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2011년 12월) 엔 점자도서관에도 다른 달보다는 적게 갔다.

지난 달 녹음완료한 책은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생각 버리기 연습>

글 자체는 술술 읽히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여 몸에 배이기까지는 쉽지 않은 일.

저자는 일상 생활에서 오감과 먹고,말하고,냄새맡고,보고, 자기 등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행동을 통해

'생각'을 버릴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안한다.

 

 

 

 

 

 

 

 

 

 

 

 

 

 

사람의 번뇌는 분노, 탐욕, 어리석음으로 일어난다.

 

만慢 이라는 번뇌는 자신이 좋게 평가받고 싶다고 걱정하며 조바심 내는, 프라이드에 집착하는

탐욕이라는 번뇌 중의 하나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도 있지만 그보다 더 강한 것은

자신의 주가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는 자기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다. (42쪽)

 

친절이나 충고도 함부로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는데, 가령 이런 내용이다.

우리는 내 의견은 옳고 틀리지 않다고 믿으며, 상대의 의견을 보충하고 싶어하는

견見 의 욕망에 지배당하기 쉽다. 상대에게 의견을 인정받으면 견이 자극되기 때문에,

곧 자기 의견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어진다. 평소에는 상대의 반발이 두려워 이 견의 욕망을 억누르고 지내지만,

곤란에 처한 사람을 보면 이것은 상대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오해하며 반응해 버린다. 자기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자기 의견을 마구 주장하기 시작하는데, 브레이크도 잘 듣지 않는다.

만일 상대에게  충고하고 싶어지면 냉정하게 '지금 나는 상대에게 내 의견을 강요하려는 것은 아닐까,

'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 배경에 있는 진심을 헤아려 봐야 한다.(190쪽)

 

 

동정과 걱정도 적절히 해야한다.

누군가를 불쌍한 듯이 동정할 때, 그것은 대부분 우월감에서 나오는 감정이기 쉽다는 것.

아무리 친절을 베푸고 싶다는 마음에서 걱정을 하게 되었다 해도, 막상 울거나 불안하게 되거나 감정적이 되면

고통이 생긴다. 이 고통을 번뇌의 한 종류로서 분류하자면, 분노이다. 이런 분노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반발감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걱정이란 자기 맘대로 즐기는 취미활동 같다. 진정 상대를 위한다기보다는 자기가 걱정하고

싶으니까 걱정하는 것이다. 보통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 걱정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불안과 동요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불쌍한 것은 이 사람이지, 내가 아니다,

큰일 난 사람도 이사람이지 내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걱정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다.(192쪽)

 

 

또한 나는 '선우善友'라는 말에 붙들렸다.

친구 중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둘도 없는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이 말에는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박애주의적, 위선적인 뉘앙스가 없다. 오히려 서로를 타락시키는 관계, 서로의 번뇌를 증가시키는 관계,

자신의 등급을 낮추는 관계는 멀리하라는 불교의 가르침과 통한다. 등급이 떨어진다는 건 그 사람과 사귀면 왠지

마음이 더러워지는 기분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함께 있으면 마음이 온화하게 맑아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법칙을 인간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것에 적용시킨다.

행동할 때에도 이야기할 때에도 마음의 중심에서 어떤 것을 생각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

만일 마음을 더럽히는 말이나 생각을 하고 있아든 걸 깨달았다면, 그 생각을 차단해야 한다.

마음을 더럽히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 행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계戒' 로서, 모든 일의 기준이 되는 법칙이자 룰이다.

계는 사고, 말, 행동의 규율로서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198쪽)

 

 

 

책의 부록에 류노스케 스님과 일본의 뇌과학자 이케가야 유우지와 나누는 대담이 흥미롭다.

뇌의 기본을 이루는 건 '고통' 이라는 것.

불교에서는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모든 것은 고통'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뇌에는 고통을 쾌락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고통이 반복되거나 가중되면 쾌락으로 인식하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분노나 질투의 감정도 그 자체로 번뇌가 양산되어 고통이지만 그것이 시작되면

뇌는 그 자극을 쾌락으로 받아들여 우리는 그 감정의 표현을 멈추지 못한다.

사람의 뇌는 '고통'을 기본으로 해도 쾌락을 느끼는 신경회로 '보수계'가 있다고 뇌과학자가 말한다.

 

 

생각버리기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번뇌를 증폭하는 소란스러운 생각을 침묵시켜 차단하라는 말이다.

침묵은 입술만이 아니라 생각 즉 뇌의 침묵,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휴식을 말하는 것으로 나는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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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1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곤조곤 들려주는 목소리로
책을 읽는 분들은
무척 즐겁겠어요..

프레이야 2012-01-13 09:44   좋아요 0 | URL
네, 그분들보다 제가 더 즐거울 겁니다.
최대한 편안하게 들려야 좋은데 때론 혀가 꼬여 신경쓰다보면
발음이 딱딱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악영향, 영웅 같은 단어를 문장 안에서 빨리 발음할 때요.^^

혜덕화 2012-01-1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이케 류노스케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사실 신문에서 이 스님의 책을 광고하는 것을 여러 번 봤지만,마음 속에 늘 작용하는 분별심이 있었어요.
사진으로 보기에 너무 젊어보이는 스니이라, 이렇게 젊은 청년이 뭐~~하는 마음이 있었답니다.
먼저 읽은 후배도, 뻔한 소리만 적혀있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었어요.
하지만 우연히 도서실에서 이 책을 읽고 사진을 다시 보았답니다.
깨달음이란 나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구요.
남편에게도 권했더니, 후배랑 같은 평을 하더군요.
내 마음의 어떤 파장이 이 스님의 글과 공명했었나봐요.
버리고 사는 연습도 참 좋아요.
침묵 입문 새로 나와서 주문해 놓았답니다.


프레이야 2012-01-12 21:13   좋아요 0 | URL
역시 혜덕화님 그러시군요.
저도 저 책을 예전에 오프라인 대형서점에서 대충 볼 땐 그저 뻔한 말이거니 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그 뻔한 소리를 뻔하게 말도 못하는 우리가 아닌가 싶었어요.
몸에 배이기엔 더 훈련이 필요하구요. 깨달음과 성장과 인격은 나이와 정비례하는 게
절대 아니구나, 동감입니다. 그리고 역시 책도 그 파장이 내게 이상하게도 인연처럼
와닿는 때가 있어요. 이 책도 제가 작년 11월 말에 스스로 고른 것이거든요.
제 마음이 시킨 것이지요. '침묵 입문'은 류노스케 스님의 신간인가 봐요. 찾아봐야지^^

hnine 2012-01-1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던 그 침묵이 아니었군요.
침묵시켜 차단하라...저도 얼마전에 마음의 칸막이를 잘 해야한다는 글을 읽고 올린 적 있는데 비슷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제가 잘 알지도 못하지만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 평안해지기 때문인데 그게 위에 말씀하신 뇌의 신경회로 '보수계'때문일까요? 처음 듣는 얘기이긴 하지만 뇌에 대해서는 워낙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누구도 맞다, 틀리다 자신있게 말할 수 없으니 저는 일단 믿으렵니다.

프레이야 2012-01-12 21:19   좋아요 0 | URL
뇌는 어떻게 보면 좀 모자라기도 한 것 같아요. 착각을 자주 하니까요.
쾌락을 받아들이는 보수계가 있는 건 분명한데 착각을 잘 하니까요.
웃음도 일종의 그런 착각이에요. 입꼬리를 올려만 주어도 뇌는 쾌락을 느낀대요.
재미있게도 이런 말이 있더군요.. 웃다가 죽는다고, 포복절도도 생리학적으로는
뇌에 자극을 주는 것인데 어떤 종류의 자극은 일종의 고통이고 그걸 뇌는 쾌락으로 느낀다는..
뭐 그런 내용. 그러니 우리가 웃는 이유는 우리가 슬픈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하자는 말도 다 그런 것이겠죠.
베르베르의 <웃음>에도 이런 얘기가 있어요. 베르베르도 뇌에 무지하게 관심이 많잖아요.^^
아무튼 류노스케 스님은 자극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웃음보다 늘 미소를 권하더군요.
미소~~

페크pek0501 2012-01-1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은 자신의 불안과 동요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불쌍한 것은 이 사람이지, 내가 아니다,
큰일 난 사람도 이사람이지 내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걱정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다.(192쪽) - 이거였어요? 음~ 중요한 걸 배워 갑니다. ㅋ

인간의 마음이란 역시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 같군요. 11번째 추천을 누르고 퇴장합니다.


프레이야 2012-01-13 19:41   좋아요 0 | URL
페크님 인간의 마음과 뇌, 어떤 주종관계일지도 궁금해요.^^
뇌가 마음을 움직이는 건지 마음이 뇌를 움직이는 건지.
추천 감사해요^^

카스피 2012-01-13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좋은 글이네요.잘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12-01-13 19:42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새해 처음 뵈어요.
복 많이 받으세요.^^

비로그인 2012-01-1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善友가 많아서 좋아요. 배울 것 많고 자극이 되는 분들이요.

서재 윗부분 책장의 책 열다섯권 중에 다섯권은 제가 최근 읽고 좋았던 (혹은 사놓고 아직 끝내지 못한...) 책들이군요. 괜시리 흐뭇해하는 중이에요.

어느 새 그림자가 길어지고 황금빛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는 늦은 오후네요. 할 일은 많은데 종일 책상 머리에 앉아있었더니 밖에 나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프레이야 2012-01-13 19:4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선우가 되어야할텐데요. 다섯권이나 ^^
만치님, 늦은 오후에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셨어요?
지금은 완전히 어두워졌어요. 감기조심하세요~~

2012-01-13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1-13 21:00   좋아요 0 | URL
언니, 근데 제 서재 오른쪽 사이드바에는 일반형으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다보니 이상야릇하게 되어서 도저히 수정이 안 돼요.ㅠㅠ
모야모야 완전 어리버리ㅎㅎ

2012-01-14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4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2-01-15 22:27   좋아요 0 | URL
하하 언니 덕분에 해결이 되었군요,,,지붕에도 하나 만들어요,,,그래야 더 많이 볼텐데..

프레이야 2012-01-15 23:50   좋아요 0 | URL
나비님, 지붕에 해놓은 게 어떡하다보니 왕창 날아갔어요. ㅠㅠ
 

 

2012년 처음으로 녹음하게 된 책은 회원신청도서다.

점자도서관 책꽂이에 썩 내키는 책이 없어 내가 갖고 있는 <일곱번째 파도>를 녹음할 예정이었는데

지난 주에 가니까 팀장이 작은 책 한 권을 내밀며 한 분이 꼭 내가 녹음하는 걸로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거다.

내가 녹음한 시디를 몇 장이나 구입하기도 한 분이라며.

신년부터 이렇게 감사할 데가... 조용히 그냥 하는 일이라 이런 말을 들으면 보람있다.

그리고 이 책이 새해부터 내게 온 인연에 기쁘다.

 

범우사에서 나온 김일엽 스님의 에세이 <청춘을 불사르고>

검색해보니 알라딘에는 이미지가 없어 김영사에서 새로 나온 이걸로 대체.

 

  김일엽(1896-1971)

 평남 용강 출생으로 본명은 원주.

이화학당과 이화전문, 일본 도쿄 영화학교 수료 후, <신여자> 창간, 주간을 지내며 여성운동을 제창,

왕성한 문필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8년 입산, 수도생활에 정진하다 1971년 열반.

 

간단하 저자 소개와 사진으로 나는 김일엽이 여승인 줄 알게 되었다.

초판은 1976년, 내가 녹음한 건 2004년 3판 1쇄.

 

일엽스님은 기독교 목사 아버지와 진보적인 어머니 슬하에서 불행한 유년을 보냈지만 어머니의 신교육관 덕에

당시 여자의 몸으로 배움의 길을 걸었고 여성운동을 제창했다. 나혜석도 동지였다. 윤심덕과의 두 번의 악연도 나온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회고록 <청춘을 불사르고>는 1962년 문선각에서 처음 간행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낭독하기에 상당히 긴 문장이 많았지만 대체로 문장에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솔직한 회고의 진술과 깨달음과 진심.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글에서는 울컥했고 실패한 사랑과 결혼, 세속 극복의 글에서는 연민이 짙게 일었다.

 

제목 '청춘을 불사르고'(1962)에는 "다 버려야 우주화한 인간이 된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내가 나를 임의로 쓰게되는 나, 내 정신과 영혼, 내가 하는 말을 내 맘대로 운용할 수 있는 존재라야 귀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 스님은 내가 임의로 쓰게 되는 나는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나, 네 나도 내 나도 아닌 공동적인 나,

너라는 대상이 끊어진 절대적인 나, 일체 우주와 온갖 존재가 하나화한 나를 증득하여 운용하게 되는 인간이라야

귀한 인간이라고 썼다.

 

"나도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자신만 누구나 가지면 절대 평등권적 생인 까닭에 반드시 인간이 됩니다.

생은 길지만 일은 시한적이니, 이 일에 지향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아니 살 수 없는 영원에서 영원을

이어갈 현실 생활입니다. 死前 일, 즉 반드시 현실 생활의 채비가 먼저 돼야할 것이 아닙니까.

이름커녕 몸과 마음까지 사라져야 할 이 중은 아직 청춘[小我]을 불사르는 중이니만큼 존재를 보존하고 알릴 만한

인간이 못 됩니다. 합장"(91쪽)

 

 

스님은 청춘을 '소아'로 보았다. 사람의 일생이 기나긴 배움과 깨달음의 여정이라면 소아, 즉 청춘을 불살라 버리고

우주화한 인간이 된다는 건 어떤 경지일까. 이 글을 쓴 당시 입산한 지 30년이 넘은 스님이건만 청춘(소아)를 불사르는

중에 있었으니 하물며 우리 같은 속세의 범인들이야 청춘을 불사르기나 할 수 있을까.

죽기 전, 그러니까 사는 내내 우리는 청춘(소아)이라는 태명과 멍에를 지고 사는 셈,  

그걸 다 불살라 버린 후에야 대우주의 품에 안길 수 있겠으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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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1-1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분 알아요.
그냥은 몰랐었는데, 나혜석과 윤심덕과의 악연이란 부분에서 기억이 났어요.

암튼 프레이야님 목소리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짐작하고 상상하는 그 목소리가 맞는지...
언젠가 듣게 될 날이 있겠죠?^^

프레이야 2012-01-11 20:50   좋아요 0 | URL
어이쿵 제 목소리는 그저그래요. 듣고 실망하실라..
마이크 대고 녹음하는 거라 좀 가다듬어 하지요.^^

나혜석은 동지였고, 윤심덕과 얽힌 에피소드는 일엽에게 깨우침을 준 사건이더군요.
배움의 열망에 차올라있었던 유년에 윤심덕이 학교 가는 걸 보고 무작정 따라가 윤심덕의 추천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그후 심덕이 두번의 거짓말로 일엽을 대단히 골탕먹인 사건이었어요.
심덕은 생활력이 강하고 '지나치게 발랄하고' '어쨌든 대단한' 여성이라고 표현했더군요.
정인과 현해탄에 몸을 던진 일도 마뜩지않게 표현하고요.

책읽는나무 2012-01-1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직접 읽어 녹음하시는거에요?
오~~
저도 들어보고 싶네요.^^
지금 막 상상하게 되네요~~

프레이야 2012-01-11 20:51   좋아요 0 | URL
들으시면 별로일걸요.^^

hnine 2012-01-1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청춘을 불사르고'를 낭독하시는군요.
자그마치 중학교때 국어 시간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그러면서 지금까지 못읽고 있는 책이랍니다 ㅠㅠ

프레이야 2012-01-11 20:51   좋아요 0 | URL
전 학생 때 왜 전혀 몰랐을까요? ㅎㅎ
범우문고라 이틀만에 끝냈어요.

라로 2012-01-1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김일엽스님에 대해 얘기 많이 들었는데
정작 그분의 책은 찾아 읽지 못했네요,,
지금 찾아보니 절판이에요.ㅠㅠ
재출간신청은 했지만 가능한건지,,
저희 동네 도서관에 찾아보고 없으면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대출??

프레이야 2012-01-11 20:5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전 처음이에요.
이 책이 새해에 제게 온 건 정말 신의 뜻이에요. 인연이구요.
빌려드실 순 없어요. 회원이 소장하고 있던 책이라 점자도서관에 바로 돌려드려야해요.ㅠㅠ

라로 2012-01-11 23:34   좋아요 0 | URL
글쿠나,,,일단 대전에 있는 도서관에 알아봐야겠어요.
안되면 녹음하신거라도 듣고 싶다,,,ㅎㅎㅎ

숲노래 2012-01-1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책이 다시 나왔군요!
이분이 일제강점기나 해방 뒤에 쓴 글이
참 좋다고 여겼는데
요즈음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책이 있다니 반가워요.

프레이야 2012-01-11 20:59   좋아요 0 | URL
네, 정말 훌륭한 깨우침의 기록이더군요.
국문시 '동생의 죽음'은 실제 이야기인데 최초의 신체시로 배운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1년 앞질러 한국문학사상 신시의 효시라고 하더군요. 문학적으로도 대단한 분인데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재능을 더 꽃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내가 남자라면'이라는 글에는 패기가 있더군요.
 

찬란 

 

이병율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하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자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겨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찬란'이란 말은 말 그대로 찬란하다.
말에는 혀끝으로 만져지는 어떤 기운이 있다. '찬란'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오늘도 여러 말을 했지만 내가 한 말 중 마음에 드는 게 몇 없다.
시인은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고 노래했지만 내가 감정을 참지 못하는 건 찬란하지 못하다.
찬란은 그런 게 아니다. 알고 있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나쁘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어둠의 영토에서 나온 것이든 빛의 영토에서 나온 것이든 감정은 감정 그대로의 존재감이 있다.
나는 나의 감정들이 소중하다. 화가 나도 헛헛해도 속이 상해도 암담해도
그런 감정들 하나하나는 나의 일부분이고 나 자체이기도 하다.
하나의 길 위에 있는 크고 작은 돌멩이와 높고 낮은 풀꽃처럼 나는 그런 것들이 소중하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기 시작하는 순간 감정은 악마의 흉상을 한다.
감정이 나를 휘감고 휘돌리고 짓누르기 시작하면 나는 한동안 어쩔 도리가 없다.
감정은 내가 다스려야 하는 대상인데 주객이 전도되었다.  어리석게도.


감정코칭 전문가, 함규정 님의 이 책은 쉽고 간결하면서도 꽤 유용하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팁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책을 이틀 만에 녹음완료 했다.

대개의 부정적인 감정, 두려움, 분노, 열등감, 그리고
쿨함(이게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감정이란 점에 주목하라)  등을 포함해
'다 잘 될거야' 같은 매사 긍정적이기만 한 감정의 실체와 분석, 극복의 처방전까지
일목요연하다. 이런 책은 해당되는 장을 펼쳐 보는 것도 괜찮은 독서법일 터.
김형경의 <사람풍경>에서 문학적 향기를 뺀, 좀더 간단하고 실용적인 책으로 보면 될 듯. 구입하지 않고 빌려서 읽고 필요한 부분만 메모해도 무방할 듯.
하지만 직장인이 아니어도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유효적절한 내용이 많다.
특히, 쿨함을 가장해 인간관계를 망치고 자신 내면의 열정을 기만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지적하는 장이라든가, 화가 날 때 어떻게 그것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영리한 반응을 말로 드러내보일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사례가 잘 나와 있다.
감정은 건강과도 밀접하다. 예를 들어 분노는 심장을 상하게 한다. 하지만 지나친 쿨함은 상대로 하여금 솔직한 친근감을 상하게 해 상대로 하여금 거리감을 만들게 하고 좋아질 수 있는 관계를 망친다. 쿨함의 정체는 '솔직하지 못함'이다. 그 근거가 두려움이든 수줍음이든 자기방어이든.


또한, 직장인을 상대로 일주일간 내게 일어났던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라고 시켰더니
단 한두 가지의 말로밖에 표현 안 하더라는 실례는 놀랍다.
일주일간 우리가 느꼈던 감정들이 과연 한두가지였을까.
다양하고 다채로운 감정을 구체적으로 느꼈을 텐데 실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내면에 일어났던 긍정적, 부정적 감정들을 스스로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대접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오늘 내가 느꼈던 감정부터 열거해보고 싶어진다. 가령,
설렘, 불안, 안심, 따뜻함, 유머, 사랑스러움, 분노, 미움, 이해, 증오, 미안함, 다시 미움, 이해안됨, 헛헛함, 허기, 욕망, 욕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심정, 다시 그리움, 미움, 섭섭함, 분함, 억울함, 바보같다는 생각, 양보 그리고 갈망.


책의 요지는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 일을 그르치니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주변에 감정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 감정이 일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내 감정을 다스리는 훌륭한 도구로 여기고 감정 다스리기를 연마하라는 살뜰한 조언.
그 대상을 이겨내고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인생의 승자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
지당하다. 내 감정을 송두리째 흔들고 교란하고 조종하려는 대상을 이겨냈을 때 난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것! 


또 한가지, 감정은 얼굴에 드러난다고 알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말도 감정을 드러내는 방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굴을 짓는 대로 감정도 따라오고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감정도 따라붙는다는 사실!
웃으면 기쁜 감정이 따라오고 좋은 말을 뱉으면 그런 감정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제일 와닿은 팁이다.
어떤 면에선 말에, 표정에 감정도 굴복하는구나. 사람이란 이렇게 연약한 존재다. 동시에 유연한 존재다.


후속으로 녹음하고 있는 책은 <이케다 다이사쿠 명언 100선>이다. 

 개인과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저자의 깊은 통찰이 담긴 명언과 조언이
빛나는 책이다. 짧거나 다소 긴 경구들이 책의 무게와는 반비례하게 묵직하다.
이것도 내일 한 번 더 가서 마무리할 예정.

소설을 녹음하고 싶은데, 재미난 신간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 젊은날의 숲>처럼 내가 갖고 있는 책을 가져가서 해야될 형편이다.
이런 부분 지원이 참 아쉽다. 점자도서관에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부분일 텐데...
일단 이 책 다음엔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생각 버리기 연습>을 녹음하고
그 다음에 소설 한 권 해야겠다. 아마도 <일곱번째 파도>를 할 듯.
가끔 녹음하다보면 주인공 감정에 이입되어 울컥해 목소리가 떨리기도 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아무튼 '찬란'이 문제였다. 
나는 너는 모두 찬란한 존재다.  
그걸 잠시 또 잊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다.
사랑만이 찬란하다.
나도 너도
사랑할 때만이 찬란하다.
사랑하지 않으면 빈껍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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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2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찬란한 존재라는 것을,
타인에 대해서도 잊어버리고 가끔 자신에 대해서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언니, 부비부비, 빨랑 감기 나으세요.

프레이야 2011-11-28 16:55   좋아요 0 | URL
마녀님, 감기는 오늘부터 그런대로 나아지는것 같아요.
내가 보석이란 걸 자꾸 잊게 돼요. 감정에 휘둘려서요.
자존감을 잃지 않아야하는데 쉽지 않네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는 1998년 10월 열흘 남짓한 기간동안 평양의 문화유적을 답사한 후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보완 편집한 책이다. 그는 신문독자보다 책의 독자를 미더워하고 좀더 신실한 대상으로 생각했다. 신문글은 신문기사를 읽기 위해 신문을 펼치다 보게되는 글이지만, 책의 글은 유홍준의 책이다 하고 선택하여 읽게 되니 그렇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그러니 내용을 보완하고 좀더 심혈을 기울여 출간했다는 말. 책의 부제는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이다.

점자도서관 언어정보팀 팀장의 요청으로 나는 이 책 시리즈의 4권을 녹음했다. 집에도 있던 책을 미루고 있었던 차라 얼씨구나 잘 됐다 하며 즐겁게 냉큼 받았다. 얼른 읽고 싶어 금세 읽어내려갔다. 저자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묻어나는 문장이 쉽게 술술 읽혔고 예화와 사진설명도 재미있었는데, 시각장애우들에게 안타까운 건 이런 시각정보를 전달해 주는 데에 한계가 있을 때다. "사진설명 있습니다"라는 코멘트와 함께 사진 아래 작은 글을 읽어주지만 그들이 사진을 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평양의 문화유적답사는 말할 것 없고 특히 재미있는 건 북한사람들의 언어습관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자연그대로의 풀내음이 난다.  남남북녀라는 말은 정말이란다. 적어도 남남은 모르겠으나 
북녀는 맞다는 말. 특히 남한의 대구에 미인이 많듯이 북한엔 평양에 미인이 많단다. 깨끗한 이미지의 여성들 사진이
정말 그래 보였다. 어느
안내원 여성에게 스타킹을 선물했더니 "살양말이로군요." 하더란 건 한 가지 예일뿐. ^^

"방향적으로 말하여..." 

이 말은 무척 특이하고 재미나다. 우리말에 요즘 사람들이 잘 쓰는 말 중 '사실은' 이라든지 '솔직히 말해서'라든지 이런말보다
얼마나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그럼 여태 말한 건 사실도 아니고 솔직히 말한 거도 아니란 말이냐? 말은 중요하다.

 
   
  용강 선생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방향적으로 말하여, 유적유물을 학술적으로 조사하고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최선, 최대로 보장하겠습니다."

북한의 말은 이처럼 우리와 단어사용법이 많이 달랐다. 순한글용어 못지않게 한자어를 이용한 조어도 많았다.
특히 '적(的)'이라는 접미사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방향적으로 말한다'는 표현이 꽤 자주 쓰였다. 

(중략)

" ...... 방향적으로 말해서, 교수 선생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민족통일에 도움이 되는 글을 써주십시오.
호상화해가 시작되는 단초가 되는 글을 남겨주십시오. 사실 통일이 별거겠습니까. 이렇게 만나다보면 통일이 자연
되는 것이죠. 교수 선생도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순간 나는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듯 아찔했다. 내 어깨에 지워진 무게가 벌써 힙겹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비장한 주문에 답해야만 했다. 나는 꼭 한마디만 했다.

"방향적으로 말해서, 나는 있는 대로 보고 느낀 대로 쓸 것입니다."
 

(37 - 38쪽)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방향'이란 말에 다시 붙들렸다.
얼마전 '북촌방향'을 보고 '방향'에 붙들렸던 기억이 다시 인다.
방향을 떠올리면 나침반이 생각나고 출발지가 생각난다.  
무방향도 방향이라고 자조할 수 있을까.

'방향적'이라고 할 때 '적'은 과녁 的이다.
나는 지금 어떤 과녁을 향해 눈을 두고 몸을 두고 마음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나의 방향은?  나의 노선은?
방향적으로 말할 수 있는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나아가고 있을까. 여전히?

  

<브리다> 1차 편집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새 책 녹음하려고 찜해 둔 건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다.
시작하려했더니 또 다른 회원신청도서를 주신다. 공파 스님이 역해한 <바이로차나 2> 불교관련서적이다.
마음공부 많이 하라고 이런 책이 내게 자주 들어오나보다. 이 분은 전에도 내게 <신심명 강의>를 읽게 하시더니.^^
아무튼 다 좋다. 방향적으로 말해서(^^) 나는 잡념을 잊고 집중해 읽으며 녹음하는 순간 행복하다.
얼른 신청도서부터 녹음하고 내가 찜한 책으로 ~~   

그나저나 크롬바커 맥주 좋으네. 내 입맛에 딱이다. 진하고 애두르지 않고 정직한 맛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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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회원신청도서로 '복음전도'를 녹음했다.
저자는 Ellen G. White 라는 미국 여류전도사. 백년 전의 사람이고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의 글을 모은 것.
1, 2 권 중 내가 1권을 하고 다른 봉사자가 2권을 맡았다.
아마 전도나 목회활동을 시작하는 회원이거나 그런 활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회원일 거라 생각한다.
읽다보니 기독교 복음전도서 쯤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이단(나는 잘 모르겠다, 사실) 교파의 확장과 그 목회 활동을 위한 구체적 지침서였다.
그 사업의 확장과 활동을 위한 상세한 충고와 방법이 명료한 문체로 항목별로 적혀있었다.
이름하며,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나는 기독교 세례를 (어쩔 수 없었지만) 받았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는 사람이지만
이 책이 이단의 활동을 위한 책이라 해도 내용상으로 전혀 이상하거나 거부감이 이는 부분은 없었다.
내가 독실한 크리스찬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우리가 갖는 편견이나 선입견 중 종교에 대한 게 비일비재한데,
사실 이단이니 정통이니 이런 부분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니 뭐라 말하지 못하겠다.

오늘 '복음전도'를 마무리하고 전부터 찜해뒀던 책, 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를 시작했다.
실제로 순례길에 올라 만났던 젊은 여인 브리다의 영적체험의 과정을 글로 옮긴 것인데
'서序' 에서 저자가 옮긴 작자 미상의 글!  아래..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삶에서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건물을 세우거나, 혹은 정원을 일구거나.
건물을 세우는 사람들은 그 일에 몇 년이라는 세월을 바치기도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그 일을 끝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쌓아올린 벽 안에 갇히게 됩니다.
건물을 세우는 일이 끝나면, 그 삶은 의미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원을 일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몰아치는 폭풍우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계절에 맞서 늘 고생하고 쉴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건물과는 달리 정원은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또한 정원은 그것을 일구는 사람의 관심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의 삶에 위대한 모험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정원을 일구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봅니다.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 한 포기 한 포기의 역사 속에 온 세상의 성장이 깃들어 있음을. 

 

나는 지금 정원을 일구고 가꾸며 살고 있는지...
그 안에 들어앉을 건물 하나도 세우지 못하는 꼴은 아닌지...
살면 살수록 안개속 미로이거나 구름속.
내딛는 발이 한 길 낭떠러지일지도 모를 길을 눈 가리고 가는 셈.

한낮엔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그래서 시원한 녹음실 안이 더없이 좋지만,
요즘 햇살은 아직 따가워도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이 확연히 다르다.
바람은 늘 먼저 마중 나와 기다리고 나중까지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어주는 좋은 사람 같다.

낮게 저물어가는 해거름, 정은아의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백일홍의 백일동안 붉은 꽃잎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늦여름 어딜 가도 어여쁜 붉음을 꽃피우고 있는 백일홍은 매끄러운 줄기를 한 배롱나무에 피는 꽃.
백일홍이 백일을 붉게 피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백일동안 쉼없이 지고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성장하고 가꾸는
가녀린 꽃잎들의 열정이 있어서라 한다.
그네들은 죽고 살고를 반복하며 거듭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줄곧 피어있는 그네보다 졌다가 더 활짝 더 붉게 더 빛나게 피어나는 그네들이 더욱 아름답다.
백일 후면 또 내년을 기약한다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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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8-30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롱나무에 피는 꽃이 백일홍이라는 것을 지금 막 알았어요. 아, 그렇군요. 프레이야님, 정말 여기는 너무 습하고 더워요. 지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그런 요즈음입니다. 저의 탐색은 언제쯤 끝날까요? 죽기 전에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세워 보고 싶은데.

프레이야 2011-08-30 23:37   좋아요 0 | URL
요즘 곳곳에 백일홍이 붉그레하니 참 이뻐요. 파아란 하늘과 대조되어 더욱이요.
9월에 늦더위가 온다는데 재무장해야할까요? 더운 걸 점점 더 못 견디겠으니 말에요.
세우지 말고 일구라고 하네요. 전 세우지도 일구지도 못한 것 같은데..
그 어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또 욕심일 수도 있으니
흐르면 흐르는 대로 피면 피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따라갈까요? ^^
근데 배롱나무는 줄기를 만지면 부드럽고 매끈한 느낌이 참 좋아요.

마녀고양이 2011-08-3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오늘 된장님 서재에서 읽었는데요
백일을 우리 말로 '온날'이라고 할 수 있대요. 그래서 백일떡을 온날떡이라 하시더라구요. 이쁘죠.

온날 후면 또 내년을 기약한다해도.. 으아, 여기서 내년이랑 기약이 또 걸리넹. ㅠㅠ

건물이라도 지으면 어디래요, 정원은 커녕 건물 하나 못 짓고 그냥 나자빠져있는 사람이 되는게 아닐까 걱정인걸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요, 언니두 그러셨으면. 방금 장터에서요,
포도 한박스, 전어 12마리, 어묵 두봉지, 묵국수, 찐 옥수수를 사왔어요! 맛있겠죠! ^^

프레이야 2011-08-31 20:58   좋아요 0 | URL
맥주 한 캔 하고 있는데 목소리 들어 기분 참 좋아요.
그리고 참 고마워요, 글썽~
늘 위로가 되어주셔서 언니인 제가 부끄러워요.
오늘따라 장터에서 산 목록들이 왜 이케 정겹대요.
찐 옥수수, 제겐 상처가 있는 음식이에요. 또 이런다..ㅋ

양철나무꾼 2011-08-3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의미있는 일에 짐착하다 보면 좀 슬퍼지려고 해요.
전, 건물도 세울 수 없을 뿐더러 정원을 가꿀 재주도 없거든요.

그냥 추위와 더위를 피할 집이 있구나,
꽃을 보고 예쁘다고 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구나,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살려구요~^^

프레이야 2011-08-31 20:5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하루 감사할 것들을 지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화 안 내기로 결심한지 작심하루, 오늘 또 화 아니 어쩌면 설움이 치밀어 표현하고 말았어요.
반성중이에요. 후회도 되구요. 자꾸 이러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늘 긍정과 성찰로 '어른답게' 사는(제겐 그래 보여요) 양철님, 고마워요.

yamoo 2011-08-3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브리다닷! 우어어어~~~코엘료의 책들을 얼렁 사야하는데...ㅜㅜ
사는 건 둘째치고 언제 읽지??

정원을 일구는 삶은 낭만적인거 같아요...전 게을러 터져서 그런 일은 엄두도 못넵니다만..

프레이야님 낭만적이세요~^^

프레이야 2011-08-31 21:02   좋아요 0 | URL
저도 게으르니스트라 엄두 못내지만, 정원 일구는 삶은 낭만적이기보다
성찰과 노력과 배려와 열정이 있어야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일 것 같아요.
현실적이란 말은 여기서 긍정적 의미로요.
자신과 타인의 내적성장을 멈추지 않는 삶일 테니까요.
'브리다'의 저 표지 속 여인 뒷태가 너무 아름답지요.^^
드레스 색상도 너무 마음에 들어요. 올리브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