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20분가량의 야경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유럽의 3대 야경으로 파리와 프라하, 그리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꼽히는데, 개인적으로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맨마지막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야경투어를 끝으로 이번 문학기행의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고 내일 오전,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큰 사고 없이 무탈하게 일정이 진행되었고 마지막날까지 날씨도 무난해서 다행스럽다(오늘은 부슬비가 왔지만 종일 오는 비는 아니었고 저녁 야경사진을 찍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날 문학기행 일정은 루카치의 무덤을 찾는 것과 페퇴피기박물관을 방문하는 것, 두 가지였다. 코로나 이전에 한번 동유럽문학기행을 기획할 때는 부다페스트의 루카치 아카이브(자료와 연구센터)를 염두에 두었으나 오르도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 사회주의 역사 지우기의 일환으로 루카치 동상을 철거하고 아카이브를 폐쇄했다. 2017년쯤의 일인데, 이후 부다페스트는 문학기행 방문지 목록에서 수년간 제외했었다. 그러다가 중유럽문학기행을 새로 기획하면서 루카치의 무덤을 찾는 일정을 대신 집어넜었고(자난해 시도였으나 여행이 불발되었다) 이번 오스트리아문학기행에서 드디어 <소설의 이론>의 저자에게 예의를 차리게 된 것.
루카치의 무덤은 국립묘지의 공산주의자 묘역에 있었고 가이드가 미리 위치를 확인해둔 터라 찾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루카치의 무덤 표석 앞에서 루카치의 생애와 업적, 한국문학사에 갖는 의의 등을 간략하게 강의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지난 연말 서울대 규장각의 김윤식 회고전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루카치에 대한 관심은 전적으로 선생에게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설의 이론>을 처음 접할 때부터 현재까지 문학 공부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어느덧 38년의 시간이 흘렀다.
루카치기 인용한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구를 매번 상기하게 된다. ˝나는 내 영혼을 입증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근대소설의 문제적 주인공의 출사표는 문학기행의 출사표이기도 하다. 2017년 첫번째 문학기행이었던 러시아문학기행부터 12번째 오스트리아문학기행까지가 하나의 사이클처럼 느껴진다(8년이 소요되었군). 올 10월에 중국근대문학기행을 진행하면 내년에는 4월에 체코(카프카와 쿤데라)와 폴란드(쉼보르스카와 토카르추크 등) 문학기행을 진행하려 한다. 2017년 가을에 찾았던 카프카문학관과 무덤을 재방문하는 게 될 것이다.
루카치 무덤을 방문한 뒤 마지막 문학일정으로 페퇴피문학관을 찾았다. 페퇴피 샨도르(1823-49). 헝가리의 민족시인이자 독립투사다. 부다페스트의 짧은 일정 속에서 가볼 만한 작가박물관을 물색하다가 정한 곳이었다. 문학관의 규모와 전시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였고 페퇴피 이후 헝가리문학사를 수놓은 많은 작가들 사진과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설명이 헝가리어로 돼 있고 국내에 소개된 작가가 많지 않다는 것. 수십 명의 작가들 가운데 (헝가리식으로 이름을 읽으면) 모리츠 지그몬트, 코스톨라니 데죄, 마라이 산도르, 콘라드 죄르지, 케르테스 임레,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등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문학관에 들어가기 전, 페퇴피의 시 ‘민족의 노래‘를 낭송하고, 관람 뒤에는 문학관 앞 광장의 페퇴피 동상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문학일정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건 무탈하게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공항의 이름이 리스트 페렌츠 국제공항이다.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리스트를 기념하는 이름이다. 독어로는 프란츠 리스트이지만, 헝가리어로는 리스트 페렌츠다). 가이드의 말로는 우리의 김포공항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하여 서울로 향하게 된다. 이번 문학기행의 자투리 이야기들은 귀국길에 더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