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지 벌써 5년이 지나가네요. 놀라운 것은 2017년 8월쯤까지도 뭔가를 올렸다는 것! 그러니까 인생의 드라마틱한 일들(결혼-학업-직종전환-출산) 이후에도 서평을 올렸었다니 새삼 놀랍습니다. 그 사이 저는 직업을 수 차례 바꾸었고, 아이도 훌쩍 컸고, 우리들은 코로나에 어디를 갈때마다 QR코드를 찍는 상상도 못한 세상에 살게 되었네요.....


저도 먹고살아야 하니 ^^;;;; 구멍가게 홍보용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막상 쓰다보니 홍보가 아니라 썰푸는 용도가 되어 이 서재와 컨셉이 겹치게 생겼습니다. 허허허허


혹시 관심있으신 분은 저의 블로그로 방문해주세요! 책은 음.....그러게요 책을 좀 읽어야 하는데....아무튼 책을 읽으면 꼭 한줄이라도 리뷰를 남겨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서재에 들어와서 해보고 갑니다.


모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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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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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엊그제 배스킨라빈스 31에서 내가 좋아하는 체리쥬빌레를 사왔다. 아내는 별로 좋아하는 맛은 아닌데 입맛이 조금 유아틱한 나를 위해서 굳이 넣으셨다고 하신다. 물론 와이프와 내가 그 체리쥬빌레 맛을 좋아하는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 '달다'는 데는 합의했다. '체리맛'이라는 것도 동의했을 것이다. 근데 그게 정말 동의일까? 내가 느낀 맛과 와이프가 느낀 맛이 100%똑같을까? 그리고 그것이 '체리맛'에 100% 수렴할까? 말도 안되는 소리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 어느 하나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부모님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빌린 언어라는 도구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아마도 진솔하게 느끼고 있을 법한 감정을 절반도 표현하지 못하고 소위 짱깨식으로(어머!) 소통할 뿐이다. 어디 소통뿐일까? 애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사물 또는 사건은 그 영역과 분석과정에서 이미 언어로 인하여 왜곡되어 이해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영역과 인식하는 과정, 소통하는 과정은 모두 왜곡과 해명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인터넷상에서 소통 운운하는걸 굉장히 짜증내하는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보드리야르는 일찌기 '기호란 모든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인식, 소통, 이해 모두 기호에 의해 틀지워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 의미를 추측하고 있는데,-_-;;;; 아무튼 기호에 의해 인간의 인식 나아가 인간의 존재 자체가 규정된다는 이러한 분석은 묘하게 짜릿하면서도 위험한 구석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인간 이성과 이로 인한 인식이라는게 애초부터 취약성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러한 기호의 사용과 조합을의 살짝 뒤틀고 엊갈려 배치한다면, 인간을 이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물에 대한 '이성적인 광신(?)'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러한 기호의 연관관계와 의미와 활용양태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기호학자'다. 그의 소설이나 사회비평서가 다루는 부분은 공항 면세품 광고에서부터 복잡하고 어려운 중세의 신학논쟁까지 이어져있지만, 사실 큰 틀에서 기호가 창조되는 방식과 그것이 자체적으로 소통되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의미 왜곡에 대한 분석이라는 취지를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아, 벌써 이렇게 쓰게 되었구나. 움베르토 에코는 이제 역사속 인물이 되어버렸구나...) 소설이라기보다는 '대놓고 이론서'로 보이는 듯한 움베르토 에코의 이 소설 또한 이러한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독특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중인격자가 자신의 기억을 역추적하기 위해 일기를 쓰고, 그 내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추리해 나가는 방식은 에코의 전매특허로 보일 지경이다(사실 몇 되지도 않는 에코 소설에서 '일기', '기억상실증' 이런 소재는 좀 지겨운 느낌도 있다). 아예 대놓고 구조주의 철학자의 주장을 그대로 늘어놓고 있는 이 소설은 이성의 틀거리를 뒤집어쓴 광신적인 정치적 주장이 대중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매우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아니면 단순한 증오에의해서 주인공이 벌이는 구라-대표적으로 시온의정서 같은 것-의 패턴이 오늘, 우리사회의 유언비어가 작동하는 방식과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법이라던지, 기억을 편집하여 연결하는 법이라던지, 인간의 인식가능한 경로에 의존하여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방식, 그리고 그러한 것을 이용하여 여론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설익은 노력 같은건 그냥 21세기 최첨단 소통의 무기라는 SNS만 돌아다녀봐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제목이 '프라하의 묘지'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주인공을 위시한 그 주변 인물 그 누구도 프라하의 묘지에 가본일이 없다. 아니 애시당초 소설의 주무대는 체코는 커녕 독일도 폴란드도 아닌 라틴 유럽-그러니까 프랑스와 이탈리아-쪽이다. 그저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텍스트의 배경일 뿐인 '프라하의 묘지'는, 역설적으로 등장인물들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가본적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제목으로 적당해 보인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만들어낸 이러한 '기호'는 현실과는 전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지만, 이러한 텍스트는 역으로 인간의 현실, 나아가 미래까지도 규정한다. 이게 꼭 '프라하의 묘지'시절의 일만은 아니다. 펙트의 외피를 뒤집어쓴 텍스트에 대한 광신은 우리 사회에 하나의 광증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 팩트의 진위여부를 떠나 기본적으로 맥락에서 동떨어진 펙트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편견으로 가득찬 기호로부터 자유로운 텍스트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순수한 사실과 중립성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오늘날 '올바른' 이성을 위한 노력과 '총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큰 구획에서 볼 때 에코는 포스트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학자이다. 기호학 자체의 학문적 성격도 그렇거니와, 소설가로서도 에코는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에코는 이전부터 누누히 포스트모던에 대하여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낸 바 있고, 심지어 그러한 사고의 흐름을 '새로운 중세'와 비견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규정할 수 없는 것을 규정하려들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려들고 있다는 것 또한 의식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규정할 수 없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 또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근대의 폭력과 인간 이성의 취약성을 고발하기 위한 포스트주의적인 반성이 '올바른 방향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면제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반성이 반성으로만 남을 경우 이는 또다른 '이성적인(?) 광신'의 촉매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호의 홍수 속에서 올바름을 탐구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더욱 절실한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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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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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있는집'에서 태어났음에도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일본공산당에 가입한 아버지를 둔 저자는, 공산주의의 국제주의적 전통의 소산이라 할법한 '평화와 사회주의에 관한 제문제'라는 잡지의 편집위원이 되어 프라하로 가게 된 아버지 덕택에 프라하의 '국제학교'를 다니며 구 공산권의 다른 나라 친구들과 생활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된다. 본서는 이러한 저자의 학창시절 경험담과 함께 동구권 몰락 이후인 1990년대 중반,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 그들의 변화된 생활을 보며 느끼게 된 감정을 굉장히 아름다우면서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주로 프라하 국제학교에서 만났던 세 친구에 관한 에피소드를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본서에서, 흥미롭게도 그 친구들 중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랄 법한 소련이나 현지인인 체코 출신은 한명도 없다. 그리스에서 정치적인 박해를 받아 프라하로 망명한 가족을 따라 온 리차, 루마니아 공산당의 고위층 자제이지만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싶어하던 아냐, 공산주의 주류로부터 굉장히 이탈하여 있던 유고슬라비아(이지만(?) 보스니아) 출신의 야스나와의 학창시절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명시적으로 정치나 네셔널리즘에 관한 언급을 거의 하고있지 않지만,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른 뿌리를 갖고 외국의 학교에 다니게 된 소녀들의 경험담, 그리고 동구의 몰락 이후 친구들을 만나 그 친구들이 정치적인 격변으로 인하여 얼마나 변하였고, 뜻밖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속에서 그런 것들은 매우 세련되고 은은하게 서술되고있다.  

동구가 몰락하고 역사라는 수레바퀴에 치이고 깔리면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인생을 살게 된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저자의 문체는 여전히 담담하다. 리차-아냐-야스나 모두 자신이 유년시절에 품었던 꿈과 자의반 타의반 다른 삶을 살고 있고, 그러한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자세는 때로는 비판적이고 때로는 감성적이지만 이를 이용해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보편적인 감상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헌데 책을 읽고 난 후에서야,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모여 송곳하나 들어갈 곳 없는 짜임새가 엿보이더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정말 짜릿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심지어, 세 명의 친구들의 이미지는 세가지 색깔-파랑, 빨강, 하양-으로 엮이고, 그 친구들은 색깔이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즉, 자유 우애 평등에 대한) 표상으로 읽히기까지 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너무 과도한 해석일까?  

학창시절의 추억과 90년대 중반의 만남 사이에서, 소녀들에게 역사는 어디까지나 조연이고 정치는 엑스트라였다. 하지만 이러한 조연과 엑스트라는 이 세상 모든 '주연'들의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녀'시절과 글이 쓰여지던 당시의 변화된 상황 사이를 오가며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고집하기보다는 그저 그 친구들을 조용히 비추고 묘사해준다. 물론 저자 자신의 생각 자체가 아예 서술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생각이 표현될 경우 친구가 받을 섭섭한 감정에 대해 저자는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역사로부터 소외되고, 때로는 자기자신으로부터까지 소외된 친구들의 모습을 보듬으며 추억을 거슬러올라가는 저자의 어조는 담담하기 이를데없지만, 독자는 그 속에서 무지개처럼 많은 감상을 쏟아낼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서 무어라 콕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휴머니즘? 글쎄, 그와 유사하긴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따뜻한 무엇말이다.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연대'라는 기치를 내건 공산주의 운동과, 그 이상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의 일환으로 운영되던 국제학교에서의 저자의 경험을 읽다보면, 역설적으로 네셔널리티라던지 애국심 같은 것이 더 도드라져보인다. 저자 또한 가끔씩 지나가듯 언급한 바, 보편성(즉, 국제주의)을 파악함에 있어서도 어찌되었건 결국 개별성(내셔널리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하지만 타국 국적의 어린시절 친구들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 속에서 '무슨'이론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자의식을 확립하기 위해 어떠한 집단에 의지하는 것은, 그것이 가족이건 국가건 무엇이건 간에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론이 하나의 이상이자 목표로 설정될 수는 있겠지만, 잊지 말하야 할 것은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이다. 국제주의라는 이상은 초기 공산주의에도 있지만 신자유주의에도, 68년 프라하를 진압하러 온 소련군에도 있다. 네셔널리즘은 나치나 파쇼들에게도 있지만, 서로간의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그 차이에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소녀들의 따스한 대화 속에도 존재한다. 

이처럼 저자의 독특한 경험은 자연스럽고 세련된 서술로 인하여 자연스레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니, 그런 부분은 따지고보면 '너무 당연한'메시지이기에 전한 것이 아니라 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본서의 가치는 민족이나 국가, 혹은 사회주의와 그 이후 정치의 역설적인 부분에 대한 것에 있지는 않은 듯 하다.(사실 명시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아름답다고 할만큼 빈틈없는 짜임새와 문체, 그리고 그 경험담을 통해서 느낄수 있는 따뜻함. 우리 모두 한 때 가지고 있었던, 하지만 이제는 잊어버린(그리고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기약도 없는) 민족이니 국가니 정치적인 차이니 하는 것마저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릴 수 있을만큼 강력했던(?) 어린시절의 호기심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사람에 대한 꾸밈없는 애정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 본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인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의 한국어판 제목이 '소녀'시대라는 점은 나름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가 그 무엇으로부터도 흔들리지 않고, 그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귈 수 있었던 가장 강인했던 전성기(?)는,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소년 소녀 시절이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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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1-13 16:06   좋아요 0 | URL
편협한 국수주의를 가리기 위한 국제주의...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는 참 어려운 과제입니다.

率路 2010-11-16 17:26   좋아요 0 | URL
어찌보면 그런 틀거리에선 조화라는게 애시당초 어불성설인것 같기도 하구요..

2011-04-23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率路 2011-04-25 09:32   좋아요 0 | URL
아 확인했는데 제가 잠깐 정신이 없어서 바로 답을 못했어요ㅋㅎ 지송지송ㅋ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23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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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작년 국내 출판시장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뉴스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움베르토 에코 전집의 출간을 꼽을 것 같다. 그만큼 에코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이자 음음음 하여간 그런 사람이고, 또 과문한 나조차도 자신있게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이자 작가이자....아무튼 그렇다. 

본서는 사실 이전에 출간된 바 있는 미네르바 성냥갑1,2권을 다시 편집해 나온 것이다. 물론 표지디자인도, 편집도 바뀌었고 목차 순서도 살짝 바뀌었다. 에코가 '레푸블리카'라는 잡지에 싣던 칼럼의 모음집 형식인 본서는, 시기상으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후편으로 이해해도 좋다. 즉, 시기적으로 새 밀레니엄 직전에 쓰여진 칼럼들의 모음이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읽어야 몇몇 칼럼은 조금 더 제대로 다가올 듯 싶다. 

이탈리아 판 제목을 봐도 아마 이런식으로 편집되어서 출간된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듯 싶은데, 이 책과 짝이라고 할법한(즉, 역시나 이탈리아 판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번역되어 별개의 책으로 묶인)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와는 달리 다소 문화비평적인 성격의 칼럼을 위주로 묶어내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이 두권은 '에코 전집'으로 바뀌면서 보다 더 적절한 제목을 갖게 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법하다. 전집으로 나오면서 '소설의 숲으로 여섯발자국'이라는 어여쁜 제목이 '하버드에서 한 문학강의'로 바뀐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적절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칼럼하면 흔히 시사문제를 다룰 것 같지만, 단순히 표피적인 시사문제를 다루기엔 에코의 내공은 이를 초월해 있다. 물론 에코의 익살은 여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심지어 익살만을 위해 쓰여진, 아니 익살 그 자체인 농담같은 칼럼(우리의 정서상으로는 잡지에 실렸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또한 등장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표피적인 현상을 대하면서도 그 속에서 철학적인 화두와 날카로운 지적을 해내는 그의 시각은 여전하다.  

우석훈씨는 언젠가 '움베르토 에코가 우울증 환자들 여럿 살렸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에코의 유쾌함과 그 속에서의 진리를 향한 갈구는 우리를 '더 살고싶게 하는'묘한 매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별로 좋은일이라고는 들리지 않은 이 때, 에코를 읽으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어보는 것은 어떨런지. 에코를 접하는 방법에는 에코의 그 박학다식함만큼이나 다양한 경로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잡문집'을 통한 접근이 가장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울하고 위로받기를 원하는, 그럼에도 언제나 진리를 갈구하는 모든 분에게 본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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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의 과학 아카데미서적 Blue Backs 블루백스 55
하시모토 타카시 지음, 김태호 옮김 / 아카데미서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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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친구한테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하니까 아주 한참을 박장대소하더라. 아니 그게 그렇게 웃길 일인가? 아무튼 내가 이런 책을 읽는다는게 주변에서는 조금 웃기는 일이기는 한가보다. 하기사, 과학이라고는 중학교 때부터 손놓았던 지난날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개인적으로는 좀 이례적인 면이 없잖기는 하다. 그래도 표지디자인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판형도 그렇고 굉장히 입문서스럽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도 그래서 골랐기도 하고. 

그런데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거 잘 모르겠다. 무려 2000년도 더 거슬러올라가 아랍에서 사용하던 전지부터 시작해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졌겠지싶은 니켈카드뮴, 수은, 납전지 뿐만아니라 리튬이온, 태양열 전지(책에선 태양열 전지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마는)까지 소개하고 있기도 하고, 알게모르게 어디든 사용되는 전지의 역할, 그리고 잠깐의 생활상식(이를테면 꼭 충전 가능한 2차전지가 아니더라도 대여섯번의 충전은 가능하다는 것 정도)을 알려주기도 한다만, 거의 제로베이스에 가까운 이 분야에 있어서 이게 괜찮은 입문서인지, 아니 입문서는 입문서인지조차 나로써는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주 기초적인 간이전지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전지의 기초 4요소(플러스, 마이너스, 전해질, 세퍼레이터- 요정도는 외웠다 ㅋㅎ)어쩌구 하는걸 보면 사실 대상은 나같은 성인이 아니라 중고등학생인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다컸다는 성인인 나에게는 왜 어째서 이렇게 절반가까이 심드렁하게 읽힌단 말이더냐. 아무튼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으며 어쨌건 완독은 하긴했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만큼 심드렁하게 서평을 쓰고는 있는데 눈치를 봐선 쉬운책 같기도 하다. 하기사 내가 절반가까이 이해할 정도면 쉽기는 쉬울꺼야.

현대문명에서 전지의 중요성은 재삼재사 언급하기 입아플 정도이고(당장 당신의 시계, 핸드폰, 노트북이 무엇의 힘으로 돌아가는지 생각해보라!) 어떠한 화학적 상호작용에 의해 이러한 전자적 힘이 생겨나 반복되고 채워진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엔가는 분명히 있을 것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뭐 나같은 경우야..-_-;;;) 기초적인 과학지식에 목말라 있는 중고등학생 혹은 나같은 완전 문과쟁이들한테는 괜찮은 책 같기는 한데, 학생을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이런 책을 사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역설적으로 출판사에서 참 좋은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아쉬운 점은 일본책을 번역한 것임에도 원서가 출판된 시기가 언제인지가 책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는 점이다. 책에는 리튬 이온전지가 굉장히 최신인 것처럼 서술해 놓았지만, 지금 핸드폰 뒷커버를 열고 핸드폰 배터리에 무엇이라고 써있는지 보시라.....그렇다.-_-;;;; 아무튼 이렇게 리튬전지가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좀 시간이 지난 책 같다는 혐의가 있기는 하다. 물론 입문서이고, 전지의 기본적인 회로 구성이랄까 그런 것들을 소개하는 것이 책의 주 목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서의 출판시기정도는 언급해주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은 조금 든다.  

ps.별은 세개 붙히기는 했는데 사실 어떻게 판단해야할지 몰라서, 그러니까, 이런 책은 처음 읽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제대로 잘 이해했다고는 결코 말할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딱 중간점수로 날렸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보다 더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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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4-15 16:35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전파과학사에서 문고판으로 좋은 과학서적이 많이 나왔지요.요즘도 나오나 몰라요.저는 기후,식생,작물키우기 등에 관심이 있어서 책이나 방송에 관련내용이 있으면 열심히 집중하지요.신문의 과학전문기자들의 글도 재밌는 게 많더군요.

率路 2010-04-15 23:48   좋아요 0 | URL
아, 전 이상하게 과학 관련글이 철학관련 글보다 더 관념적(?)으로 읽혀서 뭐가 뭔소리를 하는지 읽다보면 완전 안드로메다행이랍니다. 이런것도 감각(?)이란게 조금은 필요한건지 어쩐건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