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 - 유.무신론자 모두가 알아야 할 신에 대한 논쟁
가이 해리슨 지음, 윤미성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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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사람들이 신을 믿을까?

오늘 퀴어퍼레이드에서 인상적인 푯말을 들고 나온 기독교인이 있었다.

 

동성애 죄 → 소돔 멸망

동성애 퀴어 → 핵전쟁 심판 위험!!

 

종교를 도대체 무어라 규정해야 할까? 한때는 기독교에 심취했던 나는 구약의 폭력적인 신에 질리고 의문을 품은 사실 자체가 죄가 되어 버리는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부터 내 사고의 한 축을 담당했던 종교를 버릴(?) 수 없었다. 물론 애정이라기 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운 시선이었지만...

 

아직도 예전의 교회 친구들은 날 위해 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나는 기도할 대상이 없어 그들에게 교회를 떠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신앙은 단순하게 권고한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럴때마다 더욱 더 종교에 비판적인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어떤 책은 신을 아예 신화로 만들어 버렸고, 어떤 책은 마음의 전염병 취급을 했다. 어떤 책들은 무신론적인 논의보다 예수의 혁명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종교에 대하여 신앙에 대하여 일반 신자들이 가지는 확신이 얼마나 부조리 하고 비과학적인지 하나 하나 친절하게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신앙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결국 신앙의 문제는 일종의 사회적 관습의 문제이고 마음의 문제일 뿐이다. 그들이 믿는 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신들 중 하나일 뿐이고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특정한 종교를 가진 신자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무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러한 무지가 맹목을 낳는다. 재미있는 점은 타종교를 비판할때는 매우 날카로운 비판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참으로 다양한 편견을 깨뜨린다. 신자들은 종교가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는 종교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또한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척체험에 대해 증언하고 그것을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적체험은 꼭 신을 믿지 않아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또 기독교인과 이슬람인이 모두 동일한 체험을 한다고 할때 과연 어느 신이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점에서 종교적 활홍감이 신을 증명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의 논쟁도 쉽게 알려주고, 종교적인 국가가 무신론자들이 많은 국가보다 잘산다는 주장에 대한 허구성도 보여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이라는 신자들에게 신의 존재를 전파하려면 신의 존재부터 증명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논증한다.

 

압권은 말세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다. 말세는 결국 신자들에게 구원의 시간이요 비신자들에게는 심판의 시간임에도 많은 이웃들을 불구덩이로 몰아 넣는 말세에 대한 희구를 비판한다. 더구나 각 종교에서의 말세는 그 종교만 구원하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문제는 인류를 사랑하는 신과 말세는 매끄럽게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신은 사랑이 넘치다 못해 인류를 전멸시키는 신이라는 이 엽기적 발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신을 믿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신자들에게 인간의 이성으로도 얼마든지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히려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종교로 부터 온 적이 많음을 다시 역사를 통해 증명한다. 그렇다고 종교를 믿는 신자들을 무지한 사람이라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종교는 거부해도 역사 속에서 종교를 통해 이루어진 문화는 인정하고 성숙하게 즐길 줄 아는 태도도 저자는 매우 중요시 여긴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이유없는 동성애 비판이나 여성의 비하도 종교가 가진 맹목성 중 하나다. 신의 명령을 변명 삼아 자신과 다른 인간을 차별하는 인간에 대한 혐오에 대해 종교는 대답해야 한다.

 

동성애 죄 → 소돔 멸망

동성애 퀴어 → 핵전쟁 심판 위험!!

 

이 푯말에 대해 기독교인들에게 하고픈 얘기가 있다.

당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종말에는 동성애가 만연해 진다고 한다. 자 동성애를 허하라~~ 그것이 종말을 앞당길 것이다. 그리고 종말이 오면 당신들은 하늘로 올라가 예수와 함께 복락을 누릴 것이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동성애를 두려워하는가?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여 동성애나 퀴어로 인해 하나님이 불로 심판한다고 두려운가? 그대 들은 이미 하늘로 올라갈텐데 무얼 그리 걱정하는가?

한기총은 푯말을 들고 있었던 그 분의 믿음이 약함을 빨리 깨우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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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기도하라 - 죽어도 죽지 않아
한승훈 지음 / 문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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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보면 예수의 초상과 체 게바라의 초상이 반쪽씩 나누어져 있다. 이 책의 주제를 잘 표현해 주는 경우이다. 더구나 2013년 광주에서 호출된 체 게바라는 아직도 그 혁명성을 의심받고 있다. 때문에 보수적인 신문들은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입고 공연한 일을 가지고 빨간 칠을 하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 아이콘으로 변질되어 혁명성이 사장되었다고 믿었던 나는 보수주의자들의 과격한 게바라의 호출에 놀랐다... 진심으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편은 예수와 예수가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야훼'를 설명하면서 예수가 살았던 지역의 역사적 사실과 그에 따른 예수의 생애를 기술하고 있다. 예수의 생애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기록들이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4대 복음(마태, 마가, 누가, 요한)내에서도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들도 잘 모를 것이다. 더구나, 예수가 행햇던 행적과 발언이 역사적 사실과 화학적 결합을 일으킬때 그저 평범하게 느껴지거나 뭔가 심오해 보이던 말씀이 얼마나 전복적이고 혁명적인지 알게 된다. 저자가 주장하고픈 것이 그것이다. 예수는 당시의 변방에 위치한 경계인이고 당시의 체제를 위협하던 혁명가 였다.

 

후반부는 이 땅에서의 기독교의 역사와 사회적 위치에 대해 논하고 있다. 물론 이 땅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왜 그럴까?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이 땅의 교회는 과연 어떤 원리를 통해 움직이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초지일관되게 예수에 대한 왜곡 및 배반의 역사로 읽힌다. 지금의 교회의 행태는 2000년전 유대의 왕으로 십자가에 예수가 매달렸듯이 예수가 21세기의 이 땅에선 빨갱이로 몰려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을 것이라 한다. 그만큼 예수가 살았던 식지민 유대와 분단의 현실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았던 것은 사막의 떠돌이들의 잡신인 '야훼'와 이를 정치적으로 포획하려 했던 유대 지도층의 신인 '야훼'의 충돌이었다. 개인적으로 구약의 신과 예수가 말한 신은 차별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부족신인 야훼가 곧 예수가 따르던 신이라는 저자의 견해는 뭔가 갸우뚱하긴 하다. 그럼에도 군사적 메시아와 체제를 극복하고,  온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메시아는 결국 충돌하는 이상일 수 밖에 없다.

 

후반부의 기독교 비판은 전반의 예수에 대한 평가로 부터 도출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르침 자체를 현재의 교회가 따른다고 보았을때 예수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인물이라면 교회를 비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교회는 예수를 배신했기에 비판을 받는다. 그들은 예수가 모시는 아버지 야훼를 버리고 재물신이니 맘몬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유대 예언자의 전통을 이은 인물로 그려져 있다. 예언자들은 광야의 잡신이자 구속으로 부터 유대민족을 구원한 야훼를 모신다. 사막의 잡신은 야훼는 국가나 정치적으로 구속된 신이 아니다. 사막에서 떠돌아 다니는 모든 비천한 자들의 신이다. 그리고 그 신은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어느곳에 가둬두는 걸 거부하는 신이기도 하다. 그는 성전에 거하는 자가 아니고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잇는 비천한 자들과 함께 하는 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수는 그런 신을 아버지로 부르고 그 신이 사랑하는 소외받은 자들과 함께 했다. 그들은 죄인이고 병든자고 세리이고 창녀이고 거지이고 불구자였다. 이른바 사회적 약자였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결국 예수는 유대왕을 사칭한 죄로 십자가에 매달렸다. 이른바 정치범 이었던 것. 예수가 증오한 자는 야훼를 성전에 가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을 팔았던 사두개인들이고 유대땅을 로마의 지배하에 놓은 왕권이고, 이들에게 저항하고 진정한 유대의 문화를 지키겠다고 자신만의 율법을 남들에게 강요한 바리새인들이었다.

이들에게 예수는 '독사의 자식들'이라 불렀다.

 

정권을 장악하고 군대의 통수권조차도 상국에게 바치겠다는 권력자들, 교회만이 모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사들, 교인으로 진리를 독점한 듯이 사람들에게 불신지옥을 외치며 일반사람들을 죄인취급하는 기독교인들... 저자가 보기에 이들은 모두 '독사의 자식들'이다.

 

예수가 누구일까... 그 혁명적 영성을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치열하고 차분하다. 체제를 깨뜨릴 영성과 그 후에 구축될 새로운 체제와의 영원한 갈등을 지적하고 언제나 체제 내의 모순을 깨버릴 상징으로서의 예수는 소환하지만...사람들이 소환하는 예수는 언제나 그렇게 혁명적 영성을 가진 예수는 아니다.

 

예수는 누구일까.... 그건 결국 호출하는 사람들 맘에 있다. 그게 불행하지만 기독교가 가진 한계이자 가능성이다. 문제는 예수가 아니다 그를 호명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던져준 최고의 답이었다.

 

뱀발) 기독교인들이여 동성애 혐오 좀 그만하자... 성경대로 산다고 하면 재산 다 버리고 예수가 가던 길을 가라...그대들의 신은 그대들의 지갑에 돈을 넣어주는 신이 아니다. 돈 있는 자가 천국에 못들어가게 하는 신이다. 성경를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신의 말씀으로 믿는 다면 재산과 건강과 명예를 요구함은 죽은 다음 지옥으로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꼴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의 말씀으로 동성애에 대한 죄악과 혐오는 그만 좀 하자... 그들도 하느님이 아끼는 그 분의 자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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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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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권정생 선생을 처음 으로 알게 된 것은 '강아지 똥'이란 그림책을 통해서였다.
평범한 똥이야기로 자연의 순환과 자기 희생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이야기 했던 그림 동화가 어떤 철학책보다 심오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었고 다른 동화책은 별로 읽어주지 않았어도 이 책 만큼은 애들에게 몇번씩 읽어 주곤 했다.  

그럼에도 그 분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떤 시절을 보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 책은 그러한 권정생선생의 내면을 알게 해 준 책이다. 평생을 쓸모없은 욕심을 줄이고 살았던 선생의 생활과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은 구판이고 신판이 더 있다. 어쩌면 신판에는 더 많은 글들이 실려 있을 지 모르겠다. 확인되는대로 신판까지 구입해야 겠다.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신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우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들어앉을 집이 있어야 하고 적어도 한달치 살아갈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갈 돈이 얼마면 될까요?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맞게 살아갈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한 일입니다. 내 몫의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니까요  [서문 4쪽]

 선생의 가진 신앙에는 굳건한 중심이 있다. 기독교인으로 선생은 예수의 실천적 삶을 모범으로 삼은 듯하다. 예수가 가진 혁명성은 낮은 데로 내려가는 것이었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모든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생태적인 사랑에서 부터 인류애까지 선생에게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회 역시 예수를 따르는 삶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하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볼 수 있다. 평생 남 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글 조차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선생은 온전한 삶 자체로 모범을 보이셨다.  

이 땅에서 예수는 철저하게 왜곡되어 왔다. 그리고 교회는 그러한 왜곡의 선봉장이었다.

지금 교회는 어떤가? 선교를 한답시고 온 세계에 떠돌고 다니며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온갖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도 하나의 공해물로 인식된다면 빛과 소금은커녕 쓰레기만 배출해내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한번 반성할 틈도 없이 그냥 발가 벗은 임금님처럼 앞으로 앞으로 가고만 있다.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서 예수님은 많이도 시달려 왔다. 한때는 십자군 군대의 앞장에 서서 전쟁과 학살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천국 가는 입장료를 어마어마하게 받아내는 그야말로 뚜쟁이 노릇도 했고, 대한민국 기독교 백년사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선봉장이 되어 무찌르자 오랑캐를 외쳤고, 더러는 땅투기꾼에게 더러는 출세주의자에게, 얼마나 이용당하면 살아왔던가?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회개를 부르짖고, 정의를 부르짖고, 온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도, 수십만명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어도, 인간에게 따뜻한 정(사랑)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추악한 욕심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게다. 아니면 편리함에 중독되어버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할 용기가 전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불편함에 대해 소유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교회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존의 조건이 개별화되고 파편화되면서 근대 초에 나타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나타나고 있다. 교인들만 욕할 필요도 없다. 교회도 이 사회구성원의 하나일 텐데 그들만이 이러한 흐름을 거스리지 못한다고 욕한다면 그것도 불합리한 일인 듯하다. 어쩌면 지금의 교회도 이 시대의 자식들이 뿐이다. 이 시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위선이 역겨운 것일테다.  

말로야 무엇인들 못할까. 글을 읽으면서도 계속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은 선생이 비판이 따까운 만큼 그렇게 실천하고 사는 것이 어려울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평범하지 않는 사람을 따라가기에는 난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질서을 빠져나와서 외치는 광야의 예언자같은 사람이 선생이 아닐까?  예수가 광야에서 돌아왔을때 그를 진심으로 따른 것은 제자들 뿐이었다. 그 제자들 마저도 죽음앞에서는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희망을 잃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지금 이모양 요꼴이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석가나 예수는 하느님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본래의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려 애쓴 분들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인간 모두에게 하느님늬 모습을 발견했고 각자의 가려진 눈을 뜨게 하여 자기 모습을 보게 했다.


인간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쩌면 우리안에 숨죽여 살고 있는 신성을 찾는 것과 다름아닐 것이다. 물질과 욕망에 눌려 있는 본연의 모습에 대한 신뢰없이 어떻게 아름다운 동화를 지어낼 수 있었을까? 매서운 채찍질의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깃들여 있다 더불어 사람과 같이 지내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었던 것이다.  

가장 사람다운 삶과 모습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니다.
인간을 사랑함이 곧 하느님을 사랑함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길은 이웃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길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자연을 자연답게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는 개의 모습대로 닭은 닭의 모습대로 모든 동물과 식물이 그들대로의 섭생에 따라 보호 되어야 한다.


요즘같이 거짓이 판을 치는 시대에 가슴에 새겨두고 음미해야 할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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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0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는 책이 있는데...제겐 이 책이 그랬었습니다.
오늘은,
"인간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쩌면 우리안에 숨죽여 살고 있는 신성을 찾는 것과 다름아닐 것이다."
이 문장 되뇌고 갑니다~^^

같은하늘 2010-11-02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바빴던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서재 나들이 중에 인사남깁니다.
이제는 좀더 자주 뵐 수 있겠지요? ㅎㅎ

2010-11-04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8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0-11-0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날씨가 많이 춥다고 하던데 감기조심하세요.^^
권정생 작가님의 작품 중에서 제가 읽은 건 <몽실 언니>밖에 없네요.ㅎㅎ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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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생각하면 구역질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자신은 구원받았고 이 세상은 죄지은 자들로 득실거리며,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이 하는 행동은 어떤 거리낌도 없다는 독선에는 구역질이 나고, 철없던 어린시절 교회에서 성장한 나 자신의 이력으로 본 정말 독실하고 윤리적이던 신도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드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다. 세상에서의 교회는 권력기구였으며, 지금도 권력기구에 불과하다고 본다.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신앙인으로서의 김두식은 아니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현상적으로 교회가 권력기구가 된 것 맞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다시 예전 초대교회의 이상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요지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조차 세상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의 질서를 받아들여 썩어들어가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할 지 몰라도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책이다. 김두식교수와 같은 신자들을 보면 도킨스가 아무리 기독교를 비판하고 무신론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종교는 쉽게 사멸하지 않을 듯하다.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 책은 오히려 강력한 신앙간증처럼 느껴진다. 속세에 맞선 교회공동체로 복귀의 주장은 이상적인 만큼 혁명적이다. 

기독교의 타락은 세속의 권력과 결탁하면서 이루어졌다. 로마의 기독교화는 교회의 세속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런의미에서 권력과 동행하는 기독교의 성장은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신앙공동체가 그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공동체로 변해버렸으니 그 안의 옥석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진정한 신앙은 고난과 박해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는 권력과 야합하면서 성장했다. 권력과 함께 자본과 외적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물적 은총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며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속에는 차가운 권력관계와 서열관계만 존재하고 있지 신앙을 중심으로한 평등한 공동체는 내부적으로 압살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교회공동체의 복귀가 혁명적인 것은 프로테스탄티즘 본래의 정신으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신앙과 양심에 따른 하나님과의 일대일 교통을 요구했던 신교의 전통은 소교황으로서의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신과 함께 소통하고 서로의 신앙을 나누는 공동체에서 신권주의적 목사는 장애물일 것이다. 더불어 신도들은 공동체적 보살핌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들도 공동체 내부에서 풀어나가야지 국가에 기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의 양심에 따른 행위에 대한 지원은 말할 것도 없으며, 성소수자등 소외받는 자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마치 건강한 시민사회를 보는 듯한 주장이지만, 그 근원은 다른곳에 있다. 단순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닌, 이미 2천년전에 그렇게 사시고 가르침을 준 예수의 생애가 밑바탕에 있는 것이다.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천국을 외치지 않는다. 예수를 본받음으로 해서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주체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어는 정치조직에서 외치는 것보다 더 반국가적인 혁명적 조직이 연상된다. 신앙이라는 관념만 빼버리면 원형적인 소비에트나 노동자 자주관리 등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그저 신앙일 뿐이고 실천은 보편적인 인류애의 달성과 새롭게 거듭나는 인간일 것이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무신론자이면서 기독교를 욕하지만 정말 물적, 이기적, 도구적 이성의 사람이 정신적, 이타적, 종합적 이성의 사람으로 변화하는데 신앙이 도움이 된다면... 글쎄...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내 무신론적 신념에 매서운 일타를 날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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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1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두식을 연속으로 읽으셨군요.
'교회 속의 세상'은 '불편해도 괜찮아'랑은 또 다르다고 하던데요~
급 호기심인걸요~^^

머큐리 2010-10-13 18:59   좋아요 0 | URL
이 분 글은 읽어서 손해날 일이 절대 없다고 봐요..현재까지는..^^

양철나무꾼 2010-10-14 00:43   좋아요 0 | URL
'불편해도 괜찮아'도 님의 페이퍼를 보고 혹해서 읽었던 기억이~~~^^
 
웃고 있는 예수 - 종교의 거짓말과 철학적 지혜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 유승종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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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난 기독교인이 아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시한다고 하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서적이나 비판 서적을 필독서로 탐독하는 것도
그런 강박증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사실 이 책을 집어 들고 살까 말까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더 이상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을 읽어 무엇할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이문열을 싫어하기 이전, 난 사실 기독교를 버릴 때, 이문열의 도움이 컸다. 그의 소설 
'사람의 아들'은 정통적 기독교 시각을 탈피해서 이단의 시선으로 기독교를 바라보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초기만 해도 결론이 어쩡쩡해서 그렇지 이문열의 문제
제기는 첨단을 달리는 데가 있었다. '영웅시대'만 해도 감히 좌익사범을 소설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시절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어쩡쩡한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결국 미심쩍은 작가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으니...그래서
더더욱 이문열을 싫어 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 읽으라고 권한다.

더불어 이 책의 저자들이 지은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꼭 권하는 책이다. '예수는 신화다'
라는 제목의 책인데, 내용은 현란한 증거들을 끌여들여 예수의 존재는 신화를 유대식으로
다시 꾸며낸 것이지 역사적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책이다.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그저 신화 속 이야기라는 주장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예수의 권위를
그냥 허구의 이야기로 깔아 뭉개버린 탁월한 책으로 기억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허구의 존재로, 아니 영지주의적 비유로 본다.
이 책이 비판하는 대상은 '문자주의' 종교다. 지금의 유대교, 기독교, 카톨린, 이슬람교가
모두 해당 될 것인데, 결국 신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경전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야 정말 죄 받을 소리지만, 이젠 이 소리가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다.

다만, 그렇다고 성서나 코란을 모두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식으로 긍정한다.
그 경전들은 비유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영적인 고양을 하기 위한 풍부한
텍스트로서의 경전은 보존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옛 이야기를 진짜로 믿고 그
당시 야만적 윤리를 신의 뜻으로 포장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말이다.
더불어 영지주의적 일자에 대한 현대적 풀이를 늘어 놓는다. 철학의 이름으로... 

과연 영지주의 철학은 가능할 것인가. 과거 플로티누스의 이론을 토대로 한 것 같은 일자론이
이들 저자의 현대 영지주의다. 이것에 동의하던가 말던가는 독자의 선택 나름이리라
다만, 철학이라 하기에 너무 종교적이고 종교라 하기엔 철학에 치우쳐 있어 이도저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이들의 싸움이 소중한 것은 아직도 '문자주의'신앙자들, 근본주의자들이 이 사회와
세계에 가하는 폭력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것 보단 그래도 덜 극단적이면서
중도적인 것이 답이 될 수도 있겠다.

난 아직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이들의 설명은 묘하게
친근하다. 우리는 하나다. 그러니 더 이상 분열하고 갈라서서 싸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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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0-2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은 제대로 읽어도 24금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포르노가 있었겠습니까. 사람의 아들이 70년대에 쓰여졌다는 건 신의 은총입니다. 방대한 양의 자료며 신학, 철학적 문제의식이 지금 진보를 자처하는 신학자들 수준보다 오히려 나으니까요.

리뷰를 보니 대충 저와 비슷한 생각의 궤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아직도 저는 그 동네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도. ㅎㅎ 저는 가까스로 신앙이라는 걸 제 나름대로 다시 정의하고 신학이라는 것의 외연을 멋대로 넓혀가면서 버티고 있지요.

예수는 신화다는 즐겁게 본 책인데 그 책의 저자들이라니 한번 읽어 볼 법 하군요.

머큐리 2009-10-20 21:33   좋아요 0 | URL
앗~ 아름다운 말미잘님이닷!!!
(언제 함 그 미모를 확인해야 할 텐네요...ㅎㅎ)

뷰리풀말미잘 2009-10-20 21:46   좋아요 0 | URL
저는 라주미힌님 발에 신들메도 매지 못합니다. ㅎㅎ

머큐리 2009-10-20 22:04   좋아요 0 | URL
흠 알라딘 여성들의 평가는 안그렇던데요...으흐~

비로그인 2010-05-1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으로 쏙!

머큐리 2010-05-12 11:47   좋아요 0 | URL
최근에는 이 책이 좀 끌리던데요 '우주에는 신이 없다'

비로그인 2010-05-12 17:47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우주에는 신이 없는데 머큐리님 방엔 나를 꼬시는 지름신이 살아~~~~