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책장수님이 집에 있는 토요일에 택배를 받는 일이 불편해졌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다.
결혼 당시 여차하면 내가 벌어 먹여살리겠다고 큰소리까지 쳐놓고는
나몰라라, 정말 급하다고 부탁하는 일도 해주지 않고
남의 출판사 일만 가물에 콩 나듯이 해서
근근이 책값과 영화표를 벌고 있다.
모처럼 들른 알라딘에서 <사는 게 뭐라고> 책베개를 보는 순간 이성을 잃고
장바구니에 책을 담기 시작했다.
(사노 요코의 이 책은 최근 읽은 것 중 가장 재미있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걷는 듯 천천히>가 눈에 띄었다.
김용택 시인의 <어린이 인성사전>도 드디어 장바구니에 담겼다.
사은품을 위해 일정 금액 이상의 책을 주문한 것은 근 1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주문을 마치고 보니 배송이 토요일.
알라딘에 전화를 걸어 월요일에 배송해줄 것을 요청했다.
(빨리도 아니고 늦게 보내달라고 애걸하다니!)
담당직원은 출고를 조정할 수는 없고 택배사에 전화해
월요일에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토요일 아침에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책장수님이 건네주는 전화기,
택배 기사님이었다.
그는 책상자를 지금 가지고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큰소리로 물었다.
"월요일에 받게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그럼 할 수 없죠. 전화 받은 김에 지금 갖다주세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택배 기사님은 요란하게 인터폰을 울리고
대문 앞에 잠복하고 있었던 것처럼
큰 상자를 내게 안기고는 번개같이 내뺐다.
무심한 척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책장수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상자의 테이프를 뜯어내며 이실직고했다.
이러저러하여 여차저차 요로코롬 되었다고.
그런데 주문한 책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예쁘고 책베개는 또 얼마나 근사한지
어제의 노심초사와 잠깐의 쪽팔림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특히 <어린이 인성사전>은 나왔을 때부터 자꾸 눈길이 가더라니,
수첩에 옮겨 적고 싶을 정도로 사려 깊고 멋진 구절들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