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보르스카의 ‘비필독도서‘ 칼럼을 모은 서평집이다(영어판 제목도 그렇다. ‘안 읽어도 되는 책들‘). 시집도 그렇지만 쉼보르스카라는 자유롭고 유쾌한 정신의 운동이 느껴진다. 책을 읽어치우는 ‘독서 먹방‘을 보여주는 듯하다(일본의 요네하라 마리가 그랬었군)...

그리고 한 가지 더, 진심으로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다. 내가 구식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책을 읽는다는 건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멋진 유희라고 생각한다. 호모 루덴스는 춤추고, 노래하고, 의미 있는 동작들을 만들어내고, 포즈를 취하고, 옷을 차려입고, 식도락을 즐기고, 정교한 예식을 거행한다. 그리고이런 유형의 유희들이 가진 중요성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즐거움들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단조로워질 것이며, 동시에 대부분 개별적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놀이들은 대개 공동체적 활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집단적인 훈련의 조짐이 가미되어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책을 갖고 노는 호모 루덴스는 자유롭다. 적어도 주어진 자유를 가능한 한 마음껏 누릴 수 있다.  - P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스모스>(1980)에 이어서 칼 세이건의 대표작 <창백한 푸른 점>(1994)을 읽는다. 세이건의 마지막 책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1995)이지만, 이미 <창백한 푸른 점>에는 지구인 동료들에게 남기는 그의 유지가 담겨 있다. 천문학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우리의 거만함, 스스로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이 광막한 우주공간 속에서 우리의 미천함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데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어올 징조는 하나도 없다.
지구는 현재까지 생물을 품은 유일한 천체로 알려져 있다. 우리 인류가 이주할 곳—적어도 가까운 장래에--이라고는 달리 없다. 방문은 가능하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하다. 좋건 나쁘건 현재로서는 지구만이 우리 삶의 터전인 것이다.
천문학은 겸손과 인격수양의 학문이라고 말해져 왔다. 인간이 가진 자부심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데 우리의 조그만 천체를 멀리서 찍은 이 사진 이상 가는 것은 없다. 사진은 우리가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인 이 창백한 푸른 점(지구)을 보존하고 소중히 가꿀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비평가의 정신

19년 전의 밑줄긋기다. 요즘 비평가의 정신을 다시 체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울문학기행을 무탈하게 종료했다. 국내 문학기행으론 두번째, 당일치기 일정으로는 첫 시도였다. 참가인원이 많은 편이었지만 서울 도심을 주로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어서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다만 박태원과 이상, 박인환, 거기에 윤동주 등에 관한 연구자료가 너무 많아서(김기림과 염상섭에 대해서도 몇마디) 준비부담은 큰 편이었다. 덕분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꼼꼼히 재독하고 주인공 구보의 동선을 확인하는 성과는 거두었다(프라자호텔 인근에 있었던 낙랑파라가 ‘다방‘으로 지칭되는데 구보는 ‘일일‘ 동안 그곳을 세차례나 방문한다. 일직선의 동선이 아니라 맴을 도는 것 같은 동선인 것).

공간에 대한 건축가의 고심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공통적인(교토문학기행에서는 오사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시바 료타로 기념관이 그런 곳이었다) 이상의 집과 윤동주문학관에서는 해설사가 두 시인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해주어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윤동주 생애에 대한 영상도 맞춤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의미 있는 자료가 적다는 불만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연대에 윤동주기념관이 또 있는 만큼 이 정도로도 문학관의 역할은 충분해보인다. 다만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는 게 다소 아쉬웠다.

윤동주와 관련해서는 김응교 교수의 <윤동주>와 이남호 교수가 엮은 시집 <별 헤는 밤>을 가방에 넣어갔는데 <별 헤는 밤>만 잠시 꺼내볼 수 있었다(결국 문학기행에 챙겨가는 책들은 독서용이 아니라 의례용이다). 윤동주에 관한 짧은 강의에서 ‘자화상‘과 ‘참회록‘,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 등을 언급했다. 정리하려고 다시 펼친 시집에서 ‘사랑스런 추억‘을 읽는다. 자료를 보니 1942년 5월 13일에 일본 도쿄에서 쓴 시다. 당시는 릿쿄대 재학 시기(‘쉽게 씌어진 시‘가 6월에 쓰인다). 가을 학기에 윤동주는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옮겨가게 된다(이 두 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시여서 오랜만에 재회하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윤동주 시집을 통독한 건 대학 1학년, 스무살이 되기 전이었다. 노트 몇 장 분량의 윤동주론을 작성했는데, 나로선 처음 써본 시인론이기도 했다. 한 여학생(고등학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정작 보여주었는지, 무슨 평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세월이 가면 과거도 잊혀지곤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인지. 스물다섯의 시인이 쓴 시를 쉰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어 다시 읽으며 나는 다른 말을 보태지 못하겠다. 젊은 시인이 더 젊었던 시절을 두고 한 말을 반복할 밖에.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P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테의 <파우스트>를 비극 장르(비극적 형식)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는데, 장르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서 밑줄긋기해 놓는다. 강의에서 자주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로쟈의 장르공식까지 만들었다). 상반기에 <파우스트>(운문비극)와 <카라마조프>(비극소설)를 강의에서 다시 읽으며 비극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형성 가능성(Formpotential)의 개념은 장르를 그 외부가 아니라, 생산적 의식의 내적 전망으로부터 파악합니다. 인간이유적 존재이듯, 문학작품 역시 그러합니다‘ 문학작품이 저마다의 양식을 지니기 위해서는, 작품이 입안되는 과정에서 장르의 이념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합니다. 문학작품은 장르와의 대화 속에서 싹트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실험하며, 자기 자신의 근본 원리로부터 예술적 산출의전혀 새로운 가능성들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역동적인 장르 개념의 구상으로부터, 전통적으로 고수되어 온 장르 이념, 그리고 구체적인 작품에 의한 그것의 동시대적인 실현 사이에 매개된 공간으로 향하는 하나의 새로운 비평적 독해의 방법이 발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해의 과제란, 장르가 갖는 가능성에 대한 내재적인 이해를 작품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것으로 주어질 테고 말입니다.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