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서밍업과 인간의 굴레

7년 전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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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평전이 새로 나왔다. 독일의 저명한 전기작가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신잡 <프란츠 카프카>다. 요즘 강의에서 읽는 쿤데라는 작품을 작가의 전기와 연관지으려는 시도에 대해 단호한 거부감을 피력한다(이 거부감은 프루스트의 것이기도 하다). 작품을 읽지 않고 전기를 읽는다고 조롱하는데 그 예가 바로 카프카다. 물론 나도 카프카 작품을 읽기 전에 전기를 먼저 손에 드는 독자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전기주의적 태도가 항상 온당하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작가와 작품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한 얼마든지 실용적인 선택과 절충이 가능하다고 본다.

카프카의 전기로는 라이너 슈타흐의 <카프카>(전3권)가 가장 상세하지만 분량상 쉽게 번역되진 않을 것 같고 차선이라면 자프란스키의 책이겠다. 독어로 쓰인 평전으로는 과거에 번역됐다 절판된 바겐바하의 최초의 카프카 평전과 함께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쿤데라는 바겐바하의 전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국내 저자의 책으로는 이주동 교수의 <카프카 평전>이 현재로선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프란츠 카프카>를 옮긴 편영수 교수는 앞서 막스 브로트의 <나의 카프카>도 우리말로 옮겼는데 이 역시도 쿤데라의 맹렬한 비판을 받은 책이지만 카프카에 관한 최측근의 기록이어서 요긴하다. 비록 브로트가 카프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쿤데라의 비판이지만 무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인지 음미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기에.

알려진 대로 브로트는 미발표 원고들을 소각해달라는 친구의 유언을 배신했다. 친구와의 약속을 어긴 셈인데, 만약 그 약속을 지켰다면 20세기 독일 10대소설에 꼽히는 <소송>과 <성>이 독일문학사뿐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 빠졌을 것이다(그래도 <변신>의 작가로는 남았겠다). 배신은 비난받을 수 있지만(쿤데라는 용서하지 않을 기세다) 브로트의 경우도 그러한지는 따저볼 문제다. 카프카가 브로트의 배신을 미리 예견했을 수도 있다면 더더욱. 이 문제에 대한 자프란스키의 견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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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에 한 일로 기록해둘 만한 것은 한강 소설 전작 읽기와, 그와 무관하지 않은 한국문학기행이다(한강의 첫 책 <여수의 사랑>을 염두에 두고서 군산, 목포, 장흥, 여수를 찾았다). 각각에 대해 자세히 정리하는 글을 써야 마땅하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언제나 복병처럼 가로막는다. 간단하게는 글을 쓸 에너지가 없다(여수 향일암에 오르는 일도 계단길에서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적어두는 게 좋겠다. 한강 문학의 여정에 대한 것.

한강의 책은 동화와 산문집을 제외하면 총 12권이다. 시집 1권, 소설집 3권, 그리고 장편소설 8권이다(처음 연작소설이라고 나왔던 <채식주의자>를 한강은 ‘장편소설‘로 분류하며 개정판도 그렇게 나왔다. 장편이라기엔 좀 짧은 <흰>은 ‘한강 소설‘로 표기/분류된다). 전작 읽기에서 나의 관심사는 이 작품들 간의 연결성이었다. 어떻게하여 <소년이 온다>(<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속편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같이 묶인다)에 이르게 되는가. <소년>과 <작별>이 한강 문학의 정점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적을 것이다). 1994년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한강은 2년간 일곱 편의 단편을 몰아 써서 이듬해 첫 소설집을 묶어냈다(개정판에서는 한편을 빼고 여섯 편만 수록한다).

인상적인 것은 곧바로 장편소설로 넘어간 점. 3년간의 시간을 쏟아부어서 첫번째 장편 <검은 사슴>을 펴냄으로써 한강은 작가로서 교두보를 확보한다. 이른바 출발점이다. 그에 이어지는 (장편)소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2)
<채식주의자>(2007)
<바람이 분다, 가라>(2010)
<희랍어 시간>(2011)
<소년이 온다>(2014)
<흰>(2016)
<작별하지 않는다>(2021)

알려진 대로 <채식주의자>(영어판 2015)로 국제부커상(2016)을, <작별하지 않는다>(불어판 2023)로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은 기세를 몰아 2024년에 그간의 성취에 대한 찬사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다수의 작품이 검토대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결정적인 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작품이었을 걸로 보인다(참고로 스웨덴어로는 <소년이 온다><채식주의자><흰><작별하지 않는다>. 네 편이 번역돼 있다). 물론 한강 소설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발한 작품으로서<채식주의자>의 의의도 빼놓을 수 없다.

<채식주의자>가 기폭제가 되었고 영어판을 포함한 대부분의 번역판들에서 <소년이 온다>(영어판 2016)가 그 뒤를 이었기에 한강 독서 순서는 <채식><소년><흰><작별> 순일 가능성이 높다(<희랍어>가 그 사이에 끼워넣어진다). 그렇지만 전작 읽기를 진행하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은 <채식주의자>보다는 <바람이 분디>가 한강 소설의 전환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불어판으론 예외적이게도 <바람이 분다>가 <채식주의자>보다 먼저 나왔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삶에 대한 긍정과 의지를 주제로 한 <바람이 분다>가 나무-되기를 통해 (동물적) 삶에 대한 부정과 거부를 주제화하고 있는 <채식주의자>보다는 이후 작품들의 주제와 더 잘 호응한다. 내가 보기에 <채식주의자>(단편 <내 여자의 열매>의 연장선에 있다)와 <바람이 분다>는 서로 이어진다기보다는 주제적으로 맞서는 작품이다. 나는 이를 ‘한강 소설의 두 계열‘이라고도 표현했다.

한강 문학은 궁극적으로(결과론적이라 하더라도) <소년>에 이르는 여정이다. 즉 80년 광주(5.18)와 등치될 수 있는 <소년>이 한강의 소설들을 읽고 평가하는 시금석인데, 한강 문학 안에서는 <여수의 사랑>(특히 표제작)과 <검은 사슴>에서 <소년>과 <작별>에 이르는 여정이고, 80년 광주의 소설화라는 맥락에서 보면 1988년에 나란히 발표된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에서 임철우의 <봄날>(1997)을 거쳐서 <소년이 온다>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 작품들이 한강 문학을 꽃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댄 소쩍새들이다.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깃발>의 리얼리즘과 <문학과 사회>(구<문학과 지성>)에 발표된 <꽃잎>의 모더니즘이 창비에서 나온 <소년>에서 화해하고 융합되는 점도 음미해볼 만한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두 계간지를 중심으로 대립되어 왔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원융과 회통이 한강의 <소년>에서 달성된 걸로 보면 한국문학의 장관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한강 전작 읽기를 통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 봄학기에 1970년 이후 한국문학을 다시 읽어나가려는 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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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7넨 전 페이퍼다. 봄학기에는 강의일정에도 넣은 터라 오랜만에 기형도 시도 다시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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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시인들의 평전을 기다리며

6년 전 페이퍼다. 올해가 <진달래꽃> 출간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관련서들이 나올 듯싶은데 소월 평전도 포함돼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현대시사의 첫단추라는 의미에서도 건너뛸 수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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