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의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가 풍성한 소득을 한 것 같다. 새책으로는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프로이트주의>, 옹프레의 반철학사 4권인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을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매했다. 바흐친은 나에겐 아직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사상가인데 책만 주섬주섬 모으고 있는 중이다.1927년에 벌써 <프로이트주의>란 책을 냈다는 것도 (그것도 소련에서!) 놀랍기만 하다. 반철학사는 소위 '철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사상가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흥미가 가는데 코플스턴의 '철학사'와 비교해가면서 읽으면 유익할 것 같은 생각이다.
슈레버의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구매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슈레버는 프로이트, 라캉, 카네티의 책에서 사례 연구의 하나로 비중있게 취급되는 사람인데 번역본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이 출판된 걸 알게 된 이후 마음 속 구매 리스트에 올려두었었다. 신경병환자의 사례까지 기울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지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헌책방에서 발견하곤 얼른 집어들었다. 개인적으로 슈레버의 책과 더불어 니진스키의 <영혼의 절규>,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광인에 의한 자기 분석서의 3대 서적으로 분류해 본다.^^
그리고 들뢰즈의 <니체,철학의 주사위>, 이택광의 <무례한 복음>도 이번 헌책방 순례에서 함께 구매한 책들. 쌓여가기만 하는 책들을 언제 다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구매할 당시에는 마치 책을 다 읽은 듯 즐겁다.
헌책방 서가를 순례하다가 발견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가지.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 번역본을 논술과 글쓰기 책들이 모인 코너에서 발견한 것. 데리다의 저서 한권이 철학이나 인문학 코너가 아닌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 등등 논술이나 작문 관련 서적과 같이 분류되 있다는 건 참으로 재미있다. 사실 위에 놓여 있는 <복수의 여신> 이란 책도 부조화이긴 하다.^^
최근 람혼 님의 <사유의 악보> 중 (물론 전에 블로그에서 읽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데스카 오사무의 만화세계를 다룬 <아톰의 철학>이라는 책을 철학 코너에서 발견하면서 느꼈던 기묘한 감정을 술회하는 대목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와 유사한 경험을 이번 헌책방 순례에서 하게 된 것이다. 작문 관련 서적을 구매하고자 했던 고객이 데리다의 두툼한 <글쓰기와 차이>를 펼쳐보곤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이 두툼하고 난해한 책이 '작문'에 도움이 된다고 느낄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이 이 코너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팔릴 수 있을지 궁금해 진다.^^ 사실 내가 잠재적 고객일 수 있었으나 이 번역서에 쏟아진 악평 탓에 선뜻 구매하지 못했다. 다음에 갔을 때도 이 책이 있을까? 아직 있다면 내가 구매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