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1980)에 이어서 칼 세이건의 대표작 <창백한 푸른 점>(1994)을 읽는다. 세이건의 마지막 책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1995)이지만, 이미 <창백한 푸른 점>에는 지구인 동료들에게 남기는 그의 유지가 담겨 있다. 천문학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우리의 거만함, 스스로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원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이 광막한 우주공간 속에서 우리의 미천함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데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어올 징조는 하나도 없다.
지구는 현재까지 생물을 품은 유일한 천체로 알려져 있다. 우리 인류가 이주할 곳—적어도 가까운 장래에--이라고는 달리 없다. 방문은 가능하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하다. 좋건 나쁘건 현재로서는 지구만이 우리 삶의 터전인 것이다.
천문학은 겸손과 인격수양의 학문이라고 말해져 왔다. 인간이 가진 자부심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데 우리의 조그만 천체를 멀리서 찍은 이 사진 이상 가는 것은 없다. 사진은 우리가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인 이 창백한 푸른 점(지구)을 보존하고 소중히 가꿀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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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비평가의 정신

19년 전의 밑줄긋기다. 요즘 비평가의 정신을 다시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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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학기행을 무탈하게 종료했다. 국내 문학기행으론 두번째, 당일치기 일정으로는 첫 시도였다. 참가인원이 많은 편이었지만 서울 도심을 주로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어서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다만 박태원과 이상, 박인환, 거기에 윤동주 등에 관한 연구자료가 너무 많아서(김기림과 염상섭에 대해서도 몇마디) 준비부담은 큰 편이었다. 덕분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꼼꼼히 재독하고 주인공 구보의 동선을 확인하는 성과는 거두었다(프라자호텔 인근에 있었던 낙랑파라가 ‘다방‘으로 지칭되는데 구보는 ‘일일‘ 동안 그곳을 세차례나 방문한다. 일직선의 동선이 아니라 맴을 도는 것 같은 동선인 것).

공간에 대한 건축가의 고심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공통적인(교토문학기행에서는 오사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시바 료타로 기념관이 그런 곳이었다) 이상의 집과 윤동주문학관에서는 해설사가 두 시인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해주어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윤동주 생애에 대한 영상도 맞춤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의미 있는 자료가 적다는 불만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연대에 윤동주기념관이 또 있는 만큼 이 정도로도 문학관의 역할은 충분해보인다. 다만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는 게 다소 아쉬웠다.

윤동주와 관련해서는 김응교 교수의 <윤동주>와 이남호 교수가 엮은 시집 <별 헤는 밤>을 가방에 넣어갔는데 <별 헤는 밤>만 잠시 꺼내볼 수 있었다(결국 문학기행에 챙겨가는 책들은 독서용이 아니라 의례용이다). 윤동주에 관한 짧은 강의에서 ‘자화상‘과 ‘참회록‘,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 등을 언급했다. 정리하려고 다시 펼친 시집에서 ‘사랑스런 추억‘을 읽는다. 자료를 보니 1942년 5월 13일에 일본 도쿄에서 쓴 시다. 당시는 릿쿄대 재학 시기(‘쉽게 씌어진 시‘가 6월에 쓰인다). 가을 학기에 윤동주는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옮겨가게 된다(이 두 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시여서 오랜만에 재회하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윤동주 시집을 통독한 건 대학 1학년, 스무살이 되기 전이었다. 노트 몇 장 분량의 윤동주론을 작성했는데, 나로선 처음 써본 시인론이기도 했다. 한 여학생(고등학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정작 보여주었는지, 무슨 평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세월이 가면 과거도 잊혀지곤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인지. 스물다섯의 시인이 쓴 시를 쉰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어 다시 읽으며 나는 다른 말을 보태지 못하겠다. 젊은 시인이 더 젊었던 시절을 두고 한 말을 반복할 밖에.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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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를 비극 장르(비극적 형식)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는데, 장르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서 밑줄긋기해 놓는다. 강의에서 자주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로쟈의 장르공식까지 만들었다). 상반기에 <파우스트>(운문비극)와 <카라마조프>(비극소설)를 강의에서 다시 읽으며 비극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형성 가능성(Formpotential)의 개념은 장르를 그 외부가 아니라, 생산적 의식의 내적 전망으로부터 파악합니다. 인간이유적 존재이듯, 문학작품 역시 그러합니다‘ 문학작품이 저마다의 양식을 지니기 위해서는, 작품이 입안되는 과정에서 장르의 이념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합니다. 문학작품은 장르와의 대화 속에서 싹트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실험하며, 자기 자신의 근본 원리로부터 예술적 산출의전혀 새로운 가능성들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역동적인 장르 개념의 구상으로부터, 전통적으로 고수되어 온 장르 이념, 그리고 구체적인 작품에 의한 그것의 동시대적인 실현 사이에 매개된 공간으로 향하는 하나의 새로운 비평적 독해의 방법이 발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해의 과제란, 장르가 갖는 가능성에 대한 내재적인 이해를 작품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것으로 주어질 테고 말입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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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성작가 읽기의 보강으로 딩옌의 <설산의 사랑>을 읽었다. 1990년 간쑤성 출생 작가. 본강의 마지막 작가가 츠쯔젠(1964년생)이어서(벌써 60대 작가다) 젊은 세대 작품을 읽고 싶었다. 단지 세대적 의미만 갖는 건 아닌데 딩옌은 중국 서북부 간쑤성의 소수민족(이슬람교를 믿는 둥샹족) 출신이어서 츠쯔젠과는 또다른 소수민족문학의 양상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강의에서는 두 작가가 (<어얼구나강의 오른쪽>과 <설산의 사랑>을 근거 삼아서) 각각 은유적 변방성(중심과의 양립불가능성)과 환유적 변방성(양립가능성)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변방성과 변방문학의 특질에 대해서 정리해본 것이 츠쯔젠과 딩옌을 같이 읽은 덕분에 얻은 성과다.

표제작 ‘설산의 사랑‘은 마전과 융춰,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마씨 집안 가게에서 일어난 화재로 점원으로 일하던 융춰의 오빠가 사망한다. 마씨 집안에서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가게의 전소로 형편이 되지 않자 일단 막내아들 마전을 융춰 집으로 보낸다. 일종의 볼모 내지 인간 담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융춰가 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는 집에 마전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연하게도 둘은 불편한 사이이고 불평등한 관계다. 가해자-피해자이면서 채무자-채권자 관계여서다. 게다가 마씨 집안이 회교도인데 반해서 융춰네는 불교 신자다.

이러한 차이와 장애에도 불구하고 두 젊은 남녀는 이런저런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는 말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심리적 거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예술에 대한 공통의 관심(융춰는 티베트불교의 불화, 탕카를 그린다)을 매개로 둘은 무언의 교감까지 나누게 된다. 서로 종교가 다르지만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와 이슬람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다(종교적 교리과 예술적 비전이 엇갈리는 지점이다). 하지만 교감과 융합은 여전히 예술에 한정된다. 아래 인용문에 이어지는 대목에서 마전은 융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다가 멈춘다. ˝마전은 두 사람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뻗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설산의 사랑이란 설산에 가로막힌 사랑이다.

딩옌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된 건 한국어판(2025)이 처음인 듯싶다. 위화와 옌롄커의 추천이 중개자 노릇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중단편에 주력하고 있는 과작의 작가가 과연 두 걸출한 선배 작가의 기대대로 중국의 대표작가로 부상할 수 있을까. 짐작에 올해 루쉰상을 수상하느냐가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나는 강의에서 말했다. <설산의 사랑>(2023)과 그 이후작들이 4년마다 시상되는 루쉰상의 올해 후보작이 될 것 같아서다. 물론 위화처럼 옌롄커나 츠쯔젠과 달리 루쉰상 수상자가 아니어도 간판작가가 될 수 있지만, 그건 장편작가에게서나 기대해볼 수 있는 일이다. 딩옌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여기 있다고 작업 환경에 구속받지 마세요. 예술은 자유롭게 표현해야 하는 거니까요."
융춰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조각상처럼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로 푸른 연무가 피어올랐다. 마전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다시 멈춰 섰다. 융춰는 겉으로는 고집스러워 보여도 내면은 몹시 민감한 여자였다. 늘 침묵했고, 늘 자신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마전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예술은 개성의 교류에서 비롯돼요. 예술에는 한계가 없고 예술 앞에서 사람들의 감정은 다 똑같아요. 마치..."
그는 잠시 생각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마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일을 하고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생명은 단 하나밖에 없는 것과 같죠."
융춰는 그를 등진 채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침묵과 대항의 기류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대도 상관없었다. 이성적인 의식보다 더 진실한 무언가가 마전을 지배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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