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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연대 대학원신문에 게재했던 글을 옮겨놓는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영화론 <봉인된 시간>에 대한 기획서평으로 씌어진 것이다. 오는 12월 29일은 그의 서거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때까지는 타르코프스키와 관련된 페이퍼들이 (진행중인 걸 포함해서) 몇 개 더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그의 영화 <거울>에는 노모인 마리아 이바노브나 비쉬냐코바(타르코프스카야)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연세대 대학원신문(06. 10. 31) 시로 빚어낸 순간들, 기적에 이르는 침묵

얼마 전 스웨덴의 전설적인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1922~2006)가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세계 3대 촬영감독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이 ‘빛의 사제’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둘도 없는 파트너로서 두 차례나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부린 빛의 마술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유작 <희생>(1986)을 통해서였다.

이탈리아에서 <노스텔지아>를 찍고서 망명의 길을 택한 타르코프스키가 결과적으론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 <희생>을 스웨덴에서 찍게 된 배경에는 제작을 맡은 스웨덴영화연구소의 안나-레나 위봄과의 오랜 우정이 놓여 있다. 위봄의 제안을 받은 타르코프스키는 얼란드 요셉슨(1923~ )을 염두에 두고 씌어진 <희생>을 스웨덴에서 찍기로 결정한다. 베리만 영화의 단골 배우 얼란드 요셉슨은 <노스텔지아>에서 세상의 사람들의 각성을 호소하면서 로마의 광장에서 분신자살하는 도메니코역을 열연한 바 있었다.

거기에 같은 ‘베리만 패밀리’로서 요셉슨과 절친한 친구였던 닉비스트는 시드니 폴락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촬영을 제안받은 상태였지만 타르코프스키와의 공동작업을 선택한다. 닉비스트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 중세의 성상화가를 다룬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를 본 이래로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닉비스트는 베리만과는 또 다른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방식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빛(조명)과 배우들에게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갖는 대신에 타르코프스키의 주요한 관심사는 장면의 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 말 그대로 운동 이미지에 두어졌다고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의 영화를 많이 보면서 작업의 윤곽을 그리고 의견을 조율해나갔다고 하는데, 영화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생각을 집약해놓은 책 <봉인된 시간>(독어본 1986)을 닉비스트가 접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공동작업은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건 이젠 더 이상 타르코프스키와 대화를 가질 수 없는 시점에서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이란 국역본의 부제가 지시해주듯이 <봉인된 시간>(분도출판사, 2005)은 부분적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노트이면서 영화와 예술 전반에 대한 그의 독자적인 사고와 통찰을 보여주는 유례없는 책이다. 사실 대개의 감독들이라면 자신의 ‘영화미학’을 글로써 말하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로써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건 타르코프스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작업환경은 순조롭지 못했다.

장편 데뷔작인 <이반의 어린시절>(1962)에서부터 주관적이고 난해하다는 평을 들은 타르코프스키는 내내 당국과의 마찰을 경험해야 했고, 실제로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고통스럽고 긴 휴식’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 ‘강요된 휴식’ 속에서 그는 자신이 영화의 창작과정 속에서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숙고할 수가 있었고 <봉인된 시간>은 그 산물이다.
 
시적 연결의 윤리학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영화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낼 조각품의 윤곽을 보고 이에 걸맞게 대리석 덩어리의 모든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버리는 것과 흡사하게 영화예술가 역시 삶의 사실들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정리되지 않은 혼합물들 속에서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예술적인 전체 형상의 없어서는 안 될 모든 순간들만을 남겨두는 것이다.”그것이 ‘봉인된 시간’(영역본의 제목은 ‘Sculpting in Time’이다)이란 말의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적 순간들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데 있어서 타르코프스키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 이상이다. 실상 이 책의 결론은 마치 <노스텔지아>에서 도메니코가 분신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에게 던지는 절박한 윤리적 호소를 연상케 하는데, 어쩌면 <봉인된 시간>자체가 영화 <희생>과 마찬가지로 암으로 투병 중이던 타르코프스키가 인류에게 건네는  마지막 호소이자 유언인지도 모른다. 영화미학을 타이틀로 내걸고는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타르코프스키에게도 미학은 곧 윤리학이라는 걸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윤리학이 미적 실천을 위해서 타르코프스키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시적, 혹은 정서적 연결이다. 그러한 ‘시적 연결’은 같은 러시아인으로서 영화사의 걸출한 족적을 남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의 몽타주론이 지향하는 ‘논리적 연결’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젠슈테인식의 논리적 연결은 미리 계산된 미학적 효과와 의미를 창출해내고자 하는데, 타르코프스키가 보기에 그렇게 인위적으로 짜맞추어진 결과는 삶의 진실을 배제하며 관객을 감동으로부터 격리시킨다. 그가 보기에 삶의 양상 중에는 오직 주관적으로만 이해되고 시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묘사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장센: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들  

딥포커스와 롱테이크를 자주 사용하기에 흔히 몽타주론과 대비되는 미장센론자로 분류하게 하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미장센이 테크닉적인 고려가 아니라 윤리적인 관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삶의 순간순간들에 대한 관찰을 강조하는 타르코프스키가 실제의 일화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가령 이런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형 집행 명령 위반으로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느 병원의 담벼락 앞 더러운 물구덩이 한가운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마침 가을이었다. 사형수들에게 외투와 구두를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무리 중의 한 명이 무리에서 벗어나 구멍투성이의 양말을 신은 채 한참을 물구덩이 속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일분이 지나면 전혀 필요가 없게 될 자기 외투와 장화를 내려놓을 마른 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장면을 어떻게 몽타주로 분할하고 또 나눠찍을 수 있겠는가? 타르코프스키가 관심을 갖는 장면은 그러한 어떤 ‘불일치’를 담고 있는 미장센들이다. 그가 자주 예로 들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 가운데 가령 <악령>에서 스타브로긴과 광신도 샤토프와의 대화장면은 어떠한가?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신을 믿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스타브로긴이 말하자 샤토프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러시아와 러시아 정교를 믿습니다... 나는 예수의 성체를 믿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러시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샤토프는 정신이 나간 채로 더듬거리며 말하는데, “신을 믿느냐구요, 신을?”이라고 스타브로긴이 재차 질문하자 “저... 저... 믿어 보겠습니다.”라고 (미래시제로) 말한다. 타르코프스키가 이 장면에서 지적하는 것은 “어찌할 바 모르는 당황한 영혼의 상태”를 포착하고 있는 천재적인 수법이다.

그러한 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들을 드러내고자 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사실 정적이지 않으며 대단히 격렬하다. 예컨대 <노스텔지아>의 분신 장면과 <희생>의 방화 장면 같은 걸 떠올려보라. 카메라는 인물들의 행동을 숨죽인 관찰자처럼 따라가며 단지 보여주기만 하지만 그 조용한 화면에 비춰지는 것은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기도 하다.

죽은 나무 한 그루가 가져온 기적

한없이 느리게만 전개되는 것 같은 <희생>에서도 주인공 알렉산더의 내면을 뒤흔드는 건 3차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갖게 되는, 자신의 가족과 세상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다(그러니까 <희생>은 타르코프스키 버전의 <그날 이후>이다. 이것은 남의 일일까?). 그는 세상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런데, 그 구원이란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단지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일상적인 하루가 지속되는 것. 그 단순한 소망을 위해서 알렉산더는 묵언을 결심하고 다음날 자신의 집을 모두 불태운다.

“아주 먼 옛날에 한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단다. 그는 산에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단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했지.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같이 물을 주도록 하라고. 제자는 매일 아침 산으로 올라가서 물을 주고는 저녁녘이 되어서야 수도원으로 돌아왔지. 이 일을 3년 동안 되풀이한 그 제자는 끝내 죽은 나무에 꽃이 만발했음을 보았어. 끝없이 노력하면 결실을 얻게 되는 거야. 만약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늘 꾸준하게 의식과도 같이 말이다. 그러면 세상은 변하게 될 거다. 암, 변하지. 변할 수밖에 없어.”

영화의 도입부에서 바닷가에 나무를 한 그루 심으며 알렉산더가 아들 고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데(나는 이야기를 축약하지 않았다), 세상의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비록 매일같이 변기에 물을 붓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언젠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 얼마나 스펙터클하며 기적적인 일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스벤 닉비스트는 치매로 인한 실어증으로 치료받던 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희생>에서 침묵 서언을 한 알렉산더(요셉슨)를 떠올리게 하고 또 바로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타르코프스키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건 그의 영화들과 한권의 미학, 그리고 한권의 일기(<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두레, 1997)뿐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편지를 보낸 러시아의 한 여성 노동자의 흥분을 우리의 것으로 하는 데에는 충분한 것일 수도 있다.

“일주일 동안 나는 당신의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단순히 영화만을 보려고 극장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06.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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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6-12-0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기말 셤 기간이라 시간이 남네요~~ 이 글 옮겨갑니다. 인세 청구하세요.

초록별 2019-12-03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안녕하세요 ~~^^ 20c 러시아문학 강의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드라마 '황진이'를 잠깐 보니 하지원이 시조 한 수를 읊조리는 게 나온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라고 시작되는 시조이다. 문득 오래전에 황진이의 시조 한 수에 대해서 주석을 덧붙인 글이 생각났다(그때는 전기소설은커녕 관련자료도 거의 없었다).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이라고 이름붙인 것인데(페이퍼로 올려져 있다) 다시 찾아보니 이미지들이 여기저기 깨져 있다. 황진이의 시조와 관련되는 대목만 옮겨놓고, '황진이의 유머'라고 다시 제목을 붙여둔다. 그간에 나온 황진이 소설과 관련서들을 보면 거의 '황진이 산업' 수준이 아닐까 싶은 정도이다. 주석본 <나, 황진이>(푸른역사, 2002) 정도는 언제 읽어봐야겠다.   

 

 

 

 

-어져 내 일이야... Oh, my business!..

-먼저, ‘어져’에 대해서 말하여야 한다. ‘어져’가 전제로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라는 두 시간적 계기이다. 그런데 이 두 계기는 따로 놓여 있지 않다. 그것들은 겹쳐 놓인다. ‘어져’는 이 겹쳐 놓임의 양태에 대한 평가적 발화의 한 가지이다. 두 음절의 이 발화가 집약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어떤 사건에 대한 현재의 안타까운 회한이다. 이 회한은 세계-내-존재로서의 유한한 인간이 이 세계에 지불하고 있는 자신의 몸값이며, 자기 삶의 무게이다. 현재의 우리는 간혹 목욕탕에 가 체중계에 올라서듯이 과거의 한 시점을 불러내어 닦아세운다. 자백해라, 왜 그랬더냐?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어리석음(=무지) 때문이었다(‘그릴 줄을 모로더냐?’). 이 어리석음이 과거가 저지른 과오이다. 그리고 ‘어져’는 이렇듯 겹쳐 놓인 어리석음과 안타까움에 대한 우리의 평가적 발화이다.

-다음, ‘내 일’이란 건 ‘어져’가 포괄하고 있는 사태를 모두 뭉뚱그리는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렇게 뭉뚱그려진 사태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저질러놓고 후회하는 일은 그것이 반복되면서 비로소 제값의 ‘일’(=업)이 된다. 그것은 내가 저질러놓은 일이면서 내가 끊임없이 저지르게 될 일이다(그래서 ‘내’ 일이다). 우리의 회한은 결코 우리의 어리석음을 구제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러니 어이하랴, 결국 어리석게도 나는 또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 이것도 비즈니스라고? 빌어먹을!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더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나는 중장의 ‘제 구태여’를 ‘제 구태여 가랴마는’이 도치된 것으로 읽는다(혹자는 ‘제 구태여 보내고’로 읽는다. *원래는 고어(古語) 표기로 인용했었는데, 여기서는 현대어 표기로 바꾸었다). ‘가랴마는’ 뒤에 (구태여) 덧말로 붙여진 ‘구태여’가 정치된 ‘제 구태여 가랴마는’의 ‘구태여’보다 효과적이다. 말의 기능면에서 그렇다. 여기서 ‘구태여’의 주체는 님이다. 즉 내가 가는 걸 말렸더라면(=그냥 가게 내버려둔 나의 과오) 구태여 님이(=지가) 떠났겠는가(=그리고 뒤늦은 회한), 라는 것이 중장의 내용이다. 종장의 ‘보내고 그리는 정’은 이 과오-회한의 구도를 그대로 집약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도가 바로 서정(시)의 구도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단순한 서정이라면 흔한 서정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른바 기질지성(氣質之性)의 푸념을 조금 멋을 내어(‘나도 몰라 하노라’) 표현한 것. 나는 조금 더 복잡하게 읽고 싶다. 이른바 ‘복잡한 서정’이란 무엇인가? 다시 중장. 가는 걸 말린다고 해서 못 이기는 체 눌러앉는 작자를 님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님은 적어도 일류의 기녀(=황진이)라면 용납할 수 없을 님이다(품위가 떨어지는 님이기에 그렇다). 우리의 님은 (부여잡고) 말렸더라도 결단코/구태여 떠나갔을 것이다(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며). 그리고 우리에겐 그리움의 몫만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그런 님을 두고 짐짓 내가 가는 걸 말렸더라면 구태여 떠났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은 이중의 전략이며 복잡한 서정의 결과이다.



-어차피 떠나고 말 님을 이시라 하며 말리는 것은 성과가 없는 일일 뿐더러 정나미 떨어뜨리는 일이며 자존심만 구기는 일이다(이류들은 이런 일에 구애 받지 않겠지만). 그러니 그냥 가게 내버려두는 것. 이 사소한 과오 덕분에 나는 잘난 자존심과 님 그리는 정을 모두 지켜낸다. 그래도 이만한 어리석음(=과오)이라면 뒤집어쓰고 남을 만하지 않을까, 라는 계산이 바로 복잡한 서정이고 이중의 전략이다.

-나는 이걸 달리 ‘유머’라고 부른다(밀란 쿤데라는 ‘좋은 기분’이라고 부른다). 유머란 우리 내부의 모순들이 우리를 쓰라리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고양된 의식이다. 나의 자존심은 님을 떠나가게 할 수도 없고 눌러 있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은 모순이다. 이 모순을 쓰라리거나 불행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길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어져 내 일’이다.

-이 시(조)에서 ‘내 일’은 ‘돌이킬 수도 있었던 과거’, 그래서 ‘달라질 수도 있었던 현재’라는 어떤 다른 삶의 (희박한) 가능성을 불행한 현실과 대질시킴으로써 완료된다. 이 일로 물론 구제 받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루만져줄 수 있을 따름. 그럼에도 이 어루만짐(=유머)은 소중한 것이며 오직 유한한 인간, 중간쯤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특권적인 라이프 스타일이다...

06.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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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6-11-2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라기 보다 자신의 삶과 행동에 대해 통찰하는 힘이 뛰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녀의 모순된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자가 황진이 자신, 그 상황에 개입한 님, 그 상황을 지켜보는 낯선 이들 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통찰과 유머가 같은 길(상황의 극복이나 상처의 어루만짐, 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해)를 지향한다고 해도 한 순간도 감정의 순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유머라 이름붙이기에는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황진이의 시조에 대한 깊은 고견은 추천 드립니다. 많은 거 배우게 되네요.

로쟈 2006-11-24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란 우리 내부의 모순들이 우리를 쓰라리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고양된 의식이다"라는 건 헤겔의 정의인데(쿤데라의 인용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그것이 '감정의 순화'를 상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간극, 그 모순을 그대로 보존하되 다만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죠. 지금은 느낌이 많이 사라졌지만, 한때는 '어져 내 일이야'란 시구를 떠올릴 때마다 키득거리곤 했습니다...

2006-11-24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2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오랜 손님이시네요.^^ 유머=몽상쯤 될까요...

sommer 2006-11-24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흥미로운 점은 등장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진심'이 불가능한 그 무엇처럼 모든 담화의 비어있는 중심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에서 벽계수의 전략에 대한 황진이의 '진심'이 발동했던 순간에는 '진심'이라는 실체/본질이 이미 실존하고 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진심에서 도망치려는 예판 주체와 '진심'의 그 실존성을 전략이라는 외관의 환타지를 통해서 몸소 보여주는 벽계수 주체가 겹쳐 보여 놀람을 자아내더군요. 그리고, 진심이 외관이라는 틀로 긍정되고 교환되어야만 한다는 명제를 보여주듯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동'하고 있다는 것이 이후에 전개될 드라마에 궁금증을 더해주더군요. 보통 트렌드 드라마에서도 그 '진심'이라는 실체에 몸을 던지는 안티고네들이 사회적으로 긍정되었던 것을 보면, 이러한 경향성은 주목할 만해 보입니다. 이 드라마의 원저작의 작가가 김탁환이라는 사실이 더욱 흥미를 자아내는군요...

로쟈 2006-11-24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라마를 5분도 보지 못해서 논평할 처지는 못되구요, suture님의 '황진이론'을 나중에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글쓰기 분량'에 대해 몇 자 적으려다가 제목을 '글쓰기 분량과 글쓰기 장애'로 바꾼다. '글쓰기 장애' 때문이다. 책에 관해서라면 남못지 않게 수다스러운 내가 '글쓰기 장애'를 갖고 있다면 의외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좀 특이한 '장애'를 갖고 있다. '특이'하다는 것은 내가 가진 장애가 '첫문장 쓰기' 장애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페이퍼라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공식적인' 종류의 글쓰기에 있어서 내가 가장 애를 먹는 것은 마땅한 제목을 붙이고 첫문장을 쓰는 것이다. 두 가지만 해결되면 글의 절반 이상은 씌어진 셈이 되지만, 반대로 그게 잘 안되면 소위 '먹통'이 된다. '글쓰기 블록'과 '하이퍼그라피아'가 특이하게 결합돼 있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아직 치료를 요할 정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여하튼 최근에 이 장애 때문에 계속 애를 먹고 있다. '만만한' 페이퍼들만 애꿎게도 계속 만들어지는 한 가지 이유이다.

교수신문(06. 11. 14) 지식인들의 글쓰기 분량 적당한가

한 교수에게 원고청탁 때문에 전화를 돌렸다가 바로 내렸다. “이번 달에 고정칼럼 합쳐서 20편 썼다”란 말에 “건강 잘 챙기시고요” 하고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공장장급’ 칼럼니스트들이 우리 사회에 늘어나고 있다.

생태론자이자 경제학 박사인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요즘 거의 3일에 한편 꼴로 글을 생산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FTA, 부동산·재개발 같은 ‘사건’을 자꾸 터뜨리기 때문인데, 어떻게 저런 노동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글을 통해 복잡한 사안들을 분석, 처방하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의 홍성태·이해영·서동만, 문화계열의 고병권, 과학의 정재승·이덕환 같은 이름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메이커’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글을 잘 써도 독자와 얼굴 맞추는 빈도가 임계점을 넘어버리면 나중엔 풍경이 돼버린다.

물론 물량공세가 질적 전화를 이루기도 한다. 요즘 고명철 광운대 교수의 글이 “좋아졌다”는 평들이 오간다. 한 때 막노동 하듯이 평론을 쓴 결과라는 게 나름의 원인분석. 평론처럼 호흡이 긴 글을 한 달에 2~3편씩 쓰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글 속에 유야무야한 부분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떤 감각과 성찰성이 개발되는 것일까. 잠깐 쉬었다가 다시 발표한 고 교수의 글은 좋은 평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문 편.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한 달에 학술대회 발제문만 2편을 쓰고, 신문칼럼을 매주 4회 쓴다. 홍 교수 같은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글쓰기는 운동적 성격을 띤다. 그것은 구호와도 같아 반복적으로, 그리고 충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효과를 거두지만 글은 퍼석거릴 수밖에 없다. 학자나 전문가의 내공이 실리기보다 특유의 관점과 스타일 속에 담궜다가 꺼내는 정도의 글이다. 과연 이런 글이 반복됨으로써 어떤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까.

사실 요즘 지면이 대폭 늘어난 문학평론이나 소설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의 형식, 어떻게 말을 할까에 대한 고민은 없이 점조직처럼 부지런히 거점만 이동한다. 마치 간첩처럼 정체성도 불투명하고, 그저 말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장식들이 뒤죽박죽 돼 있는 평론들은 글쓰기를 힘겨운 노동으로, 프로필과 원고료로 교환되는 자본주의적 가치로 제도화시킨다.

평자들이 지친 기색이 가득하다. 문학평론가 고봉준 씨는 계간지 마감이 있는 달은 6~7편까지 편수가 올라간다. 이 중 절반은 인간관계 때문에 쓰고 원고료는 80매에 8만원. 고 씨는 “노동이라 하면 슬퍼지죠. 노동은 팔려고 하는 건데요, 판다고 생각하진 않구요. 저는 그냥 일(業)이 많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노동이든 일이든 글쓰기란 행위 자체에서 힘겹다는 이미지를 벗겨낼 순 없을까. 롤랑 바르트는 일본에 다녀와서 ‘기호의 제국’을 펴냈다. 그는 일본에 매우 고마워했는데, 그에게 글쓰는 재미를 줬기 때문이다. 1960년대 구조주의를 통해 당시 범람하던 역사주의를 패퇴시킨 바르트는 후기로 갈수록 글쓰기의 목적을 어떻게 그것의 즐거움을 확대시키고 고양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선회시켰다. 그가 실험한 독특한 자서전,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는 감이 선명한 에세이들을 보면 오늘날 문필가들에게 부족한 것은 자기만족의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 한 문학평론가는 “늘 머리 속에는 그럴듯한 책 한권을 꿈꾸고 설계하지만 공부하다가 볼 일 다보고 정작 쓰지는 못한다”라고 털어놓는다. 꿈꾸는 동시에 쓸 수 있는 환경이란 아마 ‘연재’의 형식일 것인데, 잡지 편집위원 급이 아니면 좀처럼 이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정말 ‘연재스러운’ 낡은 에세이식 주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말 연재가 필요한 글은 통상적인 연재 포맷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문연구나 장편 주제론·작가론 같은 것이 아닐까. 가까운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것이 마치 존재의 끈처럼 기능을 하는 그런 연재글 말이다.(강성민 기자)

06. 11. 15-16.

 

 

 

 

P.S. 청탁받은 원고들을 계속 펑크내면서 '글쓰기의 분량'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됐다. 교수신문의 기사에 눈길이 간 것은 그 때문이다. '개인차'라는 게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능력에 비하면 더 많이 쓰거나 더 많이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능력을 배가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분량을 축소시켜야 하는가. 욕심은 많지만 인생만큼 욕심대로 잘 안되는 것이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글쓰기의 즐거움은 글쓰기의 고통과 나란하다). 문득 두어 달 전에 읽고 스크랩해놓은 칼럼이 생각난다.

문화일보(06. 09. 12) 글쓰기 장애

연세대에서 11, 12일 열리고 있는 노벨포럼 참석차 한국에 온 196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머리 겔만(77). 15세에 예일대에 입 학하고 21세에 박사가 된 천재다. 유명한 ‘쿼크’이론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본업인 물리학뿐 아니라 언어학·역사학·고고학·생태학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9개 언어를 구사하는 그는 분명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知性)이다.

한때 언어학자를 지망했을 만큼 언어감각이 탁월한 겔만에게 ‘글쓰기 장애’가 있다는 건 역설에 가깝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 들이 ‘영예의 의무’로 여기는 수상논문집에 글을 올리지 못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쓰더라도 자신의 지식창고에서 최적의 표현을 찾아내는 데 결벽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의도와 달리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을 ‘블록현상(writer’s block)’이라고 한다. 마감이 코 앞에 닥쳤는데도 글은 한 줄의 진척 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밥을 먹을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지만 다가가면 글은 천리 밖으로 달아나고 만다. 머리를 쥐어뜯고, 방을 들락거리고, 그나마 몇 자 쓴 종이를 찢어버리고…. 글쓰기 고민이 없을 것 같은 찰스 디킨스도 “가족에게는 괴물이요, 나 자신에게는 공포”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글을 못쓰는 고통만이 글쓰기 장애는 아니다. 블록현상과는 거꾸로 식음을 거르면서까지 닥치는 대로 써대는 유형도 있다.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는 이런 글쓰기 중독증을 표현하는 의학용어다. “컴퓨터 자판이나 빈 종이를 보면 마약을 본 마약 중독자 같은 쾌감을 느꼈다”고 할 정도면 하이퍼그라피아다. 평생 9만 8721통의 편지를 썼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작가 루이스 캐럴, 수많은 글을 언론에 발표했던 ‘유나바머’(시어도어 카진스키)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

개인 홈피·블로그가 확산되면서 우리 주변에서도 글쓰기 마니아들이 넘쳐나고 있다. 요즘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봐도 그걸 느낀다. 비서진이 “일은 언제 하느냐”는 걱정까지 들어가며 열정적인 글을 쏟아내고 있다. 표현도 거침이 없다. 정책을 널리 알리겠다는 충정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정은 블록상태인데 참모진은 하이퍼그라피아에 빠진 듯한 부조화가 마음에 걸린다.(김회평 논설위원)

 
 
 
 
 
 
 
 
P.S.2. 하이퍼그라피아, 곧 '글쓰기 중독증' 환자로 분류된 루이스 캐롤과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책들이 최근에 또 출간됐다.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와 <산업사회외 그 미래>로 제목이 바뀐 게 특이하다고나 할까. 아무려나 너무 안 써져도 너무 잘 써져도 문제가 되는 '글쓰기 나라' 또한 '신기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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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7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17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동병상련'이란 말을 이런 때 쓰는 것이죠? 서로의 위로와 치유도 각각 따로 노는 것인지 걱정됩니다.^^;

2006-11-17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1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이런! 이거 무슨 헤어진 가족상봉 장면 같군요.^^
 

아침신문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기사는 홍콩의 영화감독 관금붕(관진펑)의 <연지구>(1987)를 다룬 경향신문의 '일시정지' 코너였다. <인지구>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영화의 주연이 매염방(메이엔팡)과 장국영(장궈룽)이다. 관금붕의 데뷔작으로 기억되는데, 아주 오래전에 본 이 영화가 장만옥 주연의 <완령옥>과 함께 내게는 관금붕의 대표작으로 남아 있다(물론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 이후의 영화들은 거의 본 기억이 없지만).

예전에 '매염방의 죽음을 애도함'이란 글을 올린 적도 있는데, 어제 예술의전당에서 감상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 매염방은 내게서 동일한 의미연관을 갖는다. 쇼스타코비치와 매염방? 둘을 묶어주는 건 한 친구에 대한 기억이다. 그 친구가 쇼스타코비치를 좋아했고 매염방을 좋아했다. 기억에는 지난 93년쯤인가 러시아에서 구입한 EMI음반으로 쇼스타코비치의 5번 '혁명'을 자기방에서 들려주며 의기양양해 하던 모습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영웅본색3>에 처음 본색을 드러낸 매염방의 도톰한 입술이 이후에 주의를 끈 건 순전히 그의 '주목' 덕분이다. 이후에 내가 더 좋아하게 된 건 그녀의 입술이 아니라 노래였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염방의 노래는 <영웅본색3>의 주제가인 '석양지가'이다. 들을 때마다 '장쾌한'이란 형용사를 떠올려주는 이 노래를 나는 지금도 듣고 있다. 이제 어느덧 세월에 묻히고 있지만, 지난 2003년 봄, 만우절에 장국영이 자살했다. 그리고 그해 12월말에 매염방에 자궁암으로 투병중이던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자살했다는 설도 있는 모양이다. 그해 9월 마지막 '연창회'에서 그녀가 부른 노래가 또한 '석양지가'였다고. http://www.youtube.com/watch?v=b3dP-8Ti6x8). 그리고 친구의 죽음은 그 두 죽음 사이에 끼어 있다.   

인생의 '화양연화'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금세월'도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나도 이제 그 정도는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웃음도 되찾을 길 만무하다. 내가 반복해서 듣는 건 그저 '석양지가'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건 그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자의 의연한 자세뿐이다. 담담한 마음으로 <연지구>(http://www.youtube.com/watch?v=DoXufaoclrw)와 관금붕에 관한 자료 몇 가지를 모아놓는다.

경향신문(06. 11. 09) 관진펑의 ‘연지구’

서양에 오랫동안 전해오는 얘기가 있다. 신혼부부가 알프스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남편이 조난 사고를 당했다. 살아남은 아내는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슬픔을 안고 돌아왔다. 수십년이 흘러 아내는 할머니가 됐고, 어느날 얼음 속에 굳어있던 남편의 시신이 하천에 떠내려 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달음에 달려간 아내는 수십년 전 청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사연이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가장 사랑했던 순간 이별해야 했던 연인에 대한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잔인함을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관진펑(關錦鵬)의 ‘연지구’(1987)는 장궈룽(張國榮), 메이옌팡(梅艶芳) 주연의 영화다. 1930년대 기녀 여화와 부잣집 진도령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진도령 집안의 반대로 둘은 결혼하지 못하고, 좌절한 연인들은 함께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다. 시대는 흘러 80년대 홍콩, 한 신문사에 구식 치파오(원피스 형태의 여성용 중국 전통의상)를 입은 여화가 나타나 진도령을 찾는다는 광고를 내고자 한다. 함께 저승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진도령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도령과 여화에겐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장면1). 둘은 기생집에 마련된 고급스러운 방에서 아편을 나눠피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여배우보다 더 아름다운 장궈룽의 전성기 얼굴과 전통적 미인은 아니지만 묘한 매력을 내뿜는 만능 엔터테이너 메이옌팡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귀신이 돼 돌아온 여화는 저승에서 진도령을 만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함께 독극물을 마셨지만 진도령은 깨어난 뒤 치료를 받고 부모님이 추천한 여성과 결혼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불행했다. 가산을 탕진한 진도령은 영화판 엑스트라를 전전한다. 혼령으로 돌아온 여화는 영화 세트장 한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진도령을 발견한다(장면2). 거기엔 기억 속의 아름다운 청년은 간 데 없고, 추한 늙은이만 남아 있다.

여화는 진도령이 선물했던 화장 도구를 돌려준 뒤 미련없이 돌아서고, 여화를 부르던 진도령은 울먹인다. 망쳐버린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 연인을 따라 죽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화가 세월의 무상함을 깨우쳐 줬기 때문일 것이다. 진도령의 고운 얼굴선은 세월과 함께 무너졌고, 팽팽하던 피부엔 고랑이 패었다. 시간은 피도 눈물도 없이 공평하다. 절세의 미남, 미녀에게도 똑같은 무게의 짐을 지운다.



공교롭게도 장궈룽, 메이옌팡은 같은 해 사망했다. 2003년 만우절 장궈룽은 거짓말같이 고층 빌딩에서 몸을 던졌고, 12월30일 메이옌팡은 자궁암에 따른 투병생활 끝에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구천을 떠도는 두 배우의 혼령이 나타난다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 그대로일 거다.(백승찬 기자)

씨네21(05. 08. 24) <연지구> vs <완령옥>: 홍콩 포스트 뉴웨이브, 관금붕

홍콩영화의 포스트 뉴웨이브 세대로 등장한 관금붕은 유례없는 예술영화 몇 편을 내놓는다. 관금붕 자신이 말한 바 홍콩 영화산업이 활황을 구가하던 시기였기에 <연지구> 같은 영화의 제작이 가능했듯이, 당시 홍콩 대중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국내에 소개됐던 그의 영화들은 낯선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인지구>로 잘못 소개된 <연지구>는 요괴영화와 모던 멜로드라마를 혼용한 작품이다. 영화는 과거의 연인을 찾아 현대로 찾아온 귀신을 통해 지키지 못한 사랑의 약속, 사라지는 홍콩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 변화에 대한 낭만적 거부를 이야기하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촘촘한 화면구도 속에 죽어가는 듯 대사를 읊는 배우의 모습이 탐미적 시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1920, 1930년대 중국의 대표적 배우인 완령옥을 그린 <완령옥>은 관금붕과 배우들의 토론, 완령옥의 기록영상, 그리고 영화 속 영화가 컬러와 흑백영상으로 교차되어 나오는 작품이다. 연기자는 미쳐야 한다고 말했으며, 연기에 빠져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던 완령옥은 사회의 편견에 맞선 여자이자 25살 꽃다운 나이에 자살한 여배우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관금붕은 왜 완령옥이 자살한 1935년 3월8일보다 꼭 1년 전에 <연지구>의 기생 여화가 자살하는 것으로 설정해놓았을까. 1935년이라면 중국영화가 상하이를 중심으로 자국영화의 기치를 드높일 때다. 활기찬 1980년대와 이후 힘을 잃어간 1990년대에 홍콩영화의 현장을 지킨 관금붕은 비문을 반복해서 써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빌려 중국영화의 화려한 시기를 애써 기리는 홍콩 영화감독을 구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관금붕이 완령옥을 불러와 과거를 더듬었던 것처럼 우리는 <연지구>에서 우리의 곁을 떠난 두 배우의 기억을 접하게 된다. 인생과 사랑이 헛되기에 <연지구>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자는 이젠 장국영과 매염방 때문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기 힘들지 모른다. 관금붕의 영화가 영화 안팎으로 누군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면, 그중 <연지구>와 <완령옥>은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로 이어지는, 아름다움에 취한 세계의 정점일 것이다(그러나 관금붕은 이후 <쾌락과 타락>과 <란유>를 만들면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좀더 현실적인 주제로 넘어간다).

새로 출시된 <완령옥> DVD는 기존 출시본보다 30여분 긴 판본을 수록했다는 점을 먼저 주목할 만하다. 두 DVD엔 예고편 모음과 포토 갤러리 외에 관금붕과 영화평론가 폴 포노로프와의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다. 길지 않은 인터뷰지만 제작 배경과 배우, 스탭, 영화의 주제 등에 대한 설명이 알차다.

06. 11. 09.

P.S. 많이 미뤄진 것이지만, 친구가 유고로 남겨놓은 번역서가 내년쯤에 나올 예정이다. 오늘 그 결정사항을 통보받았다. 주변 사람들이 원고의 교정/교열을 맡기로 했는데, 물론 나도 그 일원이다. 내년에는 친구에게 면목이 설지도 모르겠다...  

P.S.2. 본문에서 깜빡 빼놓은 자료는 신작 <장한가>를 들고서 작년에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관금붕의 인터뷰이다. 오마이뉴스(05. 10. 12)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옮겨놓는다. 그의 차기작이 매염방에 관한 영화가 될 거라는 얘기가 눈길을 끈다.

"정기요는 사랑을 갈구하는 캐릭터"

11일 오후 4시 20분경 메가박스에서 열린 <장한가>의 공식 상영이 끝난 다음, 관금붕 감독과 주연배우 정수문이 함께 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홍콩을 대표하는 가수 겸 영화배우이자 뛰어난 패션리더이기도 한 정수문은 영화 속에서 보여준 강렬한 캐릭터와는 대조적으로, 아담하고 작은 체구에 3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귀여운 미소가 돋보이는 스타였다.

진지하고 성실한 이미지의 관금붕 감독은 한국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시종일관 적극적이고 겸손한 대답으로 눈길을 끌었다. 중화권의 거장들인 허우 샤오시엔과 왕가위와의 비교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서부터, 예정된 시간을 넘기면서도 '질문을 더 받겠다'며 관객들을 먼저 배려하는 성실한 자세로 호평을 받았다.

- <장한가>는 엄청나게 1940년대에서 80년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긴 시대를 아우르는 이야기이다

관금붕(이하 관): "전작인 <완령옥>이 1920~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시대가 좀더 넓어졌다. 당시 상하이는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하여 상류사회의 문화가 발달하고 정치적-사회적으로 굉장히 혼란한 시대였다. 영화의 디테일한 측면은 100퍼센트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속에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영화 속에서 역사는 배경으로 작용하지만 이야기의 전면에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방대한 시대를 제한된 시간 안에 영화 속에 녹여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보다 개인의 삶을 그려내는 데 집중하여 역사적인 배경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했다."

-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의 큰 흐름은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영화의 복고적 스타일은 왕가위의 <화영연화>를 연상시킨다.

: "두 분 모두 개인적으로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감독들이다. 개인적으로 인물이 시대의 격동 속에 놓여 있음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허우샤오시엔은 대만의 역사를 주로 다루는 감독이고, 왕가위는 <화양연화>가 60년대 홍콩을 무대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형식이나 미학적인 측면에서 다소 유사하게 느낄 수는 있어도 본질은 각자 상이한 이야기로 생각한다."



- 정수문 씨는 주로 상업적인 색깔이 짙은 영화에 자주 출연해왔는데,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정수문(이하 정): "개인적으로 그동안 제가 코미디 영화같은 상업 영화가 자주 출연해왔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하지만 배우는 어떤 배역이든 역할에 따라 변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정기요는 대단히 복합적인 면을 갖춘 캐릭터로 10대에서 50대까지 방대한 시절을 넘나드는지라 그때그때 몰입하는 데 어려움이 다소 있었다. 하지만 정기요의 성향 중에서 나와 비슷한 부분도 있었고, 감독님의 조언도 있어서 전반적인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

- 주인공의 애정관이 다소 모호한 것 같다. 극중에서 만난 4명의 남자를 과연 진정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자들을 속이고 이용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 "정기요는 영화에 나온 모든 남자들을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적어도 각 남자들과 만나는 그 순간만큼은 그 남자들을 사랑한 마음이 진심이었다고 본다."

: "정기요는 여러 가지 다층적인 면을 갖춘 캐릭터다. 당시에 그녀가 처한 입장은 현실적인 고민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물론 남자를 만날 때에도 과연 이 남자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려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들을 이용만 하거나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 감독이 주연배우에게 어떤 식의 연기주문을 했는지

: "매번 영화마다 감독님의 기대치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많은 시대를 넘나드는 만큼 감정의 세밀한 부분을 표현해달라고 주문하셨다. 다행히 감독님은 감정이 풍부한 분이라서 저에게 많은 조언을 주셨고, 이 작품을 통해서 연기와 몰입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 "최근 사망한 배우 매염방과 관련된 전기 영화가 될 것같다. 현재 시나리오 완성 단계에 있는데 일정이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 <장한가>도 굉장히 스케일이 큰 작품이라서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이 작품을 끝내자마자 또 더 규모가 큰 영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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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0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염방과 장국영 주연의 "우연"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나요. 왕조연도 나왔던 것 같은데... 내용은 영 별로였지만 엔딩의 콘서트 장면이 참 근사했던... 정말 오래전 일이네요.

로쟈 2009-02-2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본 영화인데, '영화'라고 할 만한 건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사람이 주제가는 같이 불렀네요.^^


수유 2006-11-1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눈엔 그리 이뻐보이지 않는데 매염방 좋아하는 남자들이 꽤 되더군요..
노래나 함 올려볼까요?

로쟈 2006-11-10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는 제가 (실황으로) 올려놓았습니다(투병중의 마지막 공연 장면이라 음색이 약간 다르더군요). 미모가 아닌 건 다들 인정하는 건데, '독특한' 외모라고 해야겠지요...

2006-11-12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끔은 내가 써놓고도 까맣고 잊고 있었던 글들을 만나게 된다. 수년 전에 씌어진 걸로 보이는 아래의 글도 마찬가지인데, 말투로 보아 무슨 '댓글'로 씌어진 게 아닌가 싶다.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1872)의 주인공이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 대해서 몇 마디 주석을 붙이고 있는데, '창고'에 넣어두도록 한다.

 

 

 

 

<악령>은 무엇보다도 주인공 스타브로긴에 대한 연구입니다. 젊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은 수수께끼라고 했을 때, 그 수수께끼성을 가장 매력적으로(악마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스타브로긴이죠. <악령> 속에서 그가 자신에 대해서 직접 털어놓고 있는 부분들은 그래서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요긴합니다. 원래는 삭제됐었지만, 작가의 사후에 포함된 '스타브로긴의 고백'(<찌혼의 암자에서>)을 제외하면 <악령>을 마감하는 그의 편지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게 참조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편지는 다리야 파블로브나를 수신자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위스의 '우리'란 곳에 도피처 겸 거처를 마련해 두고 그리로 갈까 합니다(그가 결국 선택한 것은 자살입니다). 하지만, 무슨 대단한 걸 기대해서는 아니죠.

"나는 우리의 생활에서 무엇 하나 기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가볼 뿐이죠. 내가 일부러 음울한 장소를 택한 건 아닙니다. 러시아에서 내가 구속받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낯설 뿐이지요. 사실 러시아에서 산다는 것은 다른 어느 장소에서 산다는 일보다 제일 싫은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낯설음"이라는 것은 스타브로긴을 대표해줄 수 있는 정서입니다. 그에게 세계(특히 러시아)는 낯섭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대지주의자인 샤토프(그리고 작가)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발을 땅에 딛고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관념에 들려 있는 인물이죠. 다만, 어느 한 가지 관념(=사상)도 그를 만족시키질 못합니다. 그의 내면은 너무 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넓이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가 말하는 "미학적'의 넓이가 아니라, 인식론적인 것입니다(*아래는 카뮈 각본, 안제이 바이다 연출의 연극 <악령>에 등장하는 스타브로긴. 모스크바의 '동시대인' 극장의 레퍼토리이다).

"나는 가는 곳마다 내 힘을 시험적으로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권했던 일입니다. 이렇게 나 자신을 위해, 또 남한테 보여 주기 위해 실험하면서도, 내 힘이 한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확인하기 위해서 그는 선행과 악행을 구별없이 행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그 자신에게도 그는 수수께끼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추악하고 엽기적인 행동도 그의 한계를 드러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의 힘과 내면은 무한하거나 무한에 가깝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인식론적 자아의 무한성'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라스콜니코프의 경우는 소박하기 짝이 없죠. 도끼로 한 노파를 살해하자 마자 자신의 한계가 막바로 드러난 경우니까(앓아눕지 않습니까?).

하지만 스타브로긴의 경우는 12살 소녀 마트료샤가 자살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력을 잃지 않습니다. 샤토프가 따귀를 때렸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겐 반응(reaction)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무관심한 존재인 것이죠. 그는 타자의 어떤 목소리에도 응답할 줄 모르는 윤리적 백치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인식론적 무한은 윤리학적 무한의 결핍을 전제로 합니다. 그에겐 윤리학적 자아가 부재합니다. 무관심이 그 증표입니다. 윤리학적 자아란, 레비나스의 말을 빌면, 타자의 무한성과 대면하는 자아입니다. 인식론적 자아가 오딧세이의 귀향처럼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자아라면,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자아라면, 윤리학적 자아는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결코 고향으로, 자기 자신에게로 귀환하지 않는 자아입니다. 즉 타자의 무한 속에서 실종되거나 몸둘 바를 모르는 자아인 것이죠. 제 생각에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대지는 그러한 무한성의 표상입니다. 스타브로긴의 경우는 자신의 인식론적 무한에 포박당한 채, 윤리학적 무한에는 끝내 눈뜨지 못하는 불행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불행은 사소한 것이지만, 삶을 더이상 지탱하기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죠.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 같은 놈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말입니다. 더러운 곤충처럼 지구의 표면에서 근절해 버려야 함을... 그러나 나는 자살을 두려워 합니다. 그것은 아량을 보이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나는 잘 알고 있소, 그것이 허위임을. 무한한 허위의 연속 속에 있는 최후의 허위임을..."

인식론적 무한은 동시에 허위의 무한(=무한한 가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차연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식론적 의미나 진실에 대면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은 한 걸음씩 물러나지요. 왜냐하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체계이며, 타자와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차이적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악무한인 것이죠. 그러한 사정에 눈뜨기 위해서는 타자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식론적 무한의 맹목성과 비참(=가난)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것은 분노와 수치와 절망을 동반하겠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스타브로긴에겐 결여되어 있으며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자살은 구원없는 필연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나는 이곳을 떠난 다음부터 여섯번째 역의 역장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사나이의 앞으로 회답을 써 주십시오. 주소는 따로 동봉합니다."

그에게 이 편지를 보내고 싶지만, 불행히도 우린 그의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군요!...

06. 11. 03.

 

 

 

 

P.S. 참고로, 최근에 권철근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소설 연구>(한국외대출판부, 2006)가 출간됐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단행본 연구서로는 (놀랍지만) 국내 최초의 것이다. 이제까지 국내 연구자들이 펴낸 관련서로는 포괄적인 해설서와 사전, 그리고 논문모음집 등이 있었다. 새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간행된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번역이 무엇보다도 일차적인,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시각과 축적된 연구역량을 과시할 만한 업적들이 나올 때도 되었다. 그러는 너는? 자고로 '주마가편'이라고 했다. 이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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