가 잦다. 깜빡이를 켜요. 와이퍼 말고 깜빡이를 켜라고요……. 마음속에 사랑이 흥성하는 도시보다 폐허를 더 많이 지어놓고 사는 것이 다 그런 이유에서겠지. 여기는 폐허입니다, 끝났어요. 한때는 빛나던 이 도시에 살던 수많은 감각과 감정 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여기서는 이제 안 돼요. 저 흔적들은 깨끗하게 치울 수가 없든 거거든요. 그러니까 다음 사랑을 하려거든 다른 넓고 푸른 땅을 찾아보세요. 여기는 이제 못 써요. 잘 해야 박물관입니다.

 

우리가 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 그리고 이미 그 궤도를 돌리기에는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일 사이의 시차는 멀수록 좋은 걸까? 그 반대일까? 어떤 사랑은 그 시차가 광대하여 결별 후에도 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 그때 우리는 무슨 수를 써도 안 되는 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랑이 정말로 끝나는 시점은 어디라고 봐야 좋을까? 그것은 중요하다. 지나간 사랑을 폐허로 정의하고 울타리를 둘러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다음 사랑의 도시를 그 폐허 위에 건설하다 종종 망하곤 하기 때문이다. 시점. 시점.

 

그러니까 망하고 있음과,

 

그렇게 매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폐점한 뒤에도 어딘가에 배어 있다가 밤공기를 타고 이 방으로 들어서는 닭기름 냄새를 느끼고 있자면 매기가 정말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욕실에서 샤워 소리가 들리니까. 그 불규칙한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때 그 순댓국집에서 아줌마가 노래한 없어지고와 사라지고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사라진다는 것은 부재하는 대상의 강력한 능동이 감지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매기는 지금 내 곁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저 욕실의 자락자락한 물소리가 여전히 매기를, 좀 전에 끝난 우리의 섹스를, 사랑해, 라는 말과 시간을 간신히 환기하고 있는데도.

_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

 

 

그리고 망했음에 대하여,

 

스토어가 폐점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 안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매기와 마주치는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망설이다가 이내 길을 건넜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많은 물건들은 팔린 뒤였다. 그리고 여행을 온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그 가게에 별로 없었다. 나는 제주에서만 난다는 천혜향을 몇 개 집고 먹을지 알 수 없지만 단단한 감자를 몇 알 샀다. 그리고 계산을 하려는데 잘 있던 아줌마가 잠깐 일을 본다며 자리를 떠났고 졸지에 사무실에서 나온 그, 이미 지역신문에서 마르고 닳도록 내가 들여다봐서 아주 친근하게 얼굴을 새겨버린 매기의 남편이 내가 산 물품들을 계산했다. 18000원입니다, 담아드릴까요? 나는 배낭을 메고 있었지만 넣어달라고 했고 그가 비닐봉지를 뜯어 그것을 넣고 내게 건넬 때 어쩔 수 없이 손가락들이 스쳤다. 나는 그것을 주고받았을 때의 느낌을 아마 긴 시간이 흘러도, 어쩌면 매기와 관련한 기억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로 가져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디에도 미뤄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매기에게도 정권에게도 이 세상이나 어느 사랑에게도. 아무리 동산 수풀은 사라지고 장미꽃은 피어 만발하더라도, 모두 옛날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시간이 지나 나의 사랑, 매기가 백발이 다 된 이후라도.

_ 같은 책

 

 

 


267. 필요가 피로가 되지 않게

안나미 아쓰시 지음 / 전경아 옮김 / 필름(Feelm) / 2021

 

제목이 다 했다라는 지나치게 편리한 말은 쓰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무너지다니. 내용은 여기저기 존재하고 문장은 글자의 나열에서 그리 멀리 달아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존심 강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초합금으로 만든 로봇에 물총으로 맞서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에 스스로 자존심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방호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로켓포를 마구 쏘아대는 것과 같다.

  뭔가 불손한 대우를 받거나 매정한 소리를 듣고도 여유롭게 받아넘기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진짜 자존심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얄팍한 자존심은 버려야 십중팔구 몸도 마음도 가볍게 살아갈 수 있다.

_ 안나미 아쓰시, 필요가 피로가 되지 않게

 

 

 

--- 읽는 ---


애매한 재능 / 수미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장우진

글쓰기의 쓸모 / 손현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강신주

어려웠던 경제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 가미키 헤이스케

소설의 정치사 / 낸시 암스트롱

문해력 공부 / 김종원

수학의 모험 / 이진경

마르크스를 읽자 / 미카엘 뢰비 외

지지 않기 위해 쓴다 / 바버라 에런라이크

사조영웅전 3 / 김용

파이썬으로 시작하는 데이터 분석 /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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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1-08-05 1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재독을 이렇게 여러 권이나. 재독까지 하셨다니 다 읽어보고 싶네요.^^

syo 2021-08-05 22:58   좋아요 0 | URL
ㅎㅎㅎ syo의 재독은 읽어봄직함의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전혀 남들에게 추천할 만하지 않은 책도 3독씩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 페이퍼에 재독한 책들은 떳떳하게 권할 만한 책들이네요^-^

수이 2021-08-05 14: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복숭아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슬퍼 ㅠㅠ

syo 2021-08-05 22:58   좋아요 0 | URL
복숭아 사 주는 다정한 사람 있어서 맛있게 잘 먹고 있다는 이야긴데 왜 슬퍼 ㅠㅠ

독서괭 2021-08-05 15: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김금희 소설에 관해 적으신 글이 참 좋아요. 이제껏 syo님이 사랑에 대해 쓴 글들을 모으면 책 한권 나올 것 같은데요.

syo 2021-08-05 22:59   좋아요 1 | URL
금희누나 소설이 참 좋은 관계로 읽고 나서 아무렇게나 중얼거려도 썩 괜찮나 봅니다! 추천 추천.

새파랑 2021-08-05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엄청난 읽는 책들 언제나 놀라워요~!! 좋은 일들이 많았던 겨울이 오길 바랍니다~!!
(전 사계절 다 좋았던 적이 없는거 같다는😑)

syo 2021-08-05 23:00   좋아요 1 | URL
읽다가 집어 던지는 책이 과반입니다.
읽기 시작한 책은 꼭 읽어내고 책마다 리뷰를 쓰는 님들에 비하면 저건 대단할 거 하나 없습니다.
그냥 읽는다고 써놨을 뿐인걸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8-05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오랜만에 딱복이 먹을 만하게 단 여름입니다. ㅎㅎㅎ벌써 세 박스를 사 먹는데 마지막 시킨 건 작고 덜 달아서 고구마야 하고 먹네요 ㅎㅎㅎㅎ

syo 2021-08-05 23:01   좋아요 1 | URL
제가 받은 딱복 여섯 알도 벌써 다 해치웠습니다.
일요일에 다시 대구 내려가서 뒷정리 하는 스케쥴만 아니었어도 끝물딱복을 주문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