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는 미국문학 강의에서 존 바스의 소설들을 읽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라지만 현재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연초도매상>(1960)과 <키메라>(1972)두 편뿐이다(몇편 더 번역되었지만 절판된 상태다). <연초도매상>은 분량이 방대해(3권) 3주에 걸쳐서 읽는데, 기본적인 길잡이가 되는 건 1987년 개정판에 붙인 서문이다(이 서문의 원문을 읽어보려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저자가 나중에 삭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래 밑줄 그은 대목은 ‘1596년‘이라는 오타 때문에 가져왔다. ‘1956년‘의 연도가 바뀐 것(1930년생 작가가 17세기후반-18세기 전반에 살았던 에브니저 쿠크(에벤 쿠크)라는 시인의 서사시 ‘연초도매상‘에 관한 소설을 1596년에 쓸 수는 없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판본으로 2021년 2월에 나온 1판 16쇄에도 오타가 수정되지 않았다(2007년에 1쇄가 나왔으니 14년간 방치된 것). 분명 독자가 없는 작품이 아님에도 이런 무신경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초기 미국 문학 학자들은 지난 이십 년에 걸쳐 이 흠미로운 시의 저자에 관해 많은 정보를 모았다. 예를 들어 J. A. 레오 르메이의 「식민지 메릴랜드의 문장가들(Men of Lettersin Colonial Maryland)」 및 에드워드 H. 코헨의 1974년 연구「에브니저 쿠크; 연초 정전(Ebenezer Cooke; The Sot-WeedCanon)」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1596년에 내가 그의 풍자시에 바탕을 둔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엔, 그가 (위에서 인용한 표지에서와는 달리) 보통 자신의 성에 e를 붙여쓰곤 했다는 것 이상은 ‘에벤 쿠크(Eben. Cook)‘에 관해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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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슈미트의 햄릿론은 번역본이 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번역돼 나와야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려니 사전에, 혹은 병행하여 참고할 책들이 있다. 슈미트가 언급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벤야민만 번역돼 있다. 그래도 도버 윌슨의 책은 갖고 있고 윈스탠리의 책은 인터넷에서 참고할 수 있다. 그렇게 준비를 갖추게 되면, 이제 떠나는 일이 남는다. 어떤 책들의 독서는 등정과 같아서 맘먹고 결행해야 한다. 5월의 휴일 가운데 하루 날을 잡아야겠다...

이 자리에서 세 권의 책을 우선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셰익스피어 애호가와 셰익스피어 전문가에게는 일차적으로 방향감각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귀중한 정보와 핵심적 통찰을 얻는 과정에서 이 책들에 큰 신세를 졌다. 릴리언 윈스탠리 Lilian Winstanley의 [햄릿과 스코틀랜드 왕위계승Hamlet and the Scottish Succession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1)과 뷔르템베르크주 풀링겐의 귄터네스케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의 독일어 번역본 「햄릿,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 그리고 존 도버 월슨John Dover Wilson 의 햄릿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What happerns in Hamlet] (Cambridge University Press, 초판 19351 3판 1951), 끝으로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Berlin: Ernst Rowohlt Verlag, 1928)이 그 책들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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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원저는 몇달 전에 구했는데, 때마침 번역본이 나왔다. 2019년에 가장 주목받은 책 가운데 하나이고 저자는 현재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명예교수다...

어웨어 홈은 다른 여러 미래지향적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더 유능하게 살아갈 수 있는 디지털 미래를상상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2000년에 이 비전이 개인적 경험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변함없는 약속을 당연하게 전제했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디지털화 한다면, 그 데이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식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고, 그 지식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독점적인 결정권을 가질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오늘날 프라이버시와 지식, 그리고 그 활용에 대한 이러한 권리는 뻔뻔한 기업들에게 빼앗겼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타인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급변한 상황이 우리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와 디지털 세계에서 사는 인간의 미래에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이 책은 디지털 세상의 꿈에 어둠이 드리우고 완전히 새로워진 탐욕스러운 상업적 프로젝트, 즉 감시 자본주의 사회로 빠르게 뒤바뀌는 데 대한 이야기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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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논쟁이 가장 활발한 곳은 영국 같은데(런던의 서점에서 한 서가 전체가 무신론 코너였다) 도킨스와 히친스 같은 무신론의 맹렬한 사제들에 맞서온 존 레녹스의 책을 구입해봤다. ‘종교를 제거하려는 시도의 역설‘을 지적한 대목은 깨달음을 준다. 무엇이 진리인가는 많은 얘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자녀의 수를 비교해보자는 것. 종교의 진화적 우위성 논변에 해당하겠다...

신무신론자들이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진화론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진화는 그들에게 협조적이지 않은 것 같다. 선데이 타임즈는 과학 편집인 존 리크가 쓴 "자연은 ‘신앙심이 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은 죽어가고 있는 종족이다"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는 독일 예나 대학교의 마이클 블룸이 이끈 「종교성의 번식상 우위」(The Reproductive Advantage of Religiosity)라는 제목의 82개 국가에 대한 연구를 보도하는데, 이 연구는 최소 주 1회 예배하는 부부는 25명의 자녀를 둔 반면, 전혀 예배하지 않는 부부의 자녀는 1.7명으로 이는 자기들을 대체하기에도 불충분한 숫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크는 종교는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돈과 건강 리스크 측면에서 커다란 비용을 부과하는 정신적 바이러스와 같다는 도킨스의 주장과, 이와 반대로 진화는 신자들을 매우 선호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적인 경향이 우리의유전자에 내면화되게 되었다는 블룸의 연구를 대조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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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1784) 5막에 나오는 피가로의 독백이다. 보마르셰의 이런 작품에 와서 소위 ‘시민비극‘(부르주아 비극)은 ‘비극‘이란 딱지를 떼고 시민극으로 재탄생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바야흐로 프랑스대혁명 전야의 분위기를 <피가로의 결혼>은 전달한다...


귀족, 재산, 혈통, 지위, 뭐 이런 것들로 기고만장해진 거지! 그런 막대한 재산을 쌓는 데 당신이 무슨 노력을 했단 말입니까? 세상에 태어나는 수고야 했겠지만, 그 이상은 하나도 한 게 없죠. 되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위인 아닙니까. 반면, 나로 말하면, 젠장! 낯모를 사람들 속에 버려져서 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갖은수완과 술수를 부려야 했단 말입니다. 백 년 전 스페인 전역을 다스리는 데도 이만한 재주가 필요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 나랑 한판 붙어보시겠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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