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여러 번 강의에서 읽었지만 미진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사이에 번역돼 나온) <금색>의 도움으로(<가면의 고백>에서 <금각사>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다) 나름 견해를 갖게 되었다. 작품에서 일인칭 화자인 주인공 미조구치가 금각에 대해서 품은 두 가지 태도가 ‘금각‘으로 절대화된 미(혹은 이념)에 대한 미시마의 태도에 대응한다는 것.
제1의 몽상은 교토가 공습을 받게 되면 금각과 함께 자신도 재가 되리라는 것이고(그로써 그는 금각과 일체가 된다), 제2의 야심은 현실적으로 공습은 없을 거라는 전제하에 자신이 도셴 스님의 뒤를 이어 주지가 되면 금각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 후자가 금각-가지기(Having)라면 전자는 금각-되기(Becoming)다. 미시마-문학은 ‘가지기‘에서 ‘되기‘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1955년 보디빌딩의 시작이 그 분기점이다(강한 남성 선망에서 직접 되기로). 1956년작 <금각사>는 정확히 그 대응물이다.

한편, 뜻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야심은, 그에 대한 증오심을 느끼게 하면서도, 나를 사로잡았다.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같은 야심에서, 나를 이 절에 보낸 것일지도 몰랐다. 다야마 도센 스님은 독신이었다. 스님 자신이, 선대의 촉망을 받아서 녹원사를 계승하였다면, 나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스님의 후계자로지목될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금각은 내 것이 된다! 내 생각은 혼란스러웠다. 제2의 야심이 부담스러우면, 제1의 몽상-금각이 공습을 당하는 것-으로 돌아갔다가, 그 몽상이 어머니의 명확한 현실 판단에 의하여 깨어지면, 다시 제2의 야심으로 되돌아가는 등, 너무도 이것저것 생각하다 지쳐 버린 결과, 목밑에 빨갛고 커다란 종기가 생겼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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