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시난테 > 김훈은 '난 아무 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 나무*2003)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했던 김훈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한 비평가는 '그의 문체가 소설에 적합하겠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기자로서의 글쓰기와 소설가로서의 글쓰기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글쎄. 솔직히 난 김훈의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 접한 김훈의 글은 <강산무진>이었다. 김훈의 몇몇 소설을 뒤적이고 또 이 책을 본 후에, 난 위의 비평가와는 전혀 반대의 의문을 가졌다. '이런 식의 사고와 문체로 과연 김훈이 기자적 글쓰기를 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뒤늦게 읽은 김훈의 글에는 뭐랄까, 기자로서 요구되는 '벼린 이성'보다는 '축축한 감정'이 묻어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는 편집자와의 상의 끝에 원래 제목이었던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를 수정한 제목이라고 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곱씹을수록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제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걸 두고 제목에 '낚였다'라는 표현을 쓰는가 보다, 했다.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에서 스치듯 김훈의 과거사를 전해 듣고, 난 그가 궁금해졌다. 부끄러운 과거 덮기에 급급한 한국 지식인 지형에서 자신의 치부를 손수 밝히고자 했던 사람이 하는 얘기가 듣고 싶어졌다. 게다가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도발적 표제를 건, 김훈이 말하는 세설(世說)이라니. 알라딘으로부터 택배가 도착하기 전부터 난 조바심이 났다.  

그에게 붙은, 그를 가장 단선적으로 보여주는 수식어는 바로 ‘문장가’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간결한 문체와 그 사이에 드문드문 배치하는 만연체는 글의 전체 맥락 속에 적절히 혼용돼 읽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책머리에>라는 책의 첫 장부터 그의 칼날 같은 문장이 나를 압도한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었던지. 몸이 가장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세설 중 가장 압권으로 문화일보가 소개한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일부를 보자. “내가 아들인 너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너는 결국 너의 그 별것도 아닌 평발 증세를 너의 어머니께 강조하면서 재심받을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나와 너의 어머니는 다만 무력하게 한숨을 쉴 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너를 낳아서 청년이 되도록 길렀으며, 남자로 태어나 함께 병역의 의무를 진 내가 너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나라의 어느 아버지가 징집을 앞둔 아들에게 이 사태를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병역은 남자로 태어난 국민의 가장 신성하고 가장 도덕적인 의무라고 말한들 이미 더럽혀지고 허물어진 신성 앞에서 그 말이 무슨 씨가 먹힐 것인가. (중략) 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 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거라. 네가 긍정해야 할 나라의 운명은 너와 동년배인 동족 청년과 대치하는 전선으로 가야 하는 일이다.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pp.18-20) 

그러나 김훈의 미사여구에 갖혀 그의 문체에만 주목하는 것은 오랜 기간 기자로 재직하며 쌓았던 그의 내공을 폄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글 쓰는 재주야 하늘이 내려주신 선험적 재능이라 볼 수도 있어 그의 필력에만 평가가 집중하는 건 ‘주례사비평’스러운 경향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 실린 글은 세상살이에 대한 김훈의 사색을 훔쳐볼 수 있어 그의 내면을 보다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한다. 

 

김훈식 글쓰기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게 바로 '아날로그적 글쓰기'다.

그는 여지껏 컴퓨터 자판에 익숙치 않아, 400자 원고지에 연필로 꾸역꾸역 문장을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집필 공간엔 잔뜩 구겨진 원고지와 지우개 가루가 어지러히 널려 있다고 한다.

사실 글쓰기를 업으로 자임한 자가 만드는 문장 하나하나는 몇번을 고쳐쓰고 지워쓰는, 산고의 고통을 거치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란 본디 '볼펜'보다는 '연필'로, 좀 더 투쟁적으로는 '몽당연필'로 써야 맞다.


 

‘너는 어느 쪽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김훈의 대답은 자못 분명하다. ‘난 아무편도 아니다’가 그가 유일하게 밟고 있는 사유의 방향성이다. 앞서 소개한대로 그는 그의 ‘계통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거니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그의 ‘아무편도 아님’은 쉽게 읽힌다. “나는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거나 천대하거나 또는 그것을 추상화해 버리는 모든 이론과 정책은 모두 사기극이라고 믿는다. 도덕은 인간의 개별성과 개별적 존재의 구체성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p.78) "정의로운 언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지금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완성해 가는 이 합리주의의 정글 속에서 정의로운 언어는 쓰레기처럼 넘쳐난다.“(p.76) "나는 보편과 객관을 걷어치우고 집단의 정의를 조롱해 가면서 나 자신의 편애와 편견을 향하여 만신창이로 나아갈 것이다.”(p.76)  

그가 잣대로 삼는 유일한 사유의 기초는 바로 ‘삶의 구체성’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먹고 사는 일’을 고려하는 것부터 그의 사유가 전개된다. 예컨대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에서 아들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충고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p.13)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밥을 먹고 돈을 버는’ 인간의 기초 행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일자리를 잃고 내 처자식의 밥 세 끼를 포기해야 하는 것, 이것이 도대체 ‘개혁’이란 말인가."(p.31) 그리고 그의 이러한 기본적 삶에 대한 집착은 곤궁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의 대한민국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듯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열차 지붕 위에 실려서 부산까지 내려갔던 세 살 먹은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이 글을 쓴다. 피난지에서 자라난 유년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고 1년 내내 배가 고팠다.”(p.21) 혹은 오랜기간 기자 생활을 하며 부딪힌 사건들, 사람들의 양면성과 이면성을 몸으로 체득하며 얻은 심성일 수도 있겠다.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이나 논리의 질서 속에 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세계를 강제로 편입시켜서 일사불란한 논리를 전개하는 언론행위는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p.92) 

난 김훈의 계통없음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대단히 용기 있는 커밍아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이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중층적’이어서, 한 가지 틀로 명쾌히 설명하는 언설은 이제 흰소리로 느껴진다. 다만 이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잣대의 무의미함’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삶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는 ‘절대적 상대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언급해 둔다. 또한 지나친 허무주의로 인해 극단적 부정의 냉소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젊은 날의 말을 되돌아보는 두려움이 98년의 저물녘에 되살아난다. 말들은 허상 만들기로 싸우고 허상 위에서만 타협이 가능하다. 결국 당대의 현실은 당대에서 말하여지지 않는다. 들끓고 날뛰고 날아오르는 말들이 당대의 결핍이며 빈곤이다. 신기루는 점점 두꺼워진다.”(p.66) "어느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관리가 ‘그것(IMF)은 나의 책임이고,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책임을 자인하고 나섰다 한들 그 말이 그 말이다. ‘책임이 없다’는 말이나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나 그 말이 그 말인 것이고 하나마나한 소리이고 들으나마나한 소리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무내용하다. 왜냐하면 그가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책임을 질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p.35)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 나 ‘천국으로 가는 길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계통없음’을 삶의 구체성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지, 삶의 갖가지 핑계거리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초로(初老)라 부르지만, 이제 이순(耳順)에 가까워져 오는 그가 보여주는 ‘글’에 대한 집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글이란 ‘왜 쓰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생기발랄한 몸의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몸이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에 가닿을 때 그의 글을 가장 빛나는 문장을 이룬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p.203) 매일 이 핑계, 저 핑계에 절주, 금연 선언을 번복만 하기에 바쁜 나로썬 얼굴 홧홧 거리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난 몸을 부릴 대로 부려야 사유가 번뜩이는, 젓 비린내 여지껏 가시지 않은 20대가 아니던가. 이런 내가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지금부터 다시 금연이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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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으니까 끝났다고 하지
그렉 버렌트 지음, 이수연 옮김 / 해냄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친구 Y는 자기 얘기를 남의 얘기하듯이 말한다. 툭툭.
엄청난 얘기도 대수롭지 않게, 감정을 담지 않고 말한다.

처음엔 Y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자기 얘기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안 힘드나? 센 척 하는건가?

그런데....Y를 몇번 따라해본 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당장 죽을것처럼 심각했던 문제가 멀리 보인다는 것을.
남의 일처럼 말하다 보면 엉켜있던 감정이 분리되면서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무엇 보다도 그렇게 말하다 보면 고백의 카타르시스 같은 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실연을 당한 남자는 자살을 하려 한다. 자신을 떠난 그녀에게 후회와 고통을 안겨주려고!
그러나...자살을 하기 직전, 죽고 나면 그녀의 고통도, 후회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는 섬광 같은 깨달음을 만난다.

나는 죽음으로 인한 무능력 때문에[적어도 세속적인 틀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바라보는 모습을 바라볼 기회를 박탈당하게 될 판이었다.(p259)

그렇다. "자기 파괴"는 복수가 아니다.
실연을 당했다고 울고 짜고 식음을 전폐하거나,
딥치즈 피자, 초코 쿠키, 아이스크림을 폭식하거나,
술독에 빠지거나 담배를 물고 살거나 그 두가지를 동시에 하거나,
일손을 잡지 못하고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거나,
하루 종일 핸펀만 들여다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처럼 멍청한 일은 없다.

왜 자기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하는가?
"자기 파괴"는 말 그대로 자기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만" 파괴할 뿐이다.

<끝났으니까 끝났다고 하지>
정말....유익한 책이다. 실용서의 백미라고나 할까?
(쩍 팔리지만....밑줄까지 치면서 읽었다!)

결국 이 책은 당신의 사랑이 옳지 않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관계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그 엉터리 관계에서 벗어나 앞에 놓인 기회를 잡을 만큼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p15)

이 책에서 실연을 극복하는 첫번째 방법으로 강조하는 건,
헤어진 후 60일 동안은 절대 헤어진 남친이나 여친을 만나지 말라는 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핑계가 있어도!

그와 어떤 접촉도 하지 않는다면,
그가 계속 권력을 휘두르며 당신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지는 못할 것이다....(중략)
60일은 당신에게 완전한 회복에 꼭 필요한 정서적 거리를 만들어준다.
(p189~190)

앞으로 이별을 하고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는 대신 이 책을 사줘야 겠다.

이별을 한 사람들에게 "술"은 정말 쥐약이다.
마음을 다스렸다가도 센티해져서 전화를 하고 마니까!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발신목록을 보고 머리를 쥐어 뜯으니까!

어떤 상황에서건 자신을 사랑하기.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기.
Respect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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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부터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14일 째.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으로.

아직 운동은 시작을 못했고
(12월 끊임 없는 송년회로 운동을 쉬다가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2주간 식사량을 조정해서 2kg를 감량했다.

2주간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열량 높은 기호식품을 한 번도 먹지 않았고,
저녁 6시 이후에는 먹지 않았다.
(14일 중 2일 실패했다. 술 마시는 바람에!)

몸이 슬슬 가벼워지고,
얼굴선도 갸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자꾸 짜증이 난다.
욕구 불만인가?

다이어트의 의지를 다지는 차원에서
<나는 이렇게 113kg을 뺐다>를 읽고 있다.

212kg였던, 체중계의 최대치를 넘어서 체중 재기도 힘들었던 의사가
암 판정을 받고 이대로 살면 죽겠구나! 자각을 하고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8개월 동안 미국 야구장 전역을 돌아 다니며
단백질 보충제만을 마신다.

먹지 않는 고통을 잊기 위해 좋아하는 야구를 보며
단백질 보충제만으로 8개월을 버틴 끝에 113kg 감량!

다이어트 전과 다이어트 후의,
그러니까 Before & After 사진을 보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특히 초기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과 박탈감으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하고
툭하면 짜증을 내는 상황들이 나온다.

평소 결핍 없이, 아니 과도하게, 먹고 싶던대로 먹던 음식을 제한할 때,
어떤 박탈감, 불안감 같은 것이 느껴지나 보다.
자꾸 초조하고 신경이 예민하다. 겨우 2주했을 뿐인데도!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
몸이 가벼워지고 얼굴선이 갸름해지기 시작한 것 외에 좋은점이 있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거다.
배가 고파서 일찍 깬다. ㅋㅋ

다이어트를 60일간 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46일 남았다.
술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약속도 가급적 하지 않고
회식도 가지 않을 생각이다.

60일간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기간으로 삼고 싶다.
그리고 좀....조용히 있고 싶다.
여기저기 휩쓸리지 않고... 감정적 동요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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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1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고비 잘 넘기시고 꼭 성공하시기 바래요^^
after사진도 보여주시고요^^

마늘빵 2007-05-1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새 불어갑니다. -_- 알면서도 자꾸 맛난거 먹어요.

kleinsusun 2007-05-1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감사합니다. after 사진을 위하여, 불끈!^^

아프님, 제가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거나 피곤할 때 마다 초콜릿을 먹었었거든요. 초콜릿만 안 먹어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아프님도 동참을?^^

BRINY 2007-05-13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통에 든 초코볼을 피곤할 때마다 약처럼 몇알씩 먹어대서, 그리고 피곤하니까 또 몸 움직이지 않아서...겨울방학보다 2킬로 늘었네요. 에궁...늦게도 먹지 말아야하는데, 야자감독하고 집에 오면 간식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요. 그냥 자버려야지.

kleinsusun 2007-05-1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카카오 72% 통에 든거 드시는건가요?
저도 그걸 피곤할 때마다 약처럼 몇알씩 먹었어요. 근데 그 칼로리가 정말 엄청나요!!! Briny님도 다이어트에 동참을?^^

다락방 2007-05-13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수선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건 좋지만, 도대체 왜 수선님이 다이어트를 하셔야 해요? 얼마전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충분히 아름다우시던데 말입니다.
:)

마늘빵 2007-05-1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쪼꼬렛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버립니다. -_- 자제해야겠습니다.

kleinsusun 2007-05-13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제....여름이 다가오잖아요. ㅋㅋ
나름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기간이랍니다. 잠수 기간이기도 하구요. 홧팅!^^

아프님, 네...초코렛은 아예 뜯으면 안돼요. 불끈!^^

부리 2007-05-1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신데 더 이뻐짐 어쩌려구.....요!

kleinsusun 2007-05-14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쵝~오!^^

2007-05-14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 그 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
안철수.박경철 외 지음 / 이미지박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작년 5월, 신임과장 연수를 받을 때,
제일기획 A차장을 알게 되었다.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인 A차장은
<머리를 감기 전에 생각부터 감아라>는 실무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A차장과 나는 "회사원의 글 쓰기, 책 쓰기"에 대해서
신나게 얘기를 나눴다.
연수원에서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란!

회사원이 책을 낸다는 건
한 권의 책의 저자가 되는 물리적 변화 뿐 아니라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엄청난 사건이다.
A차장도 책을 내고 나서 여기저기서 강의 청탁이 들어 온다고 했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제목처럼 23명의 다양한 저자들이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대해서 쓴 책이다.

icaru님의 리뷰를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뭘까....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주문했다.

박경철, 김용택, 최윤희, 박원순, 안철수, 양귀자, 임진모, 최석기 등
선정기준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쓴 글들.

이 책에 실린 23편의 글들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나 잘났어!를 외치는 글.
- 심하게 드라마틱한 재구성이 거슬림.
차라리 홍보 찌라시를 뿌리지....
아님 드라마 작가로 전업을 하거나. 쩝

둘,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
- 솔직한 글은 힘이 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김용택, 양귀자, 최석기, 김순권, 오윤홍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하지만 부산상고 입학시험에서 나는 보기 좋게 낙방했다. 부산상고는 경상남도에 있는 상고 가운데 제일 커트라인이 높은 학교였다. 그러니까 가난한 집 수재들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내가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낙심을 했지만 훗날을 생각해보면 떨어지길 잘한 것이었다. 만일 내가 그때 부산상고에 합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부산상고 출신들이 제일 많이 취직을 하는 은행에 입사했을 것이고, 은행원으로 일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 모습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얼마쯤은 출근을 했겠지만 오래 다니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뒀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내 삶은 그만큼 뒤처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 p170, 김순권의 <악마의 풀과 옥수수 추장 이야기> 中

세계적인 옥수수 박사 김순권은 계속 되는 "불합격"으로
옥수수를 연구하게 되었다.

부산상고 불합격 → 울산농고 진학
농협 입사시험 불합격 → 농촌진흥청 입사(작물시험장 농업연구사)
서울대 대학원 불합격 → 고려대 대학원 진학

어쨌든 나는 농촌진흥청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쌀을 연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직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얻지 못했다. 서울대 대학원 출신이 아니라 고려대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맡겨진 것은 옥수수 연구였다. 말하자면 학벌에 밀려서 그 당시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쌀 연구를 하지 못하고 옥수수 연구를 하는 자리를 맡은 것이었다.
(p174)

학벌에 밀려서 한직을 맡은 회사원의 전화위복!
한직을 맡은 서러움과 형평성 없는 고과로 고통 받는 회사원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은 새옹지마! Tomorrow never knows!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생각하면
당시에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니까.....지금은 힘들어도
20년 후, 2년 후, 아니 2달만 지나도
지금의 힘든 상황 또는 아픔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거다.

그러니까....쩜 힘든 일이 있다 해도
넘 오버해서 힘들어하지 말자.

Tomorrow never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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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3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파피필름 2007-05-13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넘 오버해서 힘들어하지 않으려구요.. 명심!! ^___^

마늘빵 2007-05-13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버해서 힘들어하지 않겠심다. 이래저래 저도 '不'의 순간들이 떠오르는군요.

BRINY 2007-05-13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네. 추천.

kleinsusun 2007-05-1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찌리리~~~뽕..공감해 주셔서 기뻐요.^^

스파피필름님, 네...우리 오버해서 힘들어하지 말자구요. 인생은 새옹지마! 즐겁게~ 홧팅!^^
아프님, 저도 不의 순간들이 많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다행인 不들도 많아요.^^

Briny님, 인생 까잇거 뭐 있나요? ㅋㅋ 즐겁게,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홧팅!^^

2007-05-15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술 2007-05-1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수선님 서재 즐겨찾기 해 놓고 와서 읽고만 가다 글 첨 남겨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뻔히 들킬 거 아시면서 A차장님이라고 쓰셨어요?

kleinsusun 2007-05-16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술님,안녕하세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회사 이름, 책 제목도 썼으면서 "A차장"이라고 썼네요. 하하 머쓱! 글 쓸때 이니셜로 쓰는게 습관이라 그런가봐요...

심술 2007-05-16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무심코 몸에 밴 습관이 참 바꾸기도 어렵고 무서워요.
 
 전출처 : 기인 > 서울대 철학과 97학번 31명 인생 궤적 따라가 보니…

[이슈해부] 서울대 철학과 97학번 31명 인생 궤적 따라가 보니… [조인스]
대한민국 ‘인문학 위기’ 檢證 보고서

■ 8명 국내외에서 학문 계속…사시 합격 2명, CPA 1명, 취업 9명
■ 철학이 직장에서도 먹힌다…인문적 문답수업 직장생활에 큰 힘
■ 영국 케임브리지 고전철학 전공자 10명 중 9명 취업 주목
■ 전문성 잃고 교양 수준의 인문학으로 변화…위기 돌파구일 수도
■ 위기 진단 자체가 비인문적 발상…인문영역 예술로 확대 중


월간중앙1997년도 학번은 대한민국을 벼랑으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세대다. 그들 중 가뜩이나 어렵다던 인문학 전공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서울대 철학과 97학번의 인생 궤적을 추적한다. 그들의 내성은 얼마나 강하며, 인문학은 얼마나 위기인가?
고래를 잡으러 간 영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병태는 입영열차를 탔다. 영자와의 뜨거운 입맞춤만 남긴 채-.

요절한 천재 영화감독 하길종의 대표작이자 히트작인 <바보들의 행진>. 1970년대 중반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이 작품 속 두 주인공 병태와 영철은 철학도였다. 군부독재라는 냉엄한 현실 아래서 철학을 하기에 고뇌해야 했고, 돈이 안 되는 학문이기에 이성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했던 인간군상들. 딱 32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만 10년 전. 꿈을 안고 출발한 대학생활도 타성에 젖어갈 무렵, 그들이 딛고 선 이 땅은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비틀거렸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는 바람에 국가 파산 위기에 처했던 것.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저금통을 털고 장롱 속 금붙이를 들고 나와 위기를 넘기는 일이 벌어졌다.

대학 졸업반 선배들은 취업의 길을 열지 못해 주저앉았다. 그에 놀란 2~3학년 선배들은 군대로 도피하거나 휴학의 길을 택해 시간 벌기에 들어갔다. 아직 물정도 잘 모르면서 그냥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바라보기만 했던 그들. 바로 97학번이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고비를 넘기고 급격한 산업화를 거쳐 지식정보사회로의 빠른 페달을 밟고 있다. 군사정권도 끝난 지 오래다. 이제는 풍성한 민주화의 열매를 따 먹는 시절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서 인문학은 냉대받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심지어 한 인문학도는 “암울했던 군사독재시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고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다.

“돈이 되는 것과 돈이 되지 않는 것.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대한민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 인문학도는 학문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만 존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탄했다.

이 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해석하는 많은 학자의 주장도 다르지 않다. 몇몇 학자들은 그 시발점을 1997년 말부터 갑작스럽게 닥친 ‘외환위기’로 보고 있다. 소위 ‘IMF 시절’을 겪으며 사람들은 참 많이 변했다. 수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노숙자와 청년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나는 혹한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IMF 위기가 초래한 사회 변혁의 틈바구니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듯하다. 아니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이 상징하는 신자유주의의 조류 앞에 사람들은 한층 더 돈을 중심으로 한 이분법적 사고에 세뇌당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해 9월 전국 인문대 학장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했다. 유사 이래 최초라는 ‘인문학 위기’ 시국선언. 이후 폭발할 것만 같던 이 이슈는 약 반년이 흐른 지금 벌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먹고사는 일에 바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던 이슈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인문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 전공자들의 삶은 어떨까? 10년 전 진리에 목말라 철학이라는 학문을 선택했던 이 시대의 영철과 병태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서울대는 한국사회에서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서울대망국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몰리는 곳이다. 일종의 브레인 집단이기에 서울대가 차지하는 위상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인문학에서 서울대 인문대는 국내 어느 대학보다 규모가 크고 연구 성과도 높은 것으로 정평나 있다. 이는 상아탑발 인문학의 위기를 논할 때 서울대 인문대를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한 학생이 철학과가 있는 인문관 6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연유로 서울대 인문대의 한 학과 중 한 학번 학생들을 표본으로 삼아 이들의 진로가 어떻게 됐는지 조사해 보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선정한 집단은 서울대 인문대학 철학과 97학번.

우선 철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철학이 모든 인문사회과학의 출발점이자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97학번일까?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는 1997년 말부터 시작한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급속하게 사고의 전환이 이뤄졌다. 사회가 그러한데, 대학과 그 구성원들도 변화가 없을 리 만무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철학을 전공하기 위해 입학한 97학번 동기생들은 학교에 다니며 가장 다이내믹한 인문학의 위기상황을 목격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선배들과 달리 ‘서울대’라는 간판만으로 취업하던 시절도 끝나고, 또 ‘철학도’라는 꼬리표가 더 이상의 자랑이 될 수 없는 마지막 세대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사회로 진출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들 97학번 집단이야말로 사회 변혁기에 가장 큰 혼돈 속에서 진학과 취업을 저울질해야만 했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인문대학 철학과 97학번으로 입학한 학생은 모두 31명(97학번 편입생 1명 포함). 이들 31명은 정말 다양한 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 졸업하지 못한 재학생도 3명이나 됐다. 이들 재학생을 제외한 28명 중 3명은 끝까지 행적을 알 수 없었다. 결국 졸업 후 진로가 확연히 드러난 사람은 총 25명.

이들 25명의 졸업 이후 진로 스펙트럼은 각양각색이지만, 크게 범고시파·취업파·진학파로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이들 그룹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갈래로 다시 나뉠 수 있다.

우선 범고시파의 경우 사법시험 합격자가 2명, 공인회계사시험 합격자가 1명이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 한 명은 이미 수원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현재 모 지방법원에서 연수 중이다.

공인회계사시험 합격자는 현재 공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그는 6월에 전역하면 국내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 중 한 곳에 바로 입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삼수생 이상 입학자 중 학구파 많다

특이한 점은 아직 취업하지 못한 미취업자 그룹 역시 범고시파라는 것이다. 확인된 미취업자 3명은 전원이 사법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취업파는 졸업생의 거의 3분의 1 수준인 9명이다. 인문계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취업하는 대기업과 금융권 취업자가 각각 3명씩 6명이었다. 대기업 진출자 중에는 사무직이 아닌 정보기술(IT) 개발 쪽으로 취업한 경우도 한 명 있었다. 금융권은 은행 2명, 보험회사 1명이었다. 이외의 취업자들은 공기업·출판사·IT벤처기업에 각 1명씩 진출했다.

의외의 분야는 진학파였다. 진학파는 모두 10명으로 우선 수적으로 타 그룹을 압도했다. 철학 또는 철학과 연계된 전공으로 진학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에는 벌써 박사과정에 진입했거나 해외 유명 대학 대학원에서 유학 중인 경우도 있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8명의 철학 관련 진학자 중 4명은 본과 대학원, 1명은 협동과정인 고전학 분야로 진학했고, 나머지 3명은 유학을 떠난 상태였다. 유학 중인 사람은 각각 미국의 카네기멜론대·브라운대, 영국의 옥스퍼드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진학파 중 나머지 2명은 전공을 바꿔 진학했다. 한 명은 같은 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으로, 다른 한 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전문사과정에 진학했다.

이들 진학파를 분석하면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철학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삼수생 이상의 장수파였다. 같은 대학원 철학과로 진학한 4명은 전원이 삼수생이었다. 유학자 중 2명은 아예 고령 입학생으로 70년대 초반 출생자였다.

나머지 한 명의 유학생도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한 후 철학과 97학번으로 편입한 학생으로 나이가 많은 축이었다. 한 동기생은 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나이가 좀 들어 입학하는 사람은 스스로 진지한 고민 끝에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겠으나, 나이가 든 이후 입학한 학생들의 진학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97학번은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확인된 것으로만 봐도 지방학생 비율이 과반을 넘었다. 무려 18명(확인자만) 이상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 출신이었다. 요즘 서울대에 서울 강남권 학생이 집중되는 현상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에 대해 한 97학번 졸업생은 “지방 출신 학생이 줄어들면서 대학원 진학이나 철학 자체에 대한 관심도 현저히 줄어드는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여학생은 4명뿐이었다. 하지만 97학번을 기점으로 여학생이 점점 늘어나 요즘에는 거의 정원의 반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공부 계속하는 사람 점점 줄어…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 서울대 철학과 97학번들은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들 중 대면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총 6명. 대체로 이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단순한 취업문제가 아닌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교양 수준 부재와 시스템상의 한계로 인식하고 있었다.

먼저 올해부터 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태권(30) 씨.

“요즘 고등학생들을 보면 전교 순위로 이과 1~20등은 의대, 문과 1~20등은 법대, 이런 식 아닙니까?”

유씨는 97학번 동기 중 가장 빨리 진학한 경우다. 유씨의 설명에 따르면 철학과에 입학하는 신입생 역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제가 입학할 때는 그래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 중에서 지적 호기심이나 관심이 있어 철학과를 지원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더군요.”

유씨는 “기본적으로 취업이 안 돼서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돈이 안 되면 쓸모없는 것(학문)으로 치부하는 사회현실이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려 섞인 목소리로 이어지는 그의 말.

“서울대의 경우 인문2계열(역사·철학계열, 인문1계열은 어문계열)에서 국사학과의 인기가 압도적인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그나마 취직공부를 하기 편하기 때문인 것 같더군요.”

취업에 불리한 인문대에서 학문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접근보다 그나마 취업에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 국사학이라는 말이었다.

인문학 전공자의 강점 사회에서 인정 안 해

유씨의 주장처럼 실제로 인문2계열 전공 진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과는 국사학과였다. 2007학년도 전기 학과별 전공 진입 지원자 50명 중 절반인 25명이 국사학과를 지원한 것. 상대적으로 철학과·미학과·종교학과 등은 지원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종교학과의 경우에는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입학 전에 전공이 확정된 10명 안팎의 ‘전공예약제’ 학생 덕분에 폐과 위기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유태권 씨는 또 다른 ‘인문학의 위기’로 볼 수 있는 현상 하나를 지적했다.

“언론에서도 그렇고 이공계가 위기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문대에 비하면 혜택을 많이 받는 편이죠.”

그가 든 사례는 서울대 홈페이지에 떠 있는 ‘2007 이공계 국가장학생사업’(과학기술부·한국과학재단 주관)이라는 정부의 지원정책이었다.

이 사업은 이공계열 학과(부)에 입학한 우수 신입생을 대상으로 총 2,400명을 선발해 학비 전액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게다가 다음 학기에 성적이 좋으면(전체평점 A 이상) 50만 원의 교재비까지 지급한다는 세부사항도 붙어 있었다.

유씨는 “이런 정부의 지원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도 “왜 인문학에는 이런 지원이 없느냐”고 반문했다.

유씨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최동호(31·철학과 석사과정 수료) 씨는 인문학 전반보다 철학에 대한 부분을 주로 언급했다.

“철학은 인문학 중에서도 특별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이 철학입니다. 이런 철학이 위기를 맞으면 문제가 심각해지겠죠.”


최씨는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의 상황은 ‘상대적 위기’로 해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상대적 위기’란 어떤 의미인지?
“미국을 예로 들자. 미국에서도 의학·법학과 같은 실용학문의 인기가 높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봤을 때 한국보다 철학에 대한 관심, 나아가 인문학적 교양에 대한 관심의 수준이 높은 편이다.”

―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있나?
“논문만 봐도 그렇다.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인 측면에서도 한국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철학이란 학문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진학하는 학생이 줄어들고 해서 실력 없는 사람들이 경쟁하면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씨는 “결국 인문학 자체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교양 수준에 그칠 것”이라면서 “취업활동에 바쁜 사람이 칸트니 헤겔이니 하는 것을 들을 수준이 되겠느냐”며 개탄했다.

대면 인터뷰에 응한 나머지 4명은 모두 철학이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연기자 지망생에서부터 현직 판사까지 철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방향으로 진로를 선택한 이들을 만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물어봤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예술전문사과정을 밟고 있는 허정도(28) 씨를 만난 것은 지난 4월8일. 허씨는 인터뷰 도중 한 동기생의 진로를 지목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사회에서 조금만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해줬으면 잘했을 친구인데 참 아쉽다.”

허씨가 언급한 A(29)씨는 재학시절 적극적으로 빈민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 활동 등을 하다 졸업 후 공익단체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일반 기업에 재취업해 현재는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는 한 IT벤처기업의 총무팀 직원이 됐다.

허씨는 “졸업하고 진짜 하고 싶었던 분야로 진출했는데 어쩔 수 없이 다른 길로 가야 했던 경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인문학 위기 진단, 교수마다 달라

사회 시스템의 한계로 대학에서 고민하고 실천했던 부분을 사회활동으로 연결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는 것 자체가 ‘인문학의 위기’의 한 단면 아니냐는 것이 허씨의 논리였다.

취업이나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인문학의 위기’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능력이 뛰어남에도 사회에서 잘 몰라주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SK C&C에 근무하는 이현수(30) 씨는 “철학을 공부한 것이 사회에 나와보니 큰 힘이 된다”면서 “수업방식 자체가 10명 내외의 학생과 교수가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식이어서, 내게는 일상적인 것이 직장과 조직사회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술적인 부분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지만, 기초가 되는 부분(인문학적 교양과 의사소통 능력)은 그렇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런 생각은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한 뒤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인 이용권(28) 씨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은 흡수력이 빠르다. 재료만 갖다주고 조금만 기술을 익히면 무엇이든 잘 해내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수준이 높지 않나?”

이씨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미래상도 이와 결부시켜 답했다.

“조직에서 직급이 높아지고 책임이 늘어나면 관리능력 측면에서도 철학을 공부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인 고상교(30) 씨도 “굳이 인문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인문학적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 존경받는다”는 말로 이현수 씨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이들 철학과 97학번 역시 취업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듯했다. 졸업을 앞두고 철학과 동기 2명(2명 모두 현재 은행에 취업)과 함께 면접 스터디를 한 이현수 씨는 “나는 학부시절부터 IT벤처기업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그나마 나았지만, 다른 철학과 동기나 후배들은 그런 정보에 취약했다”고 한다.

이현수 씨는 현재 서울대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학기 단위로 2~3명의 후배에게 사회 선배이자 대학 선배로서 사회생활을 위한 여러 가지를 조언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씨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는 자신이 취업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들만큼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이씨는 “특히 인문대 후배들을 더 챙기게 마련”이라면서 “취업 정보에 가장 취약한 학생들이 인문대생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요즘 서울대 인문대생 사이의 최대 화두는 취업이었다. 서울대 경력개발센터에 문의한 결과도 취업과 관련해서는 역시 인문대가 가장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력개발센터의 유현실 전문위원은 “서울대 역시 인문대 학생들은 취업에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대기업들이 교내 리크루팅을 와도 일차적으로 선호하는 전공은 상경계열과 이공계열 학생이라는 것.

최근 인문대 학생들 사이에 상경계열이나 법학과 등으로 ‘전과 열풍’이 부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또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으로 상경계열을 택하는 학생이 많은 것도 취업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직접 학생을 가르치는 인문학 교수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해 9월 고려대에서 ‘인문학의 위기’ 시국선언을 주도했던 조광(62·한국사학과) 전 문과대학장은 “전반적으로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미약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리했다. 다음은 조 전 학장과의 인터뷰.

― ‘인문학 위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인문학의 위기란 인문학 정신의 위기를 의미한다. 국가 연구비 지원이 적고, 대학원생 수가 줄어드는 것은 말단의 문제다. 인문학 정신이 부재해 우리 사회가 황폐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 학생들은 전공 교수들이 취업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데.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 취업문제에 교수가 관심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일반 응용학문(사회과학 등)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다.”

인문학 위기 진단 잣대가 비인문학적이다

― 일부 폐과 위기에 있는 학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표적인 것이 독문학과와 불문학과인데… 물론 이 두 언어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인문정신은 우리 사회를 풍요하게 하는 데 상당부분 기여한다. 그런데 이 분야 전공자가 너무 줄었다. 국가 100년대계에 상당히 불행한 일이다.”

― ‘인문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일반의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시장원리가 적용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 교육부가 곧잘 그러는데, 그 자체가 비인문학적 발상이다.”

조 전 학장은 “가령 모든 대학에 독문과가 있을 필요는 없다”면서 “몇 개 대학, 꼭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가 아니더라도 집중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도 피력했다.

서울대 철학과 97학번을 직접 지도했던 박찬국(47·철학과 학과장) 교수는 조 전 학장과는 다른 분석을 내놨다. 박 교수는 “전통적인 인문학의 범주인 문학·역사·철학의 범주 설정이 시대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운을 떼었다.

“크게 봐서는 음악·영화 등과 같은 예술도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새로운 인문학의 영역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인문대 진입 학생 수가 줄고 졸업자들의 취직 자리가 준다고 해서 위기라고 말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인문학의 위기라기보다 기초과학 전반의 위기로 봐야 옳다. 예전에는 수학·물리학 등의 분야에 대한민국 수재들이 가지 않았나?”

박 교수는 서울대 내에서도 인문학은 여전히 인기 있는 분야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서울대에서 철학 관련 교양과목을 수강한 학생은 연인원으로 무려 4,000여 명. 이는 1만9,000여 명 서울대 재학생의 거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를 인문대 전체로 확대하면 인문학 교양강의 연 수강인원은 3만여 명이나 됐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이런 인문학 교양과목의 인기를 이야기하면서도 “직장문제가 불안하니까, 서울대 나와도 예전처럼 바로 직장을 잡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취업에 유리한 전공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인문대학장인 이태진(64·국사학과) 교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을 ‘위기’가 아닌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이 학장과의 일문일답.

― 어떤 부분에서 ‘비상’이라고 봐야 하나?
“내가 공감하는 부분은 연구보다 교육의 위기 쪽이다. 인문대 학생들이 법대나 경제학 강의를 많이 듣기 위해 전공 강의는 최소화해 듣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겠나? 하지만 인문학이 할 일이 많아지는 시대다. 표현수단과 도구가 많이 바뀌고 인간의 삶도 바뀌고 있다. 이런 것을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 아닌가? 그래서 ‘위기’가 아닌 ‘비상이 걸렸다’고 표현하고 싶다.”

― 그렇다면 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업들이 실용학문 전공자를 선호하는데, 이런 것을 뛰어넘어 인문학 전공자의 장점을 인정해 차별하지 않는다면 쉽게 해결될 부분이라고 본다.”

― 대학에서 노력할 부분도 있을 텐데….
“원래 인문학자(교수)들은 학문 성격상 보수적인 편이다. 그렇다 보니 교육 프로그램도 단조롭다. 하지만 학부생들 모두가 다 진학해서 공부할 사람은 아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취직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학문 후손세대 양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 교육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역문화전공과 같은 과정을 만들어 학생 스스로 자신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서울대에서 이런 시스템을 채택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본다.”

인문적 창조력 존중해야 다음 먹을거리 나온다

이 학장은 그러면서도 “기존의 대학원 진학자에게는 확실한 장학제도를 보장해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인문학은 과연 돈이 안 되는 비실용적 학문일까? 인터뷰에 응했던 한 서울대 철학과 97학번 졸업생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에서 고전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한 학년에 10명인데, 그 중 한 명만 진학하고 나머지는 모두 취업한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취직이 너무 잘되기 때문이다. 회사 교육은 단기간의 연수를 통해 금방 가르칠 수 있지만, 기본적인 바탕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기업이 판단한 결과다. 한국도 현실에서 검증이 안 돼서 그런 것이지,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동기생 중에는 기업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이현수 씨는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지식이 아닌 폭넓은 사고가 중요한데,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강조했다.

수많은 사람이 한국사회의 다음 먹을거리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 먹을거리가 인문학에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검증된 인문학도들의 창조적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한 한국의 발전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위기’는 또 다른 말로 ‘기회’다. 이런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문학도들이 공부할 수 있고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사회가 마련해 줘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 | ‘연구공간 수유+너머’ 고병권 대표
“대중의 인문학 목마름은 오히려 높아져…상아탑 인문학의 위기일 뿐”

재야 인문학자들의 공동체인 ‘연구공간 수유+너머’. 남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을 찾은 것은 지난 4월4일. 연구공간 내 카페에서 고병권 대표를 만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문학의 위기는 굳이 말하자면 제도권(대학·대학원) 인문학의 위기다. 물론 한국사회에서는 큰 부분일 수 있다. 문제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지식의 생산과 소비를 독점해 왔다는 점이다. 인문학의 생산과 소비를 대학이 모두 독점하고 있으니 제도권 인문학이 위기에 빠지면서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것이다.”

― 제도권 인문학이 위기에 빠진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문제는 최근 대학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요즘 대학에서는 이른바 ‘아카데미 캐피털리즘(Academy Capitalism)’과 ‘기업가 정신’이 첨예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화 움직임이다. 대학이 점점 기업화돼 가고 있다. 또 한국사회가 지식기반사회로 진입하면서 사회는 지식상품의 생산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지식이 이런 부분에서 뒤떨어지는지 찾게 마련이다. 상품 생산에 경쟁력이 없는 학문, 인문학이 바로 거기에 딱 들어맞는다.”

― 지난해 9월 전국 인문대학장들의 ‘인문학 위기’ 시국선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인문대 교수들이 거국적으로 시국선언을 한 경우는 유사 이래 최초라는데… 내가 기억하기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국사회의 뜨거운 이슈에 대해 인문학자들이 발언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돈 안 들어오고, 제자 안 들어오니 그런 선언을 한다는 것이 난센스라는 말이다.”

― 대학 이외 공간에서의 인문학은 어떻게 보나?
“전반적으로 인문학을 사유하는 방식이 얕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대학이 인문학을 독점하려다 대학이 망한 데서 기인하는 문제다. 사실 일반인들은 사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목말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인문학의 생산과 소비를 독점했던 대학의 문턱은 너무 높다. 그 문턱 역시 상아탑 스스로 쌓은 것이다.”

― 고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그동안 지역 도서관이나 재야 학술단체처럼 대중이 인문학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문학에서도 다른 방식의 새로운 긍정적 가능성이 커졌다. 가령 ‘독서클럽’의 증가가 그런 경우다. 누구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이런 프로그램을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곳이 지역 도서관 같은 공간이다. 인문학 운동은 충분히 가능하다.”


김상진_월간중앙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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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5-0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북 정보화 도서관에서 '연구공간 수유+너머’ 의 대표 고병권, 고미숙 선생님 등이 인문학과 관련된 강연을 저녁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멀어서... 못 듣죠~

2007-05-04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5-0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일도 없네요.^^ 이런 걸 신문 기사라고 쓰고 있으니...
성과장님, 깜짝 놀랐습니다. ㅎ신문 18도를 뒤적거리다가 아는 아가씨가 서가 너머에서 저를 보고 있어서요 ㅋㅋ 아는 얼굴을 만나니 참 반갑더라구요.
인문학은 그것이 학문이든 종교든 간에 인간이 살아있는 한 존속되는 것 아닐까요?
그게 돈벌이가 되는지 아닌지에 인간들이 관심이 있어서 저딴 기사를 내는 거겠지만 말이죠. 서울대 아이들이야 인문대든 공대든 제 알아서 잘 먹고 살 정도의 머리를 가졌으니 조사할 것도 없을텐데 말입니다. ^^ 암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