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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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영화 시간을 맞추려 빠른 걸음으로 전철 역 계단을 올라가는데
노인들만 보면 다짜고짜 달려들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인근 교회에서 나온 일군의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지 않은 노인들이 표적인 듯했다.
한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며 거부의 뜻을 표했지만, 그 할아버지를 맡은 중년의 여성은
넉살좋게 웃으며 끝까지  카네이션을 다는 기염을 토했다.

난 저런 광경을 보면 화가 치솟는다.
사람이 싫다고 하면 그 의사를 받아들여야 할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전철이 도착하기 직전 가슴의 카네이션을 떼내어
사나운 손짓으로 주머니에 쑤셔넣으셨다.
저들은 어버이날 좋은 일을 한답시고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런 강제적인 행동이 지독한 자기도취로만 보인다.

자리를 잡고 앉자 10년도 더 된 어떤 일이 생각났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직업을 구하던 가난한 친구 A가 있었다.
비슷한 나이에 한 괜찮은 출판사의 편집장이며 두 아이의 엄마인 친구 B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봄날 홍대앞에서 A와 마주친 B.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마디로 완전히 지치고 절망한 사람의 모습이었다고.

B는 A를 다짜고짜 잡아끌고 근처 단골 미용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용실 거울 앞에 그녀를 강제로 앉혔다.
꽤 비싼 미용실의 커트비를 내주고 머리를 잘라준 걸 그녀는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날 강제로 머리를 깎였던 A는 살다살다 그런 기막힌 일은 처음이라고 내게 하소연했다.
나는 B에게 못을 박았다.

"미래의 어느 날 혹시 나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내 몰골이 그렇게 절망적으로 느껴지면
모른체해 주거나, 미용실로 끌고 가지 말고 밥이나 사줘. 내 머리에 손만 대었다 봐!"

적령기를 넘긴, 애인 없고 직장 없는 여성에 대한 B의 무시무시한 편견은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영화를 보고, 동대문시장  단골 옷가게에서 남편의 여름 셔츠를 하나 고르고
건널목을 건너는데 나이키 매장 옆 모퉁이에 두툼한 겨울 코트를 입고 머리를 산발한 
할아버지 노숙자가 그 땡볕에 미동도 없이 앉아 계셨다.
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내밀었더니 고개를 흔드신다.
아침에 그녀들을 욕해놓고, 나도 똑같은 결례를 저지른 건가?

그나저나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화창한 봄날, 옷이란 옷은 모두 껴입고
백발을 어깨까지 풀어헤치고 앉아  무엇을 견디고 계시는 것일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탐방 보고서 <길에서 만난 세상>을
가고오는 차 안에서 읽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폐광 이후의 광부들, 외국인 이주 노동자, 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
보안관찰처분대상자,  탈학교 청소년, 한국 남성과 결혼한 아시아 이주 여성 등
세상 구석구석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에 꼼짝없이 갇힌 사람들을 사진과 함께 생생한 글로 접하니
가슴이 답답해 왔다.
어쩌면 편견은 자신이 세상에서 점한 조금의 우위를 누리고 지키는 데 꼭 필요한
당의정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늦은 나이에 이르도록 결혼하지 못했던 농촌 총각과 그의 가족들중 일부는
세상에 대한 분풀이를  '비싼 돈을 들여 사온' 외국인 아내에게 몇 곱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다음은 탑골공원에  10년째 출근해  이태백 정약용 신익희 선생의 글 등을 
붓글씨로 옮겨 적으며 시간을 보내고 계신 공재규 할아버지의 말이다.

"(......)워쪄? 이것이 인생 아니겠어?"(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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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urblue 2006-05-0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얘기 보면 저도 가슴이 답답해요.

치니 2006-05-0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편견은 자신이 세상에서 점한 조금의 우위를 누리고 지키는 데 꼭 필요한
당의정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 정확한 말씀. 제가 뭔지 모르게 스스로 찝찝해온것이 이 문장에서 아쌀하게 축약되네요. 고개 숙임.

로드무비 2006-05-09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당의정' 말고 더 적확한 단어가 있을 것 같은데
생각이 안 나네요.
이제 이런 책 안 읽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인간세상이 너무 짜증스러워서.;;

블루님, 감기는 깨끗이 나으셨어요?
어젯밤 이차저차 술 좀 마셨습니다.^^

라주미힌님.^^;

Mephistopheles 2006-05-0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른 생활이 있는데 그걸 인정해주지 않고 자기의 삶의 방식을 주입을 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걸까요....도통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이 참 많군요..

로드무비 2006-05-0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러니까 말입니다.
초라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는 자부심이라고 할까요!

oldhand 2006-05-0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때이른 더위에 단비같은 멋진 리뷰입니다! ^-^

nada 2006-05-0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리 갈 것도 없이 저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 몇 있죠. 이젠 하도 골치가 아파 제 방에만 처박히고 싶답니다. 본인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마치 남의 인생이라는 듯 살고 있는데, 그들을 보며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제가 웃기다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그나저나 저도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게걸스레 뭔가 먹고 있다가는 친구 B님께 끌려가기 십상이겠습니다.

sweetmagic 2006-05-0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kleinsusun 2006-05-0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B란 친구 정말........지독하네요. 다른 친구들한테 생색은 또 얼마나 냈을까...
A란 친구는 또 왜 끌려갔을까요? 카네이션 부대들도 웃기고....
로드무비님은 어쩜 이렇게 별 상관 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먹음직한 샐러드처럼 버무려내세요? 정말...대단해요.^^

2006-05-09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owup 2006-05-1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밥도 사주고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도 잘라주고 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요즘같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시절엔 말이에요.^-^

로드무비 2006-05-1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아이구, 제가 그렇게 해드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난주 산에 다녀오는 길에 미용실 들러 머릴 확 잘라주니 살 것 같더군요.
옛날에 머리 한 달 안 감은 친구도 있었어요.^-^(처음 사용)

수선님, 그냥 그날 있었던 일, 떠오르는 일들을 적어나가요.
어찌어찌 용케 이야기가 마무리되더군요.
할 말이 없어서 리뷰 아예 못 쓸 것 같다가
얼렁뚱땅 하나 올리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그런데도 먹음직한 샐러드 같은 리뷰라니 감사!^^
(그리고 꽤 오래 어울렸지만 B, A 둘 다 아주 묘한 친구들이었어요.)

스윗매직님, ^^

꽃양배추님, 전 또 미리 선제공격을 하기도 하는 타입이라
끌려가는 일은 없었답니다. 휴~~
제가 책 읽고 영화 자주 보는 것도 미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절반은 무시, 그러면서도 질투하던 친구였어요.
아무튼 그리운 얼굴이네요.^^

올드핸드님, 오늘 정말 단비가 내릴 모양입니다.
을매나 말씀도 다정하신지......^^*
 
내가 가장 슬플 때 비룡소의 그림동화 140
퀸틴 블레이크 그림, 마이클 로젠 글, 김기택 옮김 / 비룡소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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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이 아주 클 때가 있습니다.
슬픔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를 온통 뒤덮지요.
(표지 그림)

로알드 달 책의 삽화가 퀸틴 블레이크의 그림,
김기택 시인의 번역이 눈에 띈다.
(클릭하면 큰 글씨와 그림으로......)

-- 여러분은 그림 속의 내가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실은 정말 슬프지만 행복한 척하는 겁니다.
내가 슬퍼 보이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봐.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그리고 본연의 나는 정말 똑같을까?


-- 그럴 때 나는 이런 모습입니다.
슬픔 앞에서는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가벼운 터치로 저렇듯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슬픔이라니......

-- 이 세상에 없는 에디, 가장 행복했던 때......

갓 태어나 목욕시킬 때 세숫대야 물이 망망대해 같더니,
이제 내 딸아이도 제법 종아리가 여문 소녀로 자랐습니다. 아이의 종아리를 뽀득뽀득 씻겨줄 때 늘 감동이 입니다.


--슬퍼서 미친 짓을 할 때도 있습니다. 샤워하면서 비명을 지르거나......

샤워하며 끙, 신음소리를 내거나 고함을 지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최인훈의 소설 주인공 구보 씨는 어떤 일이 생각나 괴로울 때 "에잇, 神哥놈!" 하며 머리를 쥐어뜯었지요.

--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 내 마음 속에 슬픈 곳이 생겨났습니다.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아서......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문을 품으면 안 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 슬픈 것은 무서운 것과 다르다고 중얼거려 봅니다.
나는 슬퍼하는 거지 무서워하는 건 아니거든요.

좋아하는 시인의 번역이라 뭔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지에 도시락 반찬통의 김치국물 스미듯 젖어드는 문장......

-- 누가 슬픈가?
모든 사람이 슬프다.
슬픔은 모든 사람에게 오고 너에게도 온다.

사람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저마다의 슬픔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댔자 그게 크게 위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 그래요, 촛불은 꼭 있어야겠죠.

누구의 생일이든, 생일을 정말 좋아하던 아이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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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05-0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위로가 안되는 책이라는 말씀이신가요?
...

로드무비 2006-05-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좋으니까 사진 찍어 리뷰도 올렸지요.

이누아 2006-05-0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퍼가요. 감사. 님은 가장 슬플 때 그냥 사라지고 싶으신가요?

검둥개 2006-05-0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선 펜자국 위로 수채물감이 번지는 저런 풍의 삽화가 아주 잘 어울리는 글이네요.
덕분에 독서하고 갑니다. ^^ (사실은 레포트 써야 하는데 =3=3=3)

2006-05-06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06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6-05-0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슬픈가? 모든 사람이 슬프다......
글 좋고 그림 좋고. 님 덕분에 그림책이 새롭게 보여요.

sudan 2006-05-06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동화책은 주하양 보여주려고 사신거에요 아니면 로드무비님 보시려고 사신거에요?
(그냥 같이 읽으시려고 사신건가? ^^)

nada 2006-05-0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종아리 씻겨 주면서 매일같이 눈물 짤 거예요. 정말이지 그런 끔찍한 엄마가 되느니...어휴.

로드무비 2006-05-0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눈물은 안 나는데, 아이의 매끈한 종아리 씻어주면
가슴이 뭉클하면서 기분이 참 좋아요.
언제 마이 도러 종아리 빌려드릴까요?^^

수단님, 이 책은 제가 읽으려고 샀어요.
제목과 역자의 이름을 보고.
일러스트도 끌렸고.^^

우울과몽상님, 어른에게도 그림책이 필요해요.
특히 이런.^^

저마다의 슬픔님, 얼마든지 칭얼거리세요.
누군가에게 칭얼거리는 순간 슬픔이 좀 감해지잖아요.
아무튼 잘 마치셨다니 축하드리고요,
조급해 하지 않고 차분하게만 하시면
멋진 놈을 낳으실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검둥개님, 그래, 레포트는 쓰셨나요?^^

이누아님, 네.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2006-05-07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6-05-0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쿠엔틴 블레이크 그림이군요. 그림 쓱쓱 대강 그리는 것 같은데... 이렇게 그리는 사람들 신기해요.

2006-05-08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뚜유 2006-05-0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보관함에 오래도록 넣어두기만 했어요. 김기택 시인의 번역이라서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만나보네요. ^^

로드무비 2006-05-0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슘두유님, 발견하는 순간 막 땡기는 책 있잖아요. 사정없이.....
좋았습니다.^^

두 번째 그림의 얼굴님, 경황이 없어 엽서도 못 썼어요.
급히 보내느라.
궁금합니다. 님의 ..기.^^
(페이퍼 올려주실 건가요?)

하루님, 그죠? 저도 무지 신기해요.
꾸불텅한 선, 대강대강 그리는 것 같은데.^^

자꾸 웃음이 님, 이 페이퍼 보며 웃음이 나왔다니 다행이고요.
그 느낌 알 것 같습니다.
슬픔이나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해 버리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가끔 뒤통수를 맞을 때도 있지만.....
님의 댓글 읽고 저도 빙그레 웃습니다.^^

아영엄마 2006-05-0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퀜틴 블레이크 책이군요. 뒤늦게 발견...^^;;

로드무비 2006-05-1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대부분 갖고 계시죠?^^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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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라고.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했다.
 "누가 안 보면 내다버리고 싶은 것"이라고.(얼마나 웃었는지!)

<이지누의 집 이야기>를 펼치는데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면서 소개한 첫 말에
'가족' 대신 '집'을 대입시켜도 딱이겠다고 생각했다.
'집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
음, 그런데 적고 보니 문장으로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제각각의 집은  남이 모를, 얼마나 많은 사연과
그 가족만이 아는 다정하고 콤콤한 냄새들을 품고 있는가!

지은이는 말한다.
'집은 단순히 건축학적 구조물이 아니며, 집은 그 자체로 다분히 철학적'이라고.

-- 대문은 '오래'라 했다. '오래'는 담과 잇대어 있는 큰문을 뜻하고 '지게'는 방이나 광,
부엌이나 화장실과 같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 그리고 '바라지'는 방 안에서 밖을 바라보거나
환기나 채광을 위해 벽에 만든 창문을 일컫는 아름다운 우리말이다.(41쪽)

집과 관련하여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용어 소개와 함께,
지은이는  요즈음의 공동주택 중  원룸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한마디를 빠트리지 않는다.
원룸에서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많이 타는 건 공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공간에 지배당하기 때문
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
그럴듯하다.


어린 시절 자신이 뛰어놀던 동네의 골목길과 대문과 울타리와 마당과 변소와 지붕과
부엌과 마루와 창문과 구들을 거기 엮인 구체적인 일화들과 함께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는
<이지누의 집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우리 집 골목길과
대문간, <작은 아씨들>의 조우처럼 내가 죽치던 다락방과, 찐쌀 자루와 꽁치구이와
약간 눌은 감자볶음 냄비에서 풍기던 저녁 나절의 그리운 냄새를 떠올렸다.
외출에서 돌아온  내 젊은 엄마가 아버지 몰래 살금살금 새옷 봉지을 숨기느라 벽장 문을 열면
유난히 크게 끼이익, 사람을 소스라치게 하던 음향도......

골목에서 친구들이 놀자고 이름을 소리쳐 부르면 식구들에게 없다 하라고 시키고
신발을 벽장 속에 숨기고 공부했던 한 얄미운 녀석의 이름과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동네 시장에서 복숭아 구루마를 끌던 을지문덕 장군도.(이름이 김을문이라...)

이렇듯 이지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는 잊고 있던 나의 옛집, 골방, 젊은 엄마와 아버지,
운전학원이나 양재학원에 다니느라 차례차례 시골에서 올라온 군식구들로 빌 틈이 없었던 뒷방,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으니, 독특하고 즐거운 독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허균이나 장유 등 가난한 옛 선비들의 詩와 오두막을 훔쳐보는 재미까지 곁들였으니,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책이로되, 사진작가인 저자의 그 좋은 사진 한 장 싣지 않고
덤덤하고 수수한 삽화들로만 채운 것이  조금 허전해서 별 한 개를 뺀다.
(리뷰 제목은 책 속에 소개된  백운거사의 시에서......)


  거울을 보지 않은 지 오래되어
  내 얼굴이 어떤지 기억할 수도 없는데
  우연히 와서 우물에 비추어 보니
  옛날에 조금 알았던 얼굴 같네.
                       ( 이규보의  詩  '우물에 비친 것을 보고 희작함(炤井戱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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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5-0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시네요... 1등입니까? ^^

물만두 2006-05-0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작가였나요? 그런데 사진이 있었음 좀 반감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로드무비 2006-05-0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그, 그럴지도.
삽화는 책과 아주 잘 어울리고 좋았어요.
그래도 제가 워낙 욕심쟁이라...^^;;;

에로이카님, 집, 하면 또 냄새 아니겠습니까.ㅎㅎ
현관문을 열면 그 집만의 독특한 냄새가 있어요.
또 방마다......
전 그게 너무 신기하거든요.^^

mong 2006-05-02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이야기야 하면 또 끝이 없지요이~
^^

로드무비 2006-05-0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황해집 이야기 좀 자주 해주세요.
꼭!!!
그리고 요즘 제 방 카운트 왜 저래요?
뭐시 잘못 돼얐을까?
한 사흘째 이상한 것 같아요.;;

sandcat 2006-05-0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이랑 견줘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쪽으로 기울어질 성 싶은.

2006-05-02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6-05-0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리 유난하지 않으면서 맘에 쏙 드는 리뷰가 있을까요. 너무 좋아요... 추억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추억을 불러오게 만드는 책이 참 좋아요. 저도 보관함에 쏙~

icaru 2006-05-02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까칠한 기타노 다케시..
어...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리뷰가 이렇게 재밌다면... 책은...또 어떤 즐거움을 선사해 줄까요.

waits 2006-05-0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출에서 돌아온 내 젊은 엄마가 아버지 몰래 살금살금 새옷 봉지을 숨기느라 벽장 문을 열면 유난히 크게 끼이익, 사람을 소스라치게 하던 음향', 실제로 겪은 적 없는데도 무척 정감어려요. 로드무비님이라면 들켜도 그만 안들켜도 그만 하실 것도 같지만 어쩐지 닮은 꼴인 듯한 느낌도..^^

로드무비 2006-05-02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저야 뭐 눈치 안 보죠.
그런데 우리 엄마는 아버지를 좀 무서워 했던 기억.
그 당시엔 그런 분위기가 좀 있었어요.^^

이카루님, 그 까칠함이 을매나 매력적인지, 원.
태교에도 좋을 듯한 책!^^*

꽃양배추님, 추억을 불러오는 책. 딱입니다.
그런데 책 주문할 때 땡스투 누르면 몇 푼 생긴다는 것 알고 계세요?
만약에 이 리뷰를 읽고 주문을 연결 지을 경우, 추천말고 땡스투를 눌러야 하며.
그렇게 되면 꽃양배추님 몇십 원, 저 몇십 원.
(어쩐지 모르시는 것 같아서 이 기회에 갈챠드립니다!ㅋㅋ)

샌드캣님, 그 책도 무지 땡기더군요.^^

날개 2006-05-02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룸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 상당히 공감가네요..!

로드무비 2006-05-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그렇죠?
옛집뿐 아니라 현재에 대해서도 한마디씩
꼭 필요한 말은 하고 넘어가더군요.^^

nada 2006-05-03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아직 서재 세계에 익숙치가 않아요.ㅋㅋ 추천하는 것도 손에 붙지가 않아서, 맘과 달리 까먹을 때가 많아요. 기억해 둬야겠어요.^^

2006-05-04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5-05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각당' 주인장님, 연휴 잘 보내세요.
허브차 음용례가 좀 부실했나요?ㅎㅎ

2006-05-05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상) - 다석사상전집 1
박영호 지음 / 두레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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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나(自我)'와 '얼나(靈我)'라는 단어가 있다. 
이 책에서 처음 보았다.

--깨달음이란 제나가 거짓인 줄 알고 얼나가 참나임을 아는 것이다.
알았다고 해서 몸뚱이의 제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서 영육(靈肉)을 분리시켜 줄 때까지 짐승인 제나를 최소한의 예우로 길러야 한다.(상권 257쪽)

'짐승인 제나를 최소한의 예우로 길러야 한다'는 표현에 무릎을 친다. 최소한의 예우.
다석 류영모는 자신의 육신에 정말 최소한의 예우만 하였으니,
일평생을 무명옷(저고리와 한복바지)을 입고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살았다.
그리고 소년시절부터 세운 자신의 뜻을 좇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년상을 마치고
농사를 직접 지어 양식을 얻었다.
쉰 살부터는 또 한 가지의 욕망을 끊었으니,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로만 지냈다.
물 한 사발 가져오라는 심부름도 남에게 시키지 않았으며, 말이나 글로 지식을 팔아먹고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하권 중간쯤에 나온 '겨우겨우 살아가야 한다'라는 소제목을 보고, 이 제목에 기대어 짧은 리뷰를 쓰기로 했다.
상하권 합해서 800페이지 넘는 분량의 책이지만 열흘 정도에 걸쳐 아껴가며 읽었다.
쌓아둔 소설들을 먼저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한 독서경험.

이승을 떠났을 때 신문에 부음 한 줄 나지 않은, 초야의 사상가 다석 류영모.
김교신과의 교유나 함석헌의 스승으로만 이름을 몇 번 접했을까, 그의 제자 박영호 선생이 쓴
평전으로 만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생각과 말과 글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남의 책이나 글을 인용하지 않으면 할 말이 하나 없는 학자나 교육가연然하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이런 사람, 이런 삶이 있었다니!
'진리' 가 그의 일생 화두였다.
젊은 날 마하트마 간디와 톨스토이의 삶에 경도되었지만, 그의 생각과 발언은 특정 종교나 사상에
갇히지 않았다.
종교와 인생에 대한 너무 독창적인 견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에 저항이나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데, 나로서는 모든 말과 행동을 받아적고 따라하고  싶을 정도였다.
딱 하나(4.19와 관련된)만 빼고......

근대라는 시대 풍경과 그 시대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너무 인상 깊었다.
사람들의 교제는 또한 얼마나 진지하고 다정하던지......
공부와 교제와 나눔에 힘쓰는 모습들이 가슴 뭉클했다.

다음은 다석 류영모의 통찰이랄까, 독창적인 사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류영모는 결별의 기도에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오소서"(요한 17:1 개역성경)의 영화롭게를 뚜렷하게로 옮겼다.
헬라어로 '도크사'인데 영어로 글로리(glory)이다. '영광'을 순 우리말로 '뚜렷'이라 옮겼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세상에서는 인간 저희끼리 주고받는 헛된 영광이 너무도 많아
영광이란 말을 그대로 쓰기가 싫어 뚜렷으로 옮긴다고 말하였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뚜렷하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뚜렷하게 하옵소서"(요한 17 :1)

'인간 저희끼리 주고받는 헛된 영광'을 나는 한마디로 '수작'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두어 달 전 이 '영광'에 대하여 진지한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있었는데,
다석 류영모를 먼저 읽은 분이었다.  반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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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4-2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비로그인 2006-04-2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책을 읽고 이렇게 온전히 공감하고 받아들이실 수 있는 로드무비님이 참 부럽습니다..^^

국경을넘어 2006-04-2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뎌 올리셨군요. 저는 헌책방에서 어럽게 절판된 책들 구해 놓고 제사만 지내고 있는데... 잘 읽었습니다.^^

푸하 2006-04-2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 한 사발 가져오라는 심부름도 남에게 시키지 않았으며'이 문장 정말 멋진 분의 풍모가 보여요.... 멋진게 위대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으니 정말로 멋진 일이에요..... 자신의 수고로움을 누구에게 미루지 않는 그러한 마음으로 살면 좋겠어요...

mong 2006-04-2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없이 추천만....^^

플레져 2006-04-2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얕은 인간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싶네요. 한편으론 그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 로드무비님의 독서 편력을 본받고싶어요. 흑.

Mephistopheles 2006-04-2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점심 먹을려고 바닥에 깔아논 면이 하필 부음란 이였죠...
손바닥 반만한 기사가 난 분도 계셨고 세줄로 끝을 맺는 분도 있더라구요..
그나마 손바닥 반만한 기사가 나는 분들은 유명한 분이다 라고 생각해봤지만..
죽으면 뭐 다 끝이다..란 생각만 들더라는...^^

마태우스 2006-04-2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석 류영모라... 처음 들어보네요. 제가 모르는 훌륭한 분들이 참 많군요. 전 순전 저만을 위해 사는데....

nada 2006-04-25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쉰 살부터는 상대적으로 좀 쉬워보이는데..ㅋㅋ(괜한 딴지구요) 영광에 대한 이야기 정말 인상적입니다. 이런 분의 존함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waits 2006-04-2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 온 소제목도 로드무비님 분위기가 나요, 겨우겨우 살아가야 한다... 찌릿.

혜덕화 2006-04-25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우겨우 살아가야 한다를 보니 <실컷>이라는 말에 대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실컷>이라는 말을 쓰면서 살아가서는 안된다시며 열변을 토하시던 말씀 속에서 그분 삶의 모습을 짐작해 보았지만 이 글을 보니 더욱 훌륭하신 분임이 느껴지네요.

푸하 2006-04-25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강연에서 신영복 님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한마디 하신게 기억나네요. " 견디며 살아가는게 중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맥락을 물론 말씀하셨지만 조금 갸웃하게하는 말씀이셨는데. 이어지는 의미같아요.

sandcat 2006-04-2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권정생 님의 '근근히 산다'가 생각는군요. 이 말씀 역시 신영복 선생의 말과 통하는 데가 있는 듯. 지난 주 한겨레에 현암사 판 <다석강의>기사가 났던데요.

urblue 2006-04-25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우겨우, 견디며, 근근히, 그렇게들 살아가시는 거군요, 그분들은. 음.

oldhand 2006-04-25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분을 또 이렇게 좋은 리뷰를 통해 조금이라도 접하게 되는군요. 좋은 책은 좋은 리뷰를 낳습니다.

blowup 2006-04-26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쯤엔가 읽어보려다가, 저 생경한 말투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몇 장 읽다가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어요. 실은 저런 깨달음이 부담스러워서 핑계를 댄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로드무비 님 덕분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맘이 생겼답니다.

로드무비 2006-04-2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생경한 말투가 제겐 시어처럼 들리니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깨달음은 깨달음이고, 저는 저의 사치와 낭비의 길을
계속 가려고요.ㅎㅎㅎㅎㅎ

올드핸드님, 아이고, 따신 말씀 고맙습니다.
미처 모르고 있는, 귀한 것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블루님, 저, 저도 그렇답니다. 겨우겨우.=3=3=3

샌드캣님, 권정생님, 맞아요.
제가 아주 오래전 권정생 선생 댁에 가서
식모(무급으로)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뜨신 밥을 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다석강의> 한겨레에 실렸다고요?^^

푸하님, 맞아요. 이어지는 의미같은데요?
강연을 직접 들으셨나봐요.
안 그래도 이 책에 YMCA 연경반이라고 하여
공부하는 청년들 모임이 나오는데 요즘으로 치면
푸하님 같은 분들이겠죠?^^

혜덕화님, '실컷' 해보고 나면 또 질려서 어떤 의미로 자유로워지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좋은 의미로 이해하면...)
겨우겨우와 실컷을 대비시켜 주셨군요.^^

나어릴때님, 님의 댓글 보니 저도 찌릿.~~







로드무비 2006-04-2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저도 저 문제는 쉰 살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ㅎㅎ
읽다보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고 사용하던 말들에 대한 고찰,
새롭고 독특하고 유효적절한 해석, 창조성.....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

마태우스님, 어쩜 그리 겸손하신지.
저도 그런걸요, 뭐.;;

메피스토님, 죽고나서 신문에 몇 줄 나고 안 나고는
그의 명예와는 상관없고
남은 가족들을 그나마 위로하는 절차 중 하나?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플레져님, 모처럼 묵직한 책 한 권 읽었습니다.
독서편력이라면 님만한 분도 드물지 싶습니다만.
얕은 인간의 껍질은 정말 양파 껍데기와 똑같은 것 같아요.^^;

mong님, 추천 고맙습니다.^^

푸하님, 제가 제일 존경스러웠던 게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교수든 사장이든 예술가든 자신이 획득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타인을 깔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으로 뭐든 된다 생각하고 하기 싫은 일은 당당히 시키고요.
사실 저도 찔리는 부분이 많은데 가장 기본적인 사람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폐인촌님, 저도 제사만 지내다가 드디어 읽었습니다.
일단 페이지부터 펼치세요. 금방 읽게 되실걸요?!^^

사야님, 에이, 님은 뭐 안 그러세요?
읽고 있는 책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 그 쾌락을 사랑합니다.
단, 깨닫고 받아들인 것을 생활 속에 그대로 옮기는 힘이 부족하네요.^^;;

에로이카님, ^^*


2006-04-28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4-28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맹님의 칭찬 고맙습니다.
님도 힘내시고요.^^

2006-04-30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짜 좋은게 뭐지?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가끔 사람은 평생 딱 한 번 저지른 일로 평가되기도 한다.(10쪽)

집에 있는 남편과 범상하게 전화통화를 하다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말해버린 여인이 있다.
이름은 케이티. 나이는 마흔 살.
주차장에서 핸드폰으로 남편과 치과 예약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난데없이 이혼이라니,
케이티는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화들짝 놀란다.
그런데 그 장면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런 상황이 뭐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인용한 말처럼, 무심코 뱉은 한마디로 내 전 인격이 의심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떤 변명도 소용없다.
그리고 사람이 상처를 받는 건 타인에 의해서라기보다, 자기자신에 의한 것일 때가 더 많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배신하고 불성실하면, 신에게 심판 받기 전에 나 자신에게서
먼저 철썩 뺨을 한 대 맞는다.
그래서 나는 평소 나로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불성실한 태도를 선택한 후에는
그것에 관해 누구와 상담한다거나 변명하는 태도(포즈)를 가급적 취하지 않는다. 
이미 매를 한 대 맞았는데 뭐.
자기자신을 믿을 수 없고 만정이 떨어져버리는 벌처럼 무서운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인생이 이렇게 뒤죽박죽이 됐는데 저녁시간은 어쩌면 이렇게 평화롭고 가정적인지
기가 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가족의례란 것은, 아무리 혹독한 태양에서도 끝내 꽃을 피워내고야 말
질기디질긴 사막의 꽃같다.(61쪽)

참 뭐가 뭔지 모르게 괴롭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괴롭고 막막한 중에도 사람은
 타인이 보면 멀쩡한 모습으로 일상이란 것을 꾸려나간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악수를 나누며 속으로는,  '당신은 좋겠다!  그렇게 무사태평한 얼굴이라니!
하고 부러워 하는 건 아닐까?

'죄책감 목록'이라든지 '심지어 교회에 가다'  등의 중간제목과 그 내용 전개에 나는 배꼽을 잡았다.
딸 몰리의 등쌀에 동네를 한 바퀴 돌다 가장 무난할 것 같아 한 번 들어가본 교회에서
만난 교인들의 표정과 목사의 설교 장면,  더구나 그곳에서 동생 마크와 우연히 마주쳐
사창가에서 만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케이티 남매의 모습이라니!

조금만 깊이 파고들면 파토 나지 않을 인간관계가 없고, 그보다 이 세상에서 자기자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닉 혼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만나고 나면
시원한 맥주를  병째 들이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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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1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남쪽에 있는 두산사옥 지하의 호프집의 생맥주 강추~! 입니다..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요~

야클 2006-04-1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사람은 평생 딱 한 번 저지른 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갑자기 가슴이 투웅~~. 아직은 안 저지른 것 같은데.... ^^

hnine 2006-04-18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 혼비의 About a boy 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요.
구차하게 그려질 수도 있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전개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인가 아니면 작가 자체의 성격인가 궁금해 했었지요.
로드무비님 리뷰를 읽어보니 이 책에서도 그런 아이러니가 느껴질 것 같네요.
읽어보고 싶어라. 표지 그림도 재미있어요.

nada 2006-04-1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댓글에 댓글 달고 와 보니 후딱 올려 놓으셨군요! 참으로 비교되게스리..ㅋㅋ 교회 에피소드에서는 저도 키득거린 기억이 납니다. 정말 닉 혼비의 주인공들은 처치 곤란한 소포 상자들이에요.

비로그인 2006-04-1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수 많은 사람들이 제게 그렇게 기억되었고 또 저도 뭔가 딱 한 번 했던 실수로 그 당사자들에게 기억되어 있겠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란 말이 콕 박힙니다..^^

mong 2006-04-1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았던 것들이 쌓였다가 한순간에
둑이 터지듯 무너지는 거겠죠....

하이드 2006-04-1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근데, 표지가 왜저래요? 정말 닉혼비책 우리나라와서 욕봅니다. 욕봐 -_-;;;

국경을넘어 2006-04-1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처음엔 로드무비님 이야기인 줄 알고 깜딱 놀랐어요 -,-;;;

치니 2006-04-1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와중에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수 만은 없는 무언가가 한동안 묵직하게 가슴에 있었는데,
아 간사한 저는, 이제 그런 묵직함은 버린 채 또 흐늘흐늘 살고 있군요.

로드무비 2006-04-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책 표지 보고 배꼽을 잡았습니다.
재밌게 읽었으니 귀엽게 봐줄랍니다.ㅋㅋ

mong님, 견고하게만 보이던 것이 어느 날 와르르.
철옹성 같은 건 어딨을까요?

사야님, 낄낄거리며 읽었지만 이 책 괜찮습니다.
일독하시기를......^^

꽃양배추님, 제가 영어 자판 두드리느라 고생하는 것 어떻게 아시고.ㅎㅎ
님 리뷰를 읽으니 불현듯 저도 쓰고 싶지 뭡니까.
다른 분의 '삘' 받은 것 치곤 형편없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은 대강 했으니...
처치 곤란한 소포상자, 어쩌면 표현도 그리 야물딱지신지.^^

hnine님, 전 <어바웃 어 보이 > 영화로 재밌게 봤어요.
맞아요.
영화든 책이든 닉 혼비만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유머와 시니컬함이 저는 마음에 쏙 듭니다.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져요.^^

야클님, '딱 한 번 저지른 일'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셨군요.
한 번 저질러 보시죠.^^

메피스토님, 전 종로 교보 1층 라운지의 맥주가 그렇게 맛나더군요.
요즘도 있는지 몰라요.
강남 두산사옥 지하, 일단 적어둡니다.
아이고 맥주 마시고 싶어라.
(리뷰 급히 적어 올리고 학교에 급식, 청소 갔다왔거들랑요.
목 말라요.)





로드무비 2006-04-1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그렇다고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사는 것도 웃기잖아요.
님에게 땡스투 눌렀던 것 같은데(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리뷰로 만나니 좋은데요?^^

폐인촌님, 제가 그러고도 남을 인간으로 보인다는 말씀인가요?
알 수 없습니다.=3=3=3

urblue 2006-04-1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와 상담한다거나 변명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게 맞겠지만, 그게 또 그렇게 안되지 않나요? ^^;

로드무비 2006-04-1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사안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더 편하고 인간적인 경우도 있고,
'내가 납득한 걸로 됐다'는 생각이 드는 좀더 중대한 사안도 있겠지요.^^

마태우스 2006-04-1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팬인 그 닉 혼비 말인가요? 그가 소설도 잘쓰나보군요. 으음.

로드무비 2006-04-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맞아요. 그 사람.
소설가잖아요.
영화화된 작품들로 특히 유명하죠.^^


2006-04-19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4-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하이블루스님, 정말 그런 때 있죠?
변명할수록 더 일만 꼬이게 되고 나만 구차해지는.
그런 땐 아예 그 일이나 관계 자체를 탁 손에서 놓아야 돼요.
집착할수록 일이 더 우습게 되더라고요.

아아, 좋으시겠다.
조만간 제가 약속한 대로 아끼는 만화 박스째 빌려드릴게요.
잘 다녀오시고요.^^

니르바나 2006-04-1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은 좋으시겠어요.
로드무비님이 아끼는 만화를 빡스째 받아 보시게 되어서요.
상하이 잘 다녀오시구요. ㅎㅎ

로드무비 2006-04-1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어흑, 그건 어찌 아셨남요?
수선님도 배를 잡고 웃으실 듯.ㅎㅎ

니르바나 2006-04-1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과 수선님의 끈끈한 관계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알라딘서재에서 이걸 모르면 간첩이지요. ㅎㅎ

로드무비 2006-04-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과도 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싶은데
그렇게 앙탈을 부리시니.ㅎㅎ

날개 2006-04-1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피버피치>를 읽고 있는 중인데.....^^
책이 재밌어 보입니다.. 이거 순전히 로드무비님 글솜씨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ㅎㅎ

로드무비 2006-04-2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피버피치 저도 다음주에 읽을 예정입니다.
두근두근 기대돼요.^^
(제가 재밌다고 한 책 중 재미없는 것도 있었나 봐요?
왜인지 그런 느낌이.^^)

날개 2006-04-2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아니라 <피버피치>가 그다지 제 취향은 아니더라는...^^;;

로드무비 2006-04-24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피버피치가 더 궁금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