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일정 가운데 하나였던 에리히 프롬 읽기 강의를 마쳤다. <자유로부터의 도피><건전한 사회><사랑의 기술><소유냐 존재냐>, 네 권의 책을 7주차에 걸쳐서 읽는 일정이었고, 순서는 베스트셀러순이었다(<사랑의 기술>이 최대베스트셀러이고, <소유냐 존재냐><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뒤를 잇는다). 프롬은 1960년부터 국내에 번역되기 시작해서 20종 이상이 출간되었다. 그만큼 많이 읽혔다는 뜻도 되지만, 현재는 상당수가 절판된 상태이기도 하다. 강의에서 다룬 네 권의 책은 제목만으로도 대략 주제나 내용을 가늠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는데, 절판되지 않은 책 가운데서 더 읽을 만한 책들을 연대순으로 나열해보도록 한다. 참고한 책은 박홍규 교수의 <우리는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사랑과 사상>(필맥)이다. 

















프롬에 관한 참고서는 박홍규 교수의 책 외에도 옌스 푀르스터의 <에리히 프롬>(아르테)과 로런스 프리드먼의 <에리히 프롬 평전>(글항아리) 등을 더 들 수 있다(강의에서 참고한 책들이다). 평전은 자세하고 수준이 있는 편이지만 번역 상태가 좋지 않다. 















박찬국 교수의 해설서로 <에리히 프롬 읽기> 등도 참고할 수 있는데, 저작별로 다루고 있지 않은 게 특징이자 흠이다. 주요 저작을 읽으려고 하는 독자에게는.


프롬의 저작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를 출발점으로 하여 <소유냐 존재냐>(1976)에서 일단락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1980년 사망 이후에 몇권의 책이 유작으로 나왔는데(유작의 연도는 중요하지 않겠다) <불복종에 관하여>나 <존재의 기술> 등이 그러하다. 절판된 책을 제외하면 대략 10권 가량이다. 번역본은 가장 널리 읽히는 판본으로 골랐다. 


에리히 프롬 읽기


1941 <자유로부터의 도피>



1947 <자기를 위한 인간>



1955 <건전한 사회>



1956 <사랑의 기술>



1962 <환상의 사슬을 넘어>



1964 <인간의 마음>




1976 <소유냐 존재냐>



1981 <볼복종에 대하여>



1989 <존재의 기술>



그밖의 번역본으로는 동서문화사판이 있는데, 다수의 제목이 기존 번역본들과 다르다. 
















두 종의 번역서에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7편이다. 


<악에 대하여>(1964) -><인간의 마음>

<인생과 사랑>(1976)-><삶의 사랑을 위하여> 

<희망의 혁명>(1968)

<불복종과 자유>(1981) -><불복종에 관하여>


<소유냐 삶이냐>(1976) -><소유냐 존재냐>

<사랑한다는 것>(1956) -><사랑의 기술>

<자유에서의 도피>(1941) -><자유로부터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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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이라는 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렇게 적는다. 바쁜 일이 많은 틈에 때때로 다른 궁리를 하기 때문에. 다른 궁리란 장기적인 작업계획을 뜻하는데, 가령 세계문학사나 세계문학의 이론 등을 구상하는 일이 그에 해당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각할 수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국내외 연구 현황을(언어의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목록은 볼 수 있다) 대략 가늠해볼 수 있어서 일의 견적을 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어떤 일에서건 그 규모를 가늠하는 일이 '시작이 반'이라고 할 때의 그 시작이기에.   
















어제오늘 자료를 찾고 수집하고 일부를 프린트한 주제는 '문학의 실패'인데, 우연히 <철학의 실퍠>라는 책을 구하게 되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제목만으로도 영감을 던져준다). <철학의 종언>이나 <문학의 종말>을 다룬 책들이 한때 유행했었다('책의 종말', 더 구체적으로 종이책의 종말 담론이 얼마나 극성했던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론도 그러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와는 초점을 조금 달리하는 주제가 '실패'다. 
















종말 혹은 끝이라는 말은 중의적이어서 '마지막'을 뜻하기도 하지만 '완성'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서양 형이상학의 종말이란 한편으로 그 완성이란 뜻도 되는 것이다(데리다는 항상 그 중의성에 주목한다). 어제오늘 갖게 된 생각은 그 종말/종언 테제가 실패나 부적응에 대한 교묘한 정당화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혹은 책임 회피에 대한 교묘한 자기방어. 세련된 완곡어법. 실패의 수사학. 
















문학사에 적용하자면, 두 가지 서사가 가능하다. 탄생에서 죽음(종말)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경로(유기체적 모델)와 도입과 적용, 작동과 실패로 기술될 수 있는 기계론적 모델. 전자는 문학을 그를 둘러싼 환경 속에 갖다놓는다면, 후자는 문학을 과제상황 속에 위치시킨다. 전자가 가치중립적인 기술을 허용한다면, 후자는 평가적인 언어를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이미 문학 혹은 세계문학을 보는 나의 관점 자체가 후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에서 제시한 판단과 평가가 이미 그런 입장을 전제하고 있기에. 
















이미 많은 종말이 예견되었고 현실화되고 있다. <과학의 종말>에서 종말은 어떤 연구 패러다임의 완료를 뜻하지만 <자연의 종말>이나 <탄소 사회의 종말>에서 종말은 우리 문명의 한계와 결함에 대한 경고를 함축한다. 달리 말하면 새로운 과제상황에 대한 대응의 실패다. 문학이라는 발명품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해질 수 있다(이미 문학에 대한 기대를 접은 평론가들도 있잖은가). 


 


 












때로 자연(본성)도 실패한다. 적응의 무수한 본보기가 있듯이, 부적응의 사례도 차고 넘친다. 철학과 문학 역시 그러한 적응과 부적응(실패)의 사례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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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1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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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14: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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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14: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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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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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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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1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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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상가의 선집이 1000쪽 넘는 분량으로 나온 적이 있던가(두꺼운 평전들은 있었지만). <존 스튜어트 밀 선집>(책세상)이 그런 점에서는 기록을 세운 듯싶다. 계기는 물론 <자유론>이 '알릴레오'의 서평도서가 된 것 때문으로 보인다. 서병훈 교수의 번역본이 대표 번역본으로 선택되었는데, 이번에 나온 선집은 역자의 밀 번역을 한권에 다 모은 것이다. 모두 여섯 권인데, <공리주의><종교론><자유론><대의정부론><사회주의론><여성의 종속>까지다. 





























이 가운데 <공리주의><종교론>(<종교에 대하여>)<자유론><여성의 종속>까지는 책세상 문고본으로 따로 읽을 수 있고, <사회주의론>은 역자의 첫 번역으로 보인다(다른 번역본이 나와있다). 
















문제는 <대의정부론>. 애초에 아카넷에서 나왔는데, 이번 <선집>으로 옮겨가면서 절판되었다. <대의정부론>에 대해선 이 <선집>이 유일한 번역본이 되었다. 참고로 서병훈 교수의 밀 연구서는 밀과 토크빌을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대표자로 같이 다룬 <민주주의>와 <위대한 정치>가 있다. 





























<선집>이 포함되지 않은 밀의 주저로는 <정치경제학원리>와 <윤리학 논고> 그리고 <자서전>(다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등이다. <선집> 덕분에 밀 저작의 정리가 간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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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일본사상사와 지식의 고고학

13년 전에 쓴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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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가 그레빙의 <독일 노동운동사>(길)가 나왔기에 갖게 된 궁금증이다. 영국의 노동운동사 책은? 궁금할 것도 없었는데, 바로 검색했으면 됐으니까. G.D.H. 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책세상)가 나와 있다.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창비)과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만 생각이 나서 잠시 가졌던 궁금증이었다. 
















당연하지만, 노동운동과 노동계급의 형성은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독일 노동계급'에 관한 책은 왜 나와있지 않은가 궁금하다. 찾아보니 영어로 된 책 가운데는 <독일 노동계급 1888-1933> 같은 책이 눈에 띈다. 그렇지만 대략 노동운동사나 노동조합을 다룬 책이 더 많다. 톰슨의 책에 견줄 만한 확실한 책은 적어도 영어권에는 없는 듯싶다(독어로는 나와있을지도). 


갑작스레 노동운동이나 노동계급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면, 그건 아니다. 나의 일차적인 관심은 문학사이고, 노동계급의 형성과 노동문학 내지 민중문학은 자연스레 상관성을 갖는 문제다. 거기서 좀더 나아가면 영문학과 독일문학 간의 차이를 식별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영국과 독일의 노동운동 강도와 노동계급 형성 시기의 차이가 문학사에는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 질문할 수 있기에. 
















헬가 그레빙의 책은 <유럽 노동운동은 끝났는가>(노동자신문)라는 공저가 1994년에 소개된 바 있다. 국내서로 이병련의 <독일노동운동의 사회삼>(고려대출판부)도 2004년에 나온 관련서다. 그밖에 독일 노동법에 관한 책이 몇 권 있고, 가장 최근에 나온 관련서는 에른스트 윙거의 <노동자. 고통에 관하여.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글항아리)이다. 

















에른스트 윙거는 '파시스트'로서 논란이 되는 작가인데, 앞서 두 권의 소설이 번역됐었다. 20세기 독일 문학을 다룰 때 커리로 고려해봐야겠다. 


"이 책은  '나치즘의 헌법' '파시즘의 마그나카르타'라는 평가를 받는 <노동자: 지배와 형상>(1932)과 <고통에 관하여>(1934)를 국내 초역했다. 아울러 윙거의 사유에 숨겨진 독성에 대한 ‘해독제’로서 작용할 발터 벤야민의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을 함께 수록했다. 이로써 '전체주의의 역사철학서'로 악명만 높았던 윙거 초기 사상의 실체를 국내 독자들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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