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추정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놀랐다. 이런저런 뉴스 시청과 검색 등으로 오전 두 시간을 흘려보냈다. 청와대만큼 '침통'하지는 않더라도 애석한 마음은 금할 수 없다. 불명예스런 검찰 수사와 향후 '일정' 등을 감안하면 더이상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그를 지지하긴 했지만 대통령 임기 중에 그는 많은 이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사실이다(지지자들의 기대가 너무 컸거나 수구세력의 반발이 기대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던 것인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연구/분석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당장은 여하한 사정과 무관하게 착잡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노무현'과 특별한 연고나 사적인 기억을 나로선 갖고 있지 않다. 모두가 글이나 이미지 등의 매체를 경유한 '노무현'이었다. 다만 떠올려보니 직접 가까이(?)에서 한번 보고 육성을 들은 적은 있다. 그게 특이하게도 한국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다. 지난 2004년 9월 하순에 노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고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기념강연을 가진 적이 있었다(당초 9월초로 예정돼 있었지만 베슬란 테러 사건 때문에 하순으로 늦춰졌었다). 나는 청중으로 한국학생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의 소감을 지금은 비공개로 돌린 '모스크바통신'에 올려 놓은 적이 있는데('크레믈린-보드카-러시아여성'이 제목이었다), 내겐 유일한 '인연'인지라 다시금 소환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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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9월 22일인가 23일이다) 모스크바대학에서는 노대통령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 장소는 기숙사가 있는 본관 건물의 2층 강당이었기 때문에(입학식 등의 행사가 치러지는 곳이기도 한데, 내 방 창문 밖으로 바로 보이는 곳이다) 딱히 안 가볼 수도 없었다(이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한바 있다고). 강연은 11시 15분쯤으로 예정돼 있었고, 나는 기숙사에 있는 다른 한국 학생들과 같이 10시쯤에 방을 나서서 본관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줄을 섰다. 생각보다는 많은 러시아학생들이 이미 줄을 서 있었다. 2층 출입구 양쪽에 있는 보안 검색대를 한 사람씩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고, 우리는 30분을 기다려서야 강연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높은 천장의 단층 강당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 얼추 좌석만 봐서는 2,000명이 못 들어갈 듯싶었다. 좌석 배치는 ‘교회식’이었는데, 정면을 향해서는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두 줄로 죽 늘어서 있었고, 좌우 측에는 서로 마주보면서 계단식으로 5-6줄의 좌석이 늘어서 있었다. 단상 정면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의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고, 그 양 옆 벽면에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두상과 함께 각각 그들의 발언으로 ‘열심히 공부하라’는 얘기가 적혀 있었다. 볼쇼이 극장 맞은편에 있는 마르크스의 대형 흉상처럼(“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자본주의 러시아’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지만, 이것도 ‘역사’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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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가 넘어서자 좌석은 거의 다 찼고(한국인 학교에서 단체로 온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영부인과 보좌진들이 먼저 일반 객석에 착석한 이후에 아나운서의 우렁찬 소개와 함께 노대통령이 모스크바대학 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했다. 참석자들은 기립 박수로 한국의 대통령을 맞이했다. 그리고 곧장 울려 퍼진 건 모스크바대학 교가였다(이런 게 러시아식인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
내년에(정확히는 1월이다) 설립 250주년을 맞는 모스크바대학에 특별히 한국의 대통령이 방문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는 총장의 환영사에 이어서 대통령의 강연이 있었다. 30분 남짓 진행이 됐는데, 강연 내용은 한국의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이미 소개가 됐을 것이므로,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다. 으레 행사 때의 강연문들이 그렇듯이 강연은 ‘상식적인’(혹은 상투적인) 회고와 앞으로의 전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요점은 모스크바대학 학생 여러분은 러시아의 장래인바, 한국과 러시아가 상호협력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로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열어가는 데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해가자는 것.
이 강연문은 행사가 끝나고 나오면서 기념품(볼펜과 샤프 세트)과 함께 받았기 때문에, 지금 내 책상에 있다. 내가 새롭게 안 사실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모스크바대학이 노벨상 수상자를 6명 배출했다는 것과 현재 이 대학에 200여명의 한국인이 수학중이라는 것(어학연수생이나 연수주재원을 다 포함한 숫자일 것이다). 어쨌든 한국에서도 직접 보지 못한 대통령을 먼 이국 땅에서 보게 된 건 좀 특이한 경험이었다(거짓말 같은).
강연이 끝나고 간단히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2명의 질문만을 받았다. 하나는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것이었는데, 대통령의 대답은 대학생이 되고 싶고, 특히 모스크바대학에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물론 학생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두 번째 질문은 한국의 (경제)성공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는데, 대통령은 한국인들의 ‘의지’와 교육열을 들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질문을 더 받을 수 없다면서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덧붙인 ‘립 서비스’는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을 보충하는 것이었는데, 모스크바대학 여학생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좀 썰렁한 ‘농담’이었는데, 러시아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것이 공식적인 마지막 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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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 이어서는 노대통령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와 (학교를 대표하여) 총장의 기념품(나무로 조각한 수공예품 백조였다) 증정이 있었고, 끝으로 한 한국인 성악가(여기 유학생인가?)와 모스크바대학 합창단이 우리 가곡 ‘선구자’를 불렀다(이 노래가 3절까지 있는 줄은 새삼/처음 알았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생각나는 대로 가사를 적어놓고 보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구절은 모호하다. “거친 꿈이 깊었나?” 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가란 뜻인가? 선구자는 이미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불러서 될 일이 아니고 발굴해야 될 일 아닌가?..
강연과 관련한 기록은 거기까지다.
09. 0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