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사회주의를 향한 열망과 연민의 무덤

9년 전에 쓴 글이다.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에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필독 작가인데 요즘은 주로 장편 <체벤구르>를 읽는다. 한권만 읽을 경우 중편 <코틀로반>이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코틀로반>을 다룬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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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대로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를 다룬 책이 출간되었다. 러시아 출신으로 현재는 미국 버클리대학의 인류학과에 재직중인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문학과지성사). 내게는 초면의 저자인데 원저는 2005년에 출간돼 높은 평판을 얻었다고. 슬라보예 지젝도 추천사에서 ˝후기 소비에트 시기를 다룬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했다.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학계에 큰 화제를 불러왔으며, 후기 소비에트 시기 문화 연구의 붐을 일으킨,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제목이 함축하는 것처럼, 소비에트 시스템의 ˝붕괴는 그것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감히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막상 붕괴가 시작되자 곧장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흥분되는 사건으로˝ 경험되었다. 이 책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살아간 사람들이 현실과 관계 맺었던 방식에 대한 기존의 상투적인 가정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소비에트 시스템의 본질에 놓여 있는 이 역설을 해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처럼 흥미와 지적 자극을 던져줄 책이 출간돼 반갑다. 20세기 러시아문학을 강의하는 차에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 최근에 나온 스베틀라나 보임의 <공통의 장소>(그린비)와 함께 우선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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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4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를 하면서 첫 작품으로 다룬 체호프의 <벚꽃동산>에 대해서 적었다. 역사적 과도기에 대한 성찰로 여전히 음미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주간경향(19. 10. 21) 과도기 러시아 사회 지배계급의 교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낡은 시대, 낡은 삶과의 작별을 통해서다. 그렇지만 이 작별은 순간의 의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의 교체, 혹은 이행은 일련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안톤 체호프의 마지막 장막극 <벚꽃동산>(1904)이 이러한 이행기의 문제와 과제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다. 처음 무대에 올려진 시기가 러시아 역사의 과도기였고 작품의 줄거리도 벚꽃동산의 주인이 바뀌는 이야기다. 어떤 교훈을 음미해볼 수 있을까.


작가가 ‘4막 코미디’로 부른 이 작품에서 주요 배역은 각각 두 계급을 대표한다. 지주 계급의 대표로는 라네프스카야와 그녀의 오빠 가예프가 있다. 선량하지만 세상의 물정에는 너무 둔감하며 게다가 게으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속받은 영지를 바탕으로 무위와 허영의 삶을 살아왔다. 점차 재산을 탕진하고 채무가 늘어가는 바람에 가장 아끼던 벚꽃동산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막연히 친척의 도움만을 기대한다.

연극은 아들을 잃고 5년간 외국생활을 하던 라네프스카야가 영지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 가운데 상인 로파힌이 또 다른 계급의 대표자다. 아버지가 라네프스카야 집안의 농노였기에 스스로 농부라고 칭하지만 로파힌은 수완을 발휘해 재력가가 되었다. 전통적인 지주 귀족계급과 대비해 새롭게 부상한 중간계급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푸념하지만 현실의 물정에 대해서는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로파힌이 라네프스카야를 기다린 것은 그녀에게 벚꽃동산의 경매와 관련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다. 비록 가예프에게는 “천박한 구두쇠”라고 조롱받지만 로파힌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라네프스카야를 곤경에서 구해주고자 한다. 그의 제안은 벚꽃동산은 별장지로 분할하여 임대하면 꽤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채무도 정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벚꽃동산은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긴 하지만 경제적인 이익을 낳지는 못한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버찌는 판로도 없다. 파산 직전에 놓인 라네프스카야 남매로서는 귀담아 들어볼 만한 제안이지만 이들은 수용하지 않는다. 임대사업을 위해 아름다운 동산의 벚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로파힌이 보기에 이들은 “경솔하고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사람들”이다.

결국 아무런 방책도 세우지 않아 라네프스카야 남매의 벚꽃동산은 경매에 부쳐지고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로파힌이 새 주인이 된다. 벚꽃동산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은 확장해서 보면 러시아 사회의 지배계급이 교체된다는 상징적 의미도 갖는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체호프는 다소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로파힌은 벚꽃동산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가련하고 착한 부인’ 라네프스카야가 자신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것을 원망한다. 그래서 희희낙락하기보다는 모든 일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 로파힌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성실한 인물이지만 한편으론 교양이 부족하고 사랑에는 숙맥인 인물로 그려진다. 아직 제대로 된 주인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의 사회적 풍경을 ‘코미디’로 감싸고자 한 작가가 체호프였다.


19.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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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ha 2019-10-1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종개 졸업연극으로 벚꽃동산읗 봤었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내일 강의를 앞두고 책장에서 찾지 못해 결국 서점 두 곳을 순례해야 했다(먼거리는 아니지만 버스를 세번 탔다). 푸슈킨의 단편집 <벨킨 이야기>(1830) 때문. 통상 대표작 <스페이드 여왕>(1833)과 같이 묶여 있다(제목이 <스페이드 여왕>으로만 되어 있는 경우에도). 강의에서는 두 작품을 모두 다룬다.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고 대부분 갖고 있지만 이럴 때는 또 눈에 띄지 않는다. 강의보다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이렇듯 강의책을 찾는 일이다.

<벨킨 이야기>의 원제는 <고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이고 액자 형식의 구성으로 다섯 편이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문학사적 의의를 말하자면 러시아 최초의 예술산문이라는 것(나보코프의 평가다). 곧 예술적 가치가 있는 최초의 러시아 산문소설이다.

이 작품이 1830년에 출간된 것은 여러 모로 시사적인데 1830년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문학사적 분기점이 되기 때문이다(문학시장의 핵심 장르가 운문에서 산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비단 러시아문학에서뿐 아니라 유럽문학 전체가 그렇다. 푸슈킨과 생년이 같은 발자크의 데뷔작이 발표되는 게 1829년, 초기 흥행작 <나귀가죽>이 나오는 게 1831년이며, 비록 나중에야 진가를 인정받지만 스탕달의 <적과 흑>이 1830년작이다.

단순하게 비교하면 러시아 근대장편소설(노벨로서의 로만)의 탄생이 프랑스에 비해서 조금 늦다. 푸슈킨의 경우 <대위의 딸>(1836)이 처음이자 마지막 장편인데, 사실 분량이나 스케일에 있어서 중편쯤에 해당한다. 러시아에서 본격적인 장편소설의 탄생은 투르게네프와 함께 시작되는 러시아 사실주의문학을 기다려야 한다. 그 시이에 놓인 고골의 <죽은 혼>(1842)은 ‘서사시‘(고골 자신의 표현)내지 ‘산문시‘(나보코프)에 해당한다. <고리오 영감>(1835)이나 <적과 흑>에 견줄 만한 러시아 소설은 그래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1866)이다(일종의 지체현상이 벌어지는 건 러시아 중간계급 성장의 부진 때문이다). 내가 강의에서 자주 강조하는 것이 이런 표준적 소설들이 갖는 의의다.

내일부터 공교롭게도 19세기(8강)와 20세기(8강) 러시아문학을 같이 강의한다. 19세기 문학은 푸슈킨과 고골에 한정되지만 다양한 장르의 대표작들을 이번에 다룰 예정이고, 20세기 문학은 체호프의 <벚꽃동산>(1904)에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까지다. 이 강의들을 마치면 겨울의 문턱에 서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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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10-0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앞에만 읽고 낼은 체홉인데, 왜 푸쉬킨 책을 찾으셨을까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ㅎㅎㅎ 19C도 하시는군요!

로쟈 2019-10-09 23:25   좋아요 0 | URL
11일부터는 광진도서관에서도.^^;
 
 전출처 : 로쟈 > 벤야민, 성에 눈뜨다

12년 전의 글이다. 요즘은 매일 ‘지난오늘‘을 들춰보는 게 일이 되었다. 나조차도 기억에서 잊은 글들과 마주치게 된다(물론 다시 상기하게 되지만). 그때는 긴 분량의 글도 예사로 쓸 수 있었는데, 지금보다 시간이 있었고 책은 적었던 덕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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