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기의 왕 / 임지은



뒤통수가 사라진다 누워 있었기 때문에

떠다니는 하품을 주워 먹는다 누워 있었기 때문에

아침이 돼서야 이를 닦는다

누워 있었기 때문에 ‥​

 

먹지 않고 걷지 않는다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늦겨울 봄볕처럼

아주 잠시 생겼다 사라진다

 

뭐든 중간이라도 가려면 가만히 있어야 하고

가만히 있기엔 누워 있는 것이 제격이니까

다른 걸 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안 하는 거다

 

? 누워 있으려고

 

그리하여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어디든

누워 있을 수 있게 된다

 

밥상, 난간, 동전뿐인 지갑

젖은 하루가 마르고 있는 빨랫줄

밥은 먹었어? 같은

질문이나

내 그림자 위에 포개진 다른 사람의 그림자까지

 

졸음을 데리고 와 같이

 

졸음은 죽음이 아닌데 코가 비슷하고

같은 베개를 나눠 쓰고

음음허밍을 하고

 

부서진 마음만 골라 딛고

 

이 방은 혼자 눕기엔 너무 넓으니까

때론 건조해서 코피가 흐르니까

누구도 마침표를 찍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이 시는 지금 누워 있고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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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묻은 빵 강성은

 

 

피 묻은 빵을 먹는다

입속에 피가 고인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피 묻은 빵을 먹는다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삶

배가 고프다

먹어도 배가 고프다

시계가 멈춘 것도 아닌데

내일이 오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빵

동네마다 빵집이 많고

아름다운 빵들이 진열된 환한 상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람들이 한 바구니씩 빵을 담고

값을 지불한다 피 묻은 빵의 값

뱀파이어는 피를 얼마나 많이 먹어야 할까

뱀파이어도 아닌데

나는 피 묻은 빵을 먹는다

입속에 피가 고인다

누구의 피일까

이토록 익숙한 맛은

 


세계가 불타는데 / 강성은

 

 

어느 해에는 사람들이

여자들의 머리채에 불을 질렀고

다음 해에는 여자들이

스스로의 머리채에 불을 질렀다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불은 여자들을 태우고 그다음 해에는 모두를 태웠다

그래도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에 타 죽은 줄 모르고

자꾸만 자기 머리채에 불을 질렀다

 

이상하게 몸이 차갑구나

불을 피웠는데 너무 빨리 꺼져서

머리를 잘랐는데 순식간에 길어져서

알 수 없는 이들이 자꾸 일어나서

춥고 불타는 세계가 동시에 펼쳐져서

 

쇼핑을 하다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밥을 먹다가 울음을 터트리고

수영장에서 투명해지는 몸을 보고는 어쩔 줄 모르고

불이 붙은 커튼을 걷으며

 

이렇게 추운데 불이 났을 리가 없지

오들오들 떨며 침대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얼음장 같은 이불을 덮는다

 

이상하게 몸이 차갑구나

세계가 불타는데 아직도 너무 춥구나

 

세계가 불타는데

세계가 불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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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6-03-31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안녕하세요.^^

제가 늘 찾는 시인의 시집만 읽다보니
이누아님 덕분에 이제야 강성은 시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집을 검색해보니 강성은 시인이 등단한지 벌써 20년이 된 시인이시네요.
언젠가 시집 이름이 Lo-fi 라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기회에 많은 독자들과 만났으면 하고 기대해봅니다.


이누아 2026-04-02 18:56   좋아요 1 | URL
얼마 전 이 책이 김종삼 시문학상을 받아서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읽히게 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대구는 벚꽃이 만발합니다. 점점 더 밝아지는 봄날, 니르바나님이 평안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밤 그네 - 교유서가 소설
하명희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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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 달아나고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듯, 말을 잃어버린 듯 앞만 보고 조용히 걷는데 누가 나를 부른다. 슬픈 노래처럼 낮고 고요한 부름이라니.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니 다정한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오라고도 가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나를 부른다. 햇살이 비치는 안개 속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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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9-24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셨나요.
북플 이웃서재 구경하는데 반가운 이름 보여서 인사 남깁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이누아 2024-09-24 12:47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들렀는데도 이렇게 인사 남겨 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2025-09-05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5-11-29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잘 지내시지요.^^
오랜만에 니르바나가 두손 모아 인사드립니다.
이누아님과 댁내 두루두루 安樂하시길 기원합니다. _()_

2025-12-01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1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4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4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4 2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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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이 2025-12-0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의 풀밭
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누아 2025-12-04 15:46   좋아요 0 | URL
감사^^

서니데이 2025-12-07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편안한 주말 보내고 계신가요.
12월이 되면서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첫 시집 출간 축하드립니다.
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이누아 2025-12-08 19:28   좋아요 1 | URL
따뜻한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2025-12-10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12 1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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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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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 2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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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31 21: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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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1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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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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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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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16: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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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컬투쇼] 지하철 진상

https://youtu.be/5k1JkGjo7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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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누아 2024-01-01 07:46   좋아요 2 | URL
루피닷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덕분에 새해에 서재에 접속했네요. 벌써 복을 좀 받은 느낌입니다.^^
 

울고 싶은 마음 / 박소란

 

 

그러나 울지 않는 마음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버스에 앉아 울지 않는 마음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

흐려진 간판들을 접어 꾹꾹 눌러 담는 마음

 

마음은 남은 서랍이 없겠다

없겠다

없는 마음

 

비가 오면

비가 오고

 

버스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

 

나는 다만 기다리는 것

 

사람이 오면

사람이 가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더는 말하지 말아야지

 

암병원 흐릿한 건물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드는 마음

 

마음을 시로 쓰지는 말아야지

다짐하는 마음

 

 

-박소란, [있다](현대문학,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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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1 2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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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1 2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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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4 16: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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