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역자의 말 마지막 대목이다. 바르트에 대한 역자들의 과도하다 싶은 사랑도 느껴진다...

바르트가 한때 앓았던 병이 결핵이었다면, 그가 평생에 걸쳐 앓았던 병은 이른바 ‘문학병, 즉 문학에 대한 과도하다 싶은 관심, 정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병의 단초를 볼 수 있고, 또 이 병이 ‘좋은 의미‘로 악화되고 심화되어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 여러 사람의 ‘흔적‘을 볼 수있게끔 이 책의 번역을 기꺼이 추진해준 글항아리 강성민 대표님과 이 책의 편집을 맡아준 곽우정 편집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바르트를 만났던 시간은 언제나 즐겁고,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그 시간이 소중한 기회였음을 다시금 덧붙인다.
- P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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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경험주의-관념주의-검색주의

13년 전의 독서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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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비평가의 정신

13년 전의 독서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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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도 강의하지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기억되는 애스트라 테일러의 신작이 <민주주의는 없다>(반니)다. 자칫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책으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실제는 다르다. 다큐영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소개되었던가?)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다시 사고해보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취지다. 그래서 한 문단에 밑줄을 쳤다. 완벽한 민주주의는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

사실 완벽한 민주주의는 여태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벽한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있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어느 때보다 확신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더 중요하게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해야 할 질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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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캐그의 <심연호텔의 철학자들>(필로소픽)의 에피그라프가 헤세 인용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은 <데미안>과 같은 해에 발표되었고 한국어로도 번역돼 있다(에세이집에 들어가 있다). 헤세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글이지만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이 인용문만 하더라도 헤세의 상황과 고민을 바로 엿보게 해준다. 캐그의 책 원제는 ‘니체와 함께하는 하이킹‘이다...

대다수 남자들, 곧 떼거리는 홀로임을 맛본 적이 없다.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지만 고작 아내에게 기어가고 새로운 따스함과 새로운 속박에 얌전히 굴복한다. 그들은 결코 혼자가 되지 못하며 결코 그들 자신과 사귀지 못한다.
-헤르만 헤세,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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