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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 소설에 대한 비평가들의 무관심은 실로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김훈의 소설은 유령인가?
5월 9일자 한겨레 칼럼 [야!한국사회]에서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물었다.
김훈의 소설은 유령인가?
문학평론가들은 김훈의 소설에 대해 침묵한다.
(이명원은 김훈 소설 비평을 쓴 적 있나? 모르겠다.)
김애란, 이기호, 박민규에 대해서는
범비평가 연합 과제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면서
김훈의 소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게 사실이다. 왜일까?
이명원의 칼럼을 읽고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었다. 궁금해서!
김훈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다.
<현의 노래>, <칼의 노래> 아무 것도 읽지 않았고,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김훈! 하면 떠오르는 마초 같은, 가부장의 전형 같은 이미지가 싫었다.
<남한산성>을 읽게된 건
정말....진정....넘넘 궁금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이 난리인가?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중년 남자들이 소주가 아니라 소설 나부랭이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고,
말 많은 비평가들은 외면 또는 침묵하는가?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절묘한 아슬아슬함"을 느꼈다.
고난이도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밧줄에서 떨어지는 척 하다가 멋드러진 공중곡예를 펼치는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은 능란한 곡예사!
무식하면 용감하다! 고
무식함을 전제로 용감하게 말한다면
<남한산성>에서의 김훈의 서사나 인물 설정은
대하소설의 대중작가 최인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감히 생각한다.
김상헌의 칼에 죽은 사공이나 그의 딸 나루나,
노비 출신으로 청의 통역관이 된 정명수나,
대장장이 서돌쇠나 그 얼마나... 통속적인가?
대하 드라마에서 당장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만약 최인호가 <남한산성>을 썼다면 3권은 되지 않았을까?
김훈의 절제되고 압축된 문장은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어떻게 이런 문장을 번역하지?
김훈의 문장은 특이하게...아름답다.
문장이 미려하고 뭐 그런 게 아니라
말이 되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지는 마초적인 아름다움?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어 있고,
인물들에게도 일체 감정이입을 시키지 않는다.
인물들이 남한산성의 돌이나 돌벽에 피는 꽃,
한 겨울 꽁꽁 얼었다 봄이 되자 콸콸 흐르는 강 같은
자연과 다르지 않다.
그저 꽃이 피다, 꽃이 지다 처럼
인물들의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비평가들의 애로사항(?)이 어렴풋이 이해된다.
도대체 김훈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이론을 적용(?)할 것인가?
담론이 담론을 낳는 지식인 사회의 특성상
누가 먼저 얘기를 해야 딴지를 걸텐데
누가 먼저 시작을 할 것인가?
여전히...김훈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전히...김훈의 이미지는 마초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을 읽고 생각한다.
김훈은 뛰어난 작가라고!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이해된다.
그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고!
김훈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데...
김훈의 책을 한권 더 샀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수어사 이시백의 대화가 생각난다.
-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이시백이 대답했다.
-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page 218)
김훈의 산문집을 빨리 읽어봐야 겠다.
좋아하지 않지만 관심이 가는 남자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