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시작하여 연초까지 15시간 좀 넘는 시간동안 이 책을 녹음완료했고,

편집을 미뤄두고 있다가이제야 1차 편집, 중반을 넘어 가고 있다.

편집교정을 하며 일독을 더 하게 되니 나로선 감사하고 느껍다.

 

물만두 홍윤님의 깊고 진실된 사유와 마음씀, 쉽지 않은 생을 끌어안는 사랑과 여유, 재치와 유머,

무엇보다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때로는 가슴앓이하며 솔직한 토로를 하는 글귀가 마음을 울린다.

입이 점점 작아진 그녀에게 음식을 잘게 잘라 입에 넣어주는 만순이에 대해 고마움을 쓴 대목도.

 

어쩌면 나는 생을 거죽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때때로 약간의 자괴감이 엄습하는 순간

이런 글귀를 만나게 되는 건 작지 않은 선물이다.

그녀만큼 생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다 간 사람이 또 있을까싶을 정도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돌림노래라도 불러야 할 터다.

 

 

함께 나이들어가는 여고 친구들이랑 이 도시의 오래된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돌아다니다

지름신 강림하여 옷도 몇 점 사고 튀김이랑 어묵에 뜨거운 국물 훌훌~ 이래저래 사람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다녔다.

학창시절 가늘었던 몸은 다 어딜 가고 적당히 살집이 붙은 우리는 너스레도 떨 줄 알고 깎아달란 소리도 잘도 한다.

그래도 나는 체구가 작은 편이다보니 사이즈가 상대적으로 작은데 걔들 앞에선 군살 붙었다 소리하면 엄살이라고 퉁 먹는다.

그래 봄날이다, 지금이!

 

계절이 선택의 여지 없이 가고 또 다가오듯, 물만두님의 글귀대로 '삶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 것 같다.

한때는 내가 선택해서 살아왔다고 착각했지만 돌아서 생각해보면 그 반대가 아닌가.

무언가 물밀듯 밀려오고 밀려가는 느낌. 강물에 흘러가는 꽃잎처럼 살자.

어제 도서관 입구에서 보았다, 백목련화 꽃봉오리들. 

입을 앙다물고 야심차게 열릴 희열의 순간을 예고하며 단단하게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었다.

폰카메라로 그걸 담고는, 어느 순간 열렸다 화르르 닫힐 그네들의 뽀얀 이파리를 동시에 떠올렸다.

눈물이 새큰 났다. 하늘이 너무 새파래서만은 아니지.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그 입장이 되어 보면 또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 그냥 살자. 어떤 삶이 더 낫다, 못하다 저울질 말고 그저 내 삶이 제일이려니 생각하고 살자.

누구든 살며넛 남보다 우위에 놓이길 원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게 그리 중요한가.

내 삶은 이생에서 단 한 번뿐이고, 그 삶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스스로가 아름답게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중략)

살아 있어서 좋다는 건, 백 번의 불행이 닥쳐와도 단 한 번의 행복이 그 백 번의 불행보다 찬란하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 해피데이'라고 하는 건가.

(별 다섯 인생, p175)

 

세상에는 열 가지 보따리가 있다. 그 중 아홉은 불행 보따리고 나머지 하나만 행복 보따리다.

아홉에 얽매일 것인가. 하나에 기뻐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별 다섯 인생, p184)

 

 

 

인터넷의 폐해도 크고 단점도 많지만 물만두님에겐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

거의 전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하다시피 한 창구가 인터넷, 특히 알라딘이었다는 건

이 책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누구의 세상이든 그 세상을,

누구라서 좁다고 허튼 거라고 쉽사리 말할 수 있겠나.

수족관 물고기들에겐 그 크지 않은 세상이 세상의 전부이고

화분 속의 꽃은 그 얕은 세상이 세상의 전부이듯,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세상의 전부일 테다.

루미의 말처럼 우리는 거울에 비친 얼굴이면서 동시에 거울 자체이기도 하다.

행위자이자 관찰자로서 '나'는 생이 몰아가는대로 일희일비 하지 말고

상하좌우 돌고도는 어지러운 바퀴살이 아니라 바퀴의 굴대, 중심에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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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2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희일비 하지 말고...
이 글에 다 동의해요 다...

프레이야 2012-03-28 22:04   좋아요 0 | URL
어쩌면 사람이니 일희일비 하겠지만, 그러지 않고 마음 가운데 중심을 잃지 않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인님, 그치만 전 그게 쉽지 않네요.

같은하늘 2012-03-2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 거울에 비춰진 제 모습을 보다 머리 꼭대기의 늘어가는 흰머리를 슬퍼했는데...
그것마저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인거지요? ^^

프레이야 2012-03-28 22:05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벌써 흰색이요? ㅎㅎ
네네 감사하며 살자구요. 살아있다는 증거, 건강하다는 증거랄까 =3=3=3

꼬마요정 2012-03-2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이 그리워지네요... 삶은 그 삶 자체로 아름다운거지요. 잊고 사는 진리라서 안타깝습니다.
봄이 오니 봄을 타야겠어요..^^

프레이야 2012-03-28 22:06   좋아요 0 | URL
그죠? 꼬마요정님. 물만두님의 진솔한 글을 읽으며 새삼 잊고 지내는 걸 생각해보게 되어요.
봄도 좀 타볼까요? 앙다물고 있던 백목련이 이틀새 입을 조금 열었더군요. 하늘 향해..

하늘바람 2012-03-2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음하시면서 울진 않으셨어요?
전 이책 있는데 잘 못 읽겠어요

프레이야 2012-03-28 22:07   좋아요 0 | URL
히힛 웃다가 울다가 또 웃다가 그랬어요.
만두님은 참 유쾌하고 사려깊은 분이에요. 하늘바람님 글귀도 읽었지요.

2012-03-3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라는 말이 왠지 위로가 됩니다. / 글이 애잔하고도 좋아요. 물만두님 책도 읽어야겠다 생각이 들고요....

프레이야 2012-03-31 22:00   좋아요 0 | URL
정말 그 말이 위로가 되지요. 순응하고 받아들여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라즈니쉬의 사상에 심취한 어느 회원 신청도서로 몇 년 간

오쇼의 책을 다섯 권째인가 만나고 있다. 나도 흔쾌히.^^

이 책은 오쇼가 실제 만난 스승도 있지만 영혼으로 진리로 만나 소중한 가르침을

받은 스승과의 위대한 만남을 독자에게 전해 준다. 주로 그들의 사상과 일화 중심이고

문체는 쉽고 그리 딱딱하지 않다. 무조건 그들의 사상에 동조한다기보다, 예를 들어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경우는 오쇼 자신과 조금은 다른 면,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이야기하며 그런 배경이 되었던 신지학파(신지협회는 어린 크리슈나무르티를 억압적으로

키웠다)의 불합리한 면도 이야기하며 적절한 이해를 제시한다.

총 368쪽의 책, 3월 8일 시작해 여태 15시간 소요하여 277쪽까지 녹음한 상태.

이변이 없다면 다음 주쯤 이 책 마치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화차>를 녹음 시작할 거다.

화차, 팀장의 승인은 받아놓았다.

 

 

 

 

보디달마에서 소크라테스까지 모두 20장, 20명과의 위대한 만남을 장별로 펼치는데, 13장 노자에 대한 이야기 중,

언어의 장막과 침묵의 가치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침묵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갑작스런 침묵을 당혹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말로 소통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짐들을 덜어내기도 한다.

어쩌면 말을 통해서는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말로 소통을 '피하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자신의 주위에 언어라는 장막을 쳐서 속내를 감추기도 한다는 것이다.

(251p)

 

 

말은 소통을 위한 게 아니라 소통을 '피하기 위한', 때로는 속내를 감추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쓸데없는 말, 앞뒤가 맞지 않는 허튼 말, 고요와 침묵을 즐기고 있는 순간을 방해하는 허황된 말, 아니  소음.

바보같고 어리석고 잡스러운 말로 마음을 혼란하게 하고 정신을 흐트려뜨려, 위기를 모면하고 얼렁뚱땅 불리한 상황을

넘기려 한 적은 없는지. 말은, 언어는 상대를 위한 배려의 수단이어야 함에도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고 속내를 감추고

위선을 위한 너스레로 자신을 위한 방어벽을 만든다. 이것이 악질인 까댥은, 이로 인해 결국은 말이란 게

마음과 마음이 본질로 닿지 못하는, 불통의 수단이 되고 만다는 데 있다.

간단히 말해, 정작 하고싶고 듣고싶은 말은 세상에 나올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일화는 이렇다.

90년 동안 말하고 쓰는 걸 거부하며 살아온 노자는 이웃과 함께 먼 거리를 산책하는 일을 여러 해 동안 해왔다.

둘은 어떤 말도 허용하지 않았고 아침 인사조차도 수다가 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이웃의 손님이 찾아와 셋이 함께 산책을 하게 된다.

둘의 침묵이 불편해져 마음이 무거워진 그 손님은 자신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이 느껴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동쪽에서 해가 떠올랐고 자신도 모르게

"보세요! 저기 떠오르는 해가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정말 아름다운 아침이네요!" 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손님이 말한 건 그뿐이었고 손님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산책에서 돌아온 노자는 이웃에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손님을 데리고 오지 마시오. 수다쟁이는 더 이상 오지 마시오. 말이 너무 많아요.

그것도 쓸데없는 말이. 내가 눈이 없소? 내가 떠오르는 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기나 한단 말이오?

무얼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어떤 저술도 꺼리고 침묵 속에 살아온 노자는 90살에 제자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난 히말라야로 떠난다. 거기서 죽고 싶다.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도 좋았고 세상 속에서 너희들과 함께 한 것도

좋았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올 때는 완전한 홀로 있음 속으로 들어가, 세상에 물들지 않은 절대 순수와 고독의 근원으로

향하는 것이 좋다."

 

국경을 넘다 그곳에서 노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수비대원에게 3일 감금 당해(제자는 스승의 저술을 바랐기에) 쓴

유일한 저술이 <도덕경>이라고 한다.

3일만에 완성한 노자의 책,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은 이렇다.

 

- 道를 道라 하면 참된 道가 아니다.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진리가 될 수 없다'는 뜻. 몸소 경험하고 체화된 것만이 진리라는 말이다.

진리는 굳이 말로 할 필요도 말로 되어질 수도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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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3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프레야님은 도서관에 근무하시나 봅니다. 누군가의 취향에 따른 연속성있는 신청도서를 함께 공유하다니, 그것도 그 사람 몰래... 어쩐지 멋져요~^^
저 책 잼있겠는데요? 노자이야기, 침묵에 대한 인용구 흥미롭게 잘 전해듣고 갑니다. 그나저나 도덕경 진짜 좋아요~~~.

프레이야 2012-03-23 21:08   좋아요 0 | URL
시각장애우를 위한 자원봉사랍니다^^ 제가 좋아 즐겁게 하는 일이에요.
섬님, 저는 아직 도덕경을 제대로 읽어보질 못했어요. 제대로 읽어봐야겠어요.
우리가 하는 쓸데없고 시끄러운 말에 대한 저 인용구, 정말 뜨끔하지 않나요? ㅠ

하늘바람 2012-03-2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그리고 멋지게 하시는 자원봉사 그리고 무엇보다 님과 너무 잘 어울려요

프레이야 2012-03-25 14:19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일만 실컷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보다 싫은 걸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더 좋은 거지만..

2012-03-24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5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4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4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5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3-2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침묵이 금이다라는 말에 천번 만번 공감하지만,
그 자체가 너무 미화되는 것은 안 될 일 같아요... 저는 말로 소통을 하기도 소통을 피하기도 한다는 구절만큼, 말이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싶어요... 토해내야 할 것들이 있을 때, 침묵을 강요한다는 것은 형벌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을, 최근에 만나는 내담자를 통해서 느끼고 있답니다. 토해내야 느낄 수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 고요 속의 일몰, 너무나 탐나는 광경이네요. 저야 워낙 침묵을 좋아하고 불편해하지 않아서.

프레이야 2012-03-25 14:26   좋아요 0 | URL
침묵이 금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불필요한 말이 진정한 소통을 막고 이기적인 도구로
쓰일 때가 있으니 그럴 땐 참 답답해져요. 말은 뱉는 순간 듣는 자의 몫이 되는데 너무 배려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물론 뱉는 자의 마음의 짐은 덜겠지만 듣는 자에게는 어떨까 하는...
늘상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경우가 있다는.^^
마고님 조용한 일요일 좀 쉬고 있나요? 몸에 무리 가지 않게 열정도 적절히.. ^^
 

 

  한창훈이 그해 오월의 폭력과 잔인함은 물론 우리 사회 뼛속까지 밴 폭력과 욕설과 야만의 피를

거친 입담으로 풀어쓴 <꽃의 나라>는 녹음 완료했다. 간결한 문체에 대화체가 많아 속도가 더

빨랐는데 종종등장하는 욕설을 내 입으로 녹음하며 배설의 쾌감 비슷한 걸 느꼈다.

교정편집 과정에서 다시 내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떤 느낌일지...

내용과 형식, 주제와 언어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 책은 걸맞다. 작가의 의도였지싶다.

알랭 드 보통은 경계를 넘을 때 필요한 것은 언어라고 했던가.

동시에 허무하기 짝이 없는 불통의 수단이 언어이기도 하다.

몸! 험난한 시절을 관통한 고등학생 그들이든 쉽지않은 관계를 이루며 사는 우리들이든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의 동시성만이 소통의 수단이지 않을까.

그해 오월, 스스로 낸 담배빵의 뜨거운 화인을 몸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그들은 지금

과연 꽃의 나라로 건너 갔을까.

거친 내용 중에서도 상처를 갖고 논다는 시인에 대한 구절과

  상처에 대한 견해를 쓴 책뒷표지의 김경주 시인의 변이 인상적이다.

   김경주에 대한 페이퍼는 따로 쓰기로 하고...

 

 

 

<꽃의 나라>를 끝내고 윤성희의 <웃는동안>이나 미미여사의 <화차>를 녹음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회원 신청도서가 늘 우선.  이분은 오쇼 라즈니쉬에 심취한 분인데 이미 내가

녹음한 이분의 신청도서가 몇 권 된다.

<숨은 조화>와 <피타고라스 강의>를 비롯해 모두 라즈니쉬의 책이다.

 

<위대한 만남>은 '인생에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승과의' 라는 구절이 제목 앞에

부제로 달려있다. 죠셉 캠벨은 생을 영적으로 지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방편으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일을 최고로 꼽았다. 그게 안 되면 훌륭한 독서를 두번째로 권했다.

그러니 우리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스승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오쇼는 이 책에서 보디달마, 예수, 크리슈나, 니체, 소크라테스 등 모두 스무 명의 스승을

각 장으로 하여 독자에게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준다. 그들에 관해 전해오는 일화를

사이사이에 넣어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게 만남의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지금까지 다섯시간 할애하여 94쪽까지 나가있다.

                                       간혹 반복되는 문장은 거슬리기도 하지만 강조의 뜻으로 읽힌다.

 

 

 

 

 

1995년부터 월간 PAPER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황경신이 글과 사진으로 꾸민 책.

'황경신의 한뼘노트'라는 부제가 말하듯, 세련된 사진과 그의 단상들이 오밀조밀하다.

쓰윽 훑어보니 다소 자의식 과잉의 혐의가 있긴 하나, 한가지 음식만으로는 배가 차지 않는

나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마음의 공간에 슬쩍 이런 책 하나 흘려보려 한다.

장마다 날짜까지 기입해 마치 정성스레 꾸미고 기록한 누군가의 다이어리를 훔쳐보는 느낌.

누군가의 흘러가고 흘러오는 생각을 들여다보는 건 묘한 통증을 유발한다.

군데군데 문학작품 속 좋은 구절들을 인용했고 그런 부분은 밑줄긋기를 해둔 게 특이하다.

1장 불협화음에서 152장 흔들리다,까지 모두 152장의 'True Stories & Innocent Lies'.

'위대한 만남'을 마치고 이 책으로 막간의 휴식(?!!) 후 '화차'를 할까 한다.

 

 

57장 '딜레마'는 이렇다.

 

 

 

 

한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되면, 사랑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게 된다.

한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되면, 그의 손을 잡고 미래로 걸어갈 수도 없고 혼자 버려두고 뒤돌아갈 수도 없게 된다.

한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되면, 알면서 모른 척하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게 된다. 이것이 제1의 딜레마.

 

나를 잘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다가도 누군가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나는 '이런' 사람 말고 '저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나를 다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었었으면 하다가도

누군가 나를 제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휘장을 내리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이것이 제2의 딜레마.

 

오늘은 어떤 페르소나를 쓰고 세상으로 나가볼까.

당신은 오늘 어떤 나를 만나고 싶은가.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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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3-1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경신의 글과 사진 참 좋아해요 프레이야님이 옆지기 사진이 물고온 작은 생각을 보면서 황경신 생각을 했었지요.
책으로 내면 참 예쁠텐데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이 어린이 책 위주라 아쉬웠어요.

프레이야 2012-03-15 07:51   좋아요 0 | URL
비슷한 일을 하시는 하늘바람님은 황경신 아시는군요.^^
전 이 책 '생각이 나서'로 처음 봤어요.

페크pek0501 2012-03-1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다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었었으면 하다가도
누군가 나를 제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휘장을 내리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 제가 저에 대한 글을 쓰고
나면 갖는 생각이랍니다. ㅋㅋ 맘에 드는 표현이에요.

프레이야 2012-03-15 07:53   좋아요 0 | URL
누구나 그런 이중감정을 갖고 살겠지요.
페크님의 글은 참 반듯하고 사유의 흐름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던걸요.^^

2012-03-14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5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창훈 / 문학동네

 

 

 

오늘 시작한 낭독녹음도서. 연이어 4시간을 신나게 읽었다.

앞서 김훈의 깐깐하고 모호하고 비장한 문장을 읽은 탓에 더욱

이 책의 문장은 아주 쉽고 분명하고 현실적으로 읽혔다.

지난번에 잽싸게 찜해뒀던 책인데, 그보다 앞서 찜해 뒀던 윤성희의 <웃는 동안>이 일단 밀려났다. 

장편소설 <홍합>으로 알고 있는 한창훈 신작 <꽃의 나라>는 표지가 아주 곱상하다.

그러나 내용은 좀 다르다. 오늘 92쪽까지, 책의 3분의 1 정도를 읽었는데,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진 않은 듯.

중요한 사건이 나오기 전 배경으로 이미 가정과 중고교에 만연한 폭력과

우리 사회에 판치는 야만과 폭력에 길들여졌거나 방조하는 여러 태도들을 보여준다.

폭력의 고리와 폭력의 근원에 있는 심리도 쉽게 파고든다.

어떤 무서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전조다.

 

군대 이야기에서 때렸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얻어맞기만 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려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때린 것보다는 맞은 것을 오래 기억했다. 그래서 교사들은 우리를 그렇게 때리는 것이다.

많이 맞은 사람이 많이 때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되풀이를 끊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맞기만 하고 때리지는 않는 첫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 최소한 자식을 때리지는 않을 것이다. (55쪽)

 

'내가 링에서 그렇게 많은 주먹을 내뻗었던 것은 공포 때문이었다.'

권투 선수 알리가 했다는 말이다. ...... 때릴 때의 공포라는 게 있다.

오로지 공격의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 하나. 손을 멈추는 순간 찾아올 상대의 반격.  (68쪽)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저자가 믿는 것은 미움, 미움의 힘이란다.

"우리가 이렇게 앓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보다, 미워할 것을 분명하게 미워하지 않아서 생긴 게

더 많기 때문이다.(273쪽)"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엘레니 카라인드루(Helene Karaindrou) 음악을 자주 들었다고 썼는데,

검색해 보니 그리스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에 음악도 함께.

테오는 자신의 영화와 그녀의 음악은 정교하게 얽혀있어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작가 한창훈은 "다른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고 고백한다.

 

검색해 좀 들어보니까 머나먼 어느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 같다. 좀 사서 들어봐야겠다.

 

엘레니 카라인드루 / 율리시즈의 시선

 

 

시간의 유해 ost

 

 

 

 

 

 

 

 

 

건너뛰었던 한창훈의 산문집이다.

이참에 다시 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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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2-21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창훈은 읽어보지 못한 작가라 궁금...

2012-02-21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3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2-02-2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지난 주말에 [인생이 허기질때 바다로 가라]를 다 읽었어요.
당장 작가님을 만나 회 한접시 놓고 소주한잔 하고 싶었어요.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데 풀어놓지 않은 책밖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흥미로울지 .. ^^


프레이야 2012-02-21 22:35   좋아요 0 | URL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부제도 마음에 끌리더군요.
레와님은 그 책을 읽으셨군요. 저도 읽고 싶어지는 책이에요^^
책 밖의 이야기,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이 말이 더더 좋으네요.

2012-02-2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5 0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7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2-02-27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려 프레이야님의 녹음 이야기를 듣고 가네요.
저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책표지가 고와서 눈길이 가요.^^

프레이야 2012-02-27 13:23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정말 오랜만에요.ㅎㅎ
책표지가 참 곱지요. 내용은 야만과 폭력의 나라를 다루고 있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묘한 슬픔이..
 

 

 

 

 

 

 

 

 

 

 

 

 

 

 

2012년 녹음 첫 책 김일엽 스님의 <청춘을 불사르고> 이후

두번째 책은 점자도서관 책꽂이에서 봉사자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책 중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저주>를 골랐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을 몇 년 전 녹음한 적이 있는데

그의 책은 이번으로 두번째다.

 

<명탐정의 규칙>의 완결편이라고 하는데 그 책은 읽어보지 못해 다음 기회에 찾아 읽어볼 작정.

<명탐정의 저주>는 1/3 가랑 남았는데 흥미진진하다.

아직 결말은 모르는 상태. 본격추리소설에 대한 히가시노 게이고 자신의 견해가 내용에 직접 드러난다.

밀실 살인의 모범으로 <모르그가의 살인>과 <노란 방의 비밀>을 들고 있고 (둘 다 나도 재미나게 읽은 것)

탐정이 나오는 소설을 예전의 스타일로 보는 등 추리소설의 새로운 지평에 대한 생각과 의욕이 읽히는 부분이 많다.

주인공이 미로 속에서 이상한 마을로 들어가 신분(직업)이 바뀌어 활약하는 등 다소 판타지스러운 배경을 깔고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서도 '사회파 소설'이나 '밀실살인'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고

'역사가 없는' 이상한 마을에서 새로운 사건이 하나둘 일어난다.

 

내가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고른 이유는 2월 10일까지 물만두님 1주기 리뷰대회도 있고해서 겸사겸사.

이번 기회에 말만 들었던 그 유명한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를 몇 권 구입해 읽을 예정이다.

집에 있는 셜록홈즈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많은 분들이 물만두님 1주기 리뷰대회에 참여하면 좋겠다. (물만두님의 책 두 권도 대상도서다)

나도 사실 리뷰 안 쓰고 또 게으름 피울 가능성이 크지만 이 기회에 추리소설을 다시 흥미롭게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메그레 시리즈, 표지가 하나같이 멋지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이 1탄이니 이것부터 읽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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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2-01-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 전문을 다 녹음하나요? 몇날 몇일에 나눠서 작업이 진행되곘네요~
방황하는 칼날이 되게 두꺼웠던 걸 기억한다면 ㅎㅎ

프레이야 2012-01-20 00:00   좋아요 0 | URL
네,이카루님 여러날이 걸리지요. 완전히 편집되어 완성되려면 여러달이 걸리구요.^^
제가 더 아주 즐거운 작업입니다.

2012-01-19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0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