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는 많아도, 뿌리는 하나
거짓으로 보낸 젊은 시절 동안
햇빛 아래서 잎과 꽃들을 흔들어댔지
이제 나는 진실을 향해 시들어가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파커 J. 파머의 책(<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을 읽다가 인용된 예이츠의 시를 만났다.
예이츠의 시집과 모든 저서를 검색하니 품절이나 절판된 것들이 많다.
어렵사리 한 권을 헌책으로 구했고 최근에 발간된 두꺼운 자서전은
보관함에 담겼다.
'사회적 관심사를 가지고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에 합류하는 길을 찾았다'(98쪽)고
파커 J. 파머는 쓰고 있는데 1969년 토머스 머튼의 자서전 <칠층산>을
헌책방에서 구입해 읽고서였다.
어느 친구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추천했는데 그 책이 꽂혀 있어야 할
책꽂이에 공교롭게도 <칠층산>이 있었던 것이다.
토머스 머튼은 그 한 해 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수도사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칠층산>이 출간되었을 때 겟세마네 수도원은 머튼과 함께 수도생활을 하려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파커 J. 파머는 21년이나 늦게 도착한 바람에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50년 넘게 지금도 토머스 머튼의 모든 저작을 찾아 읽는 중이란다.
"여러분, 영적인 삶을 살기 전에, 삶을 살아야have a life 합니다"는 머튼의 말이
그의 가슴에 내리꽂힌 것이다.
두 사람은 시를 좋아한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시를 썼다는 공통점도 있다.
<칠층산>을 나는 올해 봄에 읽었다.
토머스 머튼이 일곱 살일 때 어느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취직한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예배실 스테인드글라스 속 '닻' 문양에 마음을 빼앗겨 온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싶었다는 것과,
1930년 15세 즈음에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만나 영혼이 흔들리고
23세에 컬럼비아대학 서점에서 그의 시집을 외상으로 사서 2년 후에 갚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머튼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논문을 쓰면서 시인이 생애 말년에 마음으로 받아들인
가톨릭을 자신의 종교로 결정하고 이윽고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겟세마네 수도원에서 평생을 기도와 명상과 집필에 몰두하다가
병으로 입원했을 때 한 간호사에게 마음을 빼앗겨 세상으로 나올까 고민도 했다는데!
(그런 점에 더욱 이끌린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에는 '애착의 아이러니'라는 저자의 친구
샤론 샐즈버그의 글을 통해 달라이 라마의 일화가 각주로 가볍게 소개되어 있다.
트라피스트회에서 만든 치즈를 받고 "과일 케이크'를 받았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고
달라이 라마가 한마디 한 모양인데...
(2015년 그녀가 겟세마네 수도원을 방문했을 당시 전해 들은 이야기인 듯.)
파커 J. 파머는 그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덧붙인다.
"버번에 재운 트라피스트 과일 케이크 몇 조각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