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가위는 정말 아무 사고(?)없이 흘러갔다. 매년 명절이 되면 무슨 사건사고가 그리
많은지... 복잡한 가족사 털어봐야 욕 밖에 나오지 않고, 시끄러운 일은 매년 벌어지는
일이라 무덤덤하게 넘어갔더니 정말 사고없이 흘러간것 같은 느낌이다.
무료하게 먹고 자고 치우고...를 반복하는게 지겨워서 책장에 있던 책들과 파일을 들춰보다
내가 결혼하기 전 대학 때까지 모아놓았던 사진들이 오롯히 들어있는 사진첩을 발견했다.
어딘가 집에 있으려니 했던 사진첩이 아버님집에서 나오다니...하긴 집에 있는 사진첩도
들여다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으니 집에 있어도 들춰볼 일은 없겠지만...
사진첩은 크게 세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교회 다니던 청소년 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내 어린시절의 가족사진들... 별로 특별하진 않지만, 내가 교회 다니는걸 포기(?)하게
만들어준 전도사 (지금은 잘 나가시는 목사님이 되셨다고 한다)의 재수없는(?)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것. (지금은 그 분이 고맙게 여겨진다. 그분의 단호한 결단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난 어정쩡한 신도 노릇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사진 두장.... 한 장은 고등학교 때 잠깐 좋아했던 친구의 동생 사진이었고 나머지
한 장은 철들고 첫사랑이었던 여자의 사진이었다.
이제는 어디서 어떤 삶을 살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사진이 사진첩에서 발견되니 기분이
묘했다. 옆지기가 누구냐고 묻길래...그냥 어린시절 교회 친구라고 대답했다. 예전에
좋아했던 후배나 첫사랑 여인이라고 말하기도 쑥스럽고, 그렇게 말한다 한들 그녀들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리도 없기에 그냥 슬쩍 넘어간 것이다.
한 때나마 나의 감정을 뜨겁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그렇게 추억조차 지워진채 사진으로
대면한다는 것...그럼에도 그녀들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거렸다는 것... 세월은 그렇게
지울것을 확실하게 지우나 보다.
특히 대학교 일학년때 날 처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그녀는 사랑의 쓰라림이 뭔지
확실하게 교육시켜 준 장본인이다. 그 때 난, 폐인처럼 집안에 박혀서 라디오와 책에
파묻혀 지냈으며...그렇게 비웃었던 대중가요의 사랑타령이 그토록 깊고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되었고, 왜 싸구려 사랑타령의 노래가 이토록 강인한 생명력을
갖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이런 아픈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도 그녀들에 대한 다른 기억은 가물가물한 것이 결국
상처난 자존심에 대한 기억은 남아도 상처를 준 그녀의 기억은 스스로 자기검열로
지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끔이라도 그녀들이 생각난 적이 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도
이제는 떠올리지도 못하는 지금... 그녀의 사진들은 그 떄의 그 순간에 머물러 밝고 싱그런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대의 스타일로 매우 촌스럽게 말이다)
시간과 기억은 그렇게 대립하고 있었다. 시간은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고, 기억은
거기에 맞서 자신이 유리하게 할 기억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마도 내가
상처받지 않는 기억들일 뿐일 것이다. 상처 받는 기억들은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어쩌면 그녀들만 아니라 사진에 남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억속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 다시 어딘가 불쑥 나타나
새롭게 나와 조우할 것이다.
잊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잊고 살다가 문득 조우하던 때, 시간은 그렇게
나를 다스리고 나는 그렇게 순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란 말을 누구에게 감히 쓸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움의 강도는 같이 한 시간에 비례한다고 난 믿는다. 그러나 영원을 같이 한 사람이
아닌 이상 영원한 그리움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인간의 한계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그 한계로 인해 새롭게 출발함을 기뻐한다.
하지만 잊혀진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그것이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