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는 1998년 10월 열흘 남짓한 기간동안 평양의 문화유적을 답사한 후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보완 편집한 책이다. 그는 신문독자보다 책의 독자를 미더워하고 좀더 신실한 대상으로 생각했다. 신문글은 신문기사를 읽기 위해 신문을 펼치다 보게되는 글이지만, 책의 글은 유홍준의 책이다 하고 선택하여 읽게 되니 그렇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그러니 내용을 보완하고 좀더 심혈을 기울여 출간했다는 말. 책의 부제는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이다.

점자도서관 언어정보팀 팀장의 요청으로 나는 이 책 시리즈의 4권을 녹음했다. 집에도 있던 책을 미루고 있었던 차라 얼씨구나 잘 됐다 하며 즐겁게 냉큼 받았다. 얼른 읽고 싶어 금세 읽어내려갔다. 저자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묻어나는 문장이 쉽게 술술 읽혔고 예화와 사진설명도 재미있었는데, 시각장애우들에게 안타까운 건 이런 시각정보를 전달해 주는 데에 한계가 있을 때다. "사진설명 있습니다"라는 코멘트와 함께 사진 아래 작은 글을 읽어주지만 그들이 사진을 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평양의 문화유적답사는 말할 것 없고 특히 재미있는 건 북한사람들의 언어습관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자연그대로의 풀내음이 난다.  남남북녀라는 말은 정말이란다. 적어도 남남은 모르겠으나 
북녀는 맞다는 말. 특히 남한의 대구에 미인이 많듯이 북한엔 평양에 미인이 많단다. 깨끗한 이미지의 여성들 사진이
정말 그래 보였다. 어느
안내원 여성에게 스타킹을 선물했더니 "살양말이로군요." 하더란 건 한 가지 예일뿐. ^^

"방향적으로 말하여..." 

이 말은 무척 특이하고 재미나다. 우리말에 요즘 사람들이 잘 쓰는 말 중 '사실은' 이라든지 '솔직히 말해서'라든지 이런말보다
얼마나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그럼 여태 말한 건 사실도 아니고 솔직히 말한 거도 아니란 말이냐? 말은 중요하다.

 
   
  용강 선생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방향적으로 말하여, 유적유물을 학술적으로 조사하고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최선, 최대로 보장하겠습니다."

북한의 말은 이처럼 우리와 단어사용법이 많이 달랐다. 순한글용어 못지않게 한자어를 이용한 조어도 많았다.
특히 '적(的)'이라는 접미사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방향적으로 말한다'는 표현이 꽤 자주 쓰였다. 

(중략)

" ...... 방향적으로 말해서, 교수 선생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민족통일에 도움이 되는 글을 써주십시오.
호상화해가 시작되는 단초가 되는 글을 남겨주십시오. 사실 통일이 별거겠습니까. 이렇게 만나다보면 통일이 자연
되는 것이죠. 교수 선생도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순간 나는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듯 아찔했다. 내 어깨에 지워진 무게가 벌써 힙겹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비장한 주문에 답해야만 했다. 나는 꼭 한마디만 했다.

"방향적으로 말해서, 나는 있는 대로 보고 느낀 대로 쓸 것입니다."
 

(37 - 38쪽)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방향'이란 말에 다시 붙들렸다.
얼마전 '북촌방향'을 보고 '방향'에 붙들렸던 기억이 다시 인다.
방향을 떠올리면 나침반이 생각나고 출발지가 생각난다.  
무방향도 방향이라고 자조할 수 있을까.

'방향적'이라고 할 때 '적'은 과녁 的이다.
나는 지금 어떤 과녁을 향해 눈을 두고 몸을 두고 마음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나의 방향은?  나의 노선은?
방향적으로 말할 수 있는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나아가고 있을까. 여전히?

  

<브리다> 1차 편집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새 책 녹음하려고 찜해 둔 건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다.
시작하려했더니 또 다른 회원신청도서를 주신다. 공파 스님이 역해한 <바이로차나 2> 불교관련서적이다.
마음공부 많이 하라고 이런 책이 내게 자주 들어오나보다. 이 분은 전에도 내게 <신심명 강의>를 읽게 하시더니.^^
아무튼 다 좋다. 방향적으로 말해서(^^) 나는 잡념을 잊고 집중해 읽으며 녹음하는 순간 행복하다.
얼른 신청도서부터 녹음하고 내가 찜한 책으로 ~~   

그나저나 크롬바커 맥주 좋으네. 내 입맛에 딱이다. 진하고 애두르지 않고 정직한 맛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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