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오래전에 쓴 시가 생각나서 옮겨놓는다. 2005년 말에 쓴 한 페이퍼에 끼워넣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시만을 따로 독립시켜 놓기로 한다. 시는 1995년 6월 4일에 쓴 걸로 적혀 있으니 딱 이맘때이다. 메모를 보니 '말랑말랑한 빵'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서 쓰게 됐다고 한다.   

 

말랑말랑한 빵에게 

말랑말랑한 빵은 살짝 구워진다.  

 

말랑말랑한 빵은 살짝 구워진다. 바짝 구워지면 빵은 딱딱해진다. 그건 딱딱한 빵이다.

말랑말랑한 빵은 살짝 구워진다. 바짝 구워지면 빵은 딱딱해진다. 그건 딱딱한 빵이다.
그건 말랑말랑한 빵과는 다른 빵이다. 정말 다른 빵이다. 먹어보면 안다.
그것이 말랑말랑한 빵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살짝, 그렇다, 살짝 구워진다는 !
그것이 말랑말랑한 빵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비밀은 부드럽게 혀끝에서 녹는다, 살살 녹아난다. 비밀은 사랑스럽다.
우리는 공공장소에서도 빵을 먹는다, 말랑말랑한. 세상은
오랜 관습의 사원이며 존재의 빵집이다.  


여기저기서 주무르고 달군다. 더러는 태우기도 한다.
말랑말랑한 빵의 힘든 여정, 말랑말랑한 형이상학과 말랑말랑한 세계평화가
여기저기서 반죽되고 구워진다. 밤낮이 없다.  
살짝, 그렇다, 살짝 미쳐간다는 !
그것이 또한 말랑말랑한 빵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마침내 말랑말랑한 빵이 구워졌다. 정말인가는 먹어보면 안다.      

09. 06. 07.      

 

P.S. 시에서 내가 맘에 들어하는 대목은 "우리는 공공장소에서도 빵을 먹는다, 말랑말랑한. 세상은/ 오랜 관습의 사원이며 존재의 빵집이다", "말랑말랑한 빵의 힘든 여정" 같은 구절이다. 내게 말랑말랑한 빵맛 같은 걸 전해준다. 시작 메모로 더 적어놓은 걸 옮겨보면 이렇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 단어 중에 'tangible'이 있다. '만져서 알 수 있는'이란 뜻을 한 단어로 나타낸다. 탱탱한지, 딴딴한지는 만져봐야 알 것 아닌가. 그런데 '먹어봐서(야) 알 수 있는'이란 뜻을 가진 단어는 없는 모양이다. 고작 'edible' 정도이다. '먹을 수 있는'이란 뜻. 이게 과연 먹을 수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정도가 중요해서였겠지. 하지만 대학에 오랫동안 적을 두고 있는 나에겐 앎이란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말인가는 먹어보면 안다" 같은 걸 두세 음절로 나타낼 수 있는, 그런 단어가 우리말에 있었으면 싶다(영어로는 'edangible'쯤 될까?). 우리의 어휘가 너무 부족하다. 그러니 믿음도 부족할 밖에. 말은 세상에 대한 믿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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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07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조를 붙여서 부르면 좋겠어요~

로쟈 2009-06-07 20:07   좋아요 0 | URL
곡조를 붙이려면 '-이다'는 다 개사해야겠는데요.^^

라로 2009-06-07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우리의 어휘가 너무 부족한건 사실이지만 그 많은 영어의 어휘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말들도 있잖아요~.^^(그냥 인사 댓글 남기고 싶어서,,,님의 책 구매했는데 참 좋아요~.^^)

로쟈 2009-06-07 20:09   좋아요 0 | URL
'먹어서 알 수 있는'은 영어 단어에도 없지요...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푸른바다 2009-06-0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말랑말랑한 빵은 살짝 구워진다'는 표현에 눈길이 가는 군요^^ 논리적으로는 '빵이 말랑말랑해지기 위해서는 살짝 구워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말랑말랑한 빵은 살짝 구워진 것이다'가 더 적절한 표현이겠지요^^ 이 시에서는 '말랑말랑하다'는 속성(느낌?)이 굽는다는 행위 자체를 제약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위는 물에 가라앉는다'와 유사한 패턴으로 도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치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시적인 느낌이 매력적이네요^^ 여기서 형이상학적인 비약이 일어나기 때문이겠죠^^

이 시의 주제는 헤겔의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는 말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랑말랑하다', '먹어보면 안다'는 등 몸의 느낌과 결부됨으로써 헤겔류의 추상성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문제점을 어느정도 극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이 '존재의 빵집'이라면 '먹을만하지 않은 빵'도 '먹을 만한 빵'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결국 몸의 느낌에 맞는 말랑말랑한 빵만이 먹을 만하기에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지속할만 한 존재'가 무엇인 지에 대한 판별은, '비밀'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듯이 이성적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결국 먹는다는 행위, 즉 체험과 실천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네요^^
프루스트의 '마들렌'이 연상되는 군요. 베르그송의 '지속'과 함께^^ 결국 한마디로 줄이자면 '중용'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랑말랑한 빵이라는 친근한 느낌을 통해 표현하신 것이 정감이 갑니다^^

로쟈 2009-06-07 20:10   좋아요 0 | URL
대단한 '해몽'이신데요.^^ 약간 에로틱한 면도 고려해주시면 '에로스 형이상학'이 될 거 같습니다.^^

게슴츠레 2009-06-0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랑말랑한 우유식빵을 사서 손으로 뜯어가며 먹고 싶어지는군요ㅎㅎ덕분에 하루를 '말랑말랑'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쟈 2009-06-07 20:11   좋아요 0 | URL
'딱딱한 빵'과는 아무래도 어감이 다르죠.^^

비연 2009-06-0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빵 먹고 있는데, 급말랑말랑빵 먹고 싶어지네요...ㅋㅋㅋ

로쟈 2009-06-07 20:12   좋아요 0 | URL
^^

L.SHIN 2009-06-0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랑말랑한 빵의 힘든 여정, 말랑말랑한 형이상학과 말랑말랑한 세계평화가
여기저기서 반죽되고 구워진다. 밤낮이 없다."
라는 부분이 마음에 드는군요.

오늘은 어쩐지, 로쟈님이 귀엽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로쟈 2009-06-07 20:13   좋아요 0 | URL
저도 나름대로 말랑말랑합니다.^^;

다락방 2009-06-08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말랑말랑한 빵과는 다른 빵이다. 정말 다른 빵이다.

전 이부분이 특히 좋은데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도 종종 그랬어요. 한 문장을 다 끝낸뒤에 '정말 그렇다'라고 또 한문장을 덧붙이는거죠. 제겐 그런 문장들이 그렇게 매혹적일수가 없더라구요. 로쟈님의 '정말 다른 빵이다' 이 표현이 근사해요, 제게는!

로쟈 2009-06-08 23:58   좋아요 0 | URL
새로운 지적이세요.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09-06-0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랑말랑한 빵은 갓 구운 식빵이에요..^^;;
오늘 점심 때 동네 제과점에서 갓 구운 식빵을 사서 집에서 직접 만든 잼(물론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요^^)에 발라 먹었습니다. 무려 세 개나!!!

저 시를 '해몽'할 수는 없지만 뭔가 말랑말랑한 빵에 대한 갈망이 생겨납니다..^^

로쟈 2009-06-08 23:58   좋아요 0 | URL
빵집들이 '광고'로 써도 되겠습니다.^^
 
미하일 바흐친, 산문학의 창조

이번주 씨네21에 실린 <로쟈의 인문학 서재> 소개 기사를 옮겨놓는다. 아마도 일간지/주간지 기사로는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특이하게도 바흐친에 관한 페이퍼가 언급되고 있어서 나도 오랜만에 한번 클릭해보았다. 서재를 잘 아는 필자인 듯싶어서 반갑다.    

  

씨네21(09. 06. 04) 묵은 인문서의 먼지를 털어라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인문서를 구입하느라 서평이나 리스트, 페이퍼를 참고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쟈라는 닉을 모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바흐친의 <말의 미학>을 검색하면 로쟈의 마이페이퍼가 총 6편이 뜬다. 그중 내가 바흐친의 책을 사려는 이유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페이퍼 제목 ‘미하일 바흐친, 산문학의 창조’를 클릭하면 <말의 미학>과 더불어 읽을 만한 바흐친의 저서에 대한 뉴스 자료와 로쟈 자신의 간략한 생각을 볼 수 있다. 그 생각의 깊이가 놀라워 이 글 저 글 클릭하고, 그의 페이퍼를 하나 읽을 때마다 보관함에 책 쌓여가는 소리가 들린다. 각종 이벤트니 행사 때문에 온라인 독자 리뷰가 광고 문구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꽤나 귀한 서평꾼인 셈이다.

알라딘의 페이퍼에 썼던 글을 손보고 혹은 새로 써 나온 책이 <로쟈의 인문학 서재>다. 인터넷에서 클릭을 반복하며 책으로 책으로 타고 넘어가는 재미는 느낄 수 없지만 종이책으로 묶이면서 좀더 꼼꼼히 읽고 관심분야를 파고들 여지는 커졌다. 읽다 포기했던 인문서의 먼지를 털어 로쟈의 책을 옆에 두고 가지고 있는 책이 인문학의 지형도에 어디 놓이는지 확인하고 다시 한번 읽기를 시도해도 좋겠다.  

저자가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특히 그에 관련된 글을 신뢰하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의 글을 애독해온 입장에서는 특정 언어나 특정 언어권의 문학에 제한을 두지 않고 신뢰할 만하다. 대학생들, 혹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법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책은 “한권으로 끝내는” 어쩌고 하는 인문학 실용서가 아니다. 안 읽은 책을 읽은 척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문서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김훈, 김규항, 고종석의 문체에 대한 ‘문체, 혹은 양파에 대하여’, ‘김기덕의 <사마리아>와 <빈집> 읽기’와 같은 글을 추천한다.(이다혜 기자)  

09. 06. 04. 

P.S.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18금'인 글들도 포함돼 있어서 어떨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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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기사를 옮겨놓는다.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후마니타스, 2009)를 다루고 있다. 두툼한 책이어서 정독할 수는 없었지만 민주주의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한겨레21(09. 06. 08) 유러피언 드림은 어디에 있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읽던 책은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민음사, 2005)이었다고 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몰락한 ‘아메리칸 드림’의 대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유러피언 드림’이다. 무엇보다도 공동체 의식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것이 유러피언 드림의 요체이며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비전은 유럽이 참혹한 현대사의 기억에서 길어낸 것이란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20세기 유럽 현대사’를 다룬 마크 마조워의 신간 <암흑의 대륙>(후마니타스 펴냄)은 유럽의 ‘꿈’을 빚어낸 그 ‘암흑’에 대한 철저한 탐사이고 성찰이다.  

 

이미 ‘유럽 공동의 교과서’가 우리에겐 소개된 적이 있다. 1997년에 개정판이 나온 <새 유럽의 역사>(까치, 2002)가 그것이다. 14명의 유럽 역사학자들이 공동집필한 이 책에서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다룬 마지막 세 장은 각각 ‘자기파괴를 향하여(1900-1945)’ ‘분열에서 상호 이해로(1945-1985)’ ‘통합 유럽을 향하여(1986-1996)’라고 제목이 붙여졌다. 1998년에 출간된 <암흑의 대륙>도 역시 1940년대를 20세기의 분수령으로 본다.  

단순한 통계만으로도 그 앞뒤의 두 시기는 확연히 구분된다. 1950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 시기에 전쟁이나 국가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6천만 명이 넘는데 반해, 그 이후엔 유고내전을 포함하더라도 1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인류사에서 갈등과 분쟁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지만, 20세기 전반기 유럽에서 일어난 희생은 적어도 규모에서만큼은 달리 유례가 없다. 현대적 관료체제에 기술이 동원되었기 때문인데, 1870년에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사망자가 18만4천 명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800만 명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4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 이 정도면 ‘암흑의 대륙’이라는 비유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한 유혈과 야만의 역사야말로 ‘유러피언 드림’의 밑자리가 아닌가.   

계몽주의의 유산을 자랑하는 유럽에서 이러한 참상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20세기의 역사에서 정치가 경제로 환원될 수 없다는 교훈을 끌어내는 저자는 가치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유럽은 “거대한 묘지 위에 세워진 실험실”이었다. 혹은 서로 경쟁하는 세 이데올로기의 교전장. 20세기 초에 자유주의자 윌슨은 자유민주주의의 이상향을 꿈꾸었고, 레닌은 해방된 공산주의 사회를 약속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순수 혈통의 종족들이 숭고한 목적을 지향하는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저마다 인류를 위한 새로운 질서, 곧 유토피아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실험은 모두 엄청난 희생만을 남긴 채 실패로 돌아갔다.  

1945년 나치즘의 몰락과 1989년 공산주의의 붕괴는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를 뜻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유럽에서 민주주의 체제의 정착이 한편으론 자본주의의 승리를 동반한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이데올로기에 지친 유럽인들이 정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 결과라고 본다. 민주주의에 대한 높은 지지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상관적이며 서로 비례관계에 놓여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분명 유럽은 변화했다. 많은 교훈을 얻어서라기보다는 시대가 바뀌어서다. 과거 전쟁의 빌미가 되었던 전쟁이나 제국, 영토 같은 것이 국가적 안녕에 덜 중요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탓이다. 유럽이 갈등과 경쟁 대신에 협력과 합작을 선택했다면 그것이 자신들의 번영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라는 체제는 정치적 기획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순응’이라는 것이 저자의 냉정한 판단이다. 그렇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유럽이 갖고 자랑할 만한 유산이 아니라 이제라도 창안해내야 할 어떤 가치이고 이념이 아닐까? 유럽의 ‘빛’은 그 ‘암흑’이 거꾸로 드러내는 반면교사로서의 빛이다

09. 06. 02.  

P.S. <암흑의 대륙>의 번역은 유려한 편인데, 한 군데 오역이 눈에 띄어 지적해둔다. 러시아 혁명에 관한 대목인데, "레닌을 포함한 좌파들도 제헌의회를 도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를 경우에도 불필요한 단계였던 '부르주아의 지배'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다."(29쪽)는 구절. 번역으로만 읽어도 오역이어서(마르크스는 단계론적인 혁명을 주장했다) 원문을 확인해봤다. "The Left, including Lenin, was pressing for a Constituent Assembly in order to usher in the period of 'bourgeois rule' which according to Marxist theory was now needed."(10쪽) 짐작엔 'was now needed'를 'was not needed'로 잘못 본 게 아닌가 싶다. 사소한 착오이지만 정반대로 옮긴 것이어서 결과는 사소하지 않다. 교정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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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6-0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책에 나오는 데리다-하버마스의 성명인가요 ^^ <암흑의 대륙>은 한겨레에서 봤을때부터 보고 싶어지더군요.
로쟈님의 책을 보면서 그동안 별로 생각해 보지않았던 로쟈님에 대한 구성-그래봐야 부질없는 조각맞춤이겠지만-을 해본다는... 어쨋거나 별 무리없이 잘 읽고 있다는 중간보고를 말씀드립니다. 리뷰를 써야할까에 대해 고민중인데..아직 알라딘에 리뷰다운 리뷰가 올라오고 있지 않은 것은 로쟈님과의 근접성때문이 아닐까 싶기도하고...^^

로쟈 2009-06-02 13:15   좋아요 0 | URL
사실 글모음, 내지는 글보따리여서 서평을 쓰기도 애매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눈치들도 보시겠지만.^^;
 
로쟈의 인문학 서재 이벤트(2)
<로쟈와의 인문학 토크>에 초대합니다.

지난 20일에 올린 <로쟈의 인문학 서재> 출간 기념 '이벤트(2)'의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아시다시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벤트 당첨자 발표는 좀 늦추었었습니다. 이 이벤트는 지난주 '한겨레21'의 새책 소개 코너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되었는데요, 이랬습니다.   

하루에 1천 명이 꾸준히 방문하는 서재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주인장이 자신의 본명을 오프라인 책의 저자 이름에 박았다. 로쟈는 거의 매일 신간을 훑고, 그것을 다시 네트워크로 엮어내는 신념의 책지상주의자다. 어머니가 알려주길 당사주에도 ‘책읽기’가 나와 있다고 한다. “책은 전부다. 그런데 이 전부인 책들은 책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책의 패러독스….” 그의 블로그에서는 출간 기념 퀴즈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 안경 낀 사람 8명의 이름은?” 등 꽤나 어렵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체감 난이도가 더 높았던 듯합니다. 그 '꽤나 어려운' 문제들은 아래와 같았습니다(처음 두 문제에다가 세번째 문제를 추가했더랬습니다). 표지에는 모두 26명의 인물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문제1) 이들 가운데 안경을 쓰고 있는 8명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문제2) 26명 가운데에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한번도 거명되지 않는 인물이 '실수'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문제3)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부제는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입니다. 또다른 부제가 될 만한 '카피'를 적어주세요.  

미리 말씀드리면, 문제(2)는 아직 정답자가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맞히시는 분께는 나름대로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정답자가 정 없을 경우에는 적당한 때에 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제 나머지 문제의 정답과 함께 당첨자를 알려드립니다.   

 

문제(1)의 정답인 8명의 이름을 앞표지 좌측상단에서 우측하단순으로 말씀드리면, "니체, 벤야민, 사르트르, 푸코, 로쟈, 김현,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라캉"입니다. 아무래도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는 맞히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정답자가 없을 경우엔 가장 많이 맞히신 분을 당첨자로 하겠다고 했는데, 허리우스님이 유일하게 나머지 7명의 이름을 적어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문제(3)에도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는데, 문제(2)의 당첨자가 없는 관계로, 두 가지 카피를 뽑았습니다.  

"저공비행사 로쟈, 인문학의 문턱을 낮추다" (leecre님)  

"주름진 일상의 인문학 보톡스" (lucasss님)  

축하드립니다. 당첨자 세 분께서는 저에게 댓글로 주소를 알려주시면 다음주 안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 사인본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09. 05. 31. 

P.S. 다음 이벤트는 알라딘과 오마이뉴스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로쟈와의 인문학 토크 http://blog.aladin.co.kr/culture/2878079'이다. 조촐한 정담(토크)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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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형사의 생각
    from lucasss' me2DAY 2009-06-01 11:23 
    로쟈의인문학서재 이벤트 당첨!!! 신재상 고맙삼~
 
 
2009-05-31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5-31 22: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가 딱 기대했던 독자신데요.^^

2009-05-31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00:20   좋아요 0 | URL
네, 축하드려요.^^

2009-06-01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00:20   좋아요 0 | URL
니진스키입니다.^^

루체오페르 2009-06-0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멋진 이벤트가 있었군요. ^^ 늦었지만;ㅋ
재밌네요.ㅎㅎ 축하합니다!

로쟈 2009-06-01 10: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데, 멋지다기보다는 '어려운' 이벤트였던 듯합니다.^^;

2009-06-01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11:28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구면일 수도 있겠네요.^^

2009-06-01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11:28   좋아요 0 | URL
네, 축하드립니다.^^

2009-06-01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23:56   좋아요 0 | URL
영화감독 에미르 쿠스투리차이고, 책에 나옵니다.^^

어느멋진날 2009-06-01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듣던 로쟈님의 서재에 와보네요^^ 오늘 한겨례 신문을 보는데 로쟈님이 짧게 평해준 책이 나오더군요. 로쟈님의 이름을 거기서 봐서 무지 반가웠다는 ㅎㅎ 앞으로 종종 와서 좋은 글 많이 읽고 갈께요~

로쟈 2009-06-01 23:57   좋아요 0 | URL
혹시 <불멸의 신성가족> 광고인가요? 종종 들러주시길. 들르실 때마다 '멋진 날'이 되겠네요.^^

2009-06-04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4 23:19   좋아요 0 | URL
제가 모르는 분인데요.^^;

어느멋진날 2009-06-10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맞아요~ <불멸의 신성가족> 광고에서 로쟈님을 뵈었답니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뵈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로쟈님~ 제가 너무 자주 여기 놀러와도 귀찮아 하지 마세요^^

로쟈 2009-06-11 00:00   좋아요 0 | URL
ㅎㅎ 이곳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로쟈식 코뮤니즘과 즐거운 계몽주의

장례 기간 동안 연기한 <로쟈의 인문학 서재> 관련 일도 많이 밀렸다. 이벤트 결과발표도 오늘중으로 해야 하고 2쇄 발간을 위한 점검도 해야 한다('지속가능한 글쓰기'를 위해서도 가까운 시일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아직 독자 리뷰들은 별로 접해보지 못했지만('블룩'이란 책의 성격상 리뷰의 가닥을 잡기가 좀 어려울 듯도 싶다. 오늘 알게 된 것인데,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블룩'의 우리말 순화어는 '누리글보따리'다. 이건 뭘 해도 '보따리 장사'로군!), 언론리뷰는 조금 더 눈에 띈다. 일단 부산에서 발행되는 국제신문에 실린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기사의 타이틀이 '인터넷 서평꾼 로쟈의 소풍'인 것이 눈길을 끈다. 아, 매일같이 서재로 소풍을 가다니!..  

국제신문(09. 05. 30) 넘나들고 통합하는 지성…인터넷 서평꾼 '로쟈'의 소풍 

'로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서평꾼'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서재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의 주인장인 것이다. 이 블로그에는 하루에 1000명 정도가 꾸준히 접속해 로쟈가 적어놓은 인문학 관련 신간 소식과 지적 흐름을 엿듣는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오프라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로쟈의 새로운 글쓰기다.

왜 새로운 글쓰기인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쓴 글이지만 대부분의 글을 다시 손봤기 때문이다. 온라인 버전과는 제목과 내용이 다르다는 뜻이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블로그에 올려둔 글들 가운데 알맹이만 골라 편집해 만든 책으로, '블룩'(blook·blog+book)이라고도 칭한다. 이 책에서 새로운 출판 문화의 한 단면을 읽을 것 같다.

부제를 통해 저자 스스로 '곁다리 인문학자'라고 말한 부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전공하지 않은 분야들까지도 건드리다 보니 부득불 딜레탕트에다가 곁다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도 정색하고 정통 인문학이란 이런 것이라고 읽고 말하는 고식적인 태도가 아닌 '제멋대로 읽고 기우뚱하게 쓰는' 경쾌한 시선이 돋보인다. 만화나 리빙, 자기계발서 분야의 도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식 분야를 넘나들고 통합하는 저자의 능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는 문학과 영화, 예술, 철학에 대한 진지한 에세이와 지젝 읽기, 그리고 번역비평에 대한 주요 글들이 망라돼 있다. 부제에서 암시하듯 '본격적인' 인문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글들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런 종류의 글을 너무 쉽거나 말랑하게 느끼는 독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문학 독자층'을 넓히는 데 일조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욕심인 것이다. 



책은 다섯 개의 서재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을 다룬 네 번째 서재가 눈길을 끈다. 지젝을 즐겨 읽는 이유와 함께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어떤 것인지 살짝 드러내줄 수 있는 글이 몇 편 실려 있는데, 앞으로 본격적인 '지젝론'을 쓰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오래 전부터 지젝의 글을 꾸준히 올린 덕분에 지젝은 이제 한국 '지식장'에서 현대 철학 혹은 '통합 지성'의 일반명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로쟈의 예술 리뷰'라는 부제가 붙은 두 번째 서재는 재미있다. 미술 에세이 한 편을 제외하면 주로 영화에 대한 글을 모았으며, '생명복제 시대'의 예술로서 영화 텍스트 깊이 읽기다. 이 가운데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와 '빈집'에 대한 비평은 압권이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그의 무능력이 아니라 고집스런 불성실과 아집, 그리고 부정직이다. 대충 얼버무리고, 황당한 것 갖다 붙이고, 자신이 이해가 안 돼도 넘어가는 태도 말이다." 저자는 다섯 번째 서재에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번역 문제를 아프게 건드린다. 서늘하고 신랄하게 번역의 윤리 문제를 거론하는 그는 "독자가 무서운 줄 안다면, 함부로 대충 번역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이면에는 아름다운 책에 대한 숭배와 '제대로 된' 번역자의 고통과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묻어 있다.(강춘진 기자) 

09. 05. 31. 

P.S. 대학신문의 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고 분석"하는 일은 사실 책읽기의 기본임에도 로쟈의 특징으로 주목받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다루는 리뷰들에서 주로 '박학다식'이 화제에 오르는데(대개 '소문'을 밑천 삼아 책소개를 하는 탓이리라), 이번 책은 '비평적 에세이'와 '텍스트 읽기'를 모은 것이다. 나중에 따로 묶으려고 하는 '서평집'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블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블룩적'이지도 않다. '블룩'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는 나도 더 생각해봐야겠다...   

대학신문(09, 06. 01)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로쟈

인터넷 블로그의 글이 지면의 활자로 재탄생한 ‘블룩(blog+book)’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달 18일 출간된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 이현우씨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인터넷 서평꾼이다.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박학다식을 자랑하는 그가 블로그에 자유롭게 써 온 ‘책 이야기’ 중 고갱이를 추려 다시 책으로 엮어낸 셈이다.

책은 문학·예술·철학 영역에서의 비평으로 시작해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인 지젝의 저서를 둘러본 뒤 번역비평으로 끝을 맺는다. 저마다 다른 주제의 글들이 이어지지만 대중지성을 희망하는 저자의 시각에서 비켜나가지 않고 있다. 로쟈는 세상에 대한 ‘즐거운 저항’인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포르노보다 더 음란한 포퓰리즘의 정치를 경계한다. 또 지식의 오만에서 비롯된 오기(誤記)를 비판한다.

로쟈의 서평이 주목받는 점은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고 분석한다는 데 있다. ‘니체와 여성’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그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니체와 여성’을 제각각의 관점에서 다루는 다른 저자들의 책들과 함께, 니체의 다른 저서  『선악의 저편』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학문의 경계를 초월한 그의 지식의 종횡무진함은 바로 이러한 책읽기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지식인과 대중 간 거리를 좁히는 방법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꼽는다. “블로그는 그 빠름을 감당할 수 있는 젊은 세대에만 유용한 데 비해, 느린 활자는 모든 세대에게 유효하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블로그가 대중지성의 지적 보고 중 하나로 각광 받고 있다 할지라도, 지식 공유의 폭을 확장시켜 사회적 의사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활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느리지만 넓고 깊이 있게 모두에게 다가가는 것, 그것이 활자이고 책이다. 대중은 책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지성인으로 자라나고 세상을 변하게 한다. 대중의 시대는 왔을지 몰라도 로쟈의 시각에서 볼 때 ‘대중지성’의 시대는 아직 뻗어나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뻗어나감을 돕는, 지식인의 겸손과 대중지성의 도래를 돕는 징검다리로 놓여 있다.(김빈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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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31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유새 2009-05-3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의 `후불제민주주의`와 허지웅의 '대한민국표류기'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를 갈등하면서 책방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 언급한 두권을 제쳐
두고 구입해서 열독하고있는중입니다.

로쟈 2009-05-31 14:51   좋아요 0 | URL
흠, 제 주변 말고도 독자들이 있네요!^^

건조기후 2009-05-3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국제신문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는데.. 이 곳에서 마주치니 반갑네요.ㅎ 저도 조만간 일이 끝나면 꼭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

로쟈 2009-05-31 23:38   좋아요 0 | URL
부산에 계셨군요.^^

에피쿠로스 2009-06-0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6/1 pm 10시 39분에 일독 했습니다.처음에는 재미 있었는데 지젝읽기는 좀 어려웠습니다.아마 지젝 책은 한번도 안 읽어 생소 해서 그런가 봅니다.번역에관한 비평도 흥미 진진했는데 번역이 잘못됐다고 말하니 알겠는데 원서도 안보고 볼일도 없는 사람에게는 잘 됏는지 잘못 됐는지 자체도 모르니.....원 참...전에 뉴레프트리뷰인가 로쟈님이 지적한 번역오류가 고쳐졌느지 모르겠네요...비싼돈 주고 샀는데 그말 듣고 책 덮었습니다.
다음 책은 비평이나 서평이 아닌 한가지 주제에관한 단행본으로 책이 나왔으면 합니다.아참 한가지 김규항에관한 비평...저는 김규항도 로쟈님 지적한 문제도 있지만 나름대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로쟈님 지적도 좋았습니다.한마디로 이상하지만 둘다 공감이 갑니다.어쟀든 오늘 한권 떼니 기분이 좋군요.다음번엔 더 좋은 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로쟈 2009-06-02 00:27   좋아요 0 | URL
데리다부터 지젝까지는 그냥 지나치셔도 되는 부분인데요. 그래도 일독하셨다니 반갑습니다. 거의 첫 (완독)독자가 아니실까 싶어요.^^ 다음번 책은 흠, 두 종류가 다 될 듯싶습니다...

비로그인 2010-03-13 06:12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책 너무 좋아요.. 다음번에도 다음에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
책에도 영혼이 있다면 이런 책이 아닐까 합니다.

무얼 번지게 하는데 그게 아주 랜덤하거든요..
제 생각엔 어렵지도 않고 신선하기고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나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죠.. 이것도 21식 혁명사업에 복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