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 지음 / 마음의숲

2012년 8월 29일 녹음 시작, 현재 83쪽까지.

 

 

 

 

매미가 울지 않는 여름은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그러나 매미가 우는 여름은 또 얼마나 고독한 것인가?

 

아파트 단지에서, 거리의 나무에서, 뜰 안의 감나무에서, 어두운 숲에서 매미들이 울고 있다.

이제 절정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늘 잘못 본 것처럼 하늘에서 긴 시선을 그으며 무엇인가가 툭, 하고 바닥에 꽂힌다.

그리곤 조용하다. 매미들의 합창도 마무리 되어 가고 있다. 개미들도 사라졌다. 그 뜨겁던 햇빛도 한풀 꺾이지 않았는가?

녹색은 어두워가고, 뜨거움 대신 후텁지근함이 대기를 감싼다. 이제 여름은 가장 어두운 침묵을 준비한다.

 

- <당신을 위해 지은 집> p56 '장엄하는 장대비' 중 

 

 

 

 

돌아보면 여름은 뜨겁기도 차갑기도 했다. 다정하기도 비정하기도 했다.

몇 번의 이사를 모두 여름에 했고, 내 병과 엄마의 병 모두가 불볕 더위 여름 한가운데를 통과했으며,

내 고독과 욕망이 들끓던 때도 여름날일 때가 많았다. 더 다가가고 싶었고 더 멀어지고도 싶었던,

나무가 녹색 盛裝을 할 때면 나는 매양 헐벗고 싶었다. 버거웠을지도.

기약도 없이 생의 무더위가 선고되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예측불허, 단언할 일은 아닐 듯.

매미가 울든 울지 않든 여름은 고독했고, 매미 울음 같은 내 바닥에 장대비 꽂히듯 장렬하기도 했다.

환청처럼 매미 울음이 들린다. 부끄럽지 않다.

안녕! 나의 여름!

 

 

 

덧: 불가에서는 '장엄'이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꾸미는 일을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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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바나나 2012-09-06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문장 중 고독이란 단어가 유독 보이는 건
제가 '어떤 책'에 끌려있는 상태라 그렇겠지요?ㅋㅋ
저, '당신', '집'이런 단어에도 시선이 멎어요~
이 책,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인데 만나니 반갑네요.
안녕!, 이란 단어 보낼 때도 만날 때도 쓰는 인사지요^^
아름다운 가을 만끽 하시길~


프레이야 2012-09-06 21:38   좋아요 0 | URL
당신, 집.. 저도 좋아하는 말이에요.
장바구니 담아두셨군요. 반쯤 읽었는데 꽤 읽을 만한 에세이에요.
작가의 생각이 꼿꼿하고 빛나요.
안녕! 만날 때도 쓰는 인사, 맞네요.
바나나님의 가을도 충만하시길^^

비로그인 2012-09-0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가을이 오는게 너무 좋아요. ㅎㅎ
긴팔 옷을 첨을 꺼내입었을 때의 느낌.
울퉁불퉁한 홍로 사과.
기분 좋은 서늘한 공기.
이제는 별로 따갑지 않은 다정한 햇살이요~

프레이야 2012-09-06 21:39   좋아요 0 | URL
만치님, 긴팔옷 처음 꺼내입을 때 느낌, 포근한 느낌이요.
전 요새 연두색 사과 먹고 있어요.ㅎㅎ
오늘 가을하늘은 어찌나 맑은지 투명했어요.
만치님의 가을이길^^

네꼬 2012-09-0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우리의 뜨거운 여름!

프레이야 2012-09-06 21:41   좋아요 0 | URL
안녕! 네꼬님^^
올여름, 유난히 뜨거웠어요. 너무 뜨거워 고역이었는데 다 지나가는 것,
부질없는 것이네요.

블루데이지 2012-09-0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왔다 읽고 누르고만 가요~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2-09-06 21:41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ㅎㅎ
아이 울어서 후딱 가신 건 아닌지요^^

페크pek0501 2012-09-0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이 간다고 생각하니 섭섭해져요. 그렇게 힘들게 했던 무더운 여름인데도요.
떠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선 다 섭섭해지는 걸까요?

프레이야 2012-09-06 21:43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정말 몇 해째 무더위가 제 생애 몇 번의 여름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서늘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투명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맑은 가을하늘처럼요.^^

반딧불,, 2012-09-0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구가 가슴에 사무치네요. 사족도 없고 좋다..

프레이야 2012-09-07 09:36   좋아요 0 | URL
반딧불님, 가을이에요.^^

자목련 2012-09-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곁에 두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
꽤 읽을 만한 에세이라 하시니, 괜히 믿음이 가요.
언제 만날지는 모르지만..
가을이네요. 가을이라는 말에 어떤 떨림은 없지만 그래도 가을이에요..

프레이야 2012-09-08 09:03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함성호 시인, 저도 처음인데 문장에서 대체로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인상이에요.
좋은 내용이 많아요. 감상적이기만 한 에세이와는 다른, 그러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더군요.
가을, 행복하게 누리시길 바래요^^

책읽는나무 2012-09-0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엄....그런뜻도 있었군요.
천둥소릴 함께 듣고, 지금 이시간도 함께 할 수 있는건가요?^^
주말 이른 아침엔 다들 조용하신데,
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외롭지 않아요.
책 표지도 좋고,읽고 싶기도 하고...고민하게 만들어 주시는군요.ㅋ

비가 개이니 왠지 좋은일이 생길 것같네요.
우리 한 번 기대해볼까요?^^
행복한 주말 되시길~~


프레이야 2012-09-08 16:49   좋아요 0 | URL
확실히 조용하네요.ㅎㅎ
비는 개었고 그저 조용한 토요일이에요.
이 에세이는 내용이 좋아요. 글쓴이의 생각이 요모조모 현명하고 치우치지않고 올바른 것 같아요. 쳑표지도 참 마음에 들죠.^^
 

처서도 지나고 비가 오면서 조금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역시 다시 불볕더위가 기승이었다.

오늘은 태풍의 위력으로 뉴스특보가 들끓는다. 이곳은 다행히 그럭저럭 조용히 지나는 것 같지만

곳곳에 피해가 심한 곳이 많다. 북한으로 올라가 휩쓸 것 같은데 정말 피해가 최소한이길 바란다.

계절이 돌고 돌듯 책읽기도 돌고 돌고. 그러나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는.

여름에 가장 좋은 피서지가 녹음실 안이라 팔월에는 더욱 자주 가고 싶은 곳이지만 이런저런 일로 덜 자주 간 셈이 되었다.

 

 

 

  2012년  7월 25일 녹음시작, 총 15시간 소요 완료.

 

중국 대학생들이 뽑은 '가장 잠재력 있는 작가' 쑤퉁의 세 가지 소설이 담긴 책.

두번째 이야기를 가져와서 책 제목으로 했다.

쑤퉁은 자신을 "기이한 상상으로 가득한 자유로운 나그네"라고 칭한 바 있다.

기발하고 생동감 있는 발상과 이미지, 풍부한 유머감각이 꽤 다채로운 세상으로 초대하는 듯.

대사도 실감나고 문장도 읽기에 좋은 편이다. 주제도 명확하고 흥미로웠다.

 

특히, 세번째 이야기 '등불 세 개'는 전쟁을 배경으로, 우리 삶의 비극이라는 운명을

바보(로 불리는) 비엔진이라는 오리치기 소년을 중심으로 익살스럽게 웃고 울게 만드는데,

결미에 가서는 여전히 우스우면서도 아련하게 눈시울에 젖게 된다.

 

 

 

 

 

 

1차 편집 18시간 째, 315 페이지까지 완료.

 

'정보파산'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주식을 해라, 집을 사라, 어디로 여행을 가라, 이걸 입어라, 차는 저걸 타야 폼난다,

이런 식의 끝없는 정보들에 들떠서 정보를 좇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팽창해가는 소비자신용이 호화롭게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와 허영심에 발판을 제공한 것이라는.

사람들은 왜 그런 정보를 좇는 걸까. 거기에 뭔가가 있다고 믿고 따라가는 것이리라.

......(221p) 

 

정보파산!! 인터넷을 떠도는 수많은 정보, 제대로 서지도 못한 말말말...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뭔가가 있다고 믿고 따라가다 파산지경이 이르는.

 

 

 

 

 

내일 시작할 새 책은 함성호의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이다. 책에 대한 감각도 남다른 나비님이 고른 걸

선물로 드렸던 책인데, 마침 점자도서관에 비치되어, 나도 읽고 싶었던 참에 얼른 찜했다.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믿는 함성호는 건축가, 만화광, 공연 연출가, 여행가로 변신하는

다양한 모습을 두고도 '나는 한 우물만 팠다'고 말한다. 한 우물만 파다보니 여러 지층이 나왔고

그것들이 세분화 되었을 뿐이라는 것. - 책날개, 중

 

그는 무리 중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정확하게 연결할 줄 하는 아내를 위하여,

옥탑에서 정발산으로 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집을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뒷모습까지도 닮아, 라고 말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내를 위해,

아내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함성호 시인은 그런 보이지 않는 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이 책에서. 관계의 끈!

 

 

 

 

 

 

 

그 다음 찜한 책은 송경동 시인의 <꿈꾸는 자 잡혀간다>. 어서 읽고싶다.

무엇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연대가 필요한 곳에 연대하러 가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그 간명한 마음들이 살아나면 좋겠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게 무슨 죄냐고 무슨 잘못된 일이냐고, 그리고 그게 무슨 그리 큰 어려움이냐고......

 

아, 이런 좋은 꿈들을 꾸다 보니 갇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꿔본다.

 

- 저자 송경동 작가의 말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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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8-29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음실이 그렇게 시원한가요? 저도 피서차 놀러가고 싶네요~ :)
여름이 가기 전에 쑤퉁을 읽어봐야겠어요. 저 책에 이런저런 짜증이 담겨있다고 누군가의 서재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다락방님 서재였나?) 중국의 삶을 엿볼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쑤퉁 자신의 자기소개도 좋구요. 위화가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기억에 나구요. 태풍이 지나가는 밤이네요. 부디 조용히, 머문 자리 아름답게 떠나라 볼라벤아.

다락방 2012-08-29 14:0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수다쟁이님, 제 서재 맞아요. 수다쟁이님 기억력 엄청나네요!!

프레이야 2012-08-30 10:26   좋아요 0 | URL
쑤퉁은 저도 저 책이 처음인데요, 재미있었어요.
장편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라 뭐라 더 말은 못하겠지만요.
다락방님 서재에서 저도 페이퍼 본 기억이 나요.ㅎㅎ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과 '허삼관매혈기'를 읽었던 게 오래 전인데
쑤퉁은 위화와 다이허우잉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네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 그 파도를 타고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해서...

프레이야 2012-08-30 10:2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 다락방님의 그 페이퍼 봤어요.^^
이혼지침서, 웃기지 않던가요? 두 여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양보가요.
그런 지침서가 어디 있기나 하다고..ㅎㅎ 양보의 스승이라는 사람, 그 허세하고는.

hnine 2012-08-29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었거나 찜해놓은 책들이 눈에 띄어 반갑네요. 낭독할 책은 낭독자가 직접 선정하게 되어 있나요?
벌써 두권은 낭독을 마치셨군요! 함성호의 책도 잘 마치시길 바랄께요.

프레이야 2012-08-30 09:30   좋아요 0 | URL
낭독자가 우선 선정해요. 일단 점자도서관 책꽂이에 비치된 것 중 고르구요,
그외에도 특히 낭독하고 싶은 도서는 낭독자 개인의 도서 중 가져와서 할 수도 있어요.
회원 신청 도서가 올 때는 그것부터 먼저 하구요.
함성호 시인의 에세이는 어제 시작했는데, 좋으네요^^

라로 2012-08-2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성호의 책은 다 읽으신거에요???
저는 그 책이 표지며 다 좋아서 아끼는 책이에요. 내용도 참 좋고.^^
고마와요. 지난 번 보내주신 하루키의 책도요. 그 책도 너무 좋아요!! 처음엔 아껴 읽다가
어느새 밑줄을 긋고 있긴 했지만,,,정말 좋더군요.^^
늘 열심히 사시는 프님을 보면 저게도 자극이 되어요!!! 착한 프님~~~.^^

프레이야 2012-08-30 09:31   좋아요 0 | URL
아뇨, 함성호, 어제 시작했어요.
'채소의 기분' 전 일부러 밑줄 안 그었다우. 왠지 깨끗하게 그냥 두고 싶어서요.
책이 참 깔끔하게 나왔더라구요. 언제나 기쁘게 받아주시는 나비님, 고마워요.^^

mira 2012-08-2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쑤퉁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데 , 화차의 미미여사도 제가 좋아하는작가이고 , 제가 모르는 작가 함성호에 대해 알아봐야겠네요. 다락방님이 칭찬하시고 나비님까지 이야기하시는것을 보면요

프레이야 2012-08-30 09:3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쑤퉁을 좋아하시는군요. 전 이 책이 첫만남이에요.
함성호 시인은 저도 저 책이 처음인데 시로 등단하여 수많은 이력이 있더군요.
여행가이기도 하고, 생을 좀 특별하게 사는 사람들 중 한 사람 같아요.^^

하늘바람 2012-08-2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떠오르지만 낭독하시는 님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요 마치 본것처럼요
부럽고 멋지고 그래요ㅗ

프레이야 2012-08-30 09:33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몸은 어때요? 건강히 잘 관리하시고
무탈하게 태은이 동생이 태어나길 바랍니다.^^

블루데이지 2012-08-30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께 놀러오면 참 얻어갈것이 너무 많아요! 꼭 마음의 친정같다고나 할까요?
오늘밤꿈엔 프레이야님의 목소리가~~들릴것같아요! 낭독~~이란 단어가 이렇게 감미로울줄이야...

프레이야 2012-08-30 09:35   좋아요 0 | URL
호호~ 제 목소리 들으셨어요? 전 어제밤 정신없이 잤어요.
자면서 블루데이지님 꿈에 간지도 몰라요.
체력이 전 같지 않은 것 같아요. 그보다 뭔가 마음이 힘들었나 싶기도 하고 뭔가 지치기도 하고.
세 아들 키우며 책도 그리 많이 보시는 블루데이지님, 마음의 친정 같다는 말씀이 참 다정하게
들려요.^^

순오기 2012-08-30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혼지침서와 송경동의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읽었어요.
프레이야님, 잘 지내죠?
두루두루 궁금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고 살아요.^^

프레이야 2012-08-30 09:38   좋아요 0 | URL
오기 언니, 8월이 다 지나가고 있어요.
또 한 장의 추억으로 접히고 그걸 문득문득 떠올리며 또 가을을 겨울을 살아가겠지요.
저는 그냥그냥 잘 지내고 있어요. ^^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없어도 있는 것 같이.

페크pek0501 2012-08-3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쑤퉁의 세 가지 소설이 담긴 책- 에 관심이 가는데요.

이 많은 추천 수와 댓글 수를 보면서,
저까지 보탤 필요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보태고 간다는... 키득...

프레이야 2012-08-30 18:08   좋아요 0 | URL
쑤퉁 소설 재미있었어요. 대사도 어찌 적나라한지요, 유머와 우화가 슬픈 웃음을 자아내게 해요.
페크님, 그곳은 오늘 날씨가 어떤가요? 이곳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요. 가까이 바다가 있어서
휘몰아치는 파도를 차로 지나가는 길에 보았어요. 우리같은 사람들이야 직접적 피해는 없지만
포구에 연한 마을은 또 어떨지요...

세실 2012-09-03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요즘 바쁘신가 보네요. 넘 조용해. ㅠㅠ
함성호의 당신을 위해 지은 집. 도서관에 있나 찾아봐야 겠어요. 아내의 고운 말을 느끼고 싶은 밤!!


프레이야 2012-09-04 08:59   좋아요 0 | URL
세실님, 그러게요 마음이 바빴나 봐요.
아니면 하고픈 말이 너무 많다보니 우물쭈물 하다 오히려 못하고 다 넘겨버린 것도 같구요.
9월 접어드니까 바람결이 달라졌어요. 행복한 가을 맞이했으면 해요.^^

2012-09-0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꾸는자 잡혀간다, 녹음하시다가 우실 것 같아요. 너무 슬프기도 하니까요.

프레이야 2012-09-06 21:46   좋아요 0 | URL
네^^ 섬님, 저 녹음하다 울먹여 잠시 정지할 때고 있고 웃음이 나 못 참고 정지할 때도 있어요.ㅎㅎ
 

 

2012년 3월28일 시작, 총 28시간 소요 녹음완성.

2012년 7월24일 1차 편집 시작.

 

 

녹음 속도가 빨라 편집할 도서가 많이 밀려있다.

지난 주 김훈 장편소설 <흑산>(총 19시간) 1차 편집을 마치고 오늘 <화차> 편집에 들어갔다.

 

미야베 미유키가 장치해놓은 복선들이 다시 눈에 띄었다. 혼마의 시선으로 표현된,

사람을 묘사하는 섬세한 눈과 사람을 꿰뚫는 예리한 눈은 동시에 작가의 것이리라.

소비자금융규제법과 개인파산에 대한 것까지 오늘 편집한 부분에서 나왔는데,

작가의 치밀한 자료조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주제로 통하는 '거울'에 대한 복선이 아주 초반부터 눈에 띈다.

 

다리 부상으로 휴직을 하고 있는 형사 혼마는 불현듯 옛날 일이 떠오른다.

상습절도범 소녀에 대한 기억인데, 솜씨가 좋았던 그 소녀는 훔친 고급 브랜드의 옷과 시계나

액세서리까지 한번도 밖에 나갈 때 착용하질 않았다.

 

대신 아무도 못 보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커다란 전신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번갈아 입어보았다.

오로지 자기 방의 거울 앞에서만. 그러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핀잔을 들을 염려도 없으니까.

......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자기주장을 한다. 찔리는 구석이 있으면 다 그렇게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소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다. 어쩌면 당시의 자기 나이 또래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설교를 늘어놓으려 애쓰면서 변변히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던 풋내기 형사의 얼굴 따윈 잊은 지 오래겠지만. (p9)

 

 

우리는 착각 속에 산다. 행복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정작 무언가를 손에 쥐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모든 건 순간이다. 그 느낌마저 순간의 착각이다.

가즈오의 약혼자, 한순간에 사라진 여인 세키네 쇼코는 "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떤 게 행복일까? 크고 아름다운 집이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았던 쇼코, 우리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무얼까.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예요. (p347)

 

거울은 당연히 있는 그대로 비춰줄 것 같지만 거울마다 약간은 다른 느낌을 준다. 확실히 어떤 거울은 실제보다

이쁘게 보이게 한다. 옷가게 거울 앞에 서면 모델처럼 날씬한 내가 서있어 기쁘고 놀라운 경험이 다들 있을 거다.

그러면 당연히 그 거울을 사고 싶지만 대신 옷을 사고 만다. 집에 와서 입어보면 실망하겠지만.

우리는 뱀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 하나를 사기 위해, 행복이라는 이름의 착각을 사기 위해

결국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비유가 <화차>를 더 무게 있게 한다. 

이 책 편집하며 한 번 더 읽게될 거라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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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7-2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차는 영화만 보고 책은 못 읽었어요.
이 페이퍼만 읽어도 좋으네요~~~

프레이야 2012-07-25 23:57   좋아요 0 | URL
오기언니, 영화도 좋았는데 책으로 읽어보면 더 좋을 거에요^^

맥거핀 2012-07-2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인용하신 일부분만 보고도 미야베 미유키가 상당히 날카로운 관찰자라는 걸 알겠습니다. 아마 소설에서는 혼마 형사와 관련하여서도 재미있는 부분이 꽤 있는 것 같군요. 소설을 읽고 싶도록 만드는 글이네요.

프레이야 2012-07-26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미미여사의 다른 작품은 그다지 당기지 않아 피했는데 다른 것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이야기는 혼마의 힘으로 시종 끌고가는데, 혼마를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도
그녀(작품 속 쇼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해요. 그녀 안에서 자신들을 본 거겠지요.
원작의 엔딩이 전 영화보도 더 좋았어요.
그치만 변감독의 영화도 좋았어요.^^

라로 2012-07-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여사는 돈으로 생기는 인간의 탐욕과 퇴락을 아주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책을 읽을 자신은 없어요,,,전 그녀의 [이유]읽고 무서워서 잠을 설쳤;;;
하지만 영화는 볼만 하더군요..오히려 영상이 어쩔 땐 더 쉬워요, 제겐.ㅎㅎㅎ

프레이야 2012-07-26 00: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무서운 거, 잔인한 건 잘 못보는 뤼야님.
'화차'는 그런 장면은 없어요. 영화도 좋았어요.^^

blanca 2012-07-2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녹음하시는 중이군요. 저는 미야베 미유키가 이 소설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어서 너무 탐닉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가벼운 책인 줄 알았는데 읽으며 소름이 돋더라고요. 자본주의의 한켠에서 몰락해 가는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나 절절하게 그렸던지... 나중엔 슬프더라고요. 프레이야님이 편집 작업도 하시는군요!

프레이야 2012-07-26 07:51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녹음은 마쳤고 1차편집 중이에요.^^
저도 미미여사 소설은 이게 처음이에요. 님의 멋진 리뷰도 기억나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어요. 오늘 편집분 중, 미조구치 변호사의 말,
개인파산을 한 쇼코에 대해 "그건 꼭 그녀만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현대사회의 신용대출 파산은 어떻게 보면 공해 같은 겁니다." 기억나시죠? ^^
눈의 무서움, 이런 짧은 단어 두 개로도 비유되고요. 겉은 멀쩡하고 화려하고 순백해도
덮여있는 슬프고 비루한 현실과 욕망이란 무서워요. 자본주의 거탑 아래 서서히 몰락해 가는...
네, 절절하면서도 참 담담하게 그리고 있구나, 생각 들었어요.

라로 2012-07-26 17:12   좋아요 0 | URL
저 치매 맞나봐요,,ㅠㅠ
저 위의 댓글 달면서 블랑카님이 한, '자본주의'니'몰락'이니 뭐 그런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거에야요,,흑흑
그래서 돈, 퇴락,,,이런걸로 썼다는,,,도대체 돈, 퇴락,,수준차이 나게 이게 뭐랍니까???ㅠㅠ
인간의 탐욕만 제대로 기억이 나더라는,,ㅠㅠ
명사를 잊어버리는게 먼저라더니,,ㅎㅎㅎㅎㅎㅎㅎ맞는 말이에요.훌쩍

프레이야 2012-07-26 19:15   좋아요 0 | URL
뤼야님, 저도 그래요.ㅠ 단어가 생각 안 나고 뭐든 깜박하고 그래요.ㅋㅋ
근데 자본이나 돈이나, 퇴락이나 몰락이나 그게 그거죠.ㅎㅎ

2012-07-2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거울을 사야 하는 거였군요. 옷이 아니라.
여튼 굉장히 섬뜩하고도 와닿는 비유입니다. <화차>는 역시 좋은 책이군요..
그나저나 녹음하면서 좋은 책들을 천천히 읽을 수 있는 프레이야님의 독서가 부럽습니다.^^

프레이야 2012-07-28 12:54   좋아요 0 | URL
섬님, 화차, 역시 영화도 좋지만 원작이 좋았어요^^
거울아,거울아, 하던 백설공주랑 계모 생각도 나네요.ㅎㅎ
사람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내 보기에 좋은 거울을 만드는 일,
그게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일 같구요. 그러고 보니 거울이 다시 보입니다^^

2012-07-31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31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년 7월 18일 녹음시작, 7월 24일 마침. 총 10시간 남짓 소요.

 

오늘 이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의 말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절망스러운 것인지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절망은 희망의 이마를 살짝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장영희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라고 반문했다.

희망을 가지라고 조언도 하지만 결국 그 희망 때문에 열정을 다해 살아낸 생이지만

누구나가 그렇듯,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긴 했겠지만 그녀는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아끼는 사람들 곁을 떠났다. 몇 차례의 암 투병과 힘든 치료 과정을 다 겪고.

 

희망을 노래하는 게 어쩌면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장영희의 이런 인터뷰는 신선하다.

이 책의 에필로그 도입 부분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질문자가 내게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신체장애, 암 투병 등을 극복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이다. 그럴 때마다 난 참 난감하다. 그래서 그냥 본능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내 안에서 절로 생기는 내공의 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축복이라고, 난 그렇게 희망을 아주 크게

떠들었다. 여러분이여 희망을 가져라,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p231)

 

 

 

엄마가 직장암 3기 말에 대수술을 한 지 만 5년이 되었다. 그동안 잘 견뎌오셨고, 병원에서는 5년만에 대장 내시경을

해야한다고 했고 어제 예약해둔 대로 하셨다. 다른 이상은 없다. 다행이다. 용종이 하나 있어 조직검사를 해두고 오셨다.

결과가 나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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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7-2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 후 검진결과가 좋다니 다행이어요.
어머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요.^^
이 책은 어떤 부분을 읽어도 좋았어요~~

프레이야 2012-07-26 00:10   좋아요 0 | URL
네, 언니, 결과 좋기를 바래요. 아버진 훨씬 더 연세가 많으신데 사실 노인인데
겉으론 그래 안 보여서 아직도 청춘일 줄만 알아요, 제가요. 기력이 좀 없으신가 봐요.
날도 더운데... 몸에 좋은 것 사드려야겠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7-25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하네요..3기셨어도 수술하고 좋아지실 수 있는거군요.
가까운 지인의 부모님께서 모르고 계셨다가 대장암 말기로 판명이 나셔서 마음이 심난하네요.
함께 계실 때 더 잘해야 겠어요...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시죠?^^

프레이야 2012-07-26 00:12   좋아요 0 | URL
현맘님, 무더위에 지치지 않고 잘 지내지나요? ^^
주위에 암환자가 적지 않아요. 건강합시다!!!
엄마의 5년 전 그 때가 기억나요. 더울 때였지요. 병원에서 밤을 새던 몇날.
조직, 결과 좋게 나오길 바라고 있답니다.

라로 2012-07-2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능의 힘,,,정말 맞는 말이에요,,
그나저나 어머님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제 친정 엄마도 그렇고,,,
딱히 잘 해드리는거 없지만 말이에요,,^^;;

프레이야 2012-07-26 00:13   좋아요 0 | URL
살아야겠다는, 살려는, 잘 살려는, 그런 건 정말 본능인 것 같아요.
몸도 알아서 반응하구요.
뤼야님 어머님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우린 진짜 잘해드리지도 않고 허당 맏딸 같아요. 나만 그런가.ㅋㅋ

2012-07-2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능의 힘'이라고 말할 줄 아는 장영희 선생님은 역시 냉철한 이성을 가지신 분이셨구나 싶어요. (어디서 장영희 샘께 배운 분이 그런 분이라 하셨어요. 따뜻하고도 냉철한 분.)
어머님께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12-07-28 12:56   좋아요 0 | URL
장영희 샘이 실제로도 그런 분이군요.
글과 사람이 일치하고 삶과도 일치하는 게 올바르겠지요.
엄마는 결과가 좋게 나와서 다행이에요. 일년 후 또 검사 대장 검사 하러 오랬답니다.
고마워요, 섬님.^^
 

 새로 시작할 책을 고르던 중 점자도서관 책꽂이에서 손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에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아 내 것에서 고르던 중 2009년 6월 8일 읽었던 이 책에 다시 손이 갔다.

점자도서관에 대기 중인 책은 모두 기증도서로 채워지는데 나는 이 부분이 좀 거슬리긴 하다.

신간 위주로 녹음을 하는 게 좋다면서도 왜 점자도서관 측의 지원은 없는지, 몇 번인가 팀장에게

물어봤지만 개운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꽂혀 있는 책이 제법 모두 녹음되고 나가야 다른 책이

온다는 말도 납득되기 어렵고.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내가 갖고 있거나 내가 새로 구매한

책을 녹음도서로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좋다. 듣는 분들에게 유익하면 좋은 일.

 

이 책, 저자도 제목을 두고 고심했다고 고백했지만 결국 김종삼 시인의 싯구를 딴 제목.

'기적'이라는 단어에 쏠렸고 '살아온'과 '살아갈'에 새삼 사로잡혔다.

표지의 꿈꾸듯 사랑스러운 분위기에 끌렸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동시대를 살다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글이 다시 읽고 싶어져서였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들을 분들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편안하면서 진솔하고 꾸밈없이, 생에 대한 애정이 물씬, 발랄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그녀가 환하게 웃던 생전의 얼굴이 떠올랐다. 삶에 대한 열망과 희망으로 반짝였던 그 얼굴이.

 

 

2012년 7월 18일 녹음 시작, 벌써 38페이지 정도만 남았다.

매미 소리 울울창창 애절한 아침, 이영배 역도선수의 웃음 띈 얼굴을 티비에서 봤다. 4년 전 은메달을 따고 너무나

시원스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던 장면과 함께 짧은 인터뷰가 나왔는데 아주 기분 좋은 웃음과 말이었다.

자신의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었고 단지 메달이었다고. 그래서 더없이 행복해 웃음이 났다고.

3일 앞으로 다가온 런던올림픽에서는 더 부담없이 경기에 임할 수 있겠다고, 무언가의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은,

우리가 열정이라고도 부르는 어떠한 욕망에 초연한 태도가 내겐 오늘따라 더 감동적이었다.

열심히 해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말보다 백배는 더 훌륭하게 들렸다.

 

 

건강, 특히 암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극대화되어 있는 요즘, 삶의 열정이 지나친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말을 늘

염두에 두는 편이다. 치열하게 살고 있지않은 내 삶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겠고 다 태우지 못하는 숨겨진 열정에 대한

자위의 말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스트레스를 일종의 '허기' 또는 '공복감'으로 본다.  

그 허기의 종류는 무수하고 그 갈래 또한 섬세하다. 스트레스는 같은 상황에서도 받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걸로 보아 상대적인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있다고 본다.  굳이 암이나 어떤 몹쓸 병을 생각한다면

깨끗한 먹을 거리로 잘 먹고 양질의 잠을 잘 자고 편안한 마음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전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다.

단지, 열정이란 말은 흥겨운 꽃노래만으로 볼 수 없다. 지나친 성과욕, 현시욕, 지나치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이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우리 몸과 영혼은 열정에 의해 타들어가고 억압 받고 불편해진다.

몸과 영혼이 그걸 느끼는 순간 그것에 대적해 싸우려하는 태도가 동시에 발동하고 몇날을 몇달을 싸워야할지도 모른다.

그게 몇날 몇달이 아니라 좀더 지속적으로 오랜 세월의 태도로 굳어진다면, 우리 몸은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열병이나 다름없는 사랑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수긍하자.

장애를 평생 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더 치열하고 열심으로 살았던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으며

사람이 한 세상 살다 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좀더 느긋해지자. 의도적으로라도.

 

 

오늘은 방학을 한 작은딸을 데리고 오후에 가서 녹음 마치고 올 예정이다. 지금은 신명나게 사물놀이 연습하러 갔다.

그런데, 매미! 저렇게 한 계절 열정적으로 울어대다니... 그러니 단명하는 건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어 우습다.

아이는 윗층 일반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겠다네. 생각해보면, 딸아이랑 이런 시간 가질 기회도 점점 적어질 테니

먼저 그렇게 말하며 따라가겠다고 하는 아이가 고맙다.^^

 

 

영작문을 가르칠 때 나는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B. White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

이라고 했다.

즉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일반론은 설득력이 없고, 각 개인이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에만

독자들의 동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화이트의 말을 인용하는 데는 다른 의도도 있다. 영문과가 아닌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이론을 가르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학생들 숙제를 읽을 때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추상적인

글보다는 좀 재미있는 일화 위주의 글을 읽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행복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잊지 못할 사람' 또는 '잊지 못할 그날'에 대해서 쓰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p156)

 

 

 

장영희 교수나 화이트의 말은 경험한 것만 쓰겠다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과도 같은 말이다.

 

The writer must write what he has to say, not speak it.  - Ernest Hemingway

 

 

 

덧) 장영희 교수의 책 중 갖고 있는 세 권과 안 갖고 있는 세 권. 표지가 모두 예쁘다.(우선은 표지에 늘 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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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7-2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주 중요한 것 알게 됐어요.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
그런데 저는 사적인 생활의 글 - 제 자신이 드러난 글- 을 쓰고 나면 후회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극복해야 할 문제이군요.
뽑으신 인용문, 훌륭해요. 네 번째 문단의 열정에 관한 글도 훌륭해요. ㅋ
노트에 적어 놓겠습니다.
1. 글을 쓸 땐 한 사람에 대해 쓸 것.
2. 삶의 열정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저,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님 덕분에요.

프레이야 2012-07-24 19:32   좋아요 0 | URL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해 쓰는 게 좋다고 말한 헤밍웨이도 그런 의미로 한 말 같아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 속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나겠지요.
극복해야할 문제 맞아요, 제게도. 어떻게 녹여내느냐의 문제 같아요.
페크님, 나이 들어가는 것의 좋은 점이라면 열정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 같은 것이겠지요.
저는 아직도 멀었답니다.^^

비로그인 2012-07-2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스트레스를 일종의 '허기' 또는 '공복감'으로 본다.

그 허기의 종류는 무수하고 그 갈래 또한 섬세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곱지만 아주 섬세한 표현이세요..
기억하여 전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따로 수첩에 적어두었습니다..

둘째 따님과의 시간에 대한 일상을 넘어서는 애틋한 자각... 그리고 그것을 아끼시고 소중하게 채우시려는 마음이
손에 잡힐듯이 느껴져요..
더운날씨.. 평온한 오후이시길 바래봅니다..

프레이야 2012-07-24 19:35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도 햇볕이 대단했어요. 하지만 우리 모녀는 도서관에서 시원하게 보냈어요.
최고 피서지에요. 녹음실은 더 그래요. 일반 도서관은 전기 절약 차원에서 에어컨 틀어주지 않고
선풍기만 돌려서 좀 더웠다고 딸이 그러네요. 저녁인데 매미소리는 그치질 않네요.
허기를 오늘도 내일도 항상 잘 달래보렵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몸에도 좋다고 하는데 지나치면
뭐든 좋지 않을 것 같아요, 현대인들님.^^

순오기 2012-07-24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내가 에세이 써야 했던 일 알죠?
그때 미친듯이 장영희 교수님 에세이집 읽었어요. 그리곤 좌절~~ ^^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요것만 없고 다 있어요,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프레이야 2012-07-26 00:1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언니 ^^
좌절은 왜 했대요.ㅎㅎ
장영희님처럼 그렇게 쉽게 쓰기가 사실 더 쉽지 않긴 해요.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이 책도 표지 엄청 이뻐~~요^^

라주미힌 2012-07-2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씨의 글을 프레이야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저만 모르는건가;;;; )

프레이야 2012-07-26 00:16   좋아요 0 | URL
방법이 없어요.^^ (속으론 다행)
라주미힌님도 장영희님 글 좋아하시는군요.

라로 2012-07-2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영희 선생님의 골수 팬이라 그분의 책을 다 갖고 있지롱요~~~.그뿐 아니라 그분의 아버지인 장왕록교수님의 책까지 다 갖고 있어요,,,저 정말 그분들 참 사랑해요,,,

프레이야 2012-07-26 00:18   좋아요 0 | URL
골수 팬인 거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장왕록교수 책까지요!!! 우째우째.^^
이 책에,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읽다가 울컥했어요.

2012-07-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뒤쪽 세 권을 안 가지고 있어요. 아, 맨 앞 책은 누구 줘버렸구나.... 뤼야님만큼의 팬은 아니군요. 프야님과 저는. (아마 가까운 미래에 뒤쪽 세 권도 다 가지게 될 듯.. 뤼야님의 뽐뿌질 땜에요.ㅎㅎ) 우와 장왕록 교수님 책까지 다 갖고 있다니, 대단하십니다 뤼야님.

프레이야 2012-07-28 12:57   좋아요 0 | URL
그죠? 뤼야님은!!!
<내 생애 단 한번>의 표지 파란 나비도 넘 멋지요.
이 책 제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데 사람들이 '생의' 또는 '생에'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더래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