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전집이 반양장본(소프트카바)로 표지를 바꿔서 다시 나왔다. 판권면을 보니 3판이다(2008년 초판). 이미 양장본 전집을 갖고 있지만 판본 수집가인 양 또 구입했다. 일단 <소설의 기술>부터. 나는 책세상판(<소설과 우리들의 시대>였던가. 확인하니 1990년에 나온 책이다)으로 처음 읽었으니 35년이 넘는 인연이다.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익숙한 문장들이어서 옛친구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려 다시 읽는 책들이 있다...

세르반테스의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소설은, 모험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더불어 소설은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와 감정의 은밀한 삶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발자크와 더불어서는 역사에 뿌리내리는 인간을 발견한다. 플로베르와 함께 소설은 그때까지 미지의 세계였던 일상의 지평을 탐사한다. 톨스토이와는 사람들의 결정과 행위에 개입하는 비합리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시간을 탐색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더불어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을, 제임스 조이스와는 붙잡을 수 없는 현재의 시간을 탐색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과 더불어서는 시간의 밑바닥에서 유래하여 우리 발걸음을 원격 조정하는 신화의 역할을 묻는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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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쓴 책에 밑줄을 긋기도 한다. 2017년에 냈으니 햇수로는 10년 됐다. <그리스인 조르바> 강의가 있어서 오래전 강의(강의를 책으로 엮었다)를 다시 읽어본다...(며칠 뜸하게 찾았더니 북플 포맷이 바뀌어서 이사온 느낌이다. 주인도 모르는 이사라니. 주인이 아닌 게야).

니체의 초인은 절대적인 주권자이며 달리 말하면 자유인입니다.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사람, 제약받지 않는 사람.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제시하는 초인입니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초인으로 가는 다리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를 통해서이 다리를 보여줍니다. ‘나‘는 카잔차키스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포지션이기도 합니다. 읽는 이가 어떻게 조르바가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초인이 될 수 있는가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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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보르스카의 ‘비필독도서‘ 칼럼을 모은 서평집이다(영어판 제목도 그렇다. ‘안 읽어도 되는 책들‘). 시집도 그렇지만 쉼보르스카라는 자유롭고 유쾌한 정신의 운동이 느껴진다. 책을 읽어치우는 ‘독서 먹방‘을 보여주는 듯하다(일본의 요네하라 마리가 그랬었군)...

그리고 한 가지 더, 진심으로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다. 내가 구식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책을 읽는다는 건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멋진 유희라고 생각한다. 호모 루덴스는 춤추고, 노래하고, 의미 있는 동작들을 만들어내고, 포즈를 취하고, 옷을 차려입고, 식도락을 즐기고, 정교한 예식을 거행한다. 그리고이런 유형의 유희들이 가진 중요성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즐거움들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단조로워질 것이며, 동시에 대부분 개별적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놀이들은 대개 공동체적 활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집단적인 훈련의 조짐이 가미되어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책을 갖고 노는 호모 루덴스는 자유롭다. 적어도 주어진 자유를 가능한 한 마음껏 누릴 수 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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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1980)에 이어서 칼 세이건의 대표작 <창백한 푸른 점>(1994)을 읽는다. 세이건의 마지막 책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1995)이지만, 이미 <창백한 푸른 점>에는 지구인 동료들에게 남기는 그의 유지가 담겨 있다. 천문학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우리의 거만함, 스스로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이 광막한 우주공간 속에서 우리의 미천함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는 데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어올 징조는 하나도 없다.
지구는 현재까지 생물을 품은 유일한 천체로 알려져 있다. 우리 인류가 이주할 곳—적어도 가까운 장래에--이라고는 달리 없다. 방문은 가능하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하다. 좋건 나쁘건 현재로서는 지구만이 우리 삶의 터전인 것이다.
천문학은 겸손과 인격수양의 학문이라고 말해져 왔다. 인간이 가진 자부심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데 우리의 조그만 천체를 멀리서 찍은 이 사진 이상 가는 것은 없다. 사진은 우리가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인 이 창백한 푸른 점(지구)을 보존하고 소중히 가꿀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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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비평가의 정신

19년 전의 밑줄긋기다. 요즘 비평가의 정신을 다시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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