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가위는 정말 아무 사고(?)없이 흘러갔다. 매년 명절이 되면 무슨 사건사고가 그리
많은지... 복잡한 가족사 털어봐야 욕 밖에 나오지 않고, 시끄러운 일은 매년 벌어지는
일이라 무덤덤하게 넘어갔더니 정말 사고없이 흘러간것 같은 느낌이다.  

무료하게 먹고 자고 치우고...를 반복하는게 지겨워서 책장에 있던 책들과 파일을 들춰보다
내가 결혼하기 전 대학 때까지 모아놓았던 사진들이 오롯히 들어있는 사진첩을 발견했다.
어딘가 집에 있으려니 했던 사진첩이 아버님집에서 나오다니...하긴 집에 있는 사진첩도
들여다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으니 집에 있어도 들춰볼 일은 없겠지만... 

사진첩은 크게 세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교회 다니던 청소년 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내 어린시절의 가족사진들... 별로 특별하진 않지만, 내가 교회 다니는걸 포기(?)하게 
만들어준 전도사 (지금은 잘 나가시는 목사님이 되셨다고 한다)의 재수없는(?)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것. (지금은 그 분이 고맙게 여겨진다. 그분의 단호한 결단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난 어정쩡한 신도 노릇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사진 두장.... 한 장은 고등학교 때 잠깐 좋아했던 친구의 동생 사진이었고 나머지
한 장은 철들고 첫사랑이었던 여자의 사진이었다.  

이제는 어디서 어떤 삶을 살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사진이 사진첩에서 발견되니 기분이
묘했다. 옆지기가 누구냐고 묻길래...그냥 어린시절 교회 친구라고 대답했다. 예전에
좋아했던 후배나 첫사랑 여인이라고 말하기도 쑥스럽고, 그렇게 말한다 한들 그녀들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리도 없기에 그냥 슬쩍 넘어간 것이다.
한 때나마 나의 감정을 뜨겁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그렇게 추억조차 지워진채 사진으로
대면한다는 것...그럼에도 그녀들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거렸다는 것... 세월은 그렇게
지울것을 확실하게 지우나 보다.  

특히 대학교 일학년때 날 처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그녀는 사랑의 쓰라림이 뭔지
확실하게 교육시켜 준 장본인이다. 그 때 난, 폐인처럼 집안에 박혀서 라디오와 책에
파묻혀 지냈으며...그렇게 비웃었던 대중가요의 사랑타령이 그토록 깊고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되었고,  왜 싸구려 사랑타령의 노래가 이토록 강인한 생명력을
갖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이런 아픈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도 그녀들에 대한 다른 기억은 가물가물한 것이 결국
상처난 자존심에 대한 기억은 남아도 상처를 준 그녀의 기억은 스스로 자기검열로
지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끔이라도 그녀들이 생각난 적이 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도
이제는 떠올리지도 못하는 지금... 그녀의 사진들은 그 떄의 그 순간에 머물러 밝고 싱그런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대의 스타일로 매우 촌스럽게 말이다)
시간과 기억은 그렇게 대립하고 있었다. 시간은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고, 기억은
거기에 맞서 자신이 유리하게 할 기억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마도 내가
상처받지 않는 기억들일 뿐일 것이다. 상처 받는 기억들은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어쩌면 그녀들만 아니라 사진에 남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억속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 다시 어딘가 불쑥 나타나
새롭게 나와 조우할 것이다.  

잊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잊고 살다가 문득 조우하던 때, 시간은 그렇게
나를 다스리고 나는 그렇게 순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란 말을 누구에게 감히 쓸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움의 강도는 같이 한 시간에 비례한다고 난 믿는다. 그러나 영원을 같이 한 사람이
아닌 이상 영원한 그리움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인간의 한계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그 한계로 인해 새롭게 출발함을 기뻐한다.  

하지만 잊혀진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그것이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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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산한 새벽녘, 괜히
    from 시간의 흐름, 그 속의 책 2009-10-05 04:04 
      이렇게 새벽녘까지 일을 하다보면, 피곤도 피곤이지만, 이상하게 스산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제 겨우 보고서 하나 마무리했고 (나 혼자 마무리이다. 그쪽에선 또 수정하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에잇), 정리하려다 보니 나오는 노랫가락에 잠시 손을 멈추게 된다. 이렇게 새벽에 일할 땐 클래식도 그렇고 재즈도 그렇고 팝송도 그렇고..그저 가요가 최고인 것 같다. 물론 집중해야 할 일을 할 때는 좀 그렇지만 편집이라든가 반복적인 일을 해야 한다면
 
 
무해한모리군 2009-10-05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프지 않고 그저 그리운 느낌으로 문뜩 떠올릴 날이 있겠지요?

다락방 2009-10-05 09:07   좋아요 0 | URL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때 우리가 사랑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다 그런것 같아요..

머큐리 2009-10-05 10:10   좋아요 0 | URL
역시 쿨하신 다락방님....^^
 

편지라는 노래가 있다. 좀 오래된 노래...
"말 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요즘이야 이메일로 몇자 적어 발송만 눌러버리면 되는 시대니 저런 고전적 낭만을 누리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낭만적인 편지도 보내곤 했었다.
사실 난 이런 낭만적인 (받은 사람이건, 주는 사람이건) 설정과 동떨어진 편지를 생애
(여성으로 부터) 첫 편지로 받았으며 그 사건 이후로 제대로 된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여성은 사춘기가 지나지 않은 선머슴 같은 애였고, 그 선머슴은 소년의 어릴적 낭만을
산산히 부서놓고, 나중에 항의했더니 "어렸을때 장난친거 가지고 너무 꽁한거 아니냐"는
치명적 발언으로 상처난 동심의 억울함에 쫀쫀한 남자라는 이미지 까지 씌워주는 참으로
대단한 여자 친구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편지라고 할 것도 없는 내용이다. 순전하게 욕으로 도배질을 한 뒤에
깔끔하게 편지봉투에 넣어 우표도 붙이지 않고 우리집 우편함에 넣어져 있었으니까?
다만, 봉투의 보내는 사람에 '모르는 소녀가"..... 처음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이후로 난 여자도 남자 빰치게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사실은
여자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갖지 않도록 도와줬다. (고맙다고 해야하나?) 

때론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자에 대한 강론을 하곤 한다.
"아들들이여 여성은 나약하고 약한 존재이니, 절대 보호하고 존중해줘야 하며, 만일 여성을
때리거나 하는 놈은 인간도 아닌 짐승이나 마찬가지니 명심할 지어다."
그럴때마다 아들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뭘 모르는 우리 아버지... 여자들이 얼마나 힘이 세고 무서우며, 소리도 잘 지르고, 손톱으로
공격하기 시작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인데...어디 여자를 약하다 하시나이까..." 
결국 이렇게 정리한다.
"야 이놈들아 그래도 여자는 약한존재야... 지금은 강해보여도 좀만 크면 안그렇다니까
암튼 여자들이랑 싸우지마... 얼굴에 손톱자국 생길라....글구 니들이 건드니까 그렇지 왜
여자들이 손톱을 세우냐? 솔직히 말해봐 니들이 놀리고 그러지?"
"응... 여자애한테 돼지라고 그랬어... "  --;
이렇듯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늦고 또 어리다.  

어린시절의 충격적 편지 사건 이후 편지를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연애할 때 편지도 쓰고 했던 것 같은데...왜 이리 기억이 가물가물 한지 ...정말 내가
편지를 쓴 사실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냥 업무상 이메일 몇 번 쓰고, 잠시 나가 하늘을 보니 오늘 하늘은 너무 너무 높다. 
 
그냥 누군가에게 불쑥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고 편지에 대한 유년 시절이 그 씁쓸한 추억이...
광석이 형이 그랬다 이런 맑은 날 말고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쓰라고...
그래서 오늘은 그냥 참을란다....

낼부터 빨간 날인데....시간은 왜이리 더디냐....사무실은 참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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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0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저 9시부터 지금까지 시계만 백만번 쳐다보고 있어요-
머큐리님 우체통에 편지한통 놔드려야겠어요~

아 귀여운 주니어들 ㅋㅋ 언제 한 번 보고 싶네요 ㅋ

머큐리 2009-10-01 13:21   좋아요 0 | URL
어? 그런 기능도 있나요?

다락방 2009-10-0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사무실에서 하품을 뻑뻑하고 있어요. 하핫.
저는 편지 잘 받아드릴 수 있는데 ㅎㅎㅎㅎㅎ

머큐리 2009-10-01 13:22   좋아요 0 | URL
받는 기능도 모르는데...보내는 기능을 알리가 없잖아요...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10-0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소를 알려주세요.
제가 머큐리님께 편지 보내드리겠습니다 ㅎ
(사모님이 오해하게 꽃 편지봉투에다가 ㅋㄷㅋㄷ)

저도 머큐리님을 닮지 않아 잘생겼다는 그 친구들이 보고싶군요.
만두 먹으러 갈때 데려와주세요 히

순오기 2009-10-04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바로 이런 감성을 내가 중학교 동아리방에 끼적거렸더니
미쿡에 사는 동창이 호주여행하면서 손으로 쓴 엽서를 세번 보냈어요.
10년 후에 공개하라면서...공개할래도 뭐라 썼는지 알아 먹을수 없는 글씨였어요.ㅋㅋ
벌써 공개할 시간이 다가오네요.
아드님들~ 이야기가 중학교까지는 맞을거에요. 여자들 힘도 세고 악해요~~ㅋㅋ

순오기 2009-10-04 13:24   좋아요 0 | URL
방명록 한가위 인사를 이제야 봤어요.
방명록에 남기려고 했더니 잘 안보시는지 댓글이 없어 여기에 남겨요.^^
한가위에 머리털 뽑히는 불상사는 없었겠죠?ㅋㅋ
그런 일이 없었다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인사합니다.^^

머큐리 2009-10-04 14:22   좋아요 0 | URL
여자들이 힘든 명절날인데...순오기님은 잘 보내셨을것 같아요..ㅎㅎ
잘 보내신거죠??
 

조지오웰은 나에게 처음부터 왜곡되어 전달된 인물이다.  
그의 작품들은 내내 반공서적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반공에 대한 반감이 큰 나에게는
그저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소설로 성공한 작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세계명작문학에 항상 들어서 있는 그의 작품 <동물농장>이나 <1984>는 전체
주의에 대한 경고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건 결국 반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선전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조지오웰에 대한 나의 편견을 획기적으로 깨준 것은 그의 문학이 아니었고 한 편의
영화였다.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드 프리덤>은 조지오웰에 대한 나의 관점을 바꾸게
만든 조그만 단초가 되었다. 왜냐면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여러가지 의문들이 내내
나의 경직된 사고에 대한 경계심을 갖도록 하였던 것이다. (영화 내에서 붉은군대가
민병대를 무장해제 시키고, 서로간 내전까지 벌어지는 장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프랑코 군대와 결전을 하면서 인터네셔널가를 부르던 사람들이 서로 총구를
겨누는 장면에서 항상 정의로운 좌파에 대한 환상이 왕창 깨져나갔다고나 할까?) 

난 이 영화가 그저 스페인 내전에 관한 영화라고만 알고 있었지, 원작이 뭔지도 모르고 봤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몇 년이 지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다가 내용이 너무 익숙해서 이상
하다고 생각하고 조사해보니 이 책이 바로 켄 로치 영화의 원작이었던 것이다.
그 지점까지 와서야 난 조지오웰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수정할 수 있었다.
계급이 없는 공화주의를 지지했던 한 인간이 역사 속에서 느껴야 했던 그 배신감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후대에 경고하고자 했던 마음을 이해했다고나 할까?  
더불어 젊은 시절 잠깐 좌파의 책을 읽고 함부로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D급 좌파가 판단하기에 그 사람은 너무 높은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고나 할까??  --;) 
스페인 내전에서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당(POUM) 민병대로 활동했던 조지오웰이 코민테른
에 속하지 않고 활동하다가 오히려 트로츠키 주의자로 의심받아 몰래 영국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던경험은 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후 파시즘에도 스탈린식 공산주의에도 동조하지 못한 그의 사상적 편력에서 나온
그의 작품들은 향후 인류에게 어떤식의 전체주의도 용납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였던 것이다.
이런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가 한국 사회로 들어와서는 반공주의 서적으로 탈바꿈했고
작품의 배경이나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그저 반공주의 작품으로 이 땅의 우익들에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를 넘어서 코믹하기까지 하다.
지금에서야  조지오웰이 올바르게 평가 받고 편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고 나는 그 사회의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90년대를 지나 21세기에 도달해서야 어느 정도 객관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에 대해서이다. 아마 다른 많은 이들은 나보다 이전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후 난 조지오웰이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그러나 오웰은
아나키스트는 부정한 모양이다. 하긴 사상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인간의 자유와 계급없는 사회가 그에겐 가장 커다란 과제였을 것이고, 그 전망이 흐려지는
시점에서 그는 펜으로나마 싸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21세기에도
그의 전망은 일상적 싸움없이는 도달하기 힘든 과제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단순한 반공주의 작가가 아닌 전체주의에 대항한 작가를 난 이제야 조금 알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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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30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조지오웰을 읽고 있는 1人 인데 저도 몰랐는걸요 ^^

머큐리 2009-10-01 10:57   좋아요 0 | URL
<1984>읽고 있죠? ㅎㅎ <1Q84> 워밍업 중이신가요??

Alicia 2009-10-0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몰랐는걸요. 고등학교땐가 1984를 읽다 그만두었고, 아직 오웰을 읽지 않았다니까 어떤분이 오웰을 적극추천해주셨는데-코끼리를 쏘다가 괜찮다고 하네요-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

머큐리 2009-10-01 10:56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추석 잘 보내세요..
서재에서 보다 밝은 알리샤님 모습이 생각나요...ㅎㅎ

다락방 2009-10-01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984』와 『동물농장』을 아주아주아주아주 흥미롭게 읽었더랬습니다. 특히 『1984』는 소름끼치도록 좋은 작품 이었어요.

머큐리 2009-10-01 10:54   좋아요 0 | URL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니...저는 너무 우울했는데..
다락방님은 제가 보지 못하는 뭔가를 보시는 분 같아요...^^

다락방 2009-10-01 11:28   좋아요 0 | URL
제가 다른 사람들이 보는걸 보지 못하기 때문일수도 있지요.

Alicia 2009-10-01 19:58   좋아요 0 | URL
그렇게 훌륭하다는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못한 저는 몹시 게으른 인간이군요.^^ 머큐리님, 저도1984는 우울해서 읽히지가 않았어요. 동물농장은 지금 제게 매우 끌리는 작품이기는 한데 요즘 많이 바빠서 책은 읽지 못하고 있어요.
 

"책 읽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 는 이야기는 이제 거의 보편적인 '진리'
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난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 말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대학시절, 학과 친구였던 L은 그야말로 독서하기 딱 좋은 환경에서 자란 복(?)받은 친구
였다. 다만, 어린시절 부터 책하고 너무 친하게 살아서 그런지 '책'을 그리 신성하게 생각
하지 않았고 '독서'에 어떤 가치를 추구하지 않았다고 할까?
그에게 책은 늘상 있는 풍경이었고, 집안을 좁게 만드는 불편한 그 무엇 이상도 이하도 아니
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잠깐 들려본 그의 집은 서재에서 거실까지 촘촘하게 책장으로 둘러져 있었고, 책장에
자리잡지 못한 책들은 모든 틈새에 적당하게 자리잡혀 있었다. 구석구석을 책이 점령하고 있
었던 것이다. 집에서 책이라곤 참고서와 뽀대나는 세로쓰기의 한국문학전집, 몇몇 수필집과
추리소설이 있던 나의 환경에 비하면 그야말로 도서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런 환경이
었다. 더구나 듣도 보도 못한 인문 사회과학 서적이 즐비하였으니... 한참 그 쪽에 관심이 가는
피 끓는 청춘이 보기에는 노다지 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건 나의 관점일 뿐이었고, L의 태도는 집안의 책들은 자기 아버지의 책들일 뿐이고
자신의 책이 아닌 이상 별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친구도 같이 공부하면서 자신
의 집에 책이 있어도 따로 자기 책을 사는 편인데...자기 책 둘데도 없이 책만 많다고 짜증
아닌 짜증을 내는 것 아닌가? 더구나 책 좀 읽고 있으면 아버지가 읽는 책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무식하다고" 혼을 낸다고 하면서 집에서 책읽는 것이 짜증 난다는 것이다...흠.  
더구나 좁은 집에 자신이 읽지도 않는 책들에게 빼앗긴 공간에 대해서 불평하는 친구를 보며
책자랑도 참 지랄같이 한다고 생각했다.  

'잰틀 매드니스'를 읽다 보면 정말 책에 미친 사람들이 얼마나 과도하게 책에 대해 집착하는
가에 대한 무수한 사례들이  나온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죽고나면 그 사람이 일생동안 모은
장서들은 후손들에게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된다는 것이고, 대부분 대학 도서관에 통채로
넘어 가거나, 서적상들에게 조각조각 팔려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너무 책들이 많아 정리하는데만 몇년이 걸리는 콜렉션들도 있다. 후손들 입장에서 책에 미쳐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살면서 후손에게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던 사람이 결국 남겨준 건 책이고
이거라도 팔아서 유산으로 쓴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결국 매니아에게 소중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에게 책은 정말 애물단지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부모들이 책을 '적당하게' 좋아해야지 광적으로 좋아하다간 애들이 책을 가까이
하기는 커녕 책과 더 담을 쌓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책 읽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편견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나의 후대가 좋아한다는 법도 없고, 어쩌면 책 자체가 일상에서
별 의미없이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책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는 일이 점점 눈치 보이는 일이 되었다. 책을 가져다
놓는 행위가 떳떳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니 나도 참 중증은 중증이다.
"제발 읽을 책만 사라"는 말에는 변명할 여지도 없다. 그럼에도 탐나는 책 (왜 별별 책들이
다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지...) 들이 나오면 난 여지없이 질러대거나 구입하지 못하면 안타
까워하니.... 그러니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게 많고.... 정말 더 이상 책을 사지 않아도 한 2년
은 읽을 책이 없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토요일 숨책가서 또 참지 못하고 확~ 질러버렸다.
그리고 책을 찿아 오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 이 병은 어찌 고친단 말이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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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9-2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이 맞습니다. -_- 한달에 몇번을 주문하는지...

머큐리 2009-09-28 18:41   좋아요 0 | URL
그나마 이 서재와서 바슷한 분들이 많아서 좀 위안이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로 집단 취급할 것 같아요...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09-2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아직 못가지고 가셨군요..
얼마전에 저의 토지전집은 어머니께 천대받아 창고에서 빗물에 젖은 채로 발견되었답니다.
네.... 가족들이 싫어해요 ㅠ.ㅠ

머큐리 2009-09-28 22:27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ㅠㅠ

순오기 2009-09-2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사는거 많이 자제했습니다.ㅋㅋ
어릴때 책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되는 거지, 자녀의 독서에 대해 지나친 강요나 비판은 곤란할 듯...

머큐리 2009-09-28 22:27   좋아요 0 | URL
알려주고 싶은데...아무래도 부모 욕심이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아요.. --;

비연 2009-09-2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달에 두번으로 제한했습니다...;;;;; 안 그랬다간 곧 파산..삐요삐요~
신용카드 청구서를 보면 아름답게도 '알라딘'으로 도배가 되어 있죠..
후배는 진드기 나온다고 책 많이 사는 저를 질색합니다. 책살 때마다 얘기하죠...
"진드기 더 나오겠군요.." ㅡㅜ

머큐리 2009-09-28 22:26   좋아요 0 | URL
알라딘으로 도배된 신용카드에 교통비만...흑

비로그인 2009-09-2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는 글입니다. 머큐리님
음.. 저도 일종의 책 마니아인데요, 내 아이들 넷 중에 셋은 열심히 책을 읽습니다.
맨 나중 아이는 만화책과 과학책만 봅니다.
일종의 편식이므로 인문쪽으로는 무식하지요.
이 아이보며 누나들과 나는 종종 웃습니다. 이런이런! 하하
말에 무식한 태가 납니다. 그래도 봐주는 편이지요.
머리에 쓸데없는 지식이 없는, 그 만큼 건강하거든요.
책이 때때로 약일 수도, 독일 수도 있겠다 합니다.


딸기 2009-09-2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트랙백쓸까 하다가... 귀찮아서 걍 추천만 누르고 갑니다 ^^
 

부천으로 이사 한지가 벌써 1년 7개월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문화시설이라고는
중앙공원만 알고 있던 나에게 지역 도서관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2세들을 재촉하여 탐사에 나서게 되었다.  

두 아들은 이미 도서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고, 지역에 도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건 보나마나 강제로 끌려가서 책을 읽어야 하는 원치않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했음이리라...흠 영악한 놈들..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찾아간 '책마루 도서관'은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훠~얼씬 더 깔끔
하고 좋아보였으며, 소장된 책들도 괜찮아 보인다. 어차피 전공 공부하러 가는 것도 아니니
깊이 있는 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책이 있으
니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4층으로 가면 영상물을 볼 수 있도록 꾸며논 방도 있다. 영상물의 종류도 다양해서 영화와
다큐 등 자료가 제법 충실해 보인다. 사실 세상에 보지 못한 영화가 본 영화보다 많을 터
시간내서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주말 말고는 직장인이 제대로 도서관을 활용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인데...

앞으로 소설류는 도서관 대여로 좀 해결해야 겠다. 이래저래 책 값으로 고통받는 나의
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났다고나 할까??
4대강이니 머시기니 하는 쓸데없이 낭비되는 돈들이 이런 지역도서관의 설립, 유지에
쓰인다면 얼마나 좋겠나.... 이왕 설립된 것 확실하게 이용해 주는 미덕이나 발휘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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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9-2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세금내는 보람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 도서관 갈때인걸요. ㅎㅎ
근데 머큐리님 사는 동네는 도서관 이름도 예쁘네요.
우리 동네 도서관은 그냥 시립00도서관인데... 건물이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리모델링 한 번 했으면 하는 소원이 있으나 그래도 가까이 도서관이 있는 것만으로 황송해해야 할 듯합니다. ^^

머큐리 2009-09-28 14:06   좋아요 0 | URL
여기는 2007년 2월에 개관했더군요...깔끔해요
정말 주변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세~ 를 외쳐야 할 판이에요..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2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주말엔 도시락 싸가지고 도서관으로 데이트 가야겠어요 ㅎ
그나저나 도서대출 살펴보니 집근처 서울대는 연 십만원씩 납부하면 한달에 다섯권 30일,(도둑놈들 국민 세금으로 지은 학교인데!!) 모교는 평생동문회비 30만원(도둑놈2 낸 등록금이 얼만데 --) 납부하면 재학생과 같은 대출이 가능한 출입증을 평생준다는데.. 모교 동문회비 한번 질러볼까 싶습니다 ㅎ

머큐리 2009-09-2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줄업하고 찾아가 본 적이 없어서요..ㅎㅎ
오이지군이랑 놀러 오면 책도 보고...집에서 커피 한 잔 대접한다..ㅋㅋ

순오기 2009-09-2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역도서관들이 여섯시면 끝내니 직장인들이 이용하기는 어렵지요. 교대 근무를 하더라도 밤 10시까지는 운영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 좋은 시설과 책들이 아깝잖아요~~ ㅜㅜ

머큐리 2009-09-28 22: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고용을 늘리는 차원에서 좀 더 신경쓰면 좋을텐데요..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28 23:14   좋아요 0 | URL
직장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을 시간에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우선은 ㅎ
아니면 도서관이 적당한 거리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한 전철역 하나당 하나씩 ^^ 직장에서 도보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