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토요일.날씨 참 좋다.이 좋은 날, 난 서울시내 한 복판에 있는 호텔방에 혼자 있다. 집에서는 글이 안 써진다는 핑계로.진짜 이유는 혼자 있고 싶어서.

내 나이 한국나이로 34살. 엄마 뱃 속에서 한 살, 생일이 1월 1일이건 12월 31일이건 새해 첫날 일괄적,무차별적으로 다함께 나이를 먹는 비합리성, 또는 억울함으로 언젠가 부터 나이를 말할 때는 "73년생"이라고 대답하거나, 앞에 "한국나이"라고 친절한(?) 부연을 붙힌다.

30대 중반이 되었는데 부모님께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는 건 쩍 팔리는 일이다.그리고 불편한 일이다.유럽 거래선들이랑 농담 따먹기 및 신변잡담을 주고 받다 보면 꼭 이런 질문이 나온다. " 혼자 사니? 아님 남자친구랑?" (유럽에선 결혼 안하고 동거만 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결혼을 해도 몇 년 동거하다가 한다.)

이럴 때, 정말 대답하기가 뻘쭘하다.
"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
" 뭐.라.구? 부모님이랑? "
난 쩍 팔림을 모면하려 부연설명을 한다.
" 한국에선 결혼하기 전엔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게 일반적이야. "
이렇게 대답하면 유럽 애들은 어이 없다는 듯이 놀라며 묻는다.
" 그럼 40살까지 결혼 안 하면 그 때까지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 Non sense! "

베스트셀러 <괴짜 경제학>에는 이런 제목의 글이 있다.
"마약 판매상은 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걸까?
마약 판매상들은 엄청나게 돈을 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집도 없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이 부분을 읽다가 경기를 일으킬 뻔 했다.
아....뜨끔! 결국 나이 들어서 부모와 함께 산다는 건 경제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거다.

작년에 독립을 하려고 오피스텔을 알아 봤다.헉 소리 나게 비쌌다. 한 달에 50~60만원은 기본.관리비도 10만원이 가볍게 넘는다.이렇게 월세를 내고 저축을 하면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미친 척 하고 전세를 얻을까, 하나 살까도 생각해 봤지만 전 재산을 전세금으로 맡겨 놓거나 부동산 시세도 불안정한 마당에 대출까지 받아 집을 사는 건 차마 간 떨려서 포기했다.

또,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뜯어 말렸다.
" 야, 너 독립까지 하면 진짜 결혼 못해.장기전으로 간다니까. 쓸 데 없는 생각 말고
결혼을 해! "
" 월세 낼 돈이 있으면 저축을 해! 현금 보유가 최고라니까. "
" 혼자 살면 생활 진짜 문란해 진다. 사람 폐인되는 거 금방이야."
" 나 혼자 몇 달 살다가 다시 집에 들어 갔쟎냐. 혼자 사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진짜 외롭더라구."
" 혼자 살면 뭐 하나 하는 게 다 돈이야. 치약 하나, 생수 하나도 다 니 돈으로 사야 한다니까."
" 야...그러다 결혼하면 또 이사하고 골치 아프쟎아.결혼하면 집은 남자가 구하는데 뭐하려고 사서 고생을 하냐?" 등등 별의 별 충고와 잔소리를 다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난 독립을 하고 싶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절.실.히.
02년에 난 첫번 째 차를 샀었다.중고차를 한대 현금 주고 사 버렸다. 사실 서울에서 출퇴근하면서 차를 몰고 다니면 더 피곤하다.잠시 눈을 붙히지도 못하고,책을 읽지도 못하고, 차는 막히고, 주차하면서 스트레스 받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크게 음악도 듣고, 때론 미친 듯이 혼잣말도 하고.하루 종일 완벽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운전할 때 밖에 없었다.

미친 척 하고 오피스텔을 얻을까? 연립주택 반지하라도 얻을까? 생각이 많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절.실.히!

p.s) 요즘 책을 쓰고 있다. 마음 잡고. 작년에 책을 쓰겠다고 선언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심적 여유가 없다는 변명으로 꼬랑지를 내렸다.지금은...간절한 마음으로 쓴다.
왜?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절.실.히. 뭔가 집중하지 않으면, 뭔가 목숨 걸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집에서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아니 "잘"이 아니라 아예 안 쓰게 된다.튕자튕자,뒹굴뒹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호텔에 있으면 호텔비가 아까워서라도 글을 쓴다.

영화 <디 아워스>에서 니콜 키드만이 혼자 있고 싶어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바람 하나에 혼자 호텔에 가는 장면이 마음에 사무친다. 돌봐야 할 애도 없고, 가사의 부담도 없지만 영화 속 니콜 키드만의 심정을 약간은 알 것 같다.가끔은  정말.... 혼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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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5-21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과 살다, 남편과 사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혼자 살아보는 게 삶의 꼭 필요한 과정이라 여겨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온전히 나 혼자의 힘으로 살아보는 경험이 중요한 거죠. 단, 반지하! 위험합니다. 절대 반대! 차라리 옥탑이 훨씬 안전해요!!!

BRINY 2006-05-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위에 보면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여요. 30대 미혼여성, 직장에서 한 몫하고 수입도 괜찮은데 내집 마련 못하고 부모님과 동거중. 저도 처음 집 나올 때 엄마가 울고 악쓰고 난리난리였지만, 10년가까이 지난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네요. 그래도 여전히 '자취'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요^^ 한 2주 청소다운 청소를 못했더니, 어제 오후 내내 청소하고 세탁소가고 구둣방가고 장보고...지금은 손목,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쑤십니다^^

마늘빵 2006-05-2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 안나가봐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혼자 살기엔 너무 집값이 장난 아닌걸요? 결혼한 부부가 내집이 아닌 살만한 전세집 하나 구하는것도 힘들잖아요. 어떻게 혼자살 수 있겠어요. 원래부터 돈이 좀 있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하면서 돈 벌며 혼자 살려면 정말 돈을 왕창 벌어야 할거에요. 쩝. 저도 혼자 살고픈데.

클리오 2006-05-2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은 해보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일단 대학때 집을 나오고나니 도저히 이제는 집으로 들어가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직장이 늘 집과 멀었어요. 삶이 엉망이 된다는건 그 사람 성격나름 아닌가요? 서울은 집값이 높아서 좀 힘드시긴 하겠지만요..

비로그인 2006-05-2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가면 혼자살려구요.
혼자살면 내 패턴대로 살 수 있으니깐요.
폐인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리스 2006-05-2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미친 월세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혼자가 낫지 않아요?
아프군 / 외국집값이라고 뭐 다른감. 대도시는 서울보다 훨씬더 비싸다오.

2006-05-21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6-05-2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애들은 진짜 이해 못하잖아요. 얼마 전에 사라 제시카 파커랑 매튜 머시기 나온 영화도 그런 내용이었죠? 거래선에게는 그냥 적당히 둘러 대심이 어떨지... 암턴 어려운 문제예요. 저도 아직도 고민하는 중...

moonnight 2006-05-2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의 공간은 반드시 필요해요. 저도 절대 공감이에요. ㅜㅜ 엄마가 그렇게 같이 살기 싫으냐 -_-; 라고 하시며 섭섭해하실 땐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그래도 (버둥버둥;;).. 근데, 흑. 역시 경제적인 문제는 넘 힘들어요.

외로운 발바닥 2006-05-2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은 혼자사는 것이 익숙해진지 오래라 결혼해서 같이 살면 어떨지 조금 걱정도 되네요. 그나저나 수선님은 정말 글이 맛깔스러워요.~^^

마태우스 2006-05-2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님은 멋진 분이십니다. 외국 애들과 우리는 문화가 다르잖아요. 개네들 눈을 너무 의식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혼자 사는 건 또 그만큼의 불편함을 수반하는 게 아닐까요.
-빈대붙어 사는 마태 드림-

icaru 2006-05-2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걸복이라고 해야 하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부모님이랑 살면, 확실히.. 돈은 모아진다는~ 독립하는 그 순간부터... 숨쉬는 거 빼고 다 ... 돈이 들어서 원,
그나저나 .. 몰두하실 꺼리를 찾으셨으니!! 박차게 매진허시길 바랄께요~

다락방 2006-05-22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저히 밤에 혼자 잘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독립은 아예 꿈도 꾸질 않아요. 부모님께서 나가살라고 하시는데 전 제발 같이 살게만 해달라고 하지요. :)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되든 아니든, 수선님이 일단 독립에 대해 생각해보셨고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 한번 혼자 살아보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좋은선택이든 아니든 일단 경험을 하고 몸소 느껴보는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락방 2006-05-2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맙소사!)또 비가와요, 수선님. (이게 무슨 의미인줄 기억하시려나 ㅋ)
이런 비오는 날씨 앞에선 전 인질이나 다름없어요.(요 문장은 [아홉가지 이야기]의 샐린저의 문장을 표절)

드팀전 2006-05-2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오삼.허락해주면.돈 모아다 남편 옷해줄 것도 아니면서...항상 핵심은 단순명쾌합니다.나의 독립된 삶이 중요하냐 아니면 부모님과 있으면서 몸편안하게 사는게 나으냐.... 전자가 중요하다고 믿으면 나오시면 됩니다.허락을 얻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전 직장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10년간 꿈이 그리던 독립생활을 했습니다.처음에는 친구 집에 두달.눈치 주고 방은 못구하고...어쩔 수 없이 한달 30만원 하는 여관 장기방 한 1년쯤-그래도 방 청소도 해주고 좋았음.그 다음은 대학가 잠만 자는 방.전세 500에 월세 조금.주인집 아들이 좀 똘아이여서 오래있지 않고 나왔음.그 다음에는 허름한 개인 주택의 뒷방 전세 700만원.화장실도 외부에 같이 쓰고 세면대도 집밖에 있었음.겨울에는 수도가 툭하면 얼고 여름에는 벽에 1미터 가량 곰팡이와 습기가 올라왔습니다.거기서 한 1년넘게.그다음에는 모은 돈 팍팍털어서 11평 원룸생활 5-6년...-두 번 다 경매에 넘어가서 법률공부 많이 했습니다.다행이 뜯긴 돈은 그다지 없어서 운이 좋았지요.
약 10년간의 독립생활이었는데요...폐인...그거 좀 되어도 괜찮아요.스스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치고 오랜 시간 폐인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때에 따라 그래보는 것도 배우는게 얼마나 많은데요..... 곰팡이 1m씩 올라오는 방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슬픈 마음이 들었을까요...아니었어요.그 집 살 때는 일부러 TV로 안샀지요.물론 컴퓨터는 언감생심이구요.그래서 TV없는 삶을 실험해 보기도 했구요.별로 할게 없으니까 앉아서 불꺼놓고 3시간 동안 바흐의 음악을 들을 수도 있었지요.ㅅㅅ 나 원 ....뭘 그리 걱정하시오.걱정 하다 평생 그런 시간을 못가져 볼 수도 있는데.지금 당장 집 알아보고 부모님을 잘 설득할 생각이나 하시오.
서울이 집값이 비싸면 좀 멀어도 지하철되는 위성도시로 나갈 수도 있는 것이구..좀 못사는 동네로 가던가 아니면 대학가로 갈 수도 있는 것이구....
나를 키운 것은 12년의 학교 교육이 아니라 10년간의 혼자사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6-05-22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23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24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