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폐인의 하루 - 이 시대의 영원한 화두, 게으름에 대한 찬가
베르너 엔케 지음, 이영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0월
품절


폐인을 자처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그것조차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자신을 치장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오래 전 자신을 詩만 쓰는 무능력자 혹은 폐인임을 자처하며 만나면 김밥 한 줄 값 내지 않던 위인이 자신의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출강하고 있으며 새 소설을 한 권 출간한 것을 며칠 전 아침 알라딘 신간 소개 코너에서 알았다.
사람들 앞에서 죽겠다고 우는 소리를 해놓고 자신에게 유익한 일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몰래 하는 사람이 '자칭 폐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만화일기의 주인공 '축 늘어진 하로'는 어떨까?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 소개

언제나 이발관에 갈 시기를 놓쳐 머리 한 올이 축 늘어져 있는 주인공 하로, 동심을 나타내고 싶어 모자 챙을 뒤로 하여 쓰고 있는 하로의 술꾼 친구 프랑크. 머리 꽁지에 리봉을 맨 하로의 동거녀 주지......뭐 이런 식의 인물 소개.
등장인물 페이지를 보고 본문 몇 장을 들춰보면 "아, 나도 이런 책은 낼 수 있겠다!"하는 의욕이 불타오르는 것도 이 책이 파놓고 있는 함정이다.

-- 5월 12일, 신문광고란을 꼼꼼히 읽다.
'배우는 아름다운 거울을 찾는다'라는 말풍선.(29쪽)

폐인이 즐겨 찾는 곳으로 동네의 공원 벤치만한 곳도 없다.

-- 아, 태어나지 말 것을......
"너 요즘 어디 사니?"
"변두리 중심지."(49쪽)

책 맨 앞에 소개된 축 늘어진 하로의 수기,
'올해는 엿같았다. 그렇긴 해도 몇 가지는 쪽지에 메모해 두었다.'

--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라 지쳤다. 사람들은 언제나.....무엇인가 중요하지 않은 것을..... 놓쳤다는 느낌을 받는다.(150쪽)

침대에 등짝이 자석처럼 들러붙어 하루를 보내는 생활.
"이런 하루도 하루가 될 수 있다니 놀랍다"라고 썼던 어느 작가가 있었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프 디터는 늘 아들에게 몽둥이 찜찔이래"
"어른이란 돼먹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이야."(167쪽)

주지와 친구 민헨의 대화.
그녀들을 구분할 수 있는 건 나비 리본의 위치.

저 대사에 공감한다. 어른이란 돼먹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 나만 보더라도 그건 확실한 사실이다.

"같이 사는 여자보다 이 세상에서 더 재미없는 여자는 없을 거야."
"......바로 그걸 거꾸로 상상해봐."(220쪽)

그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자신의 방 침대와 거리와 극장과 술집이 고작. 그런데 희한한 건, 너무나 단순하고 비슷한 그림과 대화와 독백이 계속되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처음 보는 그림처럼 새롭다는 것이다.

(하도 비슷한 그림들이다 보니 말풍선과 페이지가 바뀌었는데 그냥 두련다. <행복한 폐인의 하루> 포토리뷰니까 어쩐지 그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각각의 폐인들과 다른 병명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털어박힌 수많은 창문과 몇 개 안되는 가게가 드문드문 보이는 골목들.

-- (12월 8일) 나는 오늘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성인 1마르크, 어린이 1마르크 50페니히라는 표찰을 내건 거지에게 묻는다.
"도대체 왜 어린이가 어른보다 돈을 더 줘야 하나요?"
"어른이 되면 뭔가 득을 보는 게 있어야지."(288쪽)

어른이 되면 뭔가 득을 보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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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3-2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 늘어진......압권이네요...^^

mong 2006-03-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지난주에 이책이 읽고 싶더라구요 ^^

로드무비 2006-03-2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이 만화 마음에 들어요.ㅎㅎ

메피스토님, 머리 한 올로 캐릭터 설명이 끝나니, 대단하지요?ㅎㅎ

에로이카 2006-03-25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는 오히려 그런 폐인이 되고 싶어요. 챙길거 다 챙기는...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하기 쉬운 무언가를 열심히 하기도 하지요. 제 경우만 봐도... 로드무비님 말씀을 왜곡하는 건 아니구요.. 어쨌든 이 참에 의욕을 실행으로 옮겨보시는 건 어떨지... 댓글과 추천.. 빠밤...

hnine 2006-03-2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눈에 들어오네요. 재미있겠어요.

kleinsusun 2006-03-2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김밥 한줄 값도 안내던 자칭 폐인이 그동안 정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군요. 그분이 낸 소설이 뭔지 궁금해요.^^

비로그인 2006-03-2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반가운 문자들이 보이네요..ㅎㅎ
혹 독일에서 발견하게 되면 조카에게 선물해야겠다는 결심불끈..^^

숨은아이 2006-03-2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먹지 못한 어린아이가 왜 뭔가 득을 봐야 할까요? ^^

승주나무 2006-03-25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란 돼먹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에 올인..
저는 돼먹은 어린아이가 되고 싶어요^^

재밌네요
근데 "같이 사는 여자보다 이 세상에서 더 재미없는 여자는 없을 거야."
를 거꾸로 하면 뭐가 되나요? 진짜 궁금해서^^;;;;;

로드무비 2006-03-26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같이 사는 남자보다 이 세상에서 더 재미없는 남자는..."이겠지요.^^
나이 서른, 가능성이 울울창창한 나이입니다.
꼭 돼먹은 어린아이로 사시길......^^

숨은아이님, 돼먹지 못했으니까요.ㅎㅎㅎ

사야님, 가끔 나오는 독일어 보고 '사야님은 이 글들을 아시겠네?'
생각했답니다. 꽤나 침투하신 님이로군요.^^

수선님, 살짝 알려드릴까?
비밀을 보장해 준다면.....(나처럼!(''))

hnine님, 제목부터 흥미롭죠?
단숨에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cacophonyinme님, 오오 저와 같은 생각.
사실은 실속형 인간인 그들이 부러웠다는......
중요한 문제는 보자기로 덮어두고 쓰잘데기없는 일에
매진하는 부분도 제 경우네요.ㅎㅎ
댓글과 추천에 대해 신경이 미치신 것 아주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저도 '추천의 생활화' 이후 방이 아주 번듯해졌거든요.^^



플레져 2006-03-2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 되면 득을 보는 게 정말 없었나... ㅠㅠ
싸늘한 반전이어요. 흑.

nada 2006-04-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인지 저는 폐인을 보면 항상 feign이 떠오르더군요.

로드무비 2006-04-1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묘하네요.^^

로드무비 2006-04-17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플레져님, 싸늘한 반전이라, 좀 그렇죠?^^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 버튼 지음, 윤태영 옮김 / 새터 / 1999년 12월
구판절판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에 나오는 아이들을 피규어 세트로 모두 가지고 있다. 이 아이들이 책갈피 속에 직접 모습을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포토리뷰가 되지 않겠나 하는 단순무식한 생각으로 올리는 리뷰.

이 책은 유아블루님께 빌렸다가 팀 버튼의 아이들이 우리 집이 더 살기 좋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할수없이 블루님이 내게 양도하신 것. 펀숍에서 피규어가 네 세트인가 나왔을 때 침을 질질 흘렸더니 생일선물로 한 세트 주문, 결국 세 아이를 입양해 주시기까지......

(**클릭하면 큰 화면으로 본문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스미스 씨 부부에게 로봇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따뜻한 체온도, 안아주고 싶은 귀여움도, 부드러운 살갗도 없는 아기. 머리를 뚫고 나온 전선들과 튜브. 그렇게 누워서 멍하니 무언가를 바라보는 아기는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11쪽)

은회색으로 머리 뚜껑 속의 꼬불꼬불한 골통까지 얼마나 리얼한지 피규어로만 보면 제일 인물이 좋은 아기입니다.

'로봇 소년은 자라나 어엿한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가끔씩 쓰레기통으로 오해를 받긴 했지만...'이라는
엔딩 문장도 멋집니다.

--소녀가 있었습니다. 선 채로 무엇인가를 노려보던......
사람이든 물건이든 아무튼 그 무엇인가를......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당신을 노려봅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23쪽)

바야흐로 봄이고 원피스 자락은 바람에 나부끼고
기다리는 이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고...
소녀는 떠나고 싶은 겁니다. 멀리멀리.
(그렇지 않을까요?)



마침 집에 있는 우체통과 이층버스 우정출연...

--그 누구도 둥근 치즈 소년과는 함께 놀려 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포도주만이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81쪽)

그나마 포도주를 병째 술꾼 할아버지에게 빼앗기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누워 있는 둥근 치즈 소년. 어른들은 도대체 왜 그래요?

--바늘꽂이 여왕, 그녀의 삶은 그리 편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좌에 앉을 때면 언제나 수많은 바늘들이 그녀를 찔러댔기 때문입니다.(99쪽)

왕좌가 바늘투성이라는 건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자신이 왕좌에 앉아 있는 동안 억울한 일로 우는 백성이 한 명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것이 여의치 않음으로 인해 가슴에도 네 개의 대못이 박혀 있는 건 아닌지......(꿈보다 해몽)

--할로윈 날에 굴 소년은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119쪽)

굴 소년의 사탕 주머니가 너도나도 사람들이 건네준 과자와 사탕으로 불룩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쓰레기소녀와 노려보는 소녀와 눈이 많은 소녀의 즐거운 간식시간. 굴 소년에게 협찬 받은 과자와 사탕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나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3=3=3
(앙증맞은 미니 다기 세트는 사야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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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3-2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어, 제가 좋아하는 굴 소년!!

mong 2006-03-2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표 인형 놀이네요 ^^
책 분위기와 달리 밝고 귀엽기만 해요

로드무비 2006-03-2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재밌었나요?ㅎㅎ

낡은구두님, 굴 소년의 넙데데한 얼굴이 마음에 들어요.^^

waits 2006-03-2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멋진 피규어들이... 부러워요..^^
과제 할 것도 많은데, 자꾸 책장에 꽂힌 굴소년에게 눈길이...--;;

검둥개 2006-03-2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걸 언제 다 모으셨나요? ^ .^

로드무비 2006-03-2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처음엔 두 세트만 살 생각이었는데
마침 생일 무렵이어서 나머지도 강탈하다시피
선물받을 수 있었어요.ㅎㅎ

나어릴때님, 당분간 공부에만 전념하시겠다더니.ㅎㅎ
그래도 쉬엄쉬엄 하세요.
능률이라는 게 있잖아요.^^
피규어 나왔다는 메일 받았을 때 얼마나 흥분했는지 몰라요.^^

urblue 2006-03-2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규어 모두 장만하신 건 알았지만 상황 연출이 가능한 각종 소품까지 가지고 계시다니! 역시, 로드무비님 아니면 누가 가능하겠어요. 재미난 포토리뷰입니다. ^^

코마개 2006-03-2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팀버튼의 책이네. 이 책 내용도 좀 시니컬 한가요?
답변 여하에 따라 살지 말지 정해야지. 씨니컬하다면 사고, 요즘 맛탱이간 팀버튼의 세상과의 타협이 보인다면 안사고...답변주시라.

Mephistopheles 2006-03-2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올망졸망 깜찍한 리뷰를 올려도 되는 겁니까...?? (버럭)

로드무비 2006-03-2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런데 거시기 뭐 잊은 거 읎어요?('' )(.. )
제가 또 평소 워낙 올망졸망하고 깜(끔)찍한 인간이라...=3=3=3

강쥐님, 글쎄요, 전 무지 마음에 드는데.
원하시는 시니컬의 강도가 어느 만큼일까?
아무튼 사게 되면 땡스투 누르는 거 잊지 마세요.=3=3=3

블루님, 최소한의 소품만 동원했습니다.
내용으로 승부하기 위해! 히히~~


히피드림~ 2006-03-2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어쩜 이렇게 기발한 리뷰를 쓰실 생각을 하셨을까요?^^
피규어가 참 정교하네요.

로드무비 2006-03-2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펑크님, 오늘 아침 눈을 뜨자 문득 떠오른 생각이에요.
이 피규어들은 특히 정교한 편이네요.^^

반딧불,, 2006-03-21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에 기발하시고 멋지시고^^

하루(春) 2006-03-2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고 싶어.. 사고 싶어요.

비로그인 2006-03-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정말 기발한 포토리뷰예요
거기다 찻잔이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로(?)도 쓰이는군요..ㅎㅎ

날개 2006-03-2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아이디어로군요..^^
저번부터 탐나던 피규어인데 이리보니 더 탐나네요~ㅎㅎ

로드무비 2006-03-2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좀더 풍성하게, 욕심을 부려볼 걸 그랬나요?
떠오른 아이디어가 반가워서 서둘렀더니...
피규어는 정말 장만 잘했다 싶어요.^^

사야님, 저 아이들 모두 한잔씩 돌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주하가 잘 가지고 놉니다. 다음에도 부탁드릴게요.^,.~=3=3=3

하루님, 사세요. 눈 질끈 감고.
그런데 거의 품절인 걸로 아는데...=3=3=3

반딧불님, 조금 기발하긴 하죠?
알라딘의 '재밌는 포토 리뷰 이벤트'를 염두에 둔 거예요.
추천 많이 눌러주세용.^^

하루(春) 2006-03-2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

로드무비 2006-03-22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 그렇죠?ㅎㅎ

2006-03-22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3-2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틀즈님, 님이 남기신 글 보고 좀전 부랴부랴 서랍 정리했습니다.
'의도적으로 가볍게 처리하는 이야기' 다시 꺼냈어요. 그대로......ㅎㅎ
뭐 빼거나 숨길 글이 하나도 없더군요.=3=3=3
제가 좀 까불어도 이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아침 인사 자주 나눌까요?^^

paviana 2006-03-2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침에 우엇을 드시길래 저런 깜찍발랄한 생각이 드시는거죠? ('' )(..)

로드무비 2006-03-2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에이 뭐, 저 정도에.....
제가 가진 게 저런 것뿐이거들랑요.('' )( ..)

플레져 2006-03-23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 아이디어! 굿 리뷰! ^^
이 책 안보려고 했는데... (이유는 없어요. 그냥요 ㅎㅎ) 보고 싶어지네요.
일단 보관함... 노려 보던 소녀는 얼른 시선을 거두시길. 황사 바람 몰려와요~ =3

로드무비 2006-03-25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안 그래도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씌웠어요.
앙탈을 부리더군요.ㅎㅎ
(이 책 꽤 재밌어요!)

라주미힌 2006-03-3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읏..포토리뷰 되셨네요.. 냐하. 축축~!

nada 2006-04-1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미쳐 버려..너무 귀여워욧!!!

로드무비 2006-04-1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것 좋아하시는구나.
과학실 미니어처 때 알아봤지만...^^

라주미힌님, 1등을 노렸건만.ㅎㅎㅎ

봉이^^ 2009-09-1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소년 아이들에게 뒤 늦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굴소년 아이들 어떻게 사셨어요??

로드무비 2009-09-16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이 님, 펀샵(funshop)에서 샀는데(검색창에 치면 가게가 나옵니다)
지금도 팔고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우주에먼쥐 2010-12-0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책에서 봤었던 심오한 캐릭터들이 피규어로 있네요.. +_+;
정말 귀엽네요!! ㅋㅋ 갖고싶다..

피요도르 2010-12-1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펀샵가봤는데 없고 일본아마존엔있네요 ㅠㅠ 가격이 ㄷㄷㄷ
갖고싶네요 ㅠㅠ 사진잘보고가요 ^^
 
순정만화 전2권 세트 강풀 순정만화 5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강풀의 두 권짜리 장편 <순정만화>를 읽었다.
'순정만화'라는 곧이곧대로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책값이 너무 비싸서 등등의 이유로
계속 미루다가 보는 사람마다 울었다는 리뷰와 페이퍼를 올리는 통에
어느 외롭고 허전한 밤, 주문하고 말았다.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아침마다 마주치는 18세 소녀와 30세 순진한 띠동갑 청년이
처음에는 데면데면 쳐다보다가 서로의 눈에 들고 마음에 스며드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좋았다.

헤어지자는 말에 한마디도 묻지 않고 연인을 떠나보낸 처자가 찾아와 담배를 피우는
그 공원 벤치도 좋았다.
어느 해인가 심야의 합정동 놀이터에서 내 몫의 남자와 함께 그네를 타며 캔맥주를 우그러뜨리고
남부럽지 않게 나무 밑을 빙빙 돌며 술래잡기를 하던 날도 있었지.
내 생에도 이런 날이 있을 줄이야,  하면서......

사랑에 빠지면, 연인을 생각하면 콩나물값을 깎을 수가 없다고 썼던 소설가 김채원의 글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지고 최고로 순결하고 예쁜 여자가 되고 싶다고 했던가?
그 글을 읽을 당시 나는 콧방귀를 뀌었는데, 다행히 딱 한 번 그런 마음상태를 경험하긴 했다.
(나는 아무리 사랑에 빠지더라도 콩나물은 한 줌 더 얻어오고 싶더라.)

남편이 자하문 밖 셋방에 자취할 때 카나페라는 생뚱맞은 이름의 안주를 직접 준비하여
우르르 함께 술집으로 노래방으로 몰려다니던 친구들을 부른 적이 있었다.
나도 그 중 1인이었다.
축구경기를 보며 카나페와 치킨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버스가 끊기기 전 우르르 일어섰다.
나는 일어서고 싶지 않았지만 눈치가 보여 할 수 없었다.
우리 집 골목에 들어서던 나는 갑자기 뭐에 홀린 듯  택시를 불러 타고 다시 그에게로 갔다.
그가 뛸 듯이 기뻐하며 나를 맞았다.
그 장면이 우리가 찍은 순정영화의 클라이막스로 기억된다.

거절 같은 건 절대 못할 것 같은 어리숙한 청년이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의 확신 가운데
문득 단호해지고 용기가 충천한다.
야근을 부탁하는 상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야근이요?   안되겠습니다.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내일까지는 책임지고 완수하겠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소중한 것이,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강풀의 <순정만화>를 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관계가 소중해지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놈의 사랑 때문에 흐느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문득 눈빛이 맑아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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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3-1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니터로 나오자마자 열시미 보았었어요.
만화 정말 좋죠??

mong 2006-03-1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에 홀린 듯 택시를 불러 타고 그분께 가신
로드무비님이 더 사랑스러우신데요~

Mephistopheles 2006-03-1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회생활 초반에 저말을 했더니 그 스키타는 차장이 대놓고
왕따를 시키던걸요..ㅋㅋㅋ(아 또 글내용과 상관없는 댓글이네..)

비로그인 2006-03-1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택시를 타고, 로맨틱한 로드무비를 찍으셨군요! 흐흐.
옳소! 옳소! 두말하면 잔소리죠.
아뛰, 개코나 야근! 고까이꺼 절대 몬하죠. 아니, 안 해요. 왜 해요? 그 사람을 만나는 날이면 퇴근 버스조차 왜 글케 느리게 달리는지, 아주 속이 터져 죽겠다구요, 크헤헤헤..@,.@

반딧불,, 2006-03-1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복돌이님 댓글 땜에 부러워서 죽겠습니다.
정말 정말 궁금타^^

blowup 2006-03-1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뛸듯이 기뻐하며,라는 표현이 예쁩니다. 로드무비 님은 늘 시큰둥한 척 하시지만, 저런 표현은 여간한 순정파가 아니면 못 씁니다.

로드무비 2006-03-1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복돌이님 정말 귀여워 죽겠어요.ㅎㅎ

복돌이님, 인생의 큰 기쁨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시죠?
을매나 다행인지 몰라요.
막연하게 저 같은 타입이 아닌가 생각했거든요.연애가 좀 어려운...
그런데 그런 발언을 막 하고 다녀도 되남유? 주책!=3=3=3

메피스토님, 에이, 그러게 눈치가 좀 있어야지요.
리뷰 내용과 상관있는데요, 뭐. 삼천리로 빠져서 그렇지!=3=3=3

mong님, 호호~ 제가 생각해도 저때 제가 좀 귀여웠어요.^^

반딧불님, 전 만화든 글이든 모니터로 잘 못 읽겠어요.
이 만화는 아주 잘 샀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드무비 2006-03-1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제가 늘 시큰둥한 척했다고요? 은제?('' )( ..)
오랜만에 딱 마주쳤어요.
너무 반가워요.^^

Mephistopheles 2006-03-1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큰둥하다는 표현에 이 캐릭터가 생각 났습니다.



투덜이 스머프입니다..=3=3=3=3


날개 2006-03-1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레리 꼴레리~ 나무밑 술레잡기래~~~~>.<

플레져 2006-03-1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정만화 연재할 때 본건데요,
청년이 편의점 알바 아가씨를 좋아해서 자신의 손목에 바코드를 그려서 내밀었던가? 그랬는데, 겨우 백원짜리라고 아가씨가 찍어줬던...암튼 이런 야근데...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웃다가 짠해진 장면이었어요.
로드무비님 리뷰랑 이 만화랑 넘 잘어울려요 ^^

로드무비 2006-03-1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별것 아닌 제 이야기도 슬쩍 넣어주니까
좋아들 해주시네요. 헤헤~
만화 읽는데 문득 생각나서......
그리고 바코드 그려서 내미는 장면은 없었는데?
알바 청년 무지 귀엽더군요.^^

날개님, '나무 밑에서 남자랑 빙글빙글 돌아보지 않고 청춘을 말하지 말라'
는 유명한 말 못 들어봤수?ㅎㅎ

메피스토님, 시큰둥도 좋고 투덜이도 좋아요.
딱 저네요.^^

니르바나 2006-03-13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인생에는 이런 결정적인 순간들이 가끔 있어주어야
화학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런 비등점들이 있어주어야 인간이나 자연이나 역사나 진화한다니까요. ^^

비로그인 2006-03-1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왠지 로드무비님은 그 날을 기억하며 책장수님과 술잔을 기울일 거 같아요..^^
(그리고 나무님말씀에 올인..ㅎㅎ)

urblue 2006-03-1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과거가 있으셨단 말이군요! 좋아요 좋아~ ㅎㅎ

2006-03-13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DJ뽀스 2006-03-1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풀님 만화 재미있죠. ^^" 울다가 웃다가...바보 보고 진짜 많이 울었답니다. ㅠ.ㅠ
(바보는 강풀님이 다음에서 연재하실때 실시간으로 봤어요. 회사에서 몰래 보면서 눈 벌개지고 눈물이 나서 매번 수습하느라 혼났답니다.)

kleinsusun 2006-03-13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멋져요, 멋져! 넘 화끈해....^^
근데...님의 글을 읽으며 왜 이리 가슴이 벅차죠?

"그놈의 사랑 때문에 흐느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문득 눈빛이 맑아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저도......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고, 또....흐느적 거리지 않고 눈빛이 맑아지고 깊어지면 좋겠어요.^^

로드무비 2006-03-13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가슴이 왜 벅차실까요오?!
님이야말로 정말 멋진 연애와 결혼을 완성시킬 수 있을 거예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DJ뽀스님, <바보>도 그렇게 좋나요?
아이고 보관함이 또 늘게 생겼네요.
전 '궁서체'에서 엄청 웃었답니다.^^

깍쟁이같은 느낌의 도시님, 왜 상자가 하루 늦게 도착했을까요?
아무튼 잘 도착했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믿으세요, 그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블루님, 뭐가 좋단 말인교?ㅎㅎ
청순한 저의 이미지와 좀 안 맞는 행동이었죠?=3=3=3

사야님, 술잔은 항상 기울이는 것.
책장수님은 오늘 늦게 옵니다.
아무튼 지가 순정파라는 말씀이쥬?^^

니르바나님, 결정적인 순간과 화학적 발전, 정말
멋진 연결입니다.
비등점과 진화도요. 헤헤~
님의 결정적인 순간도 듣고 싶네요.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산사춘 2006-03-14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경험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산사춘...
훔쳐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산사춘 2006-03-14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대신 눈만 디럽게 높아지잖아요!

로드무비 2006-03-14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우리 보면 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눈을 버렸다 할지도 모르는데?!=3=3=3
그 놀이터(홀트 바로 뒤)에서 산사춘님도 꼭 한 번 재연해 주세요.^^

조선인 2006-03-14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저도 휴가를 빙자하여 어제 다시 본 만화에요. *^^*

비로그인 2006-03-1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너무 멋지네요.

근데 전 흐느적 거릴 때가 더 많은것 같아요 --;

로드무비 2006-03-1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저도 저 말 마음에 들어요.
불쑥 나오는 대로 뱉고보니......
그리고 때로는 좀 흐느적거려 주는 데 인생의 맛이 있는 것 아닐까요?^^

조선인님, 사흘 휴가 받으셨다고요?
아니 지금 서재에서 뭐하세요? 나가서 영화도 보고 신나게 노셔야지요.^^

oooiiilll 2006-03-1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이야기가 순정만화보다 낭만적입니다.

로드무비 2006-03-1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트님, 별 이야기 안했는디.ㅎㅎ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03-17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1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17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3-1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나다' 순서가 아니고요?ㅎㅎ
그러고 보니 기억납니다.
근사한 대사예요.^^

2006-03-17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17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18 0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18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19 0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3-19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 면사포님, 성글어진다, 라는 표현이 마음에 쏙 들어옵니다.
고맙습니다.
님도 주말 쾌적하게 알차게 보내시고요.^^
 
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아사다 지로의 소설 중 처음으로 읽은 작품집이다.
나는 왠지 이 작가를 오해하고 있었다. 달짝지근한 연애소설이나 써서 이름을 얻은 사람으로.
연애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취향이 확실해서 로맨스 소설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 중 '수국꽃 정사'와 '나락'을 특히 재밌게 읽었다.
그러면서도 '장미 도둑'을 표제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장미 도둑'은 화장으로 치면 맨살이 보이는 듯한 투명한 화장법인데 나이브하면서도 울림이 있다.

친애하는 대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메이 프린세스 호에게,로 시작하는 편지 형식도 그렇고
이국 품종의 장미들이 지천인 정원이 딸린 집에서 아름다운 어머니와 사는 어린 소년이
세계를 항해중인 아빠에게 떠듬떠듬 영어로 작문을 하다시피 써서 띄우는 편지라니
가벼우면서도 애상이 느껴진다.

남편이 옆에 없는 젊고 아름다운 엄마라고 하면 이 책 속에 나오는 '히나마츠리'라는 단편도
빠트릴 수 없다.
12세의 소녀, 소녀를 극진하게 보살펴주는 24세의 이웃집 우직한 청년,
술냄새를 풍기며 가끔 새벽에 귀가하기도 하는 36세의 엄마......
'장미 도둑'과 달리 '히나마츠리'에는 구차하고 고단한 생활의 냄새가 물씬하지만
엄마를 짝사랑하는 이웃집 아저씨와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소녀라니,
웃음이 절로 난다.

'나락'의 주인공은 임원 오찬 모임 후 3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승강기가 미처 도착하지 않은 채  문만 열린 것을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추락사한
52세의 총무부 직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승강기가 도착하지 않고 문만 열린 것을 분명 알았고
걸음을 옮기면 시커먼 엘리베이터 속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가 웃는 얼굴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다.
그에게는 또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나락인 줄 뻔히 알면서도 웃으며 발을 옮기다니, 너무나 매력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수국꽃 정사'에는 전날 하루종일 뺑뺑이를 돈 평일 대낮 비오는 유원지의 대관람차,
혹은 간밤에 단체예약손님을 정신없이 치러낸 시골 요정의 룸 같은  피로와 퇴폐가 덕지덕지 묻어난다.
그런데 인생 막장에 이른 중년의 고독끼리 스산하게 만나는 장면에서 피어나는 온기가
그렇게 따뜻한 풍경을 연출할 줄이야.

밤새워 술을 마시고 아침 일찍 북창동의 한  전주국밥집에 해장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색동 한복과 무릎까지 깡뚱한 치마 밒으로 하얀색 속바지를 입고 다소 요란한 화장으로
손님을 맞던 여종업원들이 막 세수를 마치고 티셔츠 차림에 떼꾼한 눈으로 우리들을 맞았다.
점심시간에 가면 기다리는 손님이 하도 많아서 뜨거운 국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밥을 퍼넣다가, 종업원들의 맨얼굴과  고요한 적막 속에 콩나물국밥을 먹고 있자니
이상하게 쓸쓸하면서도 만족스러웠던 기억.
생의 이면을 흘낏 본 것 같은......

'수국꽃 정사'는 까맣게 잊고 있던 콩나물국밥집에서의 그날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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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3-1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강장 사건이 매력적인 설정이라니 로드무비님도 참..ㅎㅎ
읽고 싶어지는 책이고 리뷰예요
갑자기 저도 해장하던 아침의 어느 식당도 생각나고..^^

로드무비 2006-03-1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술이 덜 깬 채 함께 해장국 먹으러 가던 친구들이 보고 싶네요.
그리고 '승강장'을 '나락'으로 바꾸면 매력적이지 않은가요?^^

mong 2006-03-1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도 아사다 지로를 읽으셨군요
괜히 반가워요 ^^

로드무비 2006-03-1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네 권 확보해 두었습니다.
몽님도 아는 분이 빌려주셨어요.ㅎㅎ

하이드 2006-03-1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걸로 처음 아사다 지로를 시작했었네요.
'철도원'도 재밌는데 ^^

비로그인 2006-03-1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다 지로가 너무 좋아요.....;;;;;;;

플레져 2006-03-1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다 지로와 로드무비님과 궁합이 잘 맞으리라 예감했습니다 ^^

sudan 2006-03-1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취향이 분명하신 분이셨군요. ^^; 에스에프, 로설, 추리소설 등등의 장르 구분 없이 소설쪽 취향이 늘 불분명했던 저이지만, 아사다 지로는 여태껏 못 읽어봤어요. 익히 들어왔던 이름이라 뭘로 시작할까 생각했는데, 이 책으로 결정.

로드무비 2006-03-1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예. 비교적 그런 편인가 봅니다.
다른 책은 저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 재밌었으니
결정에 찬성합니다.^^

플레져님, 찰떡궁합은 아닌데 괜찮은 편이었어요.^^

비숍님, 아사다 지로 좋아하시는군요.^^

하이드님, <철도원>도 바로 읽으려고요.^^

Mephistopheles 2006-03-1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나물국밥은 서울대입구 전철역 부근에 있는 `완산정'이라는 집이 참 맛있습니다.
모주도 곁들여서 드셔보세요....^^ (진짜 뜸금없는 댓글이군요 ㅋㅋ)

DJ뽀스 2006-03-1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즌호텔이 괜찮다고 하던데요. 저도 아직 이 작가 작품 하나도 못 읽어봤답니다. "파리로 가다"는 제목에 끌려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는 입고된 후에 나몰라라 해버린..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지요. ㅋㅋ

sandcat 2006-03-1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해장하러 가던 청진옥은 해장국 맛이 아닌 분위기 때문에 갔었던 것 같아요. 옆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고... 역시 딴 소리지만 광화문 쪽 삼백집 콩나물국밥도 맛있어요, 모주는 그저 그렇지만.

로드무비 2006-03-1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샌드캣님, 모주가 전 맛있는 줄 잘 모르겠어요.
서울막걸리 정도가 딱인데.....
청진옥은 못 가봤고, 삼백집은 가보고 싶네요.
북창동 저 집 전주콩나물국밥만큼 맛있는 건 아직 못 먹어봤습니다.^^

DJ뽀스님, 프리즌 호텔도 이 작가 것인가요?
도서관에 신간 신청해 놓고 나몰라라, 저도 그런 경험 있습니다.
무슨 심뽀인지 몰라요. 그죠? ㅎㅎ

메피스토님, 완산정이요?
기억할게요.ㅎㅎ

kleinsusun 2006-04-0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지로 아저씨 책을 처음 읽으셨군요.
사실...<장미도둑>이 최고라 생각됩니다. 특히 "나락"은... 섬뜩하면서도 공감되죠?
<낯선 아내에게>, <러브레터> 이런 단편집들도 좋아요. 근데...장편들은 단편에 비해 쩜 별로라 생각되요. 전 지로 아저씨 짱 좋아한답니다^^

로드무비 2006-04-05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심각하지 않게 무거운 이야기들도 풀어내더군요.
감각적으로.
짱 좋아하실만합니다.^^
 
엘리베이터 여행 풀빛 그림 아이 3
파울 마르 지음,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하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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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층이라 엘리베이터를 잘 타지 않지만 시장바구니가 무거울 때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머리를 헤집어 눈에 띄는 새치(!)를 뽑기 시작한다. 잡힐 듯 자꾸 손에서 빠져나가는 새치 두 개를 뽑으려다 맨 꼭대기 층까지 그냥 올라갔다 내려온 적도 있다.

빨간 머리 소녀 로자, 넙데데한 얼굴에 찌푸둥한 표정이 아주 눈에 익다. 학교가 그리 즐거운 곳도 아닌데 나는 어느 해인가 독감에 걸렸던 사흘을 제외하고 졸업할 때까지 결석 한 번 해본 적 없는 성실한 소녀였다. 아니 성실하다기보다 너무 수수하고 무던한......그런 내가 내심 지겨웠던가?

부모님이 외출하신 어느 날 로자는 밤늦도록 잠 못 이루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본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고 꽃무늬 벽지의 방 속에는 대머리 땅딸보 아저씨가 아주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다.

멋진 왕자님이 짠~하고 나타나지 앉은 것이 마음에 쏙 든다.
엘리베이터 방의 소박하고 쾌적한 인테리어도.


"드디어 왔구나. 이제 여행을 떠나도 되겠다. 이리 와서 앉으렴."
로자가 7층을 누르고 소파에 앉자 땅딸보 아저씨는 케이크를 자기 것은 아주 두툼하게, 로자의 것은 얇게 자른다.
이 대목도 마음에 든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내것은 아주 두툼하게, 다른 사람 것은 아주 얇게!

케이크와 딸기주스를 다 먹고 나자 희한하게도 엘리베이터는 7층에 딱 멈췄어.그리고 문이 열리자 펼쳐진 건 벨러스호프 씨네 집이 아니라 일곱 마리 까마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그리고 삽과 곡괭이를 걸쳐맨 여섯 명의 난쟁이.(한 명은 어디 갔을까요?)

"요 게으름뱅이야, 이리 나와! 우린 일하는데 넌 빈둥거리다니!"

여섯 난쟁이가 로자와 땅딸보를 발견하고 달려와 소리쳤다나 어쨌다나.

그 다음주 저녁에는 또 엘리베이터로 3층을 여행했어. 세 쌍둥이가 3차선도로 위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풍경이 펼쳐졌지.

아니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트에는 그런 땅딸보 아자씨가 안 계신가? 로자처럼 누르지 마라는 지하층(U)은 안 누르고 그와 더불어 언제까지나 먹고 마시며 신기한 구경을 하고 인생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아니 로자야,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아빠의 눈에 띄어 집으로 돌아가는 로자.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새치(!)를 뽑느라 낑낑거리다가 그런 나를 보며 킬킬거리는 땅딸보 아자씨와 거울 속에서 눈이 딱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야지.

"아자씨, 나도 좀 데려가 주면 안 될랑가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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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3-1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도 흰머리 많아요 ㅡㅡ;;;

로드무비 2006-03-1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흰머리가 아니고 새치!('' )(.. )

Mephistopheles 2006-03-1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에 새치는 안나는데 코털로 간간히 보이는 흰털은 대체 뭔가요...??

로드무비 2006-03-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으 코털 사정까지는 모르겠어라. 메피스토님!=3=3=3

sudan 2006-03-1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베이터 방 아늑하고 좋네요. 케이크는 자기것을 두껍게 자를때 자르더라도, 좀 덜 티나게 해야하는거 아니에요? 저건 너무. 크크.

로드무비 2006-03-11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너무 표가 나는가요? ㅋㅋ

2006-03-11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3-1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넘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과 이야기!
조카한테 줄 책 선물 야금야금 모으고 있는 중인데,
요것도 넣을래요! (세 권 모았음 ^^)
로드무비님, 제가 새치 엄청 잘 뽑아요.
이왕이면 엘리베이터에서 절 만나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