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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2월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세균 폭탄을 투하했다는 주장이 소련, 중국, 북한에 의해 제기되었다. 6월 미국의 세균전 감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국제과학조사단과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구성되었다. 조사에 참가했던 영국 학자 죠셉 니담은 “미국이 세균전을 수행했다는 것을 97%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심지어 전범으로 판명받은 일본인 세균 전문가를 재고용하기 했다. 2000년 7월 2일에 방영된 MBC –TV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은 미국 세균전에 대한 새로운 증언과 증거들을 제시했다.
51년 한국의 내정을 취재하고 간 외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격”이라고 혹평을 했다.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 사건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지만 ‘부산 정치 파동’에 대한 평가로 또 다시 인구에 회자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51년 11월 30일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52년 1월 28일 표결에 들어갔는데 재석의원 163명 부결이 143표였다. 이에 이승만은 “국회의원이 잘못하면 국민의 투표로써 소환한다”는 협박 성명을 냈다. 52년 1월 말부터 부산에는 백골단, 땃벌떼, 민족자결단 등 각종 우익단체들이 “살인 국회를 해산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지방선거에서 자유당은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5월 26일로 예정돼 있는 내각제 개헌안 표결을 앞두고 이상한 일들이 잇따라 일어난다. 부산 금정산에 무장공비가 출현, 미군 2명, 한국군 3명을 사살하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헌병사령관 원용덕이 발표한다. 사회분위기는 살벌해지고 얼어붙었다. 나중에 조작된 사건으로 밝혀진다.
이승만은 5월 25일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5월 26일 국회의원들이 등원하기 위해 탄 출근 버스가 크레인으로 헌병대에 끌려간다. 다음 날 12명은 국제공산당과 결탁했다는 혐의로 투옥된다.
이즈음 이승만은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었다. 마닐라에서는 이승만을 “베테랑 파시스트”라 불렀고 미국 <워싱턴 스타>는 이승만을 “파시스트”라 비난했다.
6월 25일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진다. 의열단원 출신인 유시대 (당시 62세)가 이승만 뒤에서 권총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되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조작의 냄새가 징후한 사건으로, 이후 이승만을 지지하는 관제 시위에 불을 지핀 격이었다.
7월 1일부터 국회 임시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의원들의 강제 연행이 집행된다. 경찰과 계엄군은 국회의원을 잡아 임시의사당에 연금시킨다. 발췌개헌한 기립 표결에 들어가 출석의원 166명 가운데 163명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미군은 거제도에 대규모 포로 수용소를 설치, 17만 6천 명을 수용했다.
미군은 친공, 반공 포로를 마구 뒤섞인 채로 수용했는데, 이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거제 포로 수용소는 비인간적인 처우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미군의 갈등보다는 해방동맹이라는 친공 포로조직과 대한반공청년단이라는 반공 포로조직 사이의 유혈극이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
7월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의 가장 큰 난제는 포로송환 문제였다. 제네바 협정 118조에 따르면, 전쟁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지체없이 석방, 송환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미군측은 이를 무시하고 자유송환원칙을 고집한다. 미국은 왜 이리 ‘자유송환’에 목을 맸던 것일까.
“미국에게 포로 문제는 단순히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전쟁 포로 얼마를 교환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유세계와 공산세계의 이념성을 다투는 이념전쟁 자체였고 그것에서의 승리야말로 미국에게는 위신과 명분, 그리고 이데올로기 싸움에서의 승리로 보였던 것이다.”
6월 23일 미군은 500대 이상의 폭격기를 동원해 압록강에 위치한 수풍댐과 10개의 수력발전소를 폭파한다. 7~8월 ‘압력펌프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미군 폭격은 더욱 강화된다. 8월에는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78개 도시와 마을을 집중 폭격하는 초토화 작전을 전개한다. 8월 29일 평양 폭격에서만 6천 명이 사망한다.
지상전의 경우, 가장 치열한 혈투는 백마고지 전투였다. 10월 6일부터 열흘간 1만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10일 동아 2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8월 5일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함태영이 당선된다.
부정선거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도 함태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몰랐다. 이범석이 181만 표를 얻은 반면, 함태영은 294만표를 획득했다.
8월 16일 이승만은 제 2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모윤숙은 낙랑클럽을 연다. 고문은 김활란이 맡았다. 고급 콜걸이었다고 해야할까. 외국인을 상대로 한 접대 행위를 서슴지 않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전쟁 중에는 밀수가 극성을 부렸다. 고철을 팔아 1년 만에 17배로 성장한 회사는 이병철의 삼성물산이었다. 구인회의 럭키 화학도 전쟁 통에 큰 성장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