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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9월 중순.
회사에서는 07년 경영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패션잡지들은 겨울 유행 아이템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제 곧 12월이 되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온 시내에 울려 퍼지고, 방송국들은 "연기대상", "가요대상" 같은 연말특집을 내기하듯 방영할 것이다.
12월엔 신문이나 잡지나, 개인들의 블로그나 어디서나
"올해의 잊지 못할 사건 Top10" 같은 걸 한다.(호들갑을 떨면서!)
곧 3분기 마감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06년 Top 10"을 떠올려 본다.
올해 내겐 어떤 특별한 일들이 있었나?
4분기에 대한 예의로 3개 정도는 빈칸으로 남겨 두어야겠지?
인색하게 7개만 리스트에 올리더라도 꼭 넣고 싶은 하나.
정미경의 소설을 만났다는 것!
정미경은 소설 나부랭이와 최소간격 이상의 평행선을 두고 살아가려 애쓰던,
나름 건조하게 살려고 노력하던 10년차 회사원의
소설을 향한 잠들어 있던 짝사랑,목마름에 불을 붙혔다.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과 작가와의 구분이 혼동스러운
신경숙이나 전경린 같은 여자 작가들의 정물화 같은 소설들에 질렸던 나는
한국 여자 작가들이 쓴 소설을 웬만하면 읽지 않았다. 정미경의 소설을 만나기 전까지!
내게 정미경의 소설은....
삶은 달걀 세개를 소금도 찍지 않은 채 연거푸 먹고 마시는
시원한 "칠성 사이다" 같았다.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실려 있는 6개의 소설.
어느 것 하나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 나릿빛 사진의 추억
- 호텔 유로, 1203
- 나의 피투성이 연인
- 성스러운 봄
- 비소 여인
-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정미경은 비루하고도 질긴, 질기디 질긴 일상을 무섭도록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그런데 영화를 찍어가면서 , 어떤 고통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을 미옥 씨에게서 보았어요. 그걸 기록하고 싶었어요...."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中 241p)
골목시장의 영화 감독 승우의 고백처럼
정미경은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에 천착하고,
그 치열한 주제를 "냉정하게" 담아낸다.
정미경의 소설은 절제되어 있고
그 어떤 사건, 그 어떤 인물과도 일정 간격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다.
냉정한 서사 속에 문장 하나하나는 이글거린다. 그 절묘한 비유들이란!
내일 프랑크푸르트로 날라가는 비행기에서는 <장밋빛 인생>을 읽어야지.
오.........나의 칠성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