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시작한 녹음도서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 김관오 옮김

 철학과 예술, 인생과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 

 고정관념에 날카롭게 한 방 먹이되, 유머와 온기가 배여있는 우아한 문체.   

 냉소조차 귀염성스럽다.   

 일상도 사유의 깊이와 관점에 따라 철학이 된다. 

 

자두 테스트는 기막힌 명증함으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 힘은 보편적 검증력에서 나온다. 즉 과일을 깨물면 마침내 사람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을 이해하는가? 모든 것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 생존에 바쳐진, 혹은 어느 멋진 저녁에 쾌락의 직관에 바쳐진 인간이라는 종의 느린 성숙을 이해하고, 단순하고 숭고한 것들의 미덕을 향한 최초의 열망들을 왜곡하는 온갖 가짜 욕망의 허영을 이해하며, 말의 무용함을 이해하고,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세상의 느리고 참담한 악화를 이해하고,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감각이 인간들에게 '예술'의 즐거움과 소름 돋는 아름다움을 가르쳐줄 때의 황홀한 쾌감을 이해한다. 

자두 테스트는 내 부엌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포마이카 테이블 위에 과일과 책을 놓고, 과일을 깨물어 먹으면서 동시에 책에 덤벼든다. 만약 이 둘이 서로 상대의 강력한 공격에 저항한다면, 또 자두가 내가 글에 의심을 품게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또 책이 과일 맛을 없애지 않는다면, 그때 나는 내가 아주 중요한, 말하자면 아주 예외적인 저작물을 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 맛있는, 금빛으로 빛나는 조그마한 구슬 같은 자두들을 먹는 내 앞에서 스스로 부스러지지 않거나, 우스꽝스럽지 않거나, 허영에 차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다. (73쪽) 

 

사실 우리 모두는 병역을 치르듯 인생에 이르지 않을까? 할 수 있는 거나 하면서 제대나 전투를 기다리지는 않을까? 누구는 방을 닦고, 누구는 게으름을 피우고 카드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괴상한 짓을 하고 음모를 꾸민다. 장교들은 명령하고 졸병들은 복종하고, 하지만 아무도 이 비공개 코미디에 속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장교든 졸병이든, 바보들이든 담배나 화장지를 암거래하는 꾀바른 녀석이든, 모두 죽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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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9-2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중에 하나에요. 삶에서 발견할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얘기들이 인상적이지요.
시간여행자의 아내도 좋지요.
거기다 그저 좋은 사람까지! 즐겁게 읽으시옵소서~~

프레이야 2009-09-29 19:32   좋아요 0 | URL
우리 만치님이 좋아하는 책이군요.^^
그럼 더더 잘 낭독해야쥐~ 좋더군요, 정말.

라로 2009-09-29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목소리 이쁜데~.ㅎㅎㅎㅎ

비로그인 2009-09-29 20:31   좋아요 0 | URL
예.. 나비님 목소리 멋있어요 ^^

프레이야 2009-09-30 02:51   좋아요 0 | URL
나비님 목소리야 저도 보장하죠.
낭랑하고 통통 튀는 발랄한 목소리~

맥거핀 2009-09-2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몇 개 장들이 정말 아름다운 책이지요.
갑자기 에미넴 노래가 생각나기도 하구요....
lose yourself...둥 둥 둥 둥 둥 둥 둥

프레이야 2009-09-30 02:52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
마지막 몇 개 장까지 다 읽고 또 느낌 전할게요.
lose yourself, 그 노랜 모르지만 제목이 딱 저에게 필요한 것이다 싶어요.

같은하늘 2009-09-3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두고...
그나저나 프레이야님 목소리가 참마로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09-10-01 19:36   좋아요 0 | URL
목소리요? 가다듬으면 좀 들을 만하지만
안 그러면 별로지요.ㅎㅎ
 

  

지중해 철학기행 / 클라우스 헬트 

고대희랍과 그리스철학을 지중해 연안의 유적지와 함께 소개한다. 

철학의 발생과 그들의 사유를 따라 의미있는 여행을 도와줄 수 있는, 좀 두꺼운 책.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오히려 못 볼 수도 있다.  

지중해 여행을 꿈꾸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 에쿠니 가오리 

  

물방울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읽히는 책. 

사랑스러운 여인 에쿠니가 사랑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소하지만은 않은 생각들 

 

 

 

 습지와 인간 / 김훤주 

 

 부제 ; 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보다. 

 주로 경남일대의 습지에 대한 세밀 보고서로 습지와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관계자들을 찾아 인터뷰하고 함께 습지를 찾아다니며 발로 쓴 글. 

 최대한 객관적인 서술과 수수한 감성의 조합으로 저자의 겸손하고 살뜰한 습지사랑이 읽힌다.

  

 

 그것을 타라 / 조정은 

 기존의 하품나는 교조적 에세이에서 탈피하여 전체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미려하거나 당찬 문체와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가슴에 저릿하게 다가온다. 고난을 겪고 거듭 나며 건져올린 솔직담백한 사유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힘이 되는 글들을 묶었다. 어느 겨울 밤, 세찬 바람을 옹골차게 견디고 

 그것에 부딪히면서 자신을 오롯이 지키고 명랑하게 밤하늘을 타고 날아 다니는 한 송이 송이의 

 눈꽃송이를 타듯, 그것을 타듯, 그렇게 엄살 부리지 말고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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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낭독을 시작한 책이다.   (출판사 산지니)

     부제는 '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보다'이다.

     저자 김훤주는 1963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2006년 12월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이 주는  

    녹색언론인상을 받았다. 2007년 1월부터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하 

    고 있다. 병들어 누워있는 아내와 아들 딸 하나씩을 둔 가장이다.  

    딱딱한 내용이지만 부드러운 인상으로 읽히는 이유는 그의 문체, 상당히 겸손한 문장과  

    겸양조의 높임체에서 오는 낮고 소박한 태도 때문이다.  도움말을 준 사람들의 말을 인용부호 

                                           를 이용하여 그대로 전하며 과격한 주장도 피한다.

                                           내용도 충실하여 낭독하는 재미가 있다. 

                                           습지와 인간 블로그 http://sobulman.tistory.com 

 

 내용 중에서 이런 시도 나온다. 책이 저자의 표정처럼 순하게 읽히는 비결이다.  

창녕 대지면 석동 출신의 시인 성기각의 시 "토평천"을 옮겨본다.  

 

화왕산 정기 받아 넓은 들 안고 

굽이쳐 흘러가는 맑은 토평천 

토끼풀 가는 모가지에 꽃을 맺는 냇가에 서면 

대지국민학교 나갈 종소리 낭랑하게 퍼져오고 

여름 내내 우리는 

선생님 몰래 멱을 감았다 

돌틈 사이로 메기 잡는 

병우가 냇물 깊은 곳으로 자맥질하면 

꼭순이는 

검정고무신 넘치도록 피라미를 잡았다 

말매미 울어샀는 버드나무 

마파람은 여지없이 거미줄에 걸리고 

수박서리 하러 갔던 홍경이가 멱살 잡혀 돌아오면 

오후 수업 시작종은 사분의 삼박자로 이어졌다 

종소리에 놀라 우리는 제각기 

물에 젖은 깜장빤쓰를 입고 

발목 붙잡는 고들빼기 농로를 지나 

물새궁둥이를 흔들며 교실로 달려갔다.  

 - 성기각,  [토평천]    54쪽

 

토평천은 화왕산 북서쪽 열왕산에서 비롯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암면 감리못을 거쳐 성 시인의 모교인 석동의 대지초등학교 앞을 지나 소벌(우포)로 나아갑니다. 토평천은 여기서 소벌의 막내 쪽지벌을 지난 다음 낙동강을 향해 느긋하게 흘러갑니다...... 토평천은 경관과 생태가 살아 있습니다...... 그이의 시 "토평천"은 여름철 물가 아이의 일상을 꼼지락꼼지락 보여줍니다...... 성 시인이 1960년생이니까 여기 정경은 '국민'학교 4-6학년, 1970-1972년으로 짐작되는 여름날 학교 풍경이겠지요. 중략... (55쪽) 
 

---------  

시골에서 자란 경험이 없는 나는 이 시에 나오는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다.  어린시절의 경험을 떠올려 소박하게 건져올린 시어들이 그 자체로 활동사진처럼 생생하다.  말매미 울어쌌는 버드나무, 사분의 삼박자 경쾌한 오후 수업 시작종소리, 물새궁둥이 닮은 아이들의 궁둥이!

내 국민학교 시절을 떠올려봐도 토평천은 아니어도 물이 먼저 생각난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완전히 주택가가 되었지만 당시는 소풍만 갔다하면 거기로 갈 정도의 멋진 장소가 학교 뒷산으로 올라가면 있었다. 무주구천동 계곡을 떠올릴만한 물 많고 물 맑고 물 깊은 계곡이 있었고 물소리가 요란했다. 물이 회오리 돌며 하얀 거품을 일으키던 곳에서 삼남매와 친정아버지 이렇게 넷이서 찍은 사진은 우리 네 명이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도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 많던 물은 언젠가부터 다 사라져버렸다.  

또 한 번의 물은 국민학교 4학년 때 작은이모를 따라 서울 사는 큰이모집에 놀러가서 함께 갔던 청평유원지. 그 물은 넓고 깊어 보여 튜브를 타고도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물이 지금도 무섭다. 수영복을 입고 배 볼록해서 인상 쓰고 서있는 옆모습사진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없어졌다. 당시 사촌오빠들과 언니가 그 사진을 보고 놀릴 때면 약이 올라 뾰로퉁하곤 했었다. 흑백사진 속의 아릿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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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6-0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이 녹음하신 거 듣고 싶어요.^^
어릴때 사진보고 놀림 당했던 기억이 있는 저도 늘 약이 올라 뾰로통했었답니다.ㅎㅎ

프레이야 2009-06-07 09: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얼굴색이 흰편인데 초등저학년 땐 약간 가무잡잡했어요.
특히 이마가 반지르하면서 가무잡잡했지요. 배도 볼록ㅎㅎ
섬님도 뽀로통 ㅋㅋ

반딧불이 2009-06-07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좋은 책들을 낭송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멀미때문에 차타고 책을 못보는 체질이라 Ipod을 이용하고 있어요. 혹시 프레이야님의 낭송 파일을 저도 들을 수 있는건가요?

2009-06-07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7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6-07 23:11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 하는 일이라 즐거워요. 고맙습니다.^^
 

단선적으로 말하긴 어폐가 있지만, 사람마다 쌓였던 울분과 슬픔이 어떤 계기로 함께 폭발하는 경우가 바로 요즘이다.  그래도 세상은 굴러가고, 굴려가야하고,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배설을 해야한다. 눈물도 배설의 방편이 된다면 그래서 속이 다 후련하도록 모조리 쏟아내어 내다버릴 수 있다면... 소통은 역시 어렵고 뒷끝에는 늘 허무함과 외로움만 남는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르지 않는 마음일 거라 위로하고, 독선과 위선의 옴팡한 구멍에 빠지지 않기를 경계해본다. (생전에 언론을 살짝 비꼬는 말이었지만) 말조심하겠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등 망자가 남긴 어록 중에서 짧게 치고 들어오는 말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 요즘이기도 하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표대로 역시 녹음낭독을 하러갔다왔다. 마음 심란했지만 집중하여 글을 읽는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범접하지 못한다는 장점을 오늘 난 선용한 셈이다. 두꺼운 분량의 책 '지중해 철학기행'을 끝내고 새 책을 시작했다. 앞엣 것이 딱딱한 내용에다 어려운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단어가 자주 나와 신경써서 발음하느라 턱이 무척 아팠다고 하니까 녹음실의 착한 두 아가씨가 "벌써 또 끝냈어요?"라며 웃어준다.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지만, 슬픔과 안타까움의 바로 곁에도 이렇게 작은기쁨과 웃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쓴웃음이라 해도.

오늘 시작한 책은 좀 가볍고 말랑말랑한 책이라 금방 끝날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그녀의 소설은 한 권도 읽어본 게 없다. 아무튼 이 책의 원제는 '하찮은 것들'이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좋아하는 하찮은 것들을 소재로 여러 꼭지로 짧게 나눠 적은 가벼운 에세이류다. 그리 문학성 높은 것도, 그리 뛰어난 문장이나 깊은 사유의 맛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아래와 같은 내용처럼 뒷통수를 살짝 치는 대목도 있었다. 

-------- 

상처 

   

종종 상처를 낸다. 온갖 곳에다. 

예를 들면 페달을 밟으면 뚜껑이 열리는 쓰레기통, 뚜껑을 열 때마다 뒤쪽에 붙어있는 스프링이 벽에 상처를 낸다. 쓰레기통이란 대개 벽에 붙여놓게 마련이라, 벽을 보호한답시고 방 한가운데 두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사다리. 부엌의 높은 찬장에서 물건을 꺼내거나 전구를 갈아 끼울 때, 계단 위에 있는 창문을 닦을 때는 사다리가 필수품이다. 그런데 사다리는 크고 무거우니까 들고 다니다 보면 떨어뜨리거나 어디에 부딪치기 십상이다. 계단 모퉁이나자신의 무릎에. 

그런 상처에 관해서 나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낸 것이든 남편이 낸 것이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저분한 것과는 다르니까. 

그런데 우리 남편은 정반대다. 저저분한 것보다 상처가 거슬리는 성격인 듯하다. 벽에 난 상처 하나, 내 손에 난 상처 하나도 남편은 절대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그런 조그만 상처 하나에 신경 쓰는 거, 좀 한심한 거 아냐?" 

어느날 나는 그렇게 지적했다. 

"살다보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처가 나잖아. 피할 수 없는 거잖아. 그보다는 지저분한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상처는 없앨 수 없지만, 지저분한 것은 치울 수 있으니까." 

"무슨 말씀!" 

남편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지저분한 거야말로 피할 수 없지. 그리고 치울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치울 수 있으니까 그냥 놔두는 거야. 하지만 상처는 피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거지." 

그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사람은 저마다 (같이 사는 경우에도)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 

"상처야말로 피할 수 없는 거지. 갑자기 생기잖아." 

나는 그렇게 주장했다. 

"생활하다 보면 이래저래 상처를 입잖아. 벽도 바닥도, 당신도 나도."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서, 왠지 슬퍼지고 말았다. 

 (77-79쪽)

                                          

                                         

  나도 여태껏 에쿠니 가오리와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불현듯, 저자의 남편의 생각에 훨씬 공감된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 에쿠니 가오리 /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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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5-28 06:45   좋아요 0 | URL
고쳤어요. 아유, 심장이 그러니 손가락도 말을 잘 안 듣네요.
그렇더군요. 그녀, 64년생, 얼굴처럼 상큼하더군요.
때론 아니 자주 우리 삶에 필요한 것도 가벼움의 미덕이란 생각이 들어요.
진지함이 담긴 가벼움이요!

다락방 2009-05-28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픔과 안타까움의 바로 곁에도 이렇게 작은기쁨과 웃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이에요,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09-05-28 15: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고마워요.
오늘도 이리 가슴이 조이고 아픈데 또 좀 나아지겠지요.
 

 지난 주 금요일오후, 노 전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놓기 하루 전날 낭독한 부분이다. 지금의 상황에 와닿는 부분이 있어 옮겨둔다. 

-------------

 

기릴 만한 가치가 있는 정치적 업적을 수행할 능력을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어로 '비르투Virtu'라 부른다. 이 단어는 라틴어 '비르투스Virtus'의 이탈리아어 형태다. 우리말로는 통상적으로 이 개념을 '덕'으로 번역하고 '도덕적 올바름'으로 이해한다. 

정치적 세계에서 인간의 무력함은 충격적인 현상에서 드러난다. 즉 어떤 정치가가 중요하면 할수록, 그 정치인이 더 많은 '비르투'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더욱 더 실패할 위험이 크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점을 통찰하고는 왜 그런지를 설명한다. 모든 위대한 정치가는 계획을 관철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가정을 갖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지도 이념이거나 어떤 성질일 수 있다. 이 성질들은 자연이 그 정치가에게 부여했거나 그가 획득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일류 정치가는 유리한 기회와 위험천만한 상황들을 일찍 알아차려야 하고 단호하게 이용해야 한다. 그의 영리함은 단순한 적응 능력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제한된다면 그는 곧장 기회주의자가 되어 신뢰를 상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정치가는 반드시 강인한 끈기가 필요하다. 어떤 정황에서도 근본적인 이념과 성질을 견지해야 한다. 그의 성공은 이에 힘입은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바로 이 이념과 성질이 일반적인 정치적, 문화적 조건과 더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념과 성질이 마키아벨리의 표현대로 하면 '시대상황'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치가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항상 자신의 성공을 이끌었던 태도의 구성 요소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 정치가에게는 확실히 부조리하게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 상황은 이 정치가에게 이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 정치가의 실패는 불가피하다. 우리 역시 전혀 다른 내력을 지닌 정치가들에게서 이런 점을 보아왔다. 고집불통 호네커(1912-1994)를 두고 고르바초프가 만들어낸 유명한 문장 "너무 늦게 오는 자는 삶의 벌을 받는다."는 마치 마키아벨리가 한 말처럼 보인다. 

언제, 어떤 정황에서 한 정치가의 삶에서 지금 묘사한 상황이 생겨날지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우리를 그런 비극적 상황들로 몰아가고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없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을 옛 로마식 단어로 '포르투나fortuna'라고 부른다. 

'포르투나'는 행운이지만 우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상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기분에 따라 변덕이 심한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전체 르네상스 시기에 걸쳐 '비르투'의 놀라운 창조적 의지의 힘이 그 한계를 보일 때 일어나는 어떤 느낌에 대한 명칭이다. 마키아벨리는 비로소 이 느낌을 정치적 실패가 불가피하는 데 대한 냉정한 분석으로 전이시켜 놓았다. 이 불가피성에 대한 통찰이, 마키아벨리를 마찬가지로 르네상스에서 시작한 근대의 정치적 진보낙관주의로부터 지켜낸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는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로부터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지중해 철학기행, 중 p544-547 중략 발췌 


 클라우스 헬트 지음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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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09-05-2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노무현 대통령님.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인간 노무현으로서의 '어떠한 부분'이 그의 정치적 실패를 가져왔던 것일까요. 아님, 흔한 말대로 주위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란 건 잘 알지만, 자꾸 묻게 됩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했으면 어땠을까.
故 노 대통형님의 하신 말 중에 그런 부분이 있었죠. '운명이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자꾸 질문을 하게 되네요.

프레이야 2009-05-28 15:44   좋아요 0 | URL
정치가는 실패가 운명적인 것이라는 말인데, 과연 성공했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면
멋진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구요. 자꾸 묻게 되는 게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도 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