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엘리엇의 사중주 네 편

3년 전 페이퍼다. 올해는 <황무지> 출간 100주년이기도 한데 아직 엘리엇과 관련한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새번역의 <황무지>나 시론집(에세이)가 기다리는 책이다. 조이스의 새번역 <율리시스>는 12월경에 나온다니 엘리엇도 구색을 맞춰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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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 The Sound and the Fury(1929)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 오랫동안 <음향과 분노>라는 제목으로 불리다가 문학동네판과 함께 <소리와 분노>로 안착되는가 싶었는데 이번에 나온 열린책들판 <고함괴 분노> 때문에 다시 경합이 이어지게 되었다.

알려진대로 맥베스의 대사에서 제목을 가져온지라 번역은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맥베스>의 번역에서 sound는 ‘소음‘으로도 많이 번역하기에 <소음과 분노>도 가능한 선택지다(˝인생은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찼을 뿐 아무 의미도 없다.˝)

맥베스의 대사에서 sound는 사람이 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비분절적인 소리를 가리킨다. 곧 voice에 대립하는 말이다. ‘음향‘이란 번역의 짝은 그러니까 ‘음성‘이다. 음성이 아닌 소리라는 뜻. 마찬가지로 ‘소리‘는 ‘목소리‘에 대응한다.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의 대립이다. 반면에 ‘큰소리‘란 뜻의 ‘고함‘은 ‘분노‘와 연결된다. ‘소음‘은 짝이 없이도 무의미한 소리를 가리킨다.

내가 읽은 <소리와 분노>(<음향과 분노>도 갖고 있지만 <소리와 분노>만 세번 읽었다)에서 제목은 ‘백치‘ 벤지(벤저민)가 내는 소리와 관련되는데 그가 내는 소리 내지 반응은 ‘웅얼거림‘과 ‘울부짖음이다. 의미는 그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제목으로 삼기에는 어색하다. 무의미한 ‘사운드‘를 의미로 고정시키기가 어렵구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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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오르한 파묵의 모든 것

6년 전 페이퍼다. 이번겨울에 터키문학 강의를 진행할 예정인데 아무래도 중심은 오르한 파묵이다((가장 많이 소개돼 있어서 불가피한 면도 있다). 파묵의 책은 이후에도 여러 권이 추가돼 이젠 양손으로도 다 헤지 못한다. 강의에선 초기 대표작들을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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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선생의 비평집 두권이 재간되었다. 첫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978)은 앞서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1979)와 합본돼 다시 나왔었고(2011년이었으니 10년이 더 됐다)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2-3권에 절판된 상태였다(‘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은 제목과 부제로 5권까지 이어진다. 백낙청 비평의 입장과 지향을 대변한다). 소식이 뜸해서 2권을 중고로 다시 구입하기도 했는데 깔끔한 새 장정으로 다시 나와서 반갑다(다시 구입해야 하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2>는 이번에 <민족문학의 현단계>(1985)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이 1,2권은 오래전 대학생이 되어 평론집들을 읽을 때 외경의 느낌을 갖게 했던 기억이 난다. 1990년에 나온 <민족문학의 새단계>부터는 내게 실시간이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의 인상을 갖고 있으니. 그 ‘새 단계‘가 어느덧 30년도 더 전의 단계다. 진단과 전망을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볼 수 있겠다.

마침 강의에서 현대문학사의 여러 쟁점을 짚어보고 있어서(오랜만에 김현 비평도 상기할 수 있었다), 또 현대 소설도 다시 보고 있어서, 시대의 지표가 되었던 평론집들에 눈길이 간다. <민족문학과 세계문학>도 모아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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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김소월 전집과 평전

3년 전 페이퍼다. 한국 현대시에 대해선 그 사이에 이상 시 강의가 더해졌다. 나로선 현대시사 전체를 대략 가늠해본 게 된다. 기회가 생기면 정리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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