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책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것

6년 전에 옮겨적은 보르헤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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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의 부제는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다. 비관적인 뉴스에 너무 취약한 우리의 본성을 고려하면, 뉴스를 멀리하는 것도 희망 찾기의 방책이겠다(게다가 제대로 된 뉴스가 드물어진 지 오래되었기도 하고). 저자가 인용한 스위스 소설가의 말. ˝뉴스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설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





우리 인간은 왜 그렇게 비관적인 뉴스에 취약한 것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심리학자들이 부정편향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우리의관심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많이 이끌린다. 과거 인류가 사냥과 채집을 하던 시절, 거미나 뱀을 보고 너무 자주 겁을 먹는 편이 아주 드물게 무서워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나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두려워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등에 가용성 편향이라는 짐도 지워져 있다는 점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그것이 흔하다고 우리는 추측한다. 우리가 매일 끔찍한 뉴스에 폭격을 당하는 탓에 우리의 세계관은 완전히 왜곡된다. 대형 항공사고, 어린이 납치, 참수형에 관한 이야기는 기억에 똬리를 트는 경향이 있다.
레바논의 통계학자 나심 탈레브Nassin Taleb가 냉담하게 지적했듯이 "우리는 뉴스에 노출되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이성적이지 못하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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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의 서문에서 지젝이 팬데믹 속 삶의 노래로 제시하는 것은 독일 헤비메탈 밴드 람슈타인의 ‘달라이 라마‘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의 유한성과 필멸성을 깨닫고 얼마나 우리의 삶이 (우리 눈에 보이기로는) 여러 우연들의 알 수 없는 상호작용에 좌우되는지 알게 된 지금이야말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는 태도를 적절한 자세로 취해야 할 때이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는 람슈타인의 노래는이 교착 상태로부터 벗어날 출구를 그려준다. 삶으로부터 물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식으로 팬데믹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을 충분히 알면서도 매일같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있는 많은 의료 노동자보다 지금 더 살아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죽을 때까지 그들은 살아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희생하는 이유는 단지 우리의 위선적인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벌거벗은 삶에 내몰린 생존 기계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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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는 미국문학 강의에서 존 바스의 소설들을 읽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라지만 현재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연초도매상>(1960)과 <키메라>(1972)두 편뿐이다(몇편 더 번역되었지만 절판된 상태다). <연초도매상>은 분량이 방대해(3권) 3주에 걸쳐서 읽는데, 기본적인 길잡이가 되는 건 1987년 개정판에 붙인 서문이다(이 서문의 원문을 읽어보려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저자가 나중에 삭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래 밑줄 그은 대목은 ‘1596년‘이라는 오타 때문에 가져왔다. ‘1956년‘의 연도가 바뀐 것(1930년생 작가가 17세기후반-18세기 전반에 살았던 에브니저 쿠크(에벤 쿠크)라는 시인의 서사시 ‘연초도매상‘에 관한 소설을 1596년에 쓸 수는 없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판본으로 2021년 2월에 나온 1판 16쇄에도 오타가 수정되지 않았다(2007년에 1쇄가 나왔으니 14년간 방치된 것). 분명 독자가 없는 작품이 아님에도 이런 무신경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초기 미국 문학 학자들은 지난 이십 년에 걸쳐 이 흠미로운 시의 저자에 관해 많은 정보를 모았다. 예를 들어 J. A. 레오 르메이의 「식민지 메릴랜드의 문장가들(Men of Lettersin Colonial Maryland)」 및 에드워드 H. 코헨의 1974년 연구「에브니저 쿠크; 연초 정전(Ebenezer Cooke; The Sot-WeedCanon)」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1596년에 내가 그의 풍자시에 바탕을 둔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엔, 그가 (위에서 인용한 표지에서와는 달리) 보통 자신의 성에 e를 붙여쓰곤 했다는 것 이상은 ‘에벤 쿠크(Eben. Cook)‘에 관해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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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슈미트의 햄릿론은 번역본이 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번역돼 나와야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려니 사전에, 혹은 병행하여 참고할 책들이 있다. 슈미트가 언급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벤야민만 번역돼 있다. 그래도 도버 윌슨의 책은 갖고 있고 윈스탠리의 책은 인터넷에서 참고할 수 있다. 그렇게 준비를 갖추게 되면, 이제 떠나는 일이 남는다. 어떤 책들의 독서는 등정과 같아서 맘먹고 결행해야 한다. 5월의 휴일 가운데 하루 날을 잡아야겠다...

이 자리에서 세 권의 책을 우선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셰익스피어 애호가와 셰익스피어 전문가에게는 일차적으로 방향감각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귀중한 정보와 핵심적 통찰을 얻는 과정에서 이 책들에 큰 신세를 졌다. 릴리언 윈스탠리 Lilian Winstanley의 [햄릿과 스코틀랜드 왕위계승Hamlet and the Scottish Succession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1)과 뷔르템베르크주 풀링겐의 귄터네스케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의 독일어 번역본 「햄릿,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 그리고 존 도버 월슨John Dover Wilson 의 햄릿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What happerns in Hamlet] (Cambridge University Press, 초판 19351 3판 1951), 끝으로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Berlin: Ernst Rowohlt Verlag, 1928)이 그 책들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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