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에 집중해
간이라니

내가 읽고 쓰는 것만 한다고
할 줄 안다고 간에
이상이 생긴 것인가 하지
간이 부은 거라 생각하지
간간이

아침엔 간이 부은 태양이 뜨고
간이 부은 나무들은 눈도 뜨지 않아
신발로 아스팔트 바닥을 눌러보았어
등쪽이야 간은

어쩌면 그렇게들 모르는 걸까
간에 집중해야 하는데
집중은 간에 좋지 않아
무슨 간이건 간에 그래

간이 간에 좋은가
부은 간에는 부은 간이라니
간에 치명적이군

간에 대해 알려고 하지마
간에 집중해
간이 없는 듯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누가 간을 사랑한다는 거야
간에 좋지 않아
간이 견딜 수 없다잖아
네가 정말 간이 부은 게 아니라면

간은 사랑이야
간에는 신경쓰지 말아줘
내가 간에 집중하게
간을 떼놓아줘

벌써 또 간이 어두워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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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차의 기사에 대한 시를
썼던가 돈키호테 그
라만차의 기사가 사랑한 둘시네아
둘시네아에 대한 시를 적었던가

하기야 둘시네아에 대한 시는
돈키호테만이 쓸 수 있는 것
둘시네아 아가씨에 대한 시는
누구도 다른 누구도 써서는 안 되는
오직 돈키호테만이 쓸 수 있는 것
라만차의 돈키호테만이
그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할 수 있는 것

마치 풍차를 향해 돌진하듯
온몸이 부서져랴 대면하는 것
기사도적 사랑이란 
그런 것
둘시네아 아가씨를 위해
숭배하는 아가씨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심장도 꺼내서 바칠 수 있는
누가 감히 그런 사랑을 하겠는가
가슴에 털까지 난 농사꾼 처녀
둘시네아를 위하여
누가 그처럼 돌진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만큼 헌신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만큼 전력으로 
사랑을 바칠 수 있겠는가

손끝 하나 대지 못한
둘시네아 
얼굴도 보지 못한 
농사꾼 처녀를 향해
그녀를 위해서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둘시네아
그녀를 향해
마법에 걸린 둘시네아를 향해
모든 걸 바치고도 
부족하다고 탄식하는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에 대한 시는
사랑의 찬가이자 
사랑의 탄식
누가 사랑을 말하는가
오직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
그는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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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한 그루의 사과나무

아주 오래 전에 쓴 시다(아, 30년도 더 된 것인가!). ‘지난오늘‘을 옮기려다가, 이미 작년부터 그 일을 해온 터라 같은 글을 다시 소환하기가 멋쩍어 접는다. 그 대신 옮겨놓는 시이다(13년 전에 옮겨놓은 걸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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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7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10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9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10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건 어디서 본 빌리지
마을이라 쓰고 빌리지로 읽었는지
거꾸로였는지
오래 전 내가 꾼 꿈
꿈이 빌리지인지 빌리지가 꿈인지
마을에서 내가 걷는 걸음이 
시의 음절이 되고 단어가 되고
조금 더 걸으면 시행이 되는
가다가 멈춰 한숨 돌리면


그게 한 연이었지
내가 걷는 걸음을 지도에 그려넣듯이
그 걸음을 음절로 모아
시를 적었네 
시인의 마을이 아니어도
모든 산책이 시가 되는 마을
아침 산책은 아침의 시
정오의 산보는 정오의 시
해질녘 산책은 해질녘의 시가 되는
빌리지도 그런 빌리지
자정의 산책은 너무 어두워
그게 시가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알기 어렵지만
꿈길을 걸으면
꿈의 시가 되는지
그것도 모르겠지만
빌리지라고 적은 시를
꿈에서 읽은 뒤로
빌리지는 내게
언제나 마을의 시
빌리지 라이프는
나날의 시

빌리지에 바람 불고 눈이 내리면
시도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겠지
우리는 장갑을 끼고 만나야 할지도 몰라
빌리지에 가면 
어디서 본 것 같은 빌리지에 간다면

한 번 꿈을 꾸고
다시 보지 못한 빌리지
다시 읽지 못한 시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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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0-10-09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좋네요~
초록 그늘 짙은 그 곳으로
숨고 싶네요,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로쟈 2020-10-09 22:21   좋아요 0 | URL
‘빌리지 라이프‘란 시집에 있길래 바로 쓴 시에요..

two0sun 2020-10-0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된 책이 하나도 없던데 의외의 수상인가요?
아니면 우리나라에서만 그런건지~

로쟈 2020-10-09 22:21   좋아요 0 | URL
기사를 보니 의외는 아니고 시인 가운데는 후보군에 있었더군요. 에세이도 있어서 연말쯤에 책이 몇 권 소개될 듯..

오지 2020-10-0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하루가 시가 말이 되고
말이 시가 되는 날이에요

로쟈 2020-10-09 22:20   좋아요 0 | URL
그러면 좋지요..
 
 전출처 : 로쟈 > "나는 흔한 일들의 구세주"

14년 전에 쓴 페이퍼와 옮겨놓은 시다. 그때 방문자수가 10만을 넘어선 모양이다. 지금은 누적으로 580만을 넘었지만 별 의미는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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