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는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 어머니와 아들(마르셀)의 사랑을 스완의 사랑에 견주어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프루스트와 그의 소설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여러 대목에서 그 통념을 확인할 수 있다. 온건하게 말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성인이 되어도 ‘네 살짜리‘였던 엄마-아들 프루스트가 ‘엄마‘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음˝을 납득시키려는 시도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들의 나이는 서른넷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신이 죽고 난다음에도 마르셀이 과연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여부였다. "어머니는 살고 싶어하셨다. 당신 생각에는, 만약 당신이 돌아가실 경우에 내가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한 그 괴로운 상태에 나를 내버려두고 싶어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를 잃고 난 후에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삶 전체는단지 일종의 훈련이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나만두고 떠났을 때에 내가 당신 없이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시려고 했고...... 나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안 계셔도 나는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음을 어머니께 납득시키려고 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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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여러 번 강의에서 읽었지만 미진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사이에 번역돼 나온) <금색>의 도움으로(<가면의 고백>에서 <금각사>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다) 나름 견해를 갖게 되었다. 작품에서 일인칭 화자인 주인공 미조구치가 금각에 대해서 품은 두 가지 태도가 ‘금각‘으로 절대화된 미(혹은 이념)에 대한 미시마의 태도에 대응한다는 것.

제1의 몽상은 교토가 공습을 받게 되면 금각과 함께 자신도 재가 되리라는 것이고(그로써 그는 금각과 일체가 된다), 제2의 야심은 현실적으로 공습은 없을 거라는 전제하에 자신이 도셴 스님의 뒤를 이어 주지가 되면 금각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 후자가 금각-가지기(Having)라면 전자는 금각-되기(Becoming)다. 미시마-문학은 ‘가지기‘에서 ‘되기‘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1955년 보디빌딩의 시작이 그 분기점이다(강한 남성 선망에서 직접 되기로). 1956년작 <금각사>는 정확히 그 대응물이다.

한편, 뜻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야심은, 그에 대한 증오심을 느끼게 하면서도, 나를 사로잡았다.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같은 야심에서, 나를 이 절에 보낸 것일지도 몰랐다. 다야마 도센 스님은 독신이었다. 스님 자신이, 선대의 촉망을 받아서 녹원사를 계승하였다면, 나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스님의 후계자로지목될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금각은 내 것이 된다!
내 생각은 혼란스러웠다. 제2의 야심이 부담스러우면, 제1의 몽상-금각이 공습을 당하는 것-으로 돌아갔다가, 그 몽상이 어머니의 명확한 현실 판단에 의하여 깨어지면, 다시 제2의 야심으로 되돌아가는 등, 너무도 이것저것 생각하다 지쳐 버린 결과, 목밑에 빨갛고 커다란 종기가 생겼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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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독자라면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 매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어할 것이다. 판단은 한줄이냐 두줄이냐의 차이. 아래와 같은 대목이 두줄을 필요로 한다...

프루스트는 <방법>이라는 철학적 이념"에 <강요>와 <우연>이라는 이중적 이념을 대립시킨다. 진리는 어떤 사물과의 마주침에 의존하는데, 이 마주침은 우리에게 사유하도록 강요하고 참된 것을 찾도록 강요한다. 마주침의 [속성인] 우연과 강요의 [속성인] 압력은 프루스트의 두 가지 근본적인 테마이다. 대상을 우연히 마주친 대상이게끔 하는것,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호이다. 사유된 것의 필연성을 보장하는 것은 마주침의 우연성이다. 우연한 것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프루스트는 말한다. <그 우연성은 그것들의 진정성의 징표임에 틀림없다고 느껴졌다. 내 발부리에 부딪힌 정원의 두 포석을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되찾은 시간).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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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번역본에서 셰익스피어 강의 장면 묘사다. 젊은 학생들의 존재가 열강의 필수조건임을 알려준다. 우리의 청춘기에도 그런 강의들이 있었다(그런 강의들 탓에 나도 아직까지 문학강의를 하고 있다)...

오, 나는 느낄 수 있었지요. 그는 자신의 열정을 위해 우리의 열정이, 스스로를 소진시키기 위해 우리의 열기가, 기쁨의 환희속에 청춘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우리 젊은이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열중하는 자신의 손으로 더욱 격렬해진 리듬에스스로 도취된 타악기 연주자처럼, 그의 연설은 뜨거운 말 가운데서 점점 더 훌륭하게, 점점 더 열띠게, 점점 더 다채롭게 비상했습니다. 우리가 더 깊은 침묵에 잠길수록, (우리의 숨소리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멎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표현은 한층 고조되고 긴장되어 찬양의 소리처럼 드높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말에 완전히 귀를기울인 상태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그 사람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넘쳐흐르는 감정의 흐름 속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괴테의 셰익스피어론을 언급하면서 그가 강의를 끝마치자 우리의 흥분은 두 조각으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친 모습으로 책상에 몸을 기댔습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신경질적으로 떨리는 미세한 경련으로 가득했으며, 두 눈에는 감정이 용솟음쳐 흐르는 희열이 타올랐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지금 막 격렬한 포옹 상태에서 빠져나온 여인 같았습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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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 대표 중편(노벨레) 가운데 하나인 <감정의 혼란>에서 주인공 화자인 롤란트 교수가 어린 청년 시절 강의실에서 만난 ‘선생‘의 셰익스피어 강의를 재현한 대목이다. 존 월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서 주인공 농과대 학생 스토너가 문학에 눈을 뜬(혹은 귀가 열린) 계기가 된 것도 영문학 교수의 셰익스피어 강의였다. 돌아보면 그렇게 운명을 바꾸거나 결정짓는 강의(만남)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잉글랜드의 우상들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죠.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여왕이며, 셰익스피어이며, 셰익스피어 시대 작가들이니까요. 이전의 모든 것은 준비일 뿐이며, 이후의 모든 것은 이처럼 진정하고 대담한 무한성으로의 도약을 어설프게 흉내낸 데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시대에는, 느껴보세요. 직접 느껴보세요. 젊은이 여러분, 이 시대에는 세상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청춘이 약동해요. 어떤 현상이나 어떤 인간을 인식하려면 오로지 그 불같은 형태를, 그 열정을 살펴야 하는 법이에요. 모든 정신은 피에서, 모든 사상은 열정에서, 모든 열정은 열광에서 솟구치니까요- 그러니 셰익스피어와 그 시대 작가들에 먼저 주목하세요. 이들은 젊은이 여러분을 진정으로 젊게 만들 거예요! 열광이 먼저고 노력은 그다음이에요. 먼저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가장 숭고한 인물이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참고서인 셰익스피어에 열광한 다음 어구를 공부하세요!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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